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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그리고 회색-531화 (531/591)

531화

저택에 돌아온 제임스는 우울한 기분을 풀어볼 생각으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산에 가자!”

“산요?”

“가까운 산으로 해맞이를 하러가자.”

제임스의 말에 경호원들은 다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새해를 맞이하는 해맞이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안나는 아버지로부터 들은 기억이 나서 즉시 답했다.

“좋아요. 날씨도 좋으니 산으로 가서 해맞이를 보는 것도 좋겠네요.”

안나가 동조하자 제임스는 즉시 우영복을 불러 지시했다.

“우 사장, 도시락 좀 준비해. 20명분으로 김밥을 싸.”

“회장님, 어디로 가시려고요?”

“새벽에 대둔산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도시락과 음료수를 가지고 가야하니 배낭을 준비하고.”

“예.”

그린 파크 내에 한우 전문 식당이 있으니 그 여자들에게 도시락을 싸도록 지시하면 되니 쉽게 답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우영복과 함께 천천히 그린파크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 금산군 복수면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구 수도 대폭 늘고 그린 파크 인근에는 많은 러브호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가까운 곳에 새롭게 커다란 공단도 들어서게 되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오랜 만에 와서 보니 너무 많이 변했군.’

대전이 발전하며 자연스럽게 이곳 복수면은 유흥업소들이 많아졌다. 밤이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돌아다니자 물었다.

“우 사장, 대학생들이 많네.”

“예, 근처에 대학교가 생겨서 복수면에 원룸이 많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원역사와 달리 이곳 복수면에 금산대학교가 들어서 있었다.

다음날 새벽 5시. 그린파크의 저택을 출발한 제임스 일행은 렌터카를 타고 빠르게 대둔산으로 행했다.

길가에 자주 보이는 불빛이 환한 러브호텔을 보며 안나 양은 너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회장님, 농촌인데 숙박 시설들이 많군요?”

그러자 제임스는 피식 웃고 답을 안 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답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다. 그러자 운전하던 우영복이 흘리듯이 답했다.

“여기는 관광지로 유명해 저런 숙박 시설이 많은 거요.”

“그래요?”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의문이 많았다. 관광지로 유명하다고 해도 그렇지 그냥 도로 옆에 있는 숙박 시설이 잘 운영될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이상하네. 한국은 이상한 문화가 있어.’

러시아의 경우 도시 주변에만 숙박 시설이 있다. 시골 길이라고 보는 국도 주변에 이런 화려해 보이는 숙박시설이 있는 곳은 없었다.

어두운 도로 옆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러브호텔은 유난히 크게 보이고 눈이 잘 보이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런 러브호텔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도 저 많은 러브호텔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커플들이 열기를 품어내겠군.’

대부분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외형적으로는 화려하고 크게 성공한 삶이라는 자신은 정작 그런 정도의 열정도 없이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오자 새삼스럽게 삶의 모습들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세 대의 차량이 대둔산 관광호텔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승용차에서 내린 제임스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올라가야 하니 짐을 나누지.”

“넷!”

일행은 우영복이 급하게 준비한 배낭에 음식을 나누어 담고 등에 메고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산을 향해 조금 올라가다 보니 관광호텔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케이블카 시설을 보였다.

케이블카를 타보지 못한 안나는 다소 급하게 말했다.

“회장님, 우리 저것 타고 가죠. 저 타보고 싶어요.”

“새벽이라 운행할지 모르겠네.”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는 승강장으로 가서 살폈다. 케이블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산의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가 있어서 그런지 아주 이른 새벽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카는 운행하고 있었다.

“타고 가자.”

일행은 줄을 서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랐다. 아직 어둡지만 그래도 흐릿하게 보이는 대둔산의 모습에 안나 양은 감탄하고 있었다.

“회장님, 산이 높지는 않지만 아주 멋있네요.”

“그래?”

