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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그 아들들 (7/11)

7장. 그 아들들

한 동안 낮이고 밤이고 기회만 되면 오 회장과 섹스를 했다. 오윤민의 말마따나. 열심히, 그리고 많이.

오 회장의 섹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행위 중에 절대로 싫다는 소리는 하지 말 것, 이따금씩 뒤로 하는 게 아닌 이상 철저히 자신과 시선을 맞출 것. 그리고, 최대한 신음 소리를 많이 낼 것. 하면 할수록 좋아질 리야 없었지만 몸이 익숙해지는 건 확실했다. 좀처럼 오 회장의 삽입에 흥분한 일이 없었던 성기가 이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뒤로 하는 삽입만으로 사정에까지 이른 적은 없었지만, 종종 오 회장이 손으로 윤수의 것을 지분거릴 때에는 정액이 나오기도 했다. 시트 위에 흩뿌려진 자신의 불투명한 액체를 보고 있을 때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환멸감을 스스로에게 느꼈다.

아버지. 어느 주말 오전이었다. 섹스를 마친 뒤 윤수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있었고, 오 회장은 그 옆에 걸터앉아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문득 문을 연 윤석이 잠시 당혹스러운 얼굴로 숨을 가눴다가, 다시 오 회장 쪽을 봤다.

“어. 윤석이. 얘기해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식탁에 내려가 있어. 지금이 몇 시지.”

“오전 열 한 시입니다.”

“식사 시간이 지났구나. 윤수야, 밥 먹었니.”

오 회장의 말에 윤수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최대한 윤석 쪽은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입술을 뗐다. 아니요. 고개를 끄덕인 오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같이 먹자. 윤석이, 내려가고. 나하고 윤수도 곧 내려간다. 윤석의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방문이 닫혔다. 몸을 일으킨 오 회장이 천천히 옷가지를 챙겨 입기 시작했다. 윤수도 옷 입어라. 오 회장의 명령에 부스스 몸을 일으킨 윤수의 눈에 문득 탁자 위에 놓인 어떤 것이 들어왔다. 여러 개의 알약이 담겨 있는 패키지 같은 것. 의아한 얼굴로 그 쪽을 쳐다보고 있는 윤수를 알아챘는지, 오 회장이 다소 난처해하며 그것을 쥐었다. 그대로 서랍에 넣고는 신경 쓰지 말라는 양 윤수를 향해 턱짓을 했다. 뭐해. 옷 입으라니까. 마지못해 옷을 입는 윤수를 확인한 오 회장이 먼저 방을 나섰다. 아까의 패키지가 있던 자리를 잠시 쳐다보고는, 윤수도 바깥으로 나왔다.

거실에서는 요리를 도맡는 여직원이 브런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가 뭐야. 식탁에 앉으며 무겁게 내뱉는 오 회장의 말에 여직원이 차분하게 답을 했다. 오트밀, 안심 샐러드, 생연어가 준비돼 있습니다. 회장님. 오 회장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한 마디 했다. 오트밀은 이제 하지 마, 맛도 없는 걸. 여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일거수일투족이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이 집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오 회장 입장에서 본인의 장난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식탁에 앉아 생과일주스를 한 모금 마신 윤석이 오 회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수는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괜히 어색해서 자꾸만 시선을 다른 곳에 뒀다. 윤석의 차분한 목소리가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유진이랑은 이혼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걸 아직도 안 하고 뭐 했어. 혈통도 모르는 계집애랑.”

“막상 이혼하자고 하니 유진이가 난리도 아니어서, 달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애초에 이유가 뭐야. 서로 안 맞다는 거야 알고 있었다만.”

“제가 바람을 핀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유진이가.”

윤수의 어깨가 짧게 떨렸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오윤석이 바람을 핀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아내하고도 섹스 하는 것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윤수가 알기로 아내가 아닌 사람과 한 것은 단 한 번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윤수다. 초점 없는 윤수의 눈이 앞에 놓이는 안심 샐러드와 생연어 접시만 머금었다. 문득 귓가에 윤석의 짧은 한숨이 들렸다. 포크를 들어 접시에 담긴 것을 찍어 누르면서 오 회장이 딱딱하게 말을 건넸다.

“너 바람 폈니. 아주 시간도 많구나. 아비란 사람은 일 하느라 하루가 모자라 죽겠는데.”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안방에서 다른 사람이랑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그걸 알아챈 것 같습니다.”

“한 번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아이가 기억을 합니다. 아직 어려서 잘은 모르는 듯하지만, 대략적인 상황을.”

풉. 입 안에 샐러드를 넣었던 윤수가 짧게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윤석과 오 회장의 시선이 동시에 윤수를 향했다. 윤수야, 괜찮니. 걱정스러운 오 회장의 말에 윤수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쟤도 허약해서 큰일이다. 참. 지 어미 닮아서. 연이어 혀를 찬 오 회장이 분홍빛 연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근데 애가 벌써 그런 걸 알아? 몇 살이었지.”

“세 살입니다. 그 때 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끝내. 또 뭐가 문제야.”

“그게, 유진이가 합의금으로 꽤 많은 액수를 요구해서요.”

“돈이야 문제 될 거 없다만, 지가 양육도 안 한다면서 그렇게 나오는 건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텁텁하게 건네는 오 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구 쪽에서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 온 건 잠시 회사에 들렀다 온 듯한 정장 차림의 윤민이었다. 테이블을 확인한 윤민이 빙긋 웃으며 오 회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해보였다. 오 회장이 잘 왔다는 것처럼 윤민을 향해 손짓을 했다. 마침 맞춰 왔구나. 이리 와 봐라. 윤민의 차분한 대답이 이어졌다. 네, 아버지.

식탁으로 걸어 온 윤민이 윤수의 옆 자리에 앉아 오 회장과 윤석을 번갈아 봤다. 얼굴에는 한없이 여유가 넘쳐서, 보는 윤수 입장에서는 절로 오싹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아, 저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죽이려는 사람과 그걸 알면서 저지하려는 사람을 두고도 태연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 그게 오윤민이다. 충분히 인지했으면서도 새삼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경악하게 된다. 오 회장이 갈색 안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그것을 씹고, 목구멍에 넘겼다. 윤민에 시선을 둔 오 회장의 입술이 담담하게 열렸다.

“너희 로펌, 이혼 담당도 있었나.”

“저희는 없지만, 필요하면 연결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친한 선배가 이혼 전문 펌을 하고 있어서요.”

“윤석이 이혼 건 뒤 탈 없게 네가 책임지고 잘 처리해 줘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말을 마친 윤민이 엷게 웃으며 윤석을 봤다. 낮은 숨을 뱉은 윤석이 고개를 돌렸다. 나지막하게 욕설을 머금은 입 모양을 본 것도 같았다. 도무지 식탁에 앉아있는 게 힘들었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는 윤수를 오 회장이 저지했다.

“먹다 말고 어딜 가.”

“속이 안 좋아서 산책 좀 하려고요.”

“날이 추우니 단단히 입고 다녀.”

“제가 같이 나갔다가 오죠.”

오 회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윤민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한 마디 했다. 윤수의 손아귀가 짧게 떨렸다. 차분하게 고개를 숙이는 윤민을 보면서도 오 회장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형제들 중 유일하게 윤수와 몸을 섞지 않은 사람이다. 오 회장이 신뢰하는 건 당연했다.

정원으로 나와 무작정 발걸음을 내 딛는 윤수의 뒤편으로 윤민이 천천히 따라 붙었다. 무시하듯 앞 쪽으로만 걸어가는 윤수를 향해 윤민이 입을 열었다.

“너, 정말로 살이 안 찌네.”

“무슨 상관이야.”

“물론 대마 탄 차 마실 때보다야 나아지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기본적으로 살이 안 찌더라고.”

“원래 체질이 이런데, 뭐 어쩌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뱉으며 마저 걸어가는 윤수의 어깨를 뒤에서 윤민이 나른하게 감쌌다. 맞닿은 체온이 어깨를 녹아내릴 것처럼 따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람의 온도가 여전히 높다고 받아들이는 스스로에게 윤수는 괜히 화가 났다. 윤수의 귓등에 대고 윤민이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밥 먹으러 가자. 윤수의 고개가 빠르게 도리질을 쳤다. 먹었잖아. 감싸 안은 팔에 좀 더 힘이 실렸다. 제대로 먹은 거 아니잖아. 저번에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으니까, 지금 가자.

솔직히 가고 싶지 않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어느 순간부터 윤민과 있는 게 불편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쥐게 한 채로 아무렇지 않게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뜩잖은 얼굴로 입만 다물고 있는 윤수의 볼을 윤민의 손가락이 매끄럽게 매만졌다. 윤수야. 형한테 할 말도 있을 거 아냐. 응? 아래를 향하고 있던 눈꺼풀이 가지런하게 들렸다.

마지못해 몸을 돌린 윤수가 윤민의 차가 있는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할 말이 있긴 했다. 요즘 내내 바쁜 것 같아서 제대로 대화도 못 했는데, 기회 될 때 하는 게 맞긴 하다. 단념한 얼굴의 윤수를 보면서 윤민이 귀엽다는 것처럼 픽 웃었다. 눈살이 빠르게 찌푸려졌다. 도대체가 저 사람은 살면서 당황이라는 걸 한 적이 있긴 한 걸까.

* * *

윤민의 차를 타고 향한 곳은 신문로에 있는 한옥 스타일의 한정식 집이었다. 들어서기 무섭게 이 매장의 매니저인 듯한 여성이 과도할 정도로 밝게 웃으면서 맞이했다.

“어머, 변호사님. 웬 일이세요. 이 주말에.”

“우리 동생한테 맛있는 것 좀 먹이려고요. 남는 방 있어요?”

“변호사님이 얘기하시면 없던 방도 만들어야죠. 제일 큰 방 마련해드릴 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매니저가 이끄는 대로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군데군데 숨은그림찾기처럼 방문이 보였다. 웬만하면 나오는 사람들끼리 마주치지 않게끔 설계한 섬세한 구조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이런 데서 밥 먹는 건가. 윤수는 이 기묘한 설계에 묘한 한기를 느꼈다.

삼 층 무렵까지 올라온 매니저가 문을 열어 준 방은 두 명이서 머물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스무 명 쯤이 모여 모임을 한다 해도 충분할 법한 커다란 룸. 안까지 두 사람을 안내한 매니저가 윤민을 향해 다소곳하게 말을 건넸다.

“메뉴는 늘 먹던 걸로 해 드리면 될까요?”

“네. 한 번에 놔 주세요. 우리 동생이 요즘 허약하니까, 장어나 전복처럼 몸에 좋은 것 있으면 좀 많이 해주고.”

“어머, 한창 나이인 것 같은데 당연히 챙겨드려야죠. 술은요.”

“정종 뜨거운 걸로 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빠르게 해 드릴게요. 우리 변호사님.”

생긋 웃으며 윤민을 향해 고개를 숙인 매니저가 바깥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잠시 윤민을 보던 윤수가 사뭇 못마땅한 얼굴로 시선을 끌어 내렸다. 윤민은 그것을 보면서도 엷게 웃었다.

