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흑과 백 그리고 회색 14권>
살다보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당하거나 혹은 목격하게 된다. 갑자기 앞에서 사고가 나자 운전자들은 대부분 차량을 멈추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었겠어.”
“그렇겠네.”
사고 현장 부근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차량 소통이 많은 2차선인 국도에서 큰 사고가 나자 지나가던 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서 사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로인해 교통이 마비되고 있었다.
“내려가 보자고.”
일부 운전자들은 사고차량이 처박힌 곳으로 내려가서 살피고 있었다.
선혈이 낭자하고 너무 험한 모습이다. 한 바퀴 돌고 처박힌 승용차는 완전히 부서진 상태로 안에 탄 운전자는 머리가 터져 있었다. 뒤에 탄 여자를 남자가 꼭 껴안고 있으나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끝없이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헉! 임신한 여자가 죽었네.”
“기가 막히네. 아이를 낳으러 가다 죽다니.”
“끔찍하네, 다 죽었나봐.”
너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이라 손을 쓸 엄두가 안 났다. 다들 차량주변에서 그저 탄식을 토하며 동동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경찰들에 사람들에게 크게 외쳤다.
“자자! 그만보고 다들 올라가서 차 빼세요.”
경찰들이 도로에 정차한 차의 운전자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2차선 도로라 길옆에 정차한 차들로 인해 교통이 완전히 마비될 지경이라 급히 교통정리하고 있었다.
구급차에서 뛰어온 구급요원들이 서둘러 사고차량에서 세 사람을 꺼내 옮기고 있었다.
“한 명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삐익! 웅성웅성.
현장 주변에서 서성이던 운전자들도 다시 도로로 올라왔다.
“다 죽은 것 같은데.”
혀를 차며 이런 말을 토해내며 사람들이 사고현장에서 차를 몰고 다들 떠나게 되자 그제야 막혔던 2차선 도로는 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경찰들이 급하게 사고 현장으로 가서 확인했다. 사고를 당한 차에 탔던 세 명은 구급차에 실려 현장을 떠나 빠르게 대전으로 떠났다. 환자들이 떠나고 나자 경찰이 다가와 운전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덤프트럭 기사요?”
“예.”
“경찰서로 갑시다. 사망자가 있소.”
그 소리에 그제야 운전자는 얼굴 표정이 약간 변하며 물었다.
“누가 죽었나요?”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이렇게 퉁명스럽게 답하고 경찰은 경찰차에 사고를 낸 운전자를 태워 급하게 현장을 떠났다. 사건을 조사해보나 마나 중앙선을 침범한 덤프트럭의 일방적인 잘못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대전으로 가는 도로에서 벌어진 사고는 흔하게 일어나는 교통사고 중 하나지만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었다.
이유는 금산경찰서로 끌려간 덤프트럭 운전자인 최인동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목을 매고 죽었기 때문이다.
“금산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운전자 유치장에서 자살!”
이로 인해 자살한 운전자에 대한 신원도 밝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문을 보고 매우 놀라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감방으로 들어가기 겁난다고 자살하나?”
“그러네, 너무 이상하네.”
일방적인 과실로 교통사고를 내서 사망자가 둘이나 발생했다. 두 명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산달이 거의 다된 임신부가 죽었으니 세 명의 사망자라고 볼 수 있는 대형교통사고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혁대를 풀어 창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본래 유치장으로 들어가면 혁대는 모두 회수하는 것 아닌가?”
“그야 모르지.”
아무튼 운전자가 사망하고 그의 신분은 공개되었다.
사고 차량은 대덕중기 소속인 덤프트럭이고 운전자는 임시기사로 채용한 최인동이다. 그는 이스라엘로 가서 한동안 지내던 청년으로 군대는 카추샤를 나왔다. 특이한 것은 보통 덤프트럭 기사와는 다르게 신학대학을 나왔다는 것이다.
“이상하네, 신학 대학을 나와서 전도사를 안 하고 덤프트럭의 임시기사로 일하고.”
“살다보면 그럴 수 있는 거지.”
뭔가 이상한 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 교통사고 당해 임신한 처와 처제를 동시에 잃은 박천태의 신분도 노출되었다.
“그린그룹 회장이라네.”
“젊은 사람이 그룹회장이야?”
“대기업은 아니지만 소유한 회사가 여럿이라 그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군.”
“무슨 소리야 대기업이 아니라니, 종합상사인 (주) 그린을 비롯해 식품, 산업, 의류, 조경, 엔터테인먼트, 대산 건설을 소유한 회장인데, 골프 연습장도 여러 개고 금산에는 사슴목장도 있어. 또 그린파크라는 큰 농장도 소유한 회장이야. 그 외에도 재산이 많다고.”
