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 흑과 백 그리고 회색 12권 >
대답을 안 하고 침묵하자 일순 냉기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파드국왕은 손으로 신호를 보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며 걱정했다.
“폐하, 그는 손으로 황소를 잡는·······.”
“어허! 무슨 소리하나? 어서 나가지 못하고. 그럴 생각이 있다면 여기서 왕자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황소를 한손으로 때려잡는 무력을 지닌 사내다. 무기가 없어도 독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여 걱정하는 것 같았다. 조금 황당하지만 최고지도자를 보필하는 사람으로야 충분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벌어지자 김수훈은 사우디로 와서 사업하는 처지로 어설프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알고 있는 그대로 답했다.
“폐하, 이름에 대한 의미는 어느 정도 압니다. 선지자인 모하메드와 하비브 국왕과 아만알라 국왕 자이르 샤 국왕의 정통성을 이어 간다는 이름이죠.”
김수훈의 대답에 파드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의미는 아주 잘 아는군. 하지만 자네의 이름 앞에 제일 먼저 있는 모하메드는 예언자라는 의미도 있으니 나는 자네를 미래를 보는 예언자로 판단해 그런 이름을 지었네.”
“예? 예언자요?”
“그렇다네. 전지전능하신 알라의 뜻을 전하시는 모하메드와는 다르지만 그런 예언 능력을 조금은 지닌 청년이라고 판단해 그렇게 지었데.”
전에는 하루미와 니시노가 이런 소리를 하더니 이번에는 파드국왕이 이렇게 말하니 참으로 난감했다. 그들의 말이 전혀 틀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변해진 상태라 자기가 알던 원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는 상태다.
하루미나 니시노는 혼령이 되어 자기를 따라다닌다. 파드국왕은 그녀들과는 달리 선견지명이 조금 있는 정도라고 믿는 것 같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분명 자신이 저술한 ‘쓰나미’ ‘제 3의 전쟁’ ‘분노하는 아랍인’이란 책에 들어 있는 내용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파드국왕은 몇 가지를 들어 왜 예언 능력이 있는지 말해주었다.
“자네는 내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네. 레이건 대통령 당선도 두 번이나 맞추고. 또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무너진다는 것도 예측했어. 물론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많고. 본시 예지 능력이란 순수한 몸 일 때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법이라 어려서는 그런 능력이 자네에게는 분명 있었다고 보네. 그 후에 일본으로 가서 지내며 그런 능력은 사라진 것 같고.”
파드국왕의 말에 급하게 변명했다.
“폐하, 그거야 그냥 정황상 그렇게 판단한 거죠. 그냥 우연히 맞춘 것으로 운이 좋았던 거죠.”
“물론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운도 여러 번 반복되면 그게 바로 능력이라고 하는 걸세.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랍권의 왕국에서는 자네를 오래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네. 특히 자네가 마지막에 쓴 ‘분노하는 아랍인’이란 책은 아랍인들에게는 큰 감명을 주었네.”
이스라엘이 너무 팔레스타인을 몰아세워 중동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근본적으로 아랍권의 행동을 동정하고 이스라엘이나 이를 돕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잘못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저서였다.
“그렇군요.”
“우린 어떤 미래에 대한 예언을 믿네. 세상에는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간혹 나오니까. 책의 내용 때문에 나도 조금은 도움을 받아 등극했다고 봐도 되네.”
“어떻게 그런?”
“자네가 제일 먼저 어려서 처음 저술한 책인 쓰나미에 분명 파드국왕이 쓰나미 피해 지역에 구호물자를 많이 보내준다는 내용 때문일세.”
책의 내용 중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단순한 이름 거론이 이런 파장을 불러왔다. 파드국왕은 다시 자기의 생각을 천천히 말했다.
“아마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자네를 중시했을 걸세. 그 후에 자네의 행보를 보니 예언자들이 가는 길과 같이 종교에 심취하더군.”
“제가 종교에요?”
“자네는 신룡교라는 종교의 상징 인물이 아닌가? 그러니 자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실질적으로 신룡교의 교주는 자네라고 나는 생각하네.”