“카드 하나도 안 썼더라.”

“쓸 데가 없어.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다 써. 학생이. 나중에 돌려줄 게.”

“윤수야. 형이 너한테 신경 써주는 게 싫어?”

갑자기 자신을 관찰해오는 부드러운 시선에 윤수는 괜히 할 말이 없어졌다. 대놓고 무시하는 것처럼 시선을 피한 채 물 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목구멍으로 흘러든 축축한 액체가 온 몸을 차갑게 적셨다. 윤민은 계속해서 윤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관찰을 넘어 이제는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할 말 있으면 형이 먼저 해. 보고만 있지 말고. 살짝 눈을 치켜뜬 윤수가 노려보듯이 윤민을 눈에 담았다. 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윤민의 입술이 짧게 다물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원래의 안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서. 할 만해?”

“뭘.”

“자주 하던데, 요즘.”

“그건 형이 알 거 없잖아.”

딱딱하게 내뱉는 말에도 윤민의 얼굴은 태연했다. 정적 속에서 무거운 공기가 오랫동안 방 안을 호젓하게 채웠다. 문득 문이 열리더니 직원들이 테이블 구석구석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접시가 서른 개는 족히 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윤민과 윤수의 앞에 각각 뜨거운 정종 잔을 내려 놓은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방을 나서려는 직원들을 윤민이 불러 세웠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이 쪽 들어오지 말아주세요. 동생이랑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방해 받기 싫거든. 정중하게 건네는 말에 직원이 빠르게 응답했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직원들이 바깥으로 나서고, 넓은 공간에는 다시 윤민과 윤수 둘만이 남았다. 정종 잔을 들고는 윤수를 짧게 본 윤민이 천천히 더운 알콜을 입에 머금었다. 윤수도 마지못해 한 모금 마셨다. 웬만하면 술은 다 마시는 윤수인데도, 일본 술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뜨겁기까지 하니 맛없기 그지없었다.

“윤수야.”

“응, 형.”

“네가 선택한 거야.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되지.”

“뭐라고 한 적 없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나 원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긋하게 말을 마친 윤민이 손을 내밀어 윤수의 얼굴을 짧게 매만졌다.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감촉. 그 감촉에 담긴 이상한 불친절함에 윤수는 자꾸만 그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모르겠다. 이 사람을. 다른 형제들 모두 알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오윤민만큼 알기 어려운 사람은 솔직히 없다.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스스로가 놀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싫었다.

“맞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형. 그러니까 이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형 포함해서 오승조 가문 사람들 어차피 쓰레기인 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그러니까 이제 내가 알아서 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기 어린 언어가 튀어나왔다. 윤민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게 보였다. 윤수야. 이내 들려오는 무거운 목소리. 마주쳐 오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도 서늘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는 것 같아, 윤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말을 왜 그렇게 해. 응?”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한 게 뭐 어쨌다고 그래.”

“그리고 너, 정말 그렇게 우리 아버지 죽이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고 네 입으로 말 할 자신 있어?”

“그야. 내가 가장 잘 알.”

“벗어 봐. 윤수야.”

담담하게 내 뱉는 말에 순식간에 온 몸의 피가 마르는 걸 느꼈다. 바닥에 딛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절로 움츠려들었다. 경직된 윤수를 무표정으로 훑어보던 윤민이 말을 이었다. 몸 한 번 보자. 네 말 대로, 얼마나 열심히 했나 확인 좀 해 보게.

진심으로 하는 얘긴지, 장난삼아 하는 얘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장어 한 점을 집었던 윤수의 젓가락이 힘없이 밑으로 끌어내려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보다 차가워진 얼굴로 윤수를 쳐다보고 있는 윤민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저런 얼굴로 나를 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머릿속에서 갖가지 불안한 생각들이 벌떼처럼 빠르게 몰려들었다.

“장난하지 마. 형.”

“장난 아니야.”

“그걸 뭘 봐야 알아. 그냥 내가 그렇다고 하면.”

“봐야 알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면 다인 줄 알아? 내가 겉으로만 그런 척 하는 사람 한두 명 봤겠냐고. 지금까지.”

“형.”

“그리고 윤수야, 형 열 받게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응?”

사뭇 다정하게 웃어 보인 윤민이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윤수의 동의도 없이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는, 그대로 불을 붙였다. 끄트머리에 붙은 붉은 빛이 사그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매캐한 연기가 방 안을 채웠다. 치켜 올라간 윤수의 눈꺼풀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대체 뭐하자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윤민이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건 진작 알았다. 저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뻔뻔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을 유지한다. 누가 됐든 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내를 알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무서울 정도로 예의 있고 정중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웬만해서는 오윤민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저 젊은 나이에 저기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을 쉽게 제 편으로 끌어 들이는 오윤민 특유의 기묘한 아우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평소와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많이 다르다. 어딘가 불쾌해 보이는 모습. 게다가 윤수의 도발을 제대로 인지한 듯한 언사는 자신을 자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처럼 단호하게 느껴진다. 이 상황에서 궁지에 몰리는 건 오히려 윤수 쪽이다. 기껏 드러낸 자존심이다. 윤민에게 어떻게든 휘둘리지 않기 위해, 거의 처음으로 표출한 독단적인 언어다. 윤민은 이걸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먼저 도발한 윤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움츠려들면 지는 거였다.

낮게 숨을 뱉은 윤수가 고개를 숙였다. 서서히 바지춤으로 올라간 손아귀가 버클을 풀어 내렸다. 바지를 다 벗어 내린 후에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위로 끌어 올렸다. 남은 건 속옷. 말없이 보고 있던 윤민이 고개만 살짝 까딱했다. 마저 벗으라는 거다.

윤민을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속옷까지 그대로 끌어 내렸다. 완전히 알몸이 된 채로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는 윤수를 보면서 윤민이 몸을 일으켰다. 옆으로 다가온 윤민이 몸을 앉혔다. 벗은 몸을 한 동안 쳐다만 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다리 벌려 봐. 윤수의 입술이 흠칫 열렸다. 뭐. 심상한 윤민의 반문이 돌아왔다. 안까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는 투에 윤수는 괜히 할 말이 없어졌다. 긴 숨을 떨군 뒤 느리게 다리 사이를 벌렸다. 무표정에 가까운 윤민의 얼굴이 벌어진 다리 틈을 한동안 눈으로 훑었다. 문득 들린 윤민의 손이 엉덩이의 틈새를 어루만졌다. 기묘한 간지러움이 하반신을 적셨다.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 윤수가 짧게 아랫입술을 삼켜댔다.

“하으. 왜, 왜애.”

“감도 좋네. 아버지랑 하면서 길들여진 건가. 아니면 원래. 어느 쪽이야.”

“그걸 내가 어떻. 아, 좀.”

엉덩이 사이를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거의 쑤셔 넣을 것처럼 안쪽을 파고들었다. 금방이라도 구멍을 뚫어버릴 듯한 손놀림에 숨이 찼다. 최대한 짧게 호흡을 나눠서 뱉으며 소리를 참고 있는데, 문득 손가락이 스르르 안쪽까지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참고 있던 소음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하, 아. 으읏.”

“소리 좋네.”

“아, 잠깐. 잠깐만. 혀엉.”

“도발은 네가 했잖아. 값은 치러야지.”

귓바퀴를 타고 흘러드는 윤민의 목소리는 안정적이기 그지없다. 분기 어린 윤수의 얼굴이 윤민을 향해 공격적으로 들렸다. 시선이 마주쳐진 끝에 윤민이 픽 웃었다. 윤수의 아랫입술이 치욕감에 깨물렸다. 저 상황에서조차 여유 있는 얼굴에 정말로 자신이 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위쪽으로 올라온 손가락이 이번에는 유두를 어루만졌다. 튀어나온 돌기를 위 아래로 지긋이 눌러대며 자극해대기 시작했다. 삽시에 얼굴에 혈기가 돌았다. 다른 데는 몰라도 윤수는 거기가 유독 예민했다. 그걸 아는 것처럼 집요하게 꼬집어오는 느낌에 다리가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윤수의 얼굴에 윤민의 시선이 닿았다. 갑자기 다가온 손길이 윤수의 어깨를 나긋하게 쥐었다. 바닥을 향해 윤수를 눕힌 윤민이 위에 올라타는 것처럼 몸을 앉혔다. 그 와중에 유두를 매만지는 손가락이 보다 끈적해졌다.

“하, 아. 그만, 그만 해.”

“힘들지? 누워서 해.”

“아니, 그런. 하으, 아.”

“잘 느끼네. 원래 이런 거 좋아했던 애처럼.”

엷게 웃은 윤민이 고개를 숙여 윤수의 귓불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혀로 매끈하고 자그마한 부위를 핥아 대고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윤수의 입 안으로 가져갔다. 깊숙한 곳까지 엄지손가락이 스르르 밀려들어갔다. 동시에 귓불을 먹어버릴 것처럼 입에 담고 빨아대는 윤민 때문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흐읏. 질끈 눈을 감은 윤수의 입 밖으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거면 될까? 어때, 윤수 네 생각은. 귓가에 닿는 윤민의 다정한 목소리에 윤수의 목덜미가 전율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곳에서 오윤민이 이런 식으로 만지고 있는 게 싫었다. 어쩌면 윤민은 윤수가 느끼기에 비정상적인 성욕을 지닌 이 집 남자들 사이의 마지막 보루였다. 유일하게 윤수를 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형제들 중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자 한다는 둥의 문제는 중요치 않았다. 기준은 단지 윤수를 살을 섞었는지의 여부였다.

의도는 그 쪽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단순한 희롱의 목적으로나마 이런 짓을 해오는 게 윤수는 절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반쯤 눈가가 젖어 든 것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입 안을 탐색하던 손가락이 보다 깊숙하게 들어갔다. 목구멍까지 파고들 것 마냥 지긋이 안쪽을 눌러댔다.

“흐, 으읍. 흐으, 형.”

“고개 들어 봐. 윤수야.”

“싫, 하아.”

“고개 들어보라고 했잖아.”

다소 엄한 윤민의 목소리에 마지못해 윤수의 얼굴이 올라갔다. 손가락이 넣어진 채로 하염없이 입을 벌리고 있던 윤수의 눈가를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위에서 쳐다보고 있던 윤민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태연했던 얼굴이 다소 경직됐다. 더욱 알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고개를 돌린 채 짧게 숨을 가눈 윤민이 갑자기 안에 있던 불쑥 손가락을 거둬갔다. 이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됐어. 이제.

예기치 않은 윤민의 태도 변화에 윤수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완전히 윤수로부터 몸을 돌린 상태에서 뭔가를 생각하던 윤민이 천천히 원래의 자리가 있던 쪽으로 돌아가 몸을 앉혔다. 윤수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앞에 놓인 정종 잔을 길게 비웠다. 윤민의 눈치만 보던 윤수가 벗어 뒀던 옷가지를 주섬주섬 몸에 걸쳤다. 꽤나 긴 정적이 방 안을 맴돌았다.