멀리보이는 도시에서 나오는 불빛이 아름답게 보이고 있었다. 들떠 있는 안나나 경호원과는 달리 제임스와 우영복은 다소 침통한 표정이다. 우영복은 아들과 부인을 비명에 보내고 그 후유증으로 외국으로 나가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 사는 제임스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빨리 귀국하셔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동남아시아로 가서 크게 성공했다고 하지만 우영복이 보기에는 무척 외로워 보여서 해보는 생각이다. 우영복은 밝은 모습으로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안나 양을 보며 생각했다.

‘미인이고 밝은 성품 같은 여자인데 잘 되면 좋겠네.’

제임스 일행은 케이블카에서 내려 구름다리를 지나 계속 철 계단을 오르자 안나가 놀라 탄성을 토했다.

“어머나, 이런 곳에 계단을 만들었네요.”

일부러 험한 곳에 계단을 만든 것이 이상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체력이 우수한 일행이라도 너무 가파른 산행이라 다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일행은 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인 마천대 위에 세워진 개척탑까지 오른 일행은 양쪽 팔을 벌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후! 시원하고 좋네요.”

정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의 등산객들은 아주 건장한 외국인들이 많이 올라오자 호기심을 표하고 있었다.

‘뭐하는 사람들이지?’

모두 다부진 체구라 위축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에서 유일한 여자인 안나 양의 얼굴을 보며 대부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 양의 미모가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 여자 뭐하는 여자야? 모델인가? 처음 보는 여자인데 미인이네.”

“혼혈 같은데?”

“그런가? 대단한 미인이네.”

안나 양의 늘씬한 키와 뛰어난 미모를 보며 남자등산객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러자 같이 산에 오른 여자등산객이 입을 삐쭉 내밀며 짜증을 냈다.

“여보, 새해 초부터 딴 여자만 넋 놓고 볼 거예요?”

“보긴 뭘 봐! 나는 산 아래 보는 중이구만.”

대답이야 이렇게 하지만 여전히 남자등산객들은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안나 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임스는 정상에서 약간 떨어진 공지로 향하며 지시했다.

“우린 저쪽에서 우선 식사부터 하지.”

“넷!”

일행은 싸가지고 온 김밥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 산에 오르자 배가 출출했기 때문이다.

휘리릭! 휘익!

겨울 산행이라 찬바람이 불자 써늘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추운 지방에서 태어난 경호원들은 다들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밥을 먹고 나자 제임스는 뜨거운 커피를 보온병에서 따라 마시며 우영복에게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하지.”

두 사람은 일행과 약간 떨어져 둘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 사장, 몽골에서 들여온 말들은 어디로 임대 하나?”

“ST 레포츠와 계약하고 있어요.”

“그래? 레포츠 그룹에 영화사도 있어서 그런가?”

“예, 그런 이유도 있지만 요즈음은 취미로 승마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승마협회가 군 단위마다 생겨 레포츠 회사에서 일괄해 임대하고 다시 임대를 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원 역사에는 15년 뒤에나 도달하게 되는 20, 50을 달성한지 오래다. 국민소득이 2만불에 인구가 5천만명을 넘어야 된다는 선진국이자 강대국이라는 외형적인 수치다.

제임스는 우영복에게 다시 말 임대 사업에 대해 물었다.

“영화사에서는 언제 임대해 가고?”

“근처에서 영화 촬영할 경우는 빌려가죠. 그리고 드라마 촬영에도 빌려가고요.”

두 사람은 일행과 떨어져 계속해서 그동안 그린파크의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가끔 가명으로 팩스나 아니면 전화로 서로 연락은 해서 알고는 있지만 직접 찾아 왔으니 우영복에게 묻고 있었다.

우영복은 사업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자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회장님, 언제 한국으로 돌아오실 겁니까?”

“나야 이제 한국에 돌아오기는 어렵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를까?”

이제 돌아와서 살까도 생각해 보고 있지만 일단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직 한국으로 돌아와 정을 붙이고 살만한 어떤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동쪽에서 서서히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해맞이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에서 일제히 애국가를 큰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큰 소리로 외치는 애국가를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안나 양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제임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회장님 조국이 한국입니까?”

안나 양이 알기로는 홍콩 출신으로 백인 혼혈로 알고 있으니 이상해 보인 모양이다. 제임스는 여전히 눈의 색도 파란색이고 머리도 노란 빛을 띄우고 있었다.

