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양아버지 오승조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딱히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네 형이라는 둥 그런 얘기하면, 네가 놀랄까 봐.”
눈앞에 둔 찻잔에서 잔잔한 파동이 인다. 테이블 위에서 딱, 딱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던 윤수의 머리가 맞은편의 남자를 향해 올라갔다. 마주쳐진 남자의 시선에 걱정이 묻어있다. 미안해, 윤수야. 응? 분명히 미안해하는 얼굴이 맞는데, 그 와중에 제법 여유가 묻어 있어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다. 오윤민. 이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식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타고난 것처럼 매번 침착할 수 있을까. 윤수의 메마른 얼굴이 가로저어졌다. 화난 거 아니에요. 그냥, 황당해서 그런 거니까.
그래? 그럼 형 얼굴 좀 제대로 봐줄래. 계속 고개 돌리고 있으니 화난 것 같잖아.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시선을 내린 윤수를 향해 윤민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 왔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알았어요.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다시금 고개를 들어 윤민을 똑바로 봤다. 반듯한 정수리 너머로 문학, 인문, 경제 할 것 없이 잡다한 영역의 서적으로 가득한 서재가 보였다. 여기가 이 사람 방이라고 했다. 책을 엄청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정리를 좀 해 줄게.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는, 그리고 너희 어머니가 우리하고 어떤 관계인지는 이제 알았지.”
“네. 그러니까 오승조, 아니 오 회장님이 어머니하고 결혼 생활하면서 이 집안 형제들을 다 낳았다는 거잖아요. 저는 몰랐지만.”
“맞아. 어머니하고 우리 아버지는 아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어. 거의 스무 살이 되자마자 했으니까. 그러고 나서 첫째로 윤석이 형을 낳고. 둘째로 나를 낳았어.”
“윤석이 형이요?”
“응, 너 아까 거실에서 본 정장입고 키 큰 남자 기억나지.”
“알아요. 집에도 그 사람 차타고 왔는데.”
“그랬어?”
윤민의 입 밖으로 짧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로 손가락에 걸려 있는 펜을 빙글빙글 돌렸다. 빠르게 회전하는 새까만 끄트머리를 보고 있으니 머릿속이 같은 모양새로 어지러워지는 것만 같다. 딱. 꽤나 긴 시간 돌아가던 펜이 테이블 위에 가볍게 떨어졌다. 윤수를 시야에 담은 눈이 친절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오윤석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아. 질이 아주 나쁘니까.”
“그래요? 좀 무뚝뚝하긴 했지만.”
“아버지한테 회사 물려받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인간이거든. 일단 그 회사 전무이사 자리는 꿰찼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잖아. 너라도 방해가 된다면 가만히 안 둘 거야.”
“저는 별로 방해할 생각이 없는데요.”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다. 아니, 그 뿐 아니라 이 집에 얽힌 어떤 문제에도 윤수는 개입할 의사가 없다. 애초에 윤수가 이 집에 온 것은 그저 어머니의 유산 문제를 해결하고 오 회장과 자신과의 관계를 알고 싶어서였다. 설마 이 집에 자신의 형제가 네 명이나 있을 줄은 몰랐지만. 턱을 괸 채 나긋하게 윤수를 지켜보는 윤민을 봤다. 저 사람이 내 형제다. 비록 절반이지만, 피가 섞인 사람이다. 테이블에 올라가있던 손가락이 상흔이라도 남길 것처럼 길게 지문을 남기며 가장자리를 벗어났다. 아무래도 와 닿지가 않는다.
“어쨌든 오윤석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나까지 낳은 다음에 어머니가 몇 년간 아버지랑 별거를 한 일이 있었어. 그때 다른 남자를 만나서 너를 낳은 거지. 그런데 혼인 신고를 한 사이는 아니었어. 애초에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하고 여전히 혼인신고가 돼 있던 상태였으니까. 너를 호적에 올려야 하는 데, 마땅한 데가 없는 거야. 그런 너를 우리 아버지가 우리 집 호적에 올려준 거고.”
“핏줄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은 데도요.”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말로 사랑했거든.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어머니가 낳았다면 무조건 제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거겠지.”
윤수는 그제야 수긍했다. 하나같이 자신과 비슷한 이 집 형제들의 이름에 대해서. 처음부터 호적상 이 집 사람이었다. 오 회장이 그렇게 만들었고, 어머니가 그것에 동의했다.
“네가 태어나고 난 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재결합을 했고, 어머니는 어린 너를 데리고 이 집으로 들어오게 돼.”
“제가 여기 살았었다고요.”
“응. 나랑 윤석이 형, 윤혁이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넌 기억 못하겠지만.”
역시 처음 듣는 얘기다. 오래된 도서관을 헤집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을 반추해봤다. 수많은 기록을 꺼내 봤지만 그런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아주 어릴 때라고 하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다. 보통은 대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이후에 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아무리 돌이켜도 뚜렷해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을 원망하다가, 화살을 결국 어머니에게 돌렸다. 대체, 왜 어머니는 이런 얘기를 하나도 해주지 않은 걸까.
“네가 이 집에 오고 나서 차례로 낳은 게 윤혁이하고 윤성이. 누군지는 대충 알겠지? 키 큰 애가 윤혁이고, 교복 입은 애가 윤성이야. 윤성이가 막내.”
“저는 여기에 언제까지 있었어요?”
“윤성이 낳고 얼마 안 돼서 너 데리고 다시 나갔어. 법적으로 완전히 이혼 절차까지 마친 다음에. 그때가 아버지하고 어머니 갈등이 최고조였을 때라고 하는데, 정확한 내용이야 나는 모르지.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집에 찾아오지 않았고.”
그랬군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테이블 위에 남은 기다란 지문을 응시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어머니가 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오 회장과 살면서 낳은 다섯 명의 형제. 그 중 유일하게 오 회장의 피가 섞이지 않은 윤수. 긴 기간 별거했다가 어찌어찌 재결합을 한 후에도 결국 나갔다는 건, 그만큼 오 회장과 어머니를 둘러 싼 모종의 갈등이 컸다는 거다. 한 편으로는 부정하고 싶은 과거였을 수도 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감정은 결국 말미에 무뎌졌다. 아니다, 그래도 정도껏이어야지. 어떻게 저런 걸 20년이 넘게 숨길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안타까움이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얽혀 윤수의 뇌리를 엄습했다. 감정을 규정하는 것이 모래밭에 숨은 열쇠를 찾는 일처럼 지난하다.
윤수야. 반쯤 눈빛이 시들어 있는 윤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불현듯 윤민이 몸을 일으켰다. 다가오는 얼굴은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익숙한 것은 처음 봤을 때부터 저 얼굴이 어딘가 봤던 것처럼 느껴져서이고, 낯선 것은 지금의 표정이 사뭇 차가운 온도를 지니고 있어서다. 눈앞까지 다가온 윤민이 윤수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코끝에 아로마 계열의 향수 냄새가 닿는다. 단 침이 고이게 하는 향이다.
“너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어렸을 때 형이 너 굉장히 많이 챙겨 줬어.”
“죄송해요. 제가 정말 기억이 안 나서.”
말을 내뱉고 보니 죄송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안 나는 걸 안 난다고 하는 게 애초에 죄는 아니니까. 그런데도 거부할 수 없는 죄책감이 심장을 억누르는 것만 같다. 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마는 윤수의 앞에서 윤민이 옅게 한숨을 쉬었다. 이내 살짝 윤수의 고개를 위로 들게 하고는 입을 맞췄다. 순간적으로 찾아든 부드러운 감촉에 윤수의 어깨가 곤두세워졌다. 짧은 입맞춤이었다. 입술이 떨어져 나간 표피에 희미한 아로마 향이 남았다.
진짜 기억 안 나는구나. 바로 닿을 듯한 거리에서 윤수의 얼굴을 읽으며 윤민이 사뭇 서운한 듯 말했다. 뭐가요. 방금 일어난 일이 쉽게 와 닿지 않아 절로 긴장 어린 반문이 튀어나왔다. 어렸을 때,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많이 했었거든. 말을 마친 윤민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어렸을 때 이런 걸 했다고. 하기야 어릴 때니까. 그렇다 쳐도 성인이 돼서 하는 건 좀 찝찝한 거 아닌가. 윤수는 손을 들어 입술을 훔치려다가 그만뒀다. 남은 건 향뿐인 입맞춤인데, 이러는 것 자체가 과잉반응 같았다.
“너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우리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네 얘기를 꾸준하게 듣고 자랐어. 그래서 네가 이 집에 온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커. 얘기로만 듣던 형제가 진짜 우리한테 찾아온 거니까.”
정말 그럴까. 윤수는 그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윤민이나 윤성은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윤석이나 윤혁은 사뭇 태도가 친절하지 않았다. 특히 윤혁은 완전히 자신을 이방인 취급하는 것처럼 차갑게 대했고. 이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윤수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 우악스럽게 밀어 넣어지는 새로운 기록들은 빳빳한 종이처럼 이질적인 질감을 지니고 있다. 외면하려면 외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저 사람이다. 따스한 기류를 타고 전해지는 언어에는 무거운 추가 달려 있어 거부하는 걸 어렵게 만든다. 화법, 태도, 시선. 완벽하게 사람의 감정을 휘어잡는 전달방식은 오래 전부터 다져진 것처럼 능숙하기 그지없다.
정처 없이 테이블 위를 헤매던 손가락이 앞에 놓인 찻잔에 닿았다. 은은한 허브 향을 풍기는 도자기 잔을 다소 떨리는 손가락으로 쥔 채 입가로 가져가 목을 축였다. 식도를 타고 흘러드는 미지근한 액체에는 다양한 풀 향이 섞여 있다. 대자연에 흩어진 수풀을 한 움큼 뽑아 통째로 삼킨 듯한 맛이다. 윤민이 나직하게 물어왔다. 향 좋지.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앞에 있으니까 마셨다. 윤민이 좋냐고 물어오니, 또 좋은 것도 같다. 쥐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딱딱한 표면에 닿는 도자기 소리가 유독 커다랗게 방 안을 울렸다.
