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픽 쓰러진 김연희는 마치 간질병 환자처럼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한동안 떨고 있었다.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동굴 바닥에 쓰려져 바동거렸다. 이런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다들 기겁하고 놀랬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김연희의 몸에서 뭔가 떠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제 귀신이 나가는 모양이네.”
“그런가 보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느껴지고는 있었다.
이때 경대영이 들고 있는 북을 아주 요란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둥. 두두두두둥.
이마에 땀을 주르륵 흘리며 오백화는 매운 안타가운 표정을 지었다. 김연희 몸에 난 상처에 가지고 있던 약을 발라주며 혀를 찼다.
“너도 참 불쌍한 애다. 어쩌다 팔자에 없는 남자와 접해 이런 고생을 하냐.”
김수훈은 옆에서 지켜 보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도대체 누굽니까?”
“상제님, 하루미 교주 혼령이군요.”
“그래요?”
“다행히 굿을 벌여 저 여자 몸에서 떠나 멀리 달아났으니 하루미 혼령은 당분간은 주변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혼령의 기도 전보다 약해졌고요.”
“혼령도 변하나요?”
“예, 세상사 모든 만물에는 생명이나 존재에 대한 시한은 있어요. 하루미나 니시노는 제가 보기에는 완전한 빙의는 틀렸지요. 잡년인 여자 몸으로 완전히 기가 사라질 때까지 가끔 들락날락할 겁니다.”
“그럼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는 거요?”
계속해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자신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말에 김수훈은 놀랐다. 그러자 오백화가 다시 설명했다.
“상제님, 제가 귀신을 몰아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요. 다른 귀신은 할 수 있지만 상제님과 접해서 기가 강해진 혼령들은 제가 다스릴 수 없습니다. 물론 짐작만 하지만 분명 그럴 겁니다. 하루미나 니시노는 본래 지니고 있던 기도 워낙 강했던 여자들이니까요. 아마 오래 지나야 혼령은 영원히 사라질 겁니다.”
오백화의 설명을 듣자 김수훈은 니시노 귀신이 들렸다는 사만다가 은근히 걱정되어 물었다.
“여기서 기다리다 니시노도 몰아내야 되지 않나요?”
“상제님,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저는 별당아씨를 보호하러 가야 합니다. 하루미가 또 별당아씨를 찾아 갈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급하게 돌아가야죠.”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오백화는 다시 걱정했다.
“상제님, 혹시 며칠 이내로 큰 전투를 생각하세요?”
“예, 그건 왜요?”
“흑표대원들 24명 모두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들과 같이 전투를 벌이러 가시면 정말 큰일 납니다. 제 생각에는 그들이나 상제님은 이번에는 전투를 나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오백화가 간절하게 말하자 김수훈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백화의 말을 그대로 따르자니 그것도 조금 이상하고 몰살을 당할 죽음의 그림자가 보인다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나요?”
“예, 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저야 상제님의 상태는 워낙 기가 강하셔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주변 사람의 기만 보고 짐작할 뿐이죠. 주변 인물이 그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상제님도 위험하다는 겁니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이렇게 간곡하게 말하니 김수훈이 다시 물었다.
“다른 해결 방법은 없고요?”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제가 살펴본 바로는 크게 모습 뒤에 후광이 보이는 장덕수와 하마스라는 군인을 이번 작전에 내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그래요?”
오백화의 말에 흑표 대원들은 다들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작전을 나가면 하나도 남지 않고 몰살한다니 두려웠다. 오백화는 동굴 안을 돌아다니며 청룡도를 들고 휘휘 저으며 요란을 떨고 나서 한숨을 쉰다.
“왜? 또 문제가 있어요?”
“상제님 여기에 분명 무서운 살인귀에 쓰인 잡놈이 있습니다. 다행히 상제님을 해할 잡놈은 아니라 걱정은 아니지만 아무튼 조심하세요.”
“알았어요.”
