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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그리고 회색-534화 (534/591)

534화

“이집트 군이 리비아 군에 비해 항공 전력이 열세라고 하니 연합군 소속인 육군항공대도 같이 파병을 보내도록 조치하고요.”

“폐하, 언제까지 부대를 이동하죠?”

“우선 준비하고 일주일 후에 이동하세요.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에게 연락하고 기갑군단을 이동시켜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아랍연합군 소속인 항공대는 E-8 조인트 스타즈 지상목표조기경보기, Ka-50 호컴 공격헬기 36대, Ka-52 앨리게이터 공격헬기 36대를 보유한 막강한 전력이다.

지상군인 K1A2 전차로 무장한 기갑군단과 합동 작전을 펼친다면 미육군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강의 전력이다.

“폐하, 항공대도 알렉산드리아로 배치하나요?”

“그렇소. 그런 정도의 항공 전력이면 충분히 시리아 군을 격퇴할 수 있을 거요. 공군은 아마 사우디 왕국에서 지원해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파병 보낼 준비를 서두르겠습니다.”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에게 참전을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그 때문에 약속을 지키고 나서 부대를 이집트의 서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수훈은 임종광 사령관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자 바로 모스크바로 전화했다.

“아랍연합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알았소. 우리도 협조하죠. 무기는 판매하지 않으니 염려 놓으시오.”

“감사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많은 투자를 해주어 고맙소.”

“잘 운영되면 투자는 더욱 늘 것입니다.”

아랍델타연맹이 드디어 이집트와 리비아 사이의 국경분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러시아로 통보했다. 옐친대통령은 약속한대로 리비아에서 요구하는 무기 판매에 대해 거절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엘친 대통령은 러시아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리비아로 무기를 파는 대신 모하르 샤 국왕의 투자를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리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던 미국에서는 즉시 회답을 해주었다.

“아랍에서 원하면 직접 참전도 할 것이니 언제고 요청만 하시오.”

“그런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랍 문제는 아랍에서 해결해야죠.”

미국 정부에서는 만약 이집트와 리비아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개입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중해로 배치된 CVN 73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 전단을 이용해 리비아의 해안을 완전히 봉쇄하는 방법으로 압박한다고 한 것이다.

러시아에 이어 미국 그리고 한국 대통령에게도 참전 사실을 알려 주었다. 또한 아랍델타 연맹국의 국왕들에게도 모두 알려 주었다. 한국에서는 6천톤급 군함 두 척을 홍해로 파병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급하게 처리할 사안들을 정리하고 나자 김수훈은 즉시 오만왕국으로 떠나고 있었다.

모하르 공항으로 국왕이 도착하자 보잉747기를 개조한 국왕전용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기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인사했다.

“폐하, 1호기의 기장인 이창공입니다.”

“그래요? 이름이 특이하군요.”

“공군이던 제 아버님이 지어준 이름이라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김수훈은 그동안 계속해서 민간 항공기를 타고 다니다 드디어 국왕전용비행기를 마련했다. 항공기는 개인이 보유한 자금으로 구입했다. 앞으로 운용비는 모하르 령의 예산과 아프가니스탄의 정부예산에서 충당하는 방식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공군1호기이자 모하르 령의 항공대 1호기다. 수많은 전자 장비와 자체 방어를 위한 여러 가지 방어 장비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김수훈이 기장의 안내로 항공기에 오르자 기내에서 기다리고 있던 블루아이가 반기고 있었다.

“폐하, 어서 오세요.”

“수고가 많군.”

블루아이는 단순한 시녀에 불과했으나 이제 국왕의 내연녀가 되었다. 그것은 내부적인 비밀사항이고 외부적으로는 전과 똑 같았다.

그녀가 내연녀라는 사실이 누설되면 어떤 이유라도 관계는 끝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사이라는 것은 그저 알아도 모른척 해야 하는 비밀에 속한다.

블루아이는 대위이던 계급이 소령으로 오르고 경호실 차장급으로 직급이 올랐다. 블루아이는 모하르 샤 국왕의 경호차장이란 직책이 부여되었다.

“애들은 모두 임관식을 하러 귀국했습니다.”

8명의 시녀들은 모두 사관학교 4학년이라 돌아가서 임관하고 다시 합류하게 된다.

“몇 명이 다시 합류하나?”

“4명만 잔류하고 4명은 왕후님 경호부서로 발령 나게 됩니다. 나머지 부족한 시녀들은 다시 4학년 8명이 합류하게 될 겁니다.”

수행하는 시녀들이 12명에서 다시 16명으로 늘어났다. 이유는 전용비행기에서 상주할 여승무원이 4명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용기에는 오만 왕국으로 가서 결혼하게 되는 신복일이 타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김수훈은 마주 앉아 있는 신복일을 보며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랍공주와 결혼하니 기분이 어떠냐?”