문득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건 윤성이다. 들떠 있는 얼굴이 천진한 아이 같다. 부리나케 다가온 윤성이 윤수의 몸을 꼭 끌어안고는 기대감에 찬 얼굴을 들었다.
“형, 짐 거의 다 옮겼어요. 형 방으로 안내해 줄게요.”
뭐라고. 순식간에 머릿속이 공허해졌다. 본가의 짐을 이쪽으로 옮겼다는 건가. 아직 동의한 적도 없는데. 뭣보다,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킨 윤수가 윤성의 팔을 쥐었다. 잠깐만, 말도 안 돼. 난 아직. 턱 끝을 떨어가며 뭐라도 말하려는 윤수의 어깨에 윤민의 손이 닿았다. 윤수야. 따스한 손길이 정수리 쪽으로 올라왔다. 머리끝에서 목덜미까지 소리 없이 쓸어내리는 감각에 모근이 곤두서는 것만 같다. 윤수의 목덜미가 짧게 미동했다.
“네 어머니면서도 우리 어머니 유언이잖아. 지켜야지.”
턱 끝의 떨림이 멈췄다. 저 안온한 음성으로 어머니를 들먹이고 나왔다. 어머니로부터 직접 들은 것도 아닌데, 윤수는 순간적으로 그런 적이 있었다는 착각이라도 할 뻔 했다. 순식간에 입이 다물어졌다. 윤수의 목덜미에 머물러 있던 윤민의 손끝이 느릿하게 떨어져 나갔다.
4.
윤수의 방은 이 층의 가장 끝 방이었다. 옆방은 윤성의 방이고, 그 다음은 윤민의 방이었다. 윤민의 방 옆에 윤혁의 방이 있고, 그 다음이 윤석의 방이지만 사실상 윤석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전 결혼해서 출가를 한 상태라고 들었다. 현재 사는 곳은 인근의 고층 아파트였다.
낮은 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누웠다. 한 손엔 노트, 한 손에는 만년필을 들었다. 허공에 쥔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려본다. 아까 윤민의 손끝에서 번져나가던 검은 펜대의 잔상이 떠오른다.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따라 머릿속이 자욱하게 흐려진다.
빈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적어 봤다. 오윤석, 30세. 오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의 전무. 목표는 회사를 승계 받는 것. 윤수에 대한 태도는. 거기까지 적고난 글자의 끄트머리에서 검은 잉크가 점점이 흩어진다. 좀 딱딱하긴 했지만 윤수를 경계하진 않았다. 할 말이 많아 보였는데, 하지는 않았다. 생각이 많은 타입인가. 거기서 마무리한 문장이 다른 단락으로 넘어갔다.
오윤민, 28세. 빠른 년생이니까 29세들하고 친구일 거다. 직업은 변호사. 아버지 잘 만나서 연수원 떼자마자 제 법무법인을 차렸다. 동시에 윤수의 유언장 관리인. 윤수를 향한 태도는, 확실히 상냥한 편인데. 형제들 중에서 가장 거부감이 들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쩐지. 툭, 툭. 뒤집은 만년필이 오윤민의 이름을 두드리다가 떨어져 나갔다. 모르겠다. 이 사람은.
그 다음에 윤수를 낳았고, 다음이 오윤혁. 22세. 대학생. 대학 농구선수. 그래서 그렇게 키가 컸나. 확실히 이쪽은 윤수를 달가워하지 않는 게 티가 났다. 이유가 있는 건가. 딱히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상한 놈이다. 윤혁의 이름 옆에 검은 동그라미를 빙글빙글 그어대다가 단락을 넘겼다.
마지막으로 오윤성. 19세. 과학고 재학 중. 얘도 꽤 친절한 편이었지. 너무 친절해서 부담될 지경이지만. 방긋방긋 웃으면서 살갑게 대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다만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연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연기라고 규정짓기에는 태도에 스며있는 기묘한 애정이 신경 쓰이는 정도.
네 명에 대해 차례로 적고 나니,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남자 형제는 이런 건가. 도통 윤수와 닮은 점이 없는 데다가 속내들이 워낙 불투명하다. 어렵다, 형제는. 들고 있던 펜과 노트를 책상 위에 내던지듯 올려버렸다. 밑으로 내려온 이불을 어깨선까지 끌어 올리고는 천장을 봤다. 지나치게 조도가 높은 조명 때문에 제대로 올려다보는 게 힘들다. 무작정 눈을 감고 나니 물에 젖은 것처럼 온몸이 무기력해졌다. 아까 짧긴 해도 오랜만에 푹 잤었는데, 아직도 한참은 잠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파르르 흘러내리는 눈꺼풀을 억지로 끌어올리고는 몸을 뒤집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다. 반쯤 커튼이 치워진 틈 사이에 커다란 고목나무가 보였다. 작은 산맥을 연상케 하는 실루엣이 한밤중에도 제법 오롯하다. 저 정도로 크려면 몇십 년을 살았으려나. 몇백 년일 지도 모르지.
문득 윤수의 방문이 가볍게 두드려졌다. 들어오세요. 몸을 일으킨 윤수가 입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까 오 회장의 옆에 비서처럼 붙어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수를 말없이 쳐다보더니, 입력된 문장을 뱉는 기계처럼 말을 꺼냈다. 회장님께서 방으로 오시랍니다.
늦었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윤수의 말에 비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자정도 넘은 지가 꽤 됐는데, 굳이 지금 찾을 이유가 있나. 윤수가 뭐라고 생각하든 비서는 개의치 않아 하는 모양새였다. 방 바깥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윤수를 재촉하듯 볼 뿐이다. 마지못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비서의 뒤를 따라 걷는 길이 꽤 길었다. 복도고 거실이고 아무도 없었다. 아주 최소한의 조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불이 꺼져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여직원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보인다. 완전하게 증발해 소금만 남은 바닷가처럼 고즈넉한 공허함이 발목을 붙들었다.
“여기 직원 분들은 다 퇴근하셨나요?”
“저 여기 있잖습니까.”
“아니. 아까 여자분들 많으셨는데, 하나도 안 보여서.”
꼬치꼬치 캐묻는 윤수의 말에 비서가 피곤하다는 얼굴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투의 답변이 돌아왔다. 여직원들은 오후 10시가 되면 이곳에서 나갑니다. 이 집은 늦은 밤에 여성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는 윤수를 뒤에 둔 채, 비서가 2층의 가장 왼편에 있는 커다란 문을 두드렸다. 들어 와. 안쪽에서 무게감 있는 성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가 손잡이를 쥔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반쯤 문을 젖히고는 윤수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복도 쪽으로 휙 몸을 돌리는 비서를 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 긴 여운을 남겼다. 윤민의 방이나 윤수의 방과 비교하면 두 배는 될 듯한 넓은 방이다. 창가 앞 장식장에는 고급스러운 술병과 조각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고, 한 쪽 벽면에는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본 일이 있는 유명한 그림 한 폭이 드리워져 있다.
내가 너무 늦게 불러냈구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에는 오 회장이 있다. 어, 아닙니다. 윤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늦게 불러낸 건 사실이지만, 자신보다 어른인 사람에게 굳이 불쾌함을 표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가운만 걸친 채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오 회장은 아무리 봐도 쉰 살보다 훨씬 더 젊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본다면 40세 안팎 정도. 확실히 돈 있는 사람이 노화도 더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쪽으로 와 보렴, 윤수야.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오 회장이 차분하게 윤수의 이름을 불렀다. 오 회장 쪽으로 다가가 그가 눈짓으로 지시한 대로 침대 옆자리에 앉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입체적인 이목구비가 더욱 돋보인다. 미중년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겠지. 생각해 보면 이 집안의 형제들은 서로 닮은 구석은 없어도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제법 올곧다는 공통점이 있다. 취향이 갈릴 수는 있어도 한눈에 보고 잘 생겼다고 바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외형을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 사람의 유전자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유전자보다 부계 혈통 유전자가 더 강했던 건가.
와 줘서 고맙다. 나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오 회장이 지긋이 윤수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유언장에 적혀 있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 사람이 고마워 할 이유가 있나. 빤히 오 회장의 얼굴만 마주보고 있는 윤수의 귓가에 오 회장의 손가락이 찾아 들었다. 매끄럽게 귓불과 귓바퀴가 있는 쪽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사뭇 질척하다. 어색한 느낌에 윤수가 살짝 고개를 뒤로 빼려는데, 불현듯 윤수의 뒷덜미를 잡은 오 회장이 윤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묻었다.
목덜미가 순식간에 경직됐다. 입술을 맞부딪히는 느낌이 생소하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단지 그 정도의 입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윤민이 했던 것처럼. 그것과 다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축축한 혀가 파고들었다. 아. 입 밖으로 새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침이 고인 입 안 이곳저곳을 처음 만난 타인의 것이 세밀하게 훑어대기 시작했다. 더 깊숙한 곳으로 혀가 파고들 때마다 입 안에 머금은 더운 증기 때문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윤수는 오 회장과 결혼했던 여자의 아들이었다. 의도가 어찌 됐든 그런 대상에게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 회장의 혀가 윤수의 혀를 밑으로 꾹 눌러왔을 때, 윤수는 반사적으로 오 회장의 어깨를 밀어냈다. 입가를 타고 끈적한 타액이 떨어져 내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미친 새끼가.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다소 분기를 담은 얼굴로 윤수가 딱딱하게 말을 쏘아댔다. 오 회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윤수의 얼굴을 눈으로 쓸면서 말했다. 아직 네가 상황을 모르는구나. 내가 네 상황이었으면, 지금 너처럼 안 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의중을 알 수 없는 오 회장의 말에 괜히 더 화가 치밀었다. 방금 한 건 명백한 성추행이었다. 그래 놓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지껄이고 있다. 보다 날 선 윤수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불쾌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 회장의 얼굴이 사르르 누그러졌다.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좋은 얼굴이야, 윤수야. 네 어머니가 나를 볼 때도 그런 눈이었다.”