“나이도 젊은데 크게 성공한 사람이군.”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하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호기심을 표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린엔터테인먼트도 그 사람 소유야?”
“그렇다니까.”
그린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대해 잘 아는 이유는 딸이 모델로 성공한다고 가출했다. 딸이 서울 충무로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집나간 딸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 충무로에 있는 그린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잘 안다. 그 회사는 충무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임신한 부인과 처제가 죽었다고 하네.”
“안타까운 일이야.”
두 명의 여자가 사망하고 한명은 중상인 교통사고다. 돌연 사고 운전자가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자살해 검찰에서 조사하게 되었다. 아무런 유서도 없이 죽어서 뭐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유치장 관리를 소홀하게 했다는 이유로 금산경찰서장이 직위해제 되었다. 여러 경찰관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중징계를 받았다.
대전의 충남대 병원 응급환자실에서는 한창 수술 중이다. 이윽고 수술이 끝나고 나오는 의사에게 많은 기자들이 달려들어 묻고 있었다.
“환자는 어떤가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하지만 교통사고니 두고 봐야죠, 현재로는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찢어지고 외상도 많아 우선 그런 곳의 수술만 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나요?”
“그거야 나중에 계속 지켜봐야죠.”
“그럼, 지금으로 보아서 죽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렇소.”
금산에서 사고를 당해 충남대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세 명 중. 두 명은 병원으로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다. 그리고 남자는 의식불명인 상태로 다리도 부러지고 얼굴도 피투성이로 엉망이었다.
남자는 의식은 잃었지만 다행히 뇌진탕은 없었다. 유리파편으로 인해 얼굴을 수십여 바늘로 꿰매고 부러진 다리도 접합 수술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자 환자는 잠시 중환자실에 있었다.
이윽고 환자가 깨어나게 되자 일반병실이 아닌 제일 위층의 특실로 옮겨졌다.
특실로 옮겨진 것은 사고가 나고 10일이 지나서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처제를 잃었다. 그리고 태아도 죽어 버려 처참한 상황이다. 박천태 자신도 다리가 부러진 상태라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얼굴에나 몸은 미라처럼 온통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누어있었다.
그저 눈만 뜨고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박천태의 옆에 민천경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매형, 저 왔어요.”
그 말에 박천태는 겨우 입을 벌려 다소 힘들게 말했다.
“장례는 잘 치렀냐?”
“예, 매형이 시키신 그대로 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자 박천태는 아내에 대해 묻고 사망한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자기가 쉽게 거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자 장례를 치루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민천경이 상주 노릇하며 장례를 치렀다.
“위폐는 대산사로 보냈습니다.”
“그래, 잘했다. 거기로 보내야 향이라도 피워주지.”
같이 타고 가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로 인해 박천태는 몹시 괴로워했다. 죽은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처제에게도 미안했다. 더구나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이 세상에 태어날 예정이다 죽은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쉽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모진 것이 목숨이다.
자기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는 하늘에도 원망해보나 그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악몽으로 시달려 몸부림치자 의사는 계속 진정제와 수면제를 주사해 박천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로인해 박천태는 다소 몽롱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차츰 악몽도 사라지고 조금 차분해진 상태가 되었다.
사고 후 20일이 지나자 박천태는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어 약간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나 겨우 상체를 세우는 정도지 휠체어를 탈정도도 못되었다. 여전히 침대에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상태다.
“운전자가 자살했다고?”
“예, 매형, 경찰과 검찰에서는 아이가 죽었다고 하자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고 수사를 끝냈습니다.”
“그럴 수 있겠군.”
민천경의 말에 순순히 대답은 하지만 박천태는 이미 교통사고가 우연히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사고 직전 뒤에서 계속 따라오던 덤프트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천태는 경찰이나 검찰이 찾아와도 그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유야 자신이 직접 범인은 잡아 복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죽었다는 범인은 그저 단순한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분명 나를 노린 놈이 있어.’
아직은 조사를 못하고 있으니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찾아낼 생각이다.
이때 30대 중반인 의사와 젊은 간호사가 찾아와 칭칭 감겼던 얼굴의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고 있었다. 의식이 없거나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을 때 붕대를 교체하고 이제 정신이 있을 때 처음 푸는 것이다.
“박 회장님, 너무 놀라지 마시오.”
“알았어요.”
붕대를 모두 풀고서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거울을 들고 비추어줬다.
