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황윤경의 말에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짓던 박천태는 마침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 탤런트를 지목하며 지시했다.
“저 여자 대려와.”
“예? 누구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저 여자 말이야. 작년에 무슨 연기자 상인가 받은.”
박천태의 지시에 황윤경은 입이 떡 벌어지고 있었다.
“회장님, 정말입니까?”
“내가 언제 농담하는 것 봤나?”
박천태는 너무 놀라 멍하니 바라보는 황윤경을 뒤로 하고 신선다방에서 즉시 나갔다.
황윤경은 위기를 벗어나려고 호언장담했다가 진짜 큰일이 터진 것이다. 설마하니 유명한 탤런트를 데리고 오라고 할 줄은 몰랐다. 이런 지시를 받았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탤런트는 너무 유명해 어려울 건데 큰일이네.’
황윤경은 급하게 대전연예기획사의 한민수 사장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한민수! 좀 만나자. 사파이어로 갈거니 거기서 만나자.”
통화를 끝내고 황윤경은 정신없이 유성으로 가고 있었다.
유성의 사파이어 나이트클럽의 룸에서 한민수를 만난 황윤경은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사장, 탤런트도 여기로 불러 올 수 있냐?”
“예, 돈만 주면 얼마든지 업소로 불러오죠. 다들 밤업소에 출현해 돈을 버니까요.”
“현재 잘나가는 탤런트도?”
황윤경의 말에 한민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회장님, 그거야 조금 힘들지요. 잘나가는 애들이야 이런 유흥업소로 와서 돈 벌기보다는 돈 많은 회장들 스폰서로 잡아 챙기지 이런 밤업소를 오지는 않죠.”
“그러니까. 돈만 많이 주면 가능은 하다는 거지.”
황윤경의 말에 한민수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회장님, 돈이면 국회의원도 되는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야 거의 없죠. 대부분 돈 많이 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애들도 간혹 있기는 합니다.”
이렇게 답하고 이런 소리를 묻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회장님, 감자기 무슨 이유로 탤런트를 찾습니까?”
“내가 꼭 써먹을 때가 있어서 그래.”
“그래요? 아무튼 다들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이니 대부분 연예인들은 겉으로야 요조숙녀 티를 내고 폼들이야 잡지만 진짜 속내를 자세하게 알고 보면 엉망진창입니다. 개중에는 술집 작부 보다 못한 애들도 무수히 많아요. 아무튼 다들 등급별로 가격이 나누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
“아무튼 세상사가 다 그렇고 그렇지요.”
한민수의 말에 조금 희망이 생긴 황윤경은 다시 물었다.
“대략 어떻게 등급이 나누어지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왜 군 단위 업소에서 노래 부르고 술도 따르는 가수 협회증 가진 여자들 있죠?”
“그래, 그런 여자 애들이야 줄줄이 많지.”
“회장님도 그런 여자애들 많이 관리하시니 제가 설명하기 쉽겠네요. 일단 그런 애들은 면소재지서 돈 좀 있는 놈들 차지라고 보면 됩니다. 군청 소재지서 돈이 있는 놈들은 도청단위인 대도시 대형업소에서 있는 애들 상대하고요. 그리고 대전 부자는 서울 강남의 대형 업소로 가서 놀지요. 그 급수부터는 텔레비전에 출현해 일반인에게 조금 얼굴이 알려진 애들이 그 짓 하지요.”
한민수의 설명에 황윤경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실 이런 정도야 연예계 계통에서 종사하지 않아도 다들 기본 상식으로 아는 정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냥 흘리는 정보 정도로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없어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황윤경은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한민수에게 다시 물었다.
“한 사장, 그 다음은 어떤 식인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실재 일어나는 일로 정확하게 말해 봐.”
“회장님, 오늘 따라 조금 이상하시네요. 아무튼 그 다음은 당연히 서울서 부자라는 큰소리치는 놈들이 그 위에 등급인 여자들을 상대하죠. 우리도 알만한 기업인 재벌 2세나 돈이 많이 있는 젊은 사장들이야 제일 유명한 연기자나 가수들 스폰서가 되는 거죠. 다들 그렇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게 확실하다는 거지?”
“예, 확실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부는 아니고 돈 없고 배경도 없는 여자애들은 대부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연기자 생활합니다. 그게 싫으면 연예인 생활 견디기 힘드니 진즉에 그 바닥에서 떠나야 하는 거죠.”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자 황윤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민수에게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한민수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기겁했다.
“회장님, 그건 너무 어려워요. 그러다 진짜 큰일 납니다.”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어쩌냐? 네가 나 좀 이번에 한 번만 도와 줘라. 뒷일은 내가 책임 질거니. 아무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해 보자고.”
두 사람은 뭔가 한참 논의하고 밤이 늦어서야 헤어졌다.
금산의 복수면에 있는 그린파크로 돌아온 박천태는 그린주유소로 내려갔다. 주유소의 카운터를 보고 있는 우영희에게 말했다.