어머니라는 세 글자에 윤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다. 윤수가 옛 아내의 아들이라는 걸 인지하면서 이딴 짓을 했다는 거다. 뭔가가 잘못돼도 한 참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사람과는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윤수의 발걸음이 입구 쪽을 향했다. 나가야 한다. 유산 문제야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하면 그만이다. 자신에게 이런 짓거리를 하는 사람과 한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 입구의 손잡이를 쥔 윤수의 손이 분연히 돌아갔다. 막 문을 열어젖히려는 찰나, 뒤쪽으로 다가온 오 회장이 성난 손등을 힘 있게 잡았다.
진짜 아무것도 못 들었구나. 윤석이한테든, 윤민이한테든. 네 친아버지 얘기. 뒤쪽에서 들려온 오 회장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속 깊은 곳까지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친아버지가 갑자기 왜. 경직된 윤수의 어깨를 쥔 오 회장이 강제로 몸을 제 쪽을 향해 돌렸다. 무표정으로 윤수를 내려다보더니 손을 들어 볼을 살짝 매만졌다. 값비싼 조형물을 다루는 수집가처럼 느릿하고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손길이 윤수의 입가에 닿았을 때, 윤수의 고개가 빠르게 옆으로 돌아갔다. 오 회장 쪽을 완전히 외면한 윤수의 입 밖으로 다소 공격적인 언어가 터져 나왔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갑자기 왜요.”
“네 어머니가 그렇게 얘기하든? 하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건 맞지만.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그렇게 얘기했구나. 네 어머니답다.”
또 처음 듣는 얘기다. 오 회장을 향한 윤수의 동공이 희미하게 떨렸다. 어머니에게 비밀이 많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이 집에 오기 전부터 어렴풋하게 느끼던 사실이었고, 이 집에 옴으로써 그 추정이 확고해졌다. 전 남편의 존재, 윤수와 피를 나눈 네 명의 동복형제, 이 집에 머물렀던 윤수의 과거, 20억 원이라는 거액의 유산.
아버지의 생사는 보다 민감한 문제다. 윤수의 친아버지였다. 당연히 윤수 입장에서는 제대로 알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물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얘기는 했는데, 정작 기일에 맞춰서 제사를 지내거나 묘지에 간 일은 없다. 어머니는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그랬다고만 했다.
윤수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지극히 희미하다. 대략 유치원에 다니게 됐을 무렵부터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됐다.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 씨 성을 지녔다는 것 말고는 이름조차 흐릿하다. 집에는 아버지와 관련한 기록이 전무했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었다. 어머니는 굳이 기억하기 싫어 다 처분했다고만 얘기했다. 충분히 이상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수긍한 건, 정말로 기억하기 싫어하는 듯한 어머니의 태도 때문이었다.
네 아버지, 내가 보살피고 있다. 윤수를 보는 오 회장의 동공이 밤의 바다를 품은 것처럼 새까맣다. 그 망막에 새겨진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게 어쩐지 힘들었다. 너무나도 현현해서 스스로가 그 작은 공간에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네 아버지는 네가 어릴 적에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어. 아버지가 병원 신세를 지고 나서부터 계속 내가 챙겨줘 왔고. 병원비, 간병비, 이외에 드는 모든 유지비용. 한 달에 천만 원 가까이 드는 돈이니 네 어머니 입장에서는 쉽게 감당하지 못 했을 거다. 내가 아니었으면, 네 아버지야 진작 죽었겠지.”
입 끝에서 떨어지는 언어가 건조하기 그지없다. 신문기사를 읽는 양 무감각하게 읊어대는 목소리 때문에 더욱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든 풀처럼 고개를 숙인 윤수의 턱 밑으로 오 회장의 손이 들어왔다. 윤수의 고개를 억지로 들게 해 시선을 맞추고는 오 회장이 무게감 있게 입술을 뗐다.
“윤수야. 생각 잘 해야 한다. 지금 네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나한테 하는지에 따라서 네 아버지의 당장 다음 달이 달라져.”
오 회장의 손가락이 닿은 턱 끝이 바르르 떨리다가 멎었다. 생각 잘 해야 한다고. 여러 개로 분열된 같은 문장이 머릿속에 반복해 상기된다. 묵직한 두통이 뒤통수를 억눌러왔다. 저런 얘기를 저렇게 여유 있게 건네는 오 회장은 마치 자신과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다. 사람의 목숨을 쥐고 협박하는 것이나 진배없는데, 오 회장에게는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모양이다.
윤수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네 아버지의 숨 정도는 쉽게 끊어뜨릴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니. 오 회장의 협박은 둥근 테두리처럼 단조롭다. 강압적이거나 날카롭지 않다. 그래서 더욱 윤수를 조급하게 만든다. 아버지와 관련한 이 사람의 정보는 진위 여부를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고하다. 왜 어머니는 그런 걸 얘기해주지 않은 걸까. 윤수는 다시금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쓸모없는 네 아버지 대신 내가 너희 모자에게 많은 것들을 해줬다는 걸 잊지 마라. 너희 모자는 내 돈으로 입고, 먹고, 살았어. 그런 의미에서 이 집에서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다. 나 역시 너를 아들이라 생각하면서 대할 거고. 말을 마친 오 회장이 윤수의 어깨를 느슨하게 끌어안았다. 어깨에 머물러 있던 손길이 느릿하게 몸을 쓸어내리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옷 너머의 살결이 희미하게 떨렸다. 이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모든 것이 와 닿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누구와 있고, 무슨 말을 들었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꿈같다.
먹이를 찍어 누르는 뱀처럼 오 회장의 입술이 윤수의 목덜미를 덮쳤다. 약한 피부를 깨물기라도 할 것처럼 혀와 입술, 이빨이 잘근잘근 윤수를 씹어 댔다. 온몸의 핏기가 그대로 가시는 것만 같았다. 소리 없이 찾아든 오 회장의 손이 윤수의 바지춤을 붙든다. 버클이 풀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윤수의 눈이 번뜩 뜨였다.
“싫.”
“말 안 들을 거니.”
눈앞에서 보이는 오 회장의 사나운 시선이 윤수를 잡아 삼킬 것처럼 응시한다. 밑으로 늘어져 있던 윤수의 팔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이 사람은 지금 진심이다.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싫다고 하고 이 집에서 도망쳐 버리면 윤수 입장에서야 끝이다. 그런데,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떨까. 마음만 먹으면 네 아버지 숨 정도는 쉽게 끊어뜨릴 수 있다. 오 회장이 내뱉었던 문장이 먼지처럼 윤수의 머릿속에 쌓인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입 밖으로 자신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럼 침대로 걸어 가. 네 스스로. 윤수의 귓바퀴를 짓눌러오는 명령이 단단한 바위와 같다. 들려진 시선이 구석에 자리 잡은 커다란 사이즈의 흰색 시트 표면에 닿았다. 가는 건 어렵지 않다. 가고 나서가 문제다. 침대로 가라는 말에 숨겨진 의미를 모를 정도로 윤수는 어리지 않았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게 정말 윤수가 생각하는 그것이라면, 윤수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다른 거 할게요. 뭐라도 좋으니까. 이런 건, 제가 못 해요. 물기를 머금은 윤수의 말에 오 회장이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윤수야,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보통 때 같으면 호의가 섞인 웃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건 경고였다.
“침대 위로 가서 벗어. 당장.”
아들처럼 대하겠다는 오 회장의 말이 머릿속에서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아들처럼 생각하는 사람과 이딴 짓을 하겠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저 사람이 윤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확실한 것은, 윤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바르르 떨리던 다리에서 근육이 소실된 것처럼 문득 힘이 풀렸다.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은 윤수를 내려다보던 오 회장이 갑자기 팔을 움켜잡았다. 맥 빠진 몸이 오 회장의 손아귀에 잡혀 질질 끌려갔다. 멈춰보려고 해도 발목에 좀처럼 기력이 들지 않았다. 입구에서 침대로 이어지는 짧은 거리가 무한대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윤수가 막 손을 뻗으려는 순간, 완전히 침대 앞까지 윤수를 끌고 온 오 회장이 시트 위에 몸을 강제로 눕혔다. 긴 숨을 쉰 오 회장이 차갑게 명령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해줬다. 벗는 건 스스로 해.
떨리는 손을 가누던 윤수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피부에 닿자마자 손가락이 타들어갈 것처럼 따갑다. 이 사람에게 있어 자신이 시킨 일을 윤수가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윤수를 이 시간에 자신의 방에 불렀을 때부터, 그 사실은 명명백백했다. 왜 윤수에게 그런 일을 하려 하는지 윤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는 건, 윤수의 생김새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오 회장 역시 윤수가 어머니와 닮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아까 윤석이나 윤혁이 얘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이 집 남자들 모두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
제안은 건네졌고,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거부하려 할수록 오 회장의 화를 돋울 뿐이다. 망설이던 손이 바지 버클이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밑까지 느릿하게 끌어 내렸다. 옷가지가 벗겨져 내릴 때마다 서서히 드러나는 하얀 다리가 남의 것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바지를 벗어 내린 뒤 위에 입고 있던 티셔츠에 손을 가져갔을 때, 오 회장이 한 마디 했다. 속옷도.
