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작은 회의실에서 둘이 만나 대화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배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라 그런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스라엘 대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아까 그 지도에 표시된 지역까지만 드리면 종전하시나요?”
“왜요? 그곳까지 팔레스타인 공화국에게 주시려고요?”
“예, 폐하께 그곳까지 원하신다면 드리겠어요. 그러니 종전협정을 빨리 하시죠.”
김수훈은 대사의 응수에 너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대사도 말을 자꾸 이상하게 하네.’
자기는 어떤 땅을 달라고 하거나 양보하라고는 안했다. 다만 그런 정도 영토가 적절하다고 표시를 해서 배포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협상에 사실 자신이 이득을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에 귀국의 대통령께서도 시바 섬으로 찾아와 마치 내가 귀국의 영토를 탐내는 사람처럼 말씀하시고 그러시더니 대사께서도 말씀을 조금 이상하게 하시네요.”
“제가요?”
“예, 제가 듣기에 거북한 말씀을 하시고 있네요. 아니? 제가 언제 이스라엘 보고 어디 지역 영토를 달라고 말하고 또 그곳을 본래 주인인 팔레스타인 공화국으로 이스라엘이 넘기면서 마치 제 땅이라고 표현하니 너무 이상합니다. 제가 듣기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네요.”
이렇게 말하자 대사는 아차 싶어 얼른 정정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표현을 하다 보니 그런 거죠.”
“대사께서는 분명히 아세요. 저는 팔레스타인 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나라 땅도 주체 못하는 판에 왜 다른 나라 땅을 탐내요.”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자꾸만 김수훈과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수훈은 이번 전쟁 이후로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남들이 없을 때 하신 소리니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 그런 표현은 절대로 쓰지 마세요.”
김수훈이 이렇게 이 문제에 신경을 스는 이유는 사실 이런 문제는 두고두고 논란이 많은 중요한 역사적인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인으로 인해 자국에게 손해가 됐다고 나중까지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힘만 들고 실익은 거의 없는 남의 나라 일로 더 이상 머리 아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종전을 생각하고 있으니 협상은 계속 해야 된다. 대사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해서 협상을 깰 필요는 없어 부드럽게 말했다.
“귀국에서 그런 정도까지 팔레스타인 공화국으로 양보하며 순순히 군대를 물린다면 제가 아랍 연합군에게 교전을 중단하도록 명령하죠. 사령관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하면 일단 교전은 중단되니까요.”
김수훈은 말에 대사는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기분에 얼른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즉시 군대를 뒤로 물리겠습니다.”
대사의 말에 김수훈은 다시 강조했다.
“대사께서는 귀국으로 돌아가서 확인하시고 와서 확실하게 서명하세요. 나와 협상하다가 조금 틀어졌다고 핵무기를 아랍 전체로 발사하겠다는 귀국 대통령처럼 나중에 이상하게 나오지 마시고요. 나는 꼭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있습니다.”
“그것이 뭐죠?”
뭐가 필요하다니 놀라지만 협상에는 주고받아야 하니 원하는 것이 있다니 다행이다. 그동안 원하는 것이 없다고 나오니 협상하기가 곤란했었다. 김수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중요하다면 중요한 문제라 지금 말씀 드릴 수는 없어요. 딱 두 곳만 제가 가서 직접 조사하고 압수 수색할 곳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것은 언제?”
“종전 평화협정 이후에 제가 직접 특전부대를 데리고 갈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세요.”
아주 중요한 문제 같지만 어차피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전하고 있는 처지니 이의를 달수는 없었다. 이제는 무조건 항복 수순만 남아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돕지 않고 있으니 버티기는 힘들었다.
암만에 주둔 중인 특전여단이 기동해서 공격을 시작하면 지금 보다 더욱 악화된 상태로 종전될 염려가 많았다.
“좋습니다. 어디 기관이고 폐하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안할 거니 그렇게 아세요. 저도 꼭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 그럽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대사는 본국을 다녀오고 나서 당사국인 팔레스타인 공화국과 종전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중동에서 연일 들리던 포성이 일순간에 멈추었다.
평화, 세계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중동의 평화가 돌아왔다. 사실상 이스라엘이 아랍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 것과 같은 종전이었다.
아랍국들은 전쟁이 승리로 끝나게 되자 열광하고 있었다. 각국의 수도에서는 전쟁 승리 축하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포성은 멈추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은 많았다.
이긴 전쟁이라 아랍인들은 모여 전쟁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은 완전히 반 토막이 났군.”
“반 토막이라니 경제규모는 이제 반에서 반으로 줄었다고. 이스라엘은 이제 완전히 끝장 난거지.”
