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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그리고 회색-358화 (358/591)

358화

은근히 걱정했지만 선거 판세를 보아하니 별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비록 과반수는 넘기지 못해도 제 1당은 충분히 되게 생겼다. 전에는 과반수를 얻었으나 쿠데타 세력에게 너무 무기력하게 당해 국민들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군. 당분간은 내각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그러나 총선으로 인해 김수훈은 신경 쓸 일이 대폭 늘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알두란은 상원의원으로 출마했다. 유홍백도 상원의원으로 출마해 안보와 경제수석비서관을 새로 임명해야 된다.

더구나 감사원장까지 하원의원으로 출마해버렸다. 떠나는 사람 잡지 않는 성격이나 한 번에 모조리 정치하겠다고 떠나자 내심으로 약간 서운했다.

‘다들 정치한다고 왕실에서 도망치는군.’

왕실의 모든 고위직을 새로 임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함부로 측근으로 쓸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한국에서 사람을 데리고 올수는 없었다.

이번 쿠데타의 주모자가 장덕수라 한국 출신들은 좋았던 이미지가 상당히 깎였다.

사퇴한 사람들은 모두 쿠데타를 막지 못하고 두 상궁과 사만다 장관이 죽게 되자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 일로 왕실을 떠나 정치를 직접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차라리 잘 된 거야. 내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 없이 알아서 정치할 생각이라니.”

이런 일로 인해 김수훈은 또 다시 묘역으로 가서 생각을 많이 했다. 자기 때문에 희생된 여자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계속 살수는 없었다.

‘쉽게 털어지기 어렵겠어.’

아무래도 이참에 왕궁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임명직 자리니 인사를 서두르기로 했다.

한창 선거 기간 중. 김수훈은 왕궁에 있는 부처의 책임자들을 임명했다.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되고 새로운 기구가 생기게 된 것이다.

왕실비서실장은 파리아스, 경호실장은 일현무, 차장은 사백호로 정했다.

새로 생기게 되는 민원실장에는 이주작, 차장은 삼청룡을 임명했다. 국가감사원장에는 할패른, 국가기강원장은 나하알, 국가정보원장은 실루엔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전에는 해외 유학파 출신이 대부분이나 이번에는 국내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로 선정되었다.

안보수석비서관은 니살론, 경제수석비서관 스칼레알이 임명되었다. 왕실학교장도 아프칸 출신으로 새로 정해주게 되자 왕실의 조직은 구성되었다.

전에 있던 알두란의 추천도 있고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도 마친 상태로 임명했다.

본관 2층의 집무실 옆에 있는 접견실에서 아리아 공주가 입회한 가운데 각자 임명장을 주었다. 아직 국회에서 결정되지 않은 부서의 경우는 임시라는 이름을 붙은 임명이다.

임명장을 주고 이들과 같이 소회의실로 가서 회의를 겸해 지시했다.

“민원실장은 앞으로 무기명인 투서는 무조건 읽지 말고 소각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왕실로 보내온 민원이라고 해서 모조리 왕실에서 처리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해당 부처로 이관해서 처리하게 하고 대신 처리 결과는 꼭 현지로 가서 확인하고.”

“넷!”

김수훈은 나살론 안보수석비서관에게 지시했다.

“내가 부재중 일 때는 국가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이 자동으로 전군을 통솔하는 지휘체제를 확립해 두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내가 국내에 있더라도 지금처럼 모든 의전행사는 부위원장이 대행할거니 그렇게 알고요. 국회가 개원되면 반드시 법으로 만들도록 하시오.”

“넷!”

김수훈은 어차피 수도권 방어를 위해 필요한 병력이라고 델타 부대에 대해서도 필요한 조치를 내렸다.

