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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그리고 회색-450화 (450/591)

450화

이른 새벽. 이제 막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해운대 바닷가의 나지막한 바위산에 김수훈이 서있다.

휘리릭!

바람이 거세게 불며 빗줄기가 굻어지고 있었다. 태풍의 끝자락이 근처를 지나가자 간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커다란 우산을 든 일현무 경호실장과 할라마 대사가 바위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넓은 백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 바람이 거셉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할라마 대사가 조심스럽게 권하자 김수훈은 고개를 저의며 답했다.

“아닙니다. 하산을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니 기다려야죠.”

“제가 기다리다 도착하면 호텔로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나 김수훈은 그에 대해 아무런 응수를 안 했다. 여전히 넓은 백사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가 거세게 바위산 아래를 치고 있었다.

철썩! 철썩!

하얀 포말을 이루며 파도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계속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김수훈은 쓰나미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연현상이 너무 심하게 변하고 있어.’

그가 지구상의 자연히 크게 변하고 있다고 크게 느낀 이유는 델타사막 기후변화 때문이다.

델타사막은 연 강수량이 300밀리미터도 안되던 곳이다. 그런 곳이 연간 1천 밀리미터가 내리고 있다. 그곳은 사막이 아닌 초원이나 혹은 평야라고 불러야 적당한 곳으로 변했다. 물이 너무 부족해 메마르기만 하던 아프가니스탄으로는 그런 현상이 대단한 축복이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막이던 곳에서 연 1천 밀리미터 이상은 항상 강우량을 기록하니 변한 것이 분명했다. 그로인해 세계의 많은 기상학자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몰려와 연구하고 있었다.

성급한 학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대대적인 조림사업의 효과라고 논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한 연구논문이었다. 조림사업이 진행되어 어느 정도 성과를 보기도 전부터 이미 기후가 변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거지?’

기후 변화로 인한 큰 피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름철에 한파가 유럽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날씨의 변화가 너무 심했다. 가뭄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사상 유래가 없는 강추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얼어 죽는 사건도 벌어졌다.

한국의 경우도 차츰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 한반도는 전보다 태풍의 상륙이 많아지고 있었다. 게릴라성 폭우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는 위치가 점점 북상해 북한의 큰 수해 피해를 여러 차례 겪었다. 평양 이남지역 아닌 북쪽 청천강 유역에서 벌어진 대홍수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북한을 완전히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어 버렸다.

쏴아아! 쏴아아!

무섭게 내리던 폭우가 갑자기 멈추고 거세던 바람도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쓰고 있던 우선을 접으며 일현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폐하,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그렇군요.”

태풍 끝의 고요함인지 모르나 동해의 파도도 아주 잔잔해지고 있었다. 큰소리를 내며 부서지던 파도도 작은 포말만 이루고 바위산에 부딪히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감과 동시에 동해에서 붉은 태양이 푸른 바다 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어둡던 주위를 밝히며 태양은 점점 하늘높이 오르고 있었다.

장엄한 모습에 할라마 대사가 감탄했다.

“정말 멋지군요.”

이때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경호원이 급하게 다가와 보고했다.

“도착했습니다.”

그 소리에 김수훈은 눈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건장한 체구의 하산이 바위산으로 급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에이, 조금 일찍 오지.”

하산을 굳이 여기서 만나자고 한 이유는 오래전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같이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바위산으로 오른 하산이 급히 인사했다.

“폐하, 조금 늦었습니다. 오다가 일출을 보느라고요.”

“보기는 봤냐?”

“예, 폐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아주 멋졌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던 하산으로는 아마 약간 놀란 광경을 봐서 이렇게 감탄하는 것 같았다.

“오면서 그래도 일출을 봤다니 다행이네.”

가볍게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자 하산은 이내 보고했다.

“폐하, 김해 공항을 통해 50명이 와서 지금 해운대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알았어.”

하산은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급하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 사람들 자료입니다.”

“수고했어! 너도 호텔로 가서 쉬고 있어라.”

“넷!”

김수훈은 하산이 넘겨주는 두툼한 서류를 받아들고 리무진이 주차된 곳으로 내려갔다. 이제 식당에서 기다리는 한국의 관료와 기업인을 만나야 한다.

대마도 식당은 새로 생긴 음식점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다소 뒷골목에 위치한 곳이나 본관은 현대식 4층 건물로 규모는 상당히 크다. 뒤편에는 한옥으로 지어진 별관이 있었다.

본관 건물은 일식집이자 단체 손님을 받고 있다. 별관은 한식전문인 소위 말하는 방석집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김수훈이 할라마 대사와 같이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한식으로 꾸며진 방에서 기다리던 50대 중년 남자 10여 명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폐하, 어서 오세요.”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군요.”

