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장. 한남동, 그 형제들 (10/11)

10장. 한남동, 그 형제들

제법 거센 바람을 정면에서 마주한 소나무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파스스 떨리는 가지의 곳곳에서는 솔잎이 떨어지기도 하고, 때때로 솔방울도 떨어졌다. 잠자코 보고 있으면 마치 소나무가 스스로를 버려내는 과정인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털어내고, 단지 둥지와 가지만 남기려는 것처럼.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솔방울이 윤민의 앞발에 닿았다. 윤민아, 또 떨어진다. 주워야지. 살짝 고개를 숙인 세영이 앞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상자에 담으며 말을 건넸다. 잠시 아래를 보며 솔방울의 갸름한 모양새를 살피던 윤민이 한숨을 쉬며 손을 끌어내리고는 그것을 쥐었다.

사모님, 진짜 안 하셔도 되는데. 지금 청소도구도 없어서 굳이 손으로 하시면 더 불편하기도 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남자직원이 당혹스러워하며 연신 세영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본 체도 하지 않은 세영이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서 쉬세요, 아저씨. 이런 거라도 우리가 해야지. 이 기회에 우리 윤민이랑 데이트도 하고. 응? 말을 마친 세영이 살짝 윤민 쪽을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무표정으로 그 얼굴을 보던 윤민이 살짝 고개를 돌려 정원 관리사를 봤다. 네, 아저씨. 들어가서 쉬세요.

마지못해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정원 관리사의 뒷모습은 느슨한 오후를 닮아 있었다. 윤민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과 솔잎을 하나하나 줍는 세영 쪽을 향했다. 비스듬히 아래를 향한 둥근 이마와 보기 좋게 올라온 콧대, 봉긋한 입매는 신이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든 피조물을 연상케 했다. 이세영은 윤민이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윤민아, 안 할 거니? 멍하니 세영의 얼굴만 보고 있는 윤민 쪽으로 세영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네, 해요. 느릿하게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손 안에 담고 있으니, 온 몸 가득히 솔 향이 배는 것만 같았다.

“학교생활은 어때. 너도 이제 4학년이잖아. 이전하고는 다르지 않겠니.”

“별 거 없어요.”

“또 반장을 했다며. 네가 원해서 한 거야?”

“원한 거 아니에요. 애들이 다 하라고 해서요. 선생님도 그걸 필요로 하는 것 같고.”

정말 원해서 한 게 아니었기에, 제법 퉁명스럽게 답변한 윤민이 입을 다물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윤민은 유치원 때부터 반장 내지는 반장 비슷한 역할을 도맡아왔다. 선생들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윤민에게 그런 걸 시켰고, 학급 아이들도 윤민이 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것이 타고난 특권이라거나 행운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운명이었나보다 하고 말았다. 그게 특권이나 행운이 될 수 있다는 걸 안 건 최근에 들어서였다. 그런 걸 하고 싶은데도 여력이 안 돼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알았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저들은 왜 저런 걸 못할까 싶은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세영은 그런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타일렀다.

팔에 안은 것들을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가져온 윤민이 그것을 한꺼번에 밑쪽으로 낙하시켰다. 투두둑 하는 가벼운 소음과 함께 네모난 상자 이곳저곳으로 솔방울이 튀었다. 다시 줍던 자리로 와서 다소 길게 숨을 쉰 윤민이 여전히 바닥을 점령하다시피 한 솔방울을 꾸준하게 손아귀에 품었다. 윤민아. 엄마가 너만 데리고 이런 거 하자고 해서 귀찮아? 문득 저편에서 세영이 물어왔다. 윤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니. 윤석이는 아버지랑 같이 골프장에 갔고, 윤수는 아직 자고 있고. 윤혁이는 세 살이라 이런 거 하다가 다칠지도 모르고. 윤성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까. 언제나처럼 설득하는 방식부터 취해오는 어머니의 말에 윤민은 반사적으로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윤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품 안 가득 솔방울을 담은 윤민이 다시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솔방울은 주워도 주워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상자 안에도 충분하고, 나무 밑에도 충분한데. 이대로 스스로를 비워내기에는 억울하다는 것처럼.

“부반장 하는 여자애 있잖아. 수진이었나?”

“네.”

“그 애가 너 좋아하는 거 같던데. 너도 제법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고. 아주 예쁘게 생겼던데.”

“친절하게 대하는 쪽이 더 편하니까요. 관심은 없어요.”