“매출은 어떠냐?”
“오늘도 어제와 비슷합니다. 요즈음은 자가용이 많이 와서 넣어 조금씩 매출이 늘고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교통정리도 하고 주유도 하던 여자 애가 보이지 않자 그에 대해 물었다.
“새로 온 애는 언제 갔냐?”
“짐 싸서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우영희의 대답에 박천태는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새로 여직원이 오기 전까지 힘들어도 네가 고생 좀 해라.”
“예.”
박천태는 황윤경이 선발해서 주유소로 보낸 여고졸업반인 여직원을 내보냈다. 이유는 그 여고생은 황윤경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제 저녁에 저택으로 찾아와서 옷을 훌러덩 벗는 바람에 기겁했다.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 쳐서 내보냈다.
보내기 전에 홀라당 벗고 덤빈 이유를 물어보았다. 여고생은 이곳으로 보낸 황윤경이 그린주유소로 가면 회장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령했다고 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자 박천태는 황윤경에게 그런 퉁명스런 태도를 보였다.
박천태는 다시 우영희에게 지시했다.
“토요일에 유진영이 오니 같이 근무하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다.”
“예. 알아요.”
박천태가 여자를 마다는 안하는 성품이다. 그러나 전에도 그랬지만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여자를 건드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다.
전에 축협여직원에게 다소 이상한 행동을 했지만 그것은 나름 약효를 검증하기 위한 일종에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일도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었다. 무슨 도덕적인 이유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로 자신이 약간 곤욕스러운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금산인삼아가씨로 선발된 유진영은 토요일에는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린주유소에 오면 항상 어깨에 인삼아가씨라는 띠를 두르고 주유하고 있었다. 그린주유소는 미녀가 주유한다고 일부러 기름 넣으려 찾아오는 고객들이 늘었다.
박천태는 그런 사실이 떠올라 주유소의 카운터에서 금산군청으로 전화했다.
“인삼아가씨로 선발된 여자들 중에 지금 혹시 놀고 있는 여자는 없나요? 혹시 연락되면 그린주유소로 연락하라고 전해 주세요.”
전화를 끝내고 나자 박천태는 우영희에게 지시했다.
“영희야, 혹시 연락이 오면 봉급하고 근무 조건 이야기하고 와서 일한다고 하면 오라고 해라. 집이 멀면 네가 같이 지내고.”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박천태는 이런 지시를 하고 축사로 가고 있었다. 그는 유진영의 인기로 인해 주유소 매출이 늘자 인삼아가씨로 선발된 여자들을 이곳에서 근무하게 할 생각이다.
며칠이 지나 그린주유소에 인삼아가씨로 선발된 젊은 여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주유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다들 다소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주유소에 여자들을 쓰고 그래.”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장사가 잘 되잖아.”
인삼아가씨는 모두 세 명이 채용되었다. 두 명은 주유소에서 근무하고 한명은 주유소 옆의 농산물 판매장인 슈퍼에서 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주유소 주변에는 이제 많은 각종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금산군 복수면 삼거리는 음식점들이 밀집된 특별한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난 초가을 홍수로 인해 피해를 본 주민들도 이제는 대산건설에서 일괄 시공해 매각한 주택으로 다들 입주한 상태였다.
주변에는 도로 옆에 모텔들이 건축되고 있었다. 복수면에는 다방이나 술집, 당구장들이 생기고 있었다. 이곳은 이제 대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음식타운이자 베드타운으로 변하고 있었다.
수출의 날을 서울로 올라가 국무총리 상을 받고 내려온 박천태는 그린식당에서 축협 직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박 대리님.”
“무슨 내가 대리라고?”
“이제 10호봉이니 상무대리지요.”
본래 축협 입사 시 5호봉으로 출발해 만 2년을 다녀 7호봉에 해당된다. 그동안 농협, 축협 중앙회장 상, 농수산부장관상. 이번에 국무총리상을 받아 4번의 호봉승급 되어 11호봉으로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축협과 농협이 분리되며 처음 받은 5호봉이 부당하다고 판정 받아 1호봉이 내려가게 되었다. 이번에 국무총리 상을 받아 10호봉으로 오르게 되어 상무대리 자격 요건이 되었다.
다들 상무대리로 진급하게 됐다고 축하하자 민복준 조합장이 슬며시 일어나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대리는 무슨. 내일 이사회에서 통과되면 상무니 다들 그렇게 알아.”
그러자 이성구 전무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조합장님. 상무로 임명하시려고요.”
“왜? 이상한가? 이미 그러기로 이사들과 상의를 끝냈는데.”
다소 불편한 심기로 이성구는 다시 다른 조건을 가지고 토를 달았다.
“조합장님, 상무되려면 도지부의 승인이 나야 되지 않나요?”
“자네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군. 도지부서야 이미 알고 이사회 결의서만 올라오면 승인해준다고 했는데.”
