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캡틴!”
먼저 헬기에 올랐던 진상우가 급하게 달려왔다.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진 김수훈은 박격포탄에 많은 파편이 박힌 모습이다. 흐릿해지는 의식으로 김수훈은 겨우 입을 열고 물었다.
“다 탔나?”
“넷, 캡틴. 우리만 타면 됩니다.”
“으윽!”
김수훈은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나 힘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양쪽 다리에 커다란 파편이 깊숙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대로 계세요. 제가 엎고 가죠.”
진상우는 급하게 김수훈을 어깨에 들러 메고 달렸다. 붉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나 응급 처치할 여유가 없었다.
쾅! 쾅!
진상우가 달려가는 주변에는 수많은 포탄들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헬기에 먼저 오른 대원들은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게 달려온 진상우는 무사히 UH-1수송헬기에 올라탔다. 부상당한 김수훈까지 무사히 올라타게 되자 UH-1 수송헬기는 빠르게 이륙해 서쪽으로 향해 날았다.
두두두두.
이륙을 마치자 진상우가 급하게 조종사에게 지시했다.
“폭격하라고 연락해.”
조종사가 급히 무전으로 연락했다.
“타이거, 안착, 폭격바람.”
헬기에 오르고 나자 대원들이 다들 나서서 급하게 지혈하고 응급처치하고 있었다. 김수훈은 이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칫하며 목숨이 위태로울 수가 있다고 판단한 조종사는 최대한 속력을 올려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이들이 멀리 떠나고 나자 게릴라들은 그제야 바위산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까맣게 보일 정도로 멀리 달아난 수송헬기를 향해 속절없이 총질을 가하는 녀석도 있었다.
두두두두.
그들이 바라보는 푸른 하늘에는 4대의 코브라 공격헬기가 날아왔다.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코브라 헬기는 마을 전체를 향해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슝! 콰르릉! 드르르륵!
마을 주변에 넓게 퍼져 있는 마약 재배지에 대해 무차별로 폭탄을 퍼부어 파괴하고 있었다.
쾅! 쾅! 드르륵. 드르륵.
소이탄과 기총사격으로 인해 작은 마을은 이내 초토화되고 있었다. 소이탄이 떨어지자 초옥들은 너무 쉽게 커다란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일순 작은 마을 전체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으악! 악!”
수많은 민간인들이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마을을 거점으로 활동 중이던 마약조직인 게릴라들도 같이 죽고 있었다.
악에 받쳐 코브라 헬기에 AK-47 소총으로 사격을 해보지만 빠르게 이동하며 공격하는 헬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4대의 코브라 공격헬기들이 사라지고난 마을은 완전히 재만 남아있고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그저 재빨리 멀리 달아났다 개들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개들은 타다 남은 시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태평양 쪽에 떠있던 헬기상륙함으로 도착한 흑표 대원들은 빠르게 수송기로 올라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이곳은 다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두두두
여러 대의 헬기 소리가 나자 그나마 마을에 있던 개들도 빠르게 숲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제1진 도착!”
개들까지 모조리 사라진 검은 재만 남아버린 마을에 UH-1 수송 헬기를 타고 해병대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선발대의 해병대원들이 거점을 확보하자 수많은 수송헬기가 연이어 날아오고 있었다. 이어서 인근에 있는 비행장을 공격해 점령했다.
“거점 확보. 수송기 보내라.”
이곳을 기점으로 미군들은 그라나다를 대대적으로 침공하고 있었다. 원역사와는 다른 전개 방식으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대규모로 군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끝없는 소모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두고두고 말도 많고 민간인 학살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전쟁이다. 미국이 중남미에서 벌인 많은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다.
해군병원으로 와서 급하게 수술을 받은 김수훈은 퇴원했다. 피가 많이 흐르기는 했으나 부상은 의외로 아주 깊지는 않았다. 방탄복을 입어 다리 이외에는 파편이 박히지 않았다.
1차 2차 수술이 끝나고 나자 재활 치료만 받고 회복하면 되는 정도로 변했다. 그런 정도 치료가 끝나게 되자 김수훈은 SD 사무실 옆의 숙소로 왔다.
“캡틴, 여기서 치료해도 괜찮겠습니까?”
“차라리 여기가 편하다. 병원은 더 거북해.”
“알겠습니다.”
완치해서 퇴원한 것은 아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그라나다 침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많은 병력을 투입해 전쟁하고 있었다. 전쟁이 계속되자 많은 부상자들이 해군병원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대부분 밀림에 숨어서 대적하는 적을 쉽게 공략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고 있었다.
부상자나 사망자가 너무 많아지자 각종 언론사에서 파견된 기자들이 해군병원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김수훈은 자신이 참전한 비밀작전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퇴원한 것이다.
그가 떠난 해군병원은 그의 치료기록을 단하나 남기지 않고 수거해 폐기해 버렸다.
