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왕실의 동궁 내탕금이 갑자기 늘어나자 우네비의 위치는 한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아리아 공주의 위치는 초라해지고 있었다. 외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남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보도되자 그게 이슈가 되었다.
약혼자가 있는 여자로 아무리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더라도 모하르 샤 왕세자 배우자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자하르 샤 국왕은 사정의 칼날이 자기 세 가족에까지 미치자 부득이하게 사면령을 내려 예봉을 피했다.
그래도 불안한 국왕이 왕비와 조용하게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왕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폐하, 그러니 왜 별장과 요트를 사시고 그래요. 이러다 아리아 공주와 파혼하게 생겼어요.”
“그러니 내가 걱정하는 것 아니요.”
“제 생각에는 모하르 샤 왕세자가 그것을 원하지 않아도 의회에서 계속 배우자로 적당하지 않다고 성토 중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미안하게 됐소. 나를 무시하던 이웃들 생각이 나서.”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누구 덕분에 이런 호강 누리고 사는 줄 벌써 잊었어요.”
허수아비에 불과한 자하르 샤 국왕은 참으로 쥐구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귀족 작위 주며 허세를 부리다 결국 개망신만 당했다. 그런 일 이후로 국왕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자기의 건강까지 악화되고 있으니 자신의 사후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왕세자가 지금은 사만다 장관과도 접하지 않고 유일하게 접하는 여자는 우네비인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왕비는 고심하더니 묘안을 내 놓았다.
“여기 왕궁은 본시 한국의 옛 왕조인 조선이란 나라의 제도를 많이 따릅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우네비를 그저 승은상궁이 아닌 후비로 칭하면 어떨까 합니다.”
“어떤 직책을 말하는 거요?”
“정 3품인 소용이 어떨까 합니다. 근본적으로 출산을 못하니 정비는 될 수 없으니 일단 그런 정도가 적당합니다. 그래서 우네비를 통해 아리아 공주를 보살피게 배려해달라고 손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합시다. 지금은 그게 최선 같으니.”
졸지에 국왕으로 이제 20살도 안된 일개 시비에게 유일한 후계자인 공주의 장래를 위해 아부 떨어야 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제가 왕세자에게 받은 예물을 우네비에게 줘야겠어요.”
“알았소.”
부탁하는 처지로 빈손은 어려우니 뇌물까지 줘야 되니 참담한 처지다.
외부로는 발표하지 않고 후비에 해당하는 소용이란 작위를 내리게 되었다. 아울러 재정을 담당하는 부제조상궁을 겸직하게 조치했다. 그러나 우네비는 김수훈의 경고 때문에 욕심이야 나지만 패물들은 그대로 본궁의 왕비 처소로 돌려보냈다.
한발만 잘못 밟으면 천길 나락이니 몸조심이 최고라 그렇다.
‘내가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그런 일이 벌어진 이후. 왕궁 안에서는 우네비를 우궁비(右宮妃)마마나 우비(右妃)마마라고 칭하고 있었다. 정문에서 보면 우측에 있는 동궁의 제일 높은 여자라는 뜻이다.
일단 기금이 너무 많아지자 우네비는 이것을 김수훈과 상의하여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궁의 안방에서 같이 누워 잠을 자며 우네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너무 많은 자금인데 어디다 투자하죠?”
“우선 전에 준 40만불은 네가 시작한 델타인력회사의 카불과 콘두스 지부 설립에 모두 투자해라.”
“알았어요. 모두 투자하죠.”
델타인력회사는 스미스가 운영하는 회사다. 해외로 인력을 송출하고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그래서 수도인 카불과 북부의 콘두스 시에 우네비는 지부를 설립했다.
드디어 신룡교에서 협조하자는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간호사를 불러 채용했다. 그로인해 해외로 나가는 수가 더욱 많아져 이제는 40만명에 이르렀다. 일본, 미국, 대만, 홍콩, 호주등지까지 아프가니스탄 출신들의 간호사나 노동자들이 진출했다.
