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장. 삼남 오윤수 (9/11)

9장. 삼남 오윤수

최희윤이 부른 곳은 놀랍게도 그녀의 집이 아닌 윤석의 집이었다. 애가 절대로 집 밖에 나가지를 않으려고 해서, 저도 임시로 여기 지내면서 봐주고 있어요. 그 말의 끄트머리에서 그녀는 어렴풋이 한탄을 했다. 애가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으면. 윤수는 그 말을 무표정으로 들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애가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윤수의 생각은 달랐다. 애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다. 밖에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걸.

이제는 익숙한 윤석의 집 현관 앞에서 벨을 눌렀다. 빠르게 문이 열리면서 두 번째로 보는 최희윤이 윤수를 반겼다.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윤수는 새삼 궁금해졌다. 오윤석과 이 여자, 대체 어느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지.

주원아, 윤수 형 왔어. 침실 쪽을 향하는 여자의 다정한 목소리에 어린 남자애가 살짝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었다. 경계하는 것처럼 거실을 살피더니 윤수를 확인하고는 잽싸게 이쪽으로 뛰어왔다. 다리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애를 보면서 최희윤이 짧게 웃었다. 너 이모한테는 안 이랬잖아. 형이 그렇게 좋아? 아이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평소에 주원이랑 엄청 친하게 지내셨나 봐요. 재미있다는 얼굴로 건네 오는 여자의 말에 윤수는 웃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윤수가 사실상 이 아이랑 제대로 마주친 게 처음이라고 한다면 여자는 당연히 믿지도 않을 것이고 믿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건 일반적인 일이 아니니까.

차를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여자를 두고 다소 피로한 몸을 소파로 이끌었다. 주원은 윤수가 향하는 곳곳마다 조르르 쫓아다니기에 바빴다. 윤수가 소파에 앉자마자 처음부터 제 자리였던 것처럼 다짜고짜 무릎 위에 올라온 주원이 옷깃부터 잡고 봤다. 하. 절로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야.”

“응.”

“너, 사실 나 모르잖아.”

“알아.”

“뭘 알아.”

“이 집에 두 번 왔어. 9월 8일이랑, 10월 27일.”

또박또박하게 내뱉는 말에 윤수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고개를 갸웃거린 아이가 좀 더 윤수의 품 안에 몸을 밀착시켰다. 어린 애 특유의 우유 냄새가 같은 것이 후각을 자극했다. 분명히 세 살이라고 했는데, 세 살짜리가 숫자와 날짜 개념이 저렇게 정확할 수가 있을까. 이 애의 핏줄에 있는 부계혈통 유전자는 어느 정도인 거지. 문득 윤수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윤민이 애를 해외로 보내려는 이유가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카모마일 괜찮아요? 방긋 웃으면서 최희윤이 찻잔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뜨거운 잔을 받아 목을 축이고 있으니 더운 김이 훅 하고 얼굴을 적셨다. 최희윤은 소파에 앉는 대신 테이블 앞에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 쪽 오셔서 앉으셔도 되는데. 윤수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이게 편해요. 윤석의 집에서 머문 지 꽤 됐을 텐데도 한없이 조심스럽게 구는 여자가 이상했다. 마치 이 소중한 공간에 흠집 하나라도 날까 봐 두려워하는 양.

아직도 윤석이 형 회사에 다니시는 거예요? 윤수의 질문에 최희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만 뒀어요. 오 전무님 그렇게 되고 나서, 회사에서 다른 직무를 준다고는 했는데 마뜩잖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살며시 웃어 보이는 최희윤의 얼굴이 어딘가 우울해보였다. 그러니까, 오윤석이 회사에서 죽고 난 뒤 회사에 있고 싶지 않아 본인도 그만뒀다는 건가. 윤수를 대하는 걸 보면 사람 자체가 사교적이면서 살갑기 그지없고, 미모도 출중해서 그 회사 입장에서는 붙들고 싶었을 인재일 텐데.

혹시 윤석이 형 때문에 그만 둔 거예요? 담담한 질문에 최희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앞에 놓인 찻잔을 말없이 어루만지는 손길이 살짝 떨리는 것도 같았다. 빤히 최희윤을 쳐다보던 아이가 윤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저 누나가 우리 아빠 좋아해.

역시 그랬구나. 입가에 머금은 카모마일 향이 괜히 씁쓸했다. 꿀꺽 목 안에 넘기고는 차분하게 테이블 위에 잔을 올려 뒀다. 날 선 마찰음이 거실을 울렸다.

“뭐, 이미 안 계신 분하고 관련해 제가 이러니저러니 무슨 말을 하겠어요.”

“왜 그랬다고 생각해요? 윤석이 형이.”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에서 밀려난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간 최희윤이 길게 찻물을 입 안에 흘려 넣었다. 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입 안에 그것을 담고 있다가, 소리 없이 삼켜 낸 그녀의 입 밖으로 체념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분이 생긴 것 같았어요. 원래 와이프였던 강유진 아나운서 말고. 솔직히 이혼이야 언제 해도 이상할 거 없었어요. 겉보기에야 정말 사이좋은 부부였지만, 실상이 아니란 걸 저는 알고 있었거든요. 오 전무님이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았어요. 한 8월 말쯤이었나, 그 때부터. 오 전무님은 기본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아는 분이세요. 가족이 됐든 회사가 됐든 어떤 일이 생겨도 차분하게 할 일 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더니, 결국 이렇게 됐어요.”

“그게 꼭 누군가 때문은 아니잖아요.”

8월 말. 윤수가 한남동 집에 온 시점. 말도 안 된다. 다소 날카롭게 뱉은 윤수의 반문에 최희윤의 고개가 천천히 가로 저어졌다. 윤수가 왜 이렇게까지 사납게 물어오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이 표정에 배어 있다. 그 순박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윤수는 왠지 방금 전까지의 스스로가 싫어지는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에게 거짓을 강요하는 기분. 최희윤을 쳐다보고 있던 윤수의 얼굴이 맥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오 전무님이 자살하시기 전에 저한테 연락을 했었어요. 애를 잠시만 봐 달라고. 저는 직감적으로 전무님이 안 좋은 결정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면서 엄청 울었어요.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거의 삼십 분 넘게. 그랬더니 오 전무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말을 쏟아낸 최희윤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리기 일보 직전인 얼굴을 가눴다. 망막에 넘칠 정도로 차오른 눈물이 차마 마주 보기 힘들 정도로 맑았다. 윤수가 괴로워한다는 걸 알았는지, 최희윤이 살짝 고개를 돌려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필요로 하는 사람한테 같은 얘기를 했을 때는, 무감각하게 넘기더라면서. 저라도 이렇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윤수의 고개가 절망적으로 흘러내렸다. 품 안에서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처럼 눈을 깜빡이던 아이가 문득 놀란 얼굴로 윤수의 표정을 살폈다. 언젠가 윤석과 이 집에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 회장이 죽고, 애가 납치 됐을 때의 일이다. 윤석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애를 봐 달라고 했고, 윤수는 그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이 왜 그 애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실제로 그렇게 얘기했고.

그리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집을 나서는 윤수를 윤석이 붙들었다. 윤수는 이곳에 남으라는 윤석의 제안을 외면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는 윤석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를 속이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그를 위한 것도 맞았지만, 윤수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 더 컸다.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혀 당장 한남동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윤수의 고통에 윤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버렸다. 윤석이 자신을 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차갑게 저버렸다. 인간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저기요. 한 동안 숙여져 있던 윤수의 고개가 느릿하게 정면을 향해 들려졌다. 여자의 고개가 빠르게 올라갔다. 네. 여전히 눈가가 붉다. 한 번이라도 더 윤석의 얘기를 꺼냈다가는 그 때야 말로 제대로 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 주실래요. 이제. 건조한 윤수의 말에 최희윤의 동공이 살짝 떨렸다.

좀 피곤해서요. 이제 여기에는 안 계셔도 되잖아요. 고저 없이 건넨 말에 최희윤이 잠시 난색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거실에 놓인 겉옷과 가방을 챙긴 뒤 윤수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이내 현관문이 닫히는 긴 소음이 윤수의 귓속을 찌를 것처럼 파고들었다. 아이가 살짝 현관 쪽을 쳐다보더니 어렴풋이 웃었다.

“왜 웃어. 넌.”

“응. 저 누나 싫었는데, 없어지니까 좋아서.”

“왜 싫은데.”

“못생겼잖아.”

시큰둥하게 한마디 한 주원이 눈을 감고는 윤수의 품에 몸을 기댔다. 자꾸만 가슴께를 압박해 오는 작은 존재가 한없이 불편하기만 했다. 내버려두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살짝 몸을 빼고는 아이를 끌어내려 강제로 바닥에 발을 딛게 했다.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다소 차갑게 입을 열었다. 자려면 방에 들어가서 자. 여기가 침실이야? 안에 들어가서 자라고.

혼내는 것이나 진배없는 말에도 아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기세로 요구했다. 그럼 같이 자. 형이랑 잘래. 당연하다는 것처럼 건네 오는 아이의 말에 윤수의 눈살이 일그러졌다. 같이 있어야 잔다니, 꼭 어린 애가 엄마한테 구는 것처럼 하고 있다. 심지어 실제 어머니는 따로 있는데도. 윤수를 제 어머니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빨리, 형. 자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 것처럼 칭얼거리는 애를 보고 있으니 그저 돌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일단 마지못해 애를 데리고 침실에 와서 눕혔다. 무거운 머리를 기댄 채 옆에서 나른하게 눈을 감는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윤수의 팔을 꼭 쥔 채 색색거리는 얼굴에서는 윤수가 알고 있는 몇 개의 얼굴이 비친다. 네 명의 형제들이 지닌 인상, 전부 이 안에 존재한다.

사실상 취할 수 있는 부계 혈통 유전자는 최대한 취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윤석이 부계혈통 유전자가 적은 것처럼 보였으니, 한 대를 넘겨서 이 애 쪽에 그 혈통 유전자가 몰리다시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석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비교적 일반인에 가깝고, 사고하는 방식에도 제법 이성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른 형제들도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를 해외에 떠넘기려는 윤민의 계획에도 다들 침묵하고 있는 거겠지. 윤수의 추측이 맞다면, 이 애는 윤수가 지키지 않는 한 미래가 불투명하다.

한동안 아이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윤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최대한 애가 깨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침대를 벗어나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하얀 천장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아이는 맡기로 했는데, 그 다음은 또. 앞으로 애는 어떻게 키우고, 학교는 어떻게 가고, 형제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가 어려운 숙제처럼 머릿속을 메운다.

헤아릴 수 없는 자신의 앞날을 망연하게 가늠하고 있다 보니 언젠가 이 소파에 윤석과 함께 앉아있을 때가 다시금 떠올랐다. 윤석이 스스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식으로 뱉은 얘기에 제 입장부터 챙겼던 그 상황이. 윤석에게는 잔인하기 그지없었을 윤수의 태도가.

결국 오윤석을 죽인 건 나일까. 그 생각을 하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잊으려 했던 윤민의 말이 윤수의 머릿속을 점령하다시피 채워갔다. 너는 윤석이 형보다 나를 더 원해. 내가 형보다 부계혈통 유전자가 더 강하니까. 네가 윤석이 형을 거부해서 형이 자살을 택한 거고. 이게 진실이야.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건 정말이지 비인간적인 얘기니까. 최대한 지워보기 위해 머릿속을 검게 물들였다. 소용이 없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모순적이게도 한 번 떠오른 과거의 문장이 더욱 뚜렷하게 뇌리에 새겨지고 만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실이.

소파 위에 머물러 있던 윤수의 다리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윤석과 함께 이 자리에 앉아있던 시간이 침묵했던 속죄의 대가처럼 윤수의 발목을 죄어왔다. 더 이상 한남동 집에 있는 것도 아닌데, 소나무에 맺혀 있던 윤석의 존재가 실제로 보는 것보다도 더 생생하게 머릿속을 엄습한다. 뚜렷해지는 실루엣을 따라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문득 현관에서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몸을 일으킨 윤수가 모니터를 켜고 현관 너머의 존재를 확인했다. 아. 순간적으로 윤수의 동공이 커지고, 이내 무엇인가에 홀린 듯 문을 열어젖혔다. 맞은편에 보이는 건 윤혁이었다.

어디 아파? 표정이 왜 그래. 빠르게 호흡을 가누는 윤수를 보면서 윤혁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린 채 거실로 돌아갔다. 현관을 닫은 윤혁이 윤수를 따라 소파로 다가왔다. 어떻게 여기에 왔지. 옆에 윤혁이 앉는 걸 보고 난 후에야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내 머릿속을 채우는 건 체념이다. 하긴, 이 집안 남자들에게 있어서 윤수를 추적하는 건 애초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 왔어. 담담하게 건넨 질문에 윤혁이 나직하게 한숨을 뱉고는 답했다. 그냥, 여기에 있을 것 같아서 왔어. 얼굴 보고 싶더라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윤수의 얼굴 앞으로 윤혁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왜 그래. 진짜.

무슨 일이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기에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멈춰있는 윤수의 볼을 윤혁의 손아귀가 덮었다. 그 커다란 손이 건네 오는 안정감에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만 같았다. 소리 없는 숨만 뱉어대는 윤수를 보다가 윤혁이 조심스럽게 그 몸을 품에 안았다. 이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윤수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조여오던 공포감에 비하면 지금 이 상황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윤수.”

“어.”

“너랑 섹스하고 싶어. 근데 하면 네가 싫어하겠지.”

“맞아.”

“그러니까 참을게.”

천천히 몸을 떼어내는 윤혁의 얼굴을 보며 윤수는 반쯤 감긴 눈꺼풀을 간신히 지탱했다. 참을게. 잠시 그 말을 곱씹던 윤수의 시선이 빠르게 치켜 올라갔다. 약간의 분노가 담긴 눈이 윤혁을 똑바로 응시했다. 원래 그게 정상이야, 참는 게. 너희 집안 남자들에게는 아니겠지만.

건조하기 그지없는 말에 깊게 숨을 들이마신 윤혁이 불현듯 몸을 일으켰다. 윤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현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윤수의 몸이 빠르게 일으켜 세워졌다. 어디 가. 윤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갈게. 얼굴 봤으니 됐어. 단조롭게 말을 마친 윤혁이 현관의 손잡이를 쥐었다. 윤수의 절박한 손이 그것을 저지했다. 의문에 찬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윤혁을 보며 윤수는 그저 금방이라도 틀어 막힐 것만 같은 제 숨을 가눴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거실에 또 다시 혼자 남는 것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한남동 집에서 자신의 방을 나서려는 윤성을 붙든 것과 같았다. 그 때도 혼자 있는 게 싫었다. 적막한 공간에서 혼자 버려진 상태를 견디다가는 시든 식물처럼 죽어가다 파스스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잠깐만 있다 가 줘.”

“싫어. 너랑 있으면 계속 하고 싶어질 거고, 나도 견디기 힘들어.”

“오윤혁. 제발 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손목을 움켜쥐는 윤수를 윤혁의 표정 없는 얼굴이 훑었다. 매서운 눈매가 짧게 일그러졌다. 다시 윤수를 쳐다보는 시선은 제법 단호했다. 나랑 잔다고 하면 있어 줄게. 아니면 나갈 거고.

48.

윤혁의 팔을 붙들고 있던 손이 소리 없이 끌어내려졌다. 예기치 못하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시간을 위해 형제들과의 어긋난 성교를 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윤수는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가 짐승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윤혁을 떠나보냈다가는 고장 난 시계처럼 스스로가 멈춰버릴지도 몰랐다.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그저 입만 다물고 있는 윤수를 내려다보다가, 윤혁이 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관 손잡이를 쥔 윤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윤혁.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한 윤수가 다급하게 그 단단한 피부를 쥐었다. 윤혁의 성난 듯한 목소리가 윤수의 귓가에 닿았다. 장난해? 오윤수. 나 그 동안 너한테 많이 져줬다고 생각해. 더 이상 져주고 싶지 않아. 윤혁을 팔을 쥔 윤수의 손아귀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뭔가 이성적으로 말을 내뱉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저도 모르게 눈물부터 삼키는 윤수를 보면서 윤혁이 도무지 쳐다보기 어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윤수와 최대한 그것을 외면하려는 윤혁의 사이에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

너랑 하는 게 무서워, 오윤혁. 내가 어떤 앤지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아. 물기가 자욱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윤수를 향해 한동안 말이 없던 윤혁이 시선을 건넸다. 굳어 있던 눈매에 일순간 안타까움이 비쳤다. 이내 누그러졌다. 하. 못 이기겠다는 듯 숨을 쏟은 윤혁이 천천히 윤수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느릿하게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정적이었다. 완전히 윤혁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윤수를 쓸어내리다가, 양 팔에 윤수의 몸을 안은 채로 다시 소파를 향했다.

“그만 울어. 오윤수.”

“미안.”

“미안할 건 없고. 나도 미안해.”

씁쓸하게 한마디 한 윤혁이 윤수를 소파 위에 눕혀 둔 채 위에서 힘있게 감싸 쥐었다. 몸을 압박해 오는 감각이 당연히 괴롭기만 해야 정상인데, 동시에 그게 싫지 않다는 기분이 동시에 들어 윤수는 그게 더 괴롭다.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윤혁의 행동에 그 어떤 감정도 갖지 않기 애썼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잔인한 진실에 잠식당한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면 윤수는 뭐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럼 키스는. 문득 머리맡에 찾아든 윤혁의 말에 윤수의 입술이 짧게 떨렸다. 딱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한 윤수와, 윤수라면 짐승이어도 상관없다는 윤혁이 서로를 위해 허물 수 있는 욕망의 경계선. 이것마저 거절하면 윤혁은 떠나갈 거고, 그건 윤수로서 상상하기 싫은 결과였다.

해도 돼. 나지막한 대답에 윤혁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난 자비네. 말을 마친 입가에 엷은 호가 맺혀 있다. 그 얼굴이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와 비교하면 사뭇 달라서 윤수는 새삼 놀랐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윤혁은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윤수를 보는 시선이 점진적으로 바뀌어갔다. 차갑고 날카로웠던 것에서 미지근하고 느슨한 것으로, 다시 거기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그 변화가 형제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올려다보던 윤수의 입가에 서서히 윤혁의 입술이 다가갔다. 입술이 부딪히는 순간이 전류라도 흐르는 것처럼 저릿하게 다가왔다. 놀란 윤수의 입술이 순간적으로 떨어졌다.