분명 살인귀라고 말하는 것은 하산을 칭하는 것 같았다.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이렇게 알아맞히자 김수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나를 해하지는 않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너무 많은 살인을 저지르면 간접적인 피해를 상제님이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그렇게 하죠.”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오백화와 경대영은 다시 50명을 면담했다. 50명중에 무술은 뛰어나나 경호원으로의 정신적으로 자질이 부족한 청년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24명을 고르고 나자 오백화는 다시 김수훈에게 말했다.
“이 청년들은 제가 한국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그리고 남은 26명 중에 두 명을 지목하며 오백화가 물었다.
“저 두 명은 상제님 보기에 어던가요? 제가 보기에 무술도 뛰어나고 정신자세도 강하고 제일 좋아 보이는군요.”
그동안 현지에서 지내며 살핀 바로는 딱히 두 사람이 뛰어난 점은 별로 없으나 덩치는 김수훈과 똑 같은 청년들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한명은 흑인 혼혈이고 한 명은 백인 혼혈이었다.
오백화는 지근거리에 두면 앞으로 몰라보게 능력이 향상될 자질을 지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김수훈과 둘만이 따로 만나 말했다.
“상제님, 반드시 둘을 데리고 다니세요. 좌청룡 우백호를 데리고 다니면 아마 든든할 겁니다.”
“알았어요.”
“덩치가 크니 사실 어떤 위험이 있어도 표적이 셋이니 피할 수도 있고 분신도 가능합니다.”
모두 흑색 두건을 쓰고 다니니 하는 말 같았다.
오백화는 김연희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상제님, 김연희를 옆에 두시면 안 됩니다. 한번 귀신이 들어왔던 몸은 다른 잡귀가 들어 올 확률이 높으니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 좋아요. 더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상제님을 원망할 수 있으니 힘들어도 옆에서 치워야 합니다. 귀국시키면 제가 따로 잘 다독여 조치를 하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마침 계약기간도 끝나 귀국을 시킬 생각이 있던 중이라 별로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다음날 정신이 온전하게 든 김연희는 자신이 그동안 했던 일을 조금은 기억하고 일부는 기억하지 못했다. 옆에서 설명하는 오재환의 말을 듣고 기도 안차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사령관님과 그런 일을 벌였다고요?”
“믿어지지 않지만 그동안 네 온전한 정신이 아닌 다른 여자의 정신이 들어와 그런 일은 벌였다고 하더라.”
너무 잘나 조금 마음은 두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자신이 그런 일을 할지는 몰랐던지 김연희는 결국 오재환의 말에 승복해 말했다.
“저는 돌아가서 조용히 지낼까 하네요.”
“잘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너와는 이루어 질 수도 없고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다.”
“알아요. 제가 달리 욕심을 부릴 이유도 없지요.”
김연희로는 서운하고 조금 원망하고 싶기는 하지만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더구나 자신이 스스로 한 일도 아니고 귀신이 시켜서 벌어진 일이라니 더욱 그랬다.
김연희가 귀국을 하기로 하자 오재환도 귀국하기로 해서 오백화와 같이 돌아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오백화는 다시 당부했다.
“상제님, 제가 한말 잊으면 안 됩니다. 절대로 사만다라는 여자와 접하시면 자칫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루미와는 달리 니시노는 더 괴팍한 성격이라 무슨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사만다라는 여자도 조금 특별한 여자입니다. 권력욕도 강해 보이고요. 그런 여자와 깊어져야 좋은 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알았어요.”
김수훈은 데리고 가는 청년들을 어찌 하려는지 궁금해 물었다.
“어디로 보내려고 하죠?”
“우선 오키나와의 저택에도 몇 명 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서울의 비룡각이나 과천의 비룡정에도 보내야 하고요. 나머지는 경대영이 아마 용호권 시범단이나 지도사범으로 내보내겠지요.”
오백화 일행이 떠나고 나자 며칠 걸린다던 사만다가 델타제로 기지로 찾아왔다.