단조롭게 답하는 윤민의 말에 세영은 나긋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손에 쥐고 있던 수많은 솔방울 중에 하나가 문득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맞은편에 있던 윤민이 빠르게 그것을 손아귀에 담았다.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솔방울을 쏟아 낸 세영이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손에 쥐고 있던 윤민 쪽으로 다가왔다. 이내 양 손 가득히 윤민의 얼굴을 쥐고는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큰일이다, 윤민이는. 문득 세영의 입 밖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윤민의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쓸어내리며 세영이 말을 이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예쁘고 잘 생겨서. 반 애들도 여자고 남자고 다 너만 좋아하잖니. 윤민의 눈살이 마뜩잖게 찌푸려졌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저한테 좋은 거예요? 전 피곤하던데.

그건 진심이었다. 윤민은 사람들의 관심이 때때로 귀찮았다. 자신의 사소한 반응에도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어대며 연신 말을 붙여대는 여자애들도 그랬고, 별로 섞이고 싶지 않은데 자신과 친하다는 것을 굳이 어필하며 으스대는 남자애들도 그랬다. 자신에게 있어 필요한 사람은 한정적이었고, 그 사람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살아가면 오히려 더 피곤해질 때가 있었다. 스스로 이유는 몰랐지만 윤민은 눈에 띄는 편이었고, 그래서 사소한 불친절도 쉽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불친절이 두드러지는 사람은 그만큼 적을 빠르게 만드는 법이었다.

적을 만드는 것이 만들지 않는 것보다 더 귀찮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가능하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웃으며 대꾸해줬다. 그쪽이 감정소모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방식이라는 걸 언젠가부터 알게 됐다. 철저하게 효율성을 따진 전략이었다.

그랬구나. 무표정한 윤민의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던 세영이 스르르 그 얼굴에서 손가락을 떼어냈다. 매끄러운 손가락은 떨어질 때조차도 물이 스치는 것처럼 촉촉한 감각을 남겼다. 윤민으로부터 조금 멀어진 세영이 잠시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다가 바닥의 솔방울을 하나하나 주웠다. 윤민은 저 모습조차도 타고 난 우아함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영은 이미 대학교 일 학년 때 오승조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졸업한 후 제대로 사회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교양 있게 다가갈 줄 알았고, 쉽게 타인을 사로잡는 법도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한 여느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매혹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윤민은 세영이야말로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완벽한 여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윤민아. 문득 윤민의 이름을 부른 세영이 손바닥에 솔방울을 하나하나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네. 단답으로 응한 윤민을 일별하고는 소나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끌어올리며 세영이 찬찬히 말을 건넸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널 좋아하게 될 거고, 너는 거기에 익숙해질 거야. 너는 네가 원하는 수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고, 어쩌면 그건 전부 다가 될지도 모르지.”

“그래서요.”

“그래서 너는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해. 얻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버리는 법을 모르게 된단다.”

담담하게 말을 건넨 세영이 품 안의 남은 공간에 솔방울을 채웠다. 빈틈까지 빼곡하게 채워지는 갈색의 타원형 물체를 보고 있으니, 윤민의 머릿속에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버리는 법. 윤민은 살면서 많은 것을 버려본 적이 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가방, 필요 없는 과외 선생, 필요 없는 친구. 이미 수많은 것을 버려왔는데. 뭘 더 버리라는 걸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자신 없이 열리는 윤민의 입술을 보며 세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양 고개를 들었다.

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몸을 일으킨 이세영이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손아귀에 쥐고 있던 것들을 후드득 안에다 떨군 뒤 윤민을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영롱한 모습이 초겨울의 햇살과 겹쳐 눈이 부셨다.

“윤민이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글쎄요.”

“그러면, 정말로 이 사람이 소중하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어머니하고, 윤수 정도요.”

어머나. 윤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영이 자신의 입가를 매만지며 웃어 댔다. 양 눈가에 뚜렷하게 새겨진 호에는 예상했던 대답을 들었다는 반가움과 동시에, 일말의 당혹감이 비쳤다. 왜 저러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웃는 자신의 어머니만 쳐다보는 윤민을 향해, 세영이 길게 웃고 있던 입술을 거뒀다.

“정말 못 말리겠구나. 왜 윤수니. 다른 형제들도 많은데.”

“그야, 윤수가 저만 따르니까요.”

“정말 그 이유야?”

살짝 고개를 갸웃한 세영이 나무 아래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정말 그 이유냐니. 윤민은 세영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윤수는 갓 돌이 지나자마자 이 집에 왔다. 그 때 윤민은 여섯 살이었다.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윤수를 돌본 것은 윤민밖에 없었다. 윤석은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장남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둥의 이유로 자신이 만나는 거래처 사람들의 자리에 끌고 다니다 보니 하교한 이후에 집에 머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늘 골프장에 간 것도 오승조가 일부러 아는 국회의원과 골프를 치러 가는 자리에 데려간 것이었다. 그런 일이 윤석에게는 어릴 때부터 잦았다.

