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흑과 백 그리고 회색 18권>
모하르 국제공항을 떠나 델타 국제공항로 가려고 했던 전세기는 델타지역의 폭설로 인해 카불 국제공항으로 향하게 됐다. 기장은 김수훈에게 다가와 급히 보고했다.
“폐하, 델타공항이 폭설로 인해 카불공항으로 갈까합니다.”
“그런가요? 델타는 잠시 들려 볼 생각이라 별로 상관없으니 카불공항으로 가도 됩니다. 그런데 폭설이라면 눈이 얼마나 내렸나요.”
“평균 50센티미터가 내려 이착륙이 어렵습니다.”
“많이 내렸군요. 그러면 올해 강우량도 몇 년 전처럼 많아질 수 있겠군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델타지역은 전과는 달리 폭설이 자주 와서 강우량이 많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농가에 피해도 많았다. 특히 비닐하우스 재배농가의 경우 그 피해가 아주 심했다. 델타 지역은 요즈음 들어 폭설이 자주 내린다. 그로 인해 이곳의 비밀하우스의 경우는 하우스를 만드는 파이프도 더 굵고 간격이 촘촘했다.
김수훈은 델타지역에서 농장을 하고 있는 하산이 약간 걱정되어 물었다.
“기장, 무전으로 델타 농장과 연락이 가능한가요?”
“예,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피해가 심한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넷!”
잠시 뒤에 델타공항의 관제탑을 경유해 델타 농장과 통화를 끝낸 기장이 다시 돌아와 보고했다.
“피해가 전혀 없답니다. 비닐하우스의 온도를 높여 눈이 내리자 바로 녹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 폭설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델타지역이 특별하게 하우스 재배를 겨울에 많이 하고 있었다. 이곳은 온천을 개발해 온천수의 고온을 이용해 비닐하우스의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또한 근처에서 나오는 양질의 석탄으로 비닐하우스 온도를 유지시키고 있었다. 이곳에는 대규모의 비닐하우스나 혹은 플라스틱인 특수유리하우스가 많았다.
김수훈이 1차 산업으로 살기가 힘들다고 했지만 델타지역은 전혀 달랐다. 고소득을 올리는 과일 재배를 겨울철에 함으로 소득 증대를 이루어 아주 잘사는 농가가 많았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이주한 기업 농가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토지가격은 아예 없는 상태로 시작해 이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겨울 채소가 많이 생산되었다.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특히 수박, 참외, 딸기, 매론, 토마토, 피망 등 농사를 지어 모하르 시로 보내고 있었다.
“여기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농사지어서 돈들은 잘 버나 모르겠네.”
김수훈이 농사일에 대해 걱정하자 사백호가 즉시 답했다.
“요즈음 농사짓는 사람이 진짜 알부자입니다. 물론 자본금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아무튼 델타 지역 농가소득은 전에 비해서 몇 배로 높아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가?”
“이제는 겨울철에도 노는 사람은 거의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합니다.”
“부지런해졌다니 다행이군요.”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전쟁으로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상실했었다. 아랍인들은 일본과 한국인에 비하면 평균 노동시간이 매우 짧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흔히 게으른 성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주계급인 상류층이 소출의 대부분 가져가는 수탈 행위가 지속되다보니 그런 습성이 생겼다.
그로인해 농지개혁을 한다는 사회주의가 쉽게 스며들었으나 사회주의인 공산주의란 생산의욕을 상실하게 해서 같이 못사는 제도라 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수훈이 집권한 이후로 그런 소득의 불균형을 많이 해소시켜주었다. 그러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국민으로 어느새 바뀌었다.
여성들의 학력이 이제는 거의 중학교 이상으로 변화하는 추세로 돌아가자 여성들의 사회참여기회가 늘었다. 그렇게 되자 일부다처제 보다는 일부일처제로 결혼풍습도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다처제의 풍습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농사를 지어 빠르게 부를 이룬 사람들은 소련이나 주변국에서 어린 여자들을 사왔다. 여러 명의 부인을 두며 농사를 짓는 경우가 늘었다. 일부는 그런 현상을 현대판 노예인 노동력 착취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실재로 그런 사례가 생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로인해 아프가니스탄은 인구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김수훈은 인구가 많은 것도 국력이라고 판단했다. 이민 정책은 부작용이 생기고는 있지만 여성을 이민 받는 정책은 거의 통제하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해외로 송출하는 여성들 인력은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카불 상공에 들어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 시가지의 산비탈에 있던 많은 판자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산꼭대기로 철거된 곳에는 대대적으로 조림사업이 되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하파르 수상이 대대적인 이주정책이나 재개발 사업을 실시한 것 같았다.
“하파르 수상이 노력 많이 하는군.”
“폐하, 정부에서 이주하는 사람에게는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더 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기술교육도 시켜주니 이주정책이 성공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자기가 권력을 다 쥐고 나라를 경영할 때보다는 늦었다. 하지만 이런 정도 성과라면 하파르 수상을 믿고 외국을 마음 놓고 돌아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훈은 귀국하자마자 벌써 떠날 궁리부터 하고 있었다.