윤수야. 다 비운 정종 잔을 옆으로 치운 윤민이 윤수의 이름을 불렀다. 말없이 응시하는 시선은 또 다시 서늘하다. 원래 저 사람의 온도는 저것이었을까. 윤수는 문득 궁금하다. 원래는 저렇게 하염없이 차가운 사람이면서, 일부러 윤수 앞에서만 아닌 척 한 것인지. 그렇다면, 왜 그렇게까지 했던 것인지.

미안해. 방금한 거. 아버지, 빨리 처리하자. 고저 없이 말을 맺은 윤민이 물 컵을 비웠다. 보이는 얼굴은 평소처럼 침착한 그것이지만, 어딘가 모서리가 무너진 느낌이다. 보고 있으니 윤수의 머릿속에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보이는 얼굴, 좀 당황한 것 아닌가.

34.

식사를 마친 윤민은 다른 곳에 볼 일이 있다며 윤수를 위해 모범택시를 잡아줬다. 윤수는 집 앞까지는 가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 내려서 한동안 산책을 했다.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생각이 너무도 많았다. 비로소 해가 저무는 것을 보고, 완연한 밤이 된 후에야 한남동 집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센 바람이 윤수의 얼굴에 맞부딪혀왔다. 하. 서늘한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천천히 정원을 걸어가다 보니 막 집에서 나온 듯한 윤석이 저 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로 무시할까 하다가, 마주쳐진 시선을 어찌할 수 없어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나쳐 가는 윤석의 등을 잠시 보다가 윤수의 입이 절로 열렸다. 형. 윤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혼하는 거, 저 때문에 그런 거 아니죠. 질문의 의도는 사실 윤수 스스로 생각해도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냥 아니라는 대답이 듣고 싶었다. 섹스는 할 수 있어도 한 가정을 파탄 내는 건 다른 일이다. 윤수는 스스로 최소한의 도덕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지금 이 오승조 가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자부심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어쨌거나 이미 지옥에는 떨어졌지만 죽기 전까지는 가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은 보통의 인간으로 남아야 했다. 잠시 말이 없던 윤석이 길게 숨을 쉬면서 어깨를 들었다 내렸다. 고개를 돌려 윤수 쪽을 바라보는 얼굴은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이다.

알고 싶어? 솔직히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텁텁하게 건네 오는 질문에 차분하게 답했다. 전 보통의 사람이니까요. 그런 게 중요해요.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윤석의 입가에 짧게 미소가 맺혔다. 서서히 다가온 윤석이 말없이 윤수를 내려다봤다. 정적 속에서 마주쳐진 시선에 수많은 상념이 머물렀다가 희석됐다. 소나무에서부터 흘러온 거친 향이 두 사람의 간격을 적셨다.

“잠깐 드라이브할까.”

“지금요?”

“응. 여기선 안 돼.”

“왜 안 돼요.”

윤수의 말을 무시하다시피 한 윤석이 차가 있는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윤수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윤석의 뒤를 따랐다. 조수석 문을 연 윤석의 시선이 윤수를 향했다. 주춤거리며 쳐다보던 윤수가 못내 안 쪽 좌석에 몸을 앉혔다. 문을 닫은 윤석이 운전석에 앉았다.

왜 안 돼요. 여기선. 재차 물어오는 윤수를 곁눈질로 보면서 윤석이 입을 열었다. 그새 잊었어? 이 집에는 비밀이 없다는 거. 말을 마친 윤석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옅은 진동이 차 안을 채워 가기 시작하고, 윤석이 차분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한남동에서 출발한 차는 남산이 있는 곳까지 거침없이 올라갔다. 한창 은행나무 잎이 노래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보면서 윤석도, 윤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갖가지 색깔의 전등으로 조잡하게 점철된 남산 타워를 에워쌌다가 길게 미끄러져가던 차량이 불현듯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무슨 대사관이니 뭐니, 이 시간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 건물들 일색이었다. 그림자처럼 둘러싼 건물들을 보면서 윤수는 어쩐지 자신과 윤석만 고립돼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의 시동을 끈 윤석이 한 동안 말없이 창밖만 봤다. 그 뒤통수를 눈으로만 읽다가 다소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얘기해요. 나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잖아요.

못 해. 사실이 아니니까. 짧게 말을 마친 윤석이 운전대에 딛고 있던 제 팔꿈치 위로 턱을 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된다. 순식간에 자신까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에 윤수의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꽤 오랜 침묵이 차 안에 내려앉은 가운데, 다시금 고개를 든 윤석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넌 신경 쓰지 마. 내 일이야. 어차피 유진이랑은.”

“진짜 왜 그런 거예요. 이제 정상이에요? 일단은 형제잖아요. 심지어 남자고. 게다가 형뿐만이 아니에요. 윤민 형만 제외하고는, 이 집의 모든 형제들. 그리고 오 회장. 다 같은 식으로 나한테 대하고 있잖아요. 이 상황에서 제가 아무렇지 않게 어떻게 있어요. 이건, 정상이 아니잖아요.”

“오윤수.”

다소 씁쓸하게 윤수의 이름을 부른 윤석이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젖혔다. 윤수 쪽을 쳐다 보는 시선이 최소한의 조명에 의지해야만 알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제법 뚜렷하다. 입 안에 절로 단 침이 고였다. 알아. 네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 거. 솔직히 나도 그렇고. 너도 느꼈겠지만, 우리 집안 남자들은 어떤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 성적으로 반응해. 생김새도 그렇지만.

말을 뱉던 윤석이 차마 더 이상은 이어가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짧게 고개를 숙였다. 윤석을 응시하고만 있던 윤수의 눈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얼굴에 내려앉는 달빛이 그대로 윤수를 잠식할 것처럼 무거웠다.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

“어쨌거나 이건 일반적인 게 아니에요.”

“알아. 나도. 그래서 힘들고.”

희미하게 숨을 가눈 윤석이 다시 윤수를 봤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새까만 눈동자로 윤수의 얼굴을 훑다가, 이내 더 이상 쳐다보는 게 힘들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뭐 좀 마시자. 너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윤수의 입술이 짤막하게 열렸다. 단 것만 아니면 다 돼요. 고개를 끄덕인 윤석이 차 문에 손을 가져갔다. 기다리고 있어.

문을 연 윤석이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시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채 고개를 들어 창 밖에 비치는 달을 봤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판단하는 게 어렵다. 무슨 게임이나 전설에서나 나오는 얘기도 아니고, 이건 현실이었다.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 반응한다고. 도대체가 그게 말이 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서.

이 집안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이미 꿰뚫고 있다. 오 회장부터 시작해서, 네 형제 전부 다 일반적이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뿌리는 그 기묘한 혈맥에 기인한 것일 터다. 정확하게 뭐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인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과 이들이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이 비일반적인 특성은 남자라면 무릇 지닐 수밖에 없는 성적인 취향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오윤석이 말한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만 반응한다는 것. 그리고 하필이면 그 조건을 지닌 게 윤수. 거기까지 생각하면 윤수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러면 대체 왜, 오윤민은 예외가 되는 건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윤석이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윤수 쪽에 아메리카노를 건네고는 자신 역시 같은 것이 담긴 음료 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씁쓸하고 불투명한 액체를 삼키면서 시선을 최대한 윤석으로부터 떨어뜨렸다. 불편했다. 더 불편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그를 외면하는 건 또 어렵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궁금한 거 있어요.”

“얘기 해.”

“그럼 지금 저랑 같이 있으면서, 발정해요?”

제법 저돌적으로 물어오는 말에 마시던 음료 잔을 내려놓은 윤석이 헛웃음을 쳤다. 윤수의 눈살이 불만스럽게 찌푸려졌다. 자신은 정말 진지하게 얘기한 것이었다. 한동안 소리 없이 웃던 윤석이 고개를 돌려 윤수를 봤다. 얼굴에 희미하게 자리 잡은 눈웃음은 기존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생소한 것이다. 네가 말해서 발정한 것 같아, 지금. 윤수의 눈살이 더욱 짙게 일그러졌다. 자못 여유 있는 얼굴로 윤석이 물어왔다. 궁금해? 너 때문에 이 집안 남자들이 어떻게 발정하는지.

꿀꺽. 입 안에 남아있던 아메리카노가 느리게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궁금하냐고.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는 또 아니다. 정확히 어느 쪽이지. 윤수는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알기가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어떻게 발정하는지 보지 않은 건 또 아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들 나름대로 윤수를 취해야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상황이고. 지금은 말 그대로 평범한 일상의 편린인데. 게다가 분위기도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고. 윤석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봐도, 솔직히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되는 때 같은데.

하염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주체하지 못해 동공이 흐려져 갔다. 말없이 눈꺼풀만 깜빡이는 윤수를 보면서 윤석이 천천히 몸을 가까이했다. 바로 앞에 다가온 단단한 어깨에 윤수의 몸이 흠칫 떨렸다.

궁금한 건 많은데, 스스로를 희생하기는 건 또 싫은 거잖아. 이렇게 할까, 그럼. 담담하게 말을 건넨 윤석의 손아귀가 갑자기 윤수의 바지춤에 닿았다. 아. 간헐적인 소리와 함께 빠르게 다물어지는 다리를 본 윤석이 고개를 들었다. 도무지 피할 수 없으리만큼 확고하게 윤수와 시선을 맞췄다. 안 해, 지금은. 그냥 벗기만 해. 궁금한 거 확인시켜줄 테니까.

말을 마친 윤석이 마저 윤수의 바지를 벗겨 내렸다. 이내 속옷. 그리고 상의. 벗겨지는 옷가지를 보는 내내 머릿속이 자꾸만 멍해져서 윤수는 지금 이 상황이 온전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완전히 알몸이 된 윤수를 내려다보던 윤석이 다소 더워진 숨을 뱉으면서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붙였다.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뒷좌석에 던지고, 바지까지 반쯤 풀어 헤치는 손길이 소리 없이 흘러갔다. 속옷이 내려왔을 때, 윤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 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커지지. 난처해하는 시선이 윤석과 윤석의 성기를 번갈아가며 향했다. 엷게 웃어 보인 윤석이 천천히 자신의 성기 쪽에 손아귀를 가져갔다. 윤수의 몸을 눈으로 훑어 내리면서 쥐어 대기 시작했다.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차마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손아귀에 사로잡힌 윤석의 성기가 딱딱해져가는 게 확연하게 보였다. 저게 다가 아니었던가. 자꾸만 목이 말라가는 걸 느끼며 몸을 조금씩 뒤로 빼고 있는 윤수를 보더니, 윤석이 도무지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윤수.”

“네.”

“몸 좀 빌려 줘.”

“네?”

반문을 마치기가 무섭게 윤수의 쇄골 쪽으로 윤석이 입술을 갖다 댔다. 하. 아찔한 소리와 함께 윤수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아끼는 것을 핥는 것처럼 세밀하게 혀로 짓이기던 윤석이 보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완전히 윤수의 몸에 얼굴을 묻었다. 잘근거리는 이빨을 따라 상반신에 퍼지는 간지러운 감각에 윤수의 팔이 달달 떨렸다. 그 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린 윤석의 손아귀가 보다 힘 있게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아, 으. 뭐, 뭐하는 거예요. 형.”