“나도 가끔은 내가 싫어. 오윤수.”

“뭐가.”

“너 아니면 이렇게 안 되는 내가.”

“그야 노력하면 되잖.”

빠르게 제 혀를 밀어 넣는 윤혁 때문에 윤수의 말이 끊겼다. 하반신에 닿은 윤혁의 앞섶이 꽤나 부풀어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적나라한 욕정은 깨달을 때마다 윤수의 오싹하게 만들곤 했다.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쉽지가 않다. 형제들이 오로지 윤수 때문에 성기를 부풀리고, 윤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윤수는 아직도 그들이 때때로 짐승 같고,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받았다고 생각한다.

으응. 보다 세차게 안쪽을 헤집어 대는 혀에 윤수의 고개가 살짝 뒤로 비켜나갔다. 손아귀를 윤수의 뒤통수에 댄 채 단단히 휘어잡은 윤혁이 점막을 다 집어삼킬 것처럼 혀로 어루만져 댔다. 다른 손이 윤수의 상의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윤수의 쇄골 부위를 어루만지면서 조금씩 두드려대는 감각에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흐으. 안 한다고. 오윤혁. 읍.”

“나도 안 해. 그냥 만지고 싶어서 하는 거야.”

“흡, 하아.”

“네가 아니면 이렇게 하고 싶지가 않아.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나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 해, 이렇게 태어난 걸. 너 때문에 미칠 것처럼 되는 걸.”

담담하게 말을 맺은 윤혁이 다시 윤수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었다. 안에 들어찬 습기가 너무나도 뜨거워서 그만 턱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윤혁이 남긴 언어가 정처 없이 머릿속을 헤맸다. 어떻게 해, 이렇게 태어난 걸.

살짝 젖혀진 윤수의 눈가에 다시금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태어났다고. 그러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저 동물처럼 본능에 이끌려서. 유전자 때문이라는 비이성적인 논리에 휩싸여 운명을 결정하고, 거기에 순응해야 하는 삶. 이게 산다고 할 수 있는 삶일까.

윤혁의 손아귀가 윤수의 유두를 스르르 어루만졌다. 하아. 습한 숨소리와 함께 단 침이 목 너머로 삼켜졌다. 모르겠다. 이게 맞는 건지. 동생과 키스하며 단 갈증을 느끼는 자신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그 와중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윤혁의 성기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다소 무뎌져 가는 사고를 가누며 살짝 눈꺼풀을 끌어올린 윤수의 시선 끝에 다소 괴롭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 윤혁이 보였다. 왜. 의아하게 물어오는 말에 더운 숨을 뱉은 윤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는 제법 묵직하게 말했다. 삽입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뭐 하려고. 순식간에 수축된 윤수의 위에서 윤혁이 천천히 바지 버클을 풀어 내리는 게 보였다. 속옷까지 끌어내려진 자리에 거대하게 발기한 성기가 보였다. 야, 너 진짜. 당혹감에 일단 몸부터 뒤로 빼내는 윤수의 얼굴을 붙들고, 윤혁이 그것을 단호하게 밀착시켰다. 도저히 못 참겠어. 그냥 얼굴 보면서 할게. 넌 그냥 있으면 돼.

뜨겁게 부풀어 오른 성기 때문에 윤수의 얼굴까지 덩달아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매끄러운 피부위에 음경을 갖다 붙인 채로 윤혁이 손아귀로 제 것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아래위로 쓸어 올릴 때마다 성기의 주름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눈앞에서 그것을 보고 있으니 눈꺼풀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린 윤수의 귓가에 윤혁의 성기가 불쑥 밀려들어왔다. 오윤혁, 하지 마. 기겁하며 뱉은 말에 윤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걸로 라도 먹는 거 보고 싶어.

상의 밑에서 머물던 윤혁의 손아귀가 거세게 윤수의 유두를 움켜쥐었다. 읏. 짤막하게 신음을 터뜨린 윤수의 고개가 좀 더 젖혀졌다. 귓바퀴 안에 틀어 막힌 윤혁의 귀두가 정말로 안에 삽입하기라도 할 것처럼 지그시 좁은 공간을 비벼대고 있었다. 온 몸 구석구석 점령당하는 기분에 불현듯 수치심이 밀려왔다. 달달 떨고 있는 윤수의 얼굴을 한동안 감상하고 난 윤혁이 성기를 얼굴 쪽으로 옮겼다. 이내 금방이라도 입 안에 밀어 넣을 것처럼 입술에 지분대기 시작했다.

넣지 마. 제발. 가쁘게 뱉은 말에 윤혁이 지그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안 넣는다니까. 말을 마친 윤혁이 윤수의 튀어나온 유두 부근을 어루만지는 손가락에 힘을 줬다. 자리자리한 감각이 가슴께를 에워쌌다. 아. 윤수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려 대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한계까지 부푼 윤혁의 성기가 시야에 선명하게 드리워졌다.

다소 흥분감에 젖어 있는 윤혁의 숨소리가 멀리서도 후끈하게 윤수의 뺨에 닿았다. 윤수의 귓가와 볼, 입술을 스르르 오가면서 짓이겨 대던 윤혁의 성기가 질척한 쿠퍼 액을 쏟아냈다. 유두 쪽을 간질이던 윤혁의 손길이 불쑥 윤수의 귓가로 올라왔다. 귓불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윤혁의 음경 못지않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에 싸도 돼?”

“오윤혁. 그런 말, 좀.”

“싸도 된다고 해 줘.”

당연히 될 리가 없다. 형의 얼굴을 배출구처럼 쓰겠다는 동생의 제안에 수긍할 수 있는 인간은 애초에 없으니까. 하염없이 경련하던 윤수의 눈꺼풀이 윤혁을 향해 올라갔다.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 벌어졌던 입술이 순간 멎었다. 마주쳐오는 얼굴이 왠지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기시감이 있었다. 언제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윤혁이 자신에게 별 것도 아닌 제안을 결심한 것처럼 해올 때마다 지어보이던 그 표정. 말을 뱉기까지 꽤나 생각을 거친 것이 분명하다는 인상을 주던 그 얼굴.

괴로운 건 윤수뿐만이 아니라는 윤혁의 얘기가 머릿속을 길게 울렸다. 저 동생은, 자신과 두 살 터울의 짧은 인연을 지닌 자신의 혈육은 매번 윤수를 취할 때마다 보이지 않게 항상 고민을 해왔던 걸까. 그러면서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태도를 유지하며 지금과 같은 일들을 해 온 걸까. 윤수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자신까지 고통에 젖어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걸까. 짧게 벌어졌던 윤수의 입술이 체념한 듯 희미한 언어를 건넸다.

얼굴에 해도 돼. 윤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가에 윤혁의 성기가 정액을 배출했다. 흡. 입 안까지 스며드는 쌉쌀한 액체에 살짝 눈살을 일그러뜨린 윤수가 몸을 일으켰다. 미안, 잠깐 기다려. 윤혁이 빠르게 테이블 위에 있던 티슈 통에서 휴지를 빼내는 게 보였다. 그 와중에 목구멍까지 내려온 정액의 일부가 주르르 식도를 타고 흘러 내려갔다. 꿀꺽. 스스로 한 행동을 뒤늦게 인지한 윤수의 목덜미가 소스라치게 공률했다.

떨고 있는 윤수를 난감한 얼굴로 응시한 윤혁이 그 입가에 티슈를 가져갔다. 얼굴을 구석구석 닦아낸 티슈가 떨어져 나간 후에도, 윤수는 여전히 얼굴 어딘가에 그가 배출하고 간 욕정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소 기운 없는 얼굴을 들어 무심코 앞을 봤다. 문득 저 편에서 보이는 작은 머리통. 당황한 윤수가 급하게 소파 쪽으로 몸을 밀착했다.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같은 쪽을 보던 윤혁의 입 밖으로 탄식 어린 숨이 터져 나왔다. 하.

오주원.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을까. 방문을 살짝 연 채 빠끔히 쳐다보고 있던 주원이 윤수를 한 번 보고는, 윤혁을 봤다. 윤수를 보던 시선과 달리 제법 경계심이 녹아 있었다. 어린 애라 망정이지, 다 큰 성인에 가까웠다면 제법 위협적으로 느꼈을 시선이다.

“왜 안자고 있었어, 주원아.”

“잠이 안 와서.”

“아까 잤잖아.”

“아까도 안 잤어.”

태연하게 건네 오는 말에 윤수의 어깨가 절로 움츠려들었다. 안 잤다고, 처음부터. 말하자면 윤수에게 같이 자면 잠들겠다고 한 것도 그저 윤수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고, 그 다음에는 자는 척하면서 윤수가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세 살짜리가 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다.

나가. 윤혁을 향해 경고하는 주원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실려 있다. 여기는 자신의 영역이고, 여길 침범하는 존재를 어떻게든 저지하겠다는 일종의 협박이다. 혹시나가 역시나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윤혁이 느슨하게 고개를 가누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잠시 그 얼굴을 보던 윤수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만 가. 오윤혁. 쟤 예민한 애야.”

“나 가도 괜찮겠어? 너 혼자 쟤랑 이 집에 있을 수 있어? 윤석이 형이 있던 집에. 너 윤석이 형 죽고 나서부터 수시로 공황상태 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오윤혁. 그래도.”

“애 데리고 돌아가자. 윤민 형이나 윤성이도 애는 그냥 둔다고 했어. 너한테도 그게 나아.”

“난 그 집에 안 가. 아니, 못 가. 더 이상 괴로워지고 싶지 않아.”

잔뜩 힘을 줘서 뱉은 말의 끝이 파르르 떨렸다. 물론 혼자 있을 자신은 없다. 그러나 그 집에 갈 수 없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대대로 그 집의 여자들이 겪었던 것처럼 그 강한 부계혈통의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다가 생을 마감할 뿐이다. 윤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은 이타노 가문의 모계혈통에게 지옥이라는 걸.

안 간다고? 오윤수. 윤혁의 눈가가 느릿하게 비틀렸다. 대뜸 윤수로부터 고개를 돌린 윤혁이 성큼 주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리 와, 오주원. 순식간에 작은 몸이 윤혁의 팔에 실렸다. 단단한 팔에 얽매인 아이가 있는 대로 소리를 내지르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세 살짜리 어린 애였다. 윤혁 입장에서야 지극히도 다루기 쉬운 존재다. 뭐하는 짓이야. 분연히 쏟아내는 윤수의 말에 윤혁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네가 안 온다면서. 이렇게 하면 오겠지.

어떻게 애를 데리고 협박을 할 수 있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윤수를 향해 윤혁이 낮은 한숨을 쉬었다. 이내 다소 혼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더 이상 너한테 져주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다문 윤혁이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에 제법 분기가 실려 있었다. 경악감에 사로잡힌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윤수의 발걸음이 빠르게 윤혁 쪽을 향했다. 그 바람에 완전히 현관 밖으로 나온 윤수의 뒤편에서 무겁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윤혁. 너 진짜.”

“난 아무 짓 안 해. 그냥 너랑 같이 있으면 돼. 뭐가 어려워.”

“내가 말했잖아. 그 집에서 더 괴로워지고 싶지 않다고.”

“그 지독한 핏줄 타고나서 너만 괴로운 것 같아? 나도 마찬가지야.”

딱딱하게 말을 마친 윤혁이 막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윤혁의 팔에 사로잡힌 아이가 눈물만 흘려대면서 하염없이 윤수 쪽으로 팔을 뻗어댔다. 안으로 들어간 윤혁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둔 채 윤수를 봤다. 안 와? 오윤수. 떨리는 동공으로 자신과 윤혁 사이에 벌어진 엘리베이터의 틈을 봤다. 또 경계선이 생겼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언젠가의 경계선이 형제들과 윤수의 속내를 차단하는 장벽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무너져 그 너머에 스며들기를 종용하는 형태의 것이다. 형제들은 윤수에게 경계선 너머로 넘어오라 하고 있고, 윤수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윤혁의 품에 안긴 주원을 봤다. 저 아이도 따지고 보면 이 가문 부계혈통의 일부다. 하염없이 울상을 지으며 윤수에게 와달라고 애원하는 존재도 결국엔 저 집안 남자다. 경계선을 넘는 순간, 저 집안 남자들에게 완전하게 삼켜질 거다. 윤수는 그걸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떨어져 내리는 아이의 눈물을 외면하는 것이 제 살을 도려내는 일처럼 힘겹다. 지금 이 순간을 외면했다간 언젠가 이 현관 앞에서 윤석을 저버렸을 때처럼 하염없는 후회에 사로잡힐 것이다.

주춤거리던 윤수의 발걸음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뻗어졌다. 완전하게 윤혁과 주원이 있는 공간에 몸을 들이자마자, 두터운 문이 스르르 닫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 내내 윤혁도, 윤수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지하에 다다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독 무거웠다. 윤혁이 먼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섰다. 뒤를 따라 나온 윤수의 눈앞에 익숙한 외제차 한 대가 보였다. 저도 모르게 턱 끝이 전율했다. 오윤민.

왜 이렇게 늦었어. 피우고 있던 담배를 툭 던져 구둣발로 비벼 끄고 난 윤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윤혁을 봤다. 외면하다시피 한 윤혁이 애를 조수석에 태우고는 뒷좌석으로 가며 짤막하게 말했다. 나한테 말 시키지 마.

조수석에 내려놓아진 아이가 윤수를 빤히 보면서 창문을 긁어댔다. 잠시 그 얼굴을 보던 윤민이 피곤하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 진짜 오윤석.

쟤 집에 데려가면 어떻게 할 거야. 그 와중에 여유가 있는 얼굴을 노려보며 건넨 말에 윤민이 차분하게 윤수 쪽에 시선을 뒀다. 오랜만에 보는 윤수의 저 표정이 반갑다는 얼굴이다. 엷게 웃은 윤민의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글쎄. 한 번 봐야지. 윤수 너 하는 거 봐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야지.

49.

비로소 겨울이었다. 눈이 올 정도의 차가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정원에 발을 들이자마자 세차게 이는 찬바람이 완연한 초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케 했다. 살짝 몸을 움츠리는 윤수의 바지자락을 잡으며 주원이 애타게 양 손을 내밀었다. 안아 달라는 것처럼. 잠시 쳐다보던 윤수가 마지못해 주원을 품에 안았다. 지켜보던 윤민이 미간을 살짝 구기고는 고개를 돌렸다.

1층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영문으로 된 리포트를 한 장 한 장 펼쳐보고 있는 윤성이 보였다. 막 거실에 발걸음을 내딛은 윤민이 경고하듯 한 마디 했다. 오윤성, 뭐 하는 거야. 내일이 수능인데. 그 말이 그저 우습다는 것처럼 여유 있게 미소 지은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형. 내가 그 같잖은 시험에서 뭐라도 하나 틀릴 것 같아?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윤민이 그만 두자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와, 이건 또 누구야. 뒤늦게 주원을 발견한 윤성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윤수가 끌어안고 있는 주원 쪽을 향하는 발걸음에 이상할 정도의 무게감이 있었다. 윤성을 보자마자 아이가 매섭게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는 윤수의 품 안에 얼굴을 묻었다. 빙긋 웃은 윤성이 아이의 볼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파르르 떠는 아이의 어깨가 윤수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현현했다.

“너. 나 몰라? 왜 모르는 척 해.”

“몰라.”

“많이 컸네. 귀여워라.”

다정하게 한 마디 한 윤성이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와 아이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아이를 향한 윤수의 시선 끝에 아까보다 더 떨고 있는 작은 어깨가 보였다.

방식은 다르지만, 주원은 이 집안의 세 형제를 전부 싫어하고 있다. 그 형태가 두려움이든, 경계든, 경멸이든. 어떤 형태가 됐든지. 아이에게 있어 이 집안에 존재하는 세 명의 존재는 제 번식의 기회를 언제라도 갉아먹을 강인한 수컷이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세 살짜리 어린애 입장에서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하다.

애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가. 윤수야. 윤성과 윤혁이 차례로 이 층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난 윤민이 윤수에게 지시하듯 말했다. 주원을 안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에 힘이 실렸다. 좀처럼 품 안의 존재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불안했다. 정확하게 무엇이 불안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집에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는 일이 윤석에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는 윤수가 필요했다.

“그냥 내 방에 데려갈게.”

“하. 걔랑 같이 지낸다고.”

“어. 그게 나을 것 같아.”

“오주원. 내려와.”

윤민의 서늘한 시선이 윤수 대신 주원 쪽에 맺혔다. 고개를 들어 윤민을 본 주원이 금방이라도 그를 공격할 것처럼 커다란 눈동자를 거세게 떨었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윤수와는 떨어지기 싫은지, 팔을 쥐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내려오라고 했어. 다시 한 번 반복한 윤민의 말에 주원이 거칠게 눈꺼풀을 일렁이며 호흡을 가눴다. 꽤 긴 시간이 흐른 끝에 체념한 아이가 스스로 몸을 끌어 내렸다. 이쪽으로 와. 턱짓을 건네며 건조하게 명령하는 윤민을 쳐다보다가, 아이가 주춤거리며 그를 향했다. 보고 있으니 지긋한 현기증이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윤수의 추측이 맞다면 저 애가 가장 싫어하는 건 오윤민이다. 그런 와중에도 윤민이 지시하는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경멸하는 얼굴로 다 수행하고 있다. 아이가 윤민에게 복종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서 그러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은 저보다 강한 수컷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져주는 척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윤민에게 거슬렀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윤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갖고 있는 걸로 보인다.

네 방 만들어줄 테니까, 넌 따로 지내. 주원의 어깨를 살며시 다독인 윤민이 고개를 들어 윤수를 봤다. 눈짓으로 위층을 가리킨 윤민이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윤수는 올라가고. 윤수의 고개가 빠르게 도리질을 쳤다. 형, 쟤 세 살이야. 반항어린 말투에 윤민의 눈꺼풀이 살짝 일그러졌다.

