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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그리고 회색-477화 (477/591)

477화

오백화의 한문 쓰는 솜씨는 아주 악필에 속했다. 그래서 보통사람은 보기가 난해할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그녀는 특이하게도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전서체로 한자를 써놓고 있었다. 부적 쓸 때 서먹는 수법이다.

오백화가 적어놓은 글은 ‘쇠 금(金) 쇠 금(金) 이룰 성(成) 날 일(日) 북극성(北極星) 떨어질 락(落) 음력 5월 30일 양력 7월 8일.’이었다.

써놓은 글자를 한동안 노려보던 오백화는 이윽고 해석이 끝났는지 매우 놀란 표정으로 급하게 말했다.

“폐하, 혹시 이날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한다는 소리인가요?”

오백화는 확실히 해석을 전문으로 하는 접장이 틀림없었다. 음어와 같이 말해준 것을 한문으로 적어보고 너무 쉽게 이해하고 있었다.

‘직업이 해설가라 다르긴 다르군.’

그날 확실하게 북한의 김일성이 죽을지는 모르니 김수훈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할멈, 그거야 꿈이 이상해서 말하는 나야 무슨 뜻인지 모르지요.”

“하지만 꿈은 확실하지요?”

“그렇다니까요. 꿈에서 북극성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통곡하다가 또 박수치던 모습만 확실하게 기억한다니까요. 그게 너무 이상해서 말해주는 거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해설이야 저희들 몫이니 상제님은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너무 이상하게 해설하지는 말고요.”

“당연히 그래야죠.”

달리 해설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은 자기의 해설이 정확하다는 의미가 분명했다.

오백화는 회심에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면 크게 한 번 우려먹을 수 있겠어.’

다른 나라야 김일성이 죽든 살든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 여전히 대치하고 통일을 생각하고 있는 한국으로야 중요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사건이 틀림없었다. 이것이 실재 일어나면 이제까지 밀리던 모든 것은 한 번에 회복할 수 있었다.

이를 어떻게 우려서 적절하게 이용할지는 오백화나 윤수인이 하기 나름이다.

김수훈은 오백화가 신이 난 표정을 보이자 우선 요상한 여자들의 저주는 면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주 퍼부으면 졸지에 개죽음 당할 수도 있다고.’

오백화가 전에 델타 궁전으로 와서 잡귀신이 된 두 여자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상한 삶을 사는 김수훈으로는 다른 것은 겁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백화 같은 정신세계를 다루는 여자들은 은근히 겁났다.

‘여러 여자가 뭉쳐서 주술하면 나도 어찌 될지 모른다고.’

자기 자신이 이상하게 변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귀신 잡는다는 무당들이 겁나는 이유는 이 세상에는 차원이 전혀 다른 어떤 공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속인들은 잘만 다루면 자신에게 도움 되지만 적이 되면 진짜 머리 아픈 사람들이다. 성품들도 다들 복잡해서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다.

‘살살 다루는 것이 최고야.’

물론 윤수인과 오백화를 염두에 두고 하는 생각이다.

오백화는 지금 들은 내용으로 만족을 못하고 다시 물었다.

“상제님, 혹시 또 다른 꿈은 꾸신 것은 없나요?”

“있어!”

“무슨 꿈인데요?”

“빨간 하늘에 초승달과 별이 하나만 보이더군요.”

“다른 장면은 보이지 않고요?”

“이상하게 터번 쓴 쥐들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너무 놀라서 잠을 깬 때가 있었어.”

“또 다른 장면은 없고요.”

“놀라 깨서 그런지 그 기억만 난다고.”

해설 잘하는 오백화는 이런 정보로는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태몽도 아니고 너무 이상한 꿈이군요. 그 꿈은 나중에 이어지면 저에게 말해 주세요.”

“그러지.”

어찌 되었건 중요한 정보를 입수한 오백화는 매우 만족했다. 특히 미래를 예측해 주고 돈을 벌어 사는 무당으로야 이런 예시야 말로 아주 유용한 정보다.

오백화는 신기가 약해진 지금으로는 꼭 필요한 정보를 알았으니 너무 기쁜 일이었다.

‘상제님이 아직도 우릴 돕기 위해 말씀 해주시는 거야.’

그동안 중요한 유가 파동이나 중동 전쟁에 대해서도 정보를 전혀 알려주지 않아 서운했었다.

그런 고급정보를 조금이라도 미리 알려줬으면 돈을 쉽게 벌수 있었다. 또한 한국무속인협회의 무속인들 사이에 위상이 추락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메시지를 받게 되자 단 한 방에 회복할 기회는 생겼다.

이런 생각이 들자 오백화는 언제 앙심을 품었냐는 듯이 김수훈에게 넙죽 절하며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상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상제님은 불쌍하고 무지몽매한 저희들을 버리시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시는군요.”