“가만히 있어. 삽입은 안 할 거니까.”

“아, 그게. 하, 그런 게.”

쇄골에서 내려 온 윤석의 입술이 이번에는 윤수의 유두를 머금었다. 뭐라도 짜낼 것처럼 힘 있게 빨아대는 혀 놀림에 몸이 저도 모르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스스로 성기를 아래위로 쓸어내리는 질척한 소음이 적막한 차 안을 적셨다. 이게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보면서도 믿기가 어렵다. 남의 수음장면이 빚어내는 적나라한 소리에 귓불이 달아올라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 으읏. 이제, 그만.”

“안 돼. 아직 끝까지 가려면 좀 남았어.”

“저 없어도 되잖, 하. 아아. 제발.”

“너 여기 빠는 거 좋아. 아주 예쁜 소리를 내서.”

픽 웃은 윤석이 이번에는 제법 간지럽게 유두를 훑어댔다. 완전히 맥이 빠진 팔이 늘어져 내릴 것만 같아, 윤수는 눈앞에 보이는 윤석의 머리에 일단 손을 기댔다. 그저 분출하기 위해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움켜쥐는 윤석의 더운 숨소리가 윤수의 귓바퀴를 흔들어댔다. 진짜, 이것만으로 저런 게 가능한 건가. 무슨 포르노 보는 것도 아니고. 윤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문들이 흩어져갔다.

오윤수. 손 줘 봐. 황당한 요구에 윤수가 뭐라고 채 하기도 전에, 손을 낚아 챈 윤석이 성기 쪽으로 그것을 갖다 댔다. 이내 강제로 움켜쥐게 한 상태에서 아래위로 그것을 쓸어내렸다. 손아귀에 발기한 성기의 촉감이 느껴지는 것만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윤수의 유두에 입술을 묻은 윤석이 공격적으로 흡입해대기 시작했다.

아, 아니. 저한테는 그거 안 해도. 손아귀에 잡힌 단단한 성기가 조금씩 축축해져갔다. 손아귀 위로 겹쳐진 윤석의 손이 서서히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윤수의 얼굴이 빠르게 타들어갔다.

“지금 얼굴 보기 좋아. 오윤수.”

“아니, 그게. 지금, 읏. 아.”

“더 빨아줘? 난 지금 네 모든 게 흥분돼.”

망연하게 윤석의 것을 쥔 손아귀에 땀이 젖어드는 것만 같았다. 유두에서 올라온 입술이 이번에는 목덜미를 질척하게 어루만졌다. 형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기분이 순간순간 머릿속을 서늘하게 물들였다. 또 멍청하게 윤석의 수작에 말려들었다는 좌절감보다는, 지금 이 순간 자신 때문에 이렇게까지 발정하는 형을 보는 일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이 집 남자들에게 대체 어떤 존재인지가 점점 더 알기 어려워졌다. 꼬리를 물고 흩어지는 의문이 더 이상 이을 수 없을 정도로 한계까지 치달았을 때, 문득 윤수의 배 위로 뜨거운 분출물이 흩뿌려졌다.

진짜 뭐하는 거예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윤수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사납게 말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은 엄밀히 말하면 윤수가 아니라 윤석 쪽이 자신을 내려놓았다고 보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무표정으로 얼굴을 든 윤석이 나지막하게 숨을 뱉었다. 어딘가 착잡함이 어려 있었다. 뒷좌석에 둔 손수건을 가져와 윤수의 배 위를 느릿하게 닦아내려가면서, 윤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알겠어? 이제. 이게 우리 집안 남자들이 너를 대상으로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이야.”

* * *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뒤 아무도 없는 학보사의 소파에 누워 책을 읽었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는지 미시마유키오의 금각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의 취향인지 오래 된 일본소설들이 데스크 위에 층층이 겹쳐져 있기에 눈에 띄는 걸 아무거나 읽었다. 일본 소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라도 보거나 읽거나 쓰거나 하지 않으면 차마 머릿속이 복잡해 견딜 수가 없었다.

결론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반복하는 일은 동력을 소진한 기계를 조립하는 일만큼이나 허망한 것이다. 이런저런 가정을 내세운 끝에 문장을 완성해봤자 죽은 시체처럼 지긋이 늘어져 있는 꼴을 볼 뿐이다. 오 회장, 오윤석, 오윤민, 오윤혁, 오윤성. 다섯 남자들에 대해 밤을 새워가며, 혹은 낮까지 지새우며 분석한 끝에 도출한 결론에는 하나같이 숨이 붙어있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른다.

* * *

문득 학보사 문이 벌컥 열렸다. 김성훈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봤지만,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온 건 윤혁이었다. 햇살을 받은 이목구비 곳곳을 새까만 음영이 지키고 있었다. 찌푸려진 윤수의 눈초리가 아예 외면하는 것처럼 책을 들고 있던 페이지에 돌아갔다. 천천히 소파 가까이 다가온 윤혁이 한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는 윤수의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몸 잘 챙겨. 무리하지 말고. 대뜸 얘기해오는 윤혁의 말에 책을 쥐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몸 잘 챙기고, 무리하지 말라고. 단순하게 건넬 수 있는 안부인사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의미심장하다. 마치 윤수가 최근 오 회장과 지나칠 정도로 자주 섹스하는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느릿하게 들고 있던 책자를 내려놓는 윤수의 귓가에 윤혁의 낮은 목소리가 눈처럼 내려앉았다. 그냥, 그 얘기가 하고 싶었어. 입을 다문 윤혁이 여운도 없이 몸을 돌렸다. 학보사 문으로 빠르게 향하는 뒤통수를 보다가 윤수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열렸다.

야, 너. 윤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올곧은 이목구비에 괜한 위화감이 들었다. 시선을 비스듬히 내린 윤수의 목구멍에 하고자 하는 말의 첫머리가 반복적으로 삼켜졌다. 오 회장을 죽이고 싶다고. 나는 중립인 너와 다르다고. 차마 내뱉기가 어려웠다. 말을 뱉는 것은 못을 박는 일이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일수록 그 못의 끄트머리는 더욱 날카로워진다.

윤혁의 입가가 엷은 미소를 품었다. 망설이고 있는 윤수의 의도를 진작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느슨하게 떨어진 입술 사이에서 윤수의 고민과 전혀 동떨어진 얘기가 흘러나왔다. 일부러 하는 것인 양. 지금 키스하고 싶은데, 그냥 안 할게.

너, 내가 지금 너희 아버지 죽이려고 하는 건 알고서 이러는 거야. 윤혁의 말에 비로소 용기를 얻었다. 무겁게 흘러나온 윤수의 말이 종이냄새 틈바구니에 점점이 묻혔다. 윤혁의 시선이 긴 시간 공허하게 윤수를 향했다. 차분한 낯빛이 분명히 가까운데도 아득하게 다가온다.

알아. 그리고 어차피 상관없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을 마친 윤혁이 다시 윤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나른하게 내려온 고개가 윤수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서로의 시선을 맞부딪혔다. 짧게 웃은 윤혁이 윤수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이어 은은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이제는 우리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어. 오윤수.

35.

집에 돌아오자마자 눈에 띈 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윤성이었다. 맞은편에는 저번에 윤민과 함께 있던 중년 남자 한 명. 홍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사람이다. 차트를 한 장 한 장 펼치면서 홍 선생이 윤성에게 적혀 있는 숫자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삼 개월 전이고. 이건 이 개월 전, 그리고 이게 지난주. 마지막으로 최근 수치입니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윤성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게 확연했다.

“진짜 대단해요. 홍 선생님.”

“제가 대단할 건 없고요.”

“아니에요. 선생님, 대단해요. 진짜 최고예요.”

환하게 웃어대던 윤성이 갑자기 홍 선생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당황한 중년 남성이 급하게 얼굴을 떼어냈다. 차트에 반한 것처럼 내려다보던 윤성이 아예 제 손에 그것을 쥐고는 꼼꼼하게 하나하나 살폈다. 종이를 넘기는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흥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홍 선생과 윤수의 시선이 맞닿았다. 다물어진 입으로 윤수의 얼굴을 보던 홍 선생이, 이내 파악했다는 얼굴로 짧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를요.”

“윤수 도련님 맞으시죠.”

윤수의 눈가가 짧게 경련했다. 따지고 보면 일리 있는 반응이다. 잘은 모르지만 저 사람은 이 집 형제들과 모두 아는 사이인 것 같고, 오 회장의 측근이라면 피가 섞이지 않은 양아들이 하나 있다는 것도 익히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제 집처럼 이 공간에 들어오는 걸 봤다면 누구라도 윤수라는 생각쯤은 했을 거고.

그런데도 윤수는 왠지 홍 선생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 발견하자마자 무섭게 끌어내린 고개. 혹시라도 윤수와 눈이 제대로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정처를 잃은 시선. 그 와중에 궁금하긴 한지 곁눈질로나마 윤수를 관찰하려는 얼굴. 마치 오승조 가문 사람들을 대할 때나 취하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저한테는 안 그러셔도 돼요. 전 애초에 이 집 사람도 아니라서요. 또박또박 내놓은 윤수의 말에 홍 선생은 그저 침묵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또 눈치를 봤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윤수 형. 소파에 앉아있던 윤성이 휙 몸을 돌리며 윤수 쪽을 봤다. 맑은 얼굴의 아이가 빨리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못내 소파로 다가간 윤수의 어깨를 윤성이 힘 있게 감싸며 시트 쪽으로 끌어내렸다. 오윤성. 눈살을 일그러뜨리며 윤수가 단호하게 저지했다. 예상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난감한 얼굴로 지켜보던 홍 선생이 몸을 돌리며 빠르게 말했다. 그럼 전 이만 손님방으로 가보겠습니다. 오늘 밤부터는 꾸준하게 상주하도록 하죠.

발걸음을 돌려 일 층 구석으로 걸어가는 홍 선생을 보며 윤성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누구야. 저 사람은. 윤수의 말에 대답 대신 짧게 볼에 입술을 맞춘 윤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아버지 주치의. 윤수의 시선이 사라진 홍 선생의 자취를 밟았다. 오 회장의 건강관리를 저 사람이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번에 윤민을 두고 수치가 안 나오니 마니 했던 것도 오 회장 얘기인가. 떨떠름한 얼굴의 윤수의 얼굴을 향해 윤성이 연신 입맞춤을 건네 왔다. 하지 말라는 얘기도 이제는 나오지 않았다. 윤수가 가만히 있는 걸 본 윤성이, 갑자기 보다 힘을 실어 윤수를 소파 위에 눕혔다. 윤수의 얼굴이 뒤늦게 찌푸려졌다.

“윤성아, 이거 놓고. 오 회장은 지금 뭐가 문제인 거야.”

“음, 몰라. 아무튼 형 고마워. 형 사랑해.”

묻는 말에는 전혀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투다. 보다 저돌적인 윤성의 키스가 윤수의 입 안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말려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거실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윤수의 고개를 윤성이 제압했다. 나 키스만. 키스만 좀 더. 칭얼거린 끝에 다시 입 안으로 들어온 혀가 형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능숙하게 점막을 쓸어대기 시작했다. 소파를 딛고 있던 윤수의 손가락이 짧게 떨렸다.