전혀 들리지 않은 판단으로 더구나 두 여자가 죽은 이후로는 대부분의 권리는 모두 김수훈 손아귀에 들어온 상태였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파드국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하는 것이 좋은지 하지 말아야 좋은지 잘 판단이 안 된다는 표정이다. 한참이 지나서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 신용교를 담담하던 하루미 교주와 니시노 부교주가 죽은 동경호텔의 폭탄테러는 누가 저지른 사건으로 보나? 일본경찰은 범인을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저야 잘 모르죠. 수법으로 봐서는 중동의 아랍 테러조직의 행동 같아 보이지만 제가 단정하기는 곤란합니다.”
“내 짐작대로 자네 역시 우리 아랍인들이 저지른 범죄로 의심하는군. 아무튼 내가 장담하지만 그건 절대로 아랍인이 저지른 테러사건은 아닐세. 설사 그 범인이 아랍인이라고 해도 배후에는 아랍국가나 단체는 아닐 걸세. 그러니 자네는 그 사건으로 우리 아랍인을 너무 나쁘게 보지 말게.”
“네, 그래야죠. 함부로 남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조금 편하군.”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파드국왕은 박수를 쳐서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다들 들으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건설회사가 여기에서 공사하고 있는 것을 잘 아네. 자네 같은 인물이 이상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내가 자네에게 많은 공사를 하도록 해줄 생각이니 잘 해보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까 하다 중단한 이야기인데 내가 자네의 이름을 지어주며 돌아가신 할리드 국왕의 양자로 들였네. 그래서 자네는 사우디왕국의 왕자이기도 하네.”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아무튼 또 다시 새로운 국적이 생기고 있었다. 많은 부인들을 거느리는 왕족이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양자를 들이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되면 재산권 분쟁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사망한 사람의 양자로 들일 수 있는 것은 부족장이나 가능하다.
할리드 국왕의 양자로 들일 수 있다는 것은 파드국왕이 사우디왕족들의 부족장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왕족들의 회의를 통과해서 내린 조치였다.
이어서 옆에 있는 관료가 나서며 왕자의 권리나 의무에 대해 설명했다.
“왕자님의 권리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전 국왕 폐하의 유산에 대한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왕자로써 사우디의 외교관이란 신분으로 언제고 각국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을 이용하실 권리가 있고 그 외에 의무로는 꼭 회교도여야 한다는 조항이 없습니다.”
결국 그냥 이름뿐인 왕자라는 것이다. 국왕이 수십 명의 왕자를 두고 있으니 사실상 별 의미는 없지만 언제고 왕족으로 국왕이 마음만 먹으면 사우디 국정에 참여할 명분은 주어졌다.
공사를 많이 하도록 배려한다는 이야기는 재산을 하나도 안주게 됐으니 벌어서 먹고 살라는 이야기다.
관료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파드국왕은 다시 나서며 추가했다.
“자네를 내 아들로 들이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일세. 자네에게 사촌 오라비로의 권리를 주기 위한 것이니 그렇게 알게.”
아랍지역에서 오래 살아 파드국왕의 하는 말을 금방 이해했다. 사촌오라비의 권리란 파드국왕의 딸인 공주들 중 마음에 드는 공주를 지목해서 결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권리를 준다고 해도 김수훈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자 파드국왕이 다소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자네 사촌오라비의 권리에 대해 잘 모르나?”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별로 중요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돼서 그럽니다.”
“의미가 없다니 내 모든 딸들에 대해 자네가 선택권을 가지는 것인데. 그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예, 저는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표정으로 보아 공주들을 무시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파드국왕은 더 이상 그 문제로 논하지 않았다. 전에 양자로 들이며 왕족회의에서 황소를 맨손으로 잡는 무력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했다. 이제 다들 언론 보도를 통해 믿지만 하나의 요식 행위로 황소 한 마리를 잡아달라는 이야기했다.
사우디 왕궁의 후원에 있는 넓은 공터.