카불 국제공항에 전세 비행기가 착륙하자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있었다.
마중 나온 하파르 수상은 고개를 깊숙하게 숙여 인사를 했다.
“폐하, 경하 드립니다.”
“수상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그 소리합니까?”
“폐하의 나라에 좋은 일이 계속 많아지니 그렇지요.”
“이번은 또 뭡니까?”
새삼스럽게 나리에 좋은 일이 있다고 말하자 김수훈은 궁금해서 급히 물었다. 하파르 수상은 신이 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폐하, 기뻐 하셔도 됩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됐습니다. 북쪽에서 원유와 천연가스가 나옵니다. 그리고 대규모 탄전도 발견되어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요. 그것 아주 반가운 일이군요. 그래 매장 양은 얼마나 되나요?”
“현재 원유의 경우 개발되어 생산하는 양은 이미 국내 소비의 반은 충당하게 됐습니다. 매장량은 앞으로 수십 년은 쓸 수 있는 양은 됩니다.”
“뭐요? 그게 정말입니까?”
“폐하, 이제 에너지를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충당이 거의 될 정도입니다. 수력발전소로 이제 가동되고 석탄 생산량도 늘어 화력발전소 충분하게 가동할 양은 됩니다.”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정도의 자원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미 식량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정도가 되고 에너지도 자체적으로 해결된다면 자립할 능력은 이미 갖추어진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적어 에너지 소비량이 그만큼 낮아서 벌어진 현상이다.
반년동안 외국에 나갔다 왔기 때문에 김수훈은 하파르 수상에게 지시했다.
“각료들 전체 회의를 소집하죠. 종무식을 겸해 모이는 것이니 너무 어렵게 생각은 마세요. 연말이라 바쁘더라도 내일 모이라고 하세요. 장관이 출타중이면 차관이 모여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김수훈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하파르 수상과 헤어져 그레이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레이 왕궁의 본궁으로 들어가자 아리아 왕후가 많은 시녀들과 같이 도열해 있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폐하, 어서 오세요.”
아리아 왕후에게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고 물었다.
“아이는 잘 자라오?”
“예, 여의사의 말에 아주 건강하답니다.”
“고생이 많구료.”
아리아 왕후의 얼굴은 약간 부은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고 조금 살이 올라 보이는 정도였다.
김수훈은 아리아 왕후와 같이 침전으로 들어갔다.
아리아 왕후는 그간 그레이 왕궁에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폐하, 여의사는 첩자로 밝혀졌으나 그대로 지하 감옥에서 지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소?”
“예, 누굴 해하려고 한 첩자 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해 제가 임의로 그렇게 조치했습니다. 어차피 저나 시녀들 건강도 수시로 체크해야 하니까요.”
“알았소. 아무튼 조심해요.”
내명부 일이라 간섭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정도는 아리아 왕후가 처리하도록 놔두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모든 일을 일일이 간섭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 되도록 간섭을 안 할 생각이다.
김수훈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본궁을 나와 사무실들이 있는 본관으로 갔다.
본관으로 오자 파리아스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관련된 업무를 보고했다. 대부분 가끔 서면으로 보고를 받아 특별히 새로 보고할 사항은 없었다.
다만 일현무 경호실장은 제니퍼에 대한 조치를 말했다.
“폐하, LA에 경호팀 8명을 보내 상주하게 했습니다. 아직은 마마께서 미국으로 오시지 않아 협의를 못했지만 추후로 마마와 협의해서 경호지침은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마는 지금 태국 푸켓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알았소.”
실루엔 감찰원장으로 부터는 감찰원을 두 명 LA로 파견 보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어서 이주작 민원실장으로 부터는 새로 중형과 대형 컴퓨터를 구입해 모든 업무를 전산화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런 보고를 받고 나자 왕실수비사단장들의 거취에 대해 물었다.
“두 장군은 어찌 되었죠?”
“넷, 둘 모두 중장으로 진급해 한명은 수도군단장으로 가고 한명은 통합된 왕실수비군단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알았소. 그런 정도면 잘 처리 됐군.”
이런 대화를 나누고 김수훈은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감찰원 사무실 중에 빈 공간에 보석가공 공방을 이전하세요. 그리고 그레이 보석이란 회사를 설립하세요. 앞으로 남아공에서 보내오는 다이아몬드 원석이나 국내서 생산되는 보석을 가공해 판매할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요. 매장은 카불, 모하르, 미국LA에 내니 그렇게 알고요.”
“알겠습니다. 그런 바로 공방으로 연락해 내년 초부터는 그렇게 가동이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기계음 소리가 나니 아무래도 지하 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건 공방의 기술자들과 상의하세요.”
“넷!”
김수훈은 왕실학교 교장에게도 특별히 지시했다.