윤혁이나 윤성은 윤수보다 동생이니 당연히 윤수를 돌볼 처지가 아니었다. 오로지 윤민만이 윤수를 보살폈다. 당연히 주로 윤수를 맡은 건 세영이고, 세영이 없을 때는 몇몇 여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윤수를 봤지만. 윤민이 몇 번인가 윤수와 놀아주고 난 후에는 세영이 없을 때 윤수가 울면서 윤민만 찾다 보니 결국 그렇게 됐다. 똑같이 동생인 윤혁이나 윤성은 다른 형제들이 없을 때 특별히 질색한 적이 없는데, 윤수는 그랬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으면서 세영이 없을 때 윤수와 함께 하는 건 윤민 몫이었고, 윤민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윤민아.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볼까. 지그시 미소를 띤 얼굴로 바닥의 솔방울을 마저 줍던 세영이 말을 건넸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윤민을 향해 세영이 나직하게 입술을 열었다.

“윤수가 어느 날 갑자기 널 원하지 않는다. 이러면 어때.”

“그럴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요. 애초에 윤수는 제가 아니면.”

“윤민아.”

“네, 어머니.”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사뭇 무표정으로 말을 맺은 세영의 손아귀에서 솔방울이 바스스 흘러내렸다. 아, 이것도 계속하니까 손이 아프긴 하네. 한숨을 쉰 세영이 윤민을 향해 다정하게 물어왔다. 그렇지, 윤민이 너도? 하다 보니까 별로인 게 많잖아. 윤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공감하기에는 윤민의 나이가 너무도 어렸다. 윤민은 아직 열 살이었다.

“윤민아. 평생 너를 따르고 좋아할 것 같던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변한단다. 물론 네 주변 사람들이야 대체로 그럴 일이 드물겠지. 하지만 결국 그런 일이 생겨. 반드시, 꼭. 윤수를 비롯해서. 그래서 내가 너한테 버리는 법을 배우라고 하는 거야. 넌 그 상황이 오면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테니까. 때가 되면 놓아줘야 하는 사람도 있는 거야.”

“놓아주기 싫으면요.”

다소 불만스럽게 던진 윤민의 말에 세영이 허탈하게 웃고는 물어왔다. 윤수는 놓아주기 싫지. 응?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무작정 윤민 곁에만 붙어 있으려 하는 윤수가 귀찮았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상 윤수가 없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왜 유독 윤수에게 그런 감정이 드는지는 윤민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윤민은 그 무렵 확고한 생각을 하나 했다. 윤수만큼은 안 된다고.

“놓아주기 싫으면, 기다려. 윤민아.”

“기다린다고요.”

“응. 몇 년이든 기다려. 십 년이든, 백 년이든. 그 사람이 다시 너한테 올 때까지. 나도 결국 너희 아버지가 계속 기다리다가 이 집에 돌아온 거잖니.”

미소 띤 낯으로 말을 마친 세영이 흙으로 점철된 손을 탈탈 털어 댔다. 아, 이제 못하겠다. 윤민아, 들어갈까. 등을 돌린 세영이 먼저 집을 향해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늘진 소나무가 소리 없이 그 빛나는 존재에 차광막을 드리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존재의 뒷모습은 더욱 찬란하게 정원을 적셨다. 그 아름다운 등을 읽던 윤민의 입술이 사르르 벌어졌다. 기다리기 싫으면요. 한 발 한 발 딛고 있던 세영의 몸이 순간 멎었다.

서서히 고개를 돌린 세영이 정말이지 곤란하다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하얀 낮의 햇살을 품을 얼굴이 마치 그 온도처럼 따스했다. 다시 윤민 쪽으로 다가온 세영이 윤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대로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게 하면서, 여유 있게 말을 꺼냈다.

“윤민아. 엄마는 너한테 큰 거 안 바라. 네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설령 그게 엄마를 괴롭게 하는 일이라 해도. 이미 그렇게 태어난 사람을 엄마가 어떻게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니.”

“제가 어머니를 괴롭힐 일은 없을 텐데요.”