이 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다급하게 울려왔다. 윤성의 행동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저지할 방법도 찾을 수가 없다. 솔직히 힘만 쓰면 지금 하는 키스는 막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막고 난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 윤성은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 않을 테니까.

윤성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불현듯 현관 쪽에서 엄한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윤성과 윤수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소리가 들린 쪽에 있는 건 오 회장이다. 웬일로 이 시간에, 얼어붙어있던 윤수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분기를 실은 오 회장의 발걸음이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윤성을 잠자코 노려보더니, 그대로 손바닥을 위로 들어올렸다. 때리려는 거다. 순간적으로 일어선 윤수가 오 회장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오 회장과 윤수의 시선이 마주쳐졌다.

“놔라. 지금 뭐하는 거야.”

“잠깐, 잠깐만요.”

“놓으라고 했어. 그리고 오윤성, 고개 들어. 지난번에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아버지 말이 말 같지도 않아? 어디서 대낮에 거실에서 지 형을 빨아대. 어?”

여전히 오 회장의 팔을 있는 힘껏 쥔 채, 고개를 돌려 윤성 쪽을 봤다. 소파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건, 소파 위에 걸쳐 있는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는 거다. 저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버지. 일단 이거 내려놓고 얘기해요.”

“윤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냥 어린 애가 잠깐 장난친 거잖아요. 내려놓으세요, 제발.”

“오윤수.”

쩌렁쩌렁하게 소리쳐지는 자신의 이름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윤수를 바라보는 오 회장의 시선이 바늘이라도 돋친 것처럼 날카롭다. 윤수의 입 밖으로 떨리는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 회장을 붙든 팔은 놓지 않았다. 아무리 오 회장에게 호통을 듣더라도, 이건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눈앞에서 사람이 맞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성훈 대신 다리를 다친 후에도 윤수는 종종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냄비가 뜨겁다며 들지 못하는 여자친구 대신 무심코 손을 가져갔다가 데이거나, 학보사 신입생 시절 악명 높기로 유명한 선배가 동기 한 명을 때리려 하는 것을 막아섰다가 대신 당하는 일 등이 이어졌다. 그런 상처들은 대체로 사사로운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 졌지만, 당사자들은 꽤 시간이 흘러서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대체 그때 왜 그랬어? 윤수에게는 당연한 일이 남들에게는 아니었다. 그걸 남들의 시선에 맞게 설명하는 것이 윤수는 때때로 어려웠다.

“그만 하세요. 이미 충분히 때리셨잖아요.”

“어디서 지 아버지 앞에서 저 버러지 같은 놈 편을 들어. 너 미쳤어?”

“그래도 안 돼요. 하지 마세요.”

단호하게 못 박는 윤수의 말에 오 회장의 팔이 스르르 내려갔다. 살짝 고개를 돌린 오 회장의 입 밖으로 헛웃음이 뱉어졌다. 거실의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 무릎이 끌어내려지는 것만 같다. 떨리던 윤수의 눈꺼풀이 간신히 오 회장을 향해 올라갔다. 소리 없이 다가온 오 회장이 손이 윤수의 얼굴을 매만졌다. 평소와 다르다. 그대로 짓뭉개기라도 할 것처럼, 힘을 줘가며 부드러운 가죽을 주물러댔다. 너 아주 버릇이 없구나. 지 형제 좆이 아무리 좋아도, 어디서 위계를 흐리려고 해. 그것도 내 집에서.

쉴 새 없이 피부를 억누르는 감각에 살금살금 고통이 올라왔다. 말이 만지는 거지, 사실은 볼이며 턱 이곳저곳을 꼬집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윤수의 눈가가 길게 일그러졌다. 화기 어린 숨을 크게 내뱉은 오 회장의 손아귀가 거칠게 밑을 향해 끌어내려졌다. 등을 휙 돌리고는 윤수 쪽은 보지도 않은 채 한 마디 했다. 십 분 안에 내 방으로 와.

계단으로 올라가는 오 회장의 묵직한 자취가 고즈넉한 집안을 장악했다가 희석됐다. 오 회장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깊은 숨을 몰아쉰 윤수가 얼굴을 들었다.

윤성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있었다. 아까는 다리만 떠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어깨까지 떨고 있다. 평소에 전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애다. 그런 애가 단지 제 아버지가 손을 올린 걸 보고 이렇게까지 되는 걸 보니, 윤수는 그저 기가 찼다. 새삼 오 회장이 이 집 형제들을 어떻게 다뤄왔는지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다. 일단 윤성 자체가 윤수에게 잘못한 게 있었다. 맞아도 싸다는 생각으로 외면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오 회장의 성난 얼굴에 빠르게 위축되는 윤성을 보니 차마 그게 어려웠다. 목적은 한가지였다. 그저 윤성이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윤성에게도 그랬다. 물론 상황은 기존과 차이가 있었다. 윤성은 윤수를 아프게 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상황에서도 윤수는 똑같이 반응했다. 거의 본능적이었다. 윤수는 평소에 그 정도로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방금 있었던 일은 윤수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량이었다.

윤성아. 고개 들어 봐. 소파 쪽으로 다가가 윤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잠시 멎어있던 윤성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눈가에 물기가 차 있다. 맞은 것도 아니고, 고작 맞을 뻔 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까지 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때부터 이 집에서 어떤 일들을 당한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늠하는 것조차 싫을 지경이다.

느릿하게 윤성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를 한 동안 고민했다. 이제 맞지 않도록 형이 잘 얘기해 볼게. 혹은, 더 이상은 그럴 일이 없을 거야. 혹은. 또 뭐라고 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다. 윤수는 위로를 해 본 기억도, 위로를 받아 본 기억도 뚜렷하게 남는 게 없다. 딱히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문득 그랬다. 다른 사람의 응어리를 능숙하게 녹이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만난 지 이 개월도 되지 않은 반쪽짜리 동생을 달래는 일은 한없이 어렵다. 심지어 이 동생은 윤수가 전혀 모르는 세계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았던 아이다.

형. 문득 눈가를 훔치고 난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물기가 지워져도 눈망울은 여전히 젖어 있다. 그 물기만큼 윤수는 자신의 심장까지 젖어 들어가는 것만 같다.

“왜 그랬어.”

“뭐가.”

“내가 형한테 잘못했는데, 형은.”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너 옛날에 많이 맞았다면서.”

스스로도 정답인지 모를 말을 일단 두루뭉술하게 건넸다. 일단 뱉고 나니 정말 그게 정답인 것 같기도 하다. 비록 해답은 아직 얻지 못했지만. 윤성의 고개가 짧게 밑으로 끌어내려졌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고개를 든 윤성의 표정은 보다 단조로워져 있었다. 아까와 다른 의미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감정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그 담담한 낯빛으로 윤수를 쳐다보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형. 내가 아픈 게 싫어?”

“조금.”

“확실히 얘기해 줘.”

“아마 그럴 거야.”

자신도 답을 몰라 다소 난처해 하다가 내뱉은 말에 윤성이 조금씩 웃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아이가 윤수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역시 평소와 다른 느낌이다. 평소에는 한도 끝도 없이 압박해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다소 날연하다. 윤수의 목덜미에 잠시 고개를 부비고 난 윤성의 입가에서 안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나 형이 진짜로 좋아졌어.

* * *

윤성을 달래느라 오 회장이 얘기한 십 분을 다소 경과하고 말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것부터 꼬투리를 잡고 한 마디 할 줄 알았는데, 오 회장은 여전히 분기 어린 얼굴로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다. 입구 쪽에 발을 딛고 선 채 오 회장을 봤다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가. 또 다시 봤다가 하는 일을 수회 반복했다. 새삼 아까 자신이 옳은 일을 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벗어라. 두 번 말하기 싫다는 것처럼 오 회장이 무겁게 한 마디 꺼냈다. 결국에는 또 섹스구나 싶었다. 오 회장과 하는 것이야 이제는 지독하리만큼 익숙해서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었다. 게다가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차분한 손길이 평소처럼 상의를 쥐었다. 그대로 끌어올리려는 윤수를 보며 오 회장이 짤막하게 명령했다. 바지만 벗어. 속옷이랑. 벗은 다음에, 이쪽 벽으로 와서 손 짚고 서.

말을 마친 오 회장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평소와 주문이 많이 다르다. 결국에는 하의만 벗으라는 얘기고, 가라고 한 곳도 침대가 아니라 벽 쪽이다. 간신히 익숙했던 상황이 불현듯 다시 낯설어졌다. 지긋한 침묵 속에서 동공만 가누고 있던 윤수의 손이 일단 바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화가 난 오 회장의 앞에서는 고민조차 죄가 된다. 시간을 끄는 일은 더 거친 형벌을 받겠다는 암묵적인 동의로 간주됐다. 윤수는 그 무렵 오 회장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그가 성욕을 표출하는 패턴에서만큼은 거의 교과서적인 이해를 갖고 있었다. 때로는 어머니보다 자신이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

속옷까지 벗은 윤수가 침대 근처의 벽으로 다가갔다. 굳어있는 손아귀로 벽을 짚은 채 이마를 벽에 기댔다. 오 회장은 조용하다. 시계 침이 흘러가는 소리가 질서정연하게 윤수의 오감을 파고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다음 상황을 최대한 읽어보면서 벽에 딛고 있던 손가락을 세웠다.

문득 뒤편에서 오 회장이 바지의 벨트를 풀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상태로 하려는 모양이었다. 불편하게 이런 자세로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뒤를 돌아봤다가는 한 소리 들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윤수는 그저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벨트를 푸르는 소리는 분명히 뚜렷했는데, 이후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가 못들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손톱으로 벽을 쓸어대던 윤수의 허벅지에 불현듯 날카로운 가죽의 질감이 찾아들었다. 악. 기다란 비명을 내지르며 윤수의 무릎이 꺾였다.

계속 딛고 서. 떨리는 동공을 가누며 살짝 고개를 돌린 끝에는 벨트를 쥔 오 회장이 있다. 자신의 분노를 자극한 대가를 간과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날이 선 시선이 한 눈에 들어왔다. 윤수는 알고 있다. 저런 얼굴의 오 회장은 위험하다는 걸. 내려간 무릎을 좀처럼 들어 올리지 못하는 윤수를 보며, 오 회장이 비꼬듯 입을 열었다. 왜. 네가 그렇게 발정하는 형제들이 당했던 것하고 똑같이 해주겠다는데. 다리 세워, 어서.

온 신경이 메말라가는 것만 같다. 공허한 숨을 내쉰 윤수가 힘겹게 무릎을 세워 올렸다. 또 한 번 오 회장이 내려치기 위해 벨트를 올리려는 순간, 문 쪽에서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저 윤민입니다.”

“뭔데.”

“지난주에 얘기하셨던 노조 관련 건, 내부 검토 결과 가져왔습니다.”

“들어 와.”

오 회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윤민과 윤수의 시선이 멀찍이서 맞닿았다. 차마 얼굴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어 그대로 윤수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이, 오 회장이 윤민에게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서 얘기해라. 나 바쁘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예뻐해 줬는데, 이게 말을 아주 안 들어. 지 어미 닮아서 말이야. 버릇을 제대로 고쳐줘야지.