김수훈이 모른 척 사만다에게 물었다.
“사만다, 왜 노인을 보고 피했지?”
“피하다뇨? 너무 이상하게 생겨 조금 놀란 것뿐이지요.”
김수훈이 보기에 조금 권력에 대한 집착이 조금 강하지 다른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사만다는 갔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전하, 파키스탄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저희 행정지치청에서 발급한 임시 비자를 인정해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파키스탄을 통해 출국이 가능합니다.”
“잘 처리 됐군.”
전에는 카불에 있는 공화국정부의 비자만 인정하던 파키스탄이다. 이제는 임시정부인 아프가니스탄 왕국이란 비자도 인정한다는 소리라 근로자를 사우디로 보내기가 수월해졌다. 2000명이나 되는 많은 근로자라 매일 400명씩 보낸다고 했다.
모두 남부반군연맹 즉 임시정부에 속한 50개 마을에서 모집한 근로자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럼, 너무 늦지 않나?”
“빨리 보내기 위해 델타기지 주변 마을에서부터 보내기로 했어요.”
“알았소. 돌아가서 그 일이나 잘 주선하고 하던 보건소와 고아원 사업을 계속 잘 챙기시오.”
“예.”
오백화가 자주 접촉을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해 사만다에게 일거리를 주고 독촉해서 빨리 내보냈다.
김수훈은 정보에 의해 다시 잘랄라바드로 집결 중이라는 Mi-8 수송헬기와 Mi-24 하인드 공격헬기를 탈취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별 말도 없이 자주 주변에서 사라진 하산이 궁금해 하마스 사령관에게 물었다.
“하마스, 하산은 지금 뭐하지?”
“하산은 지금 군의 보안대에서 일합니다.”
“뭐라? 언제부터 그 일은 하는 건가?”
“이번에 군 조직을 새로 조직하며 군에도 보안대가 필요해 거기에 속한 별동대로 근무합니다.”
혼자가 아니고 별동대로 근무한다는 말에 김수훈은 다시 물었다.
“도대체 그 별동대는 몇 명이고 뭐하는 건가?”
물론 군보안대는 군대내부에 대한 보안 유지를 위한 감찰도 하고 정보도 수집하지만 별동대로 움직인다니 다소 생소해서 물었다.
하마스가 조금 잘 모른다는 표정을 보이자 장덕수가 즉시 답했다.
“군보안대는 제1군에 200명 제2군에 50명 제3군에 50명 그리고 본부에 200명이 근무해 총 500명의 보안요원이 있습니다. 하산은 보안대에 속하고 있지만 본시 전하 직속이라 별도로 별동대 조직으로 50명이 있습니다.”
“그거야 나도 보고 받아 알고 그 별동대가 무엇을 하냐는 거지.”
“특수임무만 수여하죠.”
자꾸만 핵심은 말하지 않고 구성인원에 대해 말하자 김수훈이 재촉해서 묻고 있었다. 그러자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마스가 입을 열었다.
“적진으로 가서 소련군에 협조하는 관리나 종교 지도자를 처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개 주에 있는 배신자들도 처리하고 있고요.”
“뭐? 재판도 없이 그냥 암살해 버린다는 건가?”
“네. 지금은 전시라 그 방법이 제일 빠르다고 해서.”
오백화가 살인귀가 옆에 있다고 해서 혹시 해서 물어보니 이런 일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김수훈은 사안이 간단치 않다고 판단해 급히 말했다.
“지금 어디서 활동하나?”
“칸다하르와 가즈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작전을 나가면 우리도 동선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고를 듣자 김수훈은 오백화의 말이 더욱 뇌리에 쟁쟁해지고 있었다.
‘이거 졸지에 내가 시킨 일로 변하면 원망을 듣게 생겼네.’
일단 걱정은 됐지만 연락이 아직 안된다니 하산이 기지로 돌아오면 자세하게 물어볼 생각이다. 하산의 일은 접고 장덕수가 구상한 잘랄라바드의 비행장 습격 계획만 검토하고 있었다.