“말했잖아. 사람 일은 모른다고. 그러니까 윤민이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다만 한 가지만 알고 있어. 누군가가 정말 원하면, 그 사람을 놓아줘야 하는 때도 있다는 걸.”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가던 윤민의 고개가 자신 없이 숙여졌다. 윤민이 대답을 망설이는 걸 알아챈 세영이 한 번 힘을 줘서 질문을 건넸다. 윤민아, 대답해야지. 응? 바닥에 닿는 잔디의 차가운 온도 때문에 대답을 못하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도 내놓을까 하다가. 윤민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네.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계단에 걸터앉아 울고 있던 윤수가 빠르게 달려와 윤민의 품에 안겼다. 놀란 세영이 윤수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윤수야, 왜? 완전히 물기에 잠긴 윤수의 입술이 열렸다. 오윤혁이 때렸어. 또.

하, 정말이지. 이마를 살며시 쥐면서 웃어 보인 세영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이층을 향하며 입을 열었다. 엄마가 윤혁이 혼내 줘야겠다. 윤수 잠깐 기다려. 이층으로 올라가는 세영을 눈에 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제 품에 안겨 우는 윤수를 내려다 봤다. 손아귀에 윤민의 옷을 꼭 쥔 채 서러운 듯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윤민은 아직도 아까 세영이 한 말이 와 닿지를 않는다. 어떻게, 오윤수가 나한테서 떠나갈 생각을 할 수 있지.

문득 현관 입구가 열렸다. 막 골프를 마치고 돌아온 듯한 오승조와 윤석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들이는 게 보였다. 오셨어요, 아버지. 무표정으로 윤민의 인사를 받은 오승조가 대뜸 세영부터 찾았다. 어머니는, 어디 갔어. 망설이던 윤민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셨어요. 윤혁이 방이요.

그래? 거기까지만 말을 마친 오승조가 성큼 이 층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쓰고 있던 모자를 끌어내리면서 윤석이 윤민 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윤수를 품에 안고 있는 게 어딘가 못마땅한 모양새였다. 왜 그러고 있어. 윤민이 피곤하다는 음성으로 답했다. 윤혁이가 때렸대. 지금 엄청 울고 있어.

살짝 혀를 찬 윤석이 윤민 쪽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울음소리를 그치지 못하는 윤수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오윤수. 고개 들어 봐. 완전히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드는 윤수의 머리통을 지그시 쓸어내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을 뱉었다. 대체 얘는 왜 이렇게 안 크는 거야. 이러니까 오윤혁한테 맞고 다니지. 윤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뚝뚝 눈물을 흘려 대는 윤수를 보고는, 불현듯 실수했다는 얼굴로 윤석이 윤수의 얼굴을 다급하게 어루만졌다. 아냐. 그런 의미 아니었어. 응?

이층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매섭게 들렸다. 꽤나 표정을 굳힌 오승조가 이세영을 뒤에 두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윤민의 눈살이 불안하게 일그러졌다. 세영과 함께 부엌 뒤 쪽에 있는 지하실로 향하려던 오승조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것처럼 윤수 쪽을 쳐다봤다. 윤수는 이리로 와라.

여전히 울고 있던 윤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뭇 무서워졌는지 바들바들 떨어 대는 작은 몸을 윤민이 살며시 품에 안았다. 등을 다독이면서 위로하듯 얘기했다. 윤수야. 그냥 가서 눈 감고 있어. 금방 끝나.

마지못해 윤민으로부터 떨어진 윤수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세영 쪽을 향했다. 윤수를 품에 안은 세영이 오승조를 따라 부엌 뒤편으로 걸어갔다. 이내 무겁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형. 또 싸운 것 같아. 이층 복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며 윤혁이 한 마디 하는 게 들렸다. 윤민과 윤석의 고개가 절로 그 쪽으로 올라갔다. 일단 위층으로 올라간 뒤, 윤혁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윤성이 잠이 들어 있었다.

오윤혁. 너 왜 그랬어. 침대에 앉자마자 날카롭게 몰아세우는 윤민의 말에 윤혁이 길게 숨을 뱉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왜 자꾸 윤수 때리고 그래. 다시 한 번 묻는 윤민을 향해 윤혁이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때리려고 한 거 아냐, 난 윤수 좋아한단 말이야. 윤혁의 대답에 그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친 윤석이 제대로 정정했다. 형이라고 해야지, 왜 자꾸 윤수라고 해. 답이 없던 윤혁이 그게 별 거냐는 얼굴로 대꾸했다. 나보다 작은데 어떻게 형이야. 그건 너무도 맞는 말이라서, 윤민도 윤석도 반문하지 않았다.

“좋아하는데 왜 때린 거야.”

“그야, 윤수가 윤민 형만 쫓아다니니까.”

“내가 윤수를 돌보니까 그렇지.”

“그게 짜증난다는 거야. 나는 잘 해 주려고 하는데 쟤가 싫다고 하잖아.”