벽에 딛고 있는 손아귀에 식은땀이 스며들었다. 마주 본 벽지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무런 무늬가 없는 흰색이다. 덕분에 윤수의 머릿속까지 새하얘지는 것만 같다. 다시금 오 회장의 손아귀가 위로 향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내 엉덩이에 닿는 날카로운 가죽의 느낌에 순식간에 맞은 부위가 홧홧해졌다. 절박한 소음을 뱉어내며 몸을 숙이는 윤수의 뒤편에서 오 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허리 들어라. 누가 그만 한다고 했어,

이런 적은 처음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나 선생님에게 체벌 당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맞아본 적은 없다. 완전히 하의를 벗어 내린 채 무거운 가죽의 채찍질을 버텨야 하는 상황. 심지어 뒤편에서는 오윤민이 보고 있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윤수는 새삼 이 상황이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딛고 있던 발바닥이 지그시 차가운 대리석을 억눌렀다.

최대한 발꿈치에 힘을 준 채 몸을 바로 세웠다. 그 와중에 오 회장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강박이 윤수의 몸을 강제로 조종했다. 딱딱한 벽에 손가락을 딛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다시 엉덩이에 내려쳐지는 고통. 앗. 이번에는 제법 큰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윤민이 넌 뭐 해. 보고 한다더니.”

“네. 일단 창원지검에 아는 선배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지금 정권 자체가 친노조 성향이 워낙 강해서 일단 수사에 들어가는 건 불가피하답니다.”

“저희들 멋대로 나를 공격한답시고 강성 금속노조 출신 노조위원장 추대한 놈들이다. 의도적으로 내가 정부에서 사기 사업을 수주했다는 둥, 노조 쟁의행위를 방해했다는 둥 의혹부터 내세우면서 깎아내리려는 놈들이 무슨 낯짝으로 검찰한테 고발을 해. 그런 놈들이 제 정신이야?”

“현실적으로 아버지가 불리합니다. 일단 검찰이 조사 들어가면 압수수색은 불가피합니다. 특히 쟁의행위 관련한 업무방해 혐의는 조사 들어가면 피하지 못할 겁니다. 노조 활동방해는 민감한 문제라 이미 온라인상에서도 여론이 상당히 조성된 상태이구요.”

“그래서, 지금 손 못 쓰겠다는 무능한 소리나 하려고 들어온 거야?”

오 회장이 윤민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느껴졌다. 서늘한 정적이 흐른다.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그 공기를 느끼고 있는 윤수 입장에서도 한기가 들 정도다. 한 동안 말이 없던 윤민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아버지, 저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역삼동 지사 쪽에 얘기는 다 해놨습니다. 큰 형님이 나서서 처리를 마친 상태이고요. 증거가 될 만한 서류, 내부파일, 클라우드까지 싹 다 정리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투리를 잡힌다면.”

예고 없이 윤수의 엉덩이를 향해 힘 있게 벨트가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 중에서 가장 힘이 들어가 있었다. 쥐어짤 것처럼 벽을 짚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스르르 움츠려 들었다. 또 다시 바닥을 향해 몸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완전히 내려앉은 양 무릎에 서늘한 대리석의 질감이 엄습했다.

일어나. 오 회장의 명령이 생생하게 들렸지만, 도무지 몸을 일으켜 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들거리며 바닥만 짚고 있던 윤수 가까이 오 회장이 걸어왔다. 살짝 몸을 숙인 오 회장이 윤수의 엉덩이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잔뜩 뜨거워진 부위에 차가운 손아귀가 닿자마자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 회장이 재미있다는 것처럼 지그시 뜨거운 피부를 눌러댔다. 쓰라림을 넘어 척추가 녹아내릴 듯한 고통이 하반신을 옭아맸다. 바닥에 딛고 있던 손아귀 위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네가 잘못 한 걸 이제 알겠어? 얼굴 한 번 보자. 강제로 윤수의 고개를 끌어올린 오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자신의 의지대로 망가진 전리품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새였다. 아픔에 젖어 숨을 견디는 윤수의 입술을 매만진 뒤 짧게 입을 맞춰 왔다. 엉덩이를 어루만지던 손길이 성기에 가서 닿았다. 아. 윤수의 입 밖으로 달뜬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와중에 좀 만져줬다고 바로 딱딱해지는구나. 맞는 게 좋았니? 이죽거리는 말에 또 다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아귀가 바닥 위에 부서진 것처럼 늘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했다. 상식적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일을 당하면서, 오 회장을 죽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흐릿한 시야에 다소 서늘한 낯의 윤민이 들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언젠가 한정식 집에서 봤던 것과 닮아 있다. 손아귀에 들려 있는 검은 노트 위에서 짧게 검지가 힘을 줬다가 풀어졌다.

오 회장이 바지를 벗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상태에서 하려는 건가. 말도 안 된다. 윤수의 어깨가 빠르게 진동했다. 들어가는 건 그렇다 쳐도, 엉덩이에 닿는 마찰을 피부가 견디지 못할 거다. 내벽이 무너진 것처럼 문드러질 게 분명했다.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윤수의 허리를 오 회장의 팔이 지그시 감쌌다. 여기서 더 도망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온 몸의 혈관이 그대로 막혀버리는 것만 같았다.

“재판을 창원지법에서 하는데.”

“그래.”

“거기 부장판사 한 명이 최근 퇴임을 했습니다. 정치권에 연루돼서 좀 안 좋게 끝난 케이스라 개업해도 펌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고, 대형 펌은 더욱 못 가는 상황입니다. 대학 선배로 평소 친분이 좀 있었던 편인데, 앞으로 몇 년 같이 일한 다음에 개업 돕겠다고 제안하면 우리 펌에서 영입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전관예우로 가겠다는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좋다. 차라리 그게 깔끔하겠지.”

덤덤하게 말을 마친 오 회장이 윤수의 엉덩이 사이를 손가락으로 벌려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부어있는 부위에 손가락이 닿자 윤수의 목덜미가 힘없이 밑으로 꺾였다. 고통어린 호소가 절박하게 흘러나왔다. 제발, 제발 안 돼요. 아버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오 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잘못했다고 해 봐라. 한 번은 생각해 보마.

뭐라고 채 말을 하기도 전에 구멍 안쪽으로 오 회장의 성기가 파고들었다. 턱 밑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걸 느끼며 바닥에 파묻을 것처럼 손가락에 힘을 줬다. 잘못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한 건 오 회장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엔 이렇게까지 오 회장을 대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윤성이 개입되니 좀 달라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제들이 개입되니 다르다. 오 회장에게 긴 세월 체벌 당했던 그들의 과거와 연루된 일. 그것은 타인이 상해를 입는 일과 관련해 윤수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트라우마와 맞물려 오 회장에게 맞서는 거대한 지지벽을 형성했다. 윤수는 그 견고한 지지벽을 좀처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형제들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당한 것보다, 형제들이 윤수에게 한 짓이 훨씬 더 잔인한 것일 수 있었다. 윤수는 명백한 피해자였다. 윤수 역시 그 같은 입장이 단단한 바위처럼 확고했다. 그런 와중에 윤수는 무의적으로 자신의 피해와 형제들의 피해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의 것이고, 형제들의 고통은 형제들의 것이므로 그간 윤수가 해왔던 것처럼 그들의 고통을 마냥 묵인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거기에는 오 회장에 대한 증오도 한몫 했다. 윤성의 앞에서 팔을 올리는 오 회장은 막연하게만 여겨왔던 형제들의 고통을 현실로 끌고 오는 역할을 했다. 직접 본 적도 없고, 당한 적도 없는 고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기에는 자신이 아는 오 회장이 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상황들이 담겨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저 인간이라고도 취급하기 아까운 오 회장만이 아무렇지 않게 이 집의 성주처럼 버티고 있는 사실이 역겨웠다. 바로 그것이 지금 윤수가 오 회장에게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다.

왜 잘못했다고 말을 안 하니. 윤수야, 그 쉬운 걸. 안으로 귀두가 파고들 때마다 부어 있는 엉덩이에 오 회장의 하반신이 거칠게 마찰했다. 아까의 고통이 다른 형태로 재생되고 있다. 엉덩이까지 완전히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부딪혀지는 감각은 단순히 뜨겁다거나 따갑다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었다.

“아. 아버지. 하아, 아픗, 하.”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네 아비가 이렇게까지 아껴줬으면, 예의를 지켜야지. 더 벌려라. 제대로 넣어줄 테니.”

“제발. 제발요. 하읏. 아악.”

눈앞이 아득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희미하게 흰 벽지가 인식되긴 했지만, 그것이 벽지가 맞는지 아닌 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다. 그저 끊임없이 머릿속을 채우는 아픔만이 윤수가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게 애초에 왜 여길 왔을까. 그냥 유언장 따위 무시할 것을.

그만 하시죠. 문득 뒤쪽에서 무거운 저음이 찾아 들었다. 윤수의 안에 한없이 성기를 밀어 넣던 오 회장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든 것이 멎은 것처럼 정지된 시간이 흐르고, 오 회장의 단단한 음경이 윤수의 안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온 몸을 압도하던 고통이 사라지자마자 윤수의 상반신이 늘어지다시피 바닥에 엎어졌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만 하시라고 했습니다.”

청각조차 흐려져 가는 가운데 윤민의 목소리만 뚜렷했다. 바닥을 타고 오 회장이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윤민 쪽일 터였다. 빠르게 걸어가는 오 회장의 발자취가 바닥을 타고 지긋한 진동을 울렸다. 그렇게 몇 걸음인가 움직인 끝에 또 다시 정적이 찾아 들었다. 이내 날카롭게 피부를 후려치는 소리가 방 안을 적셨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막 손을 내려친 오 회장과 고개가 돌아간 윤민이 보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바닥에 지탱한 채 최대한 고개를 가누며 눈앞의 상황을 최대한 파악했다. 오 회장이 오윤민을 쳤다. 윤수가 알기로 윤민은 어떤 의미에서 오 회장이 형제들 중 가장 아끼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명석한데다가 사람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중형 로펌을 거느리는 실력 있는 변호사다. 우월한 유전자를 강조하는 오 회장 입장에서는 형제들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아들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윤민을 방금 오 회장이 때렸다.

돌아갔던 윤민의 고개가 천천히 바로 세워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는 눈빛에 비소 비슷한 것이 담겨 있다. 지금 한 번은 맞아줬지만, 다음부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가끔 선을 넘으세요. 아니, 자주.”

“너 죽고 싶구나.”

“죽이세요. 솔직히 못 하시잖아요. 이 귀한 아들, 죽이면 아버지 이제 어떻게 삽니까.”

