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청양 상설시장의 구석에 있는 은산한복집······.
경찰서에서 나온 수훈과 천태는 유리문으로 장식한 아주 작은 가게 앞으로 갔다. 6평정도 되는 가게 안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중년을 넘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작은 돋보기안경을 쓰고 곱게 만들어진 한복을 다리던 박명숙은 반갑게 아들을 맞이했다.
“아들! 엄마 때문에 고생 많네.”
·“·······.”
다정한 목소리를 듣자 김수훈은 너무 어색해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했다. 그러자 박명숙은 빙그레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엄마 보고 말도 안하는 것 보니 경찰서로 끌려가 많이 놀랐나 보네.”
박명숙은 아들이 경찰서로 잡혀갔다는 소리에 놀라 급하게 찾아갔었다. 어렵게 만난 경찰서장은 아들이 어린아이라고 하며 금방 풀어준다고 했다.
박명숙은 높으신 분의 말씀이라 믿었다. 한복집으로 돌아와 만들고 있던 한복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내일아침 일찍 새색시가 입을 옷이라 약속을 어기면 안 됐다.
“어서 들어오지 뭐해?”
여전히 아무 말 안하고 서 있자 다리미질을 멈추고 박명숙은 수훈의 손을 잡아끌어 얼른 가게 안에 앉혔다.
수훈은 엉거주춤 가게의 턱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아들! 배고프지? 우선 이거 먹어라. 엄마가 금방 밥해 줄게.”
금방 사온 것으로 보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건네줬다.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인 수훈은 급하게 입으로 넣으려다 멈췄다.
문 앞에 서서 침을 삼키며 찐빵을 바라보는 천태를 보고 불쑥 내밀었다.
“형! 이거 먹어.”
“혀~영! 흡! 고마~워.”
천태는 형 소리가 저절로 튀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기고 말꼬리를 흐렸다.
허겁지겁.
배가 너무 고픈 천태는 급하게 찐빵을 입안으로 우겨 넣었다. 그러자 수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른 찐빵도 모조리 천태에게 주며 말했다.
“형이 다 먹어! 좀 천천히 먹어! 물도 먹으며.”
이 말에 순간 천태의 눈가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전생에서도 못난 자기를 늘 돌보던 형이다. 이제 어려진 상태에서도 자기를 먼저 챙기려고 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남을 도우려는 착한 아들을 보는 박명숙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구, 착한 우리 아들. 엄마가 찐빵 더 사 오마.”
그녀는 서둘러 한복집을 나와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빵집으로 급히 달려갔다.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다들 뭐라고 수군거렸다.
“착해서 복 받아 산삼 발견한 거야.”
“암!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되는 거니. 구경하는 우리도 살 맛 나는 거지.”
박천태와 김수훈은 지병이 있는 박명숙의 치료에 좋다고 해 가제를 잡으러 갔었다. 주변에서 떠드는 사람들 이야기로 대략 그런 이유로 칠갑산의 장곡사로 간 것을 알게 됐다.
도무지 몸 주인의 실체나 어떤 기억이 현재로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최선이다.
박명숙이 찐빵을 사와 수훈에게 넘겨주자 그제야 찐빵을 들고 호호 불며 먹는다.
‘오호! 찐빵 아주 맛있네.’
그냥 배가 고파서 맛있는 정도가 아니다. 진짜 솜씨 좋아 만든 무척 맛있는 찐빵이다. 뜨거운 찐빵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수훈은 찐빵을 맛있게 먹다 멈칫했다. 방금 생각난 표정으로 품속에서 산삼을 꺼내 보여 주며 말했다.
“엄마! 이거 산삼이라네.”
두 뿌리의 산삼을 보며 박명숙은 화들짝 놀랐다.
“네가 산삼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
“예, 엄마가 먹어.”
“나 보고 먹으라고?”
“예, 먹어요.”
아들의 말에 기쁘면서도 너무 귀한 산삼이라니 먹기가 망설여졌다. 주춤거리는 박명숙을 보고 수훈은 무작정 한 뿌리를 입으로 밀어 넣듯이 드민다.
안 먹으려고 얼굴을 뒤로 빼자 가게 앞에서 구경하던 시장의 소머리국밥집 여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여 먹어! 아들이 힘들게 약으로 구해온 산삼이니 먹어야 혀.”
“어여 먹어! 아들 팔 떨어지겠네.”
다른 사람도 같은 투로 먹기를 권했다. 박명숙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흔한 인삼 한 뿌리 삶아 먹지 못했다. 난생 처음으로 귀하디귀한 산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먹는다.
감격에 겨워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이제야 자식 키운 보람이 느껴졌다. 주책없이 가칠한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수훈이 두 번째 산삼을 먹이려고 들자 그제야 산삼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말했다.
“이건 팔아서 네 학비로 쓰자,”
박명숙은 아들이 넘겨준 산삼을 옆으로 치워 놓는다.
이때 작은 한복집으로 웬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 닥쳐 박명숙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여기가 산삼이 있다는 한복집이오?”
“예, 무슨 일인데요?”
“산삼 구경 좀 합니다.”