자리에 앉자 먼저 이미 지나간 태풍을 놓고 기업인들이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태풍으로 대마도는 피해가 아주 심한 모양입니다.”

“그래요? 수재의연금을 보내야 되겠네요.”

“나도 보내줘야겠군요.”

대마도에서 수해가 났는데 기업인들이 즉시 수재의연금을 보낸다는 이유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마도 수호협회에서는 수시로 대마도가 한국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일외교 관계에 말썽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전과 달리 대마도는 한국교포들이 많이 사는 섬으로 변했다. 본래 일본에서 살던 재일교포도 이주했지만 부산이나 경상남도 사람들도 새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나중에 이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산업을 하기위해 그곳에서 생활한다.

기업인들이 수재의연금을 내야 한다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김수훈이 중간에 끼어들어 조용히 물었다.

“대마도로 이주한 사람이 많다지요?”

“예, 워낙 사람들이 대마도로 관광을 많이 가니 그런 사람을 상대로 관광업을 한다고 부산지역에서 이주한 사람이 많아요.”

“그렇군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앞으로 대마도는 일본인 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사는 섬으로 변하게 되겠네요.”

“그야 잘 모르죠.”

경제가 좋아진 한국인들은 일본으로 관광 가는 수가 대폭 늘었다. 한국영토라고 주장하는 대마도에 대해 잘 알자는 차원에서 수학여행이나 단체로 관광을 많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대마도에는 전보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에서 심기가 불편하겠네요.”

“그야 그렇지만 일본인들도 한국으로 와서 많이 사니 불평할 수는 없지요.”

일본 정부는 이를 상당히 경계는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어 고심 중이다.

원 역사에 수시로 일어나던 독도 분쟁은 이미 변했다. 새롭게 한국정부에서 주장하는 쪽으로 협상 중에 있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한 평화선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그어진 곳을 한국 영해로 설정해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이제 일본 정부에서 독도에 대해서는 영유권을 주장하는 경우는 없었다.

김수훈은 하산에게 넘겨받은 서류를 상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 명단은 비밀입니다. 그러니 경력 사항만 보시고 각자 필요한 사람을 다섯 명씩만 선택하세요. 보안상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빨리 분산해서 연구소로 보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삼성전자연구소 소장이 급하게 서류를 들고 넘겨보며 침을 삼켰다.

“이 사람들 모조리 우리가 받겠습니다.”

“예?”

서루에 적힌 경력을 보자 욕심이 생겼다. 옆 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본심을 드러내 버렸다. 그러자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는 LG 전자 연구소장이 한마디 던졌다.

“참으로 삼성은 어지간합니다. 아니? 우리 회사에서 돈 들여 미국 유학보내 키우던 연구원을 몰래 빼돌려 데리고 가던 것도 모자라 또 이러십니까?”

“그거야 그 연구원이 삼성에서 근무하는 애인과 같이 근무하고 싶어서 입사한 거죠.”

“그게 말이나 됩니까? 실력도 없는 여직원을 과장으로 진급시켜주며 잡아놓고 그 연구원을 삼성으로 입사하도록 유인한 것 우리들은 다 알아요.”

“그런 일은 LG도 여러 번 시도하지 않았소?”

“우리는 그런 치사한 방법은 안 씁니다.”

“그래서 연구소 직원을 매수해 자료를 통째로 빼돌리려고 했습니까? 우리가 서로 사돈 간만 아니라면 바로 검찰에 고소했을 거요.”

“뭐요?”

전자업계에서 선두인 두 기업의 경쟁심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간부나 일반사원이나 양측이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삼성과 LG는 패싸움을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두 회사 연구소장들이 싸우려는 모습을 보자 김수훈은 안되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제가 정하죠.”

“예? 폐하께서 어디로 배치할지를 정해요?”

“예, 혹시 이의가 있으면 그때 말씀하세요.”

하산을 시켜 한국으로 데리고 온 사람들은 구소련에서 근무하던 과학자들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그나마 러시아도 경제가 파탄이 나자 많은 과학연구소는 문을 닫게 되었다. 제일 먼저 그 피해를 보게 된 사람들의 이제는 독립한 소수민족 출신인 과학자들이다.

높은 보수에 좋은 시설에서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자 먹고살 방법이 없었다. 본시 이재에는 어둡고 연구만 몰두하던 과학자라 더욱 그랬다.

김수훈은 서류를 넘기며 10개의 회사가 주력하는 분야에 사람들을 나누고 있었다. 분리를 끝낸 김수훈은 나눠진 서류를 10명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추가로 또 50명이 오니 각 회사들이 필요한 어느 정도의 연구원은 스카우트하게 될 겁니다.”

