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과 백 그리고 회색-483화 (483/591)

483화

둘은 리무진으로 와서 뒷좌석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북한으로 보낼 국화는 모두 사서 준비했어?”

“예, 포장이 모두 끝났어요. 조금 있으면 화물차가 와서 가지고 갈 겁니다.”

이은혜는 국화 농장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필 이곳으로 정한 것이 이상해서 물었다.

“왜? 여기 농장으로 정했어?”

“그거요. 우연히 마니산으로 가다가 국화 사려고 들렸는데 여기 농장 주인이 부여 출신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로 자주 찾던 곳이죠.”

“그랬어?”

“예. 마을에서 생산되는 국화를 여기 포장공장으로 모아 판매해요.”

“여기 농장 규모가 제일 큰 모양이네.”

“예, 제일 규모가 큰 농장으로 꽃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은 곳이에요.”

농장 주인이 부여 출신이라니 윤수인이 자주 단골로 찾는 다는 소리가 이해되었다.

두 여자 모두에게 부여는 추억이 담긴 곳이다. 이은혜는 부여에서 출생해 생활했고 윤수인 역시 부여에서 오래 생활했으니 두 여자 모두 고향인 셈이었다.

윤수인은 자기를 특별히 만자자고 한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왜? 저를 찾았죠?”

“그건 네가 협회 고문으로 있는 한국무속인 협회에서 사이트를 운영해 보라고.”

“무슨 사이트요?”

“특별한 것은 없고 컴퓨터 통신으로 해서 매년이나 매일 운수 보는 사이트를 개설해 보라는 거야. 앞으로는 컴퓨터로 사람들이 점도 보고 그러니까.”

“아하, 그럼 토정비결도 그 사이트에서 살피는 것인가요?”

“그렇지. 일부는 무료로 하고 일부는 돈을 받는 유료로 운영한다면 이용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날 거야. 그러니 네가 한번 투자해 보라고.”

이은혜의 제안에 윤수인은 좋아하며 즉시 답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제가 투자를 해보죠.”

“기술적인 문제는 ST 소프트에서 모두 해결해 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어요.”

이은혜가 투자할 자금이 없거나 혹은 특별하게 무슨 이득을 얻고자 권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다 보니 돕자는 차원에서 제안하는 것이다.

“기왕에 운영하는 사이트니 한국 전통 풍습도 넣어두면 좋을 거야. 특히 제사 방식이나 장례식 절차 또는 족보도 간단하게 살필 수 있는 그런 전통 문화 사이트로 운영하면 될 거야.”

“그렇군요.”

족보의 경우는 성씨들에 대한 뿌리를 알려주는 정도로 정보를 넣는다는 식이다.

“각 성씨의 대종회와 연결되면 점차 알찬 사이트가 될 거야.”

“알았어요.”

“오락으로는 장기나 바둑도 운영하면 되고.”

“아하, 그럼 쉽게 사람들을 모으겠네요.”

둘은 새로운 사이트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한 한문 교육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도 같이 삽입해 국민들의 한자 교육도 겸하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ST 소프트 자회사 형태로 별도의 법인을 만들라고 권하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마무리한 이은혜는 다른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김수훈이 국화를 북한으로 보내 주라고 연락했다니 다른 정보도 윤수인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슬며시 물었다.

“누가 북한 조문사절단으로 가는 거야?”

“그거요. 한국 주재 아프가니스탄 할라마 대사가 국화를 실은 트럭 3대와 같이 평양으로 갑니다.”

“한국 정부도 가지 않나?”

“정확한 것은 모르나 아마 한국 정부에서도 장관이 한명 평양으로 같이 갈 것 같아요.”

“그래? 무슨 장관이?”

“아마 문화관광부 장관이 갈 겁니다.”

드디어 한국에서는 관광 사업을 시작으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원 역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접근 방식이었다.

“잘하면 북한을 통해 백두산 구경도 가능할지 모르겠네.”

“그러네요. 북한도 경제가 어려우니 협조 할 가능성이 높겠네요.”

“북한에서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통일하자고 했으면 좋겠네요.”

“그게 어디 쉽나? 아무래도 북한에서 무슨 변화가 생겨야 통일이 가능한 거지.”

한국 정부에서는 북한으로 조문을 보낸다는 사실에 대해 언론에는 일체 알리지 않고 있었다.

아마 조용히 조문사절단을 한국 정부에서는 보낼 생각 같았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을 자극하거나 혹은 특별히 접촉하지 않으며 조용한 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공연히 힘들게 사는 북한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았다. 공연히 건드려 죽기 살기로 덤비게 되는 참혹한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서서히 경제가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중앙 지역에서 하던 방식으로 통일하면 좋은데.”

“그야 그렇지.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도 협조해야 그런 방식의 통일이 가능하지.”