“얼떨떨합니다.”

“결혼식도 자주 하다보면 별 것 아니다.”

김수훈의 말에 신북일이 기겁하며 급하게 답했다.

“폐하, 결혼식을 자주 하다니요. 저는 더 이상 결혼은 안합니다.”

“또 하기가 쉬울 건데?”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오만공주와 결혼하면 다른 여자는 절대로 쳐다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시고 또 다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지마세요.”

“복일아, 세상사란 그렇게 단정할 수 없는 거야. 그러니 살아 보지도 않으며 앞날에 대해 그렇게 호언장담하지 마라. 더구나 아랍은 일부다처제라 네가 하는 말 지키기가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오만 왕국에서는 신복일에게 두 명의 공주와 동시에 결혼하길 원했다. 그러나 신복일이 끝내 반대하자 결국 김수훈이 주선해 한 명과 결혼하도록 결정되었다.

“데하둘라 행정청장이 늦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조금 늦나 봅니다.”

“무슨 일인데?”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모니터링 지역에서 변종이 태어나 확인하러 갔습니다.”

“변종이라니?”

“동물원에서 키우던 시베리아호랑이가 백호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 벌써 새끼를 낳다니 좋은 징조군.”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크게 울타리를 치고 시베리아호랑이와 아프리카의 사자를 사육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얀색의 백호가 태어나자 혹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변종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데하둘라 행정청장이 직접 가서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한다는 보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데하둘라 청장이 스카레알 경제수석비서관과 같이 도착했다.

데하둘라 청장이 다소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항공기에 오르고 나서 국왕에게 보고했다.

“폐하, 조치하고 왔습니다.”

“새해 첫날 백호가 태어났다고요?”

“예, 아주 건강합니다. 러시아에서 호랑이를 보낼 때 임신한 상태에서 보낸 모양입니다. 네 마리 중에 한 마리가 수놈인 백호입니다.”

먼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자 김수훈은 중국과 일본의 재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모포와 의류를 보내주고 모하르 령에서는 경유나 조금 보내주세요. 모두 5개 도시니 같은 규모로요.”

“알겠습니다. 경유는 한국의 SK정유에서 사서 보내면 되겠네요.”

“그게 운반비가 적게 드니 좋겠군요.”

겨울철에 벌어진 재난이라 추위를 견딜 장비나 연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모두 모하르 샤 국왕이 은근히 견제하는 나라들이다. 하지만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재민을 돕기로 결정했다.

이웃한 나라인 한국 정부는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이미 국가적인 재난을 당한 중국과 일본으로 구호품을 보내기로 결정해 신속하게 수송해주고 있었다.

오만 왕국으로 떠날 사람들이 모두 탑승하자 항공기는 빠르게 이륙해 오만의 수도인 무스카트로 향했다.

이륙이 끝나자 김수훈은 신복일에게 다시 물었다.

“오만 국왕이 너에게 뭐를 해준다고 하던?”

“아직 그런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상하네. 분명히 오만 국왕은 나와 약속하기는 너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싶다고 하던데.”

오만 왕국에서는 신복일이 오만 공주와 결혼하는 것을 계기로 그에게 뭔가 해준다고 국왕이 직접 약속했다. 아직도 당사자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수훈은 옆에 서 있는 블루아이에게 물었다.

“해구신으로 만든 보약은 가지고 가나?”

“예, 포장을 40개로 나누어 준비를 끝냈습니다.”

김수훈은 오만 왕국의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에게 해구신으로 만든 정강제를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복일이 국왕에게 바치는 결혼 예물이다.

러시아로 직접 가서 물개를 잡아 모하르 령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한의병원을 운영하는 한의사에게 보약을 제조하도록 의뢰했다.

많은 오만 왕족들에게 보내줘야 하니 추가로 러시아에서 생산된 해구신을 구해 같이 제조했다.

“복일아, 결혼하면 당분간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살기로 약속했다고?”

“예. 오만 공주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김수훈은 신복일의 대답에 결혼을 먼저 한 선배로 충고하고 있었다.

“복일아, 너 북어와 마누라는 방망이로 많이 팰수록 맛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냐?”

“예, 자주 들어본 이야기죠.”

“너, 북어야 당연히 진짜 방망이를 말하는 것이지만 마누라는 진짜 몽둥이가 아니라는 것은 유념해라. 똑똑한 여자니 처음에 잘해라.”

“예, 그건 저도 잘 압니다.”

약간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외로움으로 인해 친구인 신복일을 가깝게 두고 있었다. 김수훈은 그나마 그런 친구도 결혼해서 주변을 떠나게 되자 조금 섭섭했다.

김수훈은 주위에 아무도 없자 신복일에게 물었다.

