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부대 안의 3층에 있는 야전병원 제일 위층 커다란 병실. 6인이 사용하는 병실이나 모두 치우고 급하게 1인 병실로 꾸몄다.
김수훈은 몸의 전신에 하얀 붕대를 감고 누워있었다. 로켓포 공격에 의해 폭탄이 터지며 팔과 다리를 파편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치명적인 상처는 없으나 몸 전체가 작은 상처투성이다.
얼굴에도 하얀 붕대를 칭칭 감아서 마치 미라 같은 모습이다.
모시는 사람이 다치자 침통한 표정으로 일현무는 두 손을 모으고 침대 옆에 서있다. 김수훈은 자기 대신 저격소총에 맞은 경호원들이 걱정되어 물었다.
“저격당한 경호원들은 끝내 죽었나요?”
“예, 조장들이 두 명이나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수색대원 두 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다쳤습니다.”
“부상자들도 가서 살펴보고 오세요.”
“넷!”
지시를 받은 일현무는 급하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빠르게 걷고는 있지만 걸음걸이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졸지에 자기가 근접 경호할 때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맥이 탁 풀린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김수훈은 한숨을 토했다.
‘휴우!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거야.’
타국으로 들어와 너무 방심한 것이 제일 큰 잘못이다. 설마하니 그런 곳에 저격하기 위해 테러범들이 매복해 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분명히 공중정찰이나 정보에 의하면 그 지역은 이미 쿠르드 반군들이 모두 사라진 지역이다. 정황상 너무 이상했다.
일현무가 밖에서 나갔다 오더니 보고했다.
“폐하, 부상자는 대부분 경상이라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일현무는 표정이 조금 전보다 밝아진 상태에서 다시 보고했다.
“폐하, 수색대원들이 범인들을 추적해 잡았습니다.”
“어떻게?”
“다른 곳에서 사냥하던 임종광 중장이 이끄는 수색대원들이 도망치는 범인들과 조우되어 잡았습니다. 범인 세 명 중에 한명은 교전 중 사살되고 두 명은 생포했습니다.”
자신들을 공격하던 범인들을 잡았다고 하자 김수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부대로 갑시다.”
“예? 부대로 가시려고요?”
“범인들을 잡았다니 그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요.”
김수훈의 지시에 일현무는 급하게 답했다.
“폐하, 그 범인들은 이미 바그다드로 보냈습니다.”
“뭐요? 왜 우리가 잡고 바그다드로 범인들을 보내요?”
잠시 대답하기를 머뭇거리던 일현무는 매우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폐하, 그 놈들은 체포된 이후에 이라크에서 사는 쿠르드 반군이라고 자백하고 나서는 이 후로는 단 한마디도 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종광 대장이 오래 생각한 끝에 바그다드의 정보부로 범인들을 정체나 배후를 조사하라고 급하게 넘겼습니다.”
“아, 그랬어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철저하게 인권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임종광 사령관은 나름 고심 끝에 편법을 써버렸다. 인권을 철저하게 보호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받았으니 범인에게 자백하라고 매로 두들겨 패거나 물고문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랍연합군에는 헌병대 말고 조사기관이 없다는 핑계로 슬며시 사담 후세인의 권력 기반인 정보부로 넘겨 버린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자기 손에 피는 안 묻히고 남의 손을 빌어 범인들 정체를 밝힐 요량이었다.
“항상 고지식하다던 임 사령관도 이제 요령이 조금 늘었군요.”
“그렇습니다. 차라리 이라크로 넘긴 것은 잘 된 일입니다.”
범인들을 이라크 정보부로 넘긴 법적인 근거가 있었다. 그들이 처음 자백을 쿠르드 반군이라고 실토했으니 이라크 국민이다. 그러니 이라크 정보부로 넘겨서 조사해도 된다.
물론 이라크의 정보부가 사건을 임의대로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이라크 정보부는 빠른 시간에 많은 정보를 알아낼 것은 분명했다. 뭔가 노리고 있는 사담 후세인은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범인들에게서 모조리 자백을 받아 낼 것은 분명했다.
‘그 놈들 죽어나겠네.’
이라크의 정보부는 고문기술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잔혹한 기관이다. 상상하기 힘든 각종 고문을 물론 약물도 이용할 것은 분명했다. 범인들로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생지옥을 수없이 구경하겠지만 부하가 4명이나 죽은 마당이라 동정심을 베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알았어요. 사담 후세인이 자세하게 알아내서 나중에 나에게 연락해 주겠군요.”
“폐하, 무기로 보아 분명 이스라엘 짓이 확실합니다.”
“그야 어디고 다 쓰는 무기가 아닌가요? 더구나 터키 쪽에는 그런 무기가 너무 흔한데요.”
이번 사건이 나자 쿠르드 반군 지도자들은 멀리 이란으로 도망치고 그곳에서 중대한 발표를 했다. 쿠르드 반군은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애절하게 주장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쿠르드 반군 조직은 터키에서 마약 밀수하는 조직이라고 자백해 버렸다.
그러자 터키 정부는 기겁해서 변명하고 있었다. 자기들은 절대로 테러조직을 도운 사실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테러 조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힙니다.”