마른 침을 삼키며 오 회장을 한 번 본 윤수가 입고 있던 속옷을 내려다 봤다. 남의 앞에서 마지막으로 알몸을 보인 기억이 까마득하다. 고등학교 사귀었던 여자친구, 신입생 때 사귀었던 두 번째 여자친구. 스물두 살 때 공익으로 입대하기 전 짧게 있었던 훈련소. 그리고는 몇 년간 없었다. 수년 만에 알몸을 모이는 대상이 오늘 처음 본 양아버지가 된 남자. 어머니의 전 남편. 비현실적이다.
천천히 끌어내린 속옷의 위편에 긴장한 성기가 드러났다. 최대한 보이지 않게끔 앞쪽에 팔을 대 가리고 있었지만, 그 사이를 꿰뚫는 것처럼 집요하게 다가오는 오 회장의 시선 때문에 자꾸만 얼굴이 붉어졌다. 걷어낸 속옷을 침대 구석에 두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끌어 올렸다. 완연한 맨몸에 서늘한 공기가 녹아드는 것만 같다. 이 집, 원래 이렇게 추웠나.
한참이나 벗은 몸을 내려다보던 오 회장이 윤수의 다리를 매끄럽게 쓸어내리면서 맞은편에 몸을 앉혔다. 흡족한 얼굴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상한 일이지. 네 어머니와는 성별도 다른데, 몸까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고. 네 나잇대 남자애치고 몸집도 작아서, 정말 네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놈의 어머니 얘기 좀 그만 했으면 싶었다. 들을 때마다 죽은 어머니에게 죄라도 짓는 것 같아 온몸이 저릿했다. 차마 오 회장을 쳐다보지 못하고 어긋나는 윤수의 얼굴을 오 회장의 손이 바로 잡았다. 다시 윤수의 입술에 제 것을 묻으면서, 윤수의 어깨를 눌러 침대 위에 제대로 눕혔다. 아까보다 본격적으로 입 안을 짓눌러대는 오 회장의 혀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윤수의 귓가에 막 입술을 떼어낸 오 회장의 나직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지금부터 싫다는 말은 일체 하지 말아라. 알았지.
싫다고 하면,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가로채 와서 목에 칼이라도 들이댈 셈인가. 말도 안 되는 망상이지만 막상 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만 같다. 이 사람은 진짜 할 것도 같아서. 불안정하게 오 회장을 쳐다보는 윤수의 다리 사이에 오 회장의 손이 스며들었다. 허벅지 안쪽을 눌러대는 손길이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벌레처럼 불쾌했다.
벌려야지, 윤수야. 다정하게 건네 오는 오 회장의 언어가 족쇄처럼 윤수의 목덜미에 걸렸다. 떨림이 심해진 허벅지가 한동안 위태롭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마지못해 벌어졌다. 각도가 넓어질 때마다 오 회장의 입가에 맺힌 호가 짙어져갔다. 얼마나 벌려야 할지를 몰라 적당히 틈을 만들고는 고개를 숙였다.
막 제대로 된 숨을 가눴을 무렵, 오 회장의 손이 벌어진 허벅지를 위쪽으로 들췄다. 화들짝 놀란 윤수의 허리가 뒤편으로 밀어졌다. 그 사이에 완전히 윤수의 양 다리를 어깨 위에 걸친 오 회장이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악. 입 밖으로 저도 모르게 날 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번도 뭔가를 넣어본 일이 없는 구멍이었다. 조붓한 공간에 찾아든 불청객에 온 점막이 무너질 것처럼 고통스럽게 반응했다.
처음이구나. 그래야지. 네 어머니도 내가 처음이었다. 점점 더 일그러지는 윤수의 얼굴에도 오 회장은 개의치 않고 보다 깊숙하게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손가락에 뭔가를 묻혔던 모양이다. 들어오는 손가락이 꽤나 질척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아픔에 몸 구석구석이 갈가리 찢기는 것만 같다. 윤수의 다급한 손이 오 회장의 팔을 쥐었다.
“아앗, 잠깐만요.”
“마음에 들지? 그럴 줄 알았다.”
즐거운 듯 웃어 보이는 오 회장의 얼굴 때문에 어금니가 사납게 깨물렸다.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이 온몸을 에워쌌다. 또 하나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아까보다 고통이 두터워진다. 내장을 긁어낼 것처럼 휘젓는 느낌에 곳곳의 세포가 터져 나가는 것만 같다. 살짝 젖혀진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 손가락이 더 늘어난다. 세 개, 그리고 네 개.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눈가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던 물방물의 부피가 커졌다.
네 개의 손가락이 윤수를 조롱하는 것처럼 안쪽을 쑤셔댔다. 점막 곳곳에 끈적한 액체가 맺혔다. 언뜻 보이는 오 회장의 얼굴에 만족감이 만연해 있다. 저 사람은 이런 게 좋은 거다. 단지 윤수가 어머니를 닮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윤수를 남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건반을 치는 것처럼 점막을 어루만지는 손가락에 목구멍이 턱턱 막혀 왔다.
손가락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시험해 볼 심산인지, 엄지와 검지가 보다 깊숙하게 안쪽에 박혔다. 자신도 확인해 본 적이 없는 곳을 무작정 들여다보는 타인의 손길에 입 밖으로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아픔과 수치심이 하나의 것처럼 둘둘 말렸다. 도무지 버틸 수가 없다. 달달 떨리는 손을 들어 애원하듯 오 회장의 팔을 거세게 잡았다. 물기에 젖은 시야가 흐릿하다. 우는 걸 보이는 건 싫지만, 그것까지 계산할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흐읏, 제발. 그만 하세요. 그만.”
“잘 참는구나, 착해라.”
눈물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일그러져 오 회장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안개처럼 희뿌연 망막 너머로 오 회장이 윤수의 볼을 향해 고개를 끌어내리는 게 보였다. 짧고 더운 입맞춤이 찾아드는 동시에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공허함에 윤수의 목덜미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한동안 어루만지던 오 회장이 가운을 벗었다. 얼핏 보이는 몸은 그 나잇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하다. 윤수의 다리를 다시금 벌린 채 하반신을 갖다 대던 오 회장이 윤수의 귓가에 속삭였다. 승조 씨, 라고 불러봐. 윤수야. 윤수의 눈꺼풀이 화들짝 들렸다.
“그래야 나도 너랑 하는 기분이 들 거 아니야. 세영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또렷하게 날아드는 어머니의 이름. 윤수의 눈가에서 달구어진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정상이 아니다, 이 사람. 완전히 윤수를 어머니와 동일시하며 보고 있다. 다잡고 있던 이성의 줄기가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회의감에 젖은 양 다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정말로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행위를 오 회장은 용인하지 않았다. 어림도 없다는 투로 다시금 다리를 벌리게 한 오 회장이 엉덩이 사이로 두터운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고통에 절로 커다란 소음이 터져 나왔다.
“안 돼요, 제발. 그거는 안, 으읏.”
한 번도 허락해 본 적이 없던 공간을 처음 만난 남자의 성기가 꿰뚫었다. 빠르게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이물감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해본 적도 없고,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일이다. 계속해서 움츠러드는 윤수의 내벽이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팽창한 성기가 주름을 삼켜댔다. 아픔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되는 것만 같다. 머릿속에서 점점이 섬광이 터진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허벅지의 힘이 자꾸만 달렸다.
“아파. 아앗, 죽을 것 같, 흐으. 아버지. 아.”
“안이 네 어머니처럼 조이는구나. 정말 마음에 들어.”
하염없이 밀어 넣어지는 발기한 성기는 제 암컷을 취하는 것처럼 집요하다. 달뜬 숨을 뱉은 오 회장의 손이 눈물에 젖어 있는 윤수의 귓가를 매만졌다. 미끄러지듯 귓속으로 파고드는 엄지손가락이 윤수의 몸에 삽입된 또 다른 성기처럼 다가왔다. 목덜미가 아릿하게 떨렸다. 윤수의 내벽은 처음 접하는 이물질을 당연히 허용하지 않았다. 넓어진 공간만큼 수축되는 움직임은 본능에 가까웠다. 오 회장은 그 저항을 즐기고 있었다. 차단하기에 급급한 윤수의 치부를 유린하는 것처럼 성기를 내벽 이곳저곳에 문질러댔다. 그 움직임이 기도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흐읍. 반쯤 막힌 목구멍 틈으로 절박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작 너는 데려올걸 그랬다. 네 고집스러운 어머니는 아니었어도. 나른하게 말을 뱉은 오 회장이 윤수의 입술을 덮쳐왔다. 틀어막다시피 한 채 입 안의 물기를 통째로 삼켜낼 것처럼 혀를 밀어 넣었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는 완전히 자리 잡은 오 회장의 것이 쉴 새 없이 윤수의 안쪽을 찔러 왔다. 한 치의 점막도 남기지 않고 모두 영역표시를 하겠다는 수컷마냥 광기어린 삽입이었다. 본능적으로 허벅지가 위축될 때마다 힘 있는 손길이 다리를 벌려 댔다. 처음부터 제 것이었던 여자를 취하는 것처럼 맹목적인 소유욕이 윤수의 오감을 관통했다. 어머니와 있을 때나 했을 법한 짓을 윤수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윤수의 아랫입술이 질끈 깨물렸다.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삼키는구나. 그래, 아버지 자지니까 그렇게 해야지.”
안쪽을 후벼대는 귀두의 끄트머리에서 끈적한 액체가 터져 나왔다. 주름 잡힌 표피가 여린 점막을 스칠 때마다 감길 것처럼 내려간 윤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다리 틈으로 질척이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구멍 틈으로 점액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제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반신을 점령한 아픔이 사라진 끝에는 수치심만 남았다. 여성의 생식기처럼 오 회장의 것을 삼켜대는 자신의 구멍이 치가 떨릴 정도로 저주스러웠다. 길게 눈물을 떨어뜨리는 윤수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름 불러 보렴. 승조 씨, 라고. 네 어머니가 불렀던 것처럼.”