파드국왕의 요청으로 인해 김수훈은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모인 가운데 기존에 잡은 황소보다 작은 덩치의 소를 잡게 되었다. 아마도 파드국왕은 김수훈이 실수라도 할까 봐 나름 배려한 것 같았다. 황소를 잡는 장소는 커다란 천막이 쳐져있고 주변에는 엷은 천으로 칸막이가 있었다.
소곤소곤.
작지만 여자들이 많은 칸막이에서 숨을 죽이고 작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칸막이 안에는 많은 여자들이 숨어서 황소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도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인 평상복 차림으로 황소에게 다가갔다. 김수훈은 약간 숨을 고르고 나서 강하게 손날로 내리쳤다.
“탓!”
퍽! 쿵!
손날에 의한 강한 가격으로 인해 두개골이 함몰되며 황소는 그 자리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넘어졌다.
“어마! 악!”
칸막이 안에서 바라본 여자들이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참석해 구경하던 파드국왕이나 다른 왕족들도 직접 근거리에서 목격하자 다들 새삼 놀라고 있었다.
“그냥 머리가 갈라지다니.”
작은 화면인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더욱 위력적으로 가슴에 각인이 되고 있었다.
“허어! 저 왕자와 말다툼 벌이다가 주목으로 한 대만 맞던지 따귀라고 한 대 맞았다가는 그 자리서 사망하는 사태도 벌어지게 생겼네.”
“겁나는 사내군.”
권력이고 재력을 떠나 아주 단순하게 그냥 사내로 너무 강한 남자라는 느낌으로 공연히 위축되고 있었다. 무술이 뛰어난 경호원들도 주변에 많지만 그들과는 차원자체가 다르고 신분도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위암감이 사뭇 달랐다.
‘국왕께서 무서운 사람을 지근거리에 두고 있어.’
통지자인 파드국왕은 이런 정도는 이미 알았다. 너무 강한 무력이라 저절로 공포심을 줄 정도다. 그런 사람이 자기와 밀착된 것을 왕족들 앞에 보임으로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파드국왕 폐하께서 드디어 알라의 창을 수중에 넣었어.’
더욱 강한 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이고 아랍권의 맹주로 일종의 자신감을 보이는 과시행위다.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재집권에 대해 다른 왕족은 다들 이미 망한 왕국을 지원한다고 반대했었다. 하지만 파드국왕은 큰 재정 지원도 없이 복권을 성공하게 했으니 다들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절차를 거쳐 파드국왕은 국왕의 경호원들을 교육시킬 무술 교관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폐하, 그건 이미 한국에 용호권 협회장이 있으니 그쪽으로 연락하시면 보내주게 될 겁니다.”
“그런가?”
“예, 어차피 초청 비자도 발급 받아야 하니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굳이 저에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협회 사정상 여기로 보낼 사범이 없으면 해드릴 수 없고요. 저도 잘 챙겨보지 않아 협회 사정은 잘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파드국왕은 아랍왕자들이 입는 터번이 있는 전통 옷과 이제 모하르 델타 부족의 수장이라고 해서 족장이 입는 전통 옷도 같이 선물로 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협력도 자네는 개입하고 싶지 않겠군.”
“당연히 왕국의 내각관료와 협의하셔야죠. 제가 끼어야 공연한 오해만 생기죠.”
“알았네, 그것도 정상적인 절차 밟아서 하지. 하지만 누구와 협상하는 것이 제일 좋은지는 말해보게.”
“아무래도 원조 물자가 대부분일 것이니 그것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의 사만다 장관이 뭐가 필요한지 잘 아니 협상하시기가 편하실 겁니다.”
“자네가 그렇게 권하니 사만다 장관을 초청해 협상하겠네.”
파드국왕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접견은 끝냈다. 왕궁에서 나오려고 하자 관료가 다가와 말했다.
“왕자님, 가져가실 것이 있습니다.”
관료를 따라가자 사우디 왕자라는 신분증인 여권, 외교관인 무관신분증, 사우디왕실의 국왕 경호실의 경호관이라는 신분증을 주었다.