인질구출작전을 성공했지만 김수훈의 예측대로 미국 정부나 군에서는 50만 달러 이외에 성공 보상금으로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여전히 침대에 누워 지내는 김수훈은 그런 보상금 문제로 슬레드 준장을 만나러 갔던 진상우에게 물었다.
“슬레드가 뭐라던?”
“그 더러운 자식이 우리가 마약 빼돌렸다고 하더라니 까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자신들이 항상 해먹던 짓거리니 우리도 그렇게 할 줄 알았나 보네.”
“치사해서 더 찾아가기 싫습니다.”
진상우의 말에 김수훈이 고개를 저으며 지시했다.
“앞으로 몇 번 더 찾아가 돈도 더 달라고 말해. 내 치료비도 추가로 달라고 사정해라. 얼마든지 받아도 되는 돈이니 슬레드가 푼돈이라도 챙겨주면 받아오고.”
“알겠습니다.”
이미 많은 달러를 몰래 챙겨서 가져왔다. 그러나 그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돈을 달라고 독촉하라는 것이다.
인질구출 작전 의뢰비로 받은 50만 달러와 챙겨온 70만 달러 중. 50만 달러를 김수훈의 명의로 SD 경호회사로 투자했다. 그대로 돈을 넘겨주면 미국의 의심을 사니 일단 명의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흑표대원들은 김수훈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게 된 처지다. 김수훈의 지분이 많은 회사라고 해야 제니퍼의 도움을 계속 받을 수 있다.
“캡틴, 지분은 그대로 놔두시죠. 저희들이 완전히 자리 잡으면 그때 파시죠.”
“꼭 그래야 하나?”
“그래야. 신룡교 도움도 받고 제니퍼 양의 도움도 받아 자리를 잡게 됩니다.”
제니퍼는 평소 친분이 있는 영화배우의 경호나 저택 경비 용역 받도록 주선해 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50퍼센트 지분은 그대로 소유하라고 권했다. 신룡교인들이 많은 도시니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면 주식을 김수훈이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알았어, 나머지 20만 달러는 나누어서 개인이 사용해.”
“넷!”
100만 달러를 가지고 현재 살고 있는 건물을 매입하고 장비도 더 사기로 결정했다. 현금은 모두 넘겨주고 탈취해온 보석들만 김수훈이 차지하게 되었다.
보석이라고 해야 사실 엄청나게 많은 금액은 아니었다. 모두 현시가로 팔아도 3십만 달러 정도 가치가 나간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이런 결정을 하고 나자 진상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캡틴, 오백화 회장님이 전화가 왔었습니다.”
“왜? 무슨 일 때문에?”
“자꾸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캡틴이 자주 꿈에 보이고 너무 불안하다고요.”
아무래도 오백화는 전보다 신기가 더욱 강해지더니 자기 행보에 대해 뭔가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냐?”
“아뇨. 아무 일 없고 사냥하러 가서 여기에 없다고 했어요.”
“잘했어, 나 다친 것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특히 제니퍼에게 말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제니퍼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으로 영화촬영 하러 가서 지금 여기 없습니다.”
“알았어.”
제니퍼가 LA에 그대로 있었으면 아마 다친 상처를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녀가 아프리카로 영화를 촬영하러 갔다니 천만 다행이다.
“무슨 영화인데?”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는 자동차 경주하는 모험 영화인 모양입니다.”
“촬영이 오래 걸리겠지?”
“예, 아마 몇 개월은 그곳에서 지낸다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의 관심이 많아도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김수훈은 조용히 이곳에서 치료할 생각이다. 그러나 계속 이곳에서 지내다보면 제니퍼가 돌아오면 금방 들통이 나게 생겨 진상우에게 지시했다.
“나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가야겠다. 조용한 곳에서 지낼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알겠습니다.”
며칠 후 김수훈은 진상우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라 LA에서 급하게 떠났다.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떠나버려 소리 없이 잠적해 버렸다.
그가 잠적한 이후 한국에서는 김수훈으로 인해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외무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제출한 외교관에 대한 등록 서류를 보고 놀랐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우리 세 나라는 이미 합의가 끝났습니다. 그러니 한국 정부도 인정해 주면 됩니다.”
한국에 1962년 2월 9일 생인 김수훈에 대해 두 나라에서 자국의 외교관으로 통보해 확인해 보니 미국시민권도 가졌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무려 4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국 법에는 다중 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니 간단히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일반이라면 그대로 법에 따라 처리해버리겠지만 당사자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처리하기는 곤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왕자로 자료에 나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왕자이자 왕세자로 나오니 쉽게 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골치가 아프네. 차라리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양자로 가던지 하지. 이게 무슨 난리야 사람 머리 아프게.”