오 회장의 팔을 쥐고 있던 윤수의 손아귀가 맥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불러보라고 했다. 오 회장의 이름을. 정말 자신을 어머니랑 똑같이 보고 있는 거다. 그건 싫었다. 원치 않는 섹스를 하는 것도 싫은데, 어머니 흉내를 내는 건 더 싫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나락까지 떨어뜨리는 기분이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런 걸 할 수는 없었다. 젖어 있는 입술 틈으로 힘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못 해요.
윤수야. 분기 어린 오 회장의 목소리가 윤수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안쪽으로 치닫는 성기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꼿꼿하게 고개를 든 귀두가 내벽을 찢어낼 것처럼 찔러댔다. 머리끝까지 관통 당하는 듯한 이물감에 윤수의 목덜미가 뒤로 깊숙이 젖혀졌다. 점막 곳곳에 흉기로 생채기를 내는 것 마냥 포악한 삽입이었다. 정말 내벽이 찢겨서 피라도 흐를까봐 윤수는 불현듯 두려워졌다.
“아. 아앗, 아버지. 그렇게, 그렇게 하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려운 것도 아니잖니, 응?”
사정없이 점막에 내리꽂히는 오 회장의 성기에 점점이 사고가 흐려진다. 계속하다간 정말 그 단단한 성기가 여린 점막을 뚫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실제 하반신은 이미 그렇게라도 된 것처럼 저릿해지고 있었다. 고통이 이성을 꺾었다.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성대를 정복했다. 내뱉을 듯 말 듯 하게 달싹이던 입술에서 뱉고 싶지 않은 이름이 흘러 나왔다.
“승조, 승조 씨, 흐읏.”
“그래야지. 허리도 움직이고. 잘 할 수 있잖니.”
따스하게 웃은 오 회장이 윤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다른 걸 요구했다. 섹스를 받아들이는 여자처럼 몸이라도 흔들라는 얘기인가. 오 회장이 말하는 걸 어떻게 하는지 윤수는 몰랐다. 해 본 적이 없는데,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풀어진 눈으로 고개를 든 윤수의 시야에 여유 있는 오 회장의 얼굴이 담겼다. 안 하겠다고 하면 또 아까처럼 아프게 할 게 분명했다.
일단 할 수 있는 대로 허리를 들어서 오 회장의 하반신이 있는 쪽으로 기울였다.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철썩이는 소리와 함께 날 선 마찰음이 시트 위를 울렸다. 완전히 통로를 파악한 것처럼 오 회장의 음경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허리 밑으로 들어온 오 회장의 팔이 윤수의 몸을 안은 채 반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성기가 정복한 구간이 보다 깊어졌다. 내장까지 치고 들어올 것 같아 두려워졌다.
“더는, 하아. 더 들어오면. 흐으.”
“소리도 좋고. 타고 났구나. 좀만 더 길들이면 되겠다. 응?”
농밀하게 목덜미를 적셔대는 오 회장의 혀 때문에 피부가 오염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떨쳐낼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체념한 듯 늘어진 윤수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오 회장이 삽입의 속도를 올렸다. 점막에 닿는 귀두가 부풀어 오를 대로 커졌다. 짐승 같은 것을 안에 담은 자신의 하반신에 치가 갈렸다. 자신에게 박고 있는 저 인간과 동급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도처럼 부딪혀 오는 마찰이 한계까지 빨라졌다. 유독 여린 점막 몇몇 곳을 집중적으로 찔러올 때마다 윤수는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씩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불쾌했다. 차라리 아프면 아팠지, 그걸 느끼는 건 싫었다. 오 회장의 팔에 걸쳐 있는 손아귀에 금방이라도 쥐어짤 것처럼 힘이 들어갔다. 그 자극이 좋았는지 오 회장의 숨이 꽤나 달아올랐다.
“예쁘구나. 자지도 잘 받아들이고, 남자 흥분시킬 줄도 알고.”
“아, 흐읏. 그런 게. 승조 씨. 그만, 그만해요.”
또 다시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시트에 닿는 소리가 머릿속을 먹먹하게 물들였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감각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윤수는 더욱 절박하게 오 회장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라도 해서 빨리 끝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승조 씨, 승조 씨, 승조 씨. 오 회장의 이름이 터져 나올 때마다 안에 담은 성기가 더욱 뜨겁게 부풀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윤수는 스스로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으로서든, 아들로서든. 어느 쪽으로든.
윤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윤수 가까이에 마주 앉아 얼굴을 살폈다. 왜 그런 걸 하냐고 물으니 네가 제대로 크고 있는지 보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것치고는 마주치는 시선이 제법 차가웠다. 윤수의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골똘히 관찰하더니, 끄트머리에는 결국 한숨만 남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큰일이네. 큰일이야. 얼굴 검사 비슷한 걸 마치고 난 후에는 언제나 같은 종류의 혼잣말이 남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윤수를 만졌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에는 언제라도 피부를 긁어낼 양 날이 서 있었다.
“흐으, 승조 씨. 제발.”
윤수는 끌어내려지고, 또 끌어내려졌다. 인간으로서 머물 수 있는 마지노선과 나락의 경계에까지 내려온 기분이었다. 한 번만 더 오승조의 이름을 부르면 그 때는 지옥이었다. 마지막 이름을 뱉기 위해 막 입을 열었을 때, 윤수의 치부에 마음껏 영역표시를 마친 오 회장이 더운 정액을 분출했다. 긴 숨을 내쉰 오 회장이 윤수의 얼굴 옆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안쪽에 들어찬 오 회장의 정액이 목 안까지 흘러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말없이 눈물을 삼키는 윤수의 얼굴 위에서 오 회장의 손가락이 주르르 미끄러졌다.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 하는 거야. 윤수야. 응?”
5.
연옥과 지옥의 경계에 머물고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건 이미 오 회장과 몸을 섞은 것과 동시에 그른 일이 됐다. 지옥에나마 가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어디로 향할지 예측 불가능한 미래만큼 새하얀 햇살이 시야에 새겨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백짓장처럼 하얀 빛을 망막에 담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윤수의 얼굴을 매만지는 게 느껴졌다. 윤수의 볼을 매만지던 것이 눈가로 향하고, 다시 이동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만져 댔다. 그것이 실존하는 자극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 윤수의 눈이 번뜩 뜨였다.
누구세요. 부어 있는 눈가를 어루만지면서 윤수가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오 회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앞에서 삐딱하게 몸을 숙인 채 윤수를 관찰하듯이 내려 보는 정장 차림의 남자. 오 회장의 장남. 오윤석.
여기는 왜. 당혹감에 찬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완전히 침대를 박차고 나가려다가, 스스로가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머뭇거리며 이불을 다시 끌어 올려 몸을 감쌌다. 칭칭 감은 이불의 감촉이 실로 부드러운데도 괜히 따가웠다. 당황한 윤수와 달리 남자는 제법 침착해 보였다. 햇살이 닿은 짙은 윗눈썹 밑으로 엷은 그림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하면서 얘기하더라고. 자기 방에 가서 너 챙기라고. 어젯밤에 고생했다며.”
이불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다 얘기한 건가. 자기 아들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윤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윤석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완전히 무표정으로 입조차 일자로 다물려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원래 저런 사람인가. 그러고 보면 처음에도 저런 느낌이긴 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윤석이 심상하게 물어왔다. 몸은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다. 알면서도 물어오는 윤석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대답하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윤수를 윤석은 팔짱을 낀 채 지켜봤다. 어제의 고통과 현재의 당혹감이 지난한 현기증을 자아냈다. 말없이 침묵만 삼키는 윤수 쪽으로 윤석이 좀 더 다가왔다. 잡고 있던 이불을 잡으며 윤석이 입을 열었다.
“봐봐, 몸.”
“뭐를요. 미쳤어요?”
“얼굴만 봐서는 괜찮은지 알 수가 없잖아.”
윤수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윤석이 이불을 밑으로 끌어 내렸다. 순식간에 알몸이 드러났다. 얼굴이 더욱 더워졌다. 대체 왜 저래. 빠르게 이불을 찾아 헤매는 윤수의 손으로 잡아 고정시킨 윤석이 목 밑에서부터 하반신까지를 느릿하게 훑어봤다. 시선이 축축한 혀처럼 몸을 쓸어내린다. 닿았던 자리가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기분이다. 문득 윤석이 질문을 건넸다.
“너, 키 몇이냐.”
“그건 갑자기 왜요.”
“어제 봤던 것보다도 작은 것 같아서. 어머니는 여자치고 키가 큰 편인데. 너네 아버지가 작으신가.”
“아니, 그걸 지금 이 상황에서 왜 묻는 데요.”
“170은 넘냐.”
“넘어요.”
2센티 정도 키가 크게 나오는 김성훈 집의 신체측정기 기준이었다. 난데없이 어제 만난 형제에게 몸을 관찰당하면서 시답잖은 질문에까지 일일이 답하고 싶지가 않았다. 윤석의 팔을 다소 사납게 밀쳐 내고는 협탁에 올려진 자신의 옷 쪽으로 팔을 뻗었다. 막 옷가지에 닿았던 손이 윤석에 의해 도로 당겨졌다. 밑에도 한 번 봐.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무슨 변태도 아니고.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리는 윤수의 태도에도 윤석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유난스럽게 왜 이러냐는 의중이 표정에서 비쳤다. 보고 있자니 정말 스스로가 유별난 사람으로 몰리는 기분이다.
“난 섹스에 관심이 없어. 혹시 아버지처럼 내가 너한테 뭐라도 할 것 같아서 이러는 거면 그만 둬. 나는 그냥 아버지가 시킨 대로 네가 몸이 성한지나 확인하려고 하는 거니까.”