“이 신분증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있는 나라에서는 무기를 휴대할 수 있는 신분증이니 그렇게 아세요.”
“그렇군요.”
“그리고 각 대사관에는 왕자님께서 언제고 사용할 무기가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어서 두 명의 경호원들에게도 사우디왕실의 경호원이란 신분증을 넘겨주었다.
“지상에서는 항상 무기를 휴대가 가능하나 외국에서 항공기를 타려면 VIP 전용실을 이용해 검색하시고 기내의 보안 요원에게 무기는 맡기어야 됩니다. 물론 아랍권 항공사의 여객기 안에는 번거롭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알았소.”
결국 세 사람 모두 이제 합법적으로 신변보호를 위해 무기를 휴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안준다고 했지만 고급리무진 승용차 한 대를 주었다. 국내의 교통수단이나 호텔 숙박비등은 왕실에서 발급한 VIP카드로 결제되게 배려해 주었다.
두 경호원이 리무진의 앞에 타고 운전하고 김수훈은 뒷좌석에 올라 리야드를 떠났다. 고속도로 공사를 하는 중앙건설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아랍에미리트로 가는 하라드 시 근처로 고속도로를 확장하는 공사였다.
현장에 도착하자 박동희 상무가 급하게 다가와 인사했다.
“회장님, 어서 오세요.”
“고생 많습니다.”
박동희의 안내로 조립식으로 지어진 현장 사무소로 가자 의외로 이곳에 장덕수가 와 있었다.
“어! 외인부대서 근무를 안 하고 왜?”
“회장님, 저 외인부대 그만두고 여기서 경비대장으로 근무합니다.”
“그래요? 몰랐군요.”
“막상 미국에 가서 살려다 보니 너무 문화적으로 차이가 나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외인부대도 이제 목적이 달성해서인지 저 같은 동양인은 별로 중하게 생각을 안 하고요.”
아무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 백인들의 인종 차별 때문에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미국으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외인부대서 그만둔 상태입니다.”
적응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았다.
“전쟁터에 다니는 것 보다 설사 힘은 들더라도 보람도 있을 것이니 여기가 마음은 편하죠.”
“그렇습니다.”
김수훈이 현장을 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한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그런 것인지 주변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지 김수훈 옆에서 따라 다니던 혼령들이 벌이는 이상한 징후는 이제 사라졌다.
사우디 왕궁의 후원인 하렘에서는 여러 왕비들이 새로운 일로 약간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파드국왕은 여러 왕비들이 서로 자기가 난 딸을 김수훈에게 시집보내려고 경쟁하자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모하르 왕자가 마음에 들어야 결혼하는 성품인데. 그냥 결혼시켜 달라니 나는 못하오.”
“폐하! 제 소원입니다.”
“아니, 이제 10살도 되지 않은 애를 시집보낸다는 거요?”
김수훈의 강한 무력을 왕족들 앞에 보여 자기가 생각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왕비와 공주들이 이방인이라고 결혼을 거절할까 염려해 같이 구경하라고 했더니 탈이 나버렸다. 왕비들 자신이 홀라당 반해서 그런지 뭔지 조금 애매하지만 그 시범을 보고 난 이후. 틈만 나면 자신들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성화였다.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폐하! 나중에 언제요. 모하르 샤 왕자가 출국하면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다 다른 왕족들 딸과 먼저 결혼하면 어찌하시려고요.”
듣고 보니 왕비들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다. 김수훈을 사위 감으로 점찍은 파드국왕도 은근히 걱정되고 있었다.
‘잘 못하면 사위로 삼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생길지도 모르겠네.’
그날 참석한 다른 형제들도 김수훈에게 딸들을 시집보내려고 물밑에서 공작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딸을 시집보낸다고 결정하지 못하고 명분만 덜꺽 만들어 줬으니 조카딸들도 모조리 결혼 대상으로 포함되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되겠어.’
김수훈이 사우디를 떠나면 변수가 생긴다고 판단한 파드국왕은 조금은 다급하게 혼사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