담당 국장도 머리가 아프지만 보고를 받은 장관이나 차관도 머리가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은근히 열 받은 외무장관이 국장에게 크게 소리쳤다.
“군대는 어떻게 됐나? 군대 미필이면 한국 국적 말소해 버려.”
“장관님, 병무청 자료에 의하면 카츄사로 미군 부대서 근무했습니다.”
“뭐라? 군복무를 그렇게 마쳤단 말이지?”
“예, 더구나 일반 카츄사도 아니고 특별히 장교로 복무를 끝냈습니다. 미국으로 조회해보니 대령으로 전역한 것으로 나옵니다. 사실 군 복무는 면제되는 4대 독자입니다. 그러니 군 복무를 가지고 어떤 조치를 할 사안은 아닙니다.”
그 소리에 외무장관은 기도 안차서 외쳤다.
“아니, 군대는 그렇다고 해도. 미국 사람들이 우리를 상대로 장난하나. 무슨 24살짜리 대령이 있어?”
“아무튼 그게 사실이라니 저도 황당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처리는 너무 무리를 했습니다. 정식 군대가 아닌 급조된 외인부대라고 해도 너무 황당합니다. 장관님, 어떻게 처리하죠?”
“어떻게 하긴. 계급이야 우리가 따질 문제가 아니니 그렇다고 해도 다국적으로 생긴 문제니 각하께 보고해 처리하는 방향으로 해야지.”
문제가 된 김수훈은 다른 나라에서 가진 신분이 만만치 않았다. 너무 쉽게 생각해 처리하다가는 외교적인 중요한 문제가 대두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래서 외무부 장관은 결국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고심하던 대통령은 이 문제로 인해 부랴부랴 특별법을 만들게 되었다.
군복무를 마친 사람에 한해서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중앙지역으로 가서 사업을 시작한 박천태는 중앙군정청이 발주한 예성강 개발 사업에서 하상 골재 체취허가를 받아 모래를 파고 있었다.
밤이 깊은 시간. 주변이 온통 강물로 둘러싸인 예성강에 있는 바지선에서 때 아닌 물고문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장님,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이 자식이 몇 번 혼이 나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수작 부리다니.”
물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대산건설의 사장이며 대산 골재 사장인 백구만이다. 대산골재는 하상골재 채취허가 업체로 예성강의 모래를 파고 있었다.
물고문을 지시하는 사람은 박천태 회장이다. 모래는 모두 군정청 소유로 파내는 작업비만 차지하는 공사다. 그런데 백구만 사장이 몰래 모래를 밀반출하다가 걸려 군정청의 검찰관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물속에 밧줄을 매서 강물 속으로 들락날락 하는 물고문을 당하고 나자 녹초 된 백구만이 울면서 애원했다.
“회장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정말이지?”
“예, 그 동안 먹은 것 다 기어 내놓겠습니다.”
“어떻게 내 놓을 거야?”
“방법은 회장님이 알려 줘야죠. 머리 모자라는 제가 어찌 압니까?”
“처먹은 놈이 알아서 토하는 거지. 일주일 내로 토해라.”
“예.”
백구만은 죽다 살아나 불곰과 사라지는 박천태를 보며 한 숨을 쉬고 있었다.
“아니, 회장님은 내가 모래 뒤로 빼먹는 것 다 알면서 그동안 모른 척 눈 감더니 많이 먹어 놓으니 토해 놓으라면 뭐하자는 건지 정말 미치겠네.”
더구나 먹은 돈을 현찰로 내놓은 방법이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 토해 놓으라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입회인으로 왔다가 측은한 모습으로 동정을 보이는 황윤경을 잡고 물었다.
“황 회장, 방법이 없나?”
“있기는 한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 권하기 그런 방법이네.”
“방법이 있어?”
“있지. 회장님이 아직도 총각이니 백 사장이 나서서 결혼을 주선하거나 하다못해 애인이라도 주선하게 되면 아마 해결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아니? 유명한 배우도 싫고 잘난 변호사도 모조리 싫다는 분에게 어떻게 결혼을 주선해? 공연히 무슨 날벼락 맞으려고 애인을 소개해? 그건 더 어렵겠네.”
“하기 어려우면 마는 거지.”
부산으로 보낸 불곰이 그 지역을 다섯 명의 심복 부하를 이용해 장악했다. 박천태는 불곰을 다시 불러들여 북한 지역에서 데리고 있었다.
황윤경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회장님은 특이한 분이니 중앙출신 여자를 잘 골라 바치면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른다고.”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 계속 중앙지역에서 지내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있을 거야.”
두 사람은 이미 상당한 재력을 보유한 기업가로 변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오래전의 작은 조직에 속한 소두목이 쓰는 정도에 불과했다.
백구만은 황윤경의 조언을 받아 들여 수복지역인 중앙에서 사는 여자들을 수소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