“앞으로 델타 2개 사단은 왕궁방공사단, 왕궁수비사단으로 별칭을 사용하고 델타 사단 명칭은 사용하지 말도록 하고 유사시 작전 지휘권은 아리아공주와 경호실장이 가지도록하세요.”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조치로 인해 수도인 카불에는 두 개의 군단이 주둔하게 되었다. 왕궁을 수비하는 신시가지 주둔 군단과 구 시가지에 수도경비사령부가 있었다.

김수훈은 아리아 공주에게도 당부했다.

“지난번처럼 쿠데타 세력에게 미온적인 대응은 절대로 안 됩니다. 두려워 말고 즉각 대처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따르게 되요.”

“예,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강경하게 대처하죠.”

김수훈이 모든 권리나 의무를 아리아 공주에게 넘기는 이유는 자신은 따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본관의 조직을 정비한 김수훈은 비게 된 내궁에 대해서도 조치를 내렸다.

어차피 인근 나라들에서 넘어온 부족을 아우르기 위해 시작된 상궁 제도다. 김수훈은 제조상궁을 따로 불러 심각한 표정으로 지시했다.

“제조상궁, 새로 들어오는 상궁도 전처럼 같은 나라 출신으로 상궁으로 들이고 명칭도 같이 사용해요. 그리고 밀정이 있으면 곤란하지 조사 철저히 하고요.”

“알겠습니다.”

“제조상궁은 반드시 명심하세요. 나는 이제 상궁이라고 해서 취할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단순한 업무만 수행하는 상궁을 들여야 합니다.”

“예, 폐하!”

이어서 김수훈은 우네비 자리에는 학사, 위하비 자리는 석사출신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조치로 상궁들의 지위가 파산드라 제조상궁 아래로 변하게 되었다.

김수훈은 파산드라에게 추가해서 지시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제 전에 벌어진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제조상궁은 내가 하는 말을 꼭 명심해요.”

“알겠습니다.”

“다른 상궁도 교체할 수 있으면 모조리 교체하세요.”

“네.”

이 이야기는 자신이 혼자 있다고 해서 상궁이나 시녀를 방으로 절대 들이지 말라는 지시다. 전에 있던 상궁도 본인 의사에 따라 왕궁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면 내보내도록 조치했다. 내궁의 일까지 마무리하고 김수훈은 사백호를 데리고 방탄리무진에 올라 델타로 떠났다. 이런 조치로 인해 아리아 공주는 그나마 속이 덜 상하게 되었다.

이제 모하르 샤 국왕과 깊은 관계인 여자는 현재로는 제니퍼 뿐이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결혼 전에 주변 여자를 정리할 모양이네.’

아무리 편하게 마음먹더라도 주변에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자들이 많아 아리아 공주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아리아 공주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김수훈 주변에는 여전히 여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아랍 공주들도 네 명이나 자기처럼 결혼을 기다리는 중이다.

김수훈 일행은 중간에 도시를 들려 조림사업도 점검하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카불을 떠나 가즈니에 도착하자 이곳은 조림 사업이 상당히 잘되어 있었다. 적어도 대로에서 보이는 곳은 모두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여긴 다른 곳보다 조림 사업이 유난히 잘 되었군.”

“아, 그건 농축산업 장관이 이 지역 출신이다 보니 신경을 더 써서 묘목을 많이 보내서 그렇습니다.”

사백호가 이렇게 답하자 김수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농축산업 장관이던 카레알은 사백호의 장인이었다.

“네 장인이 이번에도 상원의원으로 출마 했냐?”

“예. 아마 별 어려움 없이 당선될 것 같습니다.”

“그래, 선거는 해봐야 알지.”

조림지역을 돌아보는 김수훈은 조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많은 자금도 들이고 김수훈이 집중적으로 신경 쓰는 국책 사업이다. 이제 서서히 그 효과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자기 출신 지역으로 집중 투자를 했다지만 잘된 모습이 보기는 좋았다. 그래서 김수훈은 사백호에게 슬며시 물었다.

“사백호, 내가 선거 유세장으로 가서 한 번 만나면 네 장인의 선거에 도움이 되겠냐?”

