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역사란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큰 사건으로 인해 그 흐름이 중단되거나 전혀 다른 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최고지도자의 부재란 엄청난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역사의 어떤 흐름도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버마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으로 인해 전국은 일시에 뭔가 정지된 느낌이 왔다.
“또 대통령이 죽다니.”
“이러다 진짜 나라 망하겠네.”
갑자기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죽으면 그에 따른 후유증이 어떤지 경험을 통해 국민들은 잘 아니 다들 걱정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용히 누가 권력을 잡으면 좋겠네.”
“그래, 사람이나 안 죽으면 다행이지.”
다들 마음속으로 이렇게 바라고 있었다. 집권자가 누구든 큰 혼란만 없었으면 하는 마음들이었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 사람들은 더욱 그런 마음이 강했다.
나라가 시끄러워야 결국 삶이 고달픈 것은 어렵게 사는 서민들이 제일 고통 받기 때문이다. 혼란한 기회에 출세하고 싶은 사람이나 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호시탐탐 이런 호기를 노리고 있었다.
권력에 제일 민감한 정치권은 빠르게 물밑 교섭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선을 잡아야 하지?”
“그래도 군인들이 또 정권을 잡겠지.”
“아무래도 그렇게 될 거야.”
다들 여전히 강한 힘으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군인 출신들이 권력을 다시 잡게 된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어떤 일이 빠르게 벌어지고 있던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버마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인해 최고 지도자를 잃게 되자 졸지에 패닉 상태로 빠져 들었다.
전에 박 대통령 사망으로 인해 일순 권력의 공백이 생긴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같은 일을 반복 겪다 보면 익숙해지는 법이라 그런지 한국 정부는 빠르게 움직였다.
대통령이 확실하게 사망하자 즉시 국무총리인 김상협을 대통령 대행 체제로 하고 사건 수습에 나서고 있었다.
한국의 이런 사태에 미국은 아주 빠르게 대응하고 있었다. 호주를 방문 중이던 레이건은 주한미군에게 대북감시체제인 워치콘 3를 워치콘 2로 변경하고 전투준비태세인 데프콘 3를 발동했다.
레이건은 호주 방문 일정을 조금 당겨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오키나와에 있던 김수훈은 신분이 미국 소령이라 데프콘 3로에 의해 한국으로 귀대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훈은 어지러움 증으로 인해 잠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카하시가 가져다 준 얼음물로 머리를 식히고 나자 금방 정신이 들었다.
“신룡님,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어디 안 좋은 곳이 있나요?”
“아니요. 너누 비행기를 오래 타서 그런 것 같아요.”
건강한 그가 쓰러지자 옆에 있는 두 사람은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충격을 받아 생긴 현상이라 김수훈은 별로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시했다.
“나는 빨리 귀국해야 하니 아까 말한 그대로 처리해요.”
“넷! 한국에 있는 법률 팀을 강경법원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내가 서울로 돌아가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강경법원에서 만나 같이 다니며 서류정리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어서 미8군에 데프콘3가 발동된 것을 알고 주섬주섬 예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나카하시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빠르게 미군비행장으로 갔다.
와글와글.
오키나와에서 휴가를 즐기던 미군들이 한국으로 복귀하려고 수송기를 기다리는 병사들이 많았다.
다들 전과는 달리 긴장한 표정들이 역역했다.
김수훈이 신분증을 보여주자 통제하는 장교가 급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십니까?”
“그렇소! 군산으로 가는 수송기를 타고 가도록 배정해 주시오. 그리고 전투복 한 벌과 군화를 주시오.”
“넷!”
급하게 얼룩무늬 전투복 한 벌과 군화들을 가져다주자 예복을 벗고 갈아입었다. 김수훈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8181 부대의 규정 때문이다.
데프콘 3이 발동이 되면 8181 부대는 본래의 무술부대인 임무가 완전히 바뀌게 되어 특수작전부대로 변한다. 그로 인해 부대원들은 최대한 미군 시설을 우선권으로 배정받게 되어 있었다.
또한 헌병이나 어떤 군인들도 함부로 이들에 대해 검문검색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군복에는 계급장이나 부대 표시가 없었다.
그저 얼룩무늬 군복만 입으면 끝나고 무기는 항상 휴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로 인해 김수훈은 비행장에 도착과 동시에 전투복을 지급 받았다. 그런 신분으로 인해 한국으로 떠나는 C-17 글로브매스터 수송기에 우선 배정 받아 올라타고 오키나와를 떠나게 되었다.
군산 미군공군기지에 도착하자 이미 연락을 받은 박천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무튼 너는 이제부터 미군에게 납품하는 물품으로 생산 시설로 통조림 공장을 빨리 교체해라.”
“알았어요.”
“서둘러야 된다.”
