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김수훈은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집에 돌아왔다.
다시 한 번 어머니에게 자퇴에 대한 이후의 계획을 말했다.
“엄마, 반드시 내년에 대입 검정을 통과할게요. 그러니 염려 마세요.”
“알았다. 어미는 너를 믿어 주마.”
이제 와서 다시 학교를 다니라고도 못하게 생겼다. 박명숙은 자퇴한 아들 때문에 속이야 많이 쓰리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수훈은 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부소산으로 올라갔다. 특별히 어떤 목적이 있어서 보다 나름 복잡해진 머리를 식힐 겸 올라온 것이다.
전망대인 반월루에 올라 부여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휴! 전생에서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위에 몸을 웅크리고 살았는데. 이생에서는 조금 살만한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그냥 몸을 사리고 살았어.”
마치 독백 하듯이 이렇게 중얼거린 잠시 침통하게 서 있었다.
공허한 시선으로 시내의 전경도 바라보았다. 때로는 주변 소나무 숲도 바라보다 멀리 보이는 백마강의 넓은 백사장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뭔가 생각하던 김수훈은 갑자기 사나운 짐승이 포효라도 하듯이 크게 외쳤다.
“으아아아악!”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야성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가슴 속에 뭔가 가득 고여 있던 응어리가 포효와 함께 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아아아악!”
전생에 자신을 고아원에 버린 어미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이 없어 사랑하던 여자를 떠나게 놔두었던 스스로의 비겁함에 대한 분노가 포함되어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다.
어쩌면 외로움이 가슴에 가득해서 토하는 비명인지도 모른다.
푸드득. 푸드득.
큰 소리로 외치자 주변에서 새들이 놀라 날아가고 있었다. 반월루로 향하던 몇 명의 관광객이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아마 어떤 미친놈이 술 퍼마시고 소리 지르는 정도로 판단한 것 같았다.
두 번이나 크게 소리를 지르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으엉! 으어엉! 어머니!”
왜 많은 단어 중에 어머니를 부르는지 스스로 잘 모른다. 그저 본능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모습만 그저 보고 싶다는 마음에 터져 나온 외침일 뿐이다.
“어머니!”
한참을 소리 지르고 울고 나니 그저 허탈한 공허감만 주변의 정막감과 함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가야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 허우적거리며 발걸음을 딛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한 발걸음은 부소산성의 토성 자리를 따라 생긴 숲길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그제야 삼충사 뒤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길.’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삼충사를 지났다. 여학교 뒤에서 혼자 살고 있는 강훈규 노인이 사는 집으로 갔다.
집의 작은 마당에 도착하자 강 노인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왜 그렇게 이상하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예?”
“미친놈도 아니고 대낮에 산에서 시내를 향해 소리를 그렇게 크게 지르면 없는 애도 떨어져. 이놈아.”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어쩌면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거리상 여기까지 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강 노인이 소리를 들은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막 정문으로 올라오셨군.’
강훈규 노인은 군자대로행이라고 주장하는 분이다. 평소에도 좁은 개구멍이 아닌 넓은 도로가 이어지는 정문을 통해 다니고 있었다.
부엌에는 두부가 두 모가 놓여 있었다. 5일 시장 옆에 있는 두부 공장에서 아마 두부를 사온 것으로 보였다.
“네 어미에게 오늘 들었다. 학교 관뒀다고. 아주 잘했다.”
“·······.”
“다니기 싫으면 굳이 학교 다닐 필요 없다. 하기 싫은 공부 죽게 해봐야 나중에 아무짝에도 써먹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며 강 노인은 부엌으로 들어가 두부와 김치 그리고 막걸리를 올려놓은 작은 교자상을 가지고 나와 말했다.
“너도 이제 사회인이니 막걸리 한잔해라.”
“예? 사회인요?”
“그래 이놈아! 옛날 같으면 벌써 장가갈 나이 아니냐?”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다소 걸쭉하고 투박하며 거친 말에 김수훈은 어떤 안정감과 포근함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이분에게 아마 그것을 느껴 이렇게 찾아온 모양이군.’
먼저 막걸리를 한잔을 따라 마시고 나서 김수훈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며 위로 한다.
“너무 세상 원망마라. 다 사람이란 타고난 운명이 있고 나름의 주어진 그릇이 있으니 그저 그런 듯 나름 노력하며 살면 된다.”
아마 김수훈이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많아 소리를 지른 것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공손하게 술잔을 받아 들어 고개 돌리고 마시고 나자 강 노인은 방안을 들어가 전에 자기가 알려 준다고 말하던 책 몇 권을 넘겨주었다.
“이제 네가 책을 보고 스스로 배워라.”
“예? 어디 가세요?”