“그야 당연하죠.”

“알았어, 그럼 잠깐 만나고 가야겠다.”

어차피 다는 챙기지 못하지만 최측근인 사람의 처가라 조금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해 만나게 되었다.

유세장에서 카레알을 잠깐 만나보니 조림사업에 나름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김수훈이 그런 카레알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또 농축산업 장관을 하실 생각인지?”

“그 자리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산림청장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요?”

장관하던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하자 카레알은 다시 추가해서 자기 생각을 다부지게 말했다.

“폐하, 산림청장해야 다른 일 신경 안 쓰고 조림사업에만 몰두하니 그런 자리가 제 적성에 맞고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혹시 아부라는 말인가 생각해 카레알과 헤어지고 나서 사백호에게 조용히 물었다.

“네 장인이 한 말 진심이냐?”

“예, 본래 조림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유는 임학과 출신으로 묘목장사도 해서 그렇습니다.”

김수훈은 과거에 마약 조직을 운영하던 그가 이런 모습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관료나 정치인 들 중에 이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조림사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만나고 싶군. 사백호, 나중에 시간 나면 네가 한 번 주선해라.”

“넷!”

김수훈 일행은 가즈니를 떠나 칸다하르로 향했다.

칸다하르에 들려 두 개의 고분을 돌아보았다. 고분들의 보존 상태와 국립칸다하르 박물관도 돌아보게 되었다. 일부러 칸다하르를 들린 이유는 이곳 출신 국회의원들이 반역죄로 많이 구금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칫 반정부 세력으로 변할 수 있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다. 이런 일이 깊어지면 차츰 지역 갈등으로 번진다.

주민 대표들과 만나서 건의 사항을 들어 보니 다들 반역죄에 대해서 선처해 달라는 분위기였다. 김수훈은 그런 건의에 대해 부드럽게 말했다.

“가담 정도가 약한 사람은 사형은 면하도록 노력해보죠. 하지만 국왕이라고 해서 사면권을 남발하기는 그러니. 제 고충도 알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잘 조사해 보면 구제할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들이라도 구해 주시면 앞으로 나라에 크게 도움될 겁니다.”

“알았어요. 주민들의 건의는 제가 참고하죠.”

어차피 이런 건의는 들을 각오하고 왔다. 또한 적당히 사면권을 써서 가담 정도가 약해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풀어줄 생각이었다.

칸다하르에서 델타로 이동하는 가운데 이미 국회의원 선거는 끝났다.

하파르가 이끄는 정당이 제 1당으로 과반수가 못되는 하원 62석 상원 20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제1당으로 다시 수상으로 오르게 되어 내각은 구성되었다.

김수훈은 자신이 지명할 상원의원 20명은 아리아 공주가 지명하도록 조치했다.

“아리아 공주, 하파르와 실루엔 후작과 상의해서 상원의원 20명을 그대가 지명하시오.”

“예, 알았어요.”

“그들을 되도록 각료로 임명하라고 하세요.”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자기가 명단을 받아서 임명해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아리아 공주에게 시키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할 일을 점차 대신하게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만다가 죽지 않았으면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하게 구상하고 할 것 없이 적당히 수상으로 밀어 주면 더 편할 수 있었다.

“죽고 나니 더 아쉽네. 그 여자만한 사람도 드문데.”

하지만 이제 죽고 없으니 최대한 아리아 공주를 내세울 생각이다.

결국 하파르 수상이나 실루엔 후작이 추천하는 인사들이 지명되어 일부는 각료로 임명되었다. 이런 김수훈의 조치로 하원은 여소 야대가 되고 상원은 여당이 장악한 형태로 되었다. 의원총회에서 과반수를 겨우 넘기게 되었다.

델타 궁전에 김수훈이 도착하자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있었다. 델타부족의 수장으로 왕위에 올랐으니 델타 주민들은 의미가 크다고 해서 하는 방문축하 행사다. 환영행사가 끝나고 나서 델타 궁전으로 하산과 같이 들어와 상의하고 있었다.

