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나이 많은 노인은 참담한 기분으로 경운기를 끌고 어린 손자 태우고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린 손자가 집을 떠나는 것이 염려되어 물었다.
“할아버지. 언제 다시 집으로 와?”
“두 달 정도 지나면 오게 될 거야.”
“정말요?”
노인은 손자의 물음에 과거 자신에게 어린 동생들이 물었던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두 달이 될지 평생이 될지 모르겠네.’
그때 금방 돌아갈 줄 알았던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떠나는 신세라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경운기라도 타고 가니 같은 피난이지만 조금은 젊은 시절의 힘들었던 피난 시절보다는 수월했다.
아들은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김포의 해병부대로 입소했다.
노인은 며느리와 손자를 경운기에 태우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로를 따라 이동하는 터라 그런지 그런대로 수월하게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노인 가족이 살던 김포 지역에는 수많은 군용 장비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수륙양용 전차들이 김포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며 노인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해병대가 상륙 작전을 펼칠 모양이군.”
“그럼, 애기 아빠도 북한으로 쳐들어가나요?”
“그야 모르지. 전쟁이니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지.”
노인의 아들은 해병대 출신으로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김포의 해병대 사단으로 입소했다.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는 현상은 서울이나 경기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 한강에 있는 수많은 다리는 밀려드는 차량들로 인해 일순 교통이 마비되고 있었다.
호로록! 호록!
교통경찰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한강 다리 위에 버리고 간 차들을 견인해서 치우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견인차를 끌고 온 청년에게 경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사진 찍고 견인해서 남쪽의 한강고수부지에 모아 놓으라고.”
“그러죠.”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
“알았어요.”
전쟁은 전쟁이고 이참에 돈벌이를 나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정부에서는 서울을 사수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발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자주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민들은 과거 정부에게 속았던 것이 떠올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저것 대통령이 거짓말하는 것 아냐?”
“무슨 소리야. 그런 헛소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예 신문을 펼쳐 놓고 인터뷰를 하던데.”
“그럼, 믿어도 되는 건가?”
“어차피 밀리면 너나 내나 도망칠 길도 없다고.”
“하긴, 우리야 도망도 못가지.”
일부 부유층들은 빠르게 일본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어 나누는 대화였다. 정부에서는 출국은 완전히 봉쇄하라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떤 수단을 쓰던 국외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었다.
김상협 대통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들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는 국민들의 수가 조금 줄어들고 있었다.
전세는 거의 일방적으로 한미 연합군이 승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밀고 내려오지 못하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굳이 집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 갈 필요가 없지.”
“집이 비면 도둑이 살림을 다 가져 간다고. 돌아가자고.”
피난을 급하게 떠나서 비어 있는 주택에 도둑들이 들어오니 나누는 대화였다. 정부에서는 그것을 막기 위해 만약 빈집을 털다 잡히는 사람은 군사 재판으로 엄하게 처벌한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접적 지역과 조급 떨어진 경기도 지역은 이제 피난을 떠나는 국민들은 없었다.
미국에서는 즉시 북한의 무력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세계 언론을 상대로 공식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원하나 소련의 불참으로 무산되고 있었다.
유엔에서는 매일 같이 각국 대표들이 모여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을 두고 분주하게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유엔의 북한대표부는 미군이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 역시 북한이 파주에 주둔 중인 미군에게 먼저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거요.”
“무슨 소리요. 미군이 먼저 발포했소.”
양쪽의 주장은 매번 서로 상대방이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연일 북한의 남침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미국정부나 한국정부는 세계 언론을 상대로 북한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태평양 사령부에 명령을 내려 휘하 전 병력을 한반도로 투입하라고 했다.
오키나와 근처에서 평상시와 같이 작전 중이던 항공모함 두 척이 기수를 북으로 돌려 한반도로 향했다. 엔터프라이즈, 니미츠 두 척이 전단을 이끌고 올라가고 있었다.
오키나와와 일본에 배치되어 있던 폭격기들이 신속하게 한반도로 이동했다.
이어서 동해로는 다른 항모 두 척이 배치되고 있었다. 칼 빈슨 호와 링컨호가 동해를 향해 떠났다는 발표가 나오고 있었다.
