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김수훈과 며칠 지내며 뭔가 오래 동안 협의하던 윤수인은 서둘러 서울로 떠났다.
급하게 떠난 이유는 김수훈이 훈련시킨 흑표요원 8명이 비룡권 사범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할 장소를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 수련원에서 배출된 사범들이 전국에 있는 당집과 연계되어 비룡권 도장을 열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무속인 협회의 조직력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윤수인이 서울로 떠나고 나자 김수훈은 퇴근한 박천태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태야, 너는 군대도 다녀오고 어차피 나이 별 문제가 없지?”
“예, 없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오히려 불이익이 많습니다.”
“그래, 나도 그게 문제다. 이건 나이가 너무 어리다니 사람들이 좋게만 보지 않고 오히려 여러 가지 건방지다거나 필요 없는 오해만 많다.”
“형님, 무슨 좋은 수가 있나요?”
“있다. 우리 이번에 아예 호적 고쳐 버리자.”
“호적을 고쳐요?”
“그래, 어차피 공무원이나 아니면 어떤 정년이 있는 회사를 다닐 것도 아니니 이참에 호적을 서너 살씩 위로 올리자. 사실 우리야 억울할 것도 없지 않냐?”
“그건 그러네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변호사에게 돈만 주면 된다.”
호적을 고쳐 나이를 더 많게 하려는 이유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려면 나이가 20세가 되어야 매사 쉬우니 이런 발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나이를 떠나 살아가는 처지로 몇 살 더 올리거나 내리거나 상관은 없었다. 특히 자기와 여자들 관계를 생각하면 더 많다는 것이 조금은 유리해 보였다.
박천태는 심각하게 생각하더니 물었다.
“언제로 고치려고요?”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나는 범띠가 좋아 보인다.”
“예? 범띠요?”
“나는 62년생인 임인(壬寅)년으로 고치고 너는 52년생인 임진(壬辰)년으로 고쳐라.”
결국 김수훈는 만 21살이고 박천태는 31살로 고치자는 이야기다.
“혹시 나중에 불이익이 없을까요?”
“불이익은 무슨 불이익? 우리야 나이는 별 의미가 없어.”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그럼 형님은 강경법원에서 하시고 저는 대전법원에서 해야겠네요.”
“그래, 서둘러야 한다.”
사실 박천태는 꼭 나이를 고쳐야 할 필요성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불편한 점은 있었다. 조직을 끌어가는 어떤 권위 면에서도 그렇고 현재로는 나이가 많다는 점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임진생은 왜?”
“그야 네가 가진 브랜드가 슈퍼 드래건이니 그런 상징이야 가지고 있는 것이 좋으니까 그렇지.”
“알았어요. 저도 전에 몇 살 많다고 항상 말했으니 그런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김수훈 나이를 꼭 고치려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에서 크게 번지고 있는 신룡교에 대한 어떤 상징적인 의미에 따른 용띠라는 굴레를 벗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매달리면 그건 진짜라고 볼 수 있지. 그런 것이 아니라면 허울뿐이야.’
요요를 비롯한 두 여자 그리고 자신을 추종한다는 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심의 검증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김수훈으로 살고 싶었다. 마치 신과 같이 높이 떠받드는 그런 다소 이질적인 모습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본래 정체가 이상한 상태라 더욱 그것을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신룡교의 맹신도들이 너무 과하게 추종하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지난번 테러 사건도 알고 보니 하루미 교주 보다는 자신을 노린 범행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항상 하루미 저택에서 산다는 정보만 믿고 적들이 무모하게 공격해 자신은 무사했다. 하루미는 자신이 사라진 허전함을 매우기 위해 지하밀실에서 있다가 화를 면했다.
‘운도 한번 두 번이지. 계속 좋을 수는 없어.’
항상 그러 식으로 자신의 운이 좋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예 이참에 나이 자체를 고쳐 신룡교의 상징이라는 허물을 벗어 버릴 생각이다. 자신이 용띠라 상징이라고 하니 그것 자체를 파괴해 보려는 생각이다.
이런 일련의 행동에는 과거 나이가 많다 적다 논란이 있을 때에서 생각하던 문제였다.
일본에 있는 비룡 그룹의 주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주식50퍼센트는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그거야 그들이 아무리 반발해도 이제 21살이 되면 직접 재산권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라도 본전 이상이야 언제든지 한국으로 가져올 정도는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엉겁결에 일본 여자 둘을 취하고 그로 인해 약간 끌려가는 형태로 지내고 있었다. 미성년자로 여자를 취한 어떤 큰 스캔들이 너무 겁났다. 너무 몸조심하다 보니 자신의 인생이 요상해졌다고 판단해 이런 결단을 내렸다.
박천태는 군대를 다며 와서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김수훈은 나이를 올리면 군복무가 걱정되어 물었다.
“형님은 군대를 가야잖아요?”
“군대는 무슨 군대. 나 어차피 4대 독자라 군대는 완전 면제야. 그리고 병적기록이야 나이가 달라지면 자연히 고치게 될 거다. 미군 부대서 복무한 것으로 처리하면 끝나게 된다. 오키나와에서 근무한 것이 인정이 안 된다면 지금 신검 받고 복무하는 식으로 기록으로 남겨도 되고.”