“유대인들은 지독해서 금방 일어날 거야.”
“나는 그렇게 안보네. 이제 미국에서 과거처럼 원조를 한할 거니 전처럼 쉽게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더구나 산업시설이 거의 대부분 파괴되어 회복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유대인들은 다시 일어난다고.”
전쟁에서 패했으나 이스라엘은 저력이 있는 나라다. 매우 우수한 인력이 있으니 회복이야 되겠지만 이스라엘은 전과는 달라졌다.
이스라엘을 떠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이 많아져 이제 인구도 대폭 줄었다. 종전이 선포된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떠나는 엑서더스 현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일단 종전 평화협정은 채결되었지만 아직도 협상할 내용은 많았다.
아랍권 협상 대표로 김수훈이 정식으로 총회에서 결정되어 마무리하고 있었다. 김수훈은 이스라엘 협상 대표인 대사에게 제안했다.
“아랍국들이 모두 원하니 예루살렘은 이제 특별자치 중립구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나라 영토라는 것만 인정해준다면 좋습니다.”
대사의 응수에 김수훈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무라고 있었다.
“대사께서는 상황이 이런 지경으로 이르러도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군요.”
“예루살렘은 저희들의 성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저희가 차지하고 있어야 하죠.”
“역사 공부를 반만 하셨군요. 제가 알기로 예루살렘은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도 성지로 알려진 곳이니 중립지역으로 둔다는 겁니다. 사실 아랍국들은 완전히 자치령으로 삼아 관리해 달라고 했지만 제가 하는 일이 많아 싫다고 거절해 이스라엘 정부에게 관리를 위임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에 필요한 조치를 저희도 하죠.”
“편하게 생각하세요. 시대가 어느 때인데 수천년 전 지도를 가지고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면 곤란하죠.”
“예,”
이스라엘로는 속이야 너무 쓰리지만 패전국으로 어쩔 수 없이 승복해야한다.
결국 예루살렘은 아주 특별한 곳으로 변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공화국이 번갈아 관리 하는 공동 자치구역으로 만들어졌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하르 령의 특별 중립 자치 지역으로 결정된 것이다.
사실상 김수훈이 국왕으로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비지와 같이 변한 것이다. 물론 영토인 비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은 아랍델타연맹과 이스라엘 정부가 공동으로 관리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대해 양보했으니 팔레스타인 공화국 측도 조금 양보하기로 하죠. 예루살렘 남쪽인 서안 지역을 이스라엘 영토로 결정하죠.”
“감사합니다.”
의외의 결정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대사로는 큰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김수훈은 지도를 펴놓고 예루살렘 남쪽을 지목하며 말했다.
“여기를 국경선으로 하는 것이 서로 국가경영이나 산업 활동이 가장 편할 겁니다.”
“그렇군요.”
“사실 유엔에서 1947년에 이런 식으로 영토를 결정했으면 지금처럼 다투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죠. 국경선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했으니 문제가 더 복잡해진 것이죠.”
국경선을 확정하는 협상 중 변수가 많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불행 중 다행으로 서안지구인 베들레헴과 히브론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는 평화 협상했지만 여전히 반목할 두 나라라 국경선은 단조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김수훈은 협상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국경선이 단조롭고 명확하면 분쟁은 조금 줄어든다고.’
팔레스타인들은 북쪽의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막상 차지하고 보니 나라 운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적으로 나라를 유지하기에는 남쪽을 포기하고 북쪽을 차지해 살며 생산 활동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이야 개발이 잘된 영토와 생산시설을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을 다시 차지해 발전시켜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래도 지중해로 들어가는 사태는 막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이런 정도의 영토를 확보하게 되자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엑서더스 현상은 멈추었다.
와글와글. 부르릉.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따라 짐들을 들고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진 것이다.
새로 영토를 확보한 팔레스타인 공화국은 가자 지구를 비롯해 서안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수많은 차량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후 처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스라엘 대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전후 복구 보상금은 어떻게?”
“보상금은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북쪽 산업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하게 넘겨준 것으로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정리하죠. 이스라엘도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남의 것으로 선심을 쓰는 것이다. 그래도 이스라엘이 살아갈 여지는 남겨 두기 위해 이런 조치를 했다. 그러자 의외의 배려에 이스라엘 국민들도 모하르 샤 국왕에 대해서는 원망이 없었다.
“합리적인 왕이야.”
그래서 이스라엘 국민들은 모하르 샤를 위대한 군주인 솔로몬 왕이 환생했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은 ‘시바 여왕’이란 영화가 상영되며 그 영화를 제작한 제니퍼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오게 되었다.