올라가라고 했지, 윤수야. 단호하게 뱉은 윤민의 명령에 윤수의 입이 절로 다물렸다. 윤수를 등 뒤에 둔 아이의 어깨가 좀 더 떨렸다. 머뭇거리며 이층을 향하려던 발걸음이 다시 윤민 쪽으로 돌아갔다. 힘 있게 바닥을 밟은 윤수가 윤민을 향해 꼿꼿하게 고개를 들었다.

“안 돼. 형.”

“오윤수.”

“애는 그냥 애잖아. 그냥 내가 돌볼 테니까 제발 둬.”

“너 진짜로 얘가 세 살짜리로 보여?”

차갑게 건네는 윤민의 말에 윤수의 아랫입술이 살짝 공률했다. 솔직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민도 그렇겠지만 윤수의 머릿속에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당장 저 아이가 10년 후, 20년 후에 저지를 잔악한 일들이. 저 애는 어쩌면 이타노 가문 남자들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그 유전자를 계승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수는 저 아이를 내치는 게 어렵다. 그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난 지 단 세 번 된 아이에게 그 정도의 보호본능을 느끼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윤수는 선택했다. 저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끌어안는 일을. 윤석의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이는 일을.

데려가. 오윤수. 짤막하게 건네진 윤민의 말끝에 한기가 어려 있었다. 맥없이 그 얼굴을 살피다가 주원을 다시 제 쪽으로 끌어왔다. 윤수를 다소 삐딱하게 바라보던 윤민의 입술이 차분하게 열렸다. 너, 그 상처 나고 나서 20일 정도 지났지. 다 아물었겠다. 응?

나직하게 질문을 마친 윤민이 윤수를 지나쳐 이층으로 올라갔다. 무겁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윤수는 온몸이 송연해지는 걸 느꼈다.

* * *

주원을 안은 채 긴 시간 수면에 빠졌다. 꿈속에서 수많은 존재와 만났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천장에 목을 매단 채 발버둥 치던 어머니, 자신의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졌던 오 회장, 소나무에 목을 매단 채 멈춰 있던 윤석. 이 집안과 엮인 사람들의 최후는 무릇 그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윤수 형. 나지막하게 건네 오는 목소리에 스르르 눈꺼풀을 치켜 올렸다. 막 방 안에 들어와 문을 닫은 윤성이 잔잔하게 웃으며 윤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수의 품 안에 있던 주원도 동시에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아직 몽롱한 눈으로 윤성을 보다가, 세차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왜 왔어.”

“수능 마치고 바로 집으로 온 거야.”

“잘 봤어?”

“당연히. 틀린 거 없어.”

시시한 시험 얘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다는 투로 윤성이 침대 쪽에 다가왔다. 윤수의 품에 안겨 있던 주원이 쥐고 있던 윤수의 옷가지에 더욱 힘을 줬다. 살짝 고개를 숙인 윤성이 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잠깐 비켜 줄래? 나 윤수 형이랑 할 얘기 있는데. 아이의 고개가 단호하게 가로저어졌다. 싫어. 윤성의 입가에 헛웃음이 맺혔다. 너 진짜 고집 세구나.

굳은 얼굴로 돌변한 윤성이 아이의 몸을 빠르게 들쳐 안았다. 야, 오윤성. 놀라서 내 뱉는 윤수의 말을 무시한 채 윤성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딛는 발걸음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고, 이내 옆방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싫어. 아이의 날 선 목소리가 벽을 타고 윤수의 귓가에 찾아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다시 문을 연 윤성이 안으로 들어 왔다.

“너 애 가둬 놓고 방문 잠갔어?”

“어. 말을 안 듣잖아.”

“쟤 세 살이야.”

“내 눈에는 아냐.”

피곤하다는 얼굴로 윤수의 말을 끊다시피 한 윤성이 침대의 시트 위로 올라왔다. 안아줘. 전에 없이 건조한 요구에 시트를 딛고 있던 윤수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윤성에게서 이런 식의 얘기를 듣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일이다. 윤수가 저도 모르게 잠시 위축된 것은 말을 건네는 윤성의 태도가 어딘가 낯설어서였다. 분명히 언어는 평소의 것과 같은데, 그것을 건네는 아이가 어느 틈엔가 훌쩍 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은 해주기로 했다. 거부했다가는 주원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윤성의 어깨에 올라간 손아귀에 살며시 힘을 준 뒤 그 존재를 품에 안았다. 윤수의 어깨를 향한 윤성의 고개가 긴 숨을 내쉬며 얼굴을 그곳에 묻었다. 차가운 바람이 방 안을 파고들었다. 호젓한 석양이 윤수와 윤성의 머리통을 적셨다.

형, 힘들지. 내가 형들 다 죽여줄까. 귓가에 닿는 담담한 언어에 윤수의 어깨가 흠칫 경련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사뭇 경악감에 차서 말을 뱉던 윤수의 입술이 그만 멎었다. 눈앞에 보이는 윤성의 얼굴에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다. 진심이다, 이건. 윤성의 표정 없는 얼굴을 홀린 듯 쳐다보던 윤수가 크게 한숨을 머금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 된다. 그런 걸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각조차 해선 안 될 일이다. 그 와중에 잠시라도 그 말에 동의할 뻔 했던 스스로를 잊고 싶을 정도로, 그건 인간적이지 않은 결정이다.

“싫어? 형.”

“그건 안 돼.”

“알았어. 하고 싶은 생각이 생기면, 나한테 말 해.”

말을 마친 윤성이 나긋하게 윤수의 어깨를 쥔 채 시트 위에 몸을 눕혔다. 나란히 누운 윤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윤성의 눈꺼풀이 감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새근거리는 소리와 함께 윤성의 눈가가 일정하게 미동하는 게 보였다.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윤수의 손아귀가 소리 없이 그 부드러운 피부를 쓰다듬었다.

오윤성이 수능을 치렀다. 내년에 스무 살이 된다. 따지고 보면 현재 시점에서 다른 형제들에 비해 가장 타고난 날것의 감정을 유지하고 있는 게 윤성이다. 지금까지는 아직 어린 나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내년이 되면 당연히 달라야 한다. 윤성도 그에 맞춰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외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제 윤성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윤민과 윤혁은 이미 성인이고 둘 다 부계혈통 유전자가 강하지만 서로 몸담고 있는 영역이 다른 데다가 윤혁 입장에서는 일단 윤민이 형이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져주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윤성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는 뭐가 뭔지 모르니 그냥 이 형제들과 부대껴 살았지만, 좀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면 이 애는 알 수밖에 없다. 이 집안에서 좀 더 강한 수컷이 되려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게 불가피한 일이라는 걸.

긴 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윤수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시트 위에서 자고 있는 윤성을 내버려 둔 채 방 밖으로 나왔다. 옆에 있는 윤성의 방문 앞에서 손잡이를 돌려봤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키가 있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거실에 가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무작정 일 층으로 내려가던 윤수의 귓가에 윤민의 목소리가 찾아 들었다. 네. 방금 전에요. 알겠습니다. 성함이 강현우 씨 분명하죠. 일단 장례절차 준비하세요. 장례식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올 사람도 없을 텐데.

아. 윤수의 입술이 차츰 벌어져갔다. 강현우라고. 장례절차. 장례식. 결국 아버지가 죽었다. 벽 너머에서 윤민의 목소리를 멍하니 되새기던 윤수의 동공이 무너질 것처럼 일렁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나의 문장이 동일한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며 흘러갔다. 막 통화를 마친 윤민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숨을 가누고는 계단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대로 올라가려다가,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윤수와 마주쳤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최대한 또렷하게 물어오는 윤수의 말에 윤민이 잠시 마른 입술을 축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윤민의 침착한 얼굴이 윤수를 향했다. 시선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그저 일상의 편린에 부딪힌 사람처럼 태연하기만 하다. 역시나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저랬던 인간인데 남의 아버지라고 뭐가 다를까.

고개를 들어 윤민을 봤다. 윤민이 보는 제 얼굴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머릿속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살기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윤수야, 이러지 말자.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 윤민이 윤수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매서운 윤수의 손길이 그것을 쳐냈다.

“형하고 오 회장 때문이야.”

“윤수야.”

“이 쓰레기 같은 집안에 얽혀서 우리 아버지까지 그렇게 된 거잖아.”

“어차피 강현우는 살아 있어봤자 너나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었어. 너도 이젠 알 거 아니야.”

이성적으로 건네는 윤민의 말이 윤수의 턱 끝이 바들바들 경련했다. 도움이 될 게 없었다고. 물론 윤수도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도박중독자를 남편이나 아버지로 둔 집안이 온전하게 돌아갈 리 없는 건 당연한 거니까. 특히나 빌어먹을 정도로 우월한 유전자를 강조하는 오승조 가문에서라면 강현우는 살아있을 필요가 없는 하찮은 존재처럼 취급됐을 거다. 그래도, 아버지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성큼 입구가 있는 쪽으로 향하는 윤수의 팔을 빠르게 윤민이 휘어잡았다. 어디 가. 꿰뚫기라도 할 것처럼 윤수의 피부를 파고든 윤민의 손가락이 다소 아팠다.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을 비치지 않기 위해 이빨을 짧게 깨물었다. 여전히 사나운 시선을 담아 윤민을 쏘아봤다. 아버지 병원. 지금 갈 거야. 허탈하게 숨을 뱉은 윤민이 언짢은 얼굴로 윤수를 응시했다. 가면 뭐가 달라지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나? 허튼 짓 좀 하지 마.

있는 힘껏 윤민의 팔을 내친 윤수가 소리 지르듯 말을 쏟아냈다. 내 아버지야. 형이 뭔데 이러니저러니 명령해. 날쌔게 윤민을 외면한 윤수가 분기 어린 발걸음을 내딛어가며 입구에 다다랐다. 다짜고짜 문부터 끌어내려고 하는 윤수의 손목을 윤민이 또 다시 잡아챘다. 애초에 윤수에게 여기서 나가는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는 것처럼 단호한 손길이다. 움직일 틈조차 주지 않고 단단하게 손목을 잡은 윤민이 길게 눈살을 찌푸리며 윤수를 내려다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왜 못 알아들어. 윤수야.”

“내 아버지가 죽은 거 내 눈으로 확인하겠다는데 형이 왜 간섭이야.”

“네 인생에 도움될 거 하나 없는 사람 하나 죽은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해. 유난 떨지 마.”

“내 인생에 도움 안 되는 건 형이겠지. 형이야말로 유난 떨지 마.”

금방이라도 씹어 삼킬 것처럼 노려보는 윤수의 얼굴에 윤민이 나직하게 헛웃음을 쳤다. 윤수의 손아귀를 쥔 손이 그것을 비틀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살짝 돌아갔다. 악. 윤수의 입 밖으로 낮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불현듯 윤민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여전히 윤수의 손목을 가둔 채로, 핸드폰의 액정을 확인한 윤민이 살짝 피로하다는 얼굴로 귓가에 그것을 가져갔다. 네, 의원님. 말씀하세요. 사무적인 목소리가 윤수의 귓가에 닿았다.

“예. 어려울 것 없죠. 애초에 용산을은 제 입장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지역이 아니니까요. 믿고 맡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국회야 가도 못 가도 그만이지만, 기회 있을 때 해 보는 게 좋잖아요. 의원님. 제가 마음먹어서 안 되는 것이 있었던가요.”

살며시 웃음을 머금었던 윤민의 시선이 문득 윤수 쪽을 향했다. 윤수의 한 없이 검은 동공을 흘깃 읽은 윤민이 사뭇 자조적으로 숨을 터뜨리고는 말을 이었다. 하나 빼고요. 아닙니다. 네. 나연이는 잘 지내죠? 조만간 같이 한 번 식사 하시죠. 네. 의원님.

통화를 끊은 윤민이 무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연이라고. 채나연. 차기 대권주자인 채종욱의 딸. 오 회장의 오래된 친구. 나연의 아버지야 당연히 다음 대선에서 제 편이 돼 줄 유능한 파트너가 여럿 필요할 거고, 그를 위해 고른 대상 중 하나가 젊고 로비력이 강한 오윤민이라는 거다. 파르르 떨리던 윤수의 눈꺼풀이 윤민 쪽으로 올라갔다. 구역질이 날 정도의 정교한 연대다.

“이젠 국회의원까지. 아주 전국적으로 엄한 사람들 인생 망칠 셈이야?”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냐. 어릴 적부터 알던 분이 사정사정하면서 나와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로펌 운영하는 것도 슬슬 재미없고. 이 귀한 핏줄, 활용할 데 있으면 최대한 써야지.”

무덤덤하게 말을 마친 윤민이 윤수의 손목을 쥐고 있던 손아귀를 문득 풀었다. 아팠지? 미안. 나긋한 사과를 마치고 난 윤민이 손을 들어 윤수의 볼을 어루만졌다. 하지 마. 차갑게 거부하는 윤수의 말에도 윤민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물을 헤치는 것처럼 윤수의 얼굴을 유영하던 손가락이 끌어내려지고, 윤민의 입가가 다소 딱딱하게 열렸다. 이제 할 말 다 했어? 윤수야.

대뜸 윤수의 몸을 들쳐 안은 윤민이 부엌 쪽으로 향했다. 아. 반사적으로 팔이며 다리며 내세울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써가며 윤민의 몸에서 떨어지려 했지만, 윤수의 팔과 다리를 에워 싼 팔은 좀처럼 떨어져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지하실에 처음 갔던 이후 이 집에 있으면서 빠진 체중만 해도 신생아 두어 명 무게는 거뜬히 될 터였다. 두 눈을 부릅뜬 윤수가 고개를 들어 윤민의 어깨를 깨물었다. 하얀 셔츠 위로 점점이 핏물이 맺혀가는 게 선명했다. 적당히 해, 윤수야.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 윤민이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좁은 통로를 지났다. 윤수의 동공에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공간의 입구가 선명하게 맺혔다.

50.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윤수의 청각을 자극했다. 다시는 싫다. 잠깐만, 형. 절박하게 내뱉는 윤수의 말을 무시한 채 윤민이 얼음장 같은 입술을 열었다. 말 들어, 응? 지하실의 문이 닫히고, 어두운 공간에서 하염없이 계단을 딛는 윤민의 발걸음 소리가 밀폐된 공간을 울렸다.

지하에 당도해 불을 켠 윤민이 윤수의 몸을 바닥에 끌어내렸다.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지하실 특유의 먹먹한 공기가 윤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뒤편의 수조 안에서 윤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뱀의 존재에 뼛속까지 관통 당하는 것만 같았다. 윤수의 뒤꿈치가 간헐적으로 떨렸다.

“침대 위로 올라가고, 밑에 다 벗어.”

“내가 왜.”

“얼마나 나았나 한 번 보자.”

“내가 미쳤어? 그딴 걸 하게.”

날 선 눈초리로 윤민을 일별한 윤수가 휙 몸을 돌려 계단 위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윤민의 분기 어린 팔뚝이 윤수의 허리를 휘어 감았다. 살짝 힘이 풀어진 다리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밑으로 끌어내려졌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 물론 오주원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진짜 미쳤구나, 오윤민.”

“이게 정상이야. 너도 이제는 알 거 아냐.”

담담하게 건네 오는 윤민의 말에 윤수는 이제 소름조차 돋을 기력이 없다. 이게 정상이라고. 따지고 보면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무렇지 않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간 입장에서 조카를 두고 협박하는 게 별일이나 될까 싶었다. 본인은 이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정확하게 말해, 이 한남동 집안에서는 말이다. 이 집안사람들이 늘 그래왔으니까. 전율하던 윤수의 어깨가 맥없이 풀어져갔다. 오주원 얘기에 일단 양보부터 하게 되는 스스로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만, 본능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본능은 몰라도, 이건 정말이지 인정을 안 하는 게 힘들었다.

몸을 돌려 침대로 향했다. 시트 위에 몸을 올린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윤수를 향해 윤민이 턱 끝을 까딱했다. 침묵하고 있던 윤수가 바지부터 천천히 벗어 내렸다. 이내 속옷까지. 허벅지에 닿는 마찰음이 불안정한 잡음처럼 공간을 메웠다. 완연히 하반신을 알몸으로 만든 뒤 마른 침을 삼켰다. 또 다시 정적이 흘렀다.

다리 벌리고, 제대로 보여 줘. 그래야 알지. 무표정으로 읊는 윤민의 명령은 이제 환멸이 들 정도로 익숙한 그것이다. 망설이던 윤수의 손아귀가 양다리를 쥐어 잡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윤민을 향해 서서히 드러났다. 지켜보고 있던 윤민이 윤수의 가까이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냉랭한 존재감이 윤수의 귓바퀴를 짓누를 것처럼 위협적으로 엄습해왔다.

이 정도면 괜찮네. 허벅지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윤수의 어깨가 일순간 흠칫했다. 봤으니까 됐지. 빠르게 다리를 오므리려는 윤수의 허벅지를 윤민이 지그시 쥐었다. 이걸로 됐다고 누가 얘기했어. 그대로 있어.

말을 마친 윤민이 시트 위로 올라와 윤수의 허벅지에 입술을 가져갔다. 길게 흘러내리는 흉터를 밑에서부터 차가운 혀가 느리게 쓸어내렸다. 오싹한 기분에 윤수의 발가락이 움츠려들었다. 상처의 끄트머리까지 다 핥고 난 윤민이 문득 윤수의 성기를 입 안에 머금었다. 하. 윤수의 입 밖으로 짤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성기를 감싸는 혀의 감각이 온 몸을 적실 것처럼 눅눅했다. 다리를 쥐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연신 들썩였다. 자꾸만 좁혀드는 다리를 좀 더 벌리게 한 윤민이 보다 깊숙하게 윤수의 것을 입 안에 품었다.

“하지, 하지 마. 형. 으읏.”

“흉터, 진짜 예쁘게 남았네. 마음에 들어.”

“싫어. 그렇게, 하으.”

“형이 동생 자지 좀 빨아줄 수도 있지. 뭘 그래.”

픽 웃은 윤민이 보다 축축하게 윤수의 성기를 적셨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느낌과 동시에 성기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가 꼿꼿이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하반신이 통째로 뜨거워지는 감각 때문에 사뭇 허벅지의 흉터 쪽이 아프게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 진짜, 제발 그만. 아읏. 그만.”

“윤수야. 내가 아니면 너는 이렇게 안 돼. 해 줘도 몰라?”