한국의 금산에 있는 사업체도 그저 외국인으로 투자를 해놓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안나 양은 물론 경호원들도 다들 조금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나의 물음에 제임스는 빙그레 미소만 띄웠다. 거짓을 답하기보다 그저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정상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애국가를 시작으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1996년 1월 1일인 새해 첫날의 해맞이 행사가 시작되었다.

탁탁탁탁!

한쪽 구석에서는 불교 신도들과 스님이 모여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이 찬송가를 구르며 새해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 두 다른 종교 그룹과 달리 한쪽에서는 신룡교인이라는 표시인 두건을 쓴 사람들이 붉은 해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다른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이런 해맞이 행사를 함께한다는 자체가 안나 양의 눈에는 너무 이상했다.

‘한국은 너무 이상한 나라야.’

불과 수십년만에 선진국 대열로 끼어든 경제발전을 이룬 것도 경이롭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어떤 책에서 보니 한국인들은 때로는 한 사람이 여러 종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었다. 물론 그저 종교 단체에 가입만 했다고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런 경우는 전혀 없으니 이 또한 신기했다.

산에는 어김없이 사찰이 있었다. 그리고 도심에는 수많은 십자가가 보여 그 또한 이상했다.

한국은 안나 양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이상한 나라다.

‘여러 종교를 모조리 믿어서 여러 신들께서 축복을 줘서 잘 사는 나라가 됐나?’

단체로 와서 해맞이 행사를 하며 뭔가 기원하는 종교 단체들을 보며 제임스는 우영복에게 지시했다.

“우 사장, 우린 태고사 쪽으로 갈거니 승용차를 그쪽으로 가지고 오지.”

“예, 알겠습니다.”

세 대의 차량을 어떤 식으로 가져올지 모르지만 이렇게 지시하고 제임스는 태고사로 향하는 코스를 따라 하산하고 있었다. 산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여 일행들이 걷기에 약간 미끄러웠다.

항상 제임스의 옆에서 따라가는 안나 양은 가끔 미끄러지게 되어 제임스의 부측을 받았다.

“어마!”

“조심하고. 산행은 하산이 더 위험해. 특히 눈이 와 있는 산행에는 더 조심해야한다고.”

“예.”

일행은 등산화는 신었지만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스틱도 들지 않아 눈길을 걷기에는 약간 힘들었다. 처음에는 옆에서 가끔 부축해 주는 정도로 내려오던 제임스와 안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경호원들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둘이 결혼하면 좋겠네.’

아무래도 러시아 출신인 여자가 회장과 결혼하면 그래도 자신들의 위치가 전보다 확실하게 보장이 된다는 이점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일행은 태고사를 지나 행정 저수지 근처를 지나 삼거리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우영복이 제임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회장님, 골프장을 가보시려고요?”

“아니, 잘 하는데 가볼 필요가 없지.”

행정리 근처에 있는 골프장은 제임스가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임스는 우영복에게 지시했다.

“우 사장은 이제 집으로 가게.”

“어디로 가시려고요?”

“나는 논산하고 부여를 돌아보고 경주로 갈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우영복이 대리 기사를 불러 가져온 두 대의 렌터카에 경호원들과 같이 타고 부여로 향하고 있었다.

논산으로 향하고 있는 중. 라디오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일본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라 제임스는 흘려듣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 아나운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고 있었다.

“지진의 규모는 진도 7을 넘어 8을 기록하며 일본의 나가사키와 제주도 남쪽 해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헉!”

일본 서쪽 지역만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남쪽 해상에도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니 제임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기가 아무리 감옥에서 오래 살고 미천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전생이지만 제주도에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억은 없었다. 그러니 이런 놀라운 뉴스를 접하자 제임스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세상이 변하다니.’

전에 의형인 김수훈이 말한 그대로 새로운 세상은 사람들이 벌이는 일만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내부도 크게 변했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었다.

제임스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스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논산의 연산에 도착하자 급하게 삼거리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방으로 들어가자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마담도 약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크게 외치고 있었다.

“어머머! 제주도로 해일이 밀려올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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