두 사람은 잠시 한국 정부의 통일 방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두 여자 모두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통일방식을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한국 정부는 아직은 무력으로 통일을 하자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 않았다. 북한이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면 그때 가서 손을 내밀면 흡수 통일할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잠시 통일 이야기를 나누던 이은혜는 윤수인에게 새로운 사실에 대해 경고해주었다.

“나, 휴가 끝나면 무속인들 일제 단속으로 들어 갈 거야.”

이은혜의 말에 윤수인은 매우 놀라 응수했다.

“예? 무속인들을 조사해요?”

“제일 규모가 큰 유사 종교 단체라 먼저 조사하게 될 거야.”

“왜 언니가 그것을 담당하죠?”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조사 법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검찰청에서 특별히 조사팀을 구성해 내가 책임자로 조사하게 되는 거야.”

“그렇군요.”

상부의 명령으로 조사를 한다니 무슨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는 업무는 아니었다. 사실 종교계가 문제가 만다는 얼론 보다가 요즈음 들어 많아지고 있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가 생기며 일부는 2000년에는 지구가 종말을 맞이한다고 종말론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널리 종말론이 퍼지고 있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런 종교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이은혜는 차분하게 자세한 설명을 했다.

“한국무속인 협회만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야. 일단 유사종교라는 단체는 모두 조사하기로 결정했어. 다음에는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 단체도 조사하게 되고. 그동안 투서가 많이 들어와 비밀리에 조사해 수집한 불법사항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할 거야.”

“대대적으로 조사할 생각인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그동안 교회나 사찰 등의 이권을 놓고 종파끼리 서로 사법기관으로 투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검찰에서는 특별 팀을 만들어 조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종교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번에 외국 여성들의 취업 실태 조사를 하다가 보니 종교계에서도 관련된 인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사 범위가 넓어 검사가 20명이나 동원되니 참고해.”

“알았어요. 협회 회계장부부터 다시 자체 감사를 철저히 해보죠.”

“오백화 회장이 워낙 재물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 무속인 협회야 크게 부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잘 살펴서 문제점이 없나 조사해봐. 비리가 발견되면 미리 협회에서 처리해 두는 것이 좋은 거야.”

“알았어요. 저도 신경을 쓰려는 참입니다.”

경제 규모가 원 역사보다 2배 규모로 커진 한국이다. 급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그로 인해 사회 각계는 부정부패도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관료 사회는 전보다 많이 정화되었으나 민간 사회단체들의 경우 부패 정도가 아주 심했다. 특히 종교계나 예술계의 비리는 날이 갈수록 고착화되어 가고 있었다.

“대학생활은 재미있고?”

“재미는 별로죠. 그저 학위는 따야 하니 다니는 겁니다.”

“다니면서 뭔가 보람 있는 해봐야지.”

“서클 활동을 해보고 있지만 저도 농장들을 가끔은 가봐야 해서 너무 바쁘니 쉽지는 않아요.”

특별한 삶을 사는 두 여자 모두 다른 대학생들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윤수인은 중앙대학교의 연극영화과를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윤수인은 광고 모델로 조금씩 얼굴이 알려지고 있었다.

“소피아는 가끔 만나나?”

“예, 가끔 제가 찾아가서 살피죠.”

아프가니스탄에서 유학을 오게 된 소피아는 중앙대학교 부속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생활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게 되었다.

이은혜는 ST 소프트로 돌아와 회사에서 별도로 자회사를 설립하려던 계획을 모두 윤수인에게 넘기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자 이은혜는 많은 검사들을 지휘해 대대적으로 종교계에 대한 조사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는 중에 가끔 한가하면 먼 하늘을 바라보며 김수훈을 떠올리고 있었다.

‘언제 또 찾아오려고 그러나 모르겠네.’

다른 여자와 사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긴긴 밤들로 인해 그녀를 더욱 차갑고 도도한 여자로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무더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델타 시 외곽에는 큰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소 쌀쌀해진 가을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와글와글.

기대되는 큰 행사라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델타에서 인도양의 오르마르 항구까지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 드디어 완공되었다. 행사장 주변에는 대형 저장탱크들이 줄지어 있었다. 원유 저장탱크도 있고 천연가스 저장탱크는 다소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꿈꾸던 사업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에서 많은 지분은 소유한 국영기업인 TIB에서 개통하게 되었다.

미국의 CNN 기자가 현장을 취재하며 다른 기자에게 말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은 파이프라인만 관리 잘해도 먹고 살겠네.”

“그야 그렇지, 하지만 모하르 샤 국왕은 욕심이 많으니 이런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지.”

“그런 욕심이야 많을수록 좋은 거지. 개인의 호사를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하려는 욕심이니 좋은 거야.”

하지만 다른 기자는 TIB 주식의 20퍼센트를 모하르 샤 국왕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주식을 20퍼센트나 가지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부도 많이 차지하는 거지.”