천천히 윤수의 성기에서 입술을 떼어 낸 윤민이 몸을 일으켰다. 마주쳐지는 단호한 시선에 윤수의 입술이 다물렸다. 이제는 이해해야 하지만, 절대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진실 때문에 머릿속 상념들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아귀로 제 다리만 어루만지는 윤수를 보며 윤민이 차츰 입술을 열었다.

“우리 집안 유전자는 보유하는 것 자체로 특혜야. 그런 의미에서 너도 감사해야 하고.”

“이런 미친 유전자를 가지는 게 뭐가 특혜야.”

“어떤 정신 나간 언론사 여자사주는 일부러 우리 집안 유전자를 얻기 위해서 우리 아버지랑 섹스해서 아들을 낳았어. 윤수야, 아직도 모르겠어? 세상엔 일부러라도 그걸 원하는 사람이 정말로 많아.”

말을 마친 윤민이 윤수의 목덜미에 얼굴을 가져갔다. 흐읍. 맹목적으로 윤수의 피부를 어루만지는 혀의 감각에 윤수의 어깨가 살포시 움츠러들었다. 움푹 팬 쇄골 안에까지 밀어 넣어진 혀가 닿는 부위 곳곳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벌려져 있던 다리의 힘이 서서히 풀어져갔다. 금방이라도 다물어지기 일보 직전인 다리를 윤민의 팔이 거세게 압박하며 저지했다.

너는 부계혈통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안 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강현우가 사고를 당할 걸 알면서도 외면한 거야. 나직한 윤민의 말에 윤수의 눈동자가 일순간 일렁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빠르게 들려지는 윤수의 얼굴을 윤민의 손가락이 찬찬히 어루만졌다. 그 온도가 너무나도 뜨거워, 윤수는 금방이라도 닿은 부위가 달구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강현우에 욕정할 수가 없었어. 그야, 섹스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아버지에 비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강현우가 우리 아버지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침묵한 거야. 어머니 입장에서, 강현우는 굉장히 쓸모없는 인간이니까.”

차분하기 그지없는 윤민의 말에 윤수의 호흡이 보다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입장에서, 아버지가 쓸모없는 인간이었다고. 고요했던 뇌리가 금방이라도 분열할 것처럼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윤수는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어떤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들이 사랑했던 사이가 맞기는 한 것인지에 대해.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애정 어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아버지에 대한 일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보는 쪽이 맞았다. 집에는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흔적조차 없었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본명조차 제대로 윤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혼란함에 젖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윤민이 했던 얘기가 기다란 창이 되어 주체할 수 없이 박동하는 중심부를 꿰뚫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 상황에서 피하기 어려운 진실이 다시금 윤수를 옥죄어왔다. 윤수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어머니는 강현우가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몇 번이나 우리 아버지가 경고를 했었으니까. 알면서도, 잠자코 있었던 거야. 애초에 강현우는 그저 어머니가 도망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선택한 인간에 불과해. 그렇게 도망치면서도 어머니 마음속에는 결국 아버지뿐이었던 거야. 어머니는 어떻게든 그걸 부정하고자 했지만, 본심을 거스를 순 없었어. 지금의 너처럼.”

귓가에 내려앉는 잔인한 말에 윤수의 목덜미가 허망하게 전율했다. 내가 지금 하는 게, 그저 어머니가 행했던 것처럼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하다는 걸까. 윤수의 손이 느릿하게 뒤쪽을 짚었다. 어떻게든 윤민으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최대한 뒤를 향해 몸을 밀어냈다. 다리에 닿는 시트의 부드러운 재질이 바늘처럼 따가웠다. 윤민이 또 부질없는 짓을 한다는 투로 윤수를 묵묵하게 쳐다봤다. 윤수야. 물론 쉽지 않겠지만, 지금쯤은 너도 인정해야 해. 윤수의 고개가 힘없이 가로저어졌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살짝 이맛살을 구긴 윤민이 느릿하게 윤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떤 건데. 여전히 떨고 있는 윤수의 어깨를 움켜쥔 윤민이 힘 있게 시트 쪽으로 몸을 내려눕혔다. 어깨에 닿는 무게감이 한 없이 서늘해 그만 머릿속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윤수의 위에 올라탄 윤민이 두 눈을 똑똑히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뭐가 문제야. 응? 형이 너 항상 아껴 줬잖아. 내가 했던 모든 건 다 널 위한 거였어. 어머니도, 아버지도, 너희 아버지도. 결국엔 널 위한 거였어. 그걸 왜 몰라.”

“그냥 형의 존재 자체가 힘들어. 내가 형이랑 이렇게 얽혀 있는 게 죽도록 싫어.”

이를 악물고 쏟아낸 윤수의 말에 불현듯 윤민의 손아귀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때리려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윤수의 얼굴이 옆으로 기울여졌다. 그렇게 수 초. 예상했던 고통이 다가오는 대신, 긴 한숨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살며시 눈을 떠 보니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잠시 숨을 가누는 윤민이 있었다. 그래, 한 번은 참았다 이거지. 윤수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비쳤다. 두 번 이랬다가는 진짜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갈 거야. 오주원 데리고 진짜 나갈 거야. 대뜸 몸을 일으키며 분연히 읊조리는 윤수의 말에 윤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대로 계단 위로 올라가려는 윤수의 등 너머에서 윤민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정적이 흐르고, 덤덤하게 액정을 쳐다보던 윤민이 통화버튼을 누른 채 귓가에 그것을 가져가는 게 보였다.

네. 오세요. 한남동 집입니다. 그냥 데려가시면 됩니다. 당장 저녁에 출국하세요. 비용은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다 댈 거니까요. 고개를 돌린 윤수가 순간적으로 날 선 목소리를 뱉었다. 오윤민. 아랑곳하지 않은 윤민이 표정 변화 없이 통화를 종료 시켰다. 오주원. 혼잣말로 그 이름을 중얼거린 윤수의 몸이 다급하게 계단 위쪽을 향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무거운 소음만 반복하며 단호하게 버틸 뿐이었다. 무력하게 문을 당겨 대던 윤수의 손이 맥없이 풀렸다. 안에서 잠갔어. 밖에서 열지 않으면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윤민이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입가에 가져갔다. 탁.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이는 소리가 공허하게 지하를 울렸다.

다소 힘이 빠진 윤수의 몸이 다시 윤민을 향했다. 길게 연기를 뱉어내는 윤민의 앞에서 한껏 호흡을 다듬은 윤수가 주저앉았다. 윤민의 무릎 위에 팔을 얹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왜, 윤수야. 태연하게 건네는 윤민의 말이 새삼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애가 무슨 죄야. 멀쩡한 애 해외에서 고아로 만들어서 뭐하게.”

“처음에는 그냥 오윤석 애가 국내에서 내 눈에 밟히면서 사는 게 거슬려서 그랬는데.”

“형.”

“이제는 아닌 것 같아. 네가 그렇게 오주원한테 목매는 게 싫더라고. 누가 보면 너랑 오윤석이 낳은 줄 알겠어.”

한숨과 함께 피우고 있던 담배 끝을 테이블 위에 비벼 끈 윤민이 서서히 윤수 쪽으로 얼굴을 끌어내렸다. 파들파들 떨리는 눈꺼풀을 어루만지고는, 짧게 그 위에 입을 맞춘 윤민의 입술이 잔잔하게 열렸다. 확실히 피는 못 속이는 게 맞는 것 같아. 우리 윤수가 모성애가 강한가. 윤민의 무릎을 쥐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에 절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애 데리고 그러는 거 아니야. 형.

소리 없이 다가온 윤민의 손이 윤수의 목덜미를 가붓하게 어루만졌다. 너 하는 거 봐서 그냥 여기 두게 할 수도 있고. 스르르 내려온 손길이 여전히 벗고 있는 하반신에 머물렀다. 순간적으로 따갑게 느껴지는 감각에 윤수의 눈꺼풀이 흠칫했다.

허벅지를 어루만지던 손은 윤수의 성기에 머물렀다가, 이내 엉덩이 사이의 골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 짤막하게 소리를 뱉은 윤수가 윤민의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형 눈에는 아주 예뻐 죽겠는데, 왜 우리 윤수는 항상 싫다고만 할까. 나긋하게 말을 마친 윤민이 손을 거둬냈다. 이내 윤수의 고개를 강제로 들게 한 채 나직하게 지시했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스스로 해 봐.”

“뭐를.”

“스스로 쑤셔봐. 네가 내 것이 될 준비가 됐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지.”

갑자기 그걸 어떻게. 멍하니 앉아있는 윤수를 눈으로 훑다가 윤민이 매고 있던 파란 넥타이를 스르르 풀었다. 셔츠를 타고 밑으로 끌어내려가는 차가워 보이는 천 조각에 눈동자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난처해하며 그저 올려다보고만 있는 윤수를 향해 윤민의 엄한 시선이 한 번 더 고정됐다. 안 할 거야? 윤수야. 윤수의 양 눈이 쓰리게 감겨들어갔다. 이제는 익숙하기 그지없는 선택지 없는 상황. 안 한다고 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야 뻔했다.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킨 윤수가 다시 시트 위에 올라갔다. 생각해보니 스스로 그런 걸 해본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이 넣은 적만 있지, 스스로 넣은 적이 없다. 윤민의 눈치를 보던 윤수가 느릿하게 손가락을 세워 다리를 벌린 구멍 틈으로 후벼 넣었다. 생소한 감각에 양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무표정으로 그것을 보던 윤민이 윤수의 손목을 붙들고는 보다 안쪽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윤수야. 형이 항상 얘기하잖아. 제대로 하라고.

윤수의 손아귀에 힘을 실은 윤민의 움직임에 따라 손가락이 깊숙하게 들어왔다. 언제나 남들이 쑤셔대던 구멍에 자신의 손가락이 넣는 일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입 밖으로 긴장한 숨이 터져 나왔다. 손가락에 닿은 자신의 점막은 제 것인데도 낯설었다. 그 와중에 윤민의 힘에 따라 하염없이 들어가는 자신의 손가락이 두려웠다. 이대로는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갈 것만 같아서, 손등에 다소 힘을 실어보기도 했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윤민에게서는 멈출 의사가 전혀 비치지 않았다. 최대한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으라는 것처럼, 한 없이 안으로 손가락을 쑤셔댔다.

“으응, 아. 혀엉.”

“더 넣어. 더 들어갈 수 있잖아.”

“못 들어가. 나 이렇게 한 적 없. 읏.”

“두 개나 들어간 적도 있으면서. 힘든 거 아니잖아.”

웃으며 건넨 윤민의 말에 목덜미가 순식간에 위축됐다. 아, CCTV. 봤을 거다. 오 회장과 윤혁이 동시에 넣는 것. 바들바들 떨어대던 윤수의 고개가 힘없이 풀어졌다. 체념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를 더 안쪽에 가져갔다. 앞에서 그것을 찬찬히 응시하는 윤민의 시선은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윤수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간 두 개의 손가락이 슬슬 내벽을 긁어내렸다. 그 동안 자신의 구멍에 박아대던 이 집 남자들의 성기가 떠올라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분명히 들어온 건 자신의 손가락인데, 왠지 그들의 귀두가 자신의 점막을 후벼대는 것만 같아 눈썹이 불안정하게 경련했다. 파르르 진동하며 제 안을 쑤셔 대는 윤수를 보며 윤민이 지시했다. 더 넣어.

손가락이 네 개까지 들어왔다. 스스로 하는 것도 더 이상 한계였다. 손가락을 구멍에 집어넣은 채 안쪽에서 움찔거리는 행위를 보이는 것이 그런 걸 좋아하는 변태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절망적이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윤수의 상의가 문득 윤민의 손아귀에 잡혀 위로 끌어올려졌다. 완전히 섰네, 여기. 형한테 보이는 거 좋았어?

윤수의 부풀어 오른 유두를 손가락으로 비벼 대면서 윤민이 지그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의 얼굴 때문에 윤수는 스스로가 더 경멸스러워졌다. 튀어나온 유두를 어루만지던 윤민의 시선이 스스로 내벽을 탐하는 윤수의 모습을 한동안 감상했다. 이내 서서히 고개를 내려 입 안에 유두를 머금었다. 아. 커다란 음성이 윤수의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멈추지 마. 금방이라도 멎기 일보 직전인 윤수의 손아귀를 윤민이 거세게 쥐었다. 이제는 완전히 윤민의 의지에 따라 안으로 후비고 들어오는 제 손가락 때문에 자꾸만 숨이 가빠졌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축축해지는 점막이 스스로 생각해도 발칙하게 느껴졌다.

“잘 하네. 앞으로도 종종 시켜야겠다.”

“형. 이제, 그만. 읏.”

“안 돼. 계속 해. 쌀 때까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윤수의 손가락을 움켜 쥔 윤민의 손아귀가 소리 없는 경고처럼 다가왔다. 진심일까. 아랫입술을 수시로 깨물어 대던 윤수의 손가락이 문득 성기를 쑤셔 넣는 것처럼 불쑥 들어갔다가 빠져나갔다. 아윽. 윤수의 양 무릎이 곤두세워졌다. 만족스럽게 반응을 확인한 윤민의 손아귀가 손목에서 풀려 나갔다.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내벽의 입구에 머물러 있던 윤수의 손가락이 쿵쿵 울려대는 것만 같았다.

윤민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최대한 고개를 숙였다. 아까 윤민이 했던 것을 따라 성기를 튕겨내는 것처럼 손가락을 거세게 밀어 넣었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손가락이 구멍 안에 수시로 들어갔다가 빠지는 것을 바라보며 윤민이 은은하게 웃었다. 보기 좋네. 끝까지 해 봐. 형이 있다가 자지 넣어줄게.

안쪽으로 하염없이 치닫던 손가락에 보다 튀어나온 점막이 닿았다. 윤수의 입술이 아찔하게 벌어졌다. 안착할 곳을 헤매는 것처럼 그 곳을 향해 몇 번인가 손가락을 비벼댔다.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완전히 달아오른 윤수의 얼굴을 확인한 윤민이 고개를 숙였다. 꽤나 발기해 있는 윤수의 성기를 짧게 입에 머금었다. 차가운 타액이 진액처럼 온 표피를 감쌌다. 길게 그것을 흡입한 윤민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성기가 정액을 분출했다. 시트를 적신 자신의 흔적은 보는 것만으로 지독한 좌절감을 안겼다.

잘 했어. 짧게 윤수의 볼에 입을 맞춘 윤민이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 윤수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얘기했잖아, 넣어준다고. 순식간에 경직된 윤수의 귓바퀴를 어루만지며 윤민이 속옷을 끌어내렸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커다란 성기를 보자마자 윤수의 귓가가 홧홧해졌다.

더 벌려. 단조로운 윤민의 지시에 윤수의 허벅지가 무력하게 바깥쪽으로 벌어졌다. 하얀 허벅지를 양 손에 쥔 채로 윤민이 자신의 성기를 다리 사이에 밀착시켰다. 벌어진 구멍에 스멀스멀 들어오는 탄탄한 귀두에 입구가 빠르게 움찔거렸다. 반사적으로 윤수의 어금니가 깨물렸다. 비좁은 틈을 억지로 넓혀가며 성기를 밀어 넣던 윤민이 낮은 숨을 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던 셔츠가 통째로 벗겨졌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흔적이 현현하게 윤수의 시야를 엄습했다. 윤수의 책임은 한 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저 많은 흉터들.

윤수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까맣게 잠식한 시야 속에서 윤민의 하반신이 부딪혀오는 소리가 생생했다. 물과 물이 만나는 것처럼 질척이는 소리. 그 소리는 윤수로 하여금 어떤 자극적인 감각보다 더 이 상황을 확고하게 각인시킨다. 자신이 형과 하반신을 맞댄 채 섹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윤민의 음경은 이제 완벽하게 윤수의 뱃속을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밀어 넣어야 이 조붓한 공간을 쉽게 침투할 수 있는지, 어디쯤의 점막이 약하고 어디쯤에 윤수가 예민해하는 돌기가 존재하는지. 윤수도 가늠하지 못하는 내벽을 자신의 것처럼 문질러대는 윤민의 성기에 하반신이 마비될 것처럼 소스라쳤다.

“하아, 형. 힘들어. 읏, 힘들어.”

“거짓말하지 마.”

“아니, 그런. 하아. 그런 게, 으응.”

가느다랗게 신음 소리를 뱉은 윤수의 팔이 윤민의 어깨 쪽으로 올라갔다. 이 상황을 전부 부정하고 싶다는 것처럼 절박한 손아귀가 윤민의 일렁이는 어깨를 쥐었다. 꽉 채워진 뱃속이 파열할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 윤민의 귀두를 타고 간질거리는 감각이 발끝까지 적시는 것만 같았다. 윤민의 어깨를 쥐고 있던 윤수의 손가락이 위태롭게 흘러내렸다.

형 끌어안아 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윤수의 몸을 보며 윤민이 말했다. 윤수의 시선이 자신 없이 비껴갔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한숨을 쉰 윤민이 윤수의 팔을 강제로 끌어냈다. 자신의 목덜미 뒤쪽을 향해 윤수의 양손을 고정시킨 윤민이 대뜸 몸을 밑으로 눕혔다. 순식간에 하반신이 더 질척하게 밀착됐다. 앗. 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까워진 윤민의 존재감에 윤수의 손가락이 흠칫 곤두세워졌다.

내벽의 주름을 사정없이 비벼대던 성기가 문득 윤수의 민감한 돌기를 스쳤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분열하는 세포 마냥 터져 나갔다. 빠르게 경련하는 윤수를 보다 견고하게 끌어안은 채, 윤수를 자지러지게 만드는 삽입을 지속했다. 불끈한 귀두와 음경에 돋아있는 혈관이 예민한 부위를 찔러댈 때마다 윤수의 허리가 녹아내릴 것처럼 지끈거렸다.

“흐읍. 아. 혀엉, 하으. 이상, 이상해.”

“윤수야. 제발 도망치려 하지 마. 네가 내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외면하려 하지 마.”

“흐, 으읏. 형아. 아, 나는 싫. 그런 거.”

“그런 말 하지 마. 너는 그냥 내 거야. 처음부터 그랬어.”