“헉! 이게 뭐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박천태는 외마디를 지르며 매우 놀라고 있었다.
다른 곳에 난 얼굴의 상처는 모두 아물어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의 눈가에서부터 길게 아래로 칼자국처럼 생긴 상처는 너무 깊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천태가 놀라는 이유는 상처의 모습이 전생에 있었던 것과 똑 같았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자기가 다시 새로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처가 얼굴에 똑 같이 생기자 거의 혼절하기 직전에 이르도록 놀라고 말았다.
너무 놀라는 모습에 의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 회장님, 요즈음은 성형수술도 발달해서 이런 상처는 지울 수 있으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나중에 수술하죠.”
대답이야 이렇게 하지만 박천태는 이런 얼굴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가고 나자 박천태는 민천경에게 물었다.
“나 언제 퇴원 가능하다고 하던?”
“다리의 기브스만 풀면 퇴원은 가능하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고?”
“한 달은 더 있어야 된답니다.”
그러자 차분하게 응수하던 박천태가 화를 버럭 내며 외쳤다.
“처남! 누가 의사가 하는 말을 몰라서 묻는 거야? 내가 휠체어 타고 나갈 수 있는 날을 물어보는 거지.”
박천태가 화를 내자 민천경이 화들짝 놀라 뒤로 급하게 물러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매형, 일주일 후면 나갈 수 있습니다.”
민청경이 놀라는 이유는 화를 내자 상처로 인해 하얀색으로 보이던 부분이 붉어지며 박천태의 얼굴이 마치 야차와 같이 무섭게 보였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사람의 목을 치게 생긴 무서운 살기가 저절로 풍기고 있었다.
“처남, 내 얼굴이 그렇게 험해 보이나?”
“예, 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사실 치료하면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은데요.”
지금은 10센티미터 상처지만 차츰 회복되면 대략 5센티미터가 보일 정도로 변한다는 의사가 말했다.
그러나 칼자국 같은 상처로 인한 무서움은 상당했다.
별로 화를 내지 않아도 옆에서 돌보는 민천경은 얼굴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매형이 많이 변했어.’
이렇게 보는 현상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박천태가 빨리 퇴원한다고 담당의사에게 말하거나 치료를 온 간호사에게 화라도 내면 다들 민천경과 같이 놀라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더욱 크게 놀라고 있었다. 어떤 신참간호사는 박천태의 화난 얼굴을 보자 그대로 주저앉아 덜덜 떨며 울기까지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박천태는 담당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퇴원하기로 했다. 더 이상 병실에서 마냥 천장만 바라보기에는 너무 답답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를 생각하기 때문에 범인의 배후를 찾기 위해서는 퇴원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퇴원하기 위해 옷도 일반 옷으로 갈아입었다. 휠체어를 타고 병실을 나와 현관으로 나왔다. 마침 이은혜가 처음으로 병문안을 왔다가 매우 놀랐다.
“어마, 똑 같네.”
“내 팔자가 이런 모양이죠.”
“그런가?”
두 사람은 남들이 들어도 이해가 어려운 말을 주고받았다.
“저와 이야기 좀 하죠.”
“그러지, 나도 해줄 이야기가 있어.”
둘이 이야기를 한다는 소리에 민천경은 휠체어를 정원 구석으로 끌고 가 세워 놓고 멀리 물러났다.
“검사님, 무슨 이야기죠?”
“자살한 덤프트럭 운전기사 너무 이상해. 까도 껍질인 양파 같은 사람이야.”
“그래요? 그걸 어떻게 알았죠?”
“내가 네 사고 소식을 듣고 아무래도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싶어 조사했어. 대덕 중기로 가서 몰래 알아보니 덤프트럭 기사는 차량운행을 거의하지는 않고 계속 납입금은 넣었더라고.”
“예? 그걸 어떻게?”
“보통 중기회사는 주행기록 때문에 미터기를 가끔 기록해놓거든. 그것을 조사해 보니 회사에 납입금은 운행도 안하고 집어넣은 것이 틀림없었어. 알아보니 사고를 낸 덤프트럭기사는 국도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더라고”
“그럼, 누군가 제가 그린파크에서 대전으로 가는 것을 연락해준 놈이 있겠네요.”
“그렇지, 아마 주유소 근처에서 늘 주시하고 있었을 거야.”
“그렇군요.”
박천태는 이은혜의 이런 말에 자기 짐작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해주고 나서 이은혜는 더 이상은 자신이 개입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나는 검사할 생각이라 이런 일에 끼기 조금 곤란해, 대부분 조사 자체가 불법이라.”
“알았어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