“그래, 이제 떠날 때가 돼서 가야한다. 나 떠나고 나면 아마 군청에서 이집은 무허가라고 철거한다고 너희 집으로 연락이 갈 거다. 그때 네가 여기로 와서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챙기고 나머지는 다 태워 버려라.”
“예. 그런데 언제?”
“나는 내일 새벽에 떠날 생각이다.”
넘겨준 책을 보니 침술과 지압술. 진맥과 관상학 그리고 약초에 관한 책들이다. 두 잔의 막걸리를 먹은 노인은 술기운이 돌은 것인지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들어가 주무시죠.”
“그래, 잘 때가 됐으면 자야지.”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 아랫목에 눕히고 나자 돌연 다시 일어나 서상에서 사진 한 장을 주고 있었다. 사진을 보니 전에 자신이 구해준 꼬마와 일본인 부부 그리고 노인이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어라.”
“예?”
“그리고 뒤에 주소가 있으니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연락해보고. 최소한 10년 후에 연락해라.”
왜 10년 후에 연락하라는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책을 한권 추가해서 줬다.
“이건 아주 오래전 내 친구가 수련하던 무술인데. 기공에 관한 내용이라 함부로 익히다가는 네 놈이 썼다는 이상한 소설에 나오는 내용처럼 몸이 이상하게 변하는 주화입화에 걸리니 조심해서 익혀라. 익힐 자신이 없으면 그냥 태워버리고.”
“예.”
“내가 네 놈의 관상을 보니 도화살에 역마살까지 잔뜩 낀 놈이다. 그러니 앞으로 살면서 항상 주변에 모이는 여자를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아무튼 많은 서적이 있으나 이렇게 직접 네 권만 물려주는 이유는 그만큼 평소에 아끼던 책이라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김수훈이 꼭 익히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보였다.
강 노인은 다시 드러누우며 작게 외친다.
“가라, 너 살고 싶은 대로 가서 마음대로 살아 봐.”
초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박명숙은 매우 걱정했다.
“또 어디를 다니냐? 네 어미 속 타는 줄도 모르고.”
“죄송해요.l 잠시 부소산으로 바람 쏘이러 갔었어요.”
“혹시, 너 강 할아버지 만났냐?”
“예,”
“우리 집으로 오후에 통지가 왔더라. 강 할아버지 사는 집을 철거한다고. 군청 직원 말에는 네가 입회한 상태서 철거를 하는 조건으로 집을 비우기로 약속했다고.”
“예, 들었어요. 내일이라고 했나요.”
“그래, 군청 직원 말에는 오전 10시 까지 그 집으로 오라더라.”
“알았어요.”
김수훈은 자기 방에 들어와 강 노인이 전해준 책을 몇 장 뒤적이다 의외로 빠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조금 일찍 일어나 여학교 뒤에 있는 강 노인 집으로 갔다. 작은 집에는 새벽에 떠났는지 강 노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새벽에 일어나 커다란 보따리를 가지고 떠났다고 했다.
“어디로요?”
“하는 말로는 아마 총단으로 간다는 것 같더군.”
“다른 말씀은 없고요?”
“네가 와서 필요한 것 챙기고 나면 나머지는 나보고 살림은 다 가지라고 하더라.”
“아! 그래요.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모두 지금 가지고 가세요.”
그러자 옆집의 나이 많은 부부는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먹을 것도 많네.”
쌀이며 반찬 그리고 그릇을 모두 챙겨 자기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김수훈이 보기에는 일부러 반찬도 해놓고 쌀도 많이 사 놓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노인도 사는 형편이 어렵지만 옆집의 부부도 어렵기 때문이다.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에 대종교에 관한 서적이라고 하시던 책들은 모조리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도 제자인 김수훈이 대종교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굳이 넘겨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나에게 부담을 안주실 생각이군.’
붓글씨 연습시키며 익히라던 한문 서적이나 기타 한의학 또는 오래된 고서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섬주섬.
김수훈은 서책들을 모조리 챙겨 커다란 가죽 가방에 넣었다. 가방은 손때로 인해 표면이 아주 반들반들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전에 강 노인이 상해에서 제일 비싼 것을 샀다고 자랑하던 물건이다.
일일이 책을 들추어 보고 확인할 수 없었다. 50여권의 서적을 가죽가방에 넣고 문방사우까지 넣으니 가방은 가득 채워졌다.
“끙! 무겁네.”
힘 좋은 김수훈이 양손으로 들어 봐도 들고 가기가 약간 버거운 무게였다.
밖으로 낑낑 거리며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추녀에 아주 낡은 리어카가 보여 그곳에 가방을 실었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유품이라고 생각 되는 물건들을 챙겼다.
살림살이가 본시 없어 최대한 챙긴다고 챙겨도 작은 리어카에 다 차지도 않았다.