팽팽한 성기가 내벽의 출구조차 틀어막을 것처럼 단호하게 윤수를 파고들었다. 깊숙한 점막에 성기가 닿을 때마다 물이라도 튀는 것 마냥 찰박거리는 소리가 윤수의 귓속을 스몄다. 그저 윤민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버티고 있을 뿐인데, 참기 어려울 정도로 온 몸의 세포가 울렁거렸다. 윤민의 목덜미 너머로 지그시 맞잡은 양 손은 성기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필사적으로 서로를 지탱하기에 바빴다.

키스해 봐. 한참 동안 윤수의 뱃속에 음경을 밀어 넣던 윤민이 까만 동공을 아래쪽으로 끌어내리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데, 키스까지 하라니 말도 안 된다. 불안정하게 벌어져 있던 윤수의 입술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윤민이 보다 뱃속을 빠르게 후벼대기 시작했다. 목 끝까지 밀어 넣는 듯한 성기에 내벽이 터져나갈 것처럼 진동했다. 형, 그만. 애타게 호소하는 윤수를 향해 윤민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하라고 했지.

귓가에 닿는 윤민의 명령은 거부하는 순간 목구멍을 틀어막을 것처럼 위협적이다. 윤민의 목덜미 안으로 파고들 것만 같은 손가락을 간신히 지탱한 채, 윤수가 다급하게 윤민의 입가에 입술을 부딪쳤다. 하. 짧게 숨을 터뜨린 윤민이 입 안 깊숙이 혀를 밀어 넣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윤수의 손가락이 가쁘게 떨렸다. 입 안의 점막 사이사이를 훑어대는 윤민의 혀에 머릿속까지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정말로 자신이 이 사람과 뭐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모근이 송연해졌다. 형제로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관계처럼 느껴져 좌절감이 온몸을 적셨다.

키스와 동시에 내벽을 치고 들어오는 움직임이 묵직해졌다. 아까 혼자 손가락으로 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윤민의 성기가 빠져나갈 때마다 공허해졌던 감각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윤수의 몸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내 다시 같은 것이 들어올 때면 머리끝까지 소름이 차오르는 기분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하아. 형. 그만, 아. 형. 머리 어떻게 될 거 같.”

“형이 안에 싸주고 끝낼 게. 그래도 되지?”

나직하게 건네 오는 말에 윤수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멎었다. 안에 싸 봐야, 윤수가 임신이라도 할 일은 없는데. 굳이 물어보는 것에 얼굴이 간지러워지는 것만 같았다. 철썩 소리와 함께 윤민의 귀두가 사납게 안으로 치달았다. 안을 적신 쿠퍼액이 윤수의 내벽에서 흘러내린 애액처럼 끈적했다.

처음에는 그냥 섹스라고 생각했다. 오윤민뿐 아니라 이 집안 형제들이 원하는 건 그저 윤수의 몸을 취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형제들은 윤수의 몸을 떠나서 모든 걸 갖고 싶어 한다. 윤수의 감정, 미래, 존재의의까지도. 단 하나도 윤수만의 것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모두 흡수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정말로 형제들은 윤수가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윤민이 얘기했던 것처럼, 임신이라도 시켜서 애를 낳게 하면 강제로 잡아두기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오 회장이 윤수의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하지만 윤수는 그런 미래를 원치 않았다. 윤수에게는 자신만의 오롯한 존재감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윤수는 자신의 뱃속을 점령하며 건네 오는 윤민의 요구를 거절하는 게 어렵다. 온몸을 뜨겁게 적시는 낯선 희열감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감응하는 자신의 감각을 외면하는 게 어렵다.

“아아. 으응. 형. 아, 안에.”

“제대로.”

“안에 싸, 흐읏. 싸 줘. 형.”

윤수의 뱃속에서 윤민이 성기가 불현듯 가쁘게 내벽과 마찰했다. 윤수의 고개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젖혀지는 사이 꽉 채워진 내벽이 축축해졌다. 낮은 숨을 쉰 윤민이 다소 젖어 있는 윤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거 봐.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서. 한 동안 뜨겁게 안에서 머물러 있던 성기가 주욱 빠져나가고, 윤수의 무릎이 흠칫 올라갔다.

공허해진 뱃속을 어루만지던 윤수의 몸이 빠르게 일으켜졌다. 오주원. 입 밖으로 절로 주원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따스했던 윤민의 시선이 순식간에 식어갔다. 차마 자신이 들은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 얼굴을 결연하게 응시하며 윤수의 입술이 벌어졌다. 주원이, 그럼 이제 된 거지.

짧은 숨을 몰아쉬는 윤수의 목덜미를 덜컥 윤민이 잡아챘다. 완전히 밀착될 것처럼 가까이 시선을 맞춘 윤민의 눈빛이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사납게 돌변해 있었다. 마주쳐진 윤수의 눈꺼풀이 힘없이 바들거렸다. 오주원이 왜 나와, 거기서. 넌 지금 네가 원해서 나랑 섹스한 거야.

윤수의 고개가 건조하게 가로저어졌다. 아니야. 말을 마치자마자 윤민의 시선을 피해 눈꺼풀을 빠르게 끌어내렸다. 윤민이 한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 방금 전까지 내벽을 채우던 불끈한 성기의 압박감이 지금도 뱃속에 현현하다. 그러나 윤수는 그걸 부정하는 걸 택한다. 정답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을 포기하게 되니까.

오주원 때문이었어. 나직하게 떨어진 윤수의 말에 순간적으로 지하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말을 잃은 윤민이 차마 힘들다는 얼굴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다시 윤수를 향하는 시선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너, 진짜. 이따위로 나올 거야. 시트 위의 핸드폰을 향해 윤민의 손아귀가 빠르게 올라갔다. 어딘가에 전화를 건 윤민이 공허하게 윤수를 응시했다. 뭘 하려고. 마주보던 윤수의 손가락이 시트 위를 불길하게 맴돌았다.

51.

어, 윤혁아. 지금 윤성이랑 같이 내려 와. 오주원도 데리고 와. 통화는 짤막하게 끝났다. 순식간에 동그래진 눈동자가 윤민을 향했다. 시트 위에 머무는 손아귀가 스스로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게 전율했다. 입 밖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미쳤어? 미간을 찌푸린 윤민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있잖아. 대체 왜 이렇게 고집스러워.”

“고집스러운 게 아니라, 나는.”

“너 힘든 거 내가 몰라? 그래서 일부러 시간 줬잖아. 너, 이 집에서 도망쳐서 오주원 데리러 갔던 4일.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내가 몰라서 그냥 뒀겠어? 알면서도 일부러 내버려 뒀어. 너 생각할 시간 가지라고. 그렇게까지 해 줬는데, 그 결과가 이거야?”

분연히 터뜨리는 윤민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격양돼 있었다. 이렇게 흥분하면서 말을 하는 윤민은 처음이었다. 멍하니 듣고 있던 윤수의 어깨가 흠칫거리며 위축됐다.

문득 위편에서 지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왜 이렇게들 싸워. 심드렁하게 한마디 한 윤성이 차분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이어서 내려오는 윤혁의 품 안에는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주원이 있었다.

오주원. 벌떡 몸을 일으키며 주원 쪽으로 가려는 윤수의 팔을 윤민이 강하게 쥐었다. 어디 가. 앉아 있어. 팔을 감싼 윤민의 손아귀가 단호하게 윤수의 몸을 밑으로 끌어내렸다. 벗은 몸이 맥없이 시트 위에 앉혀졌다.

벗은 상의는 둔 채로 하의를 정돈한 윤민이 시트 위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일별한 윤성이 윤수 쪽으로 다가오며 혀를 찼다. 완전히 굳어 있는 윤수의 어깨를 끌어안고는 다정하게 다독였다. 그러게, 내가 얘기했잖아. 형. 원하면 죽여준다고. 웃으면서 건네는 해맑은 언어에 윤수는 차마 할 말을 잃었다. 이 상황에서 태연하게 이런 말을 하는 윤성이 새삼 공포스러웠다.

아직도 싫어? 우리 윤수 형, 이렇게 착해서 진짜 어떻게 해. 말이 없는 윤수의 입가에 윤성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쪽 소리가 날 정도로 뽀뽀를 한 뒤 고개를 들었다. 막 윤혁의 품 안에서 내려온 주원이 윤수 쪽을 향하려 하자 윤민이 강하게 저지했다.

“가만히 있어. 오주원.”

“싫어.”

“오윤수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그렇게 말 안 듣다가 나중에 험한 꼴 당할래?”

윤민의 엄한 경고에 주원의 어깨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지켜보던 윤혁이 긴 한숨을 쉬며 윤민의 어깨를 짧게 치고는 지나갔다. 좀 적당히 해라, 세 살짜리 데리고. 이내 윤성의 품에 안겨 있다시피 한 윤수의 앞에 섰다. 벗은 몸을 탐탁지 않게 훑고 난 눈가가 짙게 일그러졌다. 괜찮아, 오윤수?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도무지 이 형제들의 심리를 알 수가 없다. 각자를 경계하는 건 분명한데, 서로에게 그걸 티내지는 않는다. 그저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처럼.

왜 부른 거야, 형. 여전히 인상을 찡그린 채 윤혁이 윤민을 봤다. 담배 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낸 윤민이 입가에 그것을 질끈 물었다. 곁눈질로 윤수와 윤혁, 윤성을 차례로 훑은 뒤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길게 연기를 뱉어 낸 윤민의 입술이 심상하게 열렸다.

“한 번씩 해. 돌아가면서.”

“형. 진짜 돌았구나.”

무표정으로 윤혁이 반박하는 사이 윤성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잠시 윤수 쪽을 쳐다봤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윤민이 한 얘기가 툭 터진 물방울처럼 윤수의 귓가를 눅눅하게 적셨다. 돌아가면서 하라는 게, 정말 그 의미일까. 그런 행위를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다 보는 앞에서, 오주원까지 있는 자리에서 윤수를 범해서 윤민이 뭘 얻을 수 있다고.

망연하게 앉아있는 윤수의 머리카락을 길게 쓸어내린 윤성이 엷게 웃었다. 괜찮겠어, 형? 지금이라도 얘기하라니까. 초점 없는 윤수의 시선이 윤성을 향했다. 윤성의 입가에 걸린 의미심장한 미소가 윤수의 심장을 아릿하게 찔러왔다. 죽인다고. 오윤민과 오윤혁을. 오윤성이라면 못할 것도 없을 거다.

그런데 그게 맞는 일일까. 윤수는 그 선택지를 고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스스로가 살아선 안 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만 같다. 이건 오 회장과는 다른 문제였다. 오 회장은 누가 봐도 죽어야 마땅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오윤민과 오윤혁에게도 같은 일을 저지르는 게 맞는 걸까. 아무리 자신을 범한 형제들이라 해도, 그들의 목숨을 끊는 것에 동의하는 일이 옳은 걸까. 그들과 자신 사이에 이어진 단단한 핏줄을 애써 끊어내는 일을, 윤수가 할 수 있을까.

안 해? 테이블 위에 재를 털어낸 윤민이 딱딱하게 물어왔다. 숨을 뱉은 윤혁이 자신의 얼굴을 괴롭게 감싸 쥐는 게 보였다. 멈춘 것처럼 둘의 실루엣만 응시하던 윤수의 귓가에 윤성이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아, 정말 우리 형은 정말 착하구나. 아니면, 사실은 둘 다 좋은 건가. 픽 웃은 윤성이 윤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건 또 그거대로 기분이 나쁘네.

불현듯 목덜미를 쥐어 오는 윤성의 손아귀에 윤수의 몸이 절로 시트 위에 무너졌다. 경직된 채로 누워있는 윤수의 위로 윤성이 서서히 올라탔다. 윤민 형 자지, 그렇게 좋았어? 귓불을 잘근잘근 물어 대면서 건네 오는 질문은 언제나 윤성이 하던 그것처럼 악의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윤수는 이 아이의 순수한 내면이 그 어떤 극악한 범죄보다도 무섭게 다가왔다.

살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윤성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아, 잠깐. 빠르게 소리를 내지르며 올라가는 윤수의 손아귀를 윤성이 잡아챘다. 피곤하게 굴지 마, 형. 그대로 시트 위에 윤수의 팔목을 묻은 채 좀 더 위로 올라오는 윤성의 몸을 보고 있으니 웬만한 성인남자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대체 언제 저렇게 큰 거지.

윤성의 무릎이 짓이기는 것처럼 윤수의 허벅지를 벌렸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쏟아내며 윤수의 다리가 강제로 벌어져갔다. 윤수의 쇄골에 얼굴을 묻은 윤성이 축축하게 중얼거렸다. 형은 갈수록 더 꼴리는 거 같아. 쇄골 깊숙이 혀를 묻고 난 윤성이 하의를 벗어 내리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윤성아, 좀. 이를 악물며 뱉는 저항을 무시한 윤성이 남은 속옷까지 끌어내렸다. 쇄골에 닿는 혀의 감촉이 보다 질척해졌다. 형. 그러게 내가 지켜준다고 했을 때 말 들었어야지.

벌어진 구멍을 뚫고 윤성의 성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의 것이 빠져나간 지 오래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생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상황은 그 자체로 소름이 돋았다. 윤수의 아랫입술이 가쁘게 깨물렸다. 아직도 윤민의 것이 안에 있는 것만 같은데, 거기에 겹쳐지는 또 다른 이물감 때문에 하반신이 전기라도 흐르는 것처럼 저릿해왔다.

윤성아, 그만. 애처롭게 윤성의 팔에 손을 올린 윤수가 쥐어짜는 것처럼 애원했다. 윤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빠르게 수축되는 뱃속이 만족스럽다는 것처럼 웃은 윤성이 손가락을 들어 윤수의 입술을 강제로 벌렸다. 벌어진 윤수의 입 안에서 윤성의 혀가 사정없이 굴러다녔다. 흐읍. 젖어있는 윤수의 음성이 지하실을 채웠다.

문득 시선을 둔 곳에는 거의 담배를 다 피우다시피 한 윤민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 채 꽁초를 비벼대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지자, 표정 없는 얼굴로 쓱 한 번 훑고는 윤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윤성. 윤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불끈한 귀두를 보다 깊숙이 윤수의 내벽에 밀어 넣었다. 하읏. 후들거리는 윤수의 무릎이 일순간 위로 솟구쳤다가 무력하게 흘러내렸다.

부르잖아. 형이. 보다 무게감 있게 건넨 윤민의 말에 윤성의 한 쪽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선명하게 비쳤다. 고개를 돌린 윤성이 성의 없는 대답을 건넸다. 왜, 형.

“오윤수 이쪽으로 두고 해.”

“난 마주보고 하는 게 좋은데.”

“형이 하라면 해.”

나른하게 눈을 감았던 윤성이 살짝 웃으며 윤수를 봤다. 아까보다 한층 해맑은 미소. 그래서 더 속내를 알기 어려운 웃음이었다. 그러라는데, 형? 간신히 윤성의 팔에 기대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렸다. 윤수는 슬슬 이 상황에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 지하실 안에서의 모든 통제권은 형제들의 손아귀에 있었고, 윤수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 지하실에 오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형제들은 이 밀폐된 공간에서 통제권의 지분을 둔 암묵적인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윤혁과 윤성은 자신들에게 어떤 언질도 없이 지하실에서 윤수를 범한 윤민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굳이 여기서 표출하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한적으로만 드러낼 뿐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행위까지 통제하려 드는 윤민 때문에 윤성의 신경이 한껏 예민해졌다. 아마도 윤성은 이 와중에 자신만 양심을 챙기는 것처럼 구는 윤혁조차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맥 빠진 윤수의 볼을 윤성의 손아귀가 부드럽게 주물렀다. 고개를 들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은 윤수의 피부를 느릿하게 혀로 핥은 윤성이 윤수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난 지금 오윤민이 너무 짜증나는데. 오윤혁도 마음에 안 들고. 근데, 왜 이렇게 형한테 더 화가 나지. 전혀 나를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형이.

윤성아. 메마른 목소리로 윤성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벌떡 몸을 일으킨 윤성이 진열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서랍을 열어 뭔가를 찾는 윤성을 보면서 윤혁이 불안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찾는 거야, 너. 윤성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저번에 여기서 뭐 봤었거든. 약간의 탐색 끝에 이내 원하는 것을 찾아냈는지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손아귀에 든 것을 활짝 펼치고는 형제들이 있는 쪽에 보여줬다. 윤민이 차마 못 볼 걸 봤다는 얼굴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놈의 집 안도 정신이 제대로 나갔지.

다시 침대가 있는 쪽으로 걸어 온 윤성이 윤수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 짤막하게 고통을 표출한 윤수가 엉거주춤 시트 위에 몸을 앉혔다. 윤수의 볼에 입을 맞춘 윤성이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형이 나 화나게 해서, 형 괴롭히고 싶어졌어.

묘한 불안감에 말라붙은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였다. 윤성의 여유로운 얼굴만 응시하는 사이, 문득 어떤 물질이 성기 아랫부분을 휘어 감는 게 느껴졌다. 아, 윤성아. 당혹스럽게 소리를 뱉는 윤수의 팔을 붙든 채 윤성이 단단하게 그것을 한계까지 채웠다. 성기를 휘감는 압박감이 생소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것이었다. 아래를 봤을 때는 피가 몰릴 정도로 밑 부분을 감싸고 있는 링 모양의 구속구가 있었다.

자신의 몸에 걸쳐진 것을 믿고 싶지 않아 윤수의 허벅지가 쉴 새 없이 경련했다. 주저 앉아있는 윤수의 뒤편으로 윤성이 다가갔다. 윤수의 어깨를 쥔 채 덜컥 시트 위에 묻고는, 강제로 엉덩이를 위로 향하게 했다. 잠깐만, 하지 마. 이 상황이 어딘가 창피스러워 눈물을 머금어가며 거부하는 윤수의 턱을 쥔 채 윤성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생각해보니까, 나 형이랑 뒤로 한 적이 없네. 다정한 윤성의 목소리가 윤수의 귓가를 위협적으로 엄습했다.

52.

두툼하게 발기한 윤성의 성기가 세차게 구멍 안을 파고들었다. 마주보며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압도하는 삽입이었다. 하읏. 가느다랗게 비명을 지르면서 고개를 숙이는 윤수의 턱을 쥐고는 윤성이 예사롭게 얘기했다. 형들이 얼굴 보여 달래. 나는 보여주기 싫었는데, 지금 형이 하는 거 보니 보여주고 싶어졌어.

