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새벽 일찍 논산 우시장으로 나온 박천태가 신성철을 보며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너 당구장 인수할 돈 준비 됐냐?”
“예, 회장님, 동생이 키우던 소를 오늘 팔아 다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채운 축사에 있는 소는 모두 내 소만 키운다는 거냐?”
“예,”
박천태는 신성철의 말에 별로 이의를 달지 않고 이내 물었다.
“가져온 소는 모두 비육소지?”
“예.”
“그럼 내가 다 사마. 그냥 여기서 정산해 버리자.”
“알았어요. 그게 좋겠네요.”
비육소를 가지고 나왔으나 시세가 별로라 걱정하던 터라 반가운 제의였다.
결국 신성철은 드림당구장을 인수하기 위한 전세금과 시설비로 비육소를 박천태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소를 인수 받고 일부 대금은 지불하는 식으로 정리가 끝나게 되었다.
“당구장은 지금처럼 네가 운영 하냐?”
“아뇨, 군대에서 전역한 동생 녀석이 운영할 겁니다.”
“잘 됐네, 너 이제 나이트클럽 일에만 신경 써라.”
“예.”
박천태는 신성철과 헤어져 송아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살피고 있었다. 중매인들은 워낙 많은 소를 키우는 박천태에게 잘 보이려는 차원에서 좋은 송아지를 앞 다투어 소개하고 있었다.
“박 계장님, 이 송아지 사세요. 쌉니다.”
“알았어요. 따로 매어 두세요.”
박천태는 그들이 권하는 송아지 중 마음에 드는 수송아지 10마리를 사서 채운의 축사로 보냈다.
우시장에 나와 있던 신성철에게 다가간 박천태는 그에게 사게 된 비육소 6마리를 서울 마장동 경매장으로 보내라고 말했다. 논산 시세보다는 서울 시세가 좋기 때문이다.
“신 이사님, 운반비는 떨어지니 이번은 운임만 받고 서울 한 번 다녀오세요.”
“알았네. 그나저나 강우균 전무가 어제 사표를 썼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 인가?”
“예, 그렇게 됐습니다.”
서울에서는 어제 밤 정승화 계엄사령관 전격적으로 체포되는 12 12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권력의 이동이 벌어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있었으니 조사 받아야 당연하지.”
“암, 총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잖아.”
대부분 국민들은 아직은 자세한 사건의 내막은 모르고 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사건 현장에 김재규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여론이 많은 편이었다.
서울에서는 큰 권력들이 이동되는 대형사건으로 약간 소란했다.
“앞으로 누가 권력 잡을지 모르겠네.”
“군인들이 설치면 별수 없이 그들 손에 권력이 가겠지.”
판단이 빠른 사람들은 1212가 터지자 이는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위한 전초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울은 그로 인해 약간 술렁이고 있지만 지방 그것도 소도시인 논산은 그런 권력 이동에 대해 별로 관심들이 없었다. 그저 자기들과 관련된 논산축협이란 작은 조직에서 벌어진 일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조합장 선거를 기해 이제 이성구 상무가 전무로 오르게 되는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박천태는 우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을 사먹고 조합원들인 양축가를 만나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오자 이성구 상무 자리의 명패가 전무로 바뀌어져 있었다. 조합장은 첫 출근과 동시에 전무로 올려 준 것이다.
‘동작도 빠르네.’
박천태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이성구는 큰 소리로 직원들에게 말했다.
“박 계장도 들어 왔으니 이제 사무실 업무를 새로 말해 줄 것이니 인수인계 잘하도록.”
“예.”
이성구가 발표하는 새로운 업무 분장으로 인해 사업계장인 이현종은 이제 판매계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판매계장은 군납을 담당하고 서울 공판장으로 판매되는 소 대금을 정산하는 업무 보는 자리였다.
소위 군납으로 인한 부수입이 조금은 보장되는 그런 자리다. 그래서 그런지 상무 다음에 자리라고 보는 사업계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도 별로 불만이 없었다.
박천태는 자연스럽게 사업계장으로 오르게 되었다. 부하 직원으로 운송계인 홍정자, 구매계 원장과 출납 담당으로 김오순, 구매계인 임양우, 창고 담당인 국장호가 사업계 소속으로 배치되었다. 물론 4명의 운전기사 창고 인부들이 사업계에 속했다.
새로 구매계로 오게 된 임양우는 방위출신인 서기로 전에 환특계에서 일하던 녀석이다. 강경상고를 나와 주산 부기가 각기 2단씩이라 업무능력이 좋았다. 착실해서 박천태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자기에게 들이대던 김오순이 원장과 출납 담당으로 오자 조금 찜찜했다.
‘저년을 왜 사업계로 보내 신경 쓰이게.’
속으로야 불편하지만 내색이야 할 수 없으니 그저 이성구 상무의 말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현종으로 부터 채권관리 업무를 인수 받았다. 자기가 하던 업무의 대부분 임양우에 인계하고 박천태는 상무 대리가 쓰는 큰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직급은 낮지만 이제 논산 축협에서 조합장을 제외한 직원들 중에는 사실상 2인자 자리에 오른 것이다.