윤수의 눈꺼풀이 짤막하게 떨렸다. 애초에 윤석이 뭔가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런 건 아니었다. 그저 알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지. 다만 섹스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윤수는 그런 수컷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의 윤수를 무시한 채, 윤석의 손이 윤수의 하반신으로 내려왔다. 다물고 있던 다리가 거칠게 벌려졌다. 뭐하는 거예요. 날 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석은 답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구멍이 불현듯 쓰렸다. 반사적으로 이빨을 깨무는 윤수를 보고는 윤석이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냈다. 적당량을 검지에 짠 뒤 상처가 난 곳에 갖다 댔다. 쓰린 부분에 축축한 이물질이 닿았다. 하.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고통어린 신음이 흘러 나왔다.
“남자애치고 네가 묘한 게 있는 건 맞는데. 그래도 아버지가 이해는 안 가네. 이런 걸 뭐 하려 하는지.”
담담하게 말을 마친 윤석이 손가락을 떼어냈다. 생채기가 난 부위에서 불투명한 연고가 정액처럼 번들거렸다. 기분이 나빴다. 약을 발라줬는데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자신을 보는 눈빛이나 말투는 아무리 생각해도 희롱에 가까웠다. 분연히 윤석 쪽으로 눈을 치켜뜨는 윤수를 보면서, 픽 웃은 윤석이 몸을 일으켰다. 협탁으로 걸어가 윤수의 옷을 건네는 얼굴은 다시 무표정이었다. 자, 이제 입어. 무릎 위로 옷가지가 떨어졌다.
마른 침을 삼키면서 속옷부터 바지, 티셔츠를 하나하나 챙겨 입었다. 알몸에서 벗어난 윤수가 잠시 윤석의 눈치를 봤다. 오 회장이 윤석에게는 얘기했다. 그러면 다른 형제들은. 그들도 알고 있는 걸까. 왠지 그건 싫었다.
“아, 참고로 네가 아버지랑 잔 건 나밖에 모르니까 걱정 마. 애초에 형제들 중에서는 나밖에 안 믿는 사람이거든.”
윤수의 속내를 간파했는지, 윤석이 묻지도 않은 말을 단조롭게 꺼냈다. 긴장했던 윤수의 입 밖으로 낮은 숨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윤석 한 명이 알고 있는 것도 싫은데, 다른 형제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고 하면 그야말로 참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한결같이 다정한 윤민이든지, 초면부터 적대감을 나타낸 윤혁이라든지,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된 형처럼 따르는 윤성이라든지. 어느 쪽이든 불편했다.
다 입었어? 일어나, 이제. 멍하니 앉아있는 윤수를 향해 윤석이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망설이다가 무거운 몸을 서서히 일으켜 봤다. 막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는데, 걷는 게 쉽지가 않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윤수의 허리를 뒤쪽에서 윤석이 가볍게 끌어안았다. 걷는 거 힘들면 얘기해.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해요. 윤석의 팔을 뿌리치듯 떨쳐 낸 윤수가 최대한 차분하게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뒤편에서 쳐다보는 윤석의 시선이 묘하게 따가웠다. 본인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잘 해줬는데 이렇게까지 경계심을 나타내는 게 못마땅할 수야 있다. 하지만 윤수 입장에서는 불가피했다. 자신의 치부를 아는 사람과 한 공간에 아무렇지 않게 머물 수 있을 정도로 윤수는 뻔뻔하지 않았다.
바깥쪽으로 막 걸어 나온 윤수의 맞은 편에 익숙한 실루엣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설마 싶었는데 역시였다. 발걸음이 살짝 뒤쪽으로 밀려났다.
방에 없기에 찾았는데, 아버지 방에서 나오네. 다정하게 웃어 보인 윤민이 윤수의 어깨를 짧게 다독였다. 하필이면 지금. 윤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방아질을 하는 것처럼 요동치는 감각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물론 그런 거라고는 생각 안 하겠지만, 아침부터 아버지 방에서 나오는 걸 보면서 이상한 일이라는 의심쯤은 할 수 있을 거다. 왜 여기서 나오냐며 윤민이 물어봤을 때 할 만한 대답을 윤수는 빠르게 고민했다. 사고의 속도보다 심장의 박동이 빨랐다. 이성적인 언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빤히 올려다보는 윤수의 얼굴 가까이 윤민이 다가왔다. 마주쳐 오는 시선에 걱정이 담겨 있다. 왜 안 물어보는 거지. 윤수는 오히려 궁금해하지 않는 윤민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멈춰 있는 윤수의 뒤편으로 윤석이 다가왔다. 윤수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린 채 윤민을 보는 시선이 사뭇 불친절했다.
“출근 안 해? 오윤민.”
“해야지. 가면서 윤수 얼굴이나 보려고 했지. 그나저나 형은 아침부터 윤수하고 무슨 일이야. 아버지 방에서.”
“네가 알 거 없잖아.”
윤석의 이맛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윤민만 윤석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윤석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형제들끼리는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이 둘만 이런 건가. 심기가 건드려진 맹수처럼 쏘아보는 윤석을 앞에 두고도 윤민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기 그지없는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게, 내가 실례를 했네. 감히 큰 형한테. 팽팽했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윤수야. 학교 갈 거지? 형이 데려다 줄게. 가운데 엉거주춤 껴 있던 윤수의 손목을 윤민이 잡아채듯이 쥐었다. 얼떨결에 윤민에게 이끌려 발걸음이 옮겨졌다. 뒤편에 서 있는 윤석의 얼굴이 순간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윤수가 일일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피가 섞이긴 했지만 형제라는 관계성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철저하게 각자의 몫이었다. 윤수는 아직 윤석에게는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간단하게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 쪽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윤민이 윤수를 조수석에 태운 뒤 시동을 걸었다. 그 사이 윤수는 차창 밖에 장엄하게 버티고 선 나무를 관찰했다. 비현실적으로 크고 낡아서 그런지, 낮에 봐도 스산한 게 여전했다.
윤수야. 불현듯 윤수 쪽으로 몸을 돌린 윤민이 말을 걸어왔다. 운전대에 올라간 손가락이 무겁게 윗부분을 두드리고 있었다. 백야처럼 환한 바깥과 달리 다소 그늘진 차 안에서 비치는 얼굴에서 한기가 묻어났다. 항상 유한 낯을 유지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따금씩 짓는 무표정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졌다. 바닥 위에 딛고 있던 윤수의 뒤꿈치가 무겁게 들렸다가 다시 끌어내려졌다.
“형이 얘기했지. 오윤석 가까이 하지 말라고.”
“아, 그건.”
뭐라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던 윤수의 혀가 스르르 풀어졌다. 어젯밤에 오 회장과 섹스 했고, 아침이 되니 오윤석이 챙겨주러 왔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다. 차라리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 쪽이 나았으면 나았다. 메마른 입술만 달싹이던 윤수의 귓불에 윤민의 손가락이 닿았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조금 아프게 짓눌렀다가, 곧 여리게 어루만졌다. 간지러운 소름이 목덜미를 적셨다. 형 말 들어. 응? 윤수야.
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다보니 윤민의 대화법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 하는 것이나 태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스무 살 넘은 성인을 대하는 것 같지가 않다. 많이 쳐줘도 중학생 정도다.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윤민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윤수를 접한 게 대여섯 살이었을 무렵이다. 윤민이 생각하는 윤수는 아직 그 무렵에 머물러 있는 거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대우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스스로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이렇게 대해주던 형이 무의식적으로 그리웠던 건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당에 누군가가 자신을 어린 애처럼 챙겨주는 것이 달가웠던 건지. 혹은 둘 다인지. 윤수는 판단하는 게 어렵다.
형 눈 보고 얘기 해야지. 스르르 내려온 윤민의 얼굴에 낯이 뜨거워졌다. 어제도 저런 말을 했었다. 원래 시선을 마주치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가. 고개를 든 윤수가 마지못해 윤민과 눈을 맞췄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얼굴의 이목구비가 이미 아는 모양새인데도 새삼 반듯해서, 윤수는 새삼 감탄했다.
“그럴게요.”
“착해, 윤수.”
가볍게 웃어 보인 윤민이 윤수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낯설지만 자연스러운 스킨십이다. 이제는 그리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한 감정마저 든다. 어렸을 때 했던 게 무의식에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윤민은, 그 때부터 매우 다정한 형이었던 듯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6.
어땠냐. 가보니까. 학교에 가자마자 성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건네 왔다. 솔직히 거지같았다. 가자마자 몰랐던 형제들의 존재를 알았고, 양아버지가 된 남자는 첫날부터 자신을 강간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큰형이라는 사람에게 알몸을 보였다. 일일이 얘기해봤자 낯만 붉힐 얘기다. 뭐라 말도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 윤수를 옆에서 성훈이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야, 김성훈.”
“왜.”
“너 우리 어머니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응. 알지. 고등학교 때부터 너희 집 가서 자주 뵈었잖아.”
“나, 어머니랑 많이 닮았냐.”
진지하게 건네는 윤수의 물음에 성훈이 비스듬히 고개를 내리고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뒤늦게 확인해보려는 것처럼 윤수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는 시선이 접착제를 붙인 양 끈끈하다. 한참을 관찰한 성훈이 깨달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자못 흥미롭다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러네, 닮았네. 성별도 다른데. 진짜 신기하다.”
“넌 지금까지 몰랐어?”
“몰랐지. 그리고 애초에 너희 어머니는 평소에 표정이 좀.”
“좀 뭐.”
“아니, 그러니까. 엄청 미인이신데. 항상 짓고 있던 인상이 말이야.”