너무 위압적으로 말하자 박명숙은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때 청년들 뒤에 서있던 허연 수염인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말했다.
“나, 산삼 사러왔소.”
“누구신지?”
“서울에서 한의원하는 사람입니다. 근처를 지나다 산삼 발견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진짜 산삼인지 확인하고 값을 후하게 쳐줄 거니 보여 주시오.”
나이도 많고 하는 말이 매우 정중해 보였다. 박명숙은 조심스럽게 산삼을 노인에게 넘겨준다. 노인은 돋보기를 꺼내 산삼을 아주 자세하게 살피더니 매우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귀한 산삼을 무 뿌리처럼 함부로 취급하다니. 산삼은 이것 하나요?”
“예!”
“나에게 파시오, 내가 꼭 산삼을 가져다 드릴 귀한 분이 있어 그렇소.”
간곡한 표현으로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박명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필요한 분이 있으면 드려야죠.”
의외로 쉽게 팔겠다는 박명숙의 대답에 노인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얼른 가격을 말했다.
“좋소, 가격 흥정안하고 팔겠다니 나도 후하게 주지요. 200만원이면 되겠소?”
너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박명숙은 잠시 얼이 빠졌다.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노인을 바라만 본다. 정신을 겨우 수습한 박명숙은 너무 떨려 말을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노인은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눈짓했다. 청년은 들고 있던 검은 서류가방에서 200만원을 꺼내 놓으며 말했다.
“아줌마, 확인해 보세요.”
여러 다발의 돈 둥치를 보자 그제야 현실감이 생긴 박명숙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산삼이 그렇게 귀한 겁니까?”
“그렇소.”
노인은 짧게 답하고 산삼을 챙긴 뒤. 누가 따라와 산삼을 빼앗아 갈까 겁난다는 듯이 황급히 자리를 뜬다.
200만원이면 어기간한 집 한 채 값이다. 지금보다 더 큰 가게 하나를 충분히 살 돈이다. 주변에서 이런 거래를 보던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했다.
“은산댁, 정말 복 받았네.”
“효자 났네.”
너무 큰돈이 생기자 박명숙은 급하게 돈을 들고 근처의 농협으로 달려갔다. 야간에도 숙직 근무자가 예금을 받는다. 도둑이 들까 겁나 맡길 생각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모두 사라졌다는 표정으로 다들 더덜거리는 걸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은산한복집에서 산삼을 거래하고 나자 수훈은 슬며시 가게에서 나왔다.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천태를 끌고 사람들이 없는 어둑한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말했다.
“천태야, 나는 그런대로 지낼 수 있겠지만 앞으로 네가 걱정이다.”
“그러네요. 형님, 중학교 출신인 제가 전문대학 출신이라니 미치겠네요.”
청양경찰서에서 신원 확인하는 과정 중. 두 사람은 스스로 잘 모르는 신분을 알게 됐다.
전생의 이름과 같은 박천태는 1955년 10월 16생으로 고아원출신이다. 뛰어난 태권도 실력 덕분에 청양농업고등학교와 예산농업전문학교 축산과를 특기생장학금을 받아 졸업했다.
청양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며 들었던 박천태의 이력이다. 무식하고 싸움만 할 줄 아는 박천태는 참으로 곤란한 사태가 벌어졌다.
“형님, 어쩌죠. 이러다 정체가 탄로 나게 생겼네요.”
“인마, 왜 탄로가 나냐? 겨우 전문대 졸업이니 지금부터 공부하면 되지.”
공부하라는 말에 박천태는 입을 떡 벌리며 기겁했다.
“형님, 전 공부는 죽어도 못해요.”
“안하면 모두 까발리고 실험실에서 해부 당할래.”
박천태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두려운 표정으로 힘없이 물었다.
“형님, 공부 안하고 그냥 버티는 방법이 있겠죠?”
“그건 나도 모르겠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 몰라 두 사람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래봐야 20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박천태는 시장에 있는 작은 방으로 가서 함석 문을 지그시 열었다.
삐그덕!
요란한 소리가 나며 함석 문이 열리자 안에는 작은 밥상이 보였다. 벽에는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의 방이라는 냄새가 저절로 풍긴다.
“미치겠네.”
많은 책을 보자 머리가 벌써 쑤셔왔다.
박천태는 방안을 모조리 뒤지고 사람들이 자신들 주변에서 떠들던 소리를 곰곰이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살기가 힘들겠어.’
시간이 흐를수록 박천태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박천태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말집처럼 길게 지어진 시장 통의 함석지붕 한 칸에 몸만 겨우 눕힐 작은 연탄 방을 만들어 지내고 있었다. 양부모가 있으나 사이가 너무 안 좋아 그냥 따로 산다.
같은 밀양 박씨라고 해서 김수훈의 어머니인 박명숙은 박천태를 먼 조카 정도로 생각해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머리를 조금 쓰자 골이 너무 아파 벌러덩 누워 잠을 청했다.
‘신세 참 처량하군. 팔자에 없는 전문대학 출신이라니.’