우네비는 새로 들어온 많은 자금의 투자가 걱정이다. 너무 많은 자금이라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전하, 새로 들어온 자금은 어디로 투자하죠?”
“네가 하고 싶다는 전자와 통신회사 설립자금으로 1천만불씩 투자해.”
“네!”
“남은 돈은 내가 따로 투자하니 너는 신경 쓰지 마라.”
“예, 전자 통신회사는 델타 텔레비전의 엘렌 회장과 상의하면 되겠죠.”
“그렇게 해라.”
김수훈은 남은 2천만불은 미국으로 보내 주식에 투자해볼 생각이다. 이제 국내에서 자신이 직접 챙길만한 일은 어느 정도 챙겼다.
‘이제 해외로 나가 봐야 해.’
앞으로 국내에서만 지내며 활동할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나가 외화도 벌고 구경도 다니며 천천히 돌아볼 생각이다. 막상 떠나려고 생각하니 풀이 죽어 지낸다는 사만다가 조금 걱정이다.
‘코가 열자는 빠졌을 거야.’
내치기는 아까운 여자다. 몸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녀의 능력이 아까워서 버릴 생각까지는 없었다.
자신이 국외로 나가면 믿고 국정을 챙길 사람이 필요하다. 수상이 있지만 추진력에서는 전쟁터를 오가며 뛰어난 능력을 보인 사만다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나서려는 그에게 유홍백 경제수석비서관이 찾아와 보고했다.
“전하, 건설교통부 장관이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잠잠하나 했더니 또 각료가 구속되니 시끄럽게 생겼다.
“뭐? 그 사람은 이번 귀족 사건에서 빠진 사람 아닌가?”
“예, 다른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지내다 들어온 사람으로 별 말썽 없이 직책을 잘 수행했었다. 그런 그가 검찰에 끌려갔다니 너무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도대체 무슨 비리로?”
“정보부의 고발로 검찰에 넘겨진 반역 사건입니다. 외국 건설회사에 각종 공사의 입찰 금액을 사전에 누출했습니다.”
“뭐요? 외국 회사에 비밀을 누설해요?”
“예, 외국에 있는 애인이 이상하게 호화로운 생활을 해서 정보부에서 비밀리에 조사해 알아낸 국가기밀 누설한 반역 사건입니다.”
유홍백의 설명에 의하면 하렌스 장관은 일반 건설 공사에 대한 정보도 누설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추진하는 자주 국방 계획을 프랑스 정보부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델타에 특수 철강회사를 세웠다. 근처에 AK-47 자동소총 생산 공장, RPG-7로켓포 생산 공장 등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런 비밀스런 국방계획의 일부인 공장 설계도를 프랑스 정보부에 넘겼다는 혐의다.
“반역죄군.”
“그렇습니다. 애인이 프랑스 정보부 요원임이 밝혀졌습니다.”
각국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많은 정보요원을 보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새롭게 탄생한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형태는 주변국들이나 많은 나라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러다 보니 고위관료들이 돈의 유혹에 외국정보부나 외국대사관 직원들에게 매수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대부분 짐작하고 있는 김수훈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그 사람 말고도 그런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겠군.”
“그렇습니다. 미국이나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 그런 식으로 정보를 빼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사관의 무관과 여직원들이 연루되어 아주 복잡합니다. 이미 간첩죄로 채포된 다른 프랑스 여자들도 있고요.”
“뭐요? 그런 일도 있어요?”
“예, 델타에서 벌어진 간첩사건입니다.”
무슨 악연이 있는지 프랑스와 계속 사이가 좋지 않은 사건들이 터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뭐라고 하던가요?”
“프랑스 대사관에서는 일단 부인하지만 정보부에서 사진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자 다른 협상 카드를 들고 나와 비밀로 하자고 했습니다.”
“무슨 협상?”
“경제 지원으로 30억불의 차관을 제공한다고 이번 사건은 모두 눈감아 달라고 합니다. 아울러 프랑스 여자들을 풀어 달라는 조건입니다.”