“그렇게 하죠.”
데프콘 3가 발동이 되면 그런 상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휴가가 외박 외출이 정지되고 미군들의 훈련이나 작전 상황이 많이 벌어지게 되니 그에 따른 식료품 공급도 늘게 되어 있었다.
군산에 내린 이유는 우선 강경법원으로 가기 위해서다. 호적이 정정된 법원통지서를 직접 수령하고 또 그것으로 주소지가 있는 부여로 가서 주민등록도 바꾸어야 한다. 이어서 인감증명서등 여러 가지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기 위해서다.
계급장은 없는 미국 군복에 신분증만 소지한 김수훈의 모습에 박천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군복을 입으니 형님은 모습이 많이 달라 보이네요.”
“그러냐?”
박천태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라 앞으로 박천태가 할 일에 대해 설명해주며 빠르게 강경으로 가서 법원을 들렸다. 여기 강경 법원에서 담당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어 박천태와 헤어지게 되었다.
“가서 잘해라.”
“예, 준비 단단히 해놓고 있겠습니다.”
한국에서 상주하게 되는 김수훈 명예 회장의 담당 변호사인 이승복이다. 전에 부장검사출신으로 40대 후반이고 조금 깐깐한 성품으로 보였다.
“회장님, 다른 것은 다 되어 있고 인감신고하시고 몇 장의 인감증명서만 발급 받으면 됩니다.”
“알았어요.”
미군에도 제출할 서류가 있고 미국대사관과 그리고 병무청에도 제출할 서류는 많았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서류들만 처리해 주고 용산의 8군사령부 내의 8181부대로 복귀해야 한다.
이승복이 타고 온 승용차에 올라 빠르게 이동해 부여로 왔다. 먼저 읍사무소에 들리거나 사진관에도 들리는 등 분부하게 움직였다.
부장 검사 출신 변호사가 따라 다니며 움직이니 즉시 서류들은 처리되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이승복 변호사는 여관으로 가고 혼자서 집으로 들어갔다. 군복 입은 아들의 모습에 박명숙은 기절이라도 하듯이 놀랐다.
“아니? 네가 왜 군복을 입었냐?”
“아, 별 것 아닙니다. 잠시 빌려 입은 거예요.”
보기만 해도 죽으러 가는 기분이 드는 얼룩무늬 군복을 일부러 빌려 입었다니 기도 안찬다는 표정이었다.
박명숙은 걱정이 되지만 아들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 이승복 변호사와 대전병무청에 들려 서류들은 넘겼다. 이어서 미군부대 근무라는 확인을 해놓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오르자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북으로 오르는 미군 트럭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또한 천안을 지나자 고속도로는 일부구간이 비행장으로 변해 우회해서 서울로 오르고 있었다.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미군들의 활동이 분명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공기가 너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것 장난이 아니네. 혹시 레이건이 일을 벌이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야?’
괌에서 하던 레이건이 흘리듯이 자기에게 묻던 말들이 문뜩 생각이 났다. 그때 레이건은 북한에서 무슨 짓이고 벌이면 보복할 태세를 보였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 그러면 졸지에 나는 엿 되는데.’
한반도 내에서 전쟁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해서 쉽게 받아들인 8181 부대의 특수작전팀장이라는 직책이 천근의 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특수작전 팀은 태평양사령부 소속이지만 사실은 대통령직속인 특수부대였다. 그러니 레이건의 결심 여하에 따라 김수훈과 그의 부하들은 죽음이 기다리는 북쪽으로 날아 갈 수도 있었다.
‘진짜 큰일이네. 그저 특혜 준다고 넙죽 받아먹은 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더니 이제 완전히 미국의 대통령에게 코가 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급하게 서울로 올라와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대사관 분위기는 밖과는 전혀 달랐다. 일부 서류들을 파기하는 모습도 보이고 무관은 완전히 군장을 꾸린 상태였다. 외교관들도 다들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기본 업무는 차질 없이 하는 중이다. 사무원에게 변한 생년월일을 서류를 제출하고 새로운 신분증을 여러 개 발급 받았다.
대사관에서의 일까지 마치고 나서 이태원의 부대 후문 근처에 도착해 이승복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일본으로 가나요?”
“예, 서류를 가지고 일본으로 가야합니다.”
“가면 레이드 민에게 너무 회사를 확대하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전해 줘요.”
“알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생기면 여기 후문으로 찾아와 용호부대 부대장을 면회신청해요.”
“알겠습니다.”
이제 외부로는 전화가 통제되니 하는 지시였다.
이승복 변호사와 헤어져 후문으로 들어가자 위병 장교가 거수경례를 하고 급하게 말을 전했다.
“캡틴을 8181 사령관께서 기다리십니다.”
“알았어!”