드디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계획이 수립되었다. 즉시 델타 기지를 떠나게 되었다. 오백화의 경고가 마음에 은근히 걸리기는 하지만 흑표 대원들은 잔류해 두었다. 조장인 진상우가 불만이 가득해 항의했다.
“사령관님. 저희들도 같이 가게 해주세요.”
“그냥 천천히 출발해 퇴로나 만들어 두라고.”
김수훈은 좌청과 우백으로 부리는 근접경호원과 새로 24명으로 조직된 타이거 팀을 데리고 떠났다. 안전한 지역은 수송헬기로 이동하고 이후로는 트럭으로 이동했다. 김수훈이 공략하기로 한 것은 가즈니에 있는 레이더기지이며 S-75(SA-2) 대공미사일 발사기지다. 갈림길이 나오자 김수훈은 장덕수에게 지시했다.
“내가 레이더 기지를 먼저 공격해 부스면 그때 일제히 공격하도록.”
“넷!”
경비대원과 기타 선발된 병사 200명을 데리고 장덕수가 지휘해 헬기 탈취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제1군인 하마스 사령관은 적을 혼란시키기 위해 칸다하르를 동시에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양동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김수훈은 빠르게 걸어서 두 명의 근접경호원과 24명의 경호원인 타이거 팀과 같이 가즈니의 레이더기지 근처 야산으로 가게 되었다. 주변은 은폐나 엄폐할 장소로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레이더기지를 공략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였다.
M-21 저격 소총을 거치해 놓고 기다리는 중. 의외로 다른 곳에 작전 나갔다는 하산이 뒤에서 나타나 합류했다.
“전하,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그러냐?”
하산도 옆에 M-21 저격 소총을 거치하고 나자 이어서 레이더 기지를 지키는 보초병을 향해 저격했다.
퓨식! 퓨식!
작은 소음이 들릴 때마다 힘없이 보초병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탕! 탕!
갑자기 멀리 떨어진 야산에서 총소리가 들리며 저격 중인 김수훈을 향해 총알이 날아 왔다. 아무래도 소련군의 저격병들이 매복해 있다가 대응사격을 하는 것 같았다. 복병으로 인해 병사들은 다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컥!”
부하들에게 손짓으로 엄폐를 지시하며 몸을 잠시 일으킨 김수훈은 외마디 신음을 토했다. 허리춤을 만지자 붉은 피가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적이 쏜 총알에 허리가 관통당한 것이다.
“전하!”
놀란 하산이 급하게 다가와 손으로 막았다. 하지만 붉은 피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수훈은 의식이 흐릿한 가운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다 잡아 버려!”
“넷!”
이 소리와 함께 24명의 타이거 대원들은 김수훈을 공격한 소련의 저격병들이 있는 언덕을 향해 맹렬하게 사격을 가했다. 적은 기관총을 쏘며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격포도 날아오고 있었다. 적의 매목에 걸린 것이다.
콰앙! 쾅!
대원들은 급하게 RPG-7 대전차 로켓 발사기를 발사했다. S-75(SA-2) 대공미사일기지를 비롯해 레이더기지에 대해 일제히 사격했다. 무전을 담당하는 병사는 제1군과 장덕수 팀에 급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여긴 타이거 제로! 타이거 원! 모조리 잡아! 반복한다! 모조리 잡아!”
“다시 말하라!”
“여긴 타이거 제로! 모조리 잡아!”
모시는 사령관이 피를 흘리며 사경을 헤매자 다들 당황했다. 매복에 걸린 상태라 악에 바쳐 모조리 잡아버리라고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일단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기지는 폭파했으니 대원들은 급하게 매복지점을 벗어나고 있었다.
“빨리 철수해.”
급하게 만든 들것에 여전히 많은 피를 흘리는 김수훈은 뉘고 산길을 따라 후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