세계 언론들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한반도 전쟁 발발!”
많은 종군기자들이 한국으로 입국하고 있었다. 그들은 위험한 전쟁터에서 빛을 발하는 자신들이라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몰려오고 있었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은 즉각 미군의 북한 공격을 중단하라고 항의하고 있었다. 의외로 소련은 그저 양쪽의 전쟁 자제를 원한다고 다소 소국적인 자세로 발표하고 있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전쟁과 경제 불황으로 인해 너무 힘든 상황이다. 북한을 지원할 처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새롭게 결성된 텔레반 반군조직들의 치밀한 저항과 공격으로 인해 그쪽 지역에 많은 병력을 추가해서 파병해두고 있었다.
전쟁은 분명하나 전 전선에서 벌어지는 전면전은 아니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국지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쉬이익!
고공에서 수많은 폭격기들이 엄청난 폭탄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으로 인해 넓은 하는 전체가 까맣게 보일 정도였다.
북한의 개풍군 지역은 완전히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완전히 융단 폭격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던 미군 병사들도 너무 어이가 없어 구경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저렇게 융단폭격을 하다니. 저기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겠네.”
“거기서 살아남으면 기적이지.”
하지만 지하에 숨어 있는 북한군은 쉽게 괴멸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계속된 폭격으로 점차 동굴 속에서 빠져 나와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폭격기들이 예성강에 있던 다리들을 모조리 폭파하자 이제는 후방에서 오는 보급루트가 완전히 차단되어 얼마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폭격기들은 임진강 주변의 진지들을 목표로 폭격을 감행하다 점점 개성의 도시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개성 지역 주민들을 모조리 북쪽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 공군은 군산과 평택 공군 기지에서 이륙한 B-52 폭격기와 B-1 폭격기를 동원해 임진강 너머의 북한지역을 맹렬하게 폭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B-52폭격기는 오래된 폭격기나 B-1 폭격기는 이제 막 개발이 완료되어 겨우 몇 대만 실전 배치되고 있는 신형 폭격기였다. 미국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폭격을 감행하는 폭격기들로 인해 개성 주변의 도로를 비롯한 군사시설을 모조리 파괴하고 있었다.
과과광!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폭탄들이 터지자 북한에서 자랑하던 많은 포대들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북한지역에서 남쪽으로 날아오는 포탄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미국 백악관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중대한 발표를 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만약 서울에 단한 발의 폭탄이라도 날리면 나는 북한의 평양에 핵을 투할 생각입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8군사령관에게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그럼, 핵전쟁을 하자는 건가요?”
“누굴 말하나요? 소련 아니면 중국이 북한을 위해 핵을 쓴다고요. 그들이 우리 미군에게 핵을 공격하면 그에 대해 적절히 대항할 겁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으로 인해 세계 언론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3차 대전이 벌어지는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레이건의 강한 의지에 세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소련 미국 그리고 영국이나 프랑스들은 수시로 비밀스런 접촉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무렵 김포 국제공항에 있는 민항기들은 모두 김해로 이동했다. 김포공항에는 미국 공군의 대형 수송기들로 가득해졌다.
C-17 수송기와 C-130 수송기로 날아온 장비는 공병들이 사용하는 부교 장비가 긴급하게 이동되고 있었다. 이들 공병장비는 신속하게 파주에서 포격전을 벌이는 미군에게 인계되고 있었다.
드디어 미군이 북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군의 이런 발 빠른 움직임으로 인해 북한은 속수무책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북한으로는 미국이 이렇게 빨리 북진을 결정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해로 들어온 항공모함 두 척에서 날아 오른 수많은 F-14 전투기들로 인해 성능이 떨어지는 북한의 MIG-22 MIG-23전투기들은 힘없이 격추당하고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F-16 전투기에 대적할 공군력이 북한에는 없었다.
그로 인해 서해 해상으로 항공모함 두 척이 도착한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에 대한 제공권은 미군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다.
콰광! 쾅!
휴전선 지역의 동부 전선에서는 한국군과 북한군이 서로 포격전만 가끔 벌이고 있었다.