심부름한 밀수 조직도 매복 공격 지점까지 돈 받고 무기나 탄약을 공격 거점으로 날라다 준 죄만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더 이상은 적대적인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와 더불어 이동루트를 모조리 알려줬다. 무기 운반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증거라고 하며 급하게 모술의 아랍연합군 사령부로 보냈다.
그로 인해 아랍연합군은 숙영지로 이용되는 곳에서 많은 무기도 발견하고 범인들의 이동행적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쿠르드 반군들이 이런 발표를 한 이유는 당연히 주변국들의 여론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김수훈은 전에 쿠르드 반군에 대해 충분히 무력을 사용해 소탕할 수 있었으나 짐승들만 죽이고 살려줬다고 널리 알려졌다. 그런 자비심 많은 아랍 지도자를 암살하려고 했다고 소문이 났다. 아랍권 전체에서 쿠르드 족을 말살시키자는 여론이 생겨버렸다.
그들은 사태가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을 직감했다.
비록 희생은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당분간 이곳에서의 쿠르드 반군들의 활동은 잠잠해 질것으로 추측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지시했다.
“실장, 이제 돌아갑시다. 가다가 바그다드를 들려 경호원들의 유해는 거기서 항공기로 보내고 모하르로 돌아가죠.”
“넷!”
“그동안 사냥한 가죽은 모두 챙겨요.”
“예.”
가끔 가죽이 좋은 표범도 잡아서 하는 지시다.
김수훈은 네 유해를 연구차에 싣고 바그다드로 떠나며 임종광 사령관에게 지시했다.
“터키 쪽으로 더 이동해 전진 배치하고. 쿠르드 반군 소탕작전은 모두 이라크 제 3군에게 넘기시오.”
“알겠습니다.”
일단 범인들은 정황상 터키에서 넘어온 것이 분명했다. 터키 정부를 압박하는 군사적 행동이다. 그러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으니 추가해서 지시했다.
“터키 국경 지역으로 최대한 전진 배치하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좋게 준비하고요.”
“넷!”
운구행렬이 무술을 떠나자 갑자기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자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입을 손으로 두드리며 길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라라아라!”
“아라아라라!”
전에도 죽음이 있을 때는 항상 내는 소리다. 그러나 이런 집단적인 울음소리는 민중의 소리로 알려지고 있었다. 오래전에 아프가니스탄의 그레이 궁전에서 퍼진 이런 집단적인 메아리 소리는 민중들이 내는 혁명을 원하는 소리고 죽음의 메아리다.
이라크 국민들 특히 힘든 아랍의 관습으로 살고 있던 여자들이다.
김수훈이 이곳으로 오면서 삶의 질이 전과는 너무 달라졌다. 죽음과 같은 고통을 주던 할례관습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조혼도 사라지고 이제 여자들의 사회활동도 보다 자유롭다.
여성들도 이제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대폭 늘어났다.
폭력을 쓰는 남편과는 언제고 많은 위자료 받으며 이혼도 가능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랍 여성들의 삶은 전과는 너무 달라졌다. 그래서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더욱 애통해 이런 죽음의 메아리 소리를 크게 지르고 있었다.
“아라! 아라라!”
“아라라라라!”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은 차도르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얀 붕대를 얼굴까지 감고 있는 모하르 샤 국왕이라 걱정들이 태산이다.
“잘 생기신 얼굴 상했으면 안 되는데.”
아랍 여성들에게 김수훈은 첫사랑으로 느끼고 싶은 너무 잘난 남자다. 또는 평생 자신을 보호해주는 혈육과도 같은 그런 존재와 같이 점차 변해 있었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도시마다 애도하는 메아리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바그다드의 시내로 김수훈 일행이 탄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라라라라!”
연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죽음의 소리를 내며 슬프게 애도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 즉 이라크를 돕고자 왔다가 너무 어이없이 죽어간 4명의 희생자들이다.
통치자는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감각이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동물적 감각으로 국민들의 이런 외침이 뭔지를 알았다.
“헉! 나라 뒤집어 버리라는 소리야.”
나름 폭압정치는 하지만 그래도 국민들에게 인기는 있는 대통령이다. 그것은 그저 폭력으로 인해 가식적인 충성이고 굴종이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 강요하지 않고 운구 행렬을 보며 처절하게 외치는 혁명의 메아리 소리는 사담 후세인 자신에 대한 반기다.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머리가 곤두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애도의 소리로 들었다. 하지만 연도에 피켓들이 보이자 죽음의 메아리 소리가 혁명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모하르 샤 폐하, 가지 마세요. 저희를 이끌어 주세요.”
바그다드로 들어오기 전에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눈치 챈 사단 후세인은 동작은 매우 빨랐다. 죽은 4명에게는 최고훈장을 주고 유족들에게도 거액을 보냈다.
범인들이 터키를 통해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수도인 바그다드에 있던 제 1군단을 터키국경으로 급파했다. 국민들의 시선을 터키로 돌리려는 시도다. 그리고 자국의 제 1군단이 혹시 모하르 샤 국왕과 밀착이라도 할까 너무 겁나서다.
