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 그 아버지 (6/11)

6장. 그 아버지

한낮의 햇살은 눈물이 날 정도로 찬란했다. 간단한 짐을 뒷좌석에 실은 뒤 운전석에 앉은 윤혁이 윤수를 봤다. 잠이 덜 깨서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좀처럼 흐려진 윤수의 동공이 선명해지지 않는다. 멍하니 얼굴을 가누는 윤수를 보다가 짧게 혀를 찬 윤혁이 뒷좌석에 있던 파란색 스카프를 꺼내 건넸다.

“뭔데, 이게.”

“해.”

“내가 왜.”

“하. 진짜 이 와중에 말 드럽게 안 듣네.”

짜증스럽게 말을 뱉은 윤혁이 윤수의 어깨를 잡아챘다. 아. 나지막한 소리를 터뜨리자마자 윤수의 목덜미에 둘둘 말려오는 스카프의 부드러운 재질이 느껴졌다. 목덜미에 남았던 손자국에 닿는 느낌이 어딘가 나른했다. 목에 남은 자국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완전하게 매듭이 완성되는 걸 응시한 윤혁이 시선을 거뒀다. 어릴 때를 제외하고 스카프를 해본 일이 없었던 윤수로서는 목에 남아있는 매끄러운 촉감이 낯설었다.

차는 한 동안 달렸다. 시내를 벗어나고, 수도권까지 진입했다. 어디 가는 거야. 윤수가 몇 번이나 물었지만 윤혁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차가 멈출 때마다 틈틈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메시지를 보내는 게 보였다. 갈 곳을 찾는 모양이었다. 출발 한 지 한 시간가량이 경과했을 무렵, 윤혁의 핸드폰이 벨을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윤혁이 스피커폰을 킨 채 입을 열었다.

“어. 정환아.”

-부산인데 괘안나.

“괜찮아. 주소만 불러 줘.”

-니 누구랑 가는데.

“알 거 없고.”

-여친이가.

“죽고 싶냐. 주소 불러, 빨리.”

-지랄하노, 새끼. 비밀번호 같이 찍어줄 테니까 들어가면 톡이나 하나 해라.

“어, 고마워.”

통화가 끊긴 뒤 종료 버튼을 누르는 윤혁을 보면서 물었다. 누구야? 농구부 친구. 답을 마친 윤혁이 긴 숨을 내쉬었다. 부산. 좀 먼데. 애초에 어딘가 뚜렷한 목적지가 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윤수도 찬찬히 다른 지역에 갈 만한 곳을 떠올려 봤다. 성훈도 부산이고, 채영은 광주. 둘 다 만만치 않게 먼 건 마찬가지다. 생각에 잠겨있는 윤혁을 향해 윤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가자. 대안이 없잖아.

너 괜찮아?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윤혁의 말에 별 걸 다 묻는다는 투로 윤수가 대꾸했다.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운전은 네가 하는 건데. 고개를 돌린 윤혁이 픽 웃었다. 그러네. 너한테는 괜히 눈치 보여서. 혼잣말을 마친 윤혁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도착한 곳은 광안리의 한 고층 주상복합이었다. 창문 너머로 넓게 펼쳐진 바다와 광안대교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이 있었는지 몰랐다. 윤수는 부산은 두 번째였다. 일 학년 때 성훈과 온 이후 처음이다. 사뭇 신기한 듯 창문 쪽을 기웃거리는 윤수를 보면서 윤혁이 묻지도 않는 걸 얘기했다.

“정환이 아버지가 거래소 임원인데, 임원들한테 내 주는 임대 아파트 잠시 쓰는 거야. 걔네 아버지는 지금 서울에서 근무해서 여기 올 일이 별로 없으니까.”

“그 얘기를 뭐하러 하는데.”

괜히 퉁명스럽게 물어오는 윤수를 향해 윤혁이 망설이다 얘기했다. 그냥, 부담 갖지 말라고. 이내 휙 방으로 들어가는 윤혁을 보니 대체 의도가 뭔가 싶은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불편하진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윤혁이 자신에게 저질렀던 일이 엊그제 것처럼 생생한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면서 내벽을 짓눌러대던 두꺼운 성기의 느낌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데. 처음엔 저주스러울 정도로 싫었고, 그래서 윤혁도 싫었다. 아직도 그 기억은 싫다. 그런데 윤혁만큼은 더 이상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허물어진 경계선이 응어리진 분노를 녹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다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니 윤성이다. 받아야 하나. 분명히 내가 없어진 걸 알고 하는 전화일 텐데. 받으면, 뭐라고 하지. 또 윤성은 나에게 뭐라고 할까. 어젯밤 윤성이 짓눌러대던 목덜미의 고통이 현현하게 어깨 위를 엄습해왔다. 받지 않으면 윤성이 그 같은 일을 또 저지르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포감이 스쳤다. 머뭇거리다 고개를 돌려 방 쪽을 봤다. 윤혁은 나올 기미가 없다. 조심스럽게 통화버튼을 눌러 귓가에 가져갔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윤성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응?”

“뭘 갑자기 울어. 네가 잘못해 놓고.”

“알아. 내가 잘못 했어. 나 때문에 나간 거잖아.”

그 동안 고집 부리는 거나 칭얼대는 건 봤어도 우는 건 못 봤다. 대뜸 눈물부터 쏟아 대는 녀석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같아서, 윤수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다시 핸드폰을 얼굴 쪽으로 가져간 뒤 최대한 말로 달랬다. 나간 게 너 때문만은 아니니까 울 거 없어. 나중에 얘기하자.

종료 버튼을 누르고 창문 쪽에 기대듯 등을 갖다 댔다. 윤성의 전화를 받고 나니 또 생각이 많아진다.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윤혁과. 아직 그 집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게 맞는 건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원래 살던 집, 전세 줘 버렸는데. 성훈이 자취하고 있으니까 당분간 같이 지내면서 살 곳을 알아볼까. 옛날에도 같이 산 적이 있으니까 월세만 제대로 나눠서 낸다면 걔도 특별히 뭐라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순식간에 꼬여드는 여러 고민들의 너머에는 좀처럼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문득 생각을 하는 것조차 허무해졌다.

또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윤민이다. 또 받아야 하나. 분명히 어디냐고 물어올 텐데. 그래도 형제들 중에서 유독 윤민이 한결같이 잘해준 것을 윤수는 안다.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스스로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멍 하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윤수 쪽으로 갑자기 윤혁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핸드폰을 잡아 채 액정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전원을 껐다. 소파 위에 던지듯 올려놓는 손길이 제법 차갑다. 뭐야. 다급하게 물어오는 윤수의 말에 윤혁이 무시하듯 대꾸했다. 받는 순간 위치 추적 돼. 그냥 꺼.

시니컬하게 대응하는 윤혁은 이런 상황에 꽤나 익숙한 듯 했다. 뒹굴다 만 핸드폰이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소파의 끄트머리에 걸려 있었다. 위치 추적. 입 안에서 천천히 그 단어를 혀로 굴려봤다. 가족끼리 위치 추적을 한다고. 사실이라면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그나저나 아까 윤성의 전화는 받았는데, 그건 상관없는 건가. 차마 윤혁에게 그 얘기는 하지 못했다. 왜 그랬냐며 윤혁이 화라도 낸다면 윤수로서는 차마 할 말이 없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으로 또 두통이 찾아들었다. 무거워진 머리를 가로젓다가 거실 소파에 앉았다. TV 채널을 옮겨가며 이런저런 화면을 눈에 담았다. 좀처럼 내용이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게 잘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 집에서 나오는 건 분명히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옳은 건가. 그런 느낌.

오윤혁. 나지막하게 입을 열어 방 안에 있는 윤혁을 불렀다. 왜. 안쪽에서 들려오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이젠 익숙한 것도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윤수의 질문에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꽤나 고민 끝에 내뱉은 듯 부쩍 텁텁해진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타협해야지. 최대한.

타협을 한다고. 누구랑. 오 회장, 아니면 윤민을 비롯한 형제들. 혹은 제 삼자. 정확히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다. 묵묵하게 방 쪽에 시선을 뒀다. 윤혁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거기까지는 얘기해주고 싶지 않은 건가. 아니면 스스로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건가. 모르겠다. 슬슬 제법 허물이 없어진 사이가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같은 상황이 오면 윤수는 또 불안했다. 윤혁과 자신 사이의 경계선은 아직 유효하다. 단지 그 높이가 조금 낮아졌을 뿐.

짐을 다 정리한 듯한 윤혁이 거실로 나왔다. 일자로 다물린 입술에 해야 하지만 차마 내뱉지 못한 수많은 언어들이 무겁게 걸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없이 윤수를 응시하던 윤혁이, 이내 그만 둔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일단 나가자, 밥 먹으러.

그러고 보니 일어나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저 집에서 나오는 일에만 열중하느라 허기조차 못 느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윤수를 뒤로 한 채 윤혁이 먼저 현관에서 나섰다. 짧게 머리를 자른 뒤통수를 보면서 윤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을 새겼다. 그런데 쟤, 여기에 계속 있으면 경기 못 뛰지 않나.

* * *

이왕 나온 김에 좀 걷자고 윤수가 고집을 부려 바닷가 근처의 음식점이 많은 곳까지 갔다. 주문한 회를 안주 삼아서 말없이 몇 잔인가 소주를 비웠다. 둘 다 할 말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 지 난처해하는 분위기였다.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마다 흐드러지는 파도소리가 요란하게 정적을 적셨다. 윤수가 두 잔째를 먹고 있을 때 벌써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윤혁이 서버를 불러 다음 병을 주문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술을 잘 마시는 모양이었다.

“너 잘 마시네, 술.”

“아니. 그냥 먹는 정도.”

“형제 중에서 네가 제일 잘 마셔?”

“윤성이는 미성년자니까 상관없고. 솔직히 형들은 다 술을 잘 마셔서. 누가 제일 잘 마시고 이런 거는 모르겠는데. 물론 윤석이 형은 술을 별로 안 좋아해. 일 할 때만 먹는 거고. 윤민 형은 즐기는 편.”

“대마 하면 술이 세지나.”

저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내 뱉은 말에 윤혁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이다.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말은 내뱉어 진 후였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윤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얘기를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봤어. 뒤뜰에 있는 거.

아. 윤수의 말을 듣자마자 윤혁이 낮은 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씨발. 나지막하게 뱉어진 욕설이 작지만 선명했다. 한동안 말없이 바닷가가 있는 쪽만 응시하던 윤혁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우리는 안 해.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만 하시지. 윤석 형은 특히 그거 키우는 거 엄청나게 싫어해서 몇 번이나 태우려고도 했었어. 결국 실패했지만.”

“나한테는 왜 먹인 거야, 근데.”

담담하게 내 뱉는 윤수의 질문에 윤혁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냐는 표정이다. 오히려 태연한 건 윤수 쪽이었다. 이미 놀랄 만한 것에는 다 놀란지라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 놀랄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다.

오윤수. 천천히 윤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윤혁이 시선을 마주쳐왔다. 정면에서 보이는 다부진 얼굴이 다소 결연해 보였다. 그대로 입을 열려던 윤혁이 잠시 머뭇거리면서 윤수에게 말을 건넸다. 손 줘 봐. 윤수의 고개가 의아하게 비뚤어졌다. 손을 왜. 네 손 잡아야 말 할 용기가 생길 것 같아서. 말을 마친 윤혁이 짧게 마른 침을 삼켰다.

둘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이유를 묻지 않은 건, 눈앞에 보이는 얼굴이 한없이 진지해서다. 언젠가 학교에서 윤수를 다짜고짜 불러내 밥을 사주겠다며 했던 때와 비슷하다. 따지고 보면 함께 밥을 먹거나 손을 잡는 일이야 특별할 게 없는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윤혁은 그런 일을 제안하면서 종종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본인 입장에서는 매우 고민한 것이라는 것처럼. 지금도 그렇고.

스르르 뻗은 손 위로 윤혁의 커다란 손이 겹쳐졌다. 맞닿은 손아귀의 온도가 꽤나 높았다. 얼핏 물기가 스며있는 것도 같았다. 호흡을 가눈 윤혁이 다시 고개를 들어 윤수를 봤다. 올곧게 부딪혀오는 시선이 괜히 집요해서 윤수는 조금 긴장이 됐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학대를 당했어.”

“오 회장 말이지.”

“어. 처음에는 네 명 다 학대를 당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가 윤석 형한테 위임하듯이 대신 그런 일을 하게 했어. 특별한 이유야 없었을 거야. 그냥 윤석 형이 첫째니까 그랬겠지. 어쨌든 그 결과로 윤석 형은 상대적으로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어. 나머지 세 명은 크지만.”

“그래서.”

서서히 벌어졌던 윤수의 입술이 무겁게 다물렸다. 윤혁과 윤성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들이 순식간에 윤수의 뇌리를 엄습했다. 그게 그거였다. 심지어 엄청 오래된 거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스스로 통제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언젠가 봤던 형제들의 흉터가 빼곡하게 머릿속을 채워갔다. 식은땀이 났다.

너 마조히스트일지도 몰라. 언젠가 성훈은 윤수에게 그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친구들과 축구경기를 하다가 골대가 무너지는 사고를 겪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녹이 슨 골대의 철근 하나가 뚝 부러져 밑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당시 밑에 있었던 건 골키퍼를 맡고 있던 성훈이었는데, 윤수가 득달같이 성훈을 밀어냈다가 대신 무너진 철근에 다리를 다쳤다. 수혈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피가 많이 흘렀다. 의사는 조심하지 그랬느냐며 다그치듯 강조했다. 환자분 희귀 혈액형이라서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출혈하는 일을 만들면 절대 안 됩니다. 윤수는 RH마이너스 AB형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동양권을 통틀어도 아주 극소수만 지니고 있다는 혈액형.

성훈은 병원에 입원한 사흘 내내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얘기를 서른 번도 넘게 했다. 스스로가 속상해서 못 참겠다는 것처럼. 다쳐도 내가 다치는 게 나아. 한줌도 안 되는 놈이 왜 나서서 이런 꼴을 당해. 윤수는 구해준 사람한테 왜 그러냐며 퉁명스럽게 반문하고 말았다. 사실은 그냥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뿐이었다. 그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윤수가 갖고 있는 희한한 강박 중 하나였다. 특히 자신에게 새겨진 흉터는 몰라도 남에게 새겨진 흉터를 보는 걸 특히 힘들어했다. 언젠가 그걸 알게 된 어머니는 연신 한숨만 쉬더니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괜찮아? 오윤수. 쿵쿵대던 심장이 비로소 제 속도를 찾아가고, 식은땀이 증발했을 무렵 자신을 향하는 윤혁의 질문을 뒤늦게 인지할 수 있었다. 괜찮아. 일부러 더욱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윤수를 보면서 윤혁이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픽 웃었다. 당한 건 난데. 왜 네가 그래. 미소의 끄트머리가 어딘가 아릿했다.

“고개 들어봐. 오윤수. 나 봐봐.”

한껏 경직된 고개가 마지못해 윤혁을 향해 들렸다. 천천히 올라온 굵은 손가락이 윤수의 볼을 느릿하게 매만졌다. 주르르 내려온 손가락이 눈가를 비벼대고, 이내 콧등을 쓸어내렸다가 입술에 닿았다. 뭐하는 거야. 입술에 닿은 손가락이 괜히 불편해서 윤수가 금방이라도 고개를 뺄 것처럼 목덜미에 힘을 줬다. 엷게 웃은 윤혁이 손가락을 끌어내렸다. 그냥.