“그야 다른 중동의 국왕들처럼 하는 일없이 공짜로 차지한 것도 아니고 모든 사업을 국왕이 직접 추진했으니 그런 정도 차지하는 거야 당연한 거지. 더구나 개인적으로 자금을 투자해서 차지한 지분이니 전혀 다르다고.”

자본금이 100억불인 TIB 회사는 김수훈이 20, 투르크메니스탄 정부 5, 우즈베키스탄 5, 타지키스탄 5, 카자흐스탄 5, 키르기스스탄 5, 파키스탄 5,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50퍼센트의 지분을 소유한 다국적 기업이다.

TIB 지주회사에 속한 TIB 파이프라인이란 회사가 별도로 운영되는 것이다. TIB 회사는 자회사로 파이프라인, 정유, 리조트, 수산회사들이 속해 있었다.

TIB 파이프라인은 북쪽의 카스피 해나 주변국에서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인도양으로 보내는 회사다.

아프가니스탄 주재 각국 대사들이 모두 참석하고 있었다. 국왕인 김수훈은 아리아 왕후와 지브릴 왕자를 대동해 참석하고 있었다.

“폐하, 누르세요.”

“그럴까?”

스카레알 경제수석 비서관의 말에 김수훈은 가동 버튼을 아리아 왕후와 같이 누르고 있었다.

웅웅웅!

멀리서 작지만 웅장한 기계음이 들리며 드디어 원유와 천연가스가 멀리 떨어진 인도양과 접한 오르마르 항구로 보내지고 있었다.

짝! 짝! 짝! 펑! 펑!

요란한 박수와 더불어 하늘에서는 화려한 불꽃들이 터지고 있었다.

초저녁이라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온통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델타에서는 각종 축하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축하 공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밤이 늦어서 오르마르 항구에서 연락이 왔다. 무사히 송유관을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가 들어와 저장고를 채우고 있다고 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에 있던 대사들이 다들 다가와 김수훈에게 인사했다.

“폐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각국에서 협조해 주는 바람에 조금 일찍 개통됐네요.”

파키스탄에서는 특별히 많은 고위 관료가 찾아왔다. 그들은 모두 김수훈이 이룬 업적을 칭송하고 있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발전으로 인해 침체된 경기가 조금 살아나고 있었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폐하, 천연가스 공급을 늘려주세요.”

“그렇게 하죠. 이제 파이프라인이 완전히 준공되고 생산되는 천연가스도 많아져 파키스탄이 필요한 정도는 충분하게 공급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죠.”

김수훈의 대답에 파키스탄 정부 관료들은 다들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파키스탄은 싼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이제는 거의 무한정 공급 받을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니 그와 관련된 사업들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파이프라인 회사에서 파키스탄 출신인 근로자를 많이 채용하는 고용효과도 생겼다. 카라치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동량이 많아지니 그곳의 경기는 아주 좋아지고 있었다.

축하 공연에는 의외로 한국과 일본에서 온 가수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두 나라에서 연예인을 초청한 이유는 델타의 주민들 중에는 한국과 일본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주인들의 인기가 높아서다.

카산드라 품에 안긴 지브릴 왕자가 끄덕끄덕 조는 모습을 보던 김수훈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카산드라에게 조용히 말했다.

“왕자가 피곤한 모양이네. 우리 이만 돌아갑시다.”

“예.”

김수훈은 참석한 각국의 대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자 델타 궁전으로 가고 있었다.

궁전 안으로 들어와 아리아 왕후가 침실로 가자 김수훈은 옆에 있는 하산에게 말했다.

“하산, 술 한 잔 할까?”

“넷!”

내외 귀빈들이 많이 참석해 터놓고 축하주를 마시지 못해 마음 편히 술을 마시려는 것이다. 김수훈은 다소 떨어져 있는 신복일에게 크게 외쳤다.

“복일아. 너도 이리와라.”

“넷!”

전에는 경호원들과 어울리고 때로는 하산과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제 신복일이 항상 옆에 있으니 언제고 술을 같이 마실 술친구가 늘어난 셈이다.

김수훈은 한국에서 수입해온 진로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복일아, 너 결혼도 안하고 혼자 지내기 힘들지 않냐?”

“아뇨!”

“그러지 말고 내가 권하는 대로 오만 공주와 결혼해라.”

“폐하, 싫습니다. 듣기에 오만 공주는 이름 그대로 아주 오만하다던데 저 그런 여자 모시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김수훈은 싫다고 하는 신복일에게 여전히 오만 공주와 결혼하길 종용하고 있었다. 강하게 싫다고 거절하니 엉겁결에 투덜거렸다.

“자식, 암놈이면 무조건 좋아하는 물개 녀석이 가리기는 어지간히 가리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