서로 상대 진형으로 함부로 쳐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양국 진형이 모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방어시설을 철저히 해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먼저 진격하는 쪽이 피해가 더욱 크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임진강을 넘어 미군이 북쪽으로 빠르게 진군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해병대도 북쪽으로 진격해 개풍군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T54와 T55등 많은 전차를 가지고 대항하려고 했으나 AH-1 코브라 공격헬기의 공격으로 힘없이 전차부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미군에게 북한군은 지리멸멸하고 있었다.
북한의 전차부대가 무너지자 파죽지세로 한미연합군은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M48 전차를 앞세우고 북서쪽으로 진격했다. 소수 북한군이 대전차포로 공격을 가해보나 제공권을 장악당한 상태의 방어력은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드르르륵.
M-1 전차와 연합해서 AH-1 코브라 헬기 부대가 같이 진격하니 전선은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되고 있었다.
빠른 진격으로 인해 처음 전쟁이 발발한 10일 뒤에 전격적으로 개성이 함락되었다. 개풍군은 완전히 한미연합군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예성강을 경계로 방어망을 구축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전선이 서울과 다소 떨어진 곳으로 변하게 되자 피난을 떠났던 시민들의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금산의 그린식품에서는 박천태가 통조림 공장에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전선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니 다른 생각 말고 근무 잘해요.”
“알았어요. 회장님.”
“수당은 충분히 더 줄거니 매일 야근해야 합니다.”
“예, 염려 마세요.”
“새로 사람들을 채용할 생각이니 조금만 참고 견디세요.”
전쟁이 터지자 군수품을 납품하던 공장이라 박천태는 예비군으로 소집되지 않았다. 군수품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형태로 변해 있었다.
서울 북쪽에서는 전쟁으로 정신이 없으나 이곳 금산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호경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때 도축장으로 많은 화물 차량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화물차에서 우영복이 뛰어 내리며 박천태에게 다가와 급하게 보고했다.
“회장님, 농장에서 샤로레 50두 가져 왔습니다.”
“알았어. 이게 전부인가?”
“예. 지금 비육된 샤로레는 50마리가 전부입니다.”
“우선 군산의 공군기지로 보낼 수량은 충분하군.”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소를 대량으로 가지고 온다니 걱정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한우만 잡아 통조림을 만들었다. 이제 전쟁이 터지자 통조림은 도입소를 사용해 만들고 있었다. 주로 군산의 공군기지로 납품하고 있었다.
우영복은 서부 전선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나온 신문을 펼치고 나서 너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장님, 너무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해?”
“전쟁이 터졌으면 연합군은 계속 평양으로 진격해야 되는데 개성지역만 점령하고 더 이상 진격을 안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우영복이 이상하게 보는 것처럼 한미연합군은 의외로 개풍군과 개성을 점령하고 나자 예성강을 경계로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있었다.
“그거야 일단 숨고르기 하는 거지.”
“그래요? 어차피 터진 전쟁 이참에 통일해야 되는데.”
다들 그렇게 원하고 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전면전은 분명하나 동부전선에서는 어째 조용하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전쟁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박천태는 지금 어떤 전투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하는지 소식이 없는 김수훈이 궁금해 말했다.
“삼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네.”
박천태의 중얼거림을 들은 우영복이 다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전에 여기로 왔던 삼촌이라는 분은 도대체 지금 어디서 있는 겁니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니까 궁금해 알아보는 중인데.”
“회장님, 혹시 지난번 북한의 원산과 평양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했을 때 북파 공작원으로 넘어 간 것은 아닌가요?”
그 소리에 박천태는 화들짝 놀라면서 이내 부정했다.
“그건 아닐 거야. 그 무렵 삼촌이 나에게 전화를 한번 했으니까?”
“어디서요?”
“호주에서 전화했더라고.”
“그래요. 이상하네요. 오키나와도 아니고 호주에서 전화하고.”
“아마, 호주에서 휴가 중인 모양이지.”
박천태로는 김수훈이 그래도 안전한 남쪽의 호주에서 지낸다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김수훈 한 명 뿐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터지게 되자 걱정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거야.”
박천태가 은근히 걱정하면서도 호주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김수훈은 전혀 다른 곳에서 고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