비어있는 투명한 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윤혁이 다시 운을 뗐다. 묵직한 저음과 흘러내려가는 액체의 비명이 뒤엉켜 같은 소리인 것처럼 다가왔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우리 형제들은 대체로 윤석 형은 좋아하지 않아.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솔직히 이해하지만.”

“뭘 이해한다는 거야.”

“나는 윤석 형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우리를 위해서도.”

말을 마친 윤혁이 소주잔을 들어 쓰리게 입을 채웠다. 멍하니 윤혁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오윤석을 떠올렸다. 오윤석. 확실히 비정상적인 인간인 건 맞지만. 아무렇지 않게 동생들을 학대할 정도로 막 돼먹은 인간이었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윤수는 윤석의 많은 면모를 봤다. 처음에는 무표정한 한남동 집에서의 모습만 봤지만 이후에 회사 사무실, 용산동 집, 그리고 친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의 모습까지 줄줄이 봤다. 최종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친아버지의 병원에서 봤던 씁쓸하고 상념어린 모습. 이 집 사람들에 얽힌 어떤 잔인한 운명을 괴로워하던 모습. 그때의 윤석은 꽤나 보통의 사람에 가까웠다. 그 모습이 진짜 오윤석이라면, 그가 잔악한 감정을 갖고 동생들을 학대했다는 과거가 꽤나 어울리지 않는다.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의심해야 하는지가 어려운 숙제처럼 펼쳐진다. 앞에 놓인 빈 소주잔을 쥔 손가락이 순간순간 선명한 지문을 새겨댔다. 새겨진 지문은 또 다른 지문에 의해 지워지고, 그렇게 새겨진 지문이 결국 또 다른 지문으로 무뎌졌다. 맞은편에서 윤혁이 착잡하게 말을 꺼냈다.

“윤민 형이 고생을 많이 했어. 그 때.”

“무슨 고생.”

“나름대로 학대당하는 사람 중에서는 제일 큰 형이니까, 어떻게든 나머지 동생들은 지키려고 했던 거야.”

“너하고 윤성이 말이지.”

“나 농구 한다고 했었을 때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팔을 부러뜨리려고 했었어. 그때도 윤민 형이 저지해서 어떻게든 됐어. 대신 아버지가 윤민 형 팔을 끓는 물에 담그는 바람에 화상을 심하게 입었어. 지금도 윤민 형한테 남아 있어. 여름에도 긴 팔 입고 다니는 이유가 그거고.”

“몰랐어.”

“아직 못 봤구나.”

먹먹하게 건네진 마지막 문장이 다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아직 못 봤다고. 마치 당연히 봤어야 할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럴 기회가 있긴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만한 일이 없다. 애초에 긴 소매만 입는 사람의 맨 팔을 굳이 보려면 벗은 몸을 본다는 상황이 전제돼야 한다. 윤민과는 몇 번인가 함께 잔 적이 있지만, 매번 윤수가 자는 사이에 윤민이 먼저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기 때문에 그런 걸 볼 일은 없었다. 또 생각이 많아진 윤수를 힐긋 보고 난 윤혁이 무겁게 입술을 뗐다. 지금부터가 본론이야. 윤수의 얼굴이 화들짝 올라갔다. 지금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어떻게 보면.

말을 마친 뒤 단숨에 또 하나의 잔을 비운 윤혁이 유독 길고 낮은 숨을 뱉었다. 느릿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표정에 한껏 긴장감이 어려 있다. 앞으로 듣게 될 언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바싹바싹 말라가는 귓가에 윤혁의 말이 뚜렷하게 맺혔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를 죽이기로 한 거야. 빈 잔을 매만지고 있던 윤수의 손이 툭 내려갔다. 순식간에 엎어진 잔이 테이블 위를 외롭게 굴렀다.

“윤민 형이 주도한 거고, 윤석 형은 반대를 했고. 윤성이는 동의. 나는 중립. 솔직히 윤민 형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준비한 게 있고. 최근에는 아버지가 있는 러시아에 암살할 사람까지 보냈는데, 윤석 형이 개입되면서 잘 안 된 것 같아.”

이어지는 담담한 얘기에는 현실감이 하나도 없다. 말을 잃은 채 윤혁의 무표정한 얼굴만 하염없이 응시했다.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다고. 그게 저렇게 차분하게 건넬 수 있는 말인가.

게다가 주도한 사람은 오윤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민은 전혀 그런 일과 관련이 없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윤수가 아는 윤민은 집에서든 밖에서든 적당한 예의를 갖추고 상대방을 쉽게 설득하는 사람. 때때로 서늘함을 비치긴 하지만 대체로 따스한 온도를 지닌 사람. 시간관념이 철저하고 자기관리가 뛰어난 사람. 그리고, 언젠가 경찰서에서 만난 형사과장이 얘기한 것처럼 귀하게 자라서 손에 피 한 방울 묻혀본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런 모습을 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알면 알수록 이 집의 형제들은 윤수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면을 드러낸다. 소름이 돋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고개를 돌려 무섭게 파도가 휘몰아치는 검은 바닷가를 봤다. 수면의 높이를 철저하게 어둠에 숨긴 바다가 언제라도 윤수를 덮칠 것처럼 위협적으로 물결을 부딪혀온다. 가만히 있다가 정말로 저 물살에 먹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걱정을 잠시 했다.

무의식 속에서 문득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언젠가 했던 생각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드러내는 것 자체가 짐승이나 진배없기 때문에 윤수로서는 수십 번이나 머릿속에서 억눌러온 생각. 그러면서도 이따금씩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윤수를 괴롭혀 온 단단한 문장. 오승조라면 죽어도 된다. 그 문장을 각인했을 때, 윤수는 다급하게 눈을 감고는 머릿속을 새하얗게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뇌리에 눌러 붙은 문장이 거칠하게 짓이겨졌다.

“그러면 윤민 형은 이제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거야?”

“아니. 남은 계획이 있어.”

거기까지 얘기한 윤혁이 잠시 한숨을 쉬었다. 남은 계획의 존재를 차마 말하기 어렵다는 투다. 눈살을 길게 찌푸린 채 집중하는 윤수를 보면서, 윤혁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오윤수. 미안한데 나한테 시간 좀 더 줄래?

윤혁 도련님. 문득 테이블 위에 누군가가 묵직하게 손을 짚는 소리가 들렸다. 윤수와 윤혁의 고개가 동시에 올라갔다. 제법 덩치가 큰 정장 차림의 남성이 두 사람을 매섭게 차례로 응시했다. 뒤편에도 역시 덩치 큰 사람이 두 명. 윤혁이 허탈하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저 남성의 얼굴만 살피는 윤수를 일별한 뒤, 남자가 들고 있던 핸드폰 너머로 말을 건넸다. 네. 오 변호사님. 확보했습니다. 두 명 다.

28.

돌아온 한남동 집에는 부산 바닷가보다도 훨씬 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부산이 더 남 쪽이니 지리상으로는 한남동이 보다 추운 게 당연하긴 하다. 그런데 윤수는 이 한기가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렁차게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가 윤수를 꾸짖는 것처럼 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만 들어가 보십시오. 운전석에서 내린 남성이 윤수가 앉은 자리의 문을 손수 열어주며 말했다. 말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 근육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진짜 사람인지가 의심될 지경이다. 옆에서 윤혁이 무겁게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본 뒤 윤수도 바깥으로 나왔다.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곁눈질로 윤혁을 봤다. 상당히 피로해 보였다.

누구야, 저거? 윤수의 질문에 윤혁이 건조하게 응답했다. 윤민 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사람. 더 이상 언급하기도 싫다는 것처럼 윤혁의 입술이 다물렸다. 로펌에 저런 사람이 근무한다는 게 어딘가 이상했다. 변호사도 사무직도 아닌 것 같은데, 저런 사람을 두고 다닐 이유가 뭐가 있을까. 윤수는 새삼 윤민을 이해하는 게 어렵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거실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윤민과 정면에서 마주쳤다. 윤민의 뒤편에는 식탁에 앉은 채 태블릿PC 위에 뭔가를 그려 대는 윤성의 나른한 얼굴이 있다. 둘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워낙 늦은 밤이었다. 여직원들은 다 퇴근 했을 시간.

오윤혁. 윤혁의 이름을 딱딱하게 부른 윤민이 한동안 말없이 자신의 동생을 쳐다만 봤다. 낮은 숨을 쉰 윤혁의 고개가 느릿하게 숙여졌다.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간 윤민이 자꾸만 수그러드는 윤혁의 얼굴을 더욱 뚫어져라 응시했다. 건네지는 시선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웠다.

왜 그랬어. 이유만 얘기해. 그거면 된다. 묵직하게 건네 오는 질문에 윤혁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난감한 얼굴을 들어 윤민을 봤다가, 다시 숙이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됐다. 정적 속에서 시계 침 흐르는 소리가 일정하게 거실을 적셨다. 난감한 얼굴로 윤혁을 바라보던 윤수가 마지못해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윤민 형.”

“윤수야. 가만히 있어.”

말을 채 뱉기도 전에 윤민이 말을 끊었다. 새삼 풀어진 얼굴로 윤수를 한번 응시하고는, 다시 표정을 굳힌 채 윤혁 쪽을 봤다. 안 그래도 추운 거실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는 기분이다. 맥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질끈 쥐어졌다가 펼쳐졌다.

되게 사랑하나 봐. 태블릿PC로 연신 뭔가를 하고 있던 윤성이 이쪽은 보지도 않으며 한 마디 했다. 아까 자신 때문이라며 울어대던 모습이 처음부터 없었던 흔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태연한 얼굴이다. 역시 연기였구나. 허탈한 심정에 눈살이 지그시 찌푸려졌다. 무거워진 고개가 빠르게 밑을 향해 흘러내려갔다. 이 분위기, 정말이기 견디기가 어렵다.

윤혁아. 대답을 한참이나 기다리던 윤민이 천천히 윤혁의 팔뚝에 손을 올렸다. 그대로 쥔 채, 조금 힘을 줬다. 압박이 꽤 셌는지 윤혁이 짧게 미간을 구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손아귀의 힘이 서서히 풀려갔다. 다시 손을 밑으로 끌어내린 윤민이 꼿꼿하게 윤혁을 봤다. 시계 침 소리가 보다 빨라지는 기분이다.

“성한 팔로 농구 계속 해야지. 응?”

“형.”

“네 몸은 네가 챙기는 거야. 네 행동, 네 말. 그런 것들에 따라서 네가 계속 농구를 할지 말지가 결정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았지.”

윤혁은 한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초침이 옮겨가는 소리가 꽤 오랜 시간 들려오고, 마지못해 윤혁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알았어. 윤혁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윤민이 심상하게 명령했다. 들어가 봐. 그만.

윤혁이 잠시 윤수 쪽을 봤다. 같이 올라가자는 얼굴이다. 하긴, 들어가 보라는 게 윤혁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 잠시 눈치를 보던 윤수의 발걸음이 천천히 떨어졌다. 윤민이 담담하게 말로 저지했다. 윤수는 남고, 윤혁이만 들어가. 동시의 윤혁의 입 밖으로 무거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복잡한 얼굴의 윤혁이 천천히 이 층을 향했다. 그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멍하니 서있는 윤수 쪽으로 윤민이 다가왔다. 손을 들어 귓불을 매만지는 감각이 어딘가 서늘했다. 윤수의 어깻죽지가 빠르게 움츠려들었다.

“윤수야.”

“응.”

“그러지 마. 알았지? 왜 어머니가 시킨 걸 안 들어.”

“그래도.”

그래도. 거기까지 뱉은 윤수가 자신 없이 입술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렇게 이상한 집에서 일 년이나 버티는 건 솔직히 어렵다. 빙글빙글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삼킨 윤수가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귓불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윤수의 턱 끝으로 내려왔다. 지긋이 얼굴을 들게 한 채, 윤민이 차분하게 시선을 맞춰왔다. 낯빛은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말 그대로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다. 평소에 자신을 보던 얼굴과 사뭇 달라서인지, 윤수는 새삼 그 얼굴이 두렵다. 늘어뜨린 손이 희미하게 경련했다.

윤수야. 이렇게 이쁜 얼굴로 왜 형 속 썩이는 짓을 해. 보다 가까이 다가온 윤민의 얼굴에 절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윤민이 특별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차분하게 말을 건네고 있을 뿐인데 자꾸만 온 몸의 세포가 경직된다. 태어난 이래 느낀 가장 기묘한 공포감이다. 그저 시선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윤수를 이렇게 만들었다. 오윤민은 윤수가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희한할 정도로 사람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풉. 갑자기 식탁 쪽에서 윤성이 짧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민과 윤수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 쪽을 향했다. 태블릿PC를 끄고 몸을 이쪽으로 돌린 윤성이 넘어갈 것처럼 웃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재밌는지는 모를 일이다. 윤수는 언젠가부터 윤성이 저렇게 웃을 때마다 불안했다. 저 천진해 보이는 아이의 머릿속에 숨겨진 광기가 여실하게 드러난 순간인 것만 같아서. 뭘 웃어, 오윤성. 고저 없는 윤민의 목소리가 윤성에게 날아들었다.

아니, 그냥. 윤수 형 겁먹은 거 너무 귀여워서. 좀처럼 재밌어서 참을 수가 없다는 순진한 얼굴에 윤수는 또 정신이 멍해졌다. 어쩌면 저렇게 감정이 한결같이 주관적일 수가 있을까. 전혀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본인이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저 순수함. 몇 번인가 봤던 모습인데도, 윤수는 매번 볼 때마다 피가 마르는 것만 같다.

“윤성이도 이만 들어 가. 그만 웃고.”

“아, 싫은데. 윤수 형 더 보고 싶단 말이야.”

“들어가라고 했지. 오윤성.”

차갑게 뱉은 윤민의 말에 윤성이 짧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딛고 올라가는 윤성의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맺혔다. 이제 남은 건 윤민과 윤수 둘 뿐이었다. 형. 힘없이 흘러나온 윤수의 말에 윤민이 고개를 돌렸다. 응, 윤수야. 마주쳐진 얼굴은 처음 만나던 그 날을 연상케 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희미하게 되짚어본다. 더럽게 잘생겼다. 이런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다. 그 잘 다듬어진 얼굴에 맺혀있던 온기를 아직도 생동감 있게 기억한다.

눈앞의 존재는 처음 보던 날의 모습 그대로다. 큰 키, 올곧은 이목구비,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한 몸. 달라진 것은 하나다. 그 날에 비해 한 없이 내려가 있는 듯한 이 사람의 온도.

오 회장, 죽이기로 했다며. 나직하게 흘러나온 윤수의 말에 윤민이 예사롭게 반문했다. 윤혁이가 그런 얘기도 했어? 놀랄 줄 알았는데 반응이 태연했다.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낸 윤민이 흘깃 윤수 쪽을 봤다. 피워도 되냐고 묻는 것처럼. 짧게 고개를 끄덕인 윤수를 확인한 윤민이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주머니에서 꺼내진 라이터가 담배 끝을 향했다. 탁 소리가 나면서 끄트머리를 물들여가는 붉은 빛이 사납다. 긴 숨과 함께 연기를 내 뱉은 윤민이 다시 윤수를 봤다.

“맞아. 그렇게 할 거야. 그렇게 될 거고.”

“물론 오 회장이 잘못했지만.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

“윤수야.”