“돈으로 덮으려고 하는군.”
“그렇습니다.”
프랑스에서 이런 협상 카드를 내민 이유는 대사관 직원들이 연루된 사건 때문이 아니다. 델타지역을 여행한다며 무기 공장 시설을 사진 촬영하던 8명의 프랑스 여자 여행객 때문이다.
별로 이해관계 없는 프랑스 정부가 왜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김수훈은 여러 명의 프랑스 여자가 간첩혐의로 채포되었다고 하니 관심이 가서 물었다.
“젊은 여자들인가?”
“예, 다들 대학교와 대학원생들입니다. 말씀대로 젊고 예쁜 여자들입니다. 모두 8명입니다. 일부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나 아마 프랑스 정보부에서 임시로 돈을 주고 유혹해 사진 촬영한 모양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관광객이 보안 시설을 단순히 사진 촬영하다 잡힌 사건일 수 있었다. 그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응수했다.
“그런 정도면 우리가 편리한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인 단순한 사건이군.”
“전하,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전하 말씀처럼 단순한 해프닝으로 해결도 가능하고 스파이 혐의로 사형이나 중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의외로 아주 복잡합니다.”
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외국에서 지내다 온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속속 간첩죄나 반역혐의로 검찰에 불려가는 제2의 사정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바람 잘 날이 없군요.”
“나라가 아무래도 어수선하니 그렇지요.”
김수훈은 프랑스 여자들이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 물었다.
“프랑스 여학생들은 어떻게 됐나요?”
“전하, 그 여학생들에게 적용된 보안법의 간첩죄는 군법인 1심입니다. 육군에서 잡았으니까요. 델타에서 채포된 여자들은 이미 델타 군사법정에서 중형인 종신노예로 확정됐습니다.”
종신 노예형이 있다는 말에 김수훈은 놀라 반문했다.
“뭐요? 종신 노예형요? 아직도 그런 이상한 형법이 남았나요?”
“예, 구 왕국의 형법과 73년 이후 형법도 폐기하고 1920년대 형법을 기초로 하다 보니 그런 형법이 일부 남아 있었습니다. 고발부처인 정보부에서 그 형법을 적용해 달라고 군검찰에 요구해 군검찰이 그 형법을 적용했습니다. 델타 군사법정에서는 때는 이때다 하고 종신 노예형으로 선고해버렸습니다.”
“때는 이때라뇨?”
“그 여자들은 전에 한국의 개고기 먹는 문화를 야만인이라고 하며 전하를 모독하던 여자가 운영하는 동물보호협회의 간부들입니다. 그러니 한국출신 군검찰관이 볼 것 없이 중형을 구형하고 델타 군사령관인 북한 출신 재판관도 그대로 중형을 선고해 버린 거죠.”
기도 안차게 일만 커지게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보복성 재판도 있어요?”
“간첩죄의 형법에는 사형과 노예형 이외에 다른 형은 거의 없습니다. 굳이 낮은 형이 있다면 물볼기 치는 태형이나 채찍 형입니다. 그 형은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때리면 반도 맞지 못하고 죽습니다.”
아랍국 일부에는 아직도 노예제도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보편적으로 모든 나라들이 노예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이런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남자야 노예 형이나 감옥에서 노역하나 그게 그거인 형벌이다. 여자의 경우 평생 노예 형벌은 완전히 다르다. 속칭 성노예가 되어 평생 지하 감옥과 같은 어두운 토굴에서 벌거벗고 지낸다. 항상 다리 쩍 벌리고 수많은 남자들의 요구를 응해야 하는 비참한 신세다.
이런 설명을 자세하게 하는 유홍백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보고했다.
“전하, 현재 그런 지하시설이 있는 장소가 없습니다. 집행을 고심하던 델타 군사법정에서는 형법을 어길 수 없다고 해서 우선 델타 궁전의 지하 감옥에 가두어 생활하게 했습니다.”