서류들을 넘기며 배정된 과학자들의 경력을 살핀 삼성연구소장이 말했다.

“우린 항공 분야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제트기에 관한 과학자들이고 다음에는 헬기에 관련된 과학자들이 보내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김수훈이 하산을 통해 한국으로 빼돌린 과학자들은 모두 군사에 관련된 과학자들이다. 전투기, 헬기, 미사일, 전차, 함정, 위성통신, 생명공학 등 모두 군사연구소에서 일했다.

김수훈은 하산이 관리하는 방대한 조직인 델타타이거를 이용해 진즉부터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과학자 영입을 추진했다. 몇 명의 과학자를 데리고 와서는 본래 자신이 생각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해 대대적인 영입을 추진했다.

일부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와 완전히 신분을 바꾸고 한국으로 입국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일부는 모하르 령을 통해서도 유입되었다.

대우조선소 사장이 나서며 물었다.

“인수한다는 구소련의 항공모함은 어떻게 합니까?”

“TIB에서 인수해 대우조선소로 넘기게 될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소련이 붕괴되어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넘어간 항공모함 두 척을 고철가격으로 인수해 대우 조선소에서 해체할 생각이다. 아무리 항공모함의 시설물을 파괴해 보낸다고 해도 해체과정에서 항공모함 건조에 필요한 자료는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만약 이 항공모함을 욕심내는 중국에게 넘어가면 원 역사처럼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반드시 두 척 모두 한국에서 해체해야 한다.

“해체는 대우에서 해도 소유권은 계속 TIB에서 가지게 되니 그렇게 아세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이 원 역사보다 빠르게 경제 성장하고 있지만 경제력이 아직은 약해 항공모함을 보유를 못하는 처지다. 그래서 이웃나라인 중국이 항공모함을 보유하지 못하게 저지라고 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먼저 중대한 업무를 끝내고 나자 그제야 방으로 아가씨들과 함께 한정식을 차린 상이 들어왔다.

한복을 입은 어려 보이는 아가씨가 옆으로 와서 앉으려고 하자 김수훈이 가볍게 말했다.

“난 필요 없소.”

거절하고 나서 김수훈은 문을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

“하산, 들어와 같이 식사하자.”

하산은 호텔로 가서 쉬라고 했으나 여기까지 따라왔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주변의 아랍국들이 전쟁을 벌일 위험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하산은 국왕 옆에서 항상 신변 보호해야 한다고 따라 온 것이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산이 얼른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주섬주섬 음식을 먹고 있었다. 먼저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하산이 먹어본 음식을 드밀며 말했다.

“폐하, 이 불고기가 맛있네요. 드셔 보세요.”

“그러냐? 그럼 먹어볼까?”

처음에는 하산의 하는 행동이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던 사람들은 조금 지나서야 왜 이러는지 눈치를 챘다.

‘아, 저렇게 해서 시음(試飮)을 하고 나중에 먹는군.’

‘하긴 국왕이니 저럴 수 있지.’

테러를 당한 이후에 만약을 대비해서 독살시도를 방비하기 위한 안전 수칙이다. 아가씨들이 있으니 이들은 다른 대화는 할 수가 없었다. 아주 사소한 대화도 아주 중요한 기밀사항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로 대화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대우사장이 한마디 건넸다.

“폐하, 아드님은 언제 한국으로 데리고 오나요?”

“아, 이번에 같이 오려다 혼자 왔어요. 아들만 데리고 올수는 없고 중동이 너무 불안하니 왕국을 완전히 비울 수 없어 조상 산소 방문은 뒤로 미루었어요.”

“아하, 그렇군요. 왕자님이 폐하를 닮아서 아주 건강하다고 하더군요.”

“예, 나를 닮아서 조금 큰 편입니다.”

가볍게 대화 나누며 식사를 끝내고 나자 김수훈은 기업인들과 헤어졌다.

다시 해운대 호텔로 돌아온 김수훈은 창가에서 백사장을 내려다보며 하산에게 물었다.

“하산, 나머지 50명은 지금 어디에 있냐?”

“모하르 령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오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이 많다고?”

“예, 지금 알게 모르게 모하르로 자신들이 알아서 이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아요. 이러나 핵무기도 내다 팔게 생겼어요.”

“설마?”

“이란이 러시아제 스커드 미사일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는 중입니다.”

러시아의 붕괴는 부산에서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러시아의 여대생들이라는 여자들이 부산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방법인 유학을 오기도 한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밀항으로 들어와 유흥업소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살기가 어려운 나라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 러시아에서는 속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어둠의 세계는 차츰 구소련시절의 비밀조직인 KGB 출신들이 장악했다. 이들을 러시아마피아로 칭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밝은 세상도 변하고 있지만 어둠인 지하세계도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결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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