윤수에게 닿지 않게끔 반대쪽을 향해 길게 담배 연기를 뱉은 윤민이 느릿하게 다가왔다. 자신에게 온 것도 아닌데 괜히 매캐한 연기에 휩싸인 것만 같아 눈이 아려온다. 뻐근한 눈꺼풀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막 눈꺼풀을 끌어올렸을 때 다정한 얼굴로 윤수의 볼을 어루만지는 윤민이 보였다. 너야말로 우리 아버지가 안 죽어도 괜찮겠어? 살아 있으면 어차피 넌 계속 강간당할 텐데.

순식간에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우렁찬 내면의 박동이 가슴께를 엄습했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윤수의 머릿속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갖가지 의문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었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 애초에 윤석 말고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 사람은, 어떻게 아는 거야.

완전히 굳어 있는 윤수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며 픽 웃은 윤민이 저벅저벅 걸어 거실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갔다.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 낸 뒤 윤수를 보지도 않은 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랑 했었고, 오윤석이랑은 다른 데서 한 것 같던데. 오윤혁하고는 네 방에서 한 번 했었지. 윤성이도.

아랫입술이 빠르게 공률했다. 이어 손이며 다리며 떨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온 몸이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거센 폭풍우를 정면으로 버티며 밀려나는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윤수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머릿속에서 드는 수많은 상념이 오로지 하나의 의문을 향한다. 대체, 오윤민 뭐야.

불현듯 입구 열리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기다란 마찰음과 함께 현관이 열리더니, 정장 차림의 남성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윤수와 윤민을 번갈아 본 남성이 제법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소리가 들리자마자 위층에서 방 문 열리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거실 쪽을 확인한 윤성과 윤혁이 빠르게 밑을 향했다. 입구에 선 남성의 등 너머로 오 회장의 실루엣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뒤편에 보이는 건 오윤석이다.

하여간, 양반이 못 돼요. 칙 소리와 함께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면서 윤민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거실까지 내려 온 윤혁과 윤성이 입구 쪽에 서고, 윤민도 그 쪽으로 걸어갔다. 멍하니 옆에 서 있는 윤수를 응시하고는 귓가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다. 귓바퀴를 타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표정 풀어. 꼭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온도가 불분명한 타이름이 오히려 윤수를 더 경직되게 만들었다. 좀처럼 굳어있는 어깨를 풀지 못하는 윤수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춘 윤민이 고개를 들었다. 다소 나른한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확히 그것을 뭐라고 규정하는 것이 어려워서다.

입구까지 다다른 오 회장이 주변을 둘러 싼 네 형제들을 차례로 훑어봤다. 뒤편에 서 있던 윤석과 윤민의 시선이 짧게 마주쳤다. 쯧 하고 혀를 차며 윤석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김 기사는 이만 퇴근 해.”

“네, 회장님. 편히 쉬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인 남성이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조 비서가 없다. 지난 번에 윤민이 얘기한 대로 집에서까지는 상주하지 않기로 한 건지. 아니면, 아예 그만 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구를 쳐다보던 윤수와 오 회장의 시선이 맞닿았다. 급격하게 얼굴이 밝아진 오 회장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야말로 으스러질 정도로 윤수의 몸을 끌어안고는, 볼에 입을 맞췄다. 잘 지냈지.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구나.

하. 들리지 않게 숨을 뱉은 윤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위해 다리를 살짝 뒤로 뺐다. 실패다. 몸을 단단하게 쥐어 안은 팔에는 좀처럼 무뎌질 의사가 없다. 윤수의 어깨를 여전히 감싸 안은 채, 오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네 명의 형제들을 어딘가 못마땅한 얼굴로 눈에 담고 난 그가 제법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들 식탁 쪽에 가서 앉아라. 너희들에게 할 말 있다.

29.

마지막으로 이렇게 모여서 식탁에 앉았던 때가 언제였을까. 아마도 오 회장이 출장을 가기 직전 날이었을 거다. 그때도 느꼈지만 이 형제들은 아버지가 하는 모든 말에 놀라울 정도로 순응한다.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가혹 행위의 영향인지, 혹은 이 집의 오랜 전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따졌을 때는 그 어느 가정도 이보다 가부장적일 수 없을 거다. 속으로는 그렇게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면서. 모순이다.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늦은 시간, 정적만이 흐르는 타원형 식탁. 오 회장은 가장 안쪽에 하나뿐인 의자에 앉고, 양 옆으로 둥글게 이어지는 라인에 형제들이 앉는다. 순서는 오른쪽부터 오윤석, 오윤혁. 왼쪽부터는 오윤민, 오윤수, 오윤성. 자리 배치가 지난번과 같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위치가 있다는 거다. 아마도 윤수가 오기 전에는 윤민과 윤성이 나란히 앉았을 거다. 정말로 이상한 집안이다.

“윤성이. 올라가서 양주 하나 가져 와라.”

“어떤 거 가져올까요.”

“아무거나. 상관없다.”

오 회장의 말에 몸을 일으킨 윤성이 빠르게 위층을 향했다. 이번에는 윤혁 쪽을 보면서 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윤혁이. 너는 양주 잔 꺼내 오고. 몇 잔 꺼내 오면 됩니까. 윤혁의 질문에 오 회장이 심상하게 답했다. 네 개.

네 개. 하나는 당연히 오 회장의 몫. 나머지 둘은 윤석과 윤민. 그리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윤혁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윤민과 청담동에서 술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 때도 윤수만 제외하고 잔을 돌렸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어떤 민감한 사안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 이 집안사람들은 철저하게 윤수를 배제하고 있다. 마치 그들 사이에서 지켜져 온 오랜 위계가 있고, 거기서 윤수가 논외인 것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양주잔을 꺼내 온 윤혁이 오 회장과 윤석, 윤민의 자리에 하나씩 잔을 내려 놓고는 나머지 하나를 자연스럽게 제 앞에 내려놓았다. 마침 위층에서 내려 온 윤성이 양주병을 오 회장 쪽에 가져갔다. 라벨을 한 번 확인한 오 회장이 긴 숨을 쉬고는 갑자기 윤수를 봤다. 윤수야. 네가 따라 봐.

순간적으로 테이블에 올라가 있던 윤수의 손등이 흠칫했다. 자신이 뭘 들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술은 저희들끼리 마시면서, 잔은 윤수에게 따르라 한다. 보통의 남성 입장에서 용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거절하려니 테이블을 감도는 묵직한 공기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누가 어떤 명령을 해도 감히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공기의 짙은 무게감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킨 윤수가 손아귀에 병을 쥐었다. 천천히 오 회장의 옆에 가서 가장 먼저 잔을 채웠다. 다음 순서는 아마도 윤석, 그리고 윤민, 마지막으로 윤혁. 주르르 흘러내리는 소리와 함께 잔이 채워지는 걸 보면서도 형제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애초에 윤수는 이 집 안에서 그런 존재였다는 것처럼. 언젠가 윤성에게 안기면서 했던 생각이 점점이 윤수의 머릿속을 채웠다. 어쩌면 자신은 이 집에서 이방인조차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이방인은 최소한 인간이고, 손님이라도 했다.

잔을 전부 따른 뒤 자리에 앉는 윤수를 흘깃 본 오 회장이 안의 내용물을 통째로 비웠다. 윤석과 윤민, 윤혁도 따라서 잔을 비웠다.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 놓는 두터운 소음이 식탁을 울렸다.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형제들을 둘러보던 오 회장이 혀를 차면서 숨을 쉬었다.

“너희들.”

“네.”

“내가 항상 얘기했지. 최소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거라고. 게다가 너희는 다른 버러지 같은 인간들보다 훨씬 더 우위에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더욱 윗사람에게 도리를 다 해야 하는 거라고. 항상 얘기했다.”

“네. 아버지.”

오 회장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형제들의 대답은 거의 기계 수준이다. 듣고만 있는 윤수로서는 그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다른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라고. 일반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가. 자기네들은 그럼 아니라는 건가. 물론 오승조 일가가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더 큰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건 안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로 다른 이들을 태연하게 깎아내리는 건 현대 사회에서 용인하기 힘들 정도의 전근대적 사고다. 어떻게 저런 사고방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미쳤다. 오승조는.

탕. 갑자기 오 회장이 분연히 테이블을 내려치며 몸을 일으켰다. 기겁한 윤수가 동그래진 눈으로 오 회장을 지켜보는 사이, 분기가 섞인 그의 시선이 형제들을 하나하나 향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윤민만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을.

“그렇게 귀한 핏줄을 하사했는데,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들이 어디서 제 아비가 아끼는 걸 함부로 취해. 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윤수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윤수 얘기다. 낮은 숨을 가눈 형제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윤민만 제법 꼿꼿하게 고개를 든 채 그 얼굴들을 관조하고 있다. 문득 윤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짧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윤수, 이리 와 봐라. 갑자기 오 회장이 윤수 쪽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칠흑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거부했다가는 그대로 집어삼킬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한껏 경직된 윤수가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킨 뒤 오 회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까지 다다르는 시간이 유독 길게 다가왔다. 마침내 앞에 선 윤수를 보면서 스스로 잔을 채운 오 회장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벗어.

모골이 순식간에 송연해졌다. 방금 자신이 들은 언어가 진짜 그것임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완전히 굳은 채 가쁜 호흡만 가다듬고 있는 윤수를 향해 오 회장이 강조하듯 말했다. 벗으라고 했다. 쥐고 있던 손아귀가 빠르게 떨렸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윤수가 맥없이 입을 열었다. 저기, 어떻게 여기서. 채워진 잔을 분연히 비운 오 회장이 벽 쪽을 향해 빈 잔을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난 유리의 잔해들이 대리석 바닥을 굴렀다. 살기 어린 시선이 윤수를 할퀼 것처럼 스쳤다. 벗어. 내일 당장 너희 아버지 숨 끊어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아버지 얘기에 윤수의 눈물샘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저 짐승이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무고한 존재에 대한 얘기를. 그것도 말도 안 되는 강요를 하면서. 순식간에 물기가 차오른 시야 때문에 오 회장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분노와 슬픔, 체념이 머릿속에서 얼기설기 얽혔다가 퍼져 나갔다. 힘이 풀린 턱 끝이 절망적으로 전율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눈물을 간신히 참고, 하반신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바지를 끌어내리고, 입고 있던 상의를 위로 벗었다. 남은 속옷을 매만지면서 오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굳이 명령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처럼 날카로운 오 회장의 시선이 무언의 종용을 했다. 빠짐없이 벗으라고. 끝내 속옷을 끌어내리는 마찰음이 이 공간의 유일한 소음인 것처럼 점점이 번졌다. 발꿈치 밑으로 속옷을 빼내면서 윤수는 문득 바닥에 자신의 눈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봤다.

이쪽으로 와. 몸을 일으킨 오 회장이 윤수를 보면서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무력하게 다가 간 윤수의 허리를 오 회장의 팔이 단단하게 휘어잡았다. 흡. 갑작스러운 압박에 짤막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끌어안은 윤수의 몸을 밀어붙이는 오 회장 때문에 절로 몸이 테이블에 밀착됐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시려는 거 아니죠. 지금 하시면 안 되잖아요. 절박하게 내뱉는 윤수의 말에 오 회장이 여유 있게 웃었다.

“윤수야. 아버지하고 하는 거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

“그런 게, 지금 그런 문제가.”

“당연히 할 거다. 더 이상 쓸데없는 얘기로 귀찮게 굴지 마. 머리 나쁜 애도 아니면서.”

단호하게 맺어진 오 회장의 말에 온 몸이 공허해졌다. 당연히 한다고. 제 아들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동복형제와 섹스 하는 걸 보여준다고. 뒤편에서 오 회장이 바지를 벗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블을 짚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점점 더 빠르게 경련했다.

어떻게든 형제들 쪽은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도무지 그들과 시선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고 있지 않은데도, 자신의 알몸을 향한 형제들의 시선이 사슬처럼 스르르 감겨드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순식간에 홧홧해졌다. 더 이상 옷을 벗어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을 때, 오 회장이 뒤에서 윤수에게 말을 건네 왔다. 다리 벌리고. 테이블 제대로 짚어.

눈물이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사고까지 흐려지게 하는 것만 같다. 달달 떨리던 윤수의 허벅지가 느릿하게 벌어졌다. 동그란 엉덩이에 오 회장의 손아귀가 닿았다. 천천히 어루만지고는, 벌어진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 저도 모르게 짤막한 소리를 터뜨리며 더욱 고개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살살 들어온 손가락이 윤수를 조롱하듯 내벽을 짓눌러댔다. 형제들이 신나게 넣어대서 좀 헐렁해졌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잘 삼키는구나. 응? 테이블 위로 뚝 소리를 내며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해외에서 너랑 비슷하게 생긴 미성년자 남자애를 데려다가 몇 번 하긴 했는데, 통 재미가 있어야지. 윤수 너처럼 자지를 제대로 조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걔는 그런 게 없더라고. 심드렁하게 얘기한 오 회장이 좀 더 깊숙하게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튀어나온 돌출부를 머금고,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다가가 손끝으로 비벼댔다. 피가 나올 정도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윤수의 입 밖으로 희미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읏. 뱉자마자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그런 걸 내뱉지 않게끔 보다 날카롭게 입술을 깨물었다. 형제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꼴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윤수야. 너도 잘못이야. 헤프게 몸이나 굴리고 다니고. 네 형제들 자지가 그렇게 좋든. 나긋하게 들려오는 오 회장의 언어를 들으며 윤수는 오로지 한 가지 문장을 반복해 떠올렸다. 미쳤다. 이 사람은 미쳤다. 이 상황도 미쳤고, 이 집도 미쳤다.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는 형제들도 전부 제정신이 아니다. 짓눌린 입술을 타고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발견한 오 회장이 언짢은 얼굴로 혀를 차며 말했다. 왜 이렇게 고집스러워. 하여간 제 어미 닮아서.

오 회장의 손이 앞으로 빠져 나와서는 윤수의 고개를 쥐었다. 강제로 들게 한 뒤 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네 형 동생들한테 제대로 보여줘라. 소리도 제대로 들려주고. 네가 아버지하고 섹스할 때 어떤 모습인지, 네가 누구 건지 알려줘야 저 정신 나간 새끼들이 다시는 너를 탐하지 않을 것 아니야. 흘러내려온 윤수의 눈물이 오 회장의 손아귀를 타고 길게 떨어져 내렸다. 순간 윤수는 생각했다. 세상 어디를 뒤져도 이보다 더한 개새끼는 없을 것이라고.

강제로 앞쪽을 향해 들린 시야에 숨을 죽인 채 자신을 쳐다보는 네 명의 형제들이 담겼다. 차마 제대로 그 얼굴들을 볼 수 없어 최대한 테이블 쪽에 동공을 뒀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선들이 보이지 않는 손처럼 맨살을 만져오는 것만 같아 윤수는 자꾸만 눈꺼풀이 떨렸다.

벌어진 엉덩이 사이에 오 회장의 귀두가 닿았다. 입구를 지긋이 비벼대던 성기가 문득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안으로 쑥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아앗. 오 회장의 손가락 때문에 벌어진 입 밖으로 여과 없이 소음이 튀어 나왔다. 불끈한 귀두가 주름을 하나하나 삼키면서 깊숙한 곳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었다. 간신히 아물었다가 윤성의 음경 때문에 헤진 내벽에 또 다른 고통이 젖어들고 있었다. 윤수의 목덜미가 다급하게 떨렸다.

“아읏. 아파, 그렇게 넣으면. 앗.”