“보석도 가공이 중요하지만 디자인도 중요하니 학교 내에 디자인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잘 선발해 육성시키세요. 보석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견직물을 패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 좋으니 그쪽으로도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하고요.”
“넷! 잘 알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실크 천만 생산해 팔거나 혹은 견사로 외국으로 팔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보다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속옷이라도 만들어 판매하도록 권장할 생각이다.
왕실학교는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교육기관의 모델이다. 그 때문에 이런 지시를 하면 그대로 교육부의 기본 방침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다음날 김수훈은 전 각료들이 모인 전체회의에서 이미 지시한 모든 행정망의 전산화와 국민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키는 지침을 하달했다.
아울러 새해부터 생기게 되는 정보통신부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말했다.
“앞으로 컴퓨터 시대를 지나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게 되니 신경 써서 교육을 하도록 해요.”
“넷!”
“그리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1인 1 기능사 자격증 제도는 더욱 확대하시오. 자격증 시험도 인력자원부에서 특별히 신경 써서 제도가 정착하도록 하고요.”
“넷!”
오직 기술력만이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되어 살길이라는 생각에 이런 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조림사업에 대해서도 강조해서 말하고 있었다.
“조금 주변 환경이 좋아졌다고 느슨하게 하시지 마시고 더욱 분발해 주세요.”
“넷!”
전체적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며 또 내년도의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지침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김수훈은 일부 우수 공무원을 표창하는 등의 행사에 참석하고 다시 국정에는 간섭하지 않고 본궁에 처박혀 버렸다.
외국으로 가거나 혹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찾는 왕실묘역을 돌아보고 김수훈은 식물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긴 오이 모양인 작은 집에는 푹신한 침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짹! 짹! 쪼로롱. 쪼로롱.
혼자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쌍을 이루고 날아다니는 잉꼬 새와 원앙새를 보며 김수훈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장마로 홍수가 나도 식수 없어 물난리라더니 내가 그 짝이군. 진짜 짜증나네.”
김수훈이 이렇게 말하자 주변에 서서 있던 카산드라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런 게 있어요.”
김수훈은 돌아온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벌써 이곳 그레이 왕궁에서 생활이 지루해지고 있었다. 지루해진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임신으로 밤일을 못해 끓어오르는 욕구를 발산할 길이 없어서다.
주변에 있는 젊은 시녀들과 쉽게 접해 버리자니 그것은 너무 싱겁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것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랍공주들과 결혼해 주변으로 끌어 들인다는 것도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사안이다.
“카산드라, 소피아 공주는 어디 갔나?”
“예, 스키장으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벌써 스키를 타나?”
“아닙니다. 그곳에 놀이 시설도 많고 그래서 단체로 학습수련회를 떠났습니다.”
이제는 겨울 방학이라 아마도 소피아 공주는 왕실여학교에서 가는 단체 수련회로 떠난 것 같았다. 왕궁에서 지내기 지루해진 김수훈은 소피아가 수련회를 떠났다고 하자 그에 힌트를 얻은 것인지 즉시 지시했다.
“사백호에게 등산 떠날 준비하라고 해.”
“예? 등산요?”
“이번에 힌두쿠시 산맥이나 종주해야겠으니 떠날 준비하고 단단히 하라고 해. 팀은 모두 16명 정도로 정하고.”
“알겠습니다.”
김수훈은 1992년 1월1일 새해가 밝아오게 되자 아리아 왕후와 같이 텔레비전 방송으로 연두 교서를 발표했다. 이미 각료들에게 지시한 국정 운영지침을 다시 한 번 국민을 상대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런 발표하고 사백호를 포함한 16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서북쪽의 힌두쿠시 산맥으로 떠났다. 왕궁을 떠나는 국왕을 보며 아리아 왕후가 한숨을 쉰다.
“폐하의 말씀이야 국토를 순례하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래도 내가 잠자리를 못해서 저러시는 거야.”
왕후의 중얼거림에 카산드라가 즉시 답했다.
“마마, 그렇다면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죠.”
“내가 폐하의 심중을 알고 시녀라도 접하라고 말씀 드려보니 오히려 정색하던데. 우리가 무슨 대책을 마련해? 공연히 일 벌인다고 오히려 혼이나 나지.”
하루에 몇 여자도 감당할 젊고 강력한 힘을 지닌 모하르 샤 국왕이다. 그레이 왕궁으로 돌아와 독수공방으로 지내자 아내로서 남편의 심중을 모를 수가 없었다. 편법으로 두 번 접해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양이 찰 국왕이 아니었다.
김수훈이 경호원들과 사실상 여자 때문에 고행인 산행 길에 오르고 있는 동안. 멀리 태국에서 지내는 박천태는 주위를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조금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는 박천태가 변신한 제임스가 더 쉽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이 이 세계로 넘어온 또 한사람인 이은혜는 밤마다 외로워하며 지내고 있었다. 낮에는 범인 잡는 일에만 몰두해 좋은 시절을 소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