“뭐요? 거기에 지하 감옥이 있나요?”
“예, 지하의 식량 비축창고를 지하 감옥으로 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본시 성노예란 햇빛이 없는 곳에 가두어야하는 형벌이라요.”
여학생들을 지하 감옥에 벌거벗겨 가두었다니 이제 국제적으로 크게 문제가 터져 버렸다.
“프랑스 정부에서 난리가 났겠군요.”
“그렇습니다. 공교롭게 프랑스 국회의원 딸들도 같이 있으니 더욱 그렇지요.”
평범한 여학생도 아니고 영향력이 있는 국회의원 딸들이 그 지경으로 처했으니 프랑스에서는 난리가 날것은 자명했다.
“뭐요? 몇 명이나요?”
“세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재력가의 딸들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그야 말로 홀라당 뒤집힌 실정입니다. 프랑스주재대사는 지금 스위스로 가있습니다. 파리의 대사관 앞에서 시위들이 심해서 피신한 거죠.”
유 보좌관의 말에 김수훈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반대시위가 심하다고 대사가 외국으로 도망가요?”
유 보좌관은 아차 싶어 급하게 변명했다.
“전하,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잠시 스위스로 외자 유치하자는 차원으로 갔습니다. 스위스에는 대사관이 없어서 겸직하기 때문에요.”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된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자기의 연고지인 델타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아무도 이런 내용을 보고한 사람이 없으니 너무 이상했다.
“이상하군. 하마스 부장이 왜 나에게 사전에 보고를 안했지?”
“전하, 표면적으로는 정보부가 잡아 넘긴 사건이라고 발표가 이제야 언론으로 나갔지만 사실은 군사종교수석보좌관인 하산이 주도한 사건입니다.”
하산은 전에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의 특별부대장으로 숨겨진 인물이다. 여전히 신분은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있으나 NSC의 군사종교수석 보좌관이란 정식 직책을 가지고 있다.
김수훈의 유일한 제자이자 분신인 그는 군사분야와 종교분야를 관장하는 델타궁전의 관리인이다. 종교단체의 감찰업무를 수행하니 그는 막강한 막후 실세다.
그가 하는 일은 정보부에서나 NSC 내부에서도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NSC 위원도 아닌 유홍백으로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래도 내가 델타로 가서 하산을 만나 알아 봐야겠군.”
“아마 그것이 제일 빠를 겁니다.”
근거지인 델타 지역을 떠난 지도 너무 오래 되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나서야 해결될 국제적인 사건 같았다.
그 일은 나중에 델타로 가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수훈은 유홍백에게 처음 이야기를 하던 건설교통부 장관의 후임에 대해 말했다.
“수상은 건설부 장관 후임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전하의 뜻에 무조건 따르겠답니다. 믿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처지로 겁나서 사람 추천 못하겠다고요.”
“그렇겠군.”
하파르 수상과 건설교통부 장관이던 하렌스는 친척이자 친구 사이였다. 그러니 수상으로는 정치적으로 타격도 받게 됐지만 배신감으로 인해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유 보좌관, 하파르 수상과 하마스 부장 그리고 사만다 장관에게 지금 연락해요. 오늘 밤 사만다 장관 집에서 만나자고요. 실루엔 후작도 오라고 하고요.”
“넷!”
주변이 매일 낮이나 밤이나 각종 공사로 너무 시끄럽다. 방음된 상태라지만 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궁 안의 전체가 동시에 공사해 중장비 소리로 너무 요란했다.
밖으로 나온 김수훈은 사백호에게 지시했다.
“델타로 갈거니 떠날 준비해라, 그리고 오늘 사만다 집으로 가니 그렇게 알고. 호위준비하고.”
“넷!”
“아직 움직이기는 이르니 전에 잡아먹다 남은 개고기는 모두 수목원에 가서 먹고 떠나자.”
“넷!”
외부에서는 김수훈이 화가 나서 개를 화풀이로 잡았다고 소문이 났지만 진실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