“아프겠지. 안에 상처가 좀 있는 것 같던데. 응? 어떤 놈이 만들었나 몰라. 아니, 전부 다일지도 모르지.”

“제발. 안에, 안에 망가질 것 같아서. 흐윽.”

“다쳐도 별 수 없다. 벌을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야지.”

스르르 올라온 오 회장의 손가락이 윤수의 가슴께에 머물렀다. 느릿하게 유두를 매만지는 느낌이 싫을 정도로 간지러웠다. 유륜을 훑어대던 손가락이 지긋이 가운데 자리 잡은 돌기를 머금었다.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원치 않는 신음을 애써 입안에 삼켰다. 혀를 짚고 있던 손가락이 더욱 깊숙하게 눌러오며 소리 낼 틈을 키웠다. 꼿꼿해진 유두를 손가락 두개가 짤막하게 비틀었다. 으응. 달뜬 소리가 터져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윤수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오 회장의 흡족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착하지, 윤수야.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 계속 내는 거야.

눈앞에서 가장 먼저 보인 건 윤석. 잠시 윤수를 보다가 도무지 견디기가 힘든 듯 고개를 숙이고 만다. 눈을 질끈 감은 게 전에 없이 괴로워 보였다. 하. 가쁜 숨이 자꾸만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꿈이라고 믿고 싶을 지경이었다.

안쪽을 후벼오는 음경의 마찰이 거세졌다. 완전히 뱃속을 꿰뚫기라도 할 것 마냥 공격적이다. 금방이라도 피가 날 것처럼 내벽이 물크러져 갔다. 뻣뻣했던 안에 오 회장이 분출한 쿠퍼액이 젖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좀처럼 매끄럽지가 않다. 점막 곳곳이 타버리는 듯한 감각에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테이블을 짚고 있던 손이 손톱을 세운 채 길게 테이블을 긁어내렸다. 고통을 지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고통이 필요했다. 날카로운 소음이 테이블 위를 맴돌았다.

“아버지, 아버지. 제발. 저 다쳐, 읏. 다쳐요.”

“말했잖아. 벌 받는 중이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잘못 했다고 해라. 네가 자초한 일이다.”

“자, 잘못했. 흐윽, 잘못 했어요. 아버지.”

“뭐를 잘못했는지 똑바로 얘기해.”

“형 동생들이랑, 흐으. 섹스, 섹스했. 앗.”

윤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 회장이 픽 웃어 보이는 게 들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마를 만하면 매번 다시금 터져 나왔다. 얼굴에 얼마나 많은 눈물자국이 새겨져 있는 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강제로 닿은 시선의 끝에는 윤혁이 있다. 완전히 고개를 돌린 상태다. 윤수의 신음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무겁게 한숨을 쉬는 커다란 등이 보였다. 얼핏 비치는 얼굴이 다소 붉어져 있었다.

유두 쪽을 만져오는 손가락이 보다 거칠어졌다. 이빨로 깨물어 대는 것처럼 집요하게 돌기를 꼬집어댔다. 예민한 부위가 만져질 때마다 입 밖으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순간순간 기묘한 감각이 몸에 새겨지고, 그걸 머리가 기억하고 있다. 절망적이었다. 거기, 제발 그만. 어떻게든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간절하게 애원하는 윤수의 말은 오히려 오 회장을 자극할 뿐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가락이 길게 유두를 쓸어 올렸다. 으응. 툭 터져 나온 소리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질척한 농도의 그것이었다. 엷게 웃은 오 회장의 조롱이 이어졌다. 기분 좋니? 네 형제들도 많이 만졌겠구나.

결국 점막 한 부분이 짓이겨졌다. 뱃속이 한 없이 뜨거워진 걸 보면, 한 군데가 아닐 수도 있었다. 피가 많이 나는구나. 네가 내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새기려면 이걸로도 부족하겠지. 오 회장은 오히려 그걸 즐기고 있었다. 형제들로 더럽혀진 윤수의 뱃속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에, 자신을 각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걸 달가워하는 눈치였다. 윤수의 눈가를 타고 쉼 없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짐승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정신 나간 인간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삼키며 간신히 고개를 가눴다. 막연하게 시선을 둔 곳에 윤성이 있었다. 턱을 괸 채 윤수를 지켜보는 얼굴이 제법 흥미로워 보였다. 붉게 물든 얼굴과 목덜미, 오 회장의 손길에 희롱당하는 유두, 벌어진 채 성기를 받아들이는 하반신. 그 위에 살짝 발기한 상태로 들려있는 성기. 하나하나 관찰하는 것처럼 지켜보던 윤성이 윤수와 시선이 마주친 걸 깨닫고는 해맑게 웃었다. 천진한 아이처럼.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성기의 움직임이 금방이라도 절정에 다다를 정도로 빨라졌다. 자꾸만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 최대한 짚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쥐면서 힘겹게 호흡을 가눴다. 점막이 터져나간 자리에 피가 스며들고, 그것을 윤활제 삼아 성기가 힘차게 안을 비벼대고 있었다. 안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가 났는지는 가늠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더럽혀진 자신의 뱃속을 확인하는 일이나 진배없는 것이었다.

다만 더 이상 피가 나는 것은 싫었다. 조금이라도 하반신을 잘못 가눴다가 또 다른 상처가 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윤수는 최대한 엉덩이를 같은 위치에 두기 위해 노력했다. 오 회장의 하반신이 부딪힐 때마다 번번이 몸이 밀려가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 버티고 있던 허벅지가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성기의 움직임은 점점 더 집요해졌다. 단단한 귀두와 표피에 맺힌 혈관이 또 다른 생채기를 내기 위한 것처럼 내벽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수치스러운 것조차 잊을 정도로 지긋한 고통이 뱃속을 점령했다. 벌어지기 일보 직전인 점막에 성기가 닿을 때마다 윤수의 입술이 다급하게 열렸다.

“아버지, 저 못해요. 제발. 흑. 아파서, 하읏.”

“뭘 이 정도로 그래. 어차피 더럽혀진 구멍이다. 상처 한 두개 더 난다고 울 것 없다.”

“제발. 제발요. 하으, 봐주세요. 앗.”

“그럼 얘기해 봐. 윤수야, 네가 누구 거지?”

돌연 부드럽게 건네 오는 오 회장의 질문에는 답까지 실려 있다. 윤수는 이 상황에서 차마 그 답을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해봐야 더 아파질 뿐이다. 더 거친 방식으로 범해지는 모습을 형제들에게 보일 뿐이다. 또 한 번 눈물이 고였던 시야가 축축하게 볼이 젖는 느낌과 함께 뚜렷해졌다. 선명해진 시야에 윤민이 있다.

무표정한 얼굴은 그저 윤수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곳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것처럼. 고통과 수치심에 일그러진 눈꺼풀과 눈물을 머금은 볼, 그리고 아직도 점점이 피가 맺히는 입술을 하나하나 눈에 담은 윤민이 엷게 미소를 머금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윤수와 시선이 맞닿은 윤민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윤수만 알아 볼 수 있게끔 입 모양으로. 보기 좋네.

오 회장에게 얘기한 게 오윤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 일부러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서, 오윤민은 뭘 얻을 수 있는 거지. 머릿속이 까매졌다 하얘졌다를 반복했다. 사고의 회전 속도가 느려서 자꾸만 생각이 끊어졌다. 가빠지는 호흡 때문에 그저 오 회장의 성기에 박히는 일 말고는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윤수의 귓불을 느릿하게 혀로 훑은 오 회장이 윤수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윤수야. 네가 누구 건지 얘기해야지.

바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체념을 머금고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윤수를 재촉하는 것처럼 귀두가 유독 여린 점막들을 골라가며 눌러댔다. 악. 간헐적인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오 회장이 보다 묵직하게 명령했다. 얘기해라. 네가 누구 거고,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흐윽. 아버지, 아버지 거. 읏. 그러니까.”

“지금 네가 뭐하고 있는 건지도 얘기하고.”

“아버지한테, 흣. 따먹히고 있. 흐읍.”

“맞다. 넌 나한테 따먹히고 있는 거고, 너는 그걸 형제들한테 확인시켜 준 거다.”

비로소 만족스럽게 말을 마친 오 회장이 두터운 마찰음과 함께 내벽의 깊숙한 곳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피로 얼룩진 뱃속에 뜨거운 정액이 스며드는 감각이 생생했다. 한 동안 윤수의 뱃속에 머물러 있던 오 회장이 최후의 사정까지 마친 뒤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공허해진 감각에 윤수는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바들바들 숨을 가누던 윤수의 몸이 바닥을 향해 무너져 내렸다.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 다리를 늘어뜨리고 팔위에 고개를 묻었다. 숨을 쉴 때마다 이 공간에서 겪은 치욕감이 하나하나 피부에 새겨지는 것만 같았다. 테이블 위에서 오 회장이 형제들에게 엄하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봤으면 다들 들어가. 이제.

의자에 앉아 있던 형제들이 너도 나도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연이어 거실을 울렸다. 일사분란하게 위층으로 올라가는 네 명분의 발자국 소리가 머릿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자취를 하염없이 곱씹어가면서, 윤수는 비로소 한 가지를 확신했다. 오 회장이라면 죽어도 좋다.

30.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오 회장에게 당하고 사는 게 최악이라면 죽는 게 최소한 차악은 될 것 같았다. 처음으로 떠올린 죽음에 대한 욕망이 윤수는 낯설었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빠져들었고, 심지어 그 방법까지 상상을 했다. 사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쉴 새 없이 방법을 떠올리며 시트 위에서 뒤척이다가 문득 창 밖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와 눈이 마주쳤다.

윤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나무의 기둥을 아래서부터 위까지 올려다봤다. 여전히 솟아오르기 직전인 끄트머리를 봤을 때, 여기가 끝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쪽으로만 간다는 보장이 없다. 정작 가지가 솟아오르기 전까지는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죽어야 할 건 오 회장이었다. 윤수가 죽을 순 없었다.

천천히 베개 위에 머리를 눕혔다. 머릿속에 떠오른 오 회장의 얼굴을 잘근잘근 곱씹다가, 동이 트는 걸 보면서 잠에 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계부터 봤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또 낮까지 정신없이 잔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윤석이 있다. 시선이 마주치자, 조금 어려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왜 왔어요.”

“약 필요하면 발라 줄게.”

“필요 없어요.”

딱딱하게 뱉는 말에 물러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문을 닫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로 천천히 다가온 윤석의 손아귀가 윤수의 바지 쪽으로 향했다. 반사적으로 흠칫 올라가는 윤수의 무릎을 보더니, 난감해하며 손을 거뒀다. 살짝 숙여진 얼굴에서 텁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벗고 다리 벌려 봐. 어제 너무 험하게 했어. 피까지 났잖아. 빨리 벗어.

입 밖으로 긴 숨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상태가 될 정도로 형제들 앞에서 오 회장에게 당했다는 것도 싫고, 그런 상태를 형제들이 알았다는 것도 싫다. 윤석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위해 하반신을 옆으로 옮긴 순간, 순식간에 뱃속이며 허벅지며 하반신의 모든 부위가 저릿할 정도로 뻐근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간헐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윤수를 보고는 윤석이 이마를 짚었다. 고집부리지 말고 그냥 벗어. 구멍 안에 진창 나고 싶어?

마지못해 내려간 손아귀가 바지와 속옷을 끌어내렸다. 윤석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는 일이 언젠가 처음 이 상황을 겪었을 때처럼 민망해서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무표정으로 윤수의 다리 사이를 보던 윤석이 손가락에 연고를 묻히고는 천천히 구멍 쪽으로 가져갔다. 약이 닿은 곳은 거기뿐만이 아니었다. 스르르 들어간 손가락이 내벽의 흠집 난 부위를 더듬거리며 쓰라린 물질을 묻혀댔다. 흐윽.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릿한 감각에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소리 참아. 나 힘들게 하지 말고. 무덤덤하게 말을 건넨 윤석이 차분하게 점막 곳곳을 손가락을 비벼댔다. 내벽 곳곳에 달라붙는 축축하고 따가운 약품에 좌절감이 들었다. 적당히 약을 바르고 난 윤석이 몸을 일으켰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는 윤수를 응시하고는, 무겁게 눈을 깔았다가 다시 떴다. 메마른 입에서 건조한 언어가 흘러 나왔다.

“미안해. 아버지 대신 사과할게.”

“형이 뭘 사과하는데요.”

“아니. 나부터 사과할게. 그 전에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됐어요. 대대로 개새끼인 집안한테 그런 거 받아서 제가 뭐 해요.”

속옷과 바지를 챙겨 입는 윤수의 입 밖으로 살기 어린 독설이 터져 나왔다. 윤수가 빠르게 알몸을 가려대는 사이 윤석은 책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의자에 앉아 한동안 말없이 윤수의 얼굴을 봤다. 옷을 다 입은 윤수가 뭐 할 말 있냐는 얼굴로 윤석 쪽에 시선을 뒀다. 너도 우리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 의미모를 질문이 귓가에 닿았다. 하. 자조 섞인 헛웃음이 윤수의 성대를 타고 방 안에 퍼졌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대답을 반문으로 일갈한 윤수의 아랫입술이 사납게 깨물렸다. 이 상황에서 천진하게 오승조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성직자나 저능아뿐일 거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저 사람도 어차피 답을 알면서 물은 거 아닌가. 아무 의미 없는 확인 작업에 불과할 뿐. 침대에 걸터앉은 윤수가 여전히 경계심을 한껏 담아 윤석을 봤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왜요.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설득이라도 하시게요.”

“우리 형제들은 그런 거 없어. 각자 입장이 달라도 그러려니 하지.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고. 물론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 대립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지만, 어차피 각자의 사정이란 건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아버지한테는 얘기 안 한 거고.”

암살 계획. 오윤민이 주도한 걸 얘기하는 거다. 아버지를 죽이려는 오윤민, 그걸 막으려는 오윤석. 둘 다 각자의 입장을 알고 있지만 적절한 간격을 두고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며 견제만 한다. 누가 삼켜지고, 누가 삼킬 지는 각자의 능력 여하에 따른 것. 이 같은 룰이 어떤 합의 아래 정해졌을 리는 없고, 그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서로가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거다. 확실히 일반적인 형제들은 아니다.

“네가 그런 판단을 했다면, 네 결정에 따라. 난 뭐라고 안 해.”

“왜 그런 거예요.”

“뭐가.”

“물론 형이 상대적으로 학대를 덜 당했다는 건 알지만, 이미 어려서부터 잘 알고는 있었을 거 아니에요. 오 회장이 악독한 인간인 거.”

윤수의 말이 끝난 후에도 윤석은 한 동안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 침묵. 호젓한 방 안으로 나뭇가지 흩날리는 소리가 파스스 스며든다. 바람이 닿은 윤수의 앞 머리카락이 짧게 흩날렸다가 내려앉았다.

“네 말대로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개새끼였을 지도 몰라. 그래서 더 아버지가 죽으면 안 되는 거야. 나쁜 전례가 반복되면 안 돼. 그 뿐이야.”

말을 마친 윤석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쁜 전례. 이 집에서 과거부터 이어져 온 어떤 역사가 있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오 회장이 죽는 것도 그 역사의 일부가 되는 걸까. 애초에 그딴 역사를 갖고 있는 집안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같은 집안이다.

