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해저 지하 깊숙이에서 뜨거운 붉은 용암이 요동쳤다.
콰르릉. 콰르릉.
소리 없는 용트림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해수면이 갑자기 위로 솟아오르다 가라앉았다. 잠시 거대한 바다는 평온하고 침묵이 계속되고 있었다.
얼마 후 거대한 물결이 휘몰아치듯이 온대지를 물로 뒤덮고 있었다.
“쓰나미다!”
해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수영하던 묘령의 여자가 크게 외마디를 지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오는 파도에 몸이 굳어 멍하니 파도만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해변에 위치한 거대한 도시의 사람들은 점점 육지를 향해 운무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사람들이나 건물은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헉!”
“어마!”
관객들은 스크린 속에서 자기를 향해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재치며 소스라치며 놀랬다.
어둠 속에서 관객들의 비명 소리가 요란했다.
“어마! 빌딩이.”
“비참하네.”
지진으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 파괴로 인한 방사능의 피해는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이다. 사람이나 짐승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진 모습들이 보였다.
일순간에 원자력 발전소 주변은 단 한 번의 파괴로 영원히 사람이 살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지르릉~!
이어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영호가 모두 끝나고 나자 관객들은 다들 이마에 땀방울을 보이며 영화관을 떠나고 있었다.
“정말, 실감나네.”
“일본 놈들이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랄만하네.”
한국의 극장가에서는 ‘쓰나미’란 일본영화가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하며 전국을 거대한 해일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물론 먼저 개봉된 일본과 태국에서도 쓰나미의 열풍은 거대한 파고를 이루며 아시아권 전역을 강타하고 있었다.
소설에 이어 영화까지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빠르게 영화관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 낡은 등산복 차림인 김수훈의 모습이 보였다.
“볼만한 영화군.”
“그냥 볼만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잘 찍은 영화야.”
이렇게 다름 좋은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관 앞에서 잠시 서있었다. 많은 관객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영화로 돈 좀 벌겠네.’
문뜩 흘리듯이 스치는 생각이다.
마곡사에서 지내던 김수훈은 대전으로 고입검정 고시를 보러 왔다. 시험이 끝나자 마침 대전극장에서 쓰나미 영화가 상영되자 관람하고 나오는 중이다.
김수훈이 극장 앞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가자 주인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구경 잘했어?”
“예, 볼만 하더군요.”
“볼만해? 그럼 나도 한번 볼까? 다들 잘 된 영화라니 내일 들어가 봐야겠네.”
이런 소리하는 주인여자는 다른 손님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러자 다른 손님들도 다들 영화 보기를 권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도 한 번 보세요. 포장마차는 조금만 늦게 여시고 첫 상연 보시면 되죠.”
“그럴까?”
이런 대화 나누는 주인여자를 향해 김수훈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국수 주세요.”
“특으로?”
“예. 영화 보며 긴장해서 그런지 조금 배고프네요.”
주인여자가 빠른 속도로 멸치 국수를 말아줬다.
후르륵! 후르륵!
김수훈은 빠르게 국수를 먹고 포장마차에 맡겨 놓았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나며 말했다.
“많이 파세요.”
김수훈은 서둘러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두워진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의외의 사람을 만났다.
“어, 이 기자님.”
밤이라 그런지 이영미는 키가 더욱 커 보였다. 늘씬한 몸의 이영미 기자는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과 맥주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걸으며 조금 비틀거리는 폼으로 보아 술에 많이 취한 모습이다.
“어마! 이게 누구야.”
김수훈을 보자 이영미는 취한 눈을 반짝 뜨며 번득였다.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마치 껴안을 기세로 급하게 다가 왔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저지라도 하듯이 김수훈은 앞으로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이영미는 양손으로 김수훈의 손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며 외쳤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다고.”
“이 기자님이 왜 저를?”
“아니? 세상을 홀라당 뒤집고 종적도 없이 사라지니 난리가 났으니 그렇지.”
이영미는 김수훈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매우 놀랐다.
“어머, 옷이 왜이래.”
김수훈의 등산복은 이곳저곳이 헤어져 있었다. 짊어진 배낭까지 너덜너덜하니 완전히 거지같은 지저분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너무 이상한 차림이라 이영미는 매우 놀랐다.
‘이상하네. 왜 거지처럼 이러고 다니지?’
잠시 놀라던 이영미는 김수훈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이 근래 다른 기자 만난 적 있어?”
“아뇨. 제가 기자를 만날 이유가 있나요?”
“정말?”
“저 아는 기자는 이 기자님뿐입니다.”