마음이 불안하고 심란하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오나가나 머리 나쁘고 아는 지식이 미천하니 사는 인생이 고달프기만 할 것 같다.
한편 박천태와 이웃에 사는 김수훈은 1965년 1월 20일 생이다.
청양시장에서 은산한복집을 운영하며 혼자 사는 박명숙의 외동아들이다. 이제 청양국민학교 5학년으로 성적은 중간이고 친구가 별로 없는 얌전한 아이다.
이런 정보 역시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떠들어 대충 알았다.
수훈은 한복집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고민 중이다.
‘큰일이네. 천태 자식, 영어 알파벳도 잘 모르는 정도인데. 전문대 출신이고 태권도 3단이라니 영 적응이 쉽지 않겠어.’
자신이야 아주 어려졌으니 그저 주변의 인간관계만 적당히 적응하면 버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잘만 하면 편하게 살겠어.’
이런저런 생각하며 고민하던 수훈은 경찰서에서 시달림도 받고 너무 신경 쓰는 바람에 피곤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돈을 농협에 맡기고 돌아온 박명숙은 아들이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며 나름 고민했다.
“저 녀석 앞날을 위해 그 돈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갑자기 찾아온 큰 복이라 박명숙은 마음이 너무 심란하다. 때로는 현실감이 안 들어 상당히 불안하고 초조하다.
세 사람이 심란해서 뒤척이거나 잠이 들지 못하는 동안. 이웃한 도시인 부여에서는 다른 사람이 같은 이유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부여읍 구교리에 위치한 서장관사가 있는 바로 옆의 한옥 작은방.
오래 전. 일본인들이 주로 관사로 이용하던 집이다. 방들은 매우 작고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일 구석에 있지만 남쪽으로 창문이 나있는 푸근한 방이다.
이은혜는 잠든 척해 앞으로 살아야할 아지트로 무사히 안착했다. 본시 공부 잘해 사법고시 합격해 검사하던 이은혜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살금살금.
아무도 없는 집이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뒤진 흔적이 전혀 안 남게 책장을 들추거나 가족 앨범을 들추는 방법으로 자신의 신분을 확인했다.
궁남지로 남편이 술을 퍼먹으러 가자 엄마라는 여자도 집에 자기를 눕히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기회다 싶어 도둑고양이처럼 집안을 사그리 뒤졌다.
뒤적뒤적.
수색 영장만 안 들었지.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물증을 잡으려고 가택 수색하는 기분이다.
“오라! 이것이 있네.”
무엇에 쓰려는지 주민등록등본과 호적등본이 경대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쉽게 가족관계는 파악됐다. 허가증이나 명암도 발견해 아버지라는 사람의 직업도 알았다.
집안을 뒤져 필요한 것을 알아냈다. 이제 안전한 아지트서 천천히 앞날을 구상하면 됐다. 30살 나이에서 5살로 몸이 어려졌지만 두뇌에 들은 지식은 그대로니 세월이 지나기만 기다리면 됐다.
‘어차피 상황이 이러하니 편하게 마음먹고 세월 가길 기다리자고.’
하지만 정작 고통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밤이 깊어 술 취해 들어와 자기의 고귀한 몸을 더듬는 아비라는 더러운 남자의 손길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캬약!”
술 냄새를 풍기며 뽀뽀하려니 이은혜는 괴성을 지르고 부들거렸다. 미치고 팔딱 뛰고 너무 기가 막힌다. 거품 물고 졸도하게 생긴 어린소녀 성추행 행위다.
“여보! 애가 싫다는데 왜 그러세요.”
“무슨 소리야? 은혜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느글거리며 말하는 아비라는 사람의 태도에 이은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치욕감으로 인해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떤다.
첫날은 그런대로 대충 넘어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큰 위기가 닥쳤다.
아빠라는 작자가 사업장으로 출근한다며 자기 방으로 쳐들어왔다. 이은혜는 생각을 너무 오래 하느라 곤하게 펴져 자고 있었다.
갑자기 누가 자기를 안아들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 괴한이 자기를 강간하려고 덮치는 줄 알았다.
“캬악!”
“너! 아빠 좋아 하잖아. 왜 그래?”
곤하게 자는 딸이 귀여워 품에 꼭 안아 주려고하면 사지를 벌벌 떨며 괴성을 지른다. 이덕배는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용돈 달라고 저러나?”
이은혜는 설사 몸의 주인인 소녀 아비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매사 돈으로 계산하려는 종류의 인간은 혐오하는 까칠한 여자니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더러운 놈! 제발 저리가라!’
술 냄새나 담배 냄새, 그리고 무식한 말투도 영 마음이 안 들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그러나 심하게 접촉하려는 스킨십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미치겠네.’
특히 예민한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이 만질 때는 미치도록 역겹다.
‘이거 혼자 나가서 살 수도 없고 하루가 지옥이니 정말 돌겠네.’
참으로 편한 삶이란 없다고 아비의 사랑이 너무 많아 탈이다. 이은혜는 그런 사랑이 너무 괴로워 죽고만 싶으니 참으로 유별난 삶이다.
세 사람은 같이 다른 세상으로 와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