“하산, 미국에 갔던 요원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

“사우디에서 귀국해 다들 고향에서 지냅니다. 그들은 당분간 쉬다가 국가정보원 소속이나 정보사령부로 들어가 국내에서 근무하게 될 겁니다.”

중요한 비밀을 가진 그들을 외국에 놔둘 수 없어 하게 된 조치다.

김수훈은 자기를 해하려고 했던 조직이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이란의 정보부 매파들이 벌인 사건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물론 덤으로 북한도 약간 낀 정황이 있었다. 김수훈은 여전히 복수가 끝났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하산, 카말과 아직도 연락 되냐?”

“예, 카말이 아마 또 크게 일을 저지를 모양 같습니다.”

“뭐? 왜 또?”

“늘 같은 사건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니 그렇죠.”

지난번 사건으로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더니 또 크게 테러를 벌인다니 은근히 걱정이다. 더구나 자신이 지시한 테러도 카말이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다. 또 대형테러가 벌어지면 이제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가 모두 범인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생겼다.

“정착민이 또 많이 죽은 모양이군.”

“예, 이번에 또 이스라엘에서 저격으로 두 명의 병사가 죽자 이스라엘은 100배 보복한다며 전폭기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정착촌을 공격했습니다.”

미국에서 벌인 복수극은 정한우 처리는 박천태 조직원이 했다. 그리고 LA 폭탄테러사건은 하산이 이끄는 델타타이거 부대원 중 사우디아라비아 조직이 벌인 복수극이었다.

이란에서 만든 폭약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카말이 보유한 이란 제품인 폭약을 구입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폭탄테러는 이란의 사주를 받은 헤즈볼라가 저지른 사건으로 조사되고 있었다.

“하산, 폭탄 값은 충분히 줬냐?”

“예, 아프리카에서 너무 힘들게 고생하는 것 같아 부하들과 식량이나 사먹으라고 넉넉하게 줬더니 그것이 오히려 탈이 났습니다.”

“그럼 그 돈으로 또 이란에서 폭탄 사서 이스라엘을 공격해 복수한다는 거냐?”

“예, 결국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그것도 모자라 휘발유 뿌린 격이 됐습니다.”

김수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산, 카말에게 돈을 어떻게 보냈냐?”

“해외에 있는 델타 타이거 조직원을 통해 모나코에 있는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계좌는 어디 것이고?”

“이집트 카이로요. 수단에서는 인접국가라 이집트가 거래하기 좋으니까요.”

“이집트 은행 계좌와 카말과 연락되는 사람을 알려줘라.”

“예? 뭐하시려고요?”

“카말이 굶어 죽게 생겼다니 식량은 사게 내가 도와는 줘야지.

김수훈은 하산을 통해 카말과 접촉할 주소와 계좌 번호를 알아내고 나자 델타 공항에서 이집트의 카이로로 떠나고 있었다. 이집트 카이로에는 마침 제니퍼가 클레오파트라를 촬영하러 와 있었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김수훈이 비밀스럽게 이집트로 가자 아프가니스탄의 그레이 왕궁은 또다시 들썩했다.

아리아 공주는 델타까지 같이 같다가 혼자 돌아온 사백호를 나무라고 있었다.

“뭐야? 경호차장, 폐하 혼자 또 이집트로 제니퍼를 만나러 갔다고?”

“예, 폐하께서 제니퍼 양을 만나러 이집트로 혼자가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는 델타 공항에서 헤어졌어요.”

“이번에는 하산도 데리고 가지 않고 혼자 가셨다고?”

“예.”

이런 보고를 받자 아리아 공주는 이래저래 일부러 다이어트 안 해도 살이 쏙쏙 빠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혼식 전에 뭔가 획기적인 사건을 벌여야 될 정도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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