“사람은 놓아줘야 할 때도 있는 거야. 오윤혁.”

심드렁하게 말을 건네고 나서, 윤민은 스스로 왜 그 말을 했는지 잠시 의심했다. 돌이켜 보니 아까 전에 세영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사실은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데, 그냥 일단 써먹었다. 너 진짜 어머니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 자꾸 할래. 껄끄럽게 혀를 찬 윤석이 문득 뒤편에 있는 윤성을 쳐다봤다. 쟤는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동시에 쳐다보던 윤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런 애들은 자폐 아니면 천재래. 울어야 할 때 안 우는 거.”

“그게 뭔데.”

“나도 몰라. 아무튼 아줌마가 그랬어.”

동시에 말이 없어진 형제들의 귓가에 지하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왔나 보다. 다소 위축된 채 중얼거린 윤석을 비롯해 형제들은 좀처럼 몸을 일으킬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나온 뒤의 오승조는 그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는 한편, 이세영은 지나칠 정도로 신경질적이 된다는 걸.

오윤수. 문득 윤혁의 입가에 윤수의 이름이 맺혔다. 윤민은 듣자마자 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지하실에서 나오고 나면 각자 따로 행동했다. 오승조는 이층에 있는 안방으로 가고, 이세영은 정원으로 갔다. 둘 중 누구도 윤수를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우는 윤수를 몇 번이나 봤었다. 내가 갈게. 다급하게 몸을 일으킨 윤민이 방을 나와 일층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수는 또 울고 있었다. 온몸의 수분을 배출할 것처럼 떨고 있는 아이를 붙들고 윤민은 일단 부엌의 테이블로 데려갔다. 윤수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까 윤혁으로부터 맞았다며 울었을 때보다 훨씬 더 눈물의 농도가 짙었다. 의자 위에 몸을 앉힌 윤민을 원망스럽게 보더니, 이내 반쯤 울분에 젖은 목소리를 꺼냈다. 왜 안 왔어, 형은. 윤민은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오승조가 애초에 지하실에 부르는 건 윤수 뿐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조금이라도 접근하려고 하면 죽일 듯이 들었다. 난감한 얼굴을 가누던 윤민이 힘 있게 윤수의 몸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윤수야.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 대던 윤수가 잠잠해졌다. 잠시 테이블 위를 훑던 윤민의 시야에 초콜릿이 가득한 박스가 들어 왔다. 하나를 까서 무작정 윤수의 입에 갖다 댔다. 아, 해 봐. 맛있는 거 먹자. 윤수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대신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다소 씁쓸한 숨이 윤민의 입가에 맺혔다. 이제 이것도 안 통하는구나 싶었다. 예전에는 이거면 됐었는데, 확실히 윤수는 다루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럼 뭐 해줄까, 형이. 다 해 줄게. 윤수가 원하는 거 다 해줄 게. 얘기해 봐. 응? 최대한 나긋하게 윤수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건넨 말에 아이의 고개가 빠르게 들렸다. 뽀뽀해 줘. 윤수의 눈가에 남아있는 물기가 현현했다. 아. 윤민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매일 같이 세영이 윤수나 윤민에게 하는 걸, 윤민이 자신에게 해 달라는 모양이다.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윤수가 그렇게 얘기하니 또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고개를 밑으로 끌어내린 윤민이 윤수의 입가에 살짝 입을 맞췄다. 윤수의 눈시울에서 떨어진 눈물방울이 윤민의 입가에까지 닿았다.

이제 됐어? 응. 또 뭐 할까. 잘래. 그 말을 끝으로 윤수가 윤민의 무릎 위에 얼굴을 대고는 눈을 감았다. 석양이 찾아 들기 직전, 아직은 노곤한 오후의 공기가 젖어 드는 가운데 윤수의 눈가가 사르르 감겼다. 이내 일정한 호흡을 반복하며 어깨가 떨렸다. 손으로 누르면 금방이라도 상처가 날 것 같은 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다가, 윤민은 문득 아까 세영이 했던 얘기를 생각했다. 윤수가 어느 날 갑자기 널 원하지 않는다. 이러면 어때.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그런 상황이 온다면. 짧게 눈꺼풀을 떨고 난 윤민이 스르르 윤수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부딪히면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살짝 입술로 피부를 품기만 한 뒤 고개를 가눴다. 초점 없이 윤수를 바라보는 윤민의 얼굴에 수많은 종류의 상념이 맺혔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물처럼 뭉쳐가던 상념은, 이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됐다.

차라리 죽고 싶겠지만, 기다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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