김수훈은 그동안 두문불출하며 마곡사의 하숙집에서 지냈다. 한 달을 머물다 다시 작은 암자로 들어가서 지내자 언론 매체와 접하지 못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동안. 한국과 일본 그리고 태국에서 동시에 개봉된 ‘쓰나미’영화의 열풍으로 원작 공동저자인 김수훈도 이미 완전히 스타로 변해 버렸다.
영화를 보고 나서 김수훈은 조금은 자신이 유명인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당분간 조용히 살기는 이제 틀렸군.’
책으로 인한 명성에 이어 영화로 더욱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그로 인해 언론사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열안이 된 상태였다. 흥행에 성공한 원작자를 찾아보았지만 그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자 다들 추적에 나서고 있었다.
이영미는 항상 특종에 목마른 언론사 기자다. 김수훈에 대한 기사는 설사 특종은 아니더라도 큰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우연히 김수훈을 만나자 그녀로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잠시 나랑 이야기 좀하지.”
“아닙니다. 부여로 내려가야 해서 지금 서부터미널로 가야합니다.”
“그럼, 내차로 내려가며 이야기할까?”
“아닙니다. 지금 술도 드신 것 같은데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죠.”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누자 옆에서 서성이던 대전지사장이 슬며시 나서며 권했다.
“내가 택시 불러 줄거니. 둘이 타고가면서 이야기하면 되겠네.”
“그러면 되겠네. 시간도 절약되고.”
김수훈이 거부하지 않자 지사장은 지나가는 택시를 급하게 잡아 요금을 지불했다.
“부여.”
“예, 타시오.”
지사장은 서둘러 김수훈과 이영미를 뒷좌석으로 떠밀어 넣었다.
김수훈과 이영미는 택시를 타고 부여로 향하게 되었다.
“그동안 어디?”
“공주 마곡사에 있었습니다.”
“마곡사 어디?”
“입구의 민박집에도 있었고 암자에도 잠깐 있었죠.”
순순히 그동안 있었던 행선지를 말해 주는 이유는 자기 행색을 보고 이상하게 추측할까 염려해서다.
“그런데 왜 옷이?”
“겨울이라 빨래하기도 그렇고 운동하느라 산을 조금 험하게 타고 다니는 바람에 그렇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등산로도 없는 산을 오르다 한번 굴어 떨어지는 바람에 옷이 떨어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김수훈은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겪은 특별한 일만큼은 남에게 말하기 진짜로 곤란했다.
김수훈은 이영미 기자에게 마곡사에서 지낸 일을 말해주었다. 주로 고입검정 고시시험 준비에 대해서만 말했다. 자기가 암자에서와 또한 일주일간 토굴에서 있었던 일은 숨겼다.
“공부만 했나?”
“무술도 익혔지요.”
“무슨 무술?”
“그야 태권도를 수련한 거죠.”
김수훈은 자기가 익히던 지압술이나 침술 그리고 기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암자에서 태권도만 익히고 있었다는 식으로 답했다. 공연히 그런 소리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암자에서 지낸 일은 조금 다르게 말하는 이유는 아무도 자기가 암자를 벗어나 일주일간 다른 곳에서 지낸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하면 곤란해.’
이영미는 술기운으로 인해 눈이 저절로 감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취재수첩을 꺼내 착실하게 메모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운전기사가 조금 속도를 늦추며 김수훈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제3의 전쟁을 쓴 김수훈 작가신가요?”
“예.”
“어이구! 이거 영광입니다.”
택시기사는 이런 대답을 듣자 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연산면에 들어서자 급하게 길옆으로 택시를 세웠다. 빠르게 문방구로 달려가 화첩과 사인펜을 사서 돌아왔다.
“작가님, 사인 좀 해주시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딸들이 다 작가님의 펜입니다.”
“그래요?”
“딸의 친구들도 필요하니 몇 장 부탁합니다.”
사인을 여러 장 해달라는 소리에 김수훈은 약간 놀란다.
‘내가 인기 있는 모양이네.’
화첩 20장에 모조리 커다랗게 사인해 넘겨주었다.
택시는 다시 빠르게 달려 이윽고 논산을 지나 부여로 들어올 무렵이 되었다. 그동안 물어볼 내용을 다 물어본 이영미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에이, 술 냄새.’
그냥 조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김수훈의 품 쪽으로 머리를 계속해서 디밀고 있었다. 더구나 가슴도 들이밀고 있었다.
마치 안아 달라는 행동과 같은 묘한 분위기다.