사담 후세인은 바그다드 공항에 급하게 거창한 빈소를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수훈은 측근들이 죽었고 자신이 공연한 객기를 부리다 희생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왕실 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자연히 자신이 상주가 되어 문상객을 받고 있었다.
다른 문상객이야 경호실장이 받으면 된다. 하지만 타국의 대통령이 문상하니 직접 마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담 후세인이 돌연 한국식으로 영정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어서 상주와도 정중하게 맞절을 하고 있었다. 괴이한 행동으로 인해 황당한 김수훈이다.
‘헛! 이건 또 무슨 수작?’
맞절을 하며 연신 김수훈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담 후세인이다. 김수훈은 이라크 국민들의 정서를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단 후세인은 문상을 핑계로 적당히 모하르 샤 국왕에게 철저하게 협조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었다.
맞절을 하며 사담후세인이 다소 큰 목소리로 권하고 있었다.
“폐하, 범인들의 배후로 드러난 터키를 같이 치시죠.”
“예? 터키를 공격해요?”
“터키의 육군 장교가 자심들에게 무기를 넘겨줬다고 테러범들이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터키 주재 미국의 대사관 무관이 주선했고요. 이번 사건은 터키 정부가 개입된 것이 틀림없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 두 놈의 신분도 드러났습니다. 아직도 모사드라고 자백은 안했으나 모아지는 증거로 보아 모사드 소속의 특수부대원이 틀림없습니다.”
세계 언론사 기자들 100명 이상이 모인 빈소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니 각오 단단히 한 모양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건 사실을 자백 받은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알았어요. 터키 정부가 개입하고 미국의 무관이 개입했다면 터키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요.”
“명령만 내리면 시리아도 동참할 겁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일단 바그다드 시민들의 죽음에 메아리 소리와 함께 특별기편으로 4구의 시신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바그다드 호텔 특실에 투숙한 김수훈을 사담 후세인이 찾아와 돌아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대통령께서는 특별히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요?”
“예, 있습니다. 저에게 보내신 맹수 가죽에 대해 설명을 해주세요.”
“예? 그게 무슨?”
“보낸 진짜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그거야 이라크에서 잡은 맹수 가죽이니 제가 드리고 가는 거죠.”
김수훈은 남의 나라에 와서 방심하고 사냥질이나 하다가 경호원들과 병사들을 죽였다.
영 찜찜한 그런 가죽을 가지고 돌아가기는 뭐했다. 그래서 사담 후세인에게 맹수 가죽을 모조리 넘겨주었다.
‘별것을 가지고 의미 찾고 그러네.’
사담 후세인은 김수훈을 예언자 정도로 아는 터라 이런 사소한 행동도 조금 달리 생각했다. 뭔가 자기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분명히 아주 심오한 뜻이 있다고.’
부하들까지 죽이며 사냥을 했으니 무하르 샤 국왕 자신이 가지고 가야 당연했다. 그것이 아주 순리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굳이 자기에게 가죽을 넘겼으니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뜻을 해석하려니 머리만 아프고 너무 난해했다.
김수훈은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담 후세인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자 황당했다.
‘별것을 심오하다고 생각하네. 잡놈도 아니고.’
뭐 때로는 약간 머리가 이상한 잡놈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너무 심각하니 그게 아니라고 사실 대로 말하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약간 추가해서 설명해 주었다.
“사냥해서 살코기는 이미 먹었으니 가죽이야 이라크로 남기고 가야 당연하죠. 가죽까지 가져가면 그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생각한 겁니다.”
“그래요?”
“굳이 제가 하는 이런 행동이나 말을 정확하게 알려면 한국에서 용하다는 접관을 만나 보세요. 아니면 접녀나 잡놈을 이라크에도 있는 그런 사람 만나 보시던가 하면 조금은 이해될 겁니다.”
그들이 설마하니 자신의 말을 나쁜 쪽으로 해설할리는 없다고 판단해서 하는 말이다.
김수훈은 하룻밤을 사담 후세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정부시책들이다. 물론 그중에 가장 중점을 주는 것은 너무 사막화가 되니 최대한 많은 나무를 심어 조림에 힘써야 한다고 권하고 있었다.
김수훈이 많은 아랍 여성들의 환송을 받으며 모하르로 떠나자 사담 후세인은 특별히 한국에서 초대한 접녀를 불러와 해설을 들었다.
“각하, 어려운 해석이 아닙니다. 맹수는 이라크를 나타냅니다. 속살은 지하에 들어 있는 원유나 천연가스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가죽은 껍질이니 이라크의 문화나 농업 공업 등을 나타내고요.”
“그렇군요.”
“언젠가는 살은 먹어서 없어지지만 가죽이야 오래 남으니 가죽을 잘 보살피라는 뜻입니다.”
경영대학 출신이 접녀라 모든 해설을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해설을 듣자 사담 후세인은 대대적인 농산정책을 발표하고 있었다. 가죽이란 두터워야 좋다나 뭐라나 해서 나무로 온 나라를 덮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조림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