박천태 앞에는 임양우 다음에는 홍정자 그 다음 끝에 김오순이 앉아 근무하는 형태의 자리 배치였다. 개인 사물을 옮기며 늘 책상위에 비치된 다소 큰 전자계산기를 들고 일어서자 임양우가 물었다.
“계장님, 그건 제가 써야 되지 않나요.”
“너 쓰려고?”
“예, 저도 박 계장님 하시는 것 보고 그 계산기로 왼손 타법 익혔습니다.”
“그러냐? 그럼 너 써라. 나는 적당히 신형으로 하나 사서 쓰지.”
“이것 개인 사물입니까?”
“그래, 아무튼 네가 내가 하던 업무하니 선물로 주마.”
“고맙습니다.”
어차피 너무 커서 들고 다니지 못하는 탁상용 전자계산기다. 사실 우시장등에서 계산이 필요할 때 들고 가서 사용할 수 없었다. 박천태는 휴대용으로 좋은 것을 새로 살 생각이다. 한국은 이제 점점 전자계산기를 비롯한 전자 제품들이 신형으로 성능 좋아져 계속 출시되고 있었다.
단하나의 예로 들어 전자시계도 전에는 고가품에서 이제 저가품으로 차츰 가격이 내려가서 쉽게 사는 필수품으로 변하는 시점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니 다른 사람 업무도 대략 알고는 있다. 인계인수와 더불어 업무는 정상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구매계는 사료 재고나 미수금이 인계인수 과목이나 이미 그 것은 박천태가 담당하고 있었다. 별도로 인수인계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박천태는 즉시 사업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오늘로 마감하고 인수인계 서류 작성해.”
“예.”
새로 들어온 임양우는 즉시 대답하지만 다른 두 여직원은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원장을 모두 월말 때처럼 빨간 줄로 마감하고 누계를 계산해야한다. 다시 구매원장의 과목별 총계와 총계정 원장의 과목별과 대비해 차액이 생기면 전표를 사그리 뒤져 찾아야 한다. 이제 하루 이틀은 늦게 야간 업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양우는 오늘 마감하면 즉시 창고 재고 조사하고.”
“예.”
“미스 홍은 주유소 가서 유류전표 확인하고 부속 가게와 차량 정비소 찾아가서 혹시 밀린 미수금 있나 확인해서 있으면 모두 계산서와 영수증 발급 받아와 내일 자로 모두 비용 처리해 정산하고.”
“예.”
보통 한 달 이상 대금 결재했었다. 일시불로 정산해 버리고 깔끔하게 새로 시작한다니 홍정자는 표정이 밝았다. 거래처에서는 외상대금 결재를 빨리 해달라고 독촉들이 심했었다.
그러자 상무인 자기 말도 안 듣고 이런 지시를 하자 이성구가 슬며시 나서며 태클을 걸었다.
“박 계장, 그렇게 처리하면 자금이 일시적으로 너무 빠져 나가잖아.”
“상무님, 자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자금이 문제가 되면 제가 주선해서 조합 출자금을 5백만원 넣어 둘 것이니까요.”
박천태의 이야기는 자신이 추진하는 일로 인해 사무실 자금이 원할 하지 않게 되면 자기 개인 돈이라도 밀어 넣어 처리한다는 선포였다.
“뭐 그렇게 까지 할 것이야 있나? 미수금 조금 독촉해서 받으면 되는 데.”
“아닙니다. 상무님이 불편하신 모양이니 조합장 출마 요건까지 출자금은 넣어 두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차하면 다른 조합장이라도 다음 선거에서 내세우겠다는 엄포였다. 누구라도 자격만 있다면 조합장을 하지 마라는 법이 없다.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니 뭐 달리 말릴 사항도 아니었다. 다소 억지스럽게 하는 투정처럼 들리지만 은근히 겁나는 협박이다.
박천태의 이런 응수에 이성구 상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조금 무안해서 그런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에서 나가고 있었다.
물론 돈지랄 하는 소리는 확실하다. 하지만 그만한 재력도 있고 뒤에 민화자라는 막강한 정치적 배경이 있다. 그러니 이제 축협 사무실에서는 완전히 1인자가 되는 순간이다.
사실 박천태가 그런 이유로 하는 행동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대전으로 진출하게 되면 직장의 업무를 보다 쉽게 처리해야 된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축협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창 업무를 보는 중에 전화가 왔다.
“사업계장 박천태입니다.”
“회장님, 저에요. 지금 대전인데 등기 나왔어요.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
“수고 했어.”
건물 대금을 빨리 넘겨주는 대신에 이자 정도로 돈을 받는 식으로 처리했다. 허윤희 앞으로 매입한 건물등기를 빨리 내게 되었다. 지금 허윤희로부터 그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이런 전화를 받자 박천태는 즉시 사업계회서를 작성중인 이현종에게 다가가 말했다.
“계획대로 내년 초에 냉동차 매입해도 되겠습니다.”
“그런가?”