“너 내가 알려준 지압술 잊어먹지 않았지?”

“예.”

“그것 너무 자주 써먹으면 안 된다. 첫날밤하고 부부 싸움이 터질 징조가 생길 때만 비장의 무기로 써먹어.”

“알았어요.”

김수훈이 신복일에게 알려준 지압술은 여자의 허리나 목덜미 그리고 엉덩이의 꽁지 뼈 부분을 눌러주는 수법이다. 그곳은 보통의 여자도 성감대가 많다고 알려진 곳이나 점검해서 반응하면 지압 방법으로 가끔 필요할 때 꾹 눌러 주라는 이야기다. 그래도 친구니 아랍공주에게 기죽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비장하고 있던 비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는 나와 달라 손에 힘이 약해 아랍공주가 살집이 있으면 효과가 조금 덜할 거야. 기회가 있으면 악력기로 손가락의 힘을 길러 봐.”

“예.”

김수훈은 혹시 몰라 다시 반복해서 지압술을 알려주고 있었다. 김수훈은 이런 조언이 사실은 모두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물개인 네가 오직 잘 하겠냐.”

결혼식 행사가 피곤할 것 같아 신복일과 대화를 끝냈다.

자리를 집무실로 옮긴 김수훈은 블루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리아 왕후는 벌써 도착해 있다고?”

“넷! 무스카트 공항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왕자님도 같이 오셨습니다.”

“그래? 많이 자랐겠군.”

먼저 아리아 왕후에 대한 보고를 하고 나자 블루아이는 조심스럽게 다른 보고를 했다.

“폐하, 아리아 왕후님이 저와 폐하의 일을 아시고 계십니다.”

“어떻게 알지?”

“제가 보고해서 압니다. 저는 그래야할 의무가 있어서요.”

“그랬군. 그래서 왕후가 자네를 소령으로 진급시키라고 전화를 했었군.”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녀들은 엄연히 내명부 소속이라 내명부의 수장인 왕후나 혹은 관리인인 카산드라에게 국왕 주변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은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전에 같으면 혹시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이런 보고 체계에 대해 익숙해서 그런지 그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블루아이는 이런 보고를 하고 즉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했다.

“폐하, 결혼식장으로 바로 가시게 되는데 참석하실 의상은 뭐로 하죠?”

“왕후는?”

“아랍 전통의상입니다.”

“그래? 그럼 나도 아랍의상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김수훈은 지금까지 입고 있던 하얀색 정장을 벗고 아랍 전통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아랍왕국의 결혼식에 참석하니 그런대로 왕후가 의상을 잘 선택했다고 판단되었다.

잠시 뒤에 무스카트 공항에 항공기가 착륙해 기내에서 내리게 되자 공항에서 기다리던 아리아 왕후가 지브릴 왕자와 같이 방탄 리무진을 타고 다가 왔다.

두 사람 모두 다소 화려한 아랍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김수훈이 리무진으로 오르자 지브릴 왕자가 차 안에서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부왕, 옥체 강령하셨어요.”

“허!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던.”

한복이 아닌 아랍 전통의상을 입고 절을 하니 멋쩍었다.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부왕의 물음에 지브릴은 또릿한 목소리로 답했다.

“훈장 선생님이 부왕을 만나면 꼭 절을 하라고 했어요. 안하면 회초리를 치신다고········.”

“훈장?”

처음 듣는 이야기라 김수훈이 아리아 왕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리아가 입가에 가볍게 엷은 미소를 띠우며 답했다.

“지브릴이 한문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한문선생님을 초청했어요. 지리산 청학동에서 사시던 분이라 아주 엄하십니다. 잘못하면 회초리를 사정없이 치세요. 그래서 지브릴 왕자가 그 선생님을 보면 쩔쩔매죠.”

“어디서 배우는 거요?”

“훈장선생님의 숙소나 서당은 수목원에 임시로 나무로 지은 조립식 한옥입니다. 매일 그곳으로 가서 지브릴이 회초리를 맞으며 한문 공부합니다.”

“잘 판단했소.”

주위에서 온통 떠받드는 시녀들로 가득한 왕궁에서 생활하니 어린 지브릴의 버릇이나 생활 습관이 잘 못 될까 염려를 하던 터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비로써 직접 교육을 시켜야하나 어째 그럴 자신이 없었다. 아리아 왕후에게 왕자의 양육이나 교육은 모두 전담시키고 있었다.

다행이 엄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 필요한 예절은 충분히 교육 받을 것 같았다.

‘어르신이면 잘 가르치겠지.’

김수훈이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칫 지브릴 왕자가 버릇없이 자라 방종한 생활을 하게 되면 큰일이라 오히려 엄하게 키우는 교육 방식에 동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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