말이야 쉽게 답하지만 위병 장교의 말에 인상이 저절로 찌부러지고 있었다.
‘진짜네.’
하와이에 있어야할 8181 슬레드 사령관이 이곳으로 직접 날아왔다. 자기를 만나려고 왔다면 뭔가 레이건의 특별 명령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부대 막사로 가자 많이 와있던 교육생들은 모두 원대 복귀되고 기간병과 일부 병사들이 와 있었다.
원형인 막사 가까이 다가가며 주변을 돌아보니 밖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부대 분위기는 아주 냉기가 흐르고 무척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도 뭔가 크게 터질 것 같은 공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캡틴!”
누군가 크게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스미스가 이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엘렌 중위와 같이 서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옆에 커다란 더블 백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방금 여기로 배속되어 오키나와에서 수송기로 왔습니다.”
“그래? 앞으로 같이 지내겠군.”
“예, 캡틴이 이끄는 팀을 지원해 주는 것이 저희들 임무입니다.
두 사람은 다른 막사로 가고 김수훈은 파견대장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자 슬레드 대령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오랜 만이군.”
“예.”
슬레드와 김수훈은 파견부대장 실에서 둘만이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자네에게 전해줄 장비가 있어 직접 가지고 왔네.”
“장비는 뭐죠?”
“특별한 것은 아니고 자네가 전에 가지고 싶다고 하던 저격용 소총과 방탄복들 장비를 가지고 왔네.”
오래전 저격 훈련을 받으며 저격용 소총인 M21 탐나고 방탄복 등이 욕심나서 실없이 했던 말이다.
“몇 정이나?”
“M21소총 개량 형으로 11정을 가지고 왔네. 방탄복은 별도로 30벌 가져왔고.”
“예? 정말요?”
“그렇다네.”
M21은 미군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저격용 소총이다. 그러나 슬레드가 넘겨주는 10정의 저격용 소총은 아직 정확하게 검증이 끝나지 않은 시제품이다. 슬레드는 커다란 상자 하나를 열어 보이며 말했다.
“막사 안에 개량형으로 10정이 있고 이것은 자네에게 별도로 넘겨주는 것일세. 자네가 말한 그대로 조금 무게가 성능이 다른 저격용 소총일세.”
체력이 좋은 김수훈이라 다른 사람보다 총신이 조금 길었다. 더 웅장해 보이는 저격용 소총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혀 다른 저격용 소총인 셈이다.
“이걸로 저격병들이 쓰기에는 소총의 무게 때문에 제식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네. 결국 자네에게나 필요한 무기라고 봐야지.”
“그런가요?”
M21 소총에 소음기가 부착한 형태였다. 슬레드 대형은 이외에 두툼한 서류를 넘겨주며 말했다.
“여기 무기들이나 장비들은 병기고에 있으니 얼마든지 사용하게. 그리고 자네가 원하는 대로 흑표요원들은 모두 장교로 인정해주기로 했네.”
“지금요?”
“그렇다네. 조장들은 중위 나머지 6명은 소위 그리고 다른 16명의 요원들은 일괄해서 중사로 정해졌네.”
“알겠습니다.”
사실 김수훈이 이끄는 무술 부대는 미군에 고용된 용병이었다. 물론 일정기간 복무만 하면 미국 시민권도 받고 보수 수준도 상당히 높기는 했다.
평시라면 좋은 직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는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용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슬레드는 마지막으로 당부를 했다.
“이제 자네 팀은 24시간 대기 상태로 부대 안에서만 있어야 하네.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만 알게.”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미 오래전에 계약한 처지로 돈도 그동안 많이 받아먹었으니 이제 와서 물릴 수는 없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슬레드 대령은 부대를 떠났다.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 이미 통보를 받아 흑표 요원 8명이 소집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흑표 1조 조장인 진상우가 은근히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캡틴, 분위기가 너무 이상합니다.”
“너도 그렇게 봤냐?”
“예, 아무래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습니다.”
“터지긴 왜 터져. 이러다 마는 거지.”
일단 일어나지 않은 일로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지시를 내렸다.
“이제 각 조는 12명으로 나누어 두 개 조로 한다. 무슨 말인지 아나?”
“넷!”
“저격용 소총은 조별로 네 정식 소지해 오늘부터 사격 연습하고.”
이들 흑표 1조와 2조는 빠르게 장비들을 인수해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군사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작전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반복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훈도 흑표요원들과 같이 매일 훈련에 임하며 지급 받은 저격용 소총사격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소총의 저격 거리는 800미터 수준이다. 김수훈이 보유한 저격용 소총은 그보다 길어 1킬로미터나 되어 사격 방법이 많이 달랐다.
이들이 작전에 투입할 준비로 바쁜 와중에 대통령이 사망한 한국의 정국은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