“그렇군요.”
“어차피 당분간 계속 나는 미군 부대에서 지내야 하고. 또 미군부대서 내가 뭘 하고 지내는 지는 관계자 이외에는 모르는 군사비밀이니까.”
“아하, 그건 그러네요.”
이런 밀약을 하고 김수훈은 서둘러 부여로 가게 되었다.
서울포목점으로 돌아온 김수훈이 심각한 어조로 박명숙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아무래도 호적을 고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박명숙은 한숨 쉬며 조금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 또 네 나이 때문에 말들이 많으냐?”
“예, 아무래도 저 이제 범띠로 고쳐야 될 것 같아요.”
“범띠라면 세살이나 올리는 것 아니냐?”
“예,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요.”
박명숙은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다.
“알았다. 네가 꼭 그래야 한다면 해야지. 사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늘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예? 왜요?”
“네가 너무 이른 나이에 책을 내는 바람에 사람들이 자꾸 네가 나이가 잘 못 된 것 같다고 해서 그냥 편하게 말하다보니 그랬다.”
“잘 하셨네요.”
사실 외삼촌과 어려서는 만난 사실이 별로 없었다. 외삼촌인 박명호는 김수훈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한 친척이 그런 지경이니 사실 김수훈에 대한 정확한 나이를 알 만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당장 어떤 이해가 있어서 하는 호적 정정이 아니라 전혀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김수훈은 호적정정에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해 강경법원에 호적 정정 신청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대전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물론 신분 세탁 등으로 이용될 여지가 많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고치는 호적정정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 무렵은 부모들이 호적을 너무 늦게 신청해 실제 나이와 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전의 영동출판사로 찾아가자 임주종 사장이 매우 반겼다.
“여, 김 작가님이 어쩐 일로 여길 다 찾아오십니까?”
“제가 찾아와서 불편한가요?”
“아니죠. 그동안 전혀 우릴 찾지 않아서 해보는 소리죠. 그동안 일본에 있더니 언제 귀국한 겁니까?”
“며칠 됐어요. 부여에 들렸다가 강경 법을 들려 서울로 올라가며 한번 들렸습니다. 귀국 인사는 해야 해서요.”
갑자기 강경 법원이야기를 하자 호기심이 생긴 임주종이 물었다.
“무슨 일로요?”
“사실 전에도 말이 많던 제 나이 때문에 이번에 아예 호적정전 신청을 했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언제로?”
“62년 2월 9일입니다. 범띠로 인시에 태어났습니다.”
그러자 정우란 편집장이 얼른 만세력을 들추고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나! 완전히 호랑이로 시작해 호랑이로 끝나네요.”
김수훈의 생일은 임인(壬寅)년 임인(壬寅)월 무인(戊寅)일 인(寅)시이기 때문에 호랑이가 네 마리가 있는 사주였다.
조금은 작위적인 냄새가 나지만 전에도 세 살이 많다고 주장했었으니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임주종 사장은 생년월일이 달라져 혹시 닉네임이나 어떤 필명을 바꿀까 생각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 작가님은 혹시 드래건이란 필명을 바꾸려고?”
“그야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병행해도 되고 아무튼 앞으로는 화이트타이거라는 이름으로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아하, 백호요.”
“예, 동양에서야 용을 권위나 어떤 힘 그리고 신성시하지만 드래건이야 사실 유럽에서는 그렇게 좋은 의미로 써지는 상징물은 아니지요.”
“그건 그렇죠. 드래건은 항상 기사에게 지는 괴물이고, 물욕도 많고 여자나 괴롭히는 조금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물이죠.”
“아무튼 그것과 상관없이 앞으로 혹시 책을 다시 찍으시면 조금 참고해서 고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서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요즈음 한국에서 잘나가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회를 봐서 소설을 쓰게 되면 다시 찾아온다고 말하고 출판사에서 떠나고 있었다. 귀국 인사를 겸해 찾아도 왔지만 나이에 대한 논란이 생기면 그것을 증명해주는 기록이 있는 곳이라 이렇게 사전에 작업을 하고 떠나는 것이다.
서울 한옥마을에 있는 비룡각으로 찾아가자 기다리고 있던 윤수인이 서둘러 별당의 안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여기로 찾아 와도 되는데.”
“아니요. 아무래도 여기도 너무 사람들이 주목하는 곳이라 불편해요. 수련원을 개설하는 것은 어떻게 됐소?”
“이미 수련원은 문을 열었어요. 청소만 하고 매트나 깔고 입간판만 다는 쉬운 일인데요. 벌써 끝났지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안방으로 들어온 김수훈이 자리에 앉고 나서 말했다.
“내가 이번에 호적을 고쳤어요.”
“예? 호적을 고치다니요?”
“내 나이가 조금 잘못이 돼서 바로 잡은 거요.”
윤수인는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왜? 그렇게 놀라는 거요?”
당집의 상징물을 모조리 용으로 만들어 놓고 일본의 신룡교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김수훈을 상제라고 높이 떠받드는 상황에 호적을 바꾸면 그것이 모조리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언제로 고쳤는데요.”