김수훈은 어색한 동작으로 그런 이영미를 슬며시 밀치며 곤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여자 진짜 술에 취하기는 한 거야? 조금 전까지 멀쩡하더니.’
자꾸 남자에게 몸을 밀착하려는 이영미의 동작이다. 이런 모습을 백미러로 보는 택시기사는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 힐끗 거리며 바라보더니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잘못하면 이번에는 택시기사로 인해 이상한 소문나겠네.’
이윽고 택시가 부여 읍내 직선도로로 들어서자 김수훈은 입을 열었다.
“기사님, 혹시 구두래 아세요?”
“예.”
“구두래 쪽으로 가주세요. 거기에 이 여자 분 오빠가 삽니다.”
김수훈의 말에 택시기사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뭔가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택시를 타고 구두래의 이은혜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안에서 장옥순이 큰 소리로 말하며 나와 보더니 화들짝 놀랬다. 놀라는 이유는 술에 취한 이영미를 부축하고 김수훈이 같이 서있기 때문이다.
“어머! 고모님.”
“저는 갑니다.”
창가에서 이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은혜 휙 돌아서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또 이상하게 오해하는군.’
여전히 김수훈 옆에 여자만 보이면 강한 질투심을 표하는 이은혜다.
“이 기자님이 약간 술에 취했어요.”
이렇게 말하고 김수훈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자기 몸에 기대고 있는 이영미를 장옥순에게 떠넘겼다.
김수훈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얼른 택시로 가서 올라타며 말했다.
“이 길로 쭉 가서 5일 시장으로 가세요.”
“이 길도 잘 압니다. 작가님 집이 서울포목점이죠?”
“잘 아시네요.”
택시기사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제 고향이 본래 부여입니다. 지금은 도마동에 삽니다.”
“하아! 그러시군요.”
“부여나 논산에서 대전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은 주로 도마동 쪽인 서부에 많이 삽니다.”
“그렇군요.”
택시 가사의 말에 김수훈은 자신도 대전으로 가게 되면 그쪽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이 발전이 빠르겠네요.”
“그건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쪽에 부여 사람이 많이 삽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택시는 천천히 이동해 서울포목점 앞에 도착했다.
김수훈이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는 빠르게 사라지고 그제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가게에서 한복을 꿰매고 있던 박명숙은 화들짝 놀라면 반겼다.
“어서 와라.”
소식 없던 김수훈이 갑자기 나타나자 죽은 자식 살아 돌아온 것처럼 허겁지겁 다가와 손을 잡고 외쳤다.
“이놈아, 전화라도 하지.”
“전화가 없는 암자에 있었어요.”
몸의 행색이 아주 엉망이라는 것에 놀라는 박명숙이다.
“너 이게 무슨 꼴이냐?”
“그냥 빨래가 귀찮아서.”
달리 변명하기도 그래 이렇게 말했다. 김수훈은 이내 자기 방으로 슬며시 들어갔다.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와 말했다.
“엄마, 밤 좀.”
“그래, 조금 기다려라.”
말이야 기다리라고 했지만 박명숙은 번개같이 밥상을 차려주었다. 가게에서 식사하며 간단하게 그간 지낸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험도 잘 보고 왔다는 소리에 박명숙은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이다.
그래도 혹시 해서 묻고 있었다.
“진짜 시험 잘 봤어?”
“엄마. 사람 수를 정해서 뽑는 시험이 아니고 전체 평균이 60점만 넘으면 합격이니 그 정도야 충분합니다.”
“알았다.”
아들이 밥을 다 먹자 그제야 그간 있었던 집에서의 일을 말했다.
“너 찾는 기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방송국에서도 찾아오고. 대전의 출판사에서도 찾아와 걱정 많이 하더라.”
“그래요?”
“아무튼 다른 곳은 몰라도 출판사로는 꼭 연락해라.”
“알았어요. 제가 내일 전화하죠.”
사실 자기가 전화를 안 해도 이영미 기자가 알아서 출판사로 연락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해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훈은 잠시 옆의 상포전문점도 돌아보고 집안을 유심히 살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보다는 그저 오래 외지에 나갔다 오니 그래도 정이든 집이라 한 번 둘러보는 것이다.
기웃기웃.
이곳저곳 집의 모퉁이 마다 자세하게 돌아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뭔가 잊어버린 것을 열심히 찾는 모습으로 보이는 동작이다.
별 이상은 없어 보이는 기분이라 김수훈은 방으로 들어와 누워 생각에 잠겼다.
‘이상한 일이야.’
김수훈은 마곡사에서 있었던 놀라운 일을 천천히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