“할멈, 너무 그러지 마라고, 나는 아직도 그 꿈이 그런 의미가 있는지 모르니까. 나도 해석하기 어려운 이상한 꿈이니 백화 할멈이 알아서 써먹던 말든 하라고.”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만나서 전한다는 예시에 대한 꿈 이야기를 듣고 나자 마음이 풀어진 오백화는 윤수인에 대해 말했다.

“별당 아씨는 이제 대학교에 다니십니다.”

“여고를 다니고 있었다며?”

김수훈이 윤수인의 소식을 묻는 것도 좋은 징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백화는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고를 다니려고 하다가 학교에 나간 지 며칠 만에 싸움을 벌이고 그만 뒀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학교서 잘렸습니다.”

“뭐라? 싸움 벌이고 잘려?”

“예.”

이런 소리에 김수훈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수인도 참으로 험하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여전히 자기 좋다고 목매고 사는 그녀의 소식은 궁금해 김수훈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학교에서 싸움을?”

“자세하게 말은 않지만 아마 늙은 여자가 왜 여고를 들어와 물 흐린다고 해서 싸움이 크게 났던 모양입니다.”

“여학생을 때려요?”

“예, 학교에서 짱 노릇한다는 여학생입니다. 검찰청의 부장 검사 딸인 여고 3학년을 두들겨 패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고운 얼굴을 완전히 메주로 만들었어요. 폭력은 치료비와 위자료 많이 물어주는 정도로 무마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성질 머리하고는. 그런데 어떻게 폭행사건은 어떻게 무마가 됐죠?”

“별당 아씨께서 눈을 훌러덩 뒤집고 학교로 찾아 온 그 여자애 아빠인 부장 검사 따귀를 후려치자 정신병자로 판정받아 끝났습니다.”

“뭐요?”

아무튼 어떤 깊은 내막이 있는지 모르지만 윤수인은 전에 알던 윤수인과는 전혀 다른 성품이었다.

“여자가 깡패도 아니고.”

“폐하, 욕구불만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런 것 같아요.”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나올까 김수훈은 얼른 말을 돌렸다.

“나중에 사담 후세인 관상이나 잘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두 사람은 일단 헤어졌다.

오백화는 호텔에서 지내기가 거북하다고 했다. 이곳 바그다드의 뒷골목에 있는 유명한 점성가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라 그런지 서로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이 도저히 해설하기 어려운 꿈 이야기를 알아 볼 요량 일지도 모른다.

김수훈은 다음날 호텔로 찾아온 TIB 미디어 사장이자 감독으로 스카우트된 백준태를 만났다.

백준태는 40대의 나이지만 벌써 머리가 반백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실력에 비해 별로 성공하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생활고 때문에 부인과 이혼했다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빚 얻어 찍은 영화도 실패해 완전히 알거지가 된 사람이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그는 아마도 목숨 걸고 이번 작품으로 승부를 걸 것이라고 판단해 스카우트했다.

“미디어 회사의 설립은 끝났어요?”

“예, 살롬 사장이 준비를 미리 해두어 쉽게 설립인가 끝내고 바로 오는 길입니다. 다른 팀들은 이미 제작 준비하고 스텝들은 세트장 지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팀은 출연배우들 선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작가들은 대본 작업을 시작했고요.”

“수고 했군요.”

사담 후세인과 나눈 대화도 있으니 바그다드에서 먼저 촬영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김수훈은 슬며시 권하고 있었다.

“우선 바그다드에서 촬영할 수는 없나요.”

“할 수 있습니다. 바그다드 궁전들과 오래된 고택을 이용해서 아라비안나이트의 여자 주인공들의 출신지인 상인 집을 촬영하면 됩니다. 타이틀 화면을 먼저 찍으면 됩니다.”

어차피 여건만 만들어 주면 전문경영체제로 회사들은 운영하기 때문에 김수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촬영 장소에 대해서는 지시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은 반드시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촬영하세요. 그리고 신밧드의 모험 부분은 오만 왕국에서 촬영하고요. 시리즈니 오만 배우를 선정하고요.”

아랍권 전체를 상대로 하는 드라마라 이런 지시를 하고 있었다. 백준태도 이런 지시를 받자 쉽게 알아듣고 수긍했다.

“예, 그렇게 촬영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더라도 이야기 중에 해당되는 나라서 촬영해보도록 기획하시면 됩니다.”

김수훈은 자기가 구상한 내용을 말해 주었다.

“아리비안나이트가 천일야화니까 내 생각에는 총 제작 기간은 3년을 잡으세요. 주말 시리즈물로 300회 정도 생각하면 대략 3년이 소요 되겠네요.”

“예? 3년간요?”