이런 결정에 세계인들도 다들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결국 이스라엘을 살려 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군.’
이스라엘은 치욕스럽지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는 온전하게 한곳으로 영토를 차지하게 된 팔레스타인 공화국은 연일 축제 분위기다.
팔레스타인 공화국은 모든 토지나 건물 그리고 시설들에 대해 국유화를 선언했다. 사회주의를 선택하지는 않았으나 지금으로는 이런 방법이 최선이다.
영토까지 확정되어 종전 평화협정이 선포되었다. 그러자 끝을 모르게 오르던 원유가는 하루아침에 다시 배럴당 40달러로 내려가 버렸다.
세계는 또다시 원유가 하락으로 인해 경제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급격하게 떨어진 원유가로 인해 기존의 거대한 석유회사들은 치명타를 입었다.
“석유회사들 주식 샀다가 망한 미국인들 많다고 하네.”
“돈 더 벌려다 망한 거지.”
공연히 성급하게 많은 자금을 들여 원유를 확보해 정유회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었다. 그런 것을 기화로 한국의 SK 정유와 아프가니스탄의 TIB 정유는 거대한 정유회사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었다.
세계 언론사 기자들이 모이면 다들 이번 중동 전쟁을 두고 이렇게 평하고 있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이 제일 큰 이득을 봤군.”
“그야 당연하지, 한국에서 팔아먹은 무기가 도대체 얼마야. 더구나 카스피 해 석유는 그들이 차지하고 중동 석유도 차지했으니 제일 이득이 많은 거지.”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남쪽 에일라트 항구를 점령한 이집트군도 모조리 철수했다. 여전히 갈등은 많았지만 전과는 달라진 방식의 평화협정이다.
가지지구는 완전히 이스라엘에게 넘겨지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북쪽의 임시 수도로 정한 하이파 시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다.
비밀리에 협상한 두 곳을 수색한다는 곳에 대해 이스라엘은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뒤지려는 거지?’
짐작은 하고 있지만 은근히 불안했다. 국방부를 뒤진다면 전범 처리를 한다는 것이라 군부에서 반발해 어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드디어 모하르 샤 국왕이 300명의 특전부대원과 같이 Mi-8 수송헬기를 타고 예루살렘 공항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폐하.”
“대사께서 기다리고 있었군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김수훈은 이내 정정했다.
“아, 이번에 총리가 되셨지요. 우선 축하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예루살렘 남쪽을 차지해 대사의 위상이 올라가 이번에 총리가 되었다. 이스라엘 총리는 전에 한 약속을 떠올려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어디를 압수 수색하려는지?”
사실 사법과 군권은 모두 모하르 샤 국왕이 소유한 예루살렘이라 이런 절차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에서 모든 기관을 다른 도시로 이전하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두 곳은 모사드 본부와 핵개발 연구소입니다. 그곳의 서버를 모두 압수하고 수색하겠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각오는 한 상태다.
모하르 샤 국왕과 악연은 모사드가 벌인 테러로 인해 시작되었다.
승자로 당연히 모사드 조직에 대해 숙청을 요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특전부대가 두 기관을 완전히 점령한 상태다. 기밀자료를 파괴하는 수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범 재판은 어떻게?”
“전범재판은 안합니다. 다만 저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관련자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처벌은 고려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설사 벌을 주지 않아도 제가 따로 원망은 안합니다. 어차피 전쟁으로 시작해 종전평화협정으로 그런 문제까지 모두 끝난 사안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로는 또 하나 큰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핵연구소야 당연히 이제 핵을 보유하지 못하게 된 이스라엘이라 필요 없는 자료다. 하지만 모사드의 자료 압수는 방대한 정보를 차지하겠다는 이야기다.
김수훈은 전쟁을 일으킨 기관이라고 해서 모사드 조직 자체를 와해할 생각이다.
“사백호. 모사드의 서버와 개인 사무용 컴퓨터를 모조리 압수해.”
“넷!”
“그리고 비밀서류보관소도 모조리 압수해서 가지고 가고.”
“알겠습니다.”
압수한 자료는 모두 모하르 령으로 이동되었다. 김수훈은 모사드 조직의 처리에 대해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정보기관이 필요해 다시 만들더라고 일단 전에 있던 모사드 정보기관 자체는 해체를 요구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별도로 모사드 조직원을 모아 비밀리에 운영하시면 그때는 저도 이런 정도 처리로 끝내지는 않아요. 전쟁도 끝났으니 좋게 생각해 자국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라고 봐서 용서하기로 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모사드의 방대한 기록을 압수해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자 새로운 일들이 조용하게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