“방금 연락 받았는데. 대전에 육계 판매장을 열게 된 모양입니다. 그러니 조합에서 냉동차를 매입해도 충분히 활용할 정도가 됩니다.”
“다행이군. 냉동차가 비효율이라 걱정 많이 했는데.”
군납을 위해 냉동차를 보유해야 하지만 군납만 위한 냉동차 보유가 비효율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부여축협의 냉동차를 이용해 축산물을 날랐다. 그런 이유로 논산훈련소 납품에서 부여 축협과 절반씩 배정을 받았다. 하지만 논산축협도 냉동차를 보유함으로 5대 5 비율이 변해 6대 4가 된다.
훈련소의 급식 조건이 좋아져 육류 납품이 늘은 만큼 논산축협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이 지게 되는 형태다.
대전에 산 건물에 육류를 파는 대규모 축산물 판매장을 열기로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박천태는 다음날 업무인수인계를 겸한 재고 조사까지 모두 마치고 직원들과 회식하게 되었다. 토요일이라 일찍 업무를 끝내고 다소 이른 시간에 하게 된 회식이었다.
드림나이트클럽으로 모인 구매계 직원들이 모이게 되었다.
술자리에 몇몇 거래업자들이 찾아와 송용자에게 돈 봉투를 주고 있었다. 이유는 유류나 부속품 거래처를 한 곳으로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송용자가 돈 봉투를 펴보며 말했다.
“계장님, 오늘 술값은 이것으로 지불하면 되겠네요.”
“알았어. 그렇게 해.”
술좌석이 길어지고 직원들이 술이 조금 많이 취해 있었다. 전에 무작정 들이대던 김오순은 이제는 송용철과 죽이 맞아 춤추며 놀고 있었다.
“쩝!”
막상 떠나 버리고 나니 조금 아쉽기는 했다.
한참 술자리를 파하려고 할 때 마담인 오윤미가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회장님, 가시기 전에 저 좀 볼 수 있나요?”
“왜?”
“저와 정 마담과 교체한다는 소리가 있어서 그걸 물어 보려고요.”
“알았어.”
박천태는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1층의 룸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회장님, 저를 어디로 보내려고요?”
“민 여사가 대전에서 나이트클럽을 개업한다고 마담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널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부득이 교체를 하는 거야.”
그러자 오윤미는 업소의 위치를 물러 보고 나서 안심이 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곳이라면 저도 압니다. 잘만 하면 업소는 잘 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기회에 독립할 생각입니다.”
“그래? 뭐를 하려고?”
“대전에서 다방이나 하나 하며 지내려고요. 그러니 다름 사람을 구해 주세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민 여사에게 전하지.”
어차피 꼭 챙겨야 할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박천태는 별로 권하지 않고 그대로 승낙하고 있었다. 박천태에게 승낙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선불금으로 500만원을 가져가서 그 돈을 갚아야 되기 때문이다.
“회장님, 선불금은 제가 다방을 개업해 자리를 잡으면 갚도록 하죠.”
“알았어. 그 대신 단골 모두 잘 인계하고 그 돈은 천천히 갚도록 해.”
이렇게 해서 일단 박천태는 드림나이트클럽에 대한 정비도 끝내게 되었다.
술집에서 혼자 밖으로 나와 천천히 시내의 상설시장을 걸어가고 있는 중. 멀리에 옷 가게에서 옷을 고르는 채인화가 보였다.
“너, 뭐하냐?”
가게 밖에서 박천태가 크게 소리치자 채인화가 약간 놀라며 답했다.
“이제 사복 사야 입고 다니죠.”
“아! 이제 졸업이지.”
사실상 졸업이야 1월에 하니 조금 남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취업해서 학교를 안 나가는 학생들도 많았다. 적당한 사유가 있고 본인 원하면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
“바로 떠나려고?”
“예, 내일 떠나려고요.”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날씨도 싸늘해져서 매우 추웠다.
일단 가게에서 나온 박천태는 채인화를 다른 가게로 데리고 가 겨울옷을 세트로 사주며 말했다.
“잘 살아라.”
“오빠, 고마워요. 그리고 꼭 안산에 찾아오세요.”
“알았다고.”
채인화와 조금 길을 걷다 박천태는 헤어져 공연히 할 일 없이 사내를 배외하다 숙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컹! 컹!
숙소로 돌아오자 쇠사슬로 길게 줄을 메어 놓은 롬멜이 매우 반겼다. 롬멜은 이제 반야 농장에서 이곳 숙소로 데리고 와서 기르고 있었다.
친해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소량이지만 약도 남아 있고 권총과 소총도 있다. 또한 통장들이나 도장도 있어 누군가가 항상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빨리 정리해야지 귀찮네.”
박천태는 롬멜의 목줄을 끌러 주고 개 사료를 주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주위는 칠흑 같이 어둡고 하늘에서는 작은 눈발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하나 여전히 외로운 처지인 박천태는 롬멜을 보며 말했다.
“너나 나나 신세가 비슷하네.”
이때 아래층인 당구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우당탕! 삐이익!
당구장에 설치된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 박천태를 찾아 당구장으로 쳐들어 왔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