내벽을 집요하게 후벼대는 감각에 하반신이 순식간에 저릿해졌다. 들어찬 성기가 심장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간신히 지탱하던 윤수의 허리가 위태롭게 흘러내렸다. 맞은편에 보이는 윤민이 깊게 숨을 들이키고는 턱을 괸 채 윤수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다. 윤수의 고개가 무력하게 끌어내려졌다.

허리 좀 더 세워. 따먹히는 거 제대로 보여줘야지. 잔잔하기 그지없는 윤성의 목소리에 어딘가 날이 서있다. 뱃속을 장악한 동생의 음경은 앞서 같은 공간을 쑤셔대던 형 못지않게 발정해있었다. 앞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윤민과 윤혁의 존재감을 잊기 위해 어떻게든 시야를 흐트러뜨렸다. 단지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 희미해진 그들의 실루엣은 정확하게 그 표정을 알 수 없어 더욱 윤수를 긴장시켰다.

내벽을 쉴 새 없는 지분거리는 성기 때문에 뱃속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윤성의 하반신이 윤수의 엉덩이에 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살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누적된 마찰횟수가 늘어날수록, 성기를 채운 구속구의 압박이 묵직해졌다. 흐릿하게 자국을 남기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문득 막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던 윤혁과 절로 눈이 마주쳐졌다.

뭐 해? 오윤혁.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끌어내리며 윤민이 윤혁을 봤다. 뭐를. 반문하는 윤혁으로부터 시선을 떨어뜨린 윤민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왜 보고만 있냐고. 네가 오윤수한테 좀 박아줘야 쟤가 이 집에 왜 있어야 하는지 깨닫기라도 할 거 아니야. 윤수의 입 밖으로 허망한 숨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거였다. 구속구를 채운 뒤 형제들에게 돌아가면서 당하게 하고, 부풀어 오른 스스로의 성기를 괴로워하다가 절정에 가는 걸 보겠다는 거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에 연이어서 몸을 내주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형제들에게 필연적으로 감응하는 자신의 몸을. 오윤민은 그걸 알려주고 싶은 거다. 단지, 윤수를 이 한남동 집에 붙들어놓기 위해서.

문득 안쪽으로 밀려들어오는 음경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내벽 곳곳이 물크러지는 고통에 입 밖으로 밭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 윤성아. 제발 좀. 안에다가 저를 박제하기라도 할 것처럼 쑤셔대는 윤성의 성기 때문에 딛고 있던 무릎에서 힘이 스르르 풀어졌다. 종종 미끄러지는 윤수의 몸을 윤성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탄탄하게 지탱했다. 자신과 섹스 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걸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짐승처럼 뱃속을 후벼대는 동생의 성기를 받아들이고, 그걸 또 다른 형제들에게 보이는 상황을 견디며 윤수는 자신이 이 집에서 인간이기는 할까 싶은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윤수가 정말 짐승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단지 윤수이기 때문이다.

딱딱한 귀두에 점막이 짓이겨지는 상황에서도 하반신을 채우는 가려운 감각에 손아귀가 흠칫거리며 시트를 쥐었다. 자리자리한 감각이 쌓일수록 윤수의 성기를 채운 구속구가 터질 것처럼 조여 왔다. 눈물과 함께 귓가에 묻어 있던 땀이 절망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방법밖에 없어? 형. 윤혁의 질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또 한 대의 담배를 입가에 문 윤민이 턱짓으로 윤수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윤수를 보는 시선에 초점이 다소 흐려져 있었다. 그럼, 넌 다른 방법 있어?

“흐읏, 아. 윤성아. 아파. 이거 터질 것, 터질 것 같.”

“윤민 형이랑 방금 해서 헐렁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잘 조이네. 여기도 잘 조이는 것 같고.”

살며시 웃으며 성기에 맺힌 구속구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윤수의 어깨가 무너질 것처럼 부들거렸다. 입술을 타고 타액까지 시트 위에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떨어진 눈물과 겹쳐져 수많은 자국이 하얀 천위에 새겨졌다. 살짝 시선을 끌어내리니, 붉어질 대로 붉어진 상태로 배출조차 못하는 자신의 성기가 보였다.

아직도 안 먹고 싶어? 테이블 위에 재를 한 번 털어낸 윤민이 흘깃 윤혁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 진짜 형은 사람 한 번 좆같이 잘 다뤄. 혼잣말 같지 않은 혼잣말을 뱉은 윤혁이 차분하게 팔짱을 꼈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그걸 응시하던 와중에, 윤성이 제법 사납게 성기로 내벽의 끄트머리를 두드려댔다. 뱃속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강제로 벌려진 입 밖으로 차마 내놓고 싶지 않은 소리가 계속해서 뱉어졌다.

“으응, 아. 윤성아. 거기 그만, 찢어져. 하으.”

“응. 빨리 싸고 끝낼 게. 윤혁이 형 해야 하니까.”

소리 내며 웃은 윤성이 윤수의 귓불을 찰박거리며 핥았다. 이내 질퍽하게 뱃속에 쏟아 부어진 뜨거운 정액에 순식간에 허벅지의 힘이 소실됐다.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성기에서 뭐라도 배출하고 싶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스르르 빠져 나간 윤성의 자리가 기묘하게 공허했다.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시트에 몸을 묻은 윤수를 지켜보다 윤혁이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윤수의 어깨를 쥐는 손길이 완고했다.

“오윤수. 일어나. 마저 하게.”

“제발. 나 못, 못 해. 이제.”

“일어나라고 했지.”

강압적으로 윤수의 허리를 감싸는 손길을 윤수가 다급하게 쥐었다. 다소 성난 듯한 윤혁의 목소리가 윤수의 귓바퀴를 휘감았다. 야. 안 싸고 싶어? 눈시울에 맺혔던 물기가 빠르게 밑으로 흘러 내렸다. 기운 없이 늘어진 윤수의 하반신을 윤혁이 다시 우악스럽게 일으켰다. 윤수의 구멍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이 안에 들어찬 정액을 확인하는 게 느껴졌다. 읏. 윤수의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윤혁이 자조적으로 말을 건넸다. 다 대주는 건 알았는데, 직접 보니 난리도 아니네.

퍽 소리와 함께 뱃속이 순식간에 뚫렸다. 윤수의 턱 끝이 맥없이 진동했다. 다소 분기 어린 움직임이 내벽을 아까처럼 헤집어대기 시작했다. 또 다시 뱃속이 극한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형, 그리고 막내, 이제는 바로 밑 동생. 연이어 들어오는 형제들의 음경은 하나같이 발기해있고, 그걸 그렇게 만든 건 윤수 자신이었다.

순식간에 직장 끄트머리에 닿은 귀두가 느릿하게 예민한 점막을 비벼댔다. 구속구에 사로잡힌 윤수의 것이 다시금 태동했다. 이제는 한계였다. 이대로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나 제발 좀. 울먹이며 뱉는 윤수의 말에 맞은편에 있던 윤민이 나직하게 물어왔다. 제발, 뭐.

세 번째 담배를 테이블 위에 내리꽂은 자신의 형이 표정 없이 윤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적막한 얼굴에 사실은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다는 걸 이제 윤수는 안다. 오윤민은 표정이 없을수록 생각이 많다는 걸. 그리고 지금의 표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입으로 들려 달라는 거다. 형제들 때문에 가고 싶다는 걸.

차마 입술을 떼지 못하고 질끈 눈꺼풀만 감아 대는 윤수의 뒤편에서 완전히 내벽을 망가뜨릴 것 마냥 들어오는 윤혁의 성기가 느껴졌다. 어느 한 곳을 뭉개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점막을 후벼 대는 감각이 축적될수록 윤수는 그만 성기를 적시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정신 줄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띄엄띄엄 신음과 비명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려 대는 윤수의 앞으로 윤민이 다가왔다. 윤수의 얼굴을 살짝 쥐어 자신 쪽에 향하게 한 뒤 시선을 맞췄다.

“윤수야. 동생 좆이 좋아서 싸고 싶은 거잖아. 그럼 얘기해야지.”

“흐윽, 아. 그, 그런 걸. 아읏.”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문장을 완성시킬 수가 없다. 얘기해야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차마 소리 내서 뱉을 수가 없다. 짙은 이명이 머릿속을 점령하고, 또 다시 현기증이 밀려왔다.

문득 철퍽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부딪히는 따가운 감각에 몸이 고꾸라졌다. 그대로 쓰러질 뻔한 윤수의 허리를 윤민이 잡아줬다. 동생 거 제대로 받아줘야지, 윤수야. 머릿속이 달아오른 자신의 성기만큼 뜨거웠다. 점점 더 상념의 하나의 목적만을 향해 뭉쳐졌다. 사정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얘기 해. 기분 좋아서 싸고 싶다고. 넌 이집 암컷이고, 그게 당연한 거니까. 윤수야. 심상하게 건네는 윤민의 말에 대답 대신 눈물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면 진작 했을 것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을 저버릴 수 있었다면, 훨씬 이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눈물만 떨어뜨리는 윤수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은 윤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던 바지의 버클을 푸르고, 속옷을 벗어 내린 뒤 윤수의 입을 벌려가며 윤혁을 봤다. 계속 해. 얘한테서 우는 소리 나오게끔.

말을 마친 윤민이 윤수의 벌어진 입 안으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 넣었다. 흐읍. 목구멍까지 막혀오는 느낌에 윤수의 목덜미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을 봐주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윤민이 끝까지 빠르게 음경을 채워 넣었다. 숨이 막혀 혼절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내벽을 쑤셔대는 윤혁의 성기만큼은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감각이 뚜렷했다.

엉덩이에 윤혁의 하반신이 부딪혔다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자신의 엉덩이가 그 소리만큼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입에 들어 온 윤민의 성기가 집요하게 윤수의 혀를 눌러대고 있었다. 계속 넣어줄 테니까, 혀로 잘 적셔봐. 윤수의 뒤통수를 휘어잡은 윤민이 느릿하게 팽창한 성기를 밀어 넣었다. 혀를 타고 들어간 귀두가 목구멍을 간질거렸다. 갈 곳을 잃은 윤수의 손아귀가 윤민의 팔을 쥔 채 다급하게 입 안에 머금은 것을 혀로 훑었다. 단단하게 쥐고 있던 윤민의 손아귀가 조금 느슨해졌다.

그래도 빨 줄은 아네. 아버지하고 오윤석이랑만 했던 거 아니었나. 다른 남자하고도 했어? 단조롭게 물어오는 윤민의 말에 대꾸할 기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맥없이 도리질치는 얼굴이 귀엽다는 것처럼 픽 웃은 윤민이 윤수의 귓바퀴를 어루만졌다.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또 무슨 소리라도 들을까 두려워, 달뜬 입술이 자꾸만 윤민의 성기를 더 깊숙이 머금었다.

종종 입 안에서 희미한 비명이 내뱉어졌다. 쉴 틈 없이 내벽에 생체기를 내는 윤혁의 음경 때문에 하반신이 통째로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사로잡힌 성기는 파열되기 직전이었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문득 성기를 뱉어낸 윤수의 시선이 절박하게 윤민을 향했다. 고개 밑으로 손을 넣은 윤민의 목소리가 사뭇 다정했다.

“왜. 할 말 있어?”

“하으, 형. 제발.”

“뭐. 얘기를 해야지.”

“싸고 싶, 하아. 싸게 해줘. 형아.”

이제야 말을 좀 듣네. 뒤편에서 한마디 한 윤혁이 살짝 힘을 줘서 윤수의 뱃속에서 성기를 튕겼다. 아앗. 간헐적으로 소리를 뱉은 윤수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서서히 윤수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몸을 끌어내린 윤민이 시선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말투에 제법 온기가 서려 있었다.

“왜 싸고 싶은데.”

“흐윽. 오윤혁, 오윤혁 자지하고. 다, 전부.”

“응. 다 좋은 거야?”

“응. 형 거하고, 윤성이 거하고. 전부. 전부 좋아서.”

스스로가 이 말을 하는 것이 창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빨리 이 욕정을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이 앞섰다. 체념한 것처럼 눈물을 떨어뜨린 윤수의 얼굴이 윤민의 품에 묻혔다. 뒤통수를 윤민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게 느껴졌다. 어둠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서히 몸을 일으킨 윤민이 윤혁에게 말을 건네는 게 들려왔다. 들었지? 안에 싸.

흠칫 놀란 얼굴로 올려다보는 윤수를 향해 윤민이 단조롭게 말했다. 윤혁이까지 싸게 해 준 다음에 풀어줄게. 너 잘못 했잖아, 벌은 받아야지. 말투에서는 물기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살짝 입술만 벌린 채 파르르 떨어대는 윤수의 몸을 문득 윤혁이 들어올렸다. 힘들지? 빨리 끝낼게.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윤혁이 자신의 하반신 위에 윤수를 앉혔다. 앉는 것과 동시에 윤수의 점막이 윤혁의 것을 스르르 삼켜내기 시작했다. 하읏. 이런 식의 삽입은 처음이었다. 소스라치고 난 윤수의 손아귀가 윤혁의 허벅지를 짚었다. 윤수의 성기를 잠시 어루만진 윤혁이 아래쪽에서 힘 있게 성기를 올려 쳤다. 뱃속의 모든 기관이 뒤틀리는 기분에 윤수의 고개가 힘없이 젖혀졌다. 윤혁의 팔에 걸려 들쳐진 다리 끝에서 발가락이 간헐적으로 전율했다.

“아, 오윤혁. 제발, 제발 싸게 해 달라고. 아앙.”

“응. 나 좋아해?”

“응. 좋아, 좋아하니까. 제발 나 살려줘. 흐읏.”

입 밖으로 생각지도 못한 신음소리까지 흘러나오는 걸 들었다. 지하실의 적막한 공기가 그 소리와 만나 메아리처럼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채 윤혁의 품 안에 얼굴을 묻었다. 희뿌연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윤민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지켜보던 윤성이 윤수를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수는 엄연한 이 집안 남자들의 공공재고, 그걸 오늘로써 강제로 인정 당했다. 남은 건 그 삶에 적응해나가는 것뿐이었다. 어머니가 그랬고, 이 집안의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윤수의 머릿속이 무력하게 녹아내렸다.

문득 안쪽에서 왈칵 윤혁이 사정하는 게 느껴졌다. 또 다시 질척해진 뱃속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맞은편으로 윤성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윤수의 성기를 어루만지고는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 풀어줄게. 형.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느릿하게 성기를 짓누르면서 구속구가 벗겨져갔다. 압박이 풀어지는 게 느껴질수록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윤성아, 빨리. 거의 말라붙었던 눈물샘이 또 다시 젖어들었다. 윤성의 어깨를 쥔 윤수가 엷은 신음을 흘리며 목덜미를 떨어댔다. 아직 채 구속구가 풀리지도 않았는데, 기다렸다는 것처럼 쿠퍼액부터 진득하게 시트를 적셨다.

형. 진짜 기분 좋았구나. 몇 명이 쑤셔대든지 상관 없었나봐. 지그시 웃은 윤성이 다 풀어낸 구속구를 바닥에 떨구고는, 윤수의 볼에 입을 맞췄다. 하아. 떨리는 숨을 가누면서 무심코 고개를 돌린 곳에 빤히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주원이 있다. 윤수의 목덜미가 순식간에 경직됐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저 존재를.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을 돌려 윤성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구속구가 해제된 성기가 시트 이곳저곳에 하얀 정액이 흩뿌리는 게 보였다.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하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게 윤수는 차마 보기가 힘들었다. 괜히 비참한 기분이 들어 두 눈을 질끈 감는 윤수의 머리통을 감싸며 윤성이 사랑스럽다는 것처럼 말을 건넸다. 형, 진짜 많이 싸네. 여자처럼 싸고 있어.

저 편에서 윤민이 들릴 듯 말듯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담하지만 제법 무게감이 있는, 지나치기 힘든 목소리였다.

말했잖아, 피는 못 속인다고.

53.

두 번째로 행정고시 2차 관문에서 탈락하던 날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소리 없이 베란다로 다가온 윤수를 발견한 어머니가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면서 물어왔다. 어떻게 됐어? 잘 안 됐어요. 윤수는 어머니가 그래도 잘 했다며 위로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며 푸념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가는 적막한 시간이 꽤나 흐르고, 어머니가 문득 물어왔다. 윤수 넌 꿈이 뭐니? 윤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도 아니고 꿈이 뭐냐고 물어오는 질문에는 쉽게 할 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젠가 어머니가 했던 같은 질문에 기재부 사무관이나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긴 했지만, 어머니는 그것이 대답이 될 수 없다는 투로 답했다.

어머니는요. 생각 끝에 윤수는 그런 질문을 했다. 담뱃대를 쥐고 있던 어머니의 손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점점이 재떨이 위로 흩어져 내리는 하얀 재가 어머니의 고즈넉한 등을 닮아 있었다.

“난 이뤘었어. 그리고 못 이뤘고.”

“이루긴 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거예요?”

“아니, 이뤄놓고 내가 도망쳤지.”

두 번째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 어머니가 몸을 돌려 윤수를 응시했다. 메마르고 수척한 피부를 한낮의 햇살이 나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무렵 사십 킬로가 채 나가지 않는 야윈 사람이었다. 키가 백 칠십에 육박하는 여자가 그 정도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뼈와 가죽만 남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윤수가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됐을 무렵부터 찾아온 거식증에 어머니는 사람으로서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체중만을 남겨놓고 모두 반납했다. 그런 어머니였음에도 이따금씩 윤수는 그녀를 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저 여자는, 아름다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윤수야. 넌 나처럼 살면 안 된다. 단호하게 한마디 한 어머니가 거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문을 닫은 뒤 소파 위에 앉아 시트 옆을 가볍게 다독였다. 잠시 그 얼굴을 응시하던 윤수가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어머니의 손길이 윤수의 얼굴 위로 올라갔다.

“넌 앞으로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거고, 그 선택에는 모두 대가가 따를 거야.”

“그렇겠죠.”

“선택을 하든지, 하지 말든지. 혹은 선택에 따른 대가를 네가 바꿔보든지. 이 세 가지야. 이외의 선택지는 없어. 알겠니?”