오윤수. 방문 손잡이를 갓 잡았던 윤석이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올라오는 윤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잠시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오윤민하고 얘기해 봐.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방문이 무겁게 열리고, 윤석이 바깥으로 나섰다. 단단한 등은 문이 닫힌 뒤에도 오랜 잔상으로 남았다. 한 동안 윤석의 뒷모습을 떠올리던 윤수의 고개가 스르르 내려갔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그럼에도 윤수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하는 사람. 오윤민.

* * *

윤민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서초동에 있는 그의 로펌 사무실까지 찾아갔다. 번화가에 있는 제법 큰 빌딩이었고, 윤민의 로펌은 3층부터 5층까지를 쓰고 있었다. 이 정도면 중형 로펌은 거뜬히 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업 2년차 변호사 한 명의 역량으로 이뤘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넘치는 성과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입주 기업들의 리스트를 윤수의 손가락이 미심쩍은 듯이 쓸어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내 데스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게 차려 입은 세 명의 여성이 일제히 일어나 윤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산뜻하게 건네 오는 여성의 질문에 윤수는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오윤민 변호사님 뵈러 왔는데요. 여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난처함이 어렸다. 척 봐도 어려보이는 대학생이 대뜸 대표부터 찾는 게 당돌하다는 눈치다. 난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빠르게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전환된 여성이 사분사분하게 입을 열었다. 프로였다.

“죄송하지만 지금 대표님은 외부에 일정이 있어 나가 계십니다. 다음에 와 주시겠어요?”

“언제 오시는데요. 급하게 얘기할 게 있어서 온 건데.”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윤민 형 동생이에요.”

대답을 마치자마자 여성 세 명이 전원 경직된 얼굴로 윤수를 응시했다. 왠지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수를 앞에 둔 채 세 명의 여성이 눈짓으로만 저희들끼리 잽싸게 의사소통을 나눴다.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십 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셋 다 프로였다. 여성 한 명이 불쑥 손을 내밀어 윤수를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안내하며 물었다.

“친동생이신 거죠?”

“네.”

“어머, 진작 얘기하시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윤수를 자리에 앉힌 후 여성이 급하게 프론트로 돌아갔다. 친동생, 친동생. 다른 여성의 어깨를 빠르게 두드리며 여성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걸 우리가 딱 보고 우리가 어떻게 알아? 써 붙이고 다니던가. 불만스럽게 읊조린 또 다른 여성이 긴장감 있게 수화기를 들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남은 여성 두 명이 힐끔거리며 윤수를 보고는 저희들끼리 얘기하는 게 들렸다.

“동생 농구선수 아니었어?”

“다른 동생 있다고는 들었는데.”

“와, 진짜 하나도 안 닮았어. 우리 잘못 아니야.”

동생이라는 걸 당연히 몰랐을 수도 있다. 어딘가 유난스럽게 당혹감을 표출하는 여성들에 의아함이 들 지경이다. 게다가 곁눈질로 틈틈이 윤수를 살펴보는 게 꼭 관찰 당하는 것만 같아 절로 얼굴의 피가 말라왔다. 불편했다. 통화를 마친 프론트의 여성이 다시 윤수 쪽으로 다가왔다. 건네 오는 목소리가 부쩍 친절해져 있었다. 대표 님 사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없다더니, 거짓말이었다. 하여간 인간들이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한숨을 쉰 끝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표실은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있는 모양이었다. 고급스럽게 깔린 은색 복도에 여성의 하이힐이 닿을 때마다 또각거리는 또렷한 소리가 점점이 울려 퍼졌다. 대표변호사 오윤민이라는 명패가 새겨진 방 앞에서 여성이 짧게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동생 분 오셨습니다. 말을 건넨 지 약간의 시간이 경과했는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성은 재촉하지 않고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문이 열린 건 일 분에서 이 분 가량이 흐른 후였다. 먼저 나온 건 윤민이 아니었다. 풍채가 좋은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띤 채 바깥쪽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재킷에 달려있는 금색 배지가 유독 하얗게 빛났다. 윤수는 저 사람을 알고 있었다. 여당의 주요 국회의원이자 차기 대선 후보주자. 채종욱.

“하여간 내가 매번 우리 오변한테는 아쉬운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아닙니다. 의원님. 살펴 가시구요.”

“하. 진짜 우리 오변은 훌륭한 와이프 하나만 있으면 딱인데 말이야. 내가 얘기했잖아, 그 내과 의사한다는 조 의원 딸. 걔 아주 미모가 미스코리아거든.”

“생각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은 씨, 의원님 모셔다 드려.”

“네. 대표 님.”

의원을 향해 안내하는 손짓을 해보이며 여성이 먼저 복도를 걸었다. 따라서 걷는 커다랗고 검은 등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윤민을 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짧게 웃은 윤민이 윤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차분하게 몸을 안으로 끌어들인 윤민이 문이 닫았다. 닫히는 소리가 유독 컸다.

“웬일로 여기까지 왔네.”

“할 말 있어서.”

“응. 앉아.”

윤수를 소파 위에 앉힌 윤민이 전화기를 들고는 어딘가에 연락을 했다. 상대가 받자마자 여유 있게 몇 가지를 주문했다. 어. 나예요. 밑에 내려가서 음료 몇 가지 해 와요. 그냥, 이것저것. 많을수록 좋고. 거기 컵케이크 가게 지금 문 열었나. 확인해 보고 문 열었으면 그것도 사오고. 아니, 한 명이서 먹을 거야. 응. 빠를수록 좋지. 수고.

수화기를 내려 은 윤민이 다시 윤수 쪽으로 다가왔다. 맞은편에 앉을 줄 알았는데, 좀 더 걸어서 윤수의 앞에 선다. 흥미로운 사물을 지켜보는 것처럼 한 동안 윤수를 시야에 담는다. 윤수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는 것처럼.

“오 회장.”

“응. 우리 아버지.”

“죽이는 거, 돕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거 있음 얘기해 줘.”

담담하게 건넨 말에 윤민이 갑자기 픽 웃음을 터뜨렸다. 한 동안 낮은 소리로 웃고 난 윤민이 머리를 쓸어내리면서 다시 윤수를 내려다봤다. 이미 익숙할 정도로 접해 온 눈웃음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다. 다만 그 안에 어떤 속내가 들어있는지는 종잡기 어려웠다. 하, 진짜. 미소 띤 입가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나지막한 혼잣말이 윤수의 귓속에 박혀 들었다.

윤수야. 서서히 다가온 윤민이 윤수의 소파 옆 자리에 앉았다. 윤수의 고개를 나긋하게 어루만진 윤민이 살짝 그것을 쥔 채 자신을 향하게 했다. 피부에 닿는 손길이 어딘가 간지러웠다. 입 안으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우리 윤수는 두 가지만 하면 돼. 우선 이쁜 얼굴, 잘 관리하고. 거기까지 말을 한 윤민이 윤수의 매끈한 볼을 살짝 손가락으로 눌렀다. 간지러움이 더 뚜렷하게 번졌다. 눌렀던 손가락을 떼어낸 윤민이 한껏 따스해진 목소리로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버지랑 섹스 열심히 하고.”

순간적으로 윤수의 동공이 커졌다. 완전히 굳어 있는 얼굴에 다시 윤민의 손가락이 닿았다. 이번에는 귓불. 천천히 어루만지는 손길이 아끼는 것을 애무하는 것처럼 제법 질척했다. 살짝 떨리는 눈꺼풀을 애써 치켜 올리면서 윤수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윤민이 웃었다. 상관있지. 엄청나게.

대체 의도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그것인지도. 어제 그런 꼴까지 봤으면서,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윤민에게 괜히 화가 날 것만 같았다. 일그러지는 윤수의 눈살을 보고는 윤민이 빙긋 웃으면서 짧은 입맞춤을 했다. 아. 지금 표정 좋다. 윤수의 입술이 빠르게 비껴나갔다. 장난하지 마. 형.

불현듯 사무실 문이 열리고는 아까 프론트에 있던 여성 한 명이 양 손 가득히 종이백을 들고 들어왔다. 제법 가까이 앉아있는 윤민과 윤수를 보고는, 다소 당황해하는 얼굴을 애써 숨기며 억지로 웃었다. 어머, 형제분이 사이가 참 좋으세요. 한 마디 내 뱉은 여성이 황급히 테이블 위에 음료 잔과 컵케이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저 여성들은 이상할 정도로 윤민을 대하는 태도가 수축돼있다.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힐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생각에 잠겨있던 윤수의 시선이 느릿하게 윤민을 향했다. 여유있게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것들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비치지 않는다. 좋은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 건지. 혹은 싫은지, 싫으면 얼마나 싫은 건지. 예측 불가한 존재는 밑바닥을 알기 어려운 물와 같아서 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번 긴장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을 보스로 모시면서 일하는 입장이라면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일지도 몰랐다. 그건 단지 저 여성에게뿐만이 아니라, 이 로펌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애로사항일 수 있었다.

세팅을 마친 여성이 윤민을 향해 빠르게 고개를 꾸벅한 뒤 바깥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고, 다시 둘만 남았다. 손을 들어 윤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면서 윤민이 입을 열었다. 좀 먹어, 윤수야. 윤수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나 단 거 안 좋아해. 말을 마치자마자 윤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래도 먹어. 너 살이 너무 빠졌더라. 윤수의 눈꺼풀에 힘이 들어갔다.

“형 때문이잖아.”

다소 차갑게 뱉은 윤수의 말에 윤민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갸웃해 보이고는 컵케이크 하나를 들어 윤수의 입가에 가져갔다. 입 벌려봐. 나지막하게 건네 오는 말에 망설이던 윤수의 입이 마지못해 벌어졌다. 입가를 축축하게 적시는 흰 생크림은 지나치게 달아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 잘 먹네. 윤민이 흡족하게 말했다.

형. 입 안에 생크림을 머금은 채 뭔가를 말하려하는 입 안으로 윤민이 좀 더 컵케이크를 밀어 넣었다. 응. 이거 다 먹고 얘기 해. 담담하게 읊는 말에는 차마 거부하기 힘든 무게감이 실려 있다. 마치 어젯밤 윤수로 하여금 술을 따르지 않고는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던 테이블의 공기처럼.

살짝 눈을 치켜 뜬 채 윤민의 얼굴을 살피면서 입 안으로 밀어 넣어지는 단 케이크를 말없이 삼켰다. 케이크를 둘러싼 껍데기만 남을 때까지. 다 먹은 것을 확인한 윤민이 차분하게 윤수의 입가를 손가락으로 쓸면서 묻어 있던 생크림을 훔쳤다. 희미하게 맺힌 하얀 크림을 입가에 가져간 뒤 짧게 그것을 머금었다.

“그래서 나한테 대마 탄 차 마시게 한 거야?”

“윤수야.”

“오 회장이랑 섹스할 때 더 민감해지게 하려고. 맞잖아.”

“뭐, 처음엔 그랬는데.”

저돌적인 말에도 윤민은 역시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불쑥 손을 내민 윤민이 여러 개의 음료를 차례로 들면서 내용물을 살폈다. 이내 휘핑크림이 잔뜩 올려져있는 초콜릿 음료 하나를 들어 윤수의 입가에 가져갔다. 자. 이것도 마시고. 이게 칼로리가 제일 높은 것 같네.

눈을 마주치면서 걸어오는 목소리는 세상에서 그보다 더 다정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안온하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매번 침착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이 정도 위치까지 오른 건가. 그렇다 해도 단순히 성품만으로 쟁취할 수 있는 성과는 아니다. 입 안에 들어온 스트로로 느릿하게 음료를 빨아들이던 윤수의 머릿속에 문득 오 회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희는 다른 버러지 같은 인간들보다 훨씬 더 우위에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갖고 태어났다. 그렇게 귀한 핏줄을, 내가 하사했다.

입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던 달콤쌉싸름한 음료의 맥이 끊겼다. 급하게 스트로에서 입술을 떼어내며 윤수가 고개를 돌렸다. 더 못 마시겠어. 너무 달아. 알겠다는 얼굴로 음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윤민이 윤수를 비스듬히 보면서 입을 열었다. 대마 탄 차는 이제 안 마셔도 돼. 넌 안 마셔도 될 것 같더라고.

언젠가 윤성이 했던 것과 비슷한 얘기다. 형은 이제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그때 윤성은 그렇게 얘기했다. 소파에 기댄 채 윤수를 응시하는 윤민의 눈빛이 녹아가는 햇살처럼 나른했다. 그 여유 있는 시선이 어떤 사나운 것보다도 맹렬하게 윤수의 신경을 압도하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올라온 윤민의 손이 윤수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대로 내려와서 목덜미. 제법 깊숙한 곳까지. 그냥 만지기만 하는 것뿐인데도 자꾸만 온 감각이 바싹바싹 말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 입 밖으로 짧게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보통은 대마 하면 식욕이 세진다고 하던데. 너는 예외더라고.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가. 밥을 잘 안 먹더라고. 잠도 잘 못 자고. 기운도 없어 하고. 뭐, 덕분에 아버지 입장에서 강제로 하기엔 좋았겠지만.”

“형.”

“그래서 한 때는 이런 걱정도 했어. 우리 윤수가 기력이 딸려서 우리 아버지하고 섹스를 잘 못하나하고.”

“형. 진짜 무슨 소리를.”

“근데 어제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지금 이렇게 봐도.”

서서히 몸을 일으킨 윤민이 윤수의 옷 깊숙한 곳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닿은 끝에 볼록한 유두가 스쳤다. 짧게 몸을 경련한 윤수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불시에 들이닥친 손길을 타고 지긋한 간지러움이 번졌다. 형, 진짜. 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윤수의 입 밖으로 다급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굉장히 뛰어난데 말이야. 우리 윤수가. 응? 안에 넣었던 손을 슥 빼 내면서 윤민이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테이블에 올려 진 것 중 아메리카노를 찾아 손에 쥐었다. 새까만 음료를 한 모금 마신 윤민이 다시 윤수를 봤다. 여전히 생각을 읽기 어려운 얼굴. 어쩌면 저 사람은 처음부터 윤수에게 있어 저런 존재였는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유언장을 관리하는 변호사라면서 윤수를 처음 찾았던 그 때부터. 이 사람은 새까만 물처럼 깊이를 알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존재와 대등하게 맞서는 일은 어렵다. 적어도 윤수가 지닌 수면이 이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투명할 테니까.

“윤수 너도 궁금한 게 많을 수는 있는데, 괜히 설명해 줬다가 네 입장에서 생각만 많아 질까봐서. 나도 여러 가지 고려해서 얘기하는 거야. 정말 우리 아버지 죽는 꼴 보고 싶으면 내가 말한 대로 해. 최대한 많이.”

“정말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야? 형.”

“싫으면 하지 마. 강요는 안 해.”

윤민의 눈가에 살며시 웃음이 맺혔다. 부드럽고 너무도 부드러워서. 실존하는 게 맞기는 한 것인지조차 의심되는 그런 미소. 윤수의 입가가 굳게 다물렸다. 이 사람은 답을 안다. 윤수가 싫다고 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 굳이 저런 걸 묻고 있다. 윤수 스스로 공범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처럼.

앞으로 많이 고생할 것 같으니까, 잘 먹고. 몸 잘 챙기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윤민은 지갑을 펼쳐 안에서 카드 하나를 꺼냈다. 윤수의 손바닥 위에 얹어준 뒤 힐긋 보고는 말을 맺었다.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사고 싶은 거 많이 사고. 한도 오천만원이야. 더 필요하면 얘기하고.

문득 사무실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윤민의 대답이 들린 끝에 프론트 여성 한 명이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대표님. 출발 준비하셔야 합니다. 정 차관님 저녁식사요.”