“그것으로 부족하면 5년간 찍어도 됩니다.”

생각한 것 보다 장기적으로 찍으라는 소리에 백준태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김수훈은 이곳으로 와서 할 일은 끝났다는 생각으로 오백화와 백준태와 같이 대통령 궁으로 찾아갔다.

공식 방문이 아니라 집무실이나 접견실이 아닌 정원에서 사담 후세인을 다시 만났다.

김수훈은 전에 제시한 준설공사를 다시 제안했다.

“바스라까지 준설 공사는 어떻게 할 겁니까? 안한다면 준설선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바스라까지 준설 공사는 꼭 해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준설선이나 수에즈로 보내면 되겠네요.”

“추경 예산으로 포함해서 착공할 겁니다.”

여전히 이라크와 협상이 잘 진행이 안 되었다. 이란은 바다와 접한 지역에 대규모 항구시설을 만들고 있으니 수로 이용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란이 같이 안한다고 했군요.”

“예, 자기들은 그런 돈 쓸 이유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란이야 바다와 접한 곳이 많으니 그렇지만 바다와 접한 곳이 좁은 이라크는 다급한 입장이다. 결국 이라크 혼자라도 준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준설하는 이유야 내륙 항로도 확장하고 수해를 방비할 필요 때문에 하려고 한다. 이라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꼭해야 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그럼, 준설선 2척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만 이동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해주시면 준설 공사가 빨리 끝나겠군요.”

이곳 중동에서 사업 중인 대형 준설선은 이미 6척으로 늘었다. 2척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준설 공사 중이다. 나머지 4척은 쿠웨이트만이나 부비얀 섬에서 준설공사 중이다.

일부를 빼서 수에즈 운하로 보내 운하 확장과 준설 공사에 투입할 생각이다.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많아지자 확장이나 준설 공사를 시작했다.

먼저 사업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오백화와 백준태를 소개했다.

오백화는 그냥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으로 소개했다. 백준태는 아라비안나이트 촬영을 책임지는 감독으로 소개해 협조를 부탁했다.

“아, 그럼 언제고 필요하면 비서실로 전화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좋죠.”

사담 후세인을 만나고 세 사람은 대통령 궁에서 나왔다. 백준태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헤어졌다.

둘만 남게 되자 오백화는 자기가 본 사담 후세인에 대한 관상에 대해 평했다.

“그 사람은 심지가 깊어 쉽게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는 성품 같네요.”

“그래요?”

“하지만 말년운도 좋고 오래 살 명운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관상이란 대략 어떤 느낌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실 왜 그런지 설명하려면 한 사람을 두고도 책이 한권 만들어 질 정도다. 김수훈은 그저 오백화가 이런 정도로 말하자 만족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관상에 대해 김수훈이 흥미를 느끼자 오백화가 김수훈의 얼굴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그에 대해 말했다.

“상제님은 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어떻게요?”

“전에는 얼굴에 항상 도화 살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런가요?”

김수훈이 여자와의 스캔들이 줄어들어서 그것으로 이렇게 평할 수 있었다. 오백화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폐하, 요즈음 뭘 드시죠?”

“뭘 먹다니요?”

“폐하께서 동안인지는 알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이상하긴 합니다. 아무리 동안이라도 30살 정도면 조금은 나이 먹은 표가 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전에 모습 그대로입니다.”

“예? 그래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자기야 매일 거울로 보는 얼굴이라 변하는지 그대로인지 인지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래 만에 만난 오백화의 하는 말이니 틀린 소리는 아니지 싶었다.

늙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 늙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는 있다고 판단했다.

‘헉, 잘 못하다 사람들이 외계인으로 보면 곤란하지.’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겨야 하는 김수훈은 이런 현상이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린 시녀들에게 매일 얼굴 마사지 받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하, 그래서 그렇군요. 숫처녀들 정기를 계속 받으면 회춘하는 수도 있으니 그럴 수 있겠네요.”

오백화는 헤어지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다는 듯이 물었다.

“폐하, 제가 서로 연락하고 있던 점성가에게 물어서 해몽했습니다.”

“무슨 해몽요?”

“빨간 하늘에 초승달과 별이 보이고 터번 쓴 쥐가 보인다는 것은 알아냈습니다. 점성가는 금방 알아내더군요.”

“그래요?”

“빨간 하늘에 초승달과 별은 터키고 터번 쓴 쥐는 터키 국민을 나타낸답니다. 그래서 점성가는 이건 대규모 지진이나 전쟁이 터키에서 일어난다는 조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꿈이라고 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한말에 불과했다. 김수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오백화는 공항으로 떠났다.

KAL 항공사 소속인 보잉747기에 올라 떠나는 오백화는 자기가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할 생각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잘 우려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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