“그게 제 꿈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알기 어렵다는 얼굴로 물어오는 윤수를 보면서 엷게 웃은 어머니가 얼굴을 가눴다. 길게 숨을 뱉은 어머니의 얼굴이 문득 TV 옆에 놓인 윤수의 어린 시절 사진에 닿았다. 당연히 상관이 있지. 나지막하게 얘기하고 난 어머니가 비스듬히 윤수를 응시했다.

“네가 나처럼 주어진 운명에 순응한답시고 안일한 꿈을 꿀까봐 그러지. 윤수야.”

* * *

꽤나 오랜 시간 잠에 빠졌다. 일어났을 때는 오늘이 며칠인지,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었다. 윤수는 그저 자기 위한 잠을 잤다. 그 뿐이었다. 잠을 자지 않으면, 현실을 못 버틸 것만 같았으니까.

하얀 낮의 햇살이 윤수의 얼굴을 적시는 시간이었다. 평일인지 휴일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침실에 홀로 있었고, 정원에서는 막 소나무를 손질한 정원사가 휴식을 취하려는 지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반 쯤 감겨 있던 눈꺼풀을 들어 소나무를 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제법 오롯하게 저것을 시선에 담을 수 있었다. 심지어 마음만 먹는다면 저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분명히 저 나무, 굉장히 두려운 존재였는데. 왜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게 응시하게 된 걸까. 어떤 변화가 있었지. 약간의 상념이 흐른 후, 윤수의 입가에 자조 섞인 웃음이 걸렸다. 내가 이 집 사람이라는 걸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된 것. 그것이 변화일까.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웃던 윤수의 입가가 멎었다.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이게 처음부터 형제들이 원하던 퍼즐이었고, 내가 그 퍼즐에 맞춰 들어갔으니 이제 행복한 결말이 되는 걸까. 분명히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윤수는 그걸 쉬이 그걸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 어떻게든 그 퍼즐에 맞춰지긴 했지만, 어딘가 어긋난 기분이다. 애초에 윤수라는 존재는 형제들의 퍼즐에 있어 아귀가 맞지 않았던 퍼즐조각이었던 것처럼.

턱을 괸 채 정원의 소나무를 내려다 봤다. 찬바람이 스산하게 방 안쪽으로 불어 드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윤수는 문을 닫을 생각 없이 그저 나무를 봤다. 휘잉 하며 불어치는 겨울바람 소리는 어떤 가느다란 음성을 닮아 있었다. 꽤나 할 말이 많은 듯한 여자의 소리. 소나무가 말을 한다면 저런 느낌일지도 몰랐다.

천천히 복도를 걸어 거실에 내려왔다. 여자 조리사를 두고 부엌 테이블에 마주 앉은 주원이 뭔가를 신나게 얘기하는 게 보였다. 원래 우리 집은 35층에 있었어요. 여긴 2층이라서 낮은 거예요. 윤수를 발견한 조리사가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뭇 지친 목소리를 건네며 손을 내저었다. 저한테는 하지 마세요, 그거.

조리사와 함께 몸을 일으킨 주원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윤수 쪽에 매달렸다. 형, 왜 이렇게 아팠어. 윤수의 아랫입술이 짧게 미동했다. 아팠다고. 그 지하실에서의 일을 주원은 그렇게 기억하는 걸까. 하기야 그럴지도 모르겠다. 윤수가 주원의 나이 무렵에 오 회장에게 이끌려 고문실에 가서 봤던 장면도 윤수의 인식 속에서는 그저 폭력이었을 뿐이니까. 성행위라는 개념을 애초에 생각할 수 없는 나이다. 살짝 몸을 숙인 윤수가 주원을 품에 안았다. 차분하게 등을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안 아팠어.

주원을 안은 채 소나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걸어갈수록 짙어 지는 솔 향이 마치 꿈에서 맡는 것처럼 아득했다. 아니, 어쩌면 이 정원 자체가 꿈에서나 존재했던 곳이 아닐까. 애초부터 이런 정원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런 집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집에서 머무는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소나무의 밑에 다다라 주원을 내려놓은 윤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형, 여기 좋다. 윤수의 무릎 위로 올라온 아이가 빙그레 웃어 댔다. 좋다고, 여기가. 한동안 그 말을 곱씹던 윤수가 픽 웃고 말았다. 그래, 너한테는 좋겠구나. 이 집의 소유자나 마찬가지인 부계혈통 남자들에게 있어 이 집의 뭔들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었다.

정처 없이 바닥을 딛고 있던 윤수의 손바닥에 문득 뭔가가 걸렸다. 네모난 돌의 모서리 같은 것. 일반적인 돌은 아니고, 꽤나 정교하게 다듬은 공산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었다. 잠시 내려다보던 윤수가 두리번거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까 정원사가 두고 간 삽을 들고 다시 근처로 돌아왔다. 형. 뭐해? 주원이 밑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며 올려봤다.

말없이 바닥의 흙을 파냈다. 한참 동안. 모서리는 하나의 변이 되고, 변은 하나의 면체가 됐다. 두 개의 변은 넓고 두개의 변은 좁은 진회색의 물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마치 비석처럼 보였다.

물체의 중간 무렵까지 흙을 파낸 윤수의 시야에 문득 박혀 있는 글자가 보였다.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글자의 곳곳에는 흙이 들어가 있어 일부러 털어내야 식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손가락으로 살살 안쪽을 문질러 흙을 털어내니, 두 개의 한자가 나타났다.

張 由. 장 유. 살짝 밑으로 끌어내려졌던 윤수의 눈꺼풀이 혼잣말과 함께 스르르 올라갔다. 장유경. 오승조의 어머니. 오인효의 첫 번째 부인. 그 여자의 비석을 소나무 밑에 파묻었다고.

설마, 비석만 묻었을까. 한 동안 그것을 노려보던 윤수가 다시 바닥을 향해 삽을 꽂았다. 어떻게든 더 아래까지 파내려는 윤수의 팔을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챘다. 서늘하게 뒤를 돌아보니, 윤민이 있었다. 뭐하는 거야, 너 지금. 있는 힘을 다해 그 손을 떨쳐 낸 윤수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윤민을 쳐다봤다.

“뭐야, 이거. 장유경 비석이 왜 여기에 있어.”

“윤수야.”

“장유경만이야? 어디까지 있는 거야. 아니. 애초에 비석만 있어?”

“형이 천천히 설명할게.”

“말 못하겠나 보네.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몸을 돌려 다시 삽이 있는 쪽으로 발꿈치를 밀어 넣는 윤수의 어깨를 윤민이 거세게 쥐었다. 일단 이리 와 봐. 다소 당황스러워 보이는 윤민을 보면서 윤수는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했다. 들고 있던 삽을 바닥에 내리꽂으면서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할 수 있는 최대한. 이건 정말이지, 답을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말하기 전에 안 가. 정확하게 얘기해. 이게 뭔지. 이 밑에는 또 뭐가 있는 건지.

짙게 한숨을 내 쉰 윤민이 허리에 양 손을 짚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꽤나 긴 시간 고민을 한 뒤, 침착하게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안정적인 얼굴인 데도, 어딘가 불안한 인상이 윤수의 시야에 담겼다. 이 사람이 이런 얼굴을 하는 건 분명히 드문 일이었다.

“할머니 비석 맞아.”

“그리고, 또.”

“윤수야, 일단.”

“그리고 또.”

재차 되물었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망막에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삼켜 내면서 윤민을 응시했다. 난처해하는 입술이 여전히 굳게 다물린 채였다. 그 침묵이 윤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 길게 눈물을 떨어뜨린 윤수가 자조적으로 헛웃음을 쳤다. 이 소나무는 처음부터 이 집안 여자들의 무덤이었다.

“내가 맞춰 봐? 이타노 쿄코, 이타노 쇼코, 이타노 미도리, 오수경, 장유경, 오수연까지. 이 집안 여자들 시신들 다 이 밑에 묻어 둔 거잖아. 남들한테는 보통 장례식 치르는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비석이랑 관 다 빼돌려서 여기다가 매장시켜 놨지.”

“나도 안 지 몇 년 안 됐어.”

“이게 미친 짓이란 거는 알고 있는 거야? 형. 우리 어머니 빼고는 이 집안 여자들 다 여기 들어가 있는 거라고.”

분연히 내뱉은 윤수의 말에 윤민이 잠시 짤막하게 입술을 열었다 다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차마 하기가 어렵다는 것처럼. 윤수의 눈살이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안 좋은 예감을 넘어서 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윤수의 어머니 이세영. 장례를 치른 뒤 유골을 받아 윤수가 직접 강에다 뿌렸었다. 분명히.

좀처럼 말이 없는 윤민을 향해 윤수가 화기 어린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대로 윤민의 멱살을 손에 움켜쥔 채 울분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소나무 가지 사이를 파고들 것처럼 날이 선 목소리가 먼 곳까지 울려 퍼졌다. 뭐야, 뭐냐고. 설마 어머니도 저 안에 있어?

찢어질 듯한 윤수의 외침에 윤민은 차마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는 얼굴로 잠시 고개를 돌렸다. 입을 열기까지의 시간이 하나의 소나무가 풍성해졌다가 다시 앙상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처럼, 매우 길게 느껴졌다. 어.

윤수의 몸이 바닥을 향해 풀썩 주저앉혀졌다. 씨발. 어머니 유골함이라며 준 것도 가짜였다. 찾을 가족이 없는 것을 일부러 빼서 윤수의 품에 안겨 줬거나, 뭐 그런 것일 터다. 이제야 알 거 같다. 어머니 장례식 때 이 집안 남자들이 아무도 안 온 이유가. 어차피 이 소나무 밑에 항상 있을 텐데, 굳이 갈 필요를 못 느꼈던 거다.

형. 놀란 주원이 후다닥 달려와 윤수의 팔을 쥐고 무릎을 꿇었다. 그 기척을 알면서도 윤수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불현듯 세차게 들이닥치는 찬바람에 메마른 아랫입술이 찢어질 것처럼 아려왔다. 그 감각 하나만 생생했다.

받아들이려 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 집안 모계 혈통으로 살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힘들겠지만, 그렇게 타고난 핏줄이라면. 그리하는 게 맞는 거니까.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윤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안사람으로 남을 자신이 없다. 이 집에 있다가는, 죽어서까지 이 집 남자들의 전리품으로 남을 테니까.

윤수야, 어디 가. 벌떡 몸을 일으킨 윤수가 집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주원이 윤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따라붙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온 윤수가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장 날이 잘 선 부엌칼을 들고는, 막 안으로 들어오는 윤민 쪽을 보며 섰다. 윤민의 미간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너 뭐하는 거야, 진짜.”

“이렇게 하자. 이 집 형제들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이런 식으로 살면 인간도 뭣도 못 돼. 형이 스스로 죽어서 대를 끊거나, 아니면 내가 죽어서 더 이상 여기 사람들 꼴 안 보거나. 이렇게 하자.”

“오윤수. 너 지금 제정신 아닌 것 같아. 그거 내려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내뱉는 윤민의 말에 윤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수를 향해 올라갔던 윤민의 손아귀가 간헐적으로 떨리다가 밑으로 끌어 내려졌다. 눈앞에 비치는 윤민의 얼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이다. 절망과 좌절, 체념이 동시에 얽혀 있는 얼굴. 하. 이 지경까지 와서야 비로소 저 얼굴이 나온다는 생각에 윤수의 입가에 짧은 비소가 비쳤다. 그렇게도 윤수가 거부했을 때에는 시종일관 자신의 성기를 박아대는 일에만 집중하던 짐승같던 인간이, 이제 와서야.

미소를 머금었던 입가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윤민의 밑에서 눈치만 보던 주원이 재빠르게 윤수 쪽으로 달려와 바지를 쥐고 섰다. 이 애는,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까지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윤수야. 일단 얘기 좀 하자. 복잡한 얼굴을 간신히 가누며 윤민이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칼을 쥐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윤민을 보면서 윤수의 입 꼬리가 또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하긴, 뭘 그렇게 한다는 걸까. 그동안 일방적으로 통제권을 쥐고 윤수의 삶을 무너뜨려온 것도 모자라, 이 상황까지 조종하려 하는 걸까.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조차. 어림도 없었다.

순식간에 칼날이 윤수의 손목을 향했다. 매서운 칼날이 엷은 피부를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핏물이 바닥 멀리까지 터져 나갔다. 분수처럼 흩뿌려졌던 혈액이 붉은 소나기가 되어 길게 팔목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고통은 잠시였다. 온 몸의 혈관이 얼어붙은 것처럼 무감각해진 가운데, 윤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할 수만 있으면 몸 안에 흐르는 피를 다 버려내고 싶다고.

오윤수. 윤민의 다급한 손길이 윤수의 손목을 쥐었다. 피가 흐르는 부분을 어떻게든 틀어막을 양인지 있는 힘껏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다소 힘이 빠진 윤수의 손이 어떻게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혈관까지 틀어막는 손길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힘이 빠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출혈을 유도해야 했다. 자신의 죽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귓가가 먹먹해져가는 와중에 윤수가 또 한 번 자신의 손목을 향해 칼을 겨눴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손목을 휘어감은 윤민의 손가락 틈으로 칼날을 세차게 내리꽂았다.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손 가득히 칼날을 움켜쥐고는 다른 한 편에 쥔 윤수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움켜잡고 있는 윤민이 있었다. 윤민의 손아귀에서 줄줄 흘러내린 핏물이 윤수의 옷가지를 적셨다. 아득해지는 머릿속을 가누며 윤수가 최대한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방해하지 마. 형. 형이 안 죽을 거면, 내가 죽을 거니까. 내가 평생 이 집안에서 시달리다가 미쳐버리는 꼴 보고 싶어?”

“윤수야, 알았으니까. 말하지 마. 출혈 심해져.”

“다들 정신 좀 차려. 이런 미친 집안 굴레를 이어가서 어쩔 건데.”

“제발, 말하지 마. 윤수야. 제발.”

가쁘게 숨을 쉰 윤민이 부들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옷 곳곳에 피가 묻은 주원이 윤수의 어깨 밑에서 쥐 죽은 듯 쳐다만 보는 걸 뒤늦게 알았다.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문득 기운이 빠지는 느낌에 벽에 몸을 기댄 채 스르르 고개만 젖히고 말았다. 윤민이 주원에게 담담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저 쪽으로 가 있어, 주원아. 머뭇거리던 주원이 저 편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윤수의 귓가에 찰박거리는 파도소리처럼 들려왔다. 이내 정적이 찾아들었다.

시선의 끄트머리에는 아예 한 치도 윤수가 칼날을 움직이지 못하게끔 억세게 그것을 쥐고 있는 윤민의 손아귀가 있었다. 윤수의 손목에서 흘러나온 것 못지않게 낭자한 핏물이 윤민의 팔목을 타고 하얀 바닥을 적셨다. 손아귀에서 점점 더 빠르게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가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와도 같았다.

형, 나 제발 죽게 해줘. 자꾸만 굳어가는 혀를 간신히 미동하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애원하듯 말을 건넸다. 진심이었다. 그 동안 윤수가 했던 어떤 애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번만큼은 부디 들어주길 바랐다. 고개를 들어 윤수를 보는 윤민의 얼굴은 사고가 정지된 사람처럼 공허했다. 다시 고개를 숙여 윤수의 어깨에 기댄 윤민의 입 밖으로 모래알을 닮은 거칠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그런 음성이었다.

“그냥 형이 죽을게. 형을 죽이든지 해. 제발 그런 얘기하지 마.”

칼날을 쥐고 있던 윤민의 손이 스르르 풀려갔다. 본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붉게 얼룩진 날 선 흉기를 쳐다보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윤민 쪽을 바라봤다. 윤수의 맥없는 손아귀가 조금씩 날 선 부분을 윤민의 목덜미가 있는 곳을 향해 가져갔다. 고개를 숙인 하얀 목덜미가 일정하게 호흡하는 모습이 윤수의 망막에 오래 된 필름처럼 새겨졌다.

너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어렸을 때 형이 너 굉장히 많이 챙겨 줬어. 처음 이 한남동 집에 왔던 날이었던 것 같다. 윤민의 방이었고, 윤수는 맞은편에 앉아서 처음으로 접하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고 있었다. 속내가 불투명한 언어를 들으면서도 윤수는 이 사람의 안온함에 쉽게 녹아들고 말았다. 위험한 수면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거부할 수 없었다. 본능이었다.

선택을 하든지, 하지 말든지. 혹은 선택에 따른 대가를 네가 바꿔보든지. 이 세 가지야. 이외의 선택지는 없어. 알겠니? 어머니는 그렇게 얘기했다. 내가 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 다음을 윤수는 장담할 수 없다. 단순히 범죄자가 되고 말고는 다른 문제다. 유년 시절을 공유한, 자신과 절반의 피가 섞인 형이라는 사람과의 지독한 혈연을 끊겠다는 이유로 이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이 집의 핏줄로 태어나 비인간적인 운명을 타고났으면, 자신의 선조들이 살았던 것처럼 비인간적인 선택을 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도 증오하던 선대들의 선택을 답습하는 게, 인간 오윤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윤민의 목전까지 칼날을 드리운 윤수의 동공이 물기를 타고 일렁였다. 손아귀에 들고 있던 칼이 맥없이 아래를 향해 낙하했다. 대리석으로 점철된 바닥을 타고 깨질 것처럼 날카로운 소음이 거대한 거실을 울렸다.

어머나. 막 부엌으로 온 여자 조리사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윤민이 희미한 숨을 가누며 조리사를 향해 입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119 부르세요, 빨리. 그 한 마디가 동굴에서 퍼지는 긴 여운처럼 윤수의 머릿속을 울렸다.

스르르 눈이 감기고, 옆에서 작은 아이가 울며 어깨를 흔들어 대는 감각이 몸을 파고드는 작은 돌멩이처럼 맺혔다. 그 감각에 잠시 몸을 기대다가, 하얀 잔상에 부유하듯 몸을 실었다.

54.