말을 마친 윤민의 입가에 보다 여유 있는 미소가 걸렸다. 밑으로 내려가 있던 오 회장의 손이 전율하는 게 멀리서도 현현했다. 윤수는 빠르게 파악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오 회장은 패배했다는 걸. 오 회장의 손아귀가 한 번 더 뺨을 내려칠 것처럼 올라갔다가, 부르르 떨고 난 뒤 내려왔다. 이내 대노가 담긴 음성이 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당장 나가라. 이 애비도 못 알아보는 새끼. 문을 벌컥 열고는 윤민을 매섭게 노려보던 오 회장의 고개가 문득 윤수를 향했다. 역시 분기가 가득한 얼굴을 가누며 큰 소리로 명령했다. 너도 나가. 이 배은망덕한 새끼 같으니라고.

* * *

아예 일어서지도 못하는 윤수를 안고 방까지 들어온 건 윤민이었다. 윤수를 침대에 눕힌 채, 자신의 방에 잠시 들어갔다가 연고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아예 생각할 의지를 잃은 윤수는 물기 없는 동공을 가누며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윤민의 따뜻한 손이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위로 들어올렸다. 다리, 좀 더 들어 봐.

마주친 시선이 꽤나 고요하다. 생각해보니 전에 한정식 집에서도 저런 얼굴이었다. 한없이 서늘하고 공허해 보이는 얼굴. 온도와 깊이는 물론 안에 들어있는 존재조차 하나도 알아볼 수 없는 무채색 수면을 닮은 얼굴. 원래 저 얼굴이었구나. 윤수의 입술이 스르르 벌어졌다. 저것이 진짜 오윤민의 색채다. 비로소 알았다. 윤수를 비롯한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만 일부러 안온한 표정을 짓는 거였다. 그게 아무래도 남을 다루기엔 편할 테니까. 제 마음대로 타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려면, 그런 가면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살짝 다리를 올린 윤수의 엉덩이에 연고를 묻힌 윤민의 손가락이 닿았다. 뜨거운 상처에 차가운 이물질이 닿으니 순식간에 전신이 아릿해졌다. 읏. 신음을 뱉으며 본능적으로 내려온 윤수의 다리를 윤민이 팔을 들어 강하게 저지했다. 그 상태로 꽤나 긴 시간 동안 엉덩이에 축축한 연고가 점철됐다. 느릿하게 적셔지는 액체와 고체 사이의 물질 때문에 지긋한 쓰라림이 엄습했다. 형. 아파. 간헐적으로 나오는 애원에도 윤민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아파도 참아.

맨 피부에 닿는 윤민의 손가락은 그 온도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목적주의적이다. 종종 얼굴에 묘한 분기가 어렸다. 아까 오 회장의 얼굴에 비친 것과 비슷하면서도 확연하게 다르다. 오윤민의 분노는 진짜였다.

윤수야. 약을 다 발랐는지 윤수의 몸에서 손을 떼어낸 윤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꺼풀을 치켜 올리자마자 보이는 윤민의 동공에는 초점이 없었다. 어떻게 저런 눈으로, 이렇게나 침착하게 말을 뱉을 수가 있을까. 윤수는 그의 내면에 차있는 물의 형태를 파악하는 게 더욱 어렵다.

나 믿지. 또 같은 질문이다. 이번이 아마도 세 번째. 윤수는 그 말에 대답하는 게 여전히 난감하다. 윤민을 알면 알수록,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벅차다. 어떤 방식으로든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무작정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가에 무작정 몸을 밀어 넣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수는 저 눈을 보는 순간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저 얼굴로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가 없으니까.

“믿을게.”

“고마워.”

건조하게 말을 마친 윤민이 몸을 돌려 방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자로 잰 듯이 손잡이를 돌려 밖으로 나간 뒤, 문을 닫고 모습을 감췄다.

36.

며칠 동안 오 회장은 윤수를 찾지 않았다. 찾지 않는 걸 떠나서, 아예 무시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건 윤수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따금씩 윤석이나 윤민과 업무적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식사 시간에는 묵묵하게 제 접시만 비운 뒤 그대로 위층에 올라가버리곤 했다.

이 집은 오 회장에게 있어 대대로 물려받은 본인 소유의 성(城)이었다. 이 안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오 회장의 것인 게 당연했다. 심지어 공기까지도. 조상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왔으므로, 오 회장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일 터다. 그런 공간에서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거스르고자 하는 형제들을 오 회장은 용납하지 않았다. 단순히 건방지거나 버릇이 없는 걸 넘어서 완전히 비정상적인 행위라고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이 공간에서는 일반적인 행위가 비일반적인 게 된다.

주말 저녁이었다. 시장에서 신선한 랍스터를 구해왔다며 조리사 여직원 두 명이 두 시간 가까이 오븐을 들락거렸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배치로 형제들과 오 회장이 자리에 앉았다. 오 회장부터 하나씩 랍스터가 담긴 접시가 서빙 됐다. 윤수는 제 앞에서 고소한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랍스터를 보면서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 집에서 먹은 것 치고 맛있는 게 없기는 했다.

식사 내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식기를 매만지는 서늘한 소리, 물 컵을 내려놓는 두터운 소리, 접시 위에 포크가 닿는 날카로운 소리. 이 식탁에서 무릇 나는 게 당연한 소리만 주변을 에워쌌다. 견고하게 하나로 뭉쳐지는 소리에 숨이 찼다. 반쯤 먹던 랍스터를 그대로 두고 물을 마셨다.

버터가 너무 과해. 몇 입 먹은 뒤 랍스터의 속살만 짓이기던 오 회장이 포크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매서운 소리와 함께 은색 식기가 테이블 위를 빙글빙글 굴렀다. 거실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리사 두 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다짜고짜 고개부터 숙이는 모습이 이미 오래 전 몸에 밴 것처럼 익숙해 보인다. 조리사들이 사과를 건넸음에도 오 회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물 컵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는, 힘 있게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았다.

“양념은 느끼하고, 오래 구워서 질기기까지 하고. 이딴 걸 내 집에서 음식이라고 내놓으면서 월급을 받고 싶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얘기했던 마고 와인은 왜 오늘 안 올려놓은 거야.”

“여기저기 알아 봤는데, 지금 물량이 없다고 해서.”

오 회장의 질문이 많아질수록 조리사들의 고개가 더 밑을 향해 끌어내려졌다. 고작 저 정도로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포크를 내려놓은 채 오 회장과 조리사를 응시하는 윤수의 동공이 조금씩 흔들렸다. 문득 고개를 돌린 오 회장과 눈이 마주쳐졌다. 여전히 분기어린 시선. 조리사 때문인지, 윤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동안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견뎌 내던 윤수의 고개가 마지못해 숙여졌다. 어딘가 탁한 거실의 공기 때문에 목이 메어오는 것만 같았다.

귓가에서 오 회장이 무겁게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느릿하게 걸어 조리사 두 명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오 회장이 코앞까지 온 것을 안 조리사들의 어깨에서 떨림이 멈췄다. 사후 경직된 시체처럼. 한 동안 여직원들의 숙여진 정수리만 쳐다보던 오 회장이 손을 위쪽으로 치켜들었다. 잔뜩 힘이 실린 손으로 그들의 귓불 쪽을 차례로 후려졌다. 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윤수의 귀를 멀게 할 것처럼 덮쳐왔다. 흠칫 떨고 난 무릎에 빠르게 힘이 들어갔다. 몸을 일으키기 직전인 윤수의 손목을 윤민이 단단하게 휘어잡았다.

가만히 있어. 그게 더 빨리 끝나. 오 회장과 조리사 쪽을 향한 윤민의 시선은 담담하기 그지 없다. 이 집에서는 아주 익숙한 일이라는 것처럼. 윤민의 손에 잡혀 있던 손을 잠시 응시하다가 스르르 바깥으로 빼냈다. 잡혔던 부위가 괜히 따가웠다.

윤수가 이 집에서 머무른 지도 어느덧 이 개월 째다. 그 중 한 달은 오 회장이 출장 중이었으니, 실질적으로 이 집에 있는 오 회장을 접한 건 한 달 정도다. 그 기간을 통틀어 오 회장이 저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구는 건 처음 봤다. 출장에서 돌아온 당일에 이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이 없는 새 윤수를 취했다며 형제들에게 대노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건 신경질보다 분노 쪽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윤성과 윤수, 윤민에게 차례로 화를 냈던 일도 지금과는 상황이 다소 달랐다. 화내는 이유가 명백하게 있었다. 지금은 엄밀히 말하자면 특별한 이유가 없다. 말 그대로 그냥 신경질이다.

비단 윤민뿐 아니라 식탁에 앉아 있는 모든 형제들은 이 상황을 제법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주저 앉아있는 조리사들조차도. 이런 일쯤은 지겹도록 겪었기 때문에 사건조차 될 수 없다는 입장이 각자의 낯에서 비쳤다. 당황한 건 오로지 윤수 뿐이다. 자신이 오기 전의 이 집은 대체 어땠다는 건지 더욱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오 회장은 윤수가 이 집에 오고 난 이후 형제들이나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크게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래서 윤수도 자신과의 잠자리에서나 짐승처럼 굴지, 다른 이들에게는 평소 그 정도까지 하지 않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진실은 방금 전 비로소 깨달았다. 화를 안 낸 게 아니라, 그냥 참은 거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윤수가 왔다는 만족감에 억지로 유지해 온 평정심이 윤수로 인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윤수가 단 한 번 오 회장을 한 번 거역했다는 이유로. 남은 건 완전하게 윤수가 오기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이 따위로 일하면서 어딜 뻔뻔하게 내 집에서 들락거려.”

“죄송합니다. 회장님.”

분연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계단을 올라가는 오 회장을 향해 조리사들이 연신 고개를 숙여 댔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 말만 이 집에 와서 백 번 이상 들은 것 같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면서도 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같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기본적인 상식이나 권리가 통용되지 않는 한남동의 이 커다란 저택은 불과 정문만 나서면 닿을 바깥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윤수는 그 비이성적인 세계에 갇혀 있었다.

가영 씨. 민희 씨. 아버지 가셨어요. 고개 들어요. 한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는 조리사들을 향해 윤민이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이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차분하게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든 두 명 다 울기 직전이었다. 애 썼어요. 어깨를 다독인 윤민이 다정하게 여자들이 몸을 일으키는 걸 도왔다.

“아버지가 나오지 말라는 거, 그냥 하시는 말씀인 거 아시죠.”

“네. 변호사님.”

“월급 더 올려줄 테니까, 당분간 꾸준하게 나와 줘요. 어차피 두 분 요리 아니면 우리 아버지도 입에 안 맞아서 못 드세요.”

살며시 웃으면서 건네는 윤민의 말에 조리사들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을 훔치기 바쁘다. 오 회장 때문에 서러웠던 게 윤민의 위로를 듣고 폭발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이만 퇴근해요, 설거지는 내일 하고. 차례로 어깨를 두드려준 윤민을 향해 조리사들이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이내 다소 맥이 빠진 발걸음으로 직원용 룸을 향했다. 조리사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 난 윤민이 몸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의 부드러운 얼굴은 온 데 간 데 없다. 흘깃 윤민 쪽을 본 윤석이 입가에 물 컵을 갖다 대면서 입을 열었다.

“내일 나오겠지.”

“나와야지. 요리하는 사람 새로 뽑는 게 얼마가 골치 아픈데. 게다가 안 좋게 내 보냈다가 나중에 저 사람들이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어댈지 또 모르고.”

