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박천태는 당구를 치다 긴 의자에 누워 약간 쉬고 있었다. 내기당구를 시작해 어느 정도 돈을 따자 더 이상 따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 칠 사람이 많아지자 슬며시 빠졌다.
너무 실력차이가 많이 나자 돈을 따고 그만 친다고 해도 다들 별로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특히 처음 박천태와 내기당구를 시작한 녀석은 오히려 좋아 하고 있다. 녀석은 이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돈 따기에 정신이 없다.
쓰리쿠션을 돌려 마무리하자 녀석은 큰 소리로 외친다.
“다들 돈 내놔.”
“에이, 또 잃었네.”
먼저 쿠션을 나간 녀석은 게임에서 지자 뭉그적거리며 돈을 내 놓지 않는다.
그러자 녀석이 큰 소리로 외친다.
“야 치사하게 그럴래. 나 돈 많이 잃었다.”
“알았어!”
내기 당구에서 진 녀석들이 어쩔 수없이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건네준다.
당구장의 카운터 아가씨는 이미 퇴근했다. 박천태의 당구 실력은 금방 주변으로 알려져 많은 젊은이들이 구경삼아 찾아와 내기당구를 치고 있었다. 내기당구를 치는 파트가 넷이나 되었다. 내기당구의 경우는 게임비를 더블로 계산하고 있었다.
제일 큰돈이 걸린 판의 심판을 보던 주인은 큰 소리로 녀석들에게 말한다.
“또 시작할 건가?”
“해야죠. 잃은 돈이 얼마인데.”
어떤 내기도 그렇듯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다. 게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40대 초반인 주인은 카운터 보며 점수를 담당하고 있다. 내기당구에서 때로는 점수를 속이려는 녀석도 간혹 있다. 큰 싸움으로 번지는 분쟁이 생기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게임은 어느새 4구 경기로 변해 있었다.
커다란 가방을 뒤에 놓고 박천태는 졸린 눈으로 끄덕거리며 잠 짓을 한다. 그러자 인심 좋게 생긴 주인은 그런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친다.
“박군, 방에 들어가서 자지.”
“그래도 되나요?”
“그럼, 다들 그렇게 하는 걸.”
당구장 구석에는 작은 방이 있다.
박천태가 방으로 들어가자 방안에는 많은 화투장이나 카드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당구를 치다 질리면 아마 노름하는 방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담배 냄새로 찌든 이불 몇 채가 구석에 있었다. 박천태는 그것을 깔고 덮고 잠을 청한다. 일찍 일어나 근처를 더 돌아다닐 생각이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쉽게 잠이 들었다.
와글와글.
한참 잠을 자다 약간 소란한 소리가 들려 슬며시 눈을 떠보니 방안에 해장국이 배달되어 있었다.
“일어났네. 밥 먹어.”
당구장주인이 큰 소리로 밥을 먹으라고 권한다. 박천태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되었다. 박천태는 서둘러 해장국을 먹고 안내도 된다는 밥값을 주인에게 계산하고 말한다.
“저녁에 또 와도 되나요.”
“얼마든지 오게. 숙박비는 안 받으니.”
자기들과 차원이 다른 당구고수가 왔다고 해서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당구장주인은 박천태가 계속 자기 당구장을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따 와서 기술 당구 몇 번 시범 보여주게.”
“알았어요.”
박천태는 서둘러 화장실에서 세면하고 당구장을 나왔다.
역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10시가 되어 논산역 대합실로 갔다. 공주에서 찾아온 강희옥과 관촉사를 구경했다. 다시 논산으로 돌아와 논산극장도 들어가 영화를 관람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지기 섭섭한 표정으로 강희옥은 박천태에게 묻는다.
“오빠, 다음에 부대로 면회 가도 되지요.”
“그야 희옥이 맘이지.”
“면회도 가고 편지도 꼭 보낼게요.”
“알았어. 잘 가라.”
“예. 오빠도 휴가 재미있게 보내세요.”
차표를 사서 강희옥을 공주로 가는 시외버스에 태워 보내주면서 뭔가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그래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다루면 안 될 애야.’
보면 볼수록 참한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별로로 생각했던 애가 볼수록 야무지고 똑똑했다.
어떤 행동을 벌일 기회는 많이 있었지만 애써 욕망을 눌렀다. 그래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는 않았다.
‘참기를 잘한 거야. 책임도 못 지는 일을 저지르면 안 돼.’
군대를 들어와 공부를 시작한 박천태는 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머리에 들어가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점점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어서다.
물론 정순이 대위와의 일은 제외한 상태의 행동을 말한다.
‘정 대위와도 이쯤에서 끝내자고.’
강희옥을 만나며 자기의 행동이 비정상이라고 점점 생각 들었다. 그 때문에 부대 복귀를 기해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다. 물론 정 대위가 어찌 나올지 모르니 현재로는 장담하기 곤란한 복잡한 문제였다.