커다란 소나무를 앞에 둔 작은 머리통의 윤수가 하염없이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다섯 살쯤이었을 거다. 소나무는 아무리 많은 윤수가 생겨도 절대로 뒤덮을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기만 했다. 저 위에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 혹은, 저 밑에 존재하는 뿌리까지 닿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고난이 필요할까. 동그란 눈망울로 그저 나무를 눈에 담는 윤수의 뒤편에 따스한 손길이 찾아들었다. 고개를 드니, 온화하게 웃는 어머니가 윤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하지, 나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윤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공기처럼 투명한 아이의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길에는 그저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비쳤다. 이 나무는 많이 아픈 나무니까, 윤수가 많이 위로를 해줘야 해. 나무가 아플 수 있어요? 이렇게 큰데. 윤수의 말에 어머니가 짧게 윤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아파서 큰 나무니까 그렇지.

윤민아, 잠깐 와 보렴. 어머니의 목소리에 멀찍이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니 막 학교를 마치고 온 듯한 윤민이 있었다. 엄마 잠깐 부엌 쪽 가볼 테니까, 윤수 돌보고 있어. 알았지? 고개를 끄덕인 윤민의 옆으로 어머니가 지나쳐갔다. 골똘히 어머니와 윤민을 번갈아 보던 윤수가 바닥을 향해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앉으면 안 돼. 단호하게 경고한 윤민이 윤수의 몸을 도로 일으켜 세웠다. 살짝 불만스러운 얼굴의 윤수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잘했어. 가붓하게 웃은 윤민이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무렵의 윤수는 윤민이 가장 편했다. 윤석은 오 회장의 손에 붙들려 골프장이니 어디 모임이니 하는 곳을 쏘다니느라 바빠 어린 나이부터 집에 머무는 일이 드물었고, 윤혁은 윤수보다 동생인데다 틈만 나면 윤수에게 장난을 쳐서 같이 있기가 싫었다. 윤성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나이였다. 결국 윤수를 돌보는 건 어머니가 아니면 윤민이었고, 이따금씩 신경질적이 되는 어머니보다 한결같이 다정하게 구는 윤민이 더 좋았다.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윤민은 어머니에 버금갈 정도로 생각이 깊었고, 윤수로 하여금 상상도 하지 못한 흥미로운 얘기를 해줬다. 그러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줄 알았다. 윤민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의 머릿속도 그의 것만큼 채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형, 아픈 나무를 뭐하러 여기다 둘까. 사뭇 쓸쓸하게 뱉은 윤수의 말에 윤민이 엷게 웃고는 되물었다. 어머니가 또 그런 말을 했구나. 윤수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은 윤민이 어깨를 다독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윤수야. 잠시 생각하던 윤수가 입을 열었다. 스스로도 정답인지는 애매했지만, 일단 질문이 들어왔으니 답을 해야 했다. 그건 윤민과 윤수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

없애야지. 자신 없게 건넨 말에 윤민이 다독이던 손길에 힘을 실었다. 윤수의 말이 정답이 아니라는 의미가 스며 있었다. 없애는 건 쓸모가 없다는 거야. 저 나무는 소중하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면 안 돼. 알았지? 다정한 윤민의 말에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했다. 윤민의 말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으므로.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인 윤수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알았어. 형.

* * *

일정하게 들려오는 기계음에 윤수의 눈꺼풀이 서서히 끌어올려졌다. 하얀 정사각형의 타일문양 천장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팔을 들어보려다가 그냥 체념한 채 일단 고개부터 살짝 돌렸다. 시트 위에 얼굴을 묻은 검은 머리통이 보였다. 오윤성.

윤수의 기척을 느꼈는지 윤성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눈을 뜬 윤수를 보자마자 놀란 동공이 바르르 떨렸다. 다짜고짜 안아보려다가, 윤수의 몸 상태를 보고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망연하게 그 얼굴을 살짝 매만지는 데 그쳤다. 푹 숙인 얼굴에는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 지 몰라 헤매는 아이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형이 너무 안 일어나서 걱정했어.”

“얼마나 됐는데.”

“일주일.”

“그랬구나.”

마른침만 삼켜 대던 윤성이 다시 침대 옆 의자에 몸을 정돈해서 앉혔다. 잠시 윤수의 얼굴을 동공에 실어보다가, 차마 힘든지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전에 없이 긴장한 모습에 윤수는 조금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자못 태연한 윤수의 얼굴이 오히려 속상한 듯, 정처 없이 시선을 헤매던 윤성의 입술이 무겁게 벌어졌다. 형 진짜 죽을 뻔 했어. 출혈이 너무 심해서. 그런데 형이 또 희귀 혈액형이라, 피가 병원에도 없어서. 진짜 나는 형이.

희귀 혈액형. 윤수의 손가락이 흠칫 올라갔다. 하긴, 옛날부터 자주 들었던 얘기다. RH- AB. 고교 시절 성훈 때문에 대신 다쳤을 때에도 의사한테 그것 때문이 호되게 혼이 났었다. 이후에도 무릎이라도 다쳐 병원에 가면 종종 의사들은 그런 얘기를 했다. 조심하세요, 심하게 다치면 진짜 큰일 나요.

“그래도 혈액 구했네. 어떻게.”

“우리 형제 중에 같은 혈액형 있어서.”

“누구.”

“윤민 형.”

윤수의 어깨가 짧게 경련했다. 오윤민. 오윤민 피가 지금 내 안에 들어가 있다고. 그렇게 비워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에 들어온 게 오윤민의 피였다고. 맥박의 진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터질 것처럼 온 몸을 울려대는 압박감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가쁜 호흡을 뱉으며 최대한 상념을 정리한 끝에 윤수의 머리가 들렸다. 잠시 마른 입술을 축인 뒤 윤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윤민 형도 많이 다쳤잖아. 윤성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끔찍한 얘기라 차마 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몰라. 어떻게든 됐어. 망설임 끝에 한마디 한 윤성이, 그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양 입술을 다물어 버렸다. 고즈넉한 병실에서 일정한 기계음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열 번, 아니 스무 번. 혹은 쉰 번쯤 흘렀을까. 굳어 있던 윤성의 입술이 스르르 열렸다.

형, 내가 다 잘못했어. 이제 그러지 마. 말을 마친 윤성의 고개가 더 숙여졌다. 완전히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어서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손을 들어 그 얼굴을 쓰다듬어줄까 하다가, 도무지 팔을 가누기가 힘들어 그만 뒀다. 윤성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다가 눈을 감았다. 얼굴에 다소 따뜻한 윤성의 시선이 닿았던 것도 같다. 그 시선에 몸을 녹인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기대고 있다 보니, 또 잠에 들었다.

익숙한 기계음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살짝 팔을 더듬어 시트 옆을 어루만져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갔구나, 윤성이. 반쯤 내려온 눈꺼풀을 간신히 가누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뭐 찾는데. 보다 몸이 풀어진 탓에 이번에는 제법 원활하게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을 돌리자 벽에 기댄 채 윤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윤혁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 왔어. 아까. 아까 언제. 윤수의 질문에 윤혁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크게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윤혁이 윤수의 볼을 길게 쓸어 올렸다.

“얼굴, 아직도 많이 부었다.”

“아. 엄청 못생겼겠다.”

“아니. 예뻐.”

무표정으로 마무리하는 말이 어딘가 어색했다. 오윤혁이 저런 식으로 말한 적 자체가 없기도 했다. 픽 웃는 윤수를 보면서 윤혁이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왜 웃어. 아냐. 윤수의 눈꺼풀이 거의 감길 것처럼 흘러내렸다.

몸은 괜찮아? 팔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윤혁의 손이 어딘가 간지럽다. 괜찮은 것 같아. 날연하게 말을 뱉고는 고개를 가눴다. 윤수의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어루만지면서 윤혁이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집, 알아봤으니까. 윤수의 눈꺼풀이 번뜩 들렸다. 무슨 집. 윤혁이 담담하게 답했다. 너 나가서 살 집.

윤수의 아랫입술이 일순간 떨렸다. 이내 다소 힘 있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도 온 몸이 저릿한 가운데 고개를 그렇게 하는 게 다소 어렵긴 했지만, 제법 필사적으로 했다. 윤혁의 이맛살이 다소 일그러졌다. 왜.

“나 집 할 돈 있어. 주원이랑 나가서 거기서 살 거야.”

“무슨 돈.”

“윤석이 형이 준 거 있어. 주원이 양육비로. 어머니 유산도 아직 남았고.”

“그래도.”

“아. 근데 주원이는 어디 갔어.”

뒤늦게 몸을 일으킬 것처럼 팔을 짚으며 말하는 윤수를 윤혁이 강제로 눕혔다. 못 당하겠다는 얼굴로 숨을 내뱉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최희윤 씨 집에 있어. 너 퇴원할 때까지 그 쪽에서 봐 줄 거야. 윤수의 얼굴이 안도하며 끄덕여졌다. 그래, 다행이네.

다시 몸을 눕힌 윤수의 시야에 윤혁의 커다란 손이 찾아 들었다. 눈꺼풀에서부터 코, 입술 하나하나까지 어루만진 윤혁이 무겁게 질문을 건넸다. 그럼,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어. 윤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미동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냐고.

그 질문에는 윤수도 대답하기가 어렵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으니까. 스스로가 이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 자신에게 이 집에서의 일은 없었던 일이라는 것. 이 형제들과의 인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그건 꽤나 고난하고 긴 여정이 될 수 있었다.

모르겠어. 생각 끝에 꺼낸 말에 윤혁이 자신의 이마를 쓸어 올리며 무거운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내 윤수 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얼기설기 엉켜 든 덩굴처럼 복잡해보였다. 꽤나 긴 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자신의 동생이, 허탈한 얼굴로 은은하게 웃었다.

“알았어. 나중에 보자.”

“응.”

“잘 있어. 형.”

벌떡 몸을 일으킨 윤혁이 병실을 나섰다. 몇 번의 발걸음 끝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적막한 가운데 윤혁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곱씹고 있자니 조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형이라고 했다. 오윤혁이.

* * *

스스로 방관한 걸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실제 어머니가 죽고 나서 윤수는 사흘 내내 백지처럼 비어 있는 머릿속을 버텼다. 어머니의 오랜 친구라던, 고향 지인이라던, 먼 친척이라던 사람들은 줄줄이 빈소에 와서 이런저런 위로를 건네며 더운 술을 마시고 돌아갔다. 그런 이들 앞에서 영혼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일을 사흘 간 반복하는 내내 윤수는 어머니가 죽었을 당시는 물론이고 그 이전조차 떠올릴 어려울 정도로 기억의 부재를 헤맸다. 그건 비인간적인 자신의 선택을 비난해 내린 스스로에 대한 형벌이었다.

사흘 내내 어떠한 감정, 어떠한 기억, 어떠한 자극도 없이 기계처럼 빈소를 오가다가 막 화장을 마친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유골을 뿌리기로 한 장소로 이동하기 전, 성훈이 몰고 나온 차에 기대 잠시 담배를 폈다. 담배를 핀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마주한 어떤 남자를 봤고, 윤수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어떤 생동감 있는 생각을 했다. 그건 꽤나 살아있는 감정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윤수의 눈꺼풀이 스르르 끌어올려졌다. 또 잤구나. 더 이상 앞을 확인할 기운조차 없어, 빛바랜 이파리처럼 맥없이 고개를 끌어내리는 윤수의 목덜미에 익숙한 손길이 찾아 들었다. 다물려 있던 윤수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일어났네. 다행이다. 이제는 공기처럼 익숙하기 그지없는 음성. 말을 건넨 남자가 의자를 끌어 옆쪽에 앉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상대방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윤수가 먼저 돌아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몸은 괜찮아? 보지도 않은 채 윤수가 질문을 건넸다. 괜찮아. 수혈, 너무 많이 한 거 아니야? 그 정도는 괜찮아. 오며 가며 대화를 마친 윤수가 한참 망설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반쯤 턱을 괸 채 숙이고 있던 윤민의 얼굴이 들렸다. 전에 없이 날연한 얼굴이다. 얼굴에 맺혀 있던 손에 단단하게 감긴 붕대가 보였다. 그런 가운데, 눈가에 자욱한 붉은 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울었던 것처럼.

그 눈가를 보는 것만으로 낯선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경직돼버린 윤수를 보며 윤민이 나긋하게 웃어 보였다. 평소와 같은 미소. 분명히 그것이 맞긴 했다. 그런데도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것 같아서, 마냥 보는 게 어려웠다. 내가 이제는 너한테 해줄 거 없지. 윤수야.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차마 대답하지 못한 윤수가 눈꺼풀만 반쯤 끌어내렸다.

맞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답을 꺼내는 것이 순간적으로 망설여졌다. 윤수는 그것을 얘기하는 것이 일종의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답을 꺼내는 순간 이 사람을 포함한 반쪽짜리 형제들과 있었던 삼 개월의 시간은 한순간에 봉인된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의 판단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그것을 알기에 윤수는 한 가지 바람을 할 뿐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후회하게 되는 것만은 아니기를.

“윤수야. 대답해 줘.”

“형.”

“해 준 집에도 안 간다고 했고. 20억 원도 다시 계좌로 돌려보내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내가 필요 없는 거고.”

굳어있던 윤수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마주쳐진 윤민의 붉은 눈가가 차마 응시하기 힘들었다. 금방이라도 물기가 차오를 것처럼 위태로운 그 눈가는 이미 알고 있다. 윤수가 건넬 대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윤민이 얘기했던 대로, 그는 윤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네가 나처럼 주어진 운명에 순응한답시고 안일한 꿈을 꿀까 봐 그러지. 윤수야. 문득 언젠가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윤수에게 이런 날이 찾아올 것을. 그리고 바랐을 것이다. 그 순간 윤수가 한 선택이 절대로 안일한 것이 아니기를. 다물려있던 윤수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답을 꺼냈다.

“맞아. 형.”

삼 개월이 걸렸다. 대답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 그 안에 담긴 윤수의 세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건 윤민이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시트 위로 끌어내린 윤수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번 못 박았다. 맞아. 그게 맞아.

침묵이 흐른다. 일정한 기계음조차 압도할 정도로 커다란 소음을 지닌 상념의 시간이 흐른다. 두 사람분의 생각이 미끄러져 내려가며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흐르는 시간. 가장 완벽한 공허.

“3년이면 될까. 윤수야.”

“뭐가.”

“네가 나를 필요로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장담할 수 없어. 형.”

담담하게 응수하는 윤수의 말에 윤민이 차마 어렵다는 얼굴로 긴 숨을 들이켰다. 차분하게 다가온 윤민의 손아귀가 가느다란 윤수의 팔목을 느슨하게 쥐었다. 핏줄을 따라 윤민의 손가락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맥박에 윤민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윤수는 점점 더 박동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걸 느꼈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윤민의 피가 반응하는 것만 같았다. 살짝 벌어진 윤민의 입술이 텁텁한 말을 뱉었다. 기다릴게. 윤수야.

윤수의 고개가 빠르게 윤민을 향해 들렸다. 스스로도 모를 감정을 가누며 쳐다만 보는 윤수의 얼굴에 윤민의 손이 닿았다가 이내 거둬졌다. 차마 소중해서 만지기도 아깝다는 것처럼. 길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진 윤민이 할 말을 찾아 턱 끝을 가눴다. 저 사람이 할 말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일이 생길 줄 몰랐다. 미로 속을 방황하는 미아처럼, 저렇게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날이 올 줄은.

“3년이 안 된다면, 30년을 기다리고. 30년 안 된다면 300년을 기다릴게.”

“형.”

“내가 언제 다시 너를 보더라도, 너는 항상 지금 이 모습일 거야. 윤수야.”

머뭇거리던 윤수의 입술이 끝내 다물렸다. 지금의 저 사람보다도 더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건 자신이었다. 또 다시 찾아온 침묵의 시간이 두 사람의 핏줄을 길게 잡아당겼다. 그것이 아프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했다.

쉬어. 이제 안 올게. 몸을 일으킨 윤민이 최대한 윤수 쪽은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병실 문을 향해 다가갔다. 다소 힘없는 손아귀로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는, 바깥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음이 하나의 시절이 쪼개지는 것처럼 강렬하게 윤수의 머릿속에서 번져 나갔다.

시트 위에 올라가 있는 손이 바느질 선을 따라 스르르 흘러 내려갔다. 동시에 윤수의 눈가에서 같은 움직임을 담은 눈물 자국이 비쳤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난 걸까. 하지만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느질 선을 매만지던 손가락이 문득 풀어져 있는 이음새에 닿았다. 끝났다. 이건 정말이다.

불현듯 병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니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정신이 드셔서 다행이에요. 그렇죠? 서글서글하게 말을 건네면서 차트를 든 의사가 윤수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모니터에 적힌 수치와 윤수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더니, 사뭇 즐거운 입매로 말을 건넸다.

“방금 다녀가신 분, 가족 맞죠. 매일 오시던데.”

“아니에요. 가족.”

맥없이 벌어지는 윤수의 입술에 의사가 사뭇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완전히 의사로부터 등을 돌린 채 숨만 가누는 윤수를 보면서 의사가 단출하게 건네는 말이 들려왔다. 상태는 나쁘지 않아요. 일주일 정도 더 입원하면서 식사 잘 하시고, 약 잘 드시고. 퇴원 하시고는 정신과 치료 꾸준하게 받으셔야 합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의사의 사무적인 말을 윤수는 등 뒤에서 무덤덤하게 견뎠다. 문득 병실 창 밖에 제법 크기가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 나무의 그늘진 곳으로 향하는 한 남자. 아. 이음새를 딛고 있던 윤수의 손가락이 흠칫 떨렸다.

“그런데, 아까 그 분. 가족이 아니면 어떻게 되시는 거예요.”

“같이 살았던 사이요.”

“동거인이시구나.”

윤수의 건조한 말에 의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만 쉬세요. 이내 걸어 나간 의사의 발끝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탁 하며 들렸다. 윤수의 시선이 나무 밑에 있는 남자를 보다 확고하게 응시했다. 다소 피로한 어깨를 가누며 나무 밑에 선 정장 차림의 남자가 붕대를 감은 손아귀를 올려 자신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졌다.

햇빛이 좀처럼 들지 않는 나무 그늘 아래, 남자의 이목구비가 제법 뚜렷하게 빛난다.

지그시 호를 머금은 윤수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맺혔다. 희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윤수가 눈을 감았다. 더럽게 잘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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