“범띠로 고쳤소. 그러니 그런 줄 아시오.”
“범띠요?”
“그렇소. 양력으로 62년 2월 9일로 음력은 임인년 정월 오일로 내 사주는 임인(壬寅)년 임인(壬寅)월 무인(戊寅)일 인(寅)시가 되요.”
윤수인은 김수훈의 말에 급하게 손가락으로 뭔가 집어가며 다져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그럼, 당신은 용이 아니라 범의 기운을 타고 난 거네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 백호 즉 화이트 타이거를 필명으로 사용할 생각이오.”
“법원에서 완전히 판결이 났어요?”
“서류만 접수해 놓고 올라오는 길이요. 법원 판결이야 나는 잘 모르고 아무튼 당신은 그런 줄 아시오.”
윤수인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자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당집들의 회원들에게 뭐라고 둘러대야 되는 거야.’
한참을 고민하던 윤수인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뭐 나쁠 것이 전혀 없네요. 본래 좌청룡 우백호라고 당신에 대한 상징이 하나 더 늘었다고 하면 되겠네요.”
본시 당집에서 사주도 보고 길흉화복도 보는 터라 그런 사람들의 수장격인 윤수인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윤수인은 일단 조금 다급해진 마음을 애써 이렇게 달래고 나서 다시 정정했다는 사주를 놓고 풀이해보고 있었다.
한참 자기 사주와 비교하더니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와 아주 좋네요.”
“뭐가요?”
“겉 궁합도 좋고 속궁합도 아주 좋아요. 사실 제가 뱀이 사주에 들어 조금 용띠와는 조금 상극기운이 있었는데 그게 없으니 저로는 너무 좋죠.”
“그런 거요.”
“예.”
“그리고 용띠 보다는 당신의 경우 범띠가 더 좋은 사주입니다. 더구나 범이 네 마리라면 특히 더 그렇지요. 아마 당신은 매우 용맹하고 강한 사람의 상징으로 변하게 될 겁니다.”
김수훈은 윤수인에게 물었다.
“전국에 도장 차리는 것은 어떻게 됐소?”
“재력이 있는 당주들은 다들 하겠다고 한 답니다. 대부분 본시 잡놈들이 비룡권을 집중해서 배웠으니까요.”
“다행이군.”
당집에서 무당을 돕던 잡놈들은 특별히 다른 일에는 몰두하지 못하고 한 분야에 몰두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래서 잡놈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빠르게 비룡권을 익혔다. 잡놈들과 관련 있는 당집에서는 도장 여는 것을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수하로 부리거나 혹은 기둥서방으로 삼고 있던 남자들이다. 남들 보기에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도 되기 때문이다.
윤수인은 사주가 바뀌어 상징이 변했으니 그게 은근히 걱정되어 물었다.
“당신의 사주가 달라지는 바람에 비룡권리란 이름이 조금은 이상하게 되겠네요. 그래도 상관이 없을 까요?”
윤수인이 하는 말에 김수훈은 자기의 구상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참에 한국에서 시작하는 무술은 용호권이라고 바꿀 생각이오.”
“예? 무술 이름을 바꾸려고요.”
무술 이름을 바꾸겠다는 말에 윤수인이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그러자 김수훈은 차분하게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소. 새로 형을 만들어 청룡장과 백호장으로 나누어 비룡권을 보다 다르게 변한 무술을 추가할 생각이오.”
“그렇다면 일본에서 시작된 비룡권과 조금은 다른 무술이 되겠네요.”
“그렇소.”
이무래도 일본에서 만든 비룡권은 날카로움이 많은 무술이다. 이제 호랑이를 상징하는 다른 형태의 형을 만들어 포함시켜 볼 생각이었다. 황소를 잡으며 새로운 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윤수인은 급하게 경대영에게 전화했다. 대한체육회에 정식으로 비룡권을 등록하는 것은 일단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김수훈의 이런 변화로 인해 당초 비룡권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던 도장들은 빠르게 용호권 도장이라고 간판들을 새로 달게 되었다. 그리고 용호권이란 이름으로 대한체육회에 등록 신청하고 또한 세계 용호권 협회 한국용호권협회가 새로 생기게 되었다.
물론 기존에 있던 세계비룡권협회는 그대로 존속시켜 놓은 상태로 새로운 무술이라고 한국에서 법인신청을 했다.
김수훈의 생각에 일본이 따라오면 좋고 아니면 포기할 생각이다.
이제 비룡권과는 다르게 용호권으로 세계를 상대로 보급할 생각이다. 어차피 자신의 무력으로 인해 새로 생긴 무술이니 이참에 한국이 확실하게 종주국이라는 위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련의 조치를 하고 나서 김수훈은 그제야 미8군의 8181 파견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용산의 파견대로 들어가니 이미 무술 이름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들은 호프만 소령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럼, 드래건 기장은 어떻게?”
“그거야 그대로 두고 다시 타이거 기장을 만들면 됩니다. 조금 다른 무술이니.”
“다르다면 무슨?”
“나중에 보면 알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