강희옥을 집으로 보내고 나자 박천태는 다시 역전다방에 들렸다 미리 예약된 숙소인 당구장으로 향한다.
당구장주인은 박천태가 오자 매우 반긴다.
“어서 오게. 자네와 당구 친다고 찾아온 손님이 많네.”
“그래요?”
박천태의 당구실력이 좋다니 논산에서 당구 잘 친다고 자부하던 녀석들 찾아와 내기당구를 치게 되었다. 물론 진짜 고수는 내기해서 결정해야 된다는 당구장주인의 부추김이 있었다.
박천태는 휴가기간 내내 논산에서 내기당구를 치고 역전주변을 살피며 지내다 병원으로 돌아갔다.
빠르게 자기 더블 백을 챙겨 가지고 포병대대로 복귀했다. 정순이 대위에게는 급한 볼일 때문에 연락하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다음에 만나자고 말하고 도망치듯이 떠난 것이다.
부대로 돌아와 신고식을 하니 바로 일병으로 진급 신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동기들보다 일병 진급이 많이 늦었다.
정순이 대위는 별로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지나면 박천태가 정기 휴가를 나오니 그때 뭔가 담판을 지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하여 박천태는 휴가 중에 전에 살던 부산이나 돌아 볼 생각이다.
‘휴가를 겨울방학에 받으면 형님과 같이 부산에 가는데.’
같이 부산을 떠날 궁리를 하지만 김수훈은 그가 건네준 돈 때문에 고민이 전보다 많아졌다.
논산에서 잠깐 박천태를 만나 100만원을 받게 된 김수훈은 전과 달리 이 돈을 은행에 예금했다. 나름 이 돈을 이용해 돈을 불릴 사업거리를 찾게 되었다.
어린 나이로는 큰돈이지만 무슨 사업을 하기는 많지 않은 돈이다. 만약 나이가 많다면 이 돈으로 포장마차라도 해보련만 그런 나이도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뭘 해서 그 돈을 불리지.”
학교의 수업 시간에서도 내내 사업거리 생각으로 하루 종일 보내고 있다. 방과 후에 다시 도서관으로 와서도 그 생각뿐이다.
그러다 이은혜가 도서관에서 소설을 보자 그제야 자기가 지금 당장 할 일거리를 찾게 되었다.
‘그래, 무협 소설을 써보자고.’
물론 전생에 인터넷으로 무협소설을 써서 몇 천만원을 벌어본 경력은 있다. 그러나 그런 실력이 여기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현재로는 그것이 제일 좋은 돈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돈을 벌지도 몰라. 스토리야 무궁무진하니까.’
김수훈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자기가 살던 시절에 유명했던 소설을 그대로 스토리는 따서 작문만 하면 되니 작품 구상이야 필요 없었다.
‘원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별수 없다고, 내가 살아가기 바쁘니.’
원고에 글씨로 쓰기보다 타자가 빠른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타자기를 사서 도서관의 공부방 옆의 작은 공간에 비치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조지정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삼촌, 타자기는 사서 뭐하려고요?”
“그냥 심심해서 소설을 써보려고.”
하지만 소설 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컴퓨터라면 언제든지 수시로 찾기 기능으로 오탈자도 찾아내니 쉽지만 이건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스터디 그룹 애들과 공부를 같이 하거나 혹은 자기 공부도 하지 않고 계속 타자만 치고 있었다. 그러니 스터디 그룹에 속한 아이들은 모두 조금 이상하게 보고 있다.
‘도대체 삼촌은 뭐하는 거지?’
항상 뒤를 따라 다니는 이은혜는 타자를 치고 있는 김수훈에게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오빠! 뭐해?”
“무협 소설 좀 써보려고.”
“커서 소설가 되려고?”
“그래! 너는 뭐가 되려고 하냐?”
“나야 당연히 검사해야지. 그게 제일 쉽잖아.”
자기로는 엄두가 안나 포기한 사법시험이 쉽다니 기가 막히다. 김수훈은 자기와는 차원이 다른 애라고 생각하며 다시 자기 희망 직업을 말한다.
“나는 소설가나 되려고 한다.”
“그것 검사되기보다 어렵지 않나요?”
“너는 그런지 몰라도 나는 소설가가 더 쉽게 생각된다.”
막상 이렇게 대답하고 보니 직업으로 소설가가 아주 좋아 보였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적어도 10년 이상을 한 우물 팔 시간이 있으니 30살 정도까지 많은 작품을 써둘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많이 써두고 나중에 적당한 시기를 노려 팔아 버리는 거야.’
통하면 좋고 아니면 사업이나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엄마가 어느 정도 부만 이룬다면 그 돈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나 하고 편하게 살 궁리만 하고 있었다.
김수훈이 타자를 쳐놓은 소설을 조금 읽어보던 이은혜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한다.
“에이, 겨우 삼류 소설에 불과한 무협이네.”
“왜? 재미없냐?”
“오빠, 무협소설이 신나는 장면도 없어. 너무 재미도 없고 내가 보기에는 문장실력도 별로야. 뭔가 끌어당기는 맛이 너무 없어.”