“아니? 입사한지 2년 만에 상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상을 많이 받아도 그렇지.”
축협에 들어와 만 3년도 안되어 상무 진급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이성구 전무는 너무 빠른 진급이라고 이의를 달고 있었다. 논산축협에서 자신의 위치가 점점 초라해지게 되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조합장이 자신도 모르게 이사들과 이미 그런 이야기까지 오갔다고 생각하니 심기가 편할 수 없었다.
전무가 계속 이의를 다는 말을 하자 구매계를 전담하고 있는 임양우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전무님, 농협대학 출신은 2년제 대학을 나오고 상무 대리를 다는 판국입니다. 뭐로 봐도 농협대출신보다 뛰어난 분이 2년 만에 상무 다는 것이 뭐가 이상하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임양우의 말에 직원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다들 박천태의 덕을 보고 있으니 임양우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임양우의 말에 직원들이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를 보자 이성구 전무는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공연히 더 이상 불평이라도 했다가는 오히려 자기가 다른 조합으로 떠날 판국이라 침묵했다.
축협중앙회가 생기며 너무 한 조합에서 직원들이 정체되어 있어 무사안일과 부정이 많다고 판단했다. 그로인해 회원조합 간에 인사 교류가 시작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인사이동 대상으로는 조합에서 오래 근무한 상위 직급들이 거론되고 있었다.
잠시 이성구 전무의 이의제기로 분위기가 이상해 졌으나 다시 술잔이 돌며 그 일은 잊고 즐기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박천태는 식당 밖으로 이성구 전무를 불러 조용히 말했다.
“전무님, 저는 내년에 금산으로 이동하겠다고 신청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세요.”
“금산으로?”
“예, 금산축협으로 가지 못하면 대전낙협 정도로 가서 근무할 생각입니다. 저는 논산축협의 상무자리가 그렇게 욕심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밖에 나와 대화를 나누자 혹시 무슨 다툼이라도 있을까 걱정한 민복준이 다가와 말했다.
“왜들 그러나?”
“아닙니다.”
이런 작은 분란이 있었지만 박천태는 며칠 뒤 이사회에서 상무로 임명하는 안건이 통과되었다. 도지부에서 내년도 1월에 정식 상무로 임용하라는 회신이 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직장 생활을 하는 중. 박천태는 김포 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문재화를 만나고 있었다.
김포공항의 대합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재화야, 가서 삼촌이 시키는 일만 하고 공연히 엉뚱한 일은 하지마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무튼 일본에 다녀오면 너도 비룡권 도장이나 하나 차려라.”
“예, 그렇게 하죠.”
일본에서 시작된 비룡권이나 이제는 한국에서도 점차 보급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퍼지지는 않고 김수훈과 특별히 관련된 지역에는 도장들이 개관되고 있었다.
김수훈의 지시라고 하며 경대영이란 사람이 찾아와 비룡권과 신룡권 교본을 넘겨주었다. 그동안 비룡권을 불곰과 그의 수하들이 익히고 있었다.
문재화가 여전히 일본에서 해야 할 일이 궁금해 물었다.
“회장님, 도대체 가서 저희들은 뭐를 하는 겁니까?”
“그곳에 가서 오래된 터널을 복구하는 일이야. 아마 그곳에 어떤 유해를 찾는 일 같더라. 그러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리고 삼촌 경호를 위해 가는 것이니 그렇게 알고.”
“예, 잘 알았어요.”
이들은 우선 오사카로 가서 다시 비행기로 오키나와로 가게 된다. 여행비자로 6개월 기한을 신청해 11명이 따로 떨어져 3-4명이 조를 이루고 가게 된다.
이들은 오사카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바로 비룡관광여행사의 인솔로 오키나와로 가게 되니 이동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는 상태로 떠나고 있었다.
“기술들은 다들 조금씩 배웠지?”
“예, 전기기술도 배우고 한 가지 이상 기술은 배웠습니다. 그런데 조경 기술을 왜 배우라고 한 거죠?”
“그건 나도 잘 모르니 가서 보면 알겠지. 기후가 다른 먼 타국으로 가니 특히 건강 조심하고.”
“예, 운동 계속하겠습니다.”
이들을 배웅하고 나자 박천태는 논산으로 돌아갔다. 이제 내년부터 상무로 근무하게 되자 사무실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나하 시에 있는 자택에서 김수훈은 문재화와 그의 부하 10명을 만나고 있었다.
“오느라고 수고 많았어.”
“예, 회장님.”
일본의 오사카에 도착하자 한국어를 잘하는 건장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청년의 안내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동해 이곳으로 도착했다. 처음 만나게 되는 삼촌이라는 인물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람인 것을 알고 모두 놀라고 있었다.
‘오라, 그렇게 연결된 사이구나.’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어찌되었건 비룡권이란 새로운 무술의 창시자니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보스인 박천태보다 더욱 강한 분위기를 품어내자 불곰은 은근히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선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부터 시작하지.”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