“요즘엔 조용하네.”

“뭐가.”

“너. 아버지 죽인다는 얘기도 안 하고.”

랍스터의 껍데기만 남아있는 접시 옆에 식기를 내려놓은 윤석이 보다 제대로 윤민을 봤다. 무덤덤한 얼굴이다. 그 와중에 묘한 경계심이 어려 있는 눈빛이 윤민의 얼굴을 탐색하는 것처럼 읽고 있다. 하. 윤민의 입 밖으로 짧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형이 알 거 없잖아.”

“무슨 꿍꿍이야, 대체. 너 이러는 거 어릴 때부터 한두 번 봤어야지.”

“서로 신경 안 쓰기로 했잖아. 형이야 말로 왜 이래.”

고개를 들어 윤석을 응시하던 윤민의 입가에 여유 있는 미소가 맺혔다.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동시에 보던 윤성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모르겠다. 큰 소리로 혼잣말을 뱉은 윤성이 위층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올라가는 소리가 제법 무겁게 거실을 메웠다. 잠시 지켜보고 있던 윤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올라가려던 윤혁의 뒤통수를 보며 윤석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오윤혁. 너 갑자기 입장 바꾼 이유가 뭐야.

막 계단 위로 딛었던 윤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다시 밑으로 끌어내린 윤혁이 잠시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다소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애써 숨기려는 듯, 두 눈을 희미하게 감았다가 바로 떴다. 얼굴이 윤석 대신 윤수를 향하고 있었다. 괜히 긴장한 윤수가 빠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버티는 게 힘들더라고.”

“오윤혁. 너 지금.”

“피는 못 속여. 형.”

그렇게만 얘기한 윤혁이 천천히 계단 위를 올라갔다. 셋만 남은 조용한 식탁에서 윤민과 윤석의 시선이 마주쳐졌다.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는 건데도 괜히 송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굳어 있던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계단 위를 오르는 윤수의 등 쪽에 두 명 분의 시선이 향하는 게 느껴졌다.

* * *

침대에 누웠지만 두 눈은 대낮처럼 또렷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 회장은 갈수록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윤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윤민은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는 것 같지만 도무지 공유를 안 하니 알 수가 없다. 이 갑갑한 집에서 허망하게 버티는 일만 하고 있어야 하는 기간이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터널처럼 윤수의 앞에 펼쳐져 있다. 터널 안의 통로는 얽히고설키다가 아까 본 두 명의 여자 조리사에 머물렀다. 오 회장의 독기 어린 폭행과 폭언을 체념한 것처럼 감당해내던 힘없는 존재들. 윤수는 그들에게서 언젠가의 자신을 봤다.

이불 안으로 아예 파고 들 것처럼 스며들던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긴 숨을 내쉰 뒤 방문을 열었다. 오 회장의 방까지 향하는 거리가 다소 길었다. 그래도 가야 했다. 이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윤수가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커다란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인 끝에 노크를 했다. 이 시간에 누가 문을 두드려. 안쪽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아직 자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저 윤수예요. 침착하게 내 뱉은 말에 갑자기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약간의 시간이 경과하고, 문이 열렸다. 못마땅한 얼굴의 오 회장이 윤수를 정면에서 봤다.

“뭐야, 이 시간에.”

“들어가도 돼요?”

망설이듯 내뱉은 말에 오 회장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얼굴이다. 당연했다. 윤수가 먼저 오 회장을 밤에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들어 와. 불친절하게 한 마디 한 오 회장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윤수도 따라서 안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두텁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뚜렷하게 장악했다.

“무슨 일이야.”

“하고 싶어요.”

혹시라도 뭔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까봐, 윤수는 조금은 주저하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태어나서 이런 연기를 하는 건 처음이다. 눈치 빠른 오 회장이라면 알아채지 않을까 싶은 걱정도 했다. 다행히 눈치는 못 챈 모양이었다. 당황한 오 회장의 양 눈가가 일순간 떨렸다. 그냥 믿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 회장을 뚫어져라 봤다. 문득 윤수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념이 떠올랐다. 이거, 오윤민이 평소에 사람 구슬리는 거랑 다른 게 뭐지.

일단 침대 위로 올라가서 벗고 있어. 내 쪽은 보지 말고. 이성을 찾은 오 회장이 몸을 일으키며 윤수에게 말했다. 왜 보지 말라는 거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선 시트 위에 올라갔다. 옷을 하나하나 벗고 있는데, 뒤편에서 오 회장이 뭔가를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들려오는 건 패키지를 뚫고 알약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물을 삼키는 소리. 약을 먹는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왜 먹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알몸이 된 채 하얀 시트만 바라보고 있는 윤수의 머릿속이 시들어가는 덩굴처럼 혼란했다.

“네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만, 나와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적당히로는 안 될 거다.”

침대 위로 돌아온 오 회장이 사뭇 오만한 얼굴로 윤수를 봤다. 목 너머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적당히로는 안 된다. 동일한 문장이 반복적으로 뇌리를 적셨다. 오 회장과 할 수 있는 건 웬만해서는 다 해봤다고 생각한다. 정배위, 후배위, 오럴섹스. 언젠가는 오윤혁과 한꺼번에 한 적도 있다. 이제 더 이상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뭘 해야 적당히 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얼굴 근육이 빠르게 죽어가는 것과 달리 머릿속은 제법 바쁘게 돌아갔다. 윤수는 어떻게든 이 집에서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했다. 살아야 했다.

누우세요. 제가 위에서 할 게요. 저도 모르게 당돌한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당연히 해 본 적은 없다. 그래도 제대로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가 최선이지 않을까 싶었다. 오 회장의 입가에 짧게 미소가 번졌다. 마음에 들었다는 것처럼. 천천히 시트 위에 내려가는 오 회장의 몸을 확인한 뒤, 윤수가 그 위에 몸을 겹쳤다.

조금씩 발기하기 시작하는 오 회장의 성기를 손에 쥐고는 위에서 다리를 벌렸다. 손 안에서 단단해지는 성기의 표면이 적나라했다. 그대로 넣었다간 찢어질 게 분명했다.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엉덩이 사이를 벌리면서, 들어갈 만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했다. 언젠가였다면 이조차도 수치스러워서 못 견뎠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윤수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적당히 내벽을 벌려둔 끝에 성기를 안에 밀어 넣었다. 역시나 쉽지 않았다. 처음엔 성기를 놓쳐서 실패하고, 두 번째는 제대로 구멍 안에 넣지 못 해서 실패했다. 느긋한 오 회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제대로 해야지. 윤수야.

아랫입술이 절로 깨물어졌다. 다시 몸을 일으킨 뒤 오 회장의 딱딱한 성기를 보다 똑바로 쥐었다. 그대로 안에 쑤셔 넣었다. 아. 내벽이 들어차는 게 느껴지자마자 입 밖으로 새된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다음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시트 위에 손을 짚은 채 힘 있게 안으로 넣어봤지만, 말라붙은 조붓한 내벽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든 곳에 보이는 오 회장이 윤수가 귀엽다는 것처럼 웃어 보였다. 동시에 귀두 끄트머리에서 끈적한 액체가 터져 나왔다.

쿠퍼액으로 점막을 비벼가면서 간신히 오 회장의 음경을 안에 어느 정도 넣을 수 있었다. 채 안까지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저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 밭은 숨이 터져 나왔다. 시야에 담긴 오 회장이 빨리 움직이라는 듯 무언의 종용을 해왔다. 무거워진 고개를 가누고 보다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담았다. 점령당하는 내벽이 깊어질 때마다 얼굴이 붉어져갔다.

보기 좋구나. 계속 해 봐라. 오 회장의 입가에 맺힌 엷은 호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한들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천천히 몸을 위로 끌어 올렸다가 밑으로 끌어 내렸다. 아까보다 귀두가 들어선 지점이 후미져있다. 아읏. 시트를 쥐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단단하게 굳었다.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굴었어야지. 왜 말을 안 듣고. 윤수가 서툰 것을 알아챈 오 회장이 밑에서 자신의 하반신을 위로 치켜 올렸다. 순식간에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성기의 움직임이 탄력을 받았다. 평소와는 다른 감각에 윤수의 목덜미가 자지러졌다. 그 와중에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번 결심을 했으면, 끝을 봐야 했다.

떨리는 몸을 마지못해 들었다가 밑으로 추락시킬 때마다 하반신에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표현하기 어려운 아찔한 고통이 뇌리를 뒤흔들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스스로 오 회장의 위에 올라타 창부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에 뒤늦게 수치심을 느꼈다. 애초에 이딴 걸 왜 했을까 싶은 후회가 들었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오 회장의 귀두가 끄트머리의 점막을 꾹꾹 눌러댔다. 윤수의 손아귀가 다급하게 시트를 쥐었다. 아버지, 더 들어가면 안 돼요. 조금씩 힘이 빠져가는 윤수의 음성에도 오 회장은 단호했다. 제대로 해. 네가 하겠다고 한 거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처음부터 윤수가 시작한 일이었다. 여기서 포기하는 건 더 큰 갈등을 야기하겠다는 선전포고나 진배없었다. 동공이 흐릿해져 가는 가운데 윤수의 손아귀가 맹목적으로 시트를 쥐어짰다. 아래 위로 왕복하는 오 회장의 성기가 윤수의 내벽을 찌르는 흉기처럼 느껴졌다.

“하, 안에. 안에 너무 깊. 흐으.”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마음에 든다. 계속해서 엉덩이 흔들고. 응?”

오 회장의 말끝에 엷은 조소가 맺혔다. 이쯤 되니 윤수도 혼란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애초에 오 회장과 섹스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죽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저 윤민의 단호한 제안만을 듣고,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건가.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윤민에게 놀아난 것이 아닌가.

윤수가 잠시 주춤한 사이 아래쪽에서 오 회장이 보다 힘있게 제 것을 위쪽으로 밀어 넣었다. 살이 맞닿는 소리가 보다 커졌다. 아앗. 찢어질 듯한 비명이 방 안을 채웠다.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오 회장이 아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내벽에 성기를 박아 올렸다. 그러기를 수 분. 마침내 엉덩이 사이로 오 회장의 정액이 뚝뚝 떨어져 내려는 게 보였다. 기력을 소진한 윤수가 시트 위에 몸을 떨궜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오 회장이 매끈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잘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말이 없는 윤수를 보면서 짧게 웃은 오 회장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대마초라도 하러 가는 것일 거다. 윤수와 섹스하고 난 후에는 항상 그게 그의 패턴이었다. 완전히 고개를 돌린 채 오 회장의 행보를 흐릿하게나마 예측하고 있는 윤수의 귓가에 문득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고개를 들어보니 바닥에 완전히 쓰러져 있는 오 회장이 있다. 뭐야. 저도 모르게 온 신경이 위축되는 것만 같아, 소스라치게 벽 쪽으로 몸을 밀어붙이는 윤수의 뒤편에서 벌컥 방문이 열렸다. 윤민이다. 쓰러진 오 회장을 보고는 긴 숨을 내쉰 뒤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아, 됐네. 이제.”

< 3권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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