“그런 정도냐?”
“응! 이것 출판은 틀린 소설 같은데.”
제일 첫 번째 독자로부터 저평가를 받고 보니 장래 희망을 잘못 선택했나 싶었다.
‘소설가로 성공하기는 틀린 건가?’
너무 저평가로 인해 은근히 뿔도 나고 오기도 생겼다. 전생에서도 별로 큰 성공을 못했지만 여기서도 별 볼일 없다니 투지가 살아났다. 그래서 김수훈은 이날 이후로 공부는 완전히 뒷전이고 소설책만 보며 파고들고 있었다.
김수훈은 이렇게 주구장창 소설책이나 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자 뭔가 기대하고 스터디 그룹으로 나중에 합류한 다섯 명의 남학생들은 하나둘 이탈하고 있었다.
“저 자식. 소문만 무성하지. 별 볼일 없네.”
“오늘도 소설만 보냐?”
“그러던데. 아니 만점 몇 번 맞았다고 뭔가 배울 것이 있는 줄 알았더니 소용없네.”
“차라리 우리끼리 그룹 과외하자고.”
“알았어.”
결국 다섯 명의 학생은 도서관에서 떠나 대학생에게 그룹 과외를 받기로 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이 사용하던 공부방은 이제 김수훈이 혼자서 사용하는 장소로 변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은혜도 자주 사용하니 둘이 같이 지내는 공간으로 변했다.
이상한 행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귀찮은 부류 한 무더기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렸다.
넓은 공간이 생긴 이은혜는 신이 나서 말한다.
“여기가 제 2 아지트네.”
“뭐? 아지트.”
“뭘 다 알면서 오빠는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일종의 유도심문처럼 말하고 있다. 여전히 김수훈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또한 이은혜 역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전생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
“오빠! 나 이상한 애지?”
“그래, 이상한 애 늙은이다.”
“맞아, 나 그런 이상한 귀신들린 여자야. 30살 노처녀로 죽은 오리지널 처녀 귀신.”
결국 이은혜는 전생의 나이를 이런 식으로 발설한다.
“그러냐? 꼬맹아!”
“오빠, 앞으로 나보고 꼬맹이라고 부르지 마. 나 열 받는다고.”
“열 받으면 네가 어쩔 건데.”
그러자 이은혜는 김수훈이 상상도 해보지 못하던 기겁하는 소리를 토한다.
“나 열 받으면 여기서 홀라당 벗고 소리친다고.”
“뭐?”
“그럼, 오빠는 아마 최소한 5년 이상은 감옥 가서 썩어야 할 걸.”
김수훈은 입이 떡 벌어져 다물 줄 모른다. 그러자 이은혜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말한다.
“오빠, 그게 좋은 모양이네. 입에 파리 들어가게 좋아서 쩍 벌리는 것 보면.”
참으로 다루기 힘든 고약한 애다. 검사 생활을 했다더니 이건 완전히 조폭보다 더 무섭게 협박을 서슴지 않으니 상대해봐야 손해다.
순간 박천태와 이은혜가 만나 만약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분명히 이 애를 몰래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약하군. 아무래도 두 사람은 만나면 안 되겠어.’
그래서 김수훈은 이은혜가 더 이상 돌출 행동을 못하게 하기 위해 살살 달랜다.
“은혜야, 너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냐?”
“그야 당연히 날 평생 지켜줘야 되는 거지.”
완전히 평생 보디가드로 써먹겠다는 발상이다. 두 사람은 이런 남이 들으면 조금 이상한 대화 정도는 하지만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안하고 있었다.
전생에서 넘어 왔다는 실체를 말하다 남이 단 한번이라도 들으면 진짜 세상 뒤집어 지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 그런 말은 이들에게는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 금지 어다.
결국 김수훈은 이은혜가는 끔찍한 협박 발언도 있어 그 애가 원하는 데로 방을 같이 쓰기로 결정했다.
“은혜야! 방만 같이 쓰면 되냐?”
“우선은 그 정도만 하면 돼.”
“알았어!”
공부방 옆방에는 김수훈은 타자를 치고 이은혜는 읽어 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교정하고 있었다.
“오빠! 타자로 쳐서 그런지 오탈자도 너무 많네.”
이은혜는 소설이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김수훈의 소설을 읽고 수정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린 자기로도 쉽게 돈을 버는 수단으로는 지금으로는 소설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빠, 필명으로 소설 낼 거지?”
“그야 당연하지.”
“그럼, 나와 동업해도 되겠네.”
“동업?”
“응! 오빠는 무조건 쓰면 나는 옆에서 글 다듬고. 나중에 글 잘 써지면 내가 영문 번역까지는 책임지고. 뭐 필요하면 일본어로 변역도 내가 해주면 되잖아.”
결국 국어 실력은 물론 일본어나 영어는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김수훈은 아직도 이은혜에게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묵시적으로 서로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김수훈은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