“장소 어디지.”

“정동 자로초입니다.”

“웬일로 그런 데를 했데. 여자 없으면 술 못 마신다는 양반이.”

“지금 국감 기간이라 장관이 출입 자제령 내렸답니다.”

“차라리 좀 낫겠네. 알았어. 금방 나갈게.”

문이 닫히는 걸 본 윤민이 벌떡 일어나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재킷을 끌어내 셔츠 위에 걸쳤다. 탄탄한 몸에 매끄러운 재질의 원단이 보기 좋게 달라붙었다. 저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자로 잰 것처럼 잘 만들어진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모범답안같이 느껴진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마네킹에 입혀진 것 마냥 몸에 걸쳐지는 저 재킷처럼. 얼굴, 몸, 표정, 소통방식. 어느 것 빠지는 게 없다. 겉보기엔 그렇다.

윤수야. 멍하니 앉아있는 윤수의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고개를 드니, 매고 있던 붉은 색 넥타이를 느릿하게 풀러 내리는 윤민의 보였다. 어. 어렵게 눈꺼풀을 가누며 고개를 드는 윤수를 향해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 질문을 던졌다. 형, 믿지.

이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었던 것과 같은 질문이다. 그 때도 망설이긴 했지만, 지금만큼 아니었다. 그때보다도 더 대답하는 것이 어렵다. 한 없이 제 카드는 뒤엎어 놓은 채 윤수의 패만 뒤집고 있다. 그러면서 그 패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저 사람을 가늠하는 것이 어렵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와중에도 윤수는 윤민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오늘은 바빠서 안 되고. 차분하게 파란 색 넥타이를 들어 목에 옭아매는 윤민을 말없이 쳐다만 봤다. 또 문이 벌컥 열렸다. 제법 초조한 얼굴로 아까의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대표님. 이제 진짜 출발하셔야 해요. 지금 퇴근 시간이라 자칫하면 막혀서 늦습니다.”

“응. 알아. 지금 차량 또 남는 거 있나.”

“어, 알아 볼 게요. 아마 있을 거예요. 왜요?”

“한 대 대기시켜 놔.”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자못 의아한 얼굴로 여성이 물어왔다. 넥타이를 다 맨 윤민이 여유 있게 윤수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끄러운 얼굴을 짧게 쓸어내린 뒤, 여성을 보면서 살짝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동생, 집까지 편안히 모셔다 드리려고.”

* * *

집에 들어갔을 때 거실에는 윤성 밖에 없었다. 식탁에 앉아 저번처럼 태블릿PC로 뭔가를 그려 대는 등이 보였다.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문득 눈이 마주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윤성을 바라보게 됐다. 민망한 기분에 자꾸만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갔다. 오히려 윤성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벌떡 일어난 아이가 윤수를 향해 다가왔다.

형. 학교 다녀 온 거야? 신이 나서 윤수를 끌어안는 손길이 평소와 같다. 어쩌면 이 아이는 이렇게 한결같이 제멋대로일 수가 있을까. 더 이상 분석하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다. 다짜고짜 어깨를 밀어 대는 윤성이 팔이 강제로 윤수를 식탁에 앉혔다. 형. 뭐 먹을래? 빙글빙글 웃으며 물어오는 게 언제나와 같은 패턴이다. 그래도 이제 차는 마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그것이나마 다행인지도 몰랐다.

단 거만 아니면 다 돼. 텁텁하게 내뱉는 윤수의 말에 윤성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럼 볶음밥 먹자. 아까 누나들이 만들어 놓고 간 거 있거든. 이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물 한 접시가 윤수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게 만들어 둔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천천히 스푼을 들어 고슬고슬한 밥알을 입에 밀어 넣으면서 윤성의 앞에 놓인 태블릿PC를 봤다. 화면 속에 담긴 그림은 누구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남학생이다. 저번에도 태블릿PC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저걸 그리고 있었던 걸까.

“누구야?”

“응?”

“거기 남자애.”

“어. 내가 작년에 주사 놓아 준 애.”

무감각하게 응답한 윤성이 펜을 들어 그림을 마무리했다. 주사 놓은 애. 작년에 축구 연습을 하다가 쓰러졌던. 그러다 윤성이 진통제를 놓아 부정맥으로 죽은 남학생. 스푼을 들고 있던 윤수의 손목이 부쩍 힘을 잃었다. 느릿하게 스푼을 접시 위에 내려 둔 윤수가 무겁게 한숨을 쉬며 윤성을 봤다.

“왜 그리는데, 걔는.”

“가끔 꿈에 나와. 안 잊어버리려고 이렇게 그리는 거야.”

“윤성아.”

“응. 형.”

“너는 너희 아버지가 왜 죽었으면 좋겠어. 너를 학대해서 그래?”

새삼 궁금해졌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아이가 왜 오 회장이 죽는 일에 찬성하고 나섰는지에 대해서. 자신 때문에 죽은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태블릿PC에 그려대는 윤성은 더 이상 일반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동그랗게 눈을 떠 보인 윤성이 피식 웃었다. 태블릿PC를 옆으로 밀어두고는 윤수의 품 안에 그대로 파고들 것처럼 고개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진짜. 당혹감에 어떻게든 밀어 내려고 하는 몸짓을 무시하다시피 한 윤성이 가슴께에 완전히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어떻게 해. 형.”

“뭐가.”

“형이 더 좋아지려고 해.”

“묻는 말에는 답도 안 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러지마. 답답해.”

다급하게 내 뱉는 윤수의 말에 엷게 웃은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턱을 괸 채, 윤수를 말없이 쳐다만 봤다. 대체 뭐하는 거지. 윤성이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해 올 때마다 윤수는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만 같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윤성아. 형이 물었잖아. 아버지가 너 학대해서 그런 거냐고.

그제야 윤성의 눈이 번뜩 뜨였다. 아, 그거. 잠깐 까먹었다. 형 얼굴 보느라. 다소 순진하게 돌변한 얼굴이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입가에 맺힌 호에 장난기가 실려 있다. 그런 거 아닌데, 나는. 그냥 재밌어서 그런 건데? 형.

31.

“허, 우리 편집장 님. 며칠 동안 학교 열심히 빠지시더니 그래도 오늘은 얼굴이 좀 나아지셨네. 어?”

“비꼬는 거면 그만 해라. 김성훈.”

오랜만에 학보사에 나온 걸 본 성훈이 기다렸다는 듯 이죽거렸다. 대놓고 무시한 뒤 힘겹게 데스크에 몸을 앉혔다. 날연하게 고개를 가누는 윤수를 보면서 성훈이 프린트물 하나를 건넸다. 야. 한 번 봐봐. 이번 주 지면. 네가 없어서 일단 내가 짰는데, 아무래도 네가 한 번 봐 줘야 안심이 될 거 같다.

자꾸만 맥이 빠질 것만 같은 시선을 가누며 프린트물에 적힌 걸 읽었다. 부총장 인터뷰, 여학생총회 근황 취재, 대학생 스타트업 대표 인터뷰, 국문학과 교수 막말 논란… 한 동안 내용물을 훑어 내린 윤수가 펜을 들고는 필요한 곳에만 가볍게 체크를 했다. 다시 성훈 쪽에 건네면서 입을 열었다.

“부총장 인터뷰는 그대로 1면에 가고. 여총은 1면 사이드톱으로. 근데 여총 회장 멘트가 없네.”

“어. 박채영이 학보에 실리는 건 부담스럽다고 해서.”

“그러면 안 돼. 박채영 멘트 따서 사이드톱으로 끌어올려. 취재 이시은이 한다고 했지. 더 제대로 하라고 전달해. 스타트업 대표는 기사거리는 되는데 지금 제목으로 가면 너무 약해. 김세운한테 좀 더 얘기 되는 걸로 알아보고 제목 뽑으라고 해 봐. 예컨대 국내의 페이스북같은 걸 표방한다든지, 구체적인 제목이 필요해.”

“오케이, 훌륭하십니다. 나머지는 또.”

“나머지는 내가 적은 거 참고해서, 전반적인 흐름엔 지장주지 말고 그대로.”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감은 윤수가 길게 고개를 젖혔다. 죽은 사람마냥 정지해 있는 윤수의 볼을 성훈의 펜 머리가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반응이 없자 몸을 일으킨 성훈이 양 어깨를 빠르게 손아귀로 덮쳤다. 흠칫 놀란 윤수가 고개를 들며 매섭게 소리를 질렀다. 아, 이 새끼야. 뭐하는 거야. 성훈의 입가에 헛웃음이 걸렸다.

너 정신 나갔구나. 진짜. 무슨 일 있냐? 2학기 들어서 거의 만날 이런 것 같아. 무뚝뚝하게 건네는 말에 걱정이 어려 있다. 윤수의 고개가 무겁게 끌어내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고, 심지어 그건 가장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것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성훈과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말도 없이 재킷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 윤수를 향해 성훈이 말을 걸어왔다. 야. 어디 가. 밥 먹어야지. 윤수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어디 가서 좀 쉬어야겠어.

바깥으로 나와 복도에 발을 내딛었다가, 문득 저 편에서 걸어오는 오윤혁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시선이 다른 편을 향하고 있어 아직 이쪽은 못 본 모양이었다. 젠장. 낮게 욕설을 뱉은 윤수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일단 다시 학보사 안으로 들어오는 윤수를 보면서 성훈이 의아하게 물어왔다. 뭐야. 왜 다시 와.

학보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윤수의 시야에 문득 서재 입구가 들어왔다. 안쪽으로 빠르게 몸을 집어넣고는, 살짝 열려진 틈으로 성훈에게 말을 건넸다. 야. 누가 나 찾으면 없다고 해. 성훈이 뭐라고 반문하는 것 같았지만, 듣기도 전에 문부터 닫았다. 고즈넉한 서재 안에서 긴 숨을 내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오윤혁. 오 회장에게 당하는 걸 보이고 난 후 집에서조차 열심히 피해 다닌 존재였다. 다른 형제들과도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윤혁은 유독 불편했다. 아무래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윤혁과 상대적으로 경계를 허문 사이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언젠가는 마주치겠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문득 바깥에서 덜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들려오는 건 윤혁의 뚜렷한 저음이다. 오윤수 선배님 혹시 계십니까? 윤혁의 말에 성훈이 한 동안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니. 없어.”

“그럼 윤수 선배님 어디 가셨는지, 혹시 아세요?”

“그걸 알면 내가 흥신소를 차렸지. 새끼야. 그리고 어디서 선배 동선을 꼬치꼬치 캐물어. 건방지게.”

“알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면서 멍하니 바닥에 다리를 늘어뜨렸다. 갑자기 서재 문이 벌컥 열렸다. 잔뜩 이맛살을 찌푸린 성훈이 고개를 들이밀면서 윤수에게 물어왔다. 뭐하냐, 너네.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윤수가 혼잣말처럼 답했다. 그러게 말이다.

처음에는 민망해서 피했다. 그런 꼴을 보이고서 윤혁과 마주치는 게 미칠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여전히 그 불편함은 유효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또 다른 불편함이 추가됐다. 중립. 오 회장을 죽이는 것에 대한 윤혁의 입장은 중립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오 회장을 죽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다. 윤수는 입장이 달랐다. 어떻게든 오 회장이 죽는 꼴을 보고 싶었다. 윤수와 윤혁의 입장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윤혁과 마주하는 게 스스로의 비인간성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윤수는 그게 싫었다.

* * *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건 윤석이었다. 저 사람이 원래 이렇게까지 자주 이 집에 왔었던가. 떨떠름한 얼굴로 윤석을 보다가, 그대로 위층을 향해 몸을 옮겼다. 빠르게 올라가는 윤수의 등을 향해 윤석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된 이상 이와 관련한 모든 감정을 최대한 혼자만의 무덤에 묻고 싶었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생각하는 건 쉬워도 실행하는 건 어렵다. 윤수는 그걸 실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불가피한 것이었다면서 정당화 하려해도, 그걸 실행하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좀처럼 힘들었다.

결국 윤석의 질문을 무시하다시피한 채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하얗고 깨끗한 천장을 하염없이 눈에 담으며 머릿속을 같은 모양새로 물들였다. 완전하게 새하얘지기 직전에 문득 저번에 윤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쁜 전례가 반복되면 안 돼, 그 뿐이야. 분명히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인가 있었다는 듯한 언사였다. 이 집이 보통의 집안은 아니라는 생각은 진작에 했지만, 설마 그 정도일까. 생각에 잠겨 있던 윤수의 몸이 빠르게 일으켜졌다.

스마트폰을 들어 오래 전 뉴스를 검색할 수 있는 아카이브 서비스에 접속했다. 오 회장의 할아버지 격인 오수헌을 검색해봤다. 60년대 뉴스에서 종종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광복 이후에도 꾸준하게 경찰직을 유지하며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지금의 경찰청장에 근접한 자리까지도 올라갔던 듯하다.

마지막 뉴스가 검색된 것은 1966년 9월 4일. 추락사로 만 56세의 나이로 사망. 등반을 하다가 발을 헛디뎠다고 했다. 추락사. 일반적인 사망요인이 아니긴 하다. 당시 그는 경찰 최고위직을 노리고 있던 인물이었다. 원하는 직책을 목전에 두고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이다. 장례식 상주로 나선 것은 유일한 아들인 오인효. 나이는 만 25세. 당시 여당의 국회의원.

이번에는 오인효. 오수헌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기사가 검색됐다. 총선 때마다 빠짐없이 당선이 됐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기록적인 당선 이력이다. 찬찬히 기사를 훑어보다가 오인효의 사망 기사를 발견했다. 1988년 5월 29일. 만 47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 심지어 이 때 오인효는 한창 잘 나가던 국무총리였다. 경찰은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저지른 트럭 운전기사에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이상한 부분은 많았지만, 경찰도 차마 이 사고의 배후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더욱이 당시 오인효는 정치권에 적이 많았다. 꼽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당시 상주는 오승조. 만 19세. 갓 대학교에 입학한.

오승조 위세대의 두 조상이 모두 각각 만 56세, 만 47세의 나이로 죽었다. 당시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죽기엔 공통적으론 이른 나이다. 게다가 둘 다 한창 현역에서 잘 나가던 시점에 사고사를 당했다. 당시 아들들은 갓 사회인이 됐거나 성인이 된 시점이었고.

이게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당사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윤수는 모른다. 다만 거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똑같이 사고사로 죽었으며 당시 아들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상주 노릇을 했다. 단 한 번의 사례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세대에 걸쳐서 공통적으로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충분히 무리가 있다.

핸드폰 액정에 새겨진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곱씹었다. 오수헌. 오인효. 오수헌. 오인효. 그리고 오승조. 마지막 이름을 머금자마자 입술이 순식간에 말라 들어갔다. 들고 있던 핸드폰을 시트 위에 툭 던지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문득 밑쪽에서 남성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손목이 흠칫 떨렸다. 이 집은 종종 오 회장이 집을 들락거릴 때마다 이런 식으로 내부인들을 정렬시켰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오 회장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그런 일들을 했다. 예컨대 윤수가 처음 이 집에 왔던 날에는 윤수가 진짜 집에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오 회장이 귀국하던 날에는 형제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정렬시켰다. 다만 지금의 것은 어떤 의도를 지녔는지 알기가 어렵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어 문을 연 뒤 거실 쪽을 봤다. 여직원들이 가장 먼저 입구 쪽에 대기하고 있고, 형제들이 하나 둘 그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보인다. 빌어먹을 집안이다. 2018년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부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마지못해 거실을 향해 내려갔다.