책상 위를 불안정하게 눌러대던 성훈의 손가락이 길게 떨어져나갔다. 아무튼, 너하고 어머니는 인상이 많이 달랐어. 성훈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건조하게 다물린 입술을 바라보던 윤수가 고개를 숙였다. 성훈의 의도가 뭔지는 알 만했다. 거의 인형처럼 표정이 없다시피 한 어머니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하지만 윤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원래 그런 인상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등불처럼 은은한 온기를 띤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는 말이다. 그 등불이 희미하게 점멸하게 시작하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꺼져버렸다. 이후의 표정이 성훈이 기억하는 그것이다.
맥이 풀린 손으로 턱을 괸 채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려진 창 너머에 바로 보이는 간이 농구코트. 몇 명의 남학생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경기를 하는 게 보였다. 농구는 잘 모르지만, 한쪽 팀이 워낙 압도적이다. 패스하는 모양새며 슛 날리는 게 예사롭지 않다. 한쪽 팀은 선수고, 다른 팀은 그냥 일반 학생들인 모양이었다. 흥미 없는 TV 프로그램을 관조하는 것처럼 경기가 흘러가는 걸 무작정 지켜보다 보니, 문득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 놀라서 나온 윤수의 커다란 음성이 경기하는 남학생들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일 층 강의실에서 몇 보만 걸으면 닿을 거리이긴 했다. 몇몇 남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윤수 쪽을 봤다. 그 중에 익숙한 얼굴이 하나 존재했다. 짧은 머리카락을 지닌 작은 머리통. 그 밑으로 드리워진 굵은 목덜미와 근육으로 다져진 기다란 팔뚝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윤혁. 오 회장의 세 번째 아들.
“김성훈. 저 새끼 뭐야.”
“저 새끼가 누군데.”
“저기 있잖아. 머리 반삭한 것처럼 밀고, 청바지 입은 애.”
“오윤혁? 너 쟤 모르냐. 우리 학교 농구부 에이스인데.”
무심하게 건네 오는 성훈의 말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같은 학교였구나. 워낙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 미처 몰랐다. 윤수에게 있어 아는 학교 사람이라 봐야 성훈과 전 여자 친구인 박채영, 학보사 사람들,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인문학회 사람들이 전부였다. 왠지 모를 허탈함에 턱을 짚고 있던 손을 맥없이 끌어 내렸다. 턱이 닿았던 손바닥 부위가 붉었다. 옆에서 성훈이 주절주절 말하는 게 들려왔다.
“쟤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하잖아. 나도 농구는 관심 없지만, 쟤는 안다. 너 진짜 심각한 거 아니냐.”
“시끄러. 난 야빠야.”
“네가 그런다고 한화는 우승 못 해.”
“죽고 싶냐.”
신경을 살살 긁어오는 성훈에게 눈을 흘기며 볼멘소리를 툭 뱉었다. 무심코 시선을 건넨 창가 너머에는 여전히 이쪽을 쳐다보는 윤혁이 있다. 어깨가 일순간 떨렸다. 나 보는 건가, 설마.
수업은 담당 교수가 별안간 몸담고 있는 정당의 국회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성훈은 여자 친구가 불렀다며 윤수를 버리다시피 한 채 일어났다. 호젓한 강의실에 윤수 홀로 남았다. 다음 강의까지 뭘 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할지가 큰 숙제로 다가왔다.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 화면을 보며 눈에 띄는 기사를 이것저것 클릭해봤다. 윤수는 드라마나 예능은 잘 보지 않았지만 뉴스며 신문은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었다. 아무리 드라마틱한 픽션을 봐도 현실의 드라마틱함은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학보사에 몸담게 된 것도 현실을 알아가는 것보다 재미있는 취미 생활은 아무래도 없다고 봐서다.
야, 오윤수. 문득 강의실 뒷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남자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김성훈은 분명히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오윤혁이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온 건지 머리카락을 타고 널어지는 물방울이 선명했다. 하. 입 밖으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록 두 번째 본 사이지만 정정할 건 확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라고 불러라.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새끼가.”
“됐고, 야.”
성큼성큼 다가온 윤혁이 다짜고짜 윤수의 어깨를 쥐었다. 움켜쥐는 손아귀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이 실려 있다. 윤수의 눈살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야, 이거 놔. 아프니까. 불만스럽게 뱉은 윤수의 말을 무시하며 윤혁이 또렷한 명령조로 말을 뱉었다.
“너 내일 당장 나가. 오윤수.”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살기가 가득하다. 문득 어제 윤성이 윤수에게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윤혁이 형, 엄청 무서운 형이거든요. 윤수의 아랫입술이 언짢게 깨물렸다. 물론 싸우면 윤수가 당연히 질 것이다. 체구나 악력에서 비등비등하지 않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윤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그런 신체적 우위를 앞세워 자신을 위압하려 드는 오윤혁의 태도였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한테 말해 봐야 소용없어. 나 내보내고 싶으면 너희 아버지한테 건의해.”
“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좆같아지고 있잖아. 오윤수.”
윤수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 당긴 윤혁이 잡아먹을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앞에 비치는 얼굴은 아침에 본 윤민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결이 다르다. 훨씬 더 날카로운 느낌이다. 말없이 그 얼굴을 쳐다보던 윤수가 있는 대로 힘을 실어 윤혁의 팔을 밀어냈다. 버티던 윤혁이 마지못해 긴 팔뚝을 끌어 올렸다.
“내가 확실하게 얘기한다. 오윤혁. 나가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거. 그러니까 나한테 허튼 짓 하지 말고 아버지랑 둘이서 해결해.”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양 허리에 손을 짚은 윤혁이 윤수를 매섭게 내려다봤다. 여전히 시선에는 가시가 맺혀 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차분해진 느낌이 든다. 스마트폰 위에 올라가 있던 윤수의 손가락이 무겁게 매끄러운 액정을 두드렸다. 당연히 나가고 싶다. 자신을 강간하는 사람과 한 집에 있는 게 좋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수에게는 그 집에 있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다.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오 회장이 윤수에게 걸어놓은 투명한 올가미가 됐다. 외면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아버지여도 윤수와 피로 연결된 혈육이었다. 친아버지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남자를 거스른다는 건 결국 친아버지를 거스르는 것과도 같았다. 한 마디로 패륜이었다.
“난 이 집에 있고 싶어.”
“있고 싶다고. 아주 지랄을.”
윤혁의 입 밖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꼿꼿하게 윤수 쪽을 향하는 시선에 윤수는 괜히 자신감이 사라져 반쯤 눈꺼풀을 감았다. 윤수의 볼 옆으로 윤혁의 손이 다가왔다. 힘이 실리지도,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은 강도로 하얀 피부를 두어 번 두드린 윤혁이 빈정대듯 말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살아, 오윤수. 응?”
탕 소리가 날 정도로 무겁게 책상을 한 번 내려친 윤혁이 몸을 세워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빈 공간에 남아 아까 윤혁이 문대고 간 제 볼을 매만졌다. 뒤늦게 홧홧해진 피부에 손가락이 같은 온도로 뜨거워졌다. 어쩌면 오윤혁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회장이 윤수에게 한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 굳이 물어보지 않은 건, 그 추정이 맞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형제들 중에서 자신의 치부를 아는 건 윤석으로 족했다. 그 이상은 견디기 어려웠다. 자신은 언제 지옥으로 떨어질지 몰랐다. 목격자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아까 윤혁과 남학생들이 한바탕 경기를 치루고 난 간이 농구코트를 봤다. 텅 빈 푸른 공간에 일부러 두고 간 것인지, 잊고 두고 간 것인지 모를 낡은 농구공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문득 지나가던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여봐란듯이 코트로 달려가 농구공을 쥐었다. 제법 각을 맞춰서 던진 공이 골대를 타고 반 바퀴쯤 구르다가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멍청아. 지켜보던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여학생에 야유를 던졌다. 아,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 아쉬워하는 소리를 내면서 여학생들이 무리들 틈으로 돌아갔다. 다시 홀로 남은 농구공이 정처 없이 바닥을 구르다가 수풀 틈으로 사라져버렸다.
7.
밤마다 오 회장과 섹스를 했다. 몇 번의 저항은 매번 오 회장의 성난 삽입에 집어삼켜졌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섹스를 할 때마다 가늘어지고 가늘어져, 얇고 기다란 실처럼 변했다. 되짚기 시작하면 하염없었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끈끈해 외면하는 것이 어려웠다. 오 회장과 섹스 하는 일은 그 기다란 끈을 붙들고 하염없이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뻑뻑했던 구멍의 입구가 몇 번의 성교를 거치며 느슨하게 풀려갔다. 거칠었던 내벽도 성기의 주름에 맞춰 매끈하게 다듬어져갔다. 처음에는 승조 씨라고 부르라고 했던 오 회장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 무기력하게 어머니를 연기한 끝에 남은 건 오 회장의 아들 오윤수였다. 거기서부터 다시 새로운 연옥이 시작됐고, 윤수는 아직도 지옥의 경계에 있었다.
섹스를 마치고 나면 쉽게 기운이 빠져서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잠을 제대로 잔 것도 아니었다. 자다보면 온몸을 압박하는 한기에 매번 번뜩번뜩 정신이 들었다. 집은 날이 갈수록 서늘해지고 있었다. 낮아지는 온도에 맞춰 윤수의 몸도 차가워졌다. 차디찬 몸으로는 소화를 하는 것도 어려워, 먹는 양을 현저히 줄이게 됐다.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 얼마나 빠졌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두려워 일부러 재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가 유독 컸다. 처음 봤을 때보다 좀 더 커진 것 같았다. 저렇게 큰 데도 계속 크는 건가. 심지어 이 집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에. 이상한 집이었고, 이상한 나무였다.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일 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웬일로 오 회장을 비롯한 가족 전원이 앉아 있었다. 윤수를 보자마자 윤성이 반가워하면서 제 옆자리의 의자를 뺐다.
“잘 잤어요? 형.”