“나머지는 필요 없나?”
“예.”
옆집 노인 부부는 방안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며 작은 교자상 그리고 서상이자 옷을 넣었던 작은 자게 농도 챙겨 가지고 가고 있었다.
이때 다소 건장한 채구의 청년들이 나타났다. 삼충사 쪽으로 소방차가 와서 대기한다.
소방차까지 동원되자 김수훈은 군청직원을 보며 이상해서 물었다.
“왜 소방차를?”
“이걸 철거해서 쓰레기장으로 보낼 수도 없고 파묻기도 곤란해 태워야 하니 그렇지.”
군청직원은 분명이 어디선가 많이 봤던 사람이다. 김수훈은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 보다 체육관 옆의 교회를 자주 들락거리던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아하! 교회에서 조금 영향력을 부린 모양이군.’
진실이야 알 필요 없지만 하필 교회를 열성으로 다니는 군청직원이 철거담당으로 왔으니 해보는 생각이다. 군청직원은 김수훈을 다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챙길 것 모두 챙겼냐?”
“예, 철거하셔도 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굴삭기가 도착하자 군청직원은 집 안으로 들어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철거하게 되었다.
쾅! 쾅!
너무 초라한 집이라 작은 굴삭기로 몇 번 찍어 내자 그대로 와르르 부서진다. 집이 무너지자 대충 평을 치고 태울 것을 따로 모아 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높이 쏟아 오르자 마치 강 노인을 화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쾅! 쾅!
강 노인이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너무도 무력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와르르. 와르르.
제단 앞의 작은 돌계단도 힘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손으로 일일이 모아 쌓았을 제단은 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쏴아!
큰 흔적이 대부분 사라지고 태울 것도 대충 타자 소방차에서 호스를 끌고 와 물을 품어 불을 껐다. 다시 굴삭기로 태워진 흔적도 땅에 깊숙이 파묻어 버렸다.
무슨 묘지 조성하는 것처럼 굴삭기로 불타고 태운 자리를 파묻고 다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쾅! 쾅!
큰 울림이 들릴 때마다 김수훈은 왜 그리 서러움이 생기는지 모르고 그저 슬프기만 했다.
강 노인의 몸체 그분의 분신이던 제단 그리고 그분의 지식이나 해학도 영원히 땅 속에 묻혔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지켜봐야 공연히 마음만 상하게 생겼다. 김수훈은 다소 우울한 기분으로 리어카를 끌고 여학교 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여학교 교실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수업하는 중이구나.”
이제는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조금의 관심을 보였지만 이제 관심이 전혀 없었다.
마침 쉬는 시간이 되어 그런지 많은 여고생들이 교실에서 우르르 몰려 나았다. 가시 철망으로 쳐진 담 사이로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김수훈을 보며 수군거린다.
“미친 노인을 따라 다니더니 저 녀석도 완전히 미친 모양이야.”
“그렇지 뭐. 그러니 학교까지 때려치우지.”
“어째 조금 이상하더라니 미쳐서 공부 잘 했던 모양이네.”
“본래 저런 놈은 그런 거야.”
왜 비난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여고생들은 작은 목소리로 낡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김수훈을 향해 배가 터지도록 욕하고 있었다.
아마 여학교까지 김수훈이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소문난 모양이다. 그런 이상한 시선을 뒤로 하고 안쪽 타이어가 펑크나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이런 행동은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보여 다들 눈이 동그래져 바라본다.
“왜 저렇게 다니지?”
“삼충사 옆에서 사는 미친 노인 제자잖아.”
“오라! 강 노인 제자야?”
“그렇다니까? 아무튼 강 노인이 공부 잘하는 제자를 결국에 미치게 하고 떠난 모양이야.”
그러자 나이가 지긋한 수염이 난 노인이 두 사람을 향해 소리친다.
“그 사람을 왜 미쳤다고 말하는 건가? 멀쩡하고 똑똑하고 얼마나 유식한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노인은 부여에서는 그래도 알아주는 붓글씨 선생이라 다들 이상하게 바라보고 노인 옆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노인이 혼자 말로 중얼거린다.
“결국, 그 친구 저 세상으로 떠나려고 죽을 자리로 갔군.”
노인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김수훈을 대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놈 참 욕심나네.”
아까 두 남자는 부여에서는 조금 부자라고 소문나기 시작한 서울포목점 외아들이 펑크 난 리어카를 대로에서 질질 끌고 가니 너무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따가운 시선을 받자 김수훈은 문뜩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이 자각됐다. 그저 혼자서 죽은 시신을 끌고 가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리어카를 끌고 가던 김수훈은 갑자기 리어카가 가벼워지자 놀라 급하게 뒤로 돌아 본다.
“어!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