가장 먼저 윤혁과 눈이 마주쳐졌다. 살짝 일그러진 이맛살이 그 동안 자신을 피해 다니면서 어디에 있었냐는 투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엔 윤성.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씩 웃어 보이는 게 한없이 기분 좋아 보인다. 다음에는 윤석. 묵묵하게 윤수의 얼굴을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시선을 돌린 끝에는 윤민이 있다. 윤수와 시선이 맞닿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든다.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엊그제 윤민이 했던 말이 거대한 덫처럼 윤수의 머릿속을 덮쳐 온다. 아버지랑 섹스 열심히 하고.

32.

식탁을 둘러 싼 무거운 공기는 눈앞의 식기를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겁게 만든다. 여직원 한 명이 일정한 각도로 와인 병을 기울이며 윤성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의 잔에 레드 와인을 채웠다. 여유 있게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오 회장이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여직원을 향해 말을 건넸다.

“오늘 메인이 뭐야.”

“전복과 안심 구이입니다. 회장님.”

“좋네. 세팅 마치면, 다른 직원들이랑 같이 퇴근해. 설거지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고.”

“예. 회장님.”

와인을 다 따르고 난 여직원이 이번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하나하나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접시가 닿는 마찰음이 윤수의 어깨를 억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눈앞에 드리워진 기름기 어린 동물의 살이 처참하게 짓이겨진 시체의 일부로만 보였다.

윤석이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냐. 스테이크 위에 나이프를 갖다 대면서 오 회장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전복을 반쯤 잘라 입에 넣은 윤석이 천천히 그것을 씹어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이혼으로 가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내가 진작 얘기했지. 근본도 없는 여자랑 결혼하지 말라고.”

“송구합니다.”

“애는 어떻게 할 건데.”

“제가 키울 겁니다. 유진이가 애를 싫어해서요.”

쯧. 짧게 혀를 찬 오 회장이 묵묵하게 와인 잔을 비웠다. 텁텁해 보이는 입 안에 스테이크 조각을 넣고 한 동안 상념에 삼긴 채 길게 씹었다. 테이블에 보다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열려진 창문 틈으로 들어온 서늘한 밤공기가 윤수의 앞 머리카락을 희미하게 적셨다. 이혼. 낯선 두 글자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유를 짐작하는 게 어렵다. 물론 오윤석에게 강유진이 딱히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결혼이든 연애든 항상 꼭 맞는 사람들이 만나야만 성립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건 별로 중요하다고 않다고 봤었다. 윤수가 기억하는 건 언젠가 용산의 집에서 봤던 두 사람의 제법 부부 같던 모습이다. 둘만 있을 때는 어떨지 몰라도, 그 정도면 보통의 부부로 보기에 충분했다. 그런 부부가 갑자기 왜 이혼을 하겠다고 나오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눅눅한 고기를 느릿하게 씹어대던 윤수의 귓가에 오 회장의 경고가 닿았다.

“너희들, 잘 들어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핏줄이다. 어떤 조상으로부터 어떤 핏줄을 물려받았는지가 그 사람의 모든 걸 증명해.”

“네.”

“여자 만날 때 항상 유념하고.”

“네. 아버지.”

지랄을 하는구나. 윤수는 속으로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대단한 오승조 가문의 핏줄. 그걸 물려받은 아들들이 배은망덕하게 제 아버지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저딴 소리는 나오지 않을 거다. 그 핏줄에 얼마나 위대한 유전자가 들어있는지야 윤수 입장에서는 알고 싶지도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일단 그 핏줄을 지닌 한 일반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

정적 속에서 식사가 마무리 됐다. 남은 와인을 한꺼번에 들이 킨 오 회장이 몸을 일으켰다. 막 테이블에서 나서던 오 회장이 짧게 윤수 쪽을 향해 말을 건넸다. 윤수는 식사 마치면 씻고 내 방으로 와라.

쿨럭. 물컵을 들어 목을 축이고 있던 윤수의 입 밖으로 짧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테이블에 있던 형제들의 시선이 일제히 윤수 쪽을 향했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무심코 고개를 든 윤수의 시야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윤혁이 들어왔다. 지그시 눈살을 찌푸린 윤수가 고개를 숙였다.

형제들보다 먼저 식사를 마친 윤수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리고 난 어깨에 차분하게 윤민의 손이 올라왔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윤수를 향해 윤민이 나긋한 귓속말을 건넸다. 잘 해. 응?

저런 말을 다정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어깨 위에 올라온 윤민의 손을 무표정으로 끌어내린 윤수가 분연히 위층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 위를 오르다가 문득 시선을 밑층으로 떨어뜨렸다. 말없이 턱을 괸 채 서로를 응시하는 네 명의 형제들이 있었다.

* * *

씻고 나서 가벼운 차림으로 오 회장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 와. 안으로 들어가자 샤워 가운을 입은 오 회장이 침대에 걸터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 미국 쪽에서 얘기하는 데드라인은 언제까진데. 업무적인 내용인 것 같아서 쉽게 다가가지 못한 채 일단 문 앞에서 서성였다. 오 회장이 오라는 듯한 손짓을 해 보이는 것을 본 후에야 가까이 갔다.

침대 옆 자리에 앉으면 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앞에 서 있는 윤수를 보며 오 회장이 고개를 이쪽으로 끌어 내리라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딱까딱 했다. 천천히 몸을 숙이자 오 회장이 그대로 윤수의 어깨를 쥐고는 바닥을 향해 몸을 앉혔다. 아. 갑작스러운 압박에 윤수의 입 밖으로 짧은 소음이 터져 나왔다.

윤수를 완전히 앞에서 무릎 꿇게 한 채로 오 회장이 자신의 샤워 가운 사이를 젖혔다. 안에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벌써부터 발기한 성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귓가에 댄 상태로 오 회장이 윤수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동그랗게 눈만 뜨고 있던 윤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오 회장의 성기 쪽으로 밀어졌다.

잠시 입에 머금었던 성기를 뱉고 타들어가는 목을 가눴다. 남성의 것은 단 한 번 빨았다. 오윤석. 그의 사무실에서 했던 것. 그나마도 제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위기감을 삼켜내며 억지로 입에 쑤셔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감한 얼굴을 드는 윤수를 보면서 오 회장이 피식 웃어 보였다. 다시 머리통에 오 회장의 손이 닿았다. 이번에는 제법 느긋하게 윤수의 고개를 당겼다. 탄탄한 수컷의 물건이 윤수의 입술을 느릿하게 비벼댔다. 입술에 닿는 표피의 주름이 불쾌해 윤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오 회장이 입모양으로 한 마디 했다. 빨아. 마른 침을 삼킨 윤수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부풀어 오른 귀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읍. 떨리는 목덜미를 타고 힘겨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러시아랑 한국은 언제라도 기한은 맞춰. 미국이 문제지. 거긴 대통령이 문제야. 원래 그렇게까지 뚫기 힘든 데는 아니었는데, 정권 바뀌고 나니까. 하여간 공화당은 쓸모가 없다니까.”

축축한 입 안에 마음대로 성기를 비벼대면서, 오 회장의 입가가 흡족하게 호를 그었다. 타액에 젖은 남자의 성기는 자신의 분비물이 묻은 것인데도 역겨웠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금방이라도 뱉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걸 입에서 뺐다간 오 회장이 대노할 것이 분명했다. 분노에 휩싸인 오 회장은 매번 예상을 넘어선 비정상적 성행위를 했다. 그게 가장 윤수가 두려워하는 점이었다.

“미국 쪽은 김 상무가 꿰고 있으니까. 책임지고 교섭 잘 해 보라고 해. 솔직히 한두 달은 그러려니 하는데 세 달 넘어가면 우리도 못 받아 줘. 봐 주는 것도 정도껏이지. 지들이 뭐라고, 어. 그래.”

집요하게 목구멍 끝까지 파고들어오는 성기를 일일이 담고 있다간 정말로 숨조차 못 쉴 것만 같았다. 틈틈이 고개를 뒤로 빼가면서 어떻게든 숨구멍을 확보하고 있는데, 불현듯 오 회장이 다시 윤수의 고개를 쥐었다. 이내 목구멍 안쪽까지 빠르게 제 것을 틀어박았다. 식도까지 치고 올라오는 성기에 놀란 윤수의 손이 오 회장의 허벅지를 빠르게 쥐었다.

“흐읍. 아, 쿨럭. 숨 막, 하.”

“암튼 내가 얘기한 대로 하고, 나머지는 내일 회사 가서 마무리 하자고. 끊어. 우리 애가 말을 안 듣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오 회장이 시트 위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는 윤수를 내려다봤다. 시선이 사뭇 다정했다. 하지만 윤수는 안다. 저 다정함 너머에 숨겨져 있는 잔악한 욕정을. 윤수야. 제대로 해야지. 응? 나긋하게 건네 오는 질문에 윤수가 자신 없이 고개를 저었다. 해 본 적이 없어요.

빙긋 웃은 오 회장이 윤수의 입 안으로 엄지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러면 안 되지. 우리 윤수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구나. 완전히 고개를 손아귀로 고정시킨 오 회장이 아까보다 더 빨라진 속도로 제 것을 밀어 넣었다. 숨을 틀어막을 것처럼 박아 대는 성기가 섹스할 때의 움직임과 같은 수준이다. 입을 연 채 버티기 힘든 건 그렇다 쳐도, 숨이 막혀서 머릿속이 자꾸만 새하얘졌다. 크읍. 간헐적으로 뱉어지는 고통어린 숨소리를 오 회장은 만족한 얼굴로 즐겼다.

계속 벌리고 있어. 고개 들어서 아버지 보고. 막혀오는 숨 때문에 물기로 젖어든 눈동자를 마지못해 치켜떴다. 밑에서 보이는 윤수의 얼굴이 마음에 드는지 오 회장이 엷게 웃었다. 하나하나 윤수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밀어 넣는 움직임에 힘을 더했다. 귀두가 식도를 틀어막을 때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아, 입 밖으로 절박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으, 아앗. 아.”

“출장 간 내내 이 얼굴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응? 윤수야. 더 아버지 보고.”

숨이 금방이라도 멎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존재와 눈을 마주쳐야 하는 일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목구멍에 오 회장의 성기가 틀어박힐 때마다 눈가를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가쁜 호흡이나마 살기 위해 간신히 가누면서 버텼다. 문득 고개를 쥐고 있던 오 회장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렸다. 자. 이제 스스로 해 봐. 윤수야.

성기를 담고 있는 입에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방금 한 걸 스스로 하라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스스로 제 목구멍을 틀어막는 일이다. 할 수 없었다. 새까맣게 일렁이는 머릿속에 아까 윤민이 했던 말이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잘해. 응? 체념한 눈꺼풀이 스르르 끌어내려졌다. 상황은 펼쳐졌다. 지금의 윤수는 오 회장의 말을 거부하지 못 한다. 아니, 안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입 안에 오 회장의 것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아까 오 회장이 했던 것처럼 아래위로 표피를 빨아들이면서 닿을 수 있는 끝까지 밀어 넣었다. 호흡을 어떤 식으로 분배해야 할지 몰라 매번 귀두가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 와중에 미끈거리는 음경은 입 안에 축축하고 기분 나쁜 흔적을 남기며 안을 있는 대로 헤집어 댔다.

그래. 잘 하네. 고개는 계속 들고. 아버지 자지 빠는 얼굴 제대로 보여줘야지, 윤수야. 입 안에 강이라도 이룰 것처럼 물기가 채워지는 걸 느끼며, 다시금 시선을 치켜 올렸다. 웃고 있는 오 회장이 한눈에 보였다. 자신이 물고 있는 게 저 개새끼의 것이라는 사실은 윤수로 하여금 스스로도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허탈함에 젖은 입술로 오 회장의 성기를 문 채 목 끝까지 밀어 넣기를 수십 회. 마침내 그가 나른한 신음과 함께 입 안에 정액을 배출했다.

입 밖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정액을 훔치면서 급히 뱉을 곳을 찾았다. 기분이 나빠서 미칠 것만 같다. 지켜보던 오 회장이 담담하게 한 마디 했다. 삼켜야지. 윤수야.

꿀꺽. 체념한 목구멍으로 타고 흘러내리는 흰 액체가 한없이 쓰다. 저번에 먹었던 윤석의 것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것 같아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자신의 정액을 먹는 모습을 보며 오 회장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미소는 잠시였다. 갑자기 무표정으로 돌아온 오 회장이 벌떡 몸을 일으켜 윤수의 앞에 섰다. 위에서 비치는 얼굴이 다소 엄했다.

윤수야. 내가 없는 사이에 이 집을 나가려고 했다면서. 서늘하게 내려앉는 말에 윤수의 어깨가 흠칫 들렸다. 순식간에 고개 끝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좀처럼 대답이 없는 윤수의 얼굴을 느긋하게 오 회장이 쓸어내렸다. 말해봐라. 듣고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너 그런 애 아니잖아. 응? 여유 있게 건네 오는 질문에는 날이 서있다. 사실이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설마 이것도 오윤민이 얘기한 건가. 쿵쿵 울려대는 머릿속에서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라면 그나마 남아있던 정 비슷한 것조차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어금니를 날카롭게 씹어대던 윤수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름에 대한 증오가 가득 찼다. 그저 입만 다물고 있는 윤수를 내려다보면서 오 회장이 언짢은 얼굴로 숨을 뱉었다.

“수도권에서 벗어나면 자동으로 나한테 연락이 들어온다. 불법이지만, 돈 있으면 못할 것도 없는 세상이니까. 너한테만 한 것도 아니야. 다른 놈들에게는 진작 다 걸어 놨다. 언제 어떻게 내 뒤통수칠지 모르는 놈들이니까.”

윤수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갔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공허해진 뇌리에 부산에 갔었을 때 윤혁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받는 순간 위치추적 돼. 그냥 꺼. 그 때는 그 위치추적이라는 게 윤민이 한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윤민은 그저 파악된 위치에 사람을 보냈을 뿐이다. 오 회장의 지시에 따라서. 윤혁이 익숙하게 위치추적을 얘기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식으로 아버지에게 통제를 받아왔고, 그것은 아주 당연하며 오래된 굴레였던 것이다.

혼자 간 게 아니던데, 윤수야. 응? 자못 인자해진 오 회장이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멎었던 경련이 다시 시작됐다. 구토를 할 것처럼 목구멍이 울렁였다. 네 동생 자지가 그렇게 좋았어? 그러면 내가 실컷 하게 해주마. 나직하게 말한 오 회장이 분연히 협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핸드폰 액정을 눌러대는 손길이 딱딱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거의 통화음이 울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상대방과 연결이 됐다. 오 회장의 입술이 건조하게 열렸다. 어. 윤혁아. 지금 내 방으로 와 봐라. 온 몸의 떨림이 한계까지 몰아쳤다. 개새끼인 것이야 진작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너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 벗고 있어. 턱짓을 하며 한 마디 건넨 오 회장이 협탁 위에 올려 둔 젤을 손아귀에 쥐는 게 보였다. 몇 번인가 내벽에 묻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온 몸의 기운을 빼 버릴 듯한 향과 감촉을 지닌 끈적한 이물질. 불쾌하기 그지없어서 윤수로서는 진저리가 칠 정도로 싫어하는 것. 떨리는 고개를 가로저은 윤수가 한참이나 바닥만 내려다 봤다.

뭐해, 말 안 들을 거야? 다소 강경하게 내뱉는 말에 번뜩 고개를 든 윤수가 마지못해 일단 시트 위로 올라갔다. 진짜 오윤혁이 오는 건가. 와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 거지. 오 회장의 의중을 알기가 어렵다. 일단 더 이상 분노를 자아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듬거리며 옷가지를 벗어내기 시작했다. 젤을 시트 위에 올려 둔 오 회장이 이번에는 케이스 안에 담긴 시가 비슷한 것을 꺼내 입에 물었다. 탁. 라이터를 여는 소리와 함께 끄트머리에 빨간 불이 붙었다. 한 모금 내 뱉자 머리를 아찔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향이 온 방 안을 채웠다. 저거였다. 대마초.

막 알몸이 됐을 때, 방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기다란 실루엣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소 굳은 얼굴의 윤혁과 벗고 있던 윤수가 정면에서 시선을 마주쳤다. 난감함을 머금은 윤혁의 고개가 빠르게 돌려졌다. 윤수 역시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라 그저 벗은 몸 위로 최대한 이불을 끌어 올리면서 고개만 숙여댔다. 난처해하는 두 사람을 한 번씩 응시한 오 회장이 묵묵하게 대마초를 태웠다. 꽤나 긴 정적 동안 낙엽을 태우는 향이 방 안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마침내 대마초를 들어 재떨이에 비벼 끈 오 회장이 혀를 찼다. 비소 섞인 한 마디가 공간을 울렸다. 하, 이 새끼들이.

윤수. 엎드리고, 다리 벌려. 명령조로 뱉은 오 회장의 말에 윤수의 목덜미가 흠칫 떨렸다. 오 회장의 얼굴은 한 치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표정이다. 일단 들어야 했다. 지금 오 회장의 기분은 윤수가 아는 가장 최저점까지 내려온 상태다. 윤수가 도망치려 했었다는 점, 거기에 자신의 아들 한명이 동조했다는 점. 오 회장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두 가지 사실이 혼재돼 불쾌함을 극한까지 끌어낸 것이 분명했다.

체념한 얼굴로 살짝 눈을 감고 난 윤수가 몸을 일으켜 시트 위에 몸을 숙였다. 무릎으로 시트를 딛은 채 양 다리를 벌렸다. 얼굴은 윤혁과 오 회장이 있는 방 쪽, 하반신은 뒤편에 뒀다. 시키는 대로 자세를 취한 걸 확인한 오 회장이 윤수 쪽으로 다가왔다. 시트 위로 올라가 다짜고짜 윤수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동생한테 잘 보여 줘. 윤혁이 넌 잘 보고. 지난 번에 하나도 안 본 거 알고 있다.

딛고 있던 다리가 달달 떨리는 것만 같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빠르게 머릿속을 물들였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예고 없이 오 회장의 성기가 윤수의 구멍을 쑤셔대기 시작했다. 악. 비명을 내지른 윤수의 고개가 밑으로 풀썩 꺾였다. 입 안 더 깊숙이 손가락을 집어넣은 오 회장이 다시금 윤수의 얼굴을 위로 치켜 올렸다.

“보여주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

“아, 아니. 그, 그렇게. 싫. 아앗.”

내벽을 비벼대는 오 회장의 성기가 짐승의 것처럼 사납다. 묘한 분노가 어려 있는 삽입이다. 버티고 있는 다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졌다. 그걸 알면서도 오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한 손이 윤수의 하반신으로 내려가 성기를 쥐었다. 질척하게 어루만진 오 회장이 웃으며 조롱했다. 슬슬 너도 아버지 좆이 익숙해졌나 보구나. 처음에는 미동도 안 하더니, 이제는 제법 발정 난 것처럼 자지를 세워. 응? 스스로가 정말 그렇게 됐는지 아닌지는 윤수 스스로도 모른다. 다만 지긋이 성기를 압박하는 감각에 어딘가 세포가 빳빳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윤수의 양 눈이 빠르게 감겼다.

앞에서 보이는 윤혁은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대체 오 회장이 뭘 어쩌겠다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자신의 아들한테 이런 걸 보여줘서 뭘 하려고. 이미 상식선에서 오 회장을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윤수는 이 와중에도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점막을 헤집어대는 성기의 움직임이 윤수의 머릿속까지 찔러대는 것처럼 거세다. 아직 상처가 아물기 전이다. 그나마 젤을 바르니 좀 나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뱃속 깊숙이 귀두가 파고들 때마다 반 쯤 열린 윤수의 목구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소 큰 소리에 다른 방의 형제들에게까지 들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걱정은 잠시였다. 그런 것까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스라치는 고통이 윤수를 압박해왔다.

“그래. 윤수야. 잘 버티고 있다.”

“하아, 아버지. 그만, 그만 좀.”

“착하다. 말을 잘 들었으니, 상을 줘야지.”

오 회장의 미소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온 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했다. 그의 다음 행보가 예측할 수 없어 더 두려웠다. 짤막한 숨을 연이어 뱉는 윤수의 허리를 오 회장이 지긋이 끌어안았다. 그 상태로 시트 위에 몸을 앉혔다. 그 바람에 윤수 역시 오 회장 위에서 몸을 앉힌 모양새가 됐다. 앉아있는 윤수의 양 다리를 벌린 오 회장이 윤혁을 보며 한 마디 했다. 윤혁이. 이리 와서 넣어 봐라.

윤수의 동공이 빠르게 일렁였다. 특유의 성욕이 비이성적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놀란 건 윤수 뿐만이 아니었다. 윤혁 역시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눴다. 좀처럼 가까이 오지 못하는 윤혁을 보면서 오 회장이 느긋하게 윤수의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앉은 채로 깊숙하게 들어오는 이물감에 윤수의 몸이 빠르게 중심을 잃었다.

“아읏. 아, 아버지. 깊어, 깊어요.”

“이제 너도 슬슬 남자 맛을 봤으니 이 정도로 깊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다. 계속 소리 내 봐라. 네 동생이 발정 날 때까지.”

오 회장의 손아귀가 다시 입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보다 거칠게 점막 이곳저곳을 헤집어댔다. 동시에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귀두가 직장의 끝까지 뚫어버릴 정도로 매서웠다. 어깨가 빠르게 진동했다. 아읏. 간헐적인 소음이 방 안을 뚜렷하게 적셨다. 뱃속 깊숙한 부위를 짓누르는 감각에 양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고개를 든 오 회장이 다소 엄한 목소리로 윤혁을 꾸짖었다. 오윤혁. 넌 뭐하고 있어. 아비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 거야?

차마 힘든 얼굴로 고개만 숙이고 있던 윤혁의 입가에 긴 한숨을 맺혔다. 천천히 윤수와 오 회장이 있는 곳 가까이로 온 윤혁이 마지못해 바지를 벗어 내렸다. 설마, 진짜 한다고. 머릿속이 순식간이 빙글 돌았다. 긴 이명이 귓속을 채웠다. 붉어진 얼굴로 윤수의 얼굴을 쳐다보던 윤혁이 느릿하게 속옷까지 끌어 내렸다. 묵직하게 발기한 성기가 비현실적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윤수의 망막이 순식간에 윤기를 잃었다. 지금 오 회장과 하는 것도 죽을 맛인데, 저것까지 들어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윤수는 더 벌려라. 동생 넣기 편하게.”

“안 돼, 하으. 안 돼요. 안 들어가.”

“오윤혁. 빨리 네 형 구멍 좀 채워라. 제 형 동생들하고 다 하고 난 구멍이 한 개로 되겠어?”

오 회장의 딱딱한 말이 윤수의 심장을 빠르게 옥죄어왔다. 수치심으로 물든 눈가에 다시 물기가 맺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아들한테 저 얘기를 했다. 피가 섞인 형제의 구멍에 자신과 같이 성기를 넣자고 하는 게 정상일 리 없다. 빠르게 흐려져 가는 시야에 시트 위에 올라오는 윤혁이 보였다. 일단 올라오기는 했지만, 생각이 많아 힘든지 차마 넣지 못한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어서 쑤셔. 네 형이 지금 구멍 벌려대면서 기다리는 거 안 보여? 호통에 가까운 오 회장의 말에 윤수의 아랫입술이 질끈 깨물렸다. 간신히 본연의 모습을 찾은 입술에서 금방이라도 다시금 피가 묻어나올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윤혁이 좀 더 가까이로 왔다. 낮은 숨을 쉬고는 천천히 윤수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갔다. 살짝 입을 맞춘 윤혁이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미안. 오윤수.

다리 사이로 두터운 성기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완전히 오 회장의 성기가 장악하고 있는 공간에 굳이 비좁은 틈을 만들면서 또 다른 성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는 게 버거웠다. 억지로 집어넣어진 커다란 귀두를 타고 입구의 살점이 툭 찢어져갔다. 앗. 윤수의 입 밖으로 날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아귀가 쥐어짤 것처럼 시트를 삼켰다. 태어나서 한 번도 체험해 본적이 없던 고통이 온 몸을 짓눌러 왔다.

“하으, 안 돼. 안 된다고. 오윤혁, 너 제발 그만.”

“윤수야. 유난 떨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헤프게 쓰는 구멍에 두 개 들어간 게 뭐 대수롭다고 그래.”

“제발. 흐윽. 안 돼. 아파, 아파요.”

정말로 아파서 이렇게까지 울어보는 것은 처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붓한 내벽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단단한 성기가 스르르 미끄러져갔다. 순식간에 두툼해진 뱃속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윤혁의 음경은 들어갈 때마다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벽이 그야말로 통째로 터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 지경이었다.

공간이 비좁아 차마 윤혁의 것은 끝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윤수는 정신을 내려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움직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빳빳하게 안을 채운 두 개의 성기가 느릿하게 짓뭉개진 점막을 각자의 표피로 머금었다. 다리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는 게 현현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윤수의 고개가 맥없이 옆으로 젖혀졌다. 흘러내린 눈물이 턱을 타고 시트 위로 떨어졌다.

“그만, 하아. 제발, 빼줘요. 그만. 흐윽.”

“이렇게 한 번 길들여놨으니 다음에 넣을 때는 편하겠구나. 조이는 건 좋은데 너무 좁아서 그간 나도 힘들었다.”

“아버지, 흐으. 제발 그만. 흑. 그만 좀.”

무력하게 터져 나오는 윤수의 울음을 듣고는 윤혁이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윤수의 가슴께에 얼굴을 가져간 뒤 축축하게 유두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하. 반사적으로 윤수의 올라간 손이 윤혁의 어깨를 쥐었다.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풀렸다. 더 이상 안 들어올 줄 알았던 윤혁의 성기가 좀 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느릿하게. 오윤혁. 자지러지게 윤혁의 이름을 부른 윤수의 손이 그 어깨에 생체기를 낼 것처럼 손톱을 세웠다. 더운 물기가 쉼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만 울어. 더 안 넣을 게. 나직하게 말을 건넨 윤혁이 갑자기 윤수의 입술에 고개를 가져갔다. 입술까지 흘러든 눈물을 혀로 쓸어내면서 입 안의 부드러운 살을 머금었다. 꽉 채워진 내벽 때문에 뱃속이 뻐근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뒤편에서 뭐가 만족스러운지 오 회장이 픽 웃는 게 느껴졌다. 죽은 것처럼 숨만 가누던 윤수의 목덜미를 오 회장이 질척하게 혀로 훑어댔다. 어느덧 입술에서 떨어져 나온 윤혁은 이제 쇄골 쪽을 빨아대고 있었다. 아래에서 점막을 할퀴어대는 부자(夫子)의 성기, 목덜미, 쇄골. 사실상 온 몸을 이 집안 남자들에게 내줬다. 윤수는 이제 이게 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설령 지금이 꿈이라 해도 윤수는 지금의 고통을 평생 잊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암캐도 제 혈육 자지는 가려서 삼킬 거다. 최소한 너보다야 낫겠지. 무덤덤하게 중얼거린 오 회장이 윤수의 고개를 강제로 돌려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스르르 들어온 축축한 물질이 식도 근처까지 훑어댔다. 안 그래도 온 몸의 힘이 빠지기 일보 직전인데, 오 회장의 혀가 호흡까지 가로막는 탓에 숨까지 끊어질 것 같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윤혁의 어깨를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더 이상 그러고 있을 기운도 없었다. 떨어지는 손가락에 붉은 액체가 묻은 걸 보니, 결국 거기에 상처를 낸 모양이었다.

“하. 이제 그만. 아버지. 저 그만.”

“힘들었지? 원래 그런 거다. 나한테 거스르면 이렇게 되는 거야. 똑똑히 기억해라.”

흡족하게 말을 마친 오 회장이 윤수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점점이 사고가 흐려져 가는 가운데 느긋한 목소리가 윤혁을 향해 말을 건네는 게 들렸다. 윤혁이. 좀 더 제대로 넣어 봐라. 형이 네 자지에 안달 난 암캐처럼 구는 거 보고 싶으면.

윤혁의 입 밖으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좀 더 몸을 세운 채 보다 깊숙한 곳으로 제 것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하아. 윤수의 입 밖으로 커다란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점막 곳곳을 문질러대는 윤혁의 성기가 오 회장의 성기와 겹쳐 하반신의 모든 감각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맥이 빠진 지 오래인 윤수의 고개가 오 회장의 품에 꺾이며 흐드러지는 소리를 냈다. 제발, 흐윽. 그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집 안의 누가 제 소리를 듣든 말든. 그저 이 말도 안 되는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 뱉는 윤수의 얼굴을 보고는, 오 회장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맞췄다. 흐려져 가는 시야 안에 거친 숨을 내쉬면서 윤수를 내려다보는 윤혁이 있었다.

다리 사이가 순식간에 후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연이어 정액을 분출한 두 개의 성기가 스르르 빠져 나갔다. 바들바들 떨리던 윤수의 다리가 시트 밑으로 축 늘어졌다. 반쯤 숙여진 고개가 절로 시트 위에 파묻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만 가지 섬광이 머릿속을 아득하게 채웠다.

* * *

창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앞 머리카락을 간헐적으로 헤집었다. 천천히 눈을 떠 고개를 드니 맞은편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윤혁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윤수의 방이다. 기절한 몸을 윤혁이 안고 와서 눕힌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하반신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흐읏. 새 된 소리를 뱉자마자 윤혁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오윤수. 입을 다문 채 공허하게 자신의 하반신만 바라보는 윤수를 보며, 윤혁이 차마 감당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상처가 너무 심해서. 일단 약 바르고 했는데.”

“입 다물어. 개새끼야.”

“오윤수. 내가.”

“너나 오승조나. 아주 좆같은 새끼들이야. 그 귀한 핏줄 타고났으면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 갖고 놀아도 돼? 그것도 너네 가문 전통이야?”

“미안해.”

“죽어, 제발. 그게 내 소원이야.”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바닥에 내딛어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뒤편에서 윤혁이 다급하게 팔을 잡아챘다. 어딘가 절박해 보였다. 윤수의 다른 손이 밑으로 끌어내려졌다. 팔을 잡고 있는 윤혁의 손을 쥐고는 제법 거세게 힘을 줬다. 금방이라도 손톱을 파묻을 것처럼.

“놔. 오윤혁.”

“오윤수. 얘기 좀 하자.”

“놓으라고 했어.”

한 없이 공격적인 언사에 망설이던 윤혁의 손아귀가 마지못해 풀렸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윤수의 등 너머로 윤혁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시한 채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복도를 울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