“응, 아니. 잘.”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요. 볼 때마다 살이 빠지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표정의 윤성이 윤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맨 피부에 닿는 손가락이 지나치게 따뜻해 생경하게 느껴졌다. 집의 기묘한 스산함과 어울리지 않는 온기였다. 윤수의 얼굴이 절로 돌아갔다. 외면하는 윤수의 옆으로 커다란 바게트 조각이 따라왔다. 형. 많이 먹어요. 이거.
나 입 좀 축이고. 코끝에 닿는 빵 냄새가 괜히 역겨웠다. 일단 윤성을 저지하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허브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첫날 윤민의 방에서 먹었던 이름 모를 차다. 어쩌다 보니 매일 마시고 있었다. 윤수도 차는 그간 적잖게 마셔왔는데, 이 차는 정말이지 처음 접하는 향이었다. 윤민의 말로는 그저 향이 좋아서 인도에서 들여 온 것이라 했다. 다만 그곳 언어라서 본인들도 명확한 명칭은 모른다고 했다.
“윤수가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유감이지만.”
크루아상에 하몽과 루꼴라, 치즈를 올리던 오 회장이 운을 뗐다. 식탁에 앉아있던 다섯 형제들의 시선이 동시에 오 회장을 향했다. 손에 든 음식물을 입가에 가져간 오 회장이 느릿하게 풍부한 토핑을 입으로 깨물었다. 파삭 소리와 함께 겹겹이 몸을 두른 크루아상이 부스러졌다. 하얀 접시 위로 크고 작은 갈색 표면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졌다.
“내일 아침 일찍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간 김에 일본, 중국 쪽 거래처도 모두 들를 거야. 본사가 있는 러시아도. 넉넉잡아 한 달가량은 해외에 있을 거다.”
“네, 아버지.”
윤수를 제외한 모든 형제들이 익숙하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윤수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쉽게 입에 떨어지지 않아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남은 크루아상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여유 있게 씹어 넘긴 오 회장이 문득 윤수 쪽을 봤다. 윤수야, 와 보렴.
갑작스러운 명령에 윤수의 무릎이 살짝 들렸다가 내려갔다. 형제들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 앉아있던 의자를 뒤쪽으로 밀어내고는 오 회장이 있는 가장 안쪽 자리로 향했다. 앞으로 다가가자마자 인자하게 웃어 보인 오 회장이 윤수의 머리를 부드럽고 섬세하게 쓰다듬었다. 이따금씩 오 회장은 이런 식으로 윤수를 만졌다. 섹스를 한 후에도 그렇고,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그랬다. 자신이 때때로 윤수를 짐승처럼 다룰지라도 사실은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굳이 어필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곁눈질로 본 쪽에서 윤혁이 쯧,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내가 없어도 형, 동생들이 알아서 잘 챙겨줄 거다. 항상 몸 건강히 하고. 뭐 필요한 건 없니? 있으면 얘기해봐라.”
필요한 건 있다. 온통 오 회장이 들어줄 리 없는 것들 일색이라서 문제이지만. 더 이상 이 집에 머물 필요 없이 조용히 어머니의 유산을 챙겨 나가는 것, 혹은 집에 있더라도 강압적인 섹스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혹은 병상에 있다는 아버지를 윤수에게 인도해주는 것. 모두 오 회장 입장에서 허락해 줄 리 없는 것들이다. 그냥 없다고 얘기하는 게 나았다.
“조 비서를 굳이 이 집에 상주시킬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막 입술을 떼어 낸 윤수의 귓가에 윤민의 목소리가 닿았다. 테이블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던 조 비서가 다소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조 비서. 낮에는 항상 오 회장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사람. 밤에는 이 집에서 숙식까지 하며 오 회장의 안위를 점검한다. 유도 선수마냥 풍채도 좋은 걸로 봤을 때에는 오 회장의 보디가드 같은 존재인 듯 했다. 오 회장의 미간이 사뭇 언짢게 좁혀졌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거냐. 윤민아.
윤수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요. 제가 대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말을 마친 윤민이 엷게 웃으며 윤수 쪽을 봤다. 윤수의 입술이 도로 다물어졌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런 낌새를 드러낸 적도 없다. 윤민이 왜 갑자기 저런 걸 말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윤민의 안온한 얼굴을 살폈다. 시선을 마주치는 시간이 길어지자, 윤민의 미소가 보다 짙어졌다. 밑으로 늘어져있던 손아귀가 문득 작게 웅크려들었다가 풀어졌다.
스스로가 저도 모르게 그런 걸 드러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민이 판단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윤수를 애지중지 챙겨 온 사람이 한 얘기다. 기억에는 없지만, 무의식으로 알고 있다. 무의식이 얘기한다. 저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걸. 저런 사람이 윤수를 속여 가며 없는 소리를 할 리가 없다는 걸. 윤민의 까만 동공에 머물러 있던 윤수의 시선이 오 회장 쪽으로 돌아갔다. 오 회장의 윤수의 손을 따뜻하게 그러쥐었다.
그랬어? 윤수야. 진작 얘기하지. 아랫입술을 잠시 달싹이다가 결국 목소리를 냈다. 맞아요. 오 회장의 손아귀에 담겨 있는 손에 더운 땀이 스미는 것만 같았다.
“알았다. 그렇게 하마. 조 비서, 출장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집에서까지 근무할 필요 없어. 나 퇴근하면 자택으로 돌아가.”
“그렇지만, 회장님.”
오 회장을 향해 들리는 조 비서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힐끗 조 비서를 본 윤민이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잖습니까. 서늘한 공기가 테이블에 감돈다.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조비서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슬슬 자리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오 회장의 얼굴을 살피다가 주춤거리며 제 자리에 돌아왔다. 앉자마자 윤성이 정성스럽게 크림치즈를 올린 바게트를 입에 넣어 줬다. 입에 들어온 고소한 빵을 씹어대면서 옆쪽에 앉은 윤민을 물끄러미 봤다. 역시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와 정면에서 눈이 마주쳤다.
잘 먹네. 많이 먹어. 지긋이 맺힌 미소는 항상 그 너머에 어떤 감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복잡하게 이어진 미로 속에 갇힌 입구를 찾는 것처럼 어렵다. 그런 사람인데도 일단 신뢰하게 되는 것은 항상 윤수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다가오는 이 사람의 태도 때문이다. 처음에는 간혹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원래 형이라는 존재가 이런 것인 모양이다. 없던 게 갑자기 생긴 윤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너희들은 할 말 없고? 있으면 얘기해. 오 회장이 찬찬히 나머지 형제들을 쳐다보면서 또 말을 꺼냈다. 짙은 정적이 오전의 햇살처럼 내려앉는다. 이 가족들은 모이면 항상 이런 분위기다. 남자밖에 없는 집안이라 이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집안인 건지. 이 가족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는 일반적인 가정의 그것과 확실히 다르다. 보통의 가정이 잔잔한 호수라면, 이 집은 언제 해일이 일어날지 몰라 긴장하게 되는 폭풍전야의 바다다.
고개를 든 곳에는 첫날 이 집에 왔을 때 봤던 네 개의 사진이 있다. 오 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르는 얼굴. 아마도 이 집에 대대로 살았던 가장들이자, 이들의 조상일 터다. 네 명. 그러니까 사 대. 현대 사회에서 저렇게까지 조상들을 섬기는 집안은 흔치 않다. 게다가 이상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이 집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윤수는 혈관이 조여드는 걸 느낀다.
한 동안 말이 없던 윤석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어떻게든 이 무거운 공기를 희석시키겠다는 의도가 녹아 있다.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윤혁이는.”
“잘 다녀오세요.”
“윤성이도 없냐.”
“네. 다녀오세요, 아버지.”
“윤민이, 얘기해 봐.”
윤수 쪽을 향했던 윤민의 고개가 서서히 오 회장 쪽으로 돌아갔다.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인 윤민이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약, 잘 챙겨 드시고요. 아버지. 오 회장의 낯빛에 민망함이 어렸다. 거칠게 헛기침을 뱉은 오 회장이 마지못해 말했다. 또 그 얘기냐. 알았다.
약 얘기는 처음 들었다. 의아한 얼굴의 윤수가 윤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물었다. 무슨 약이요, 형. 회장님 어디 아파요? 궁금한 걸 참기가 어려워 윤민의 팔을 쥔 채 답을 기다리는 윤수의 얼굴을 윤민이 느릿하게 어루만진 뒤 손을 뗐다. 은은하게 웃는 얼굴로 여유 있게 답을 사렸다. 별 거 아니야. 적당히 점잖고 예의 있는 거절이다. 차마 더 이상 붙들고 물어보는 걸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언사.
아직 이방인인 윤수로서는 진실을 알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보이지 않는 거리를 뒀다.
* * *
또 잠을 설쳤다. 꿈에서는 거대한 나무의 가지들이 내려와 윤수의 몸을 둘둘 감았다. 그 감각이 소름 끼치게 불쾌한데도, 호소할 곳이 마땅히 없었다. 축축한 나뭇가지의 끄트머리가 윤수의 다리 사이를 유린할 것처럼 에워쌌다. 오 회장의 성기가 들어오기 직전을 연상케 했다. 기분 나쁜 꿈이다.
몸을 일으켜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6시가 채 되기 직전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다섯 시간은 잤다. 나쁘지 않았다. 찬찬히 자신이 잤던 시간을 꼽아 본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목이라도 축일 생각으로 부엌에 내려갔다. 정수기에서 온수를 받아 놓고 찬장을 열었다. 언제나 먹던 허브티의 재료가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커피 원두니 척 봐도 알 법한 브랜드 티백들만 빼곡했다. 항상 먹는 차는 여기에 없었다. 괜히 서늘한 의구심이 든다. 그럼 그건 어디에서 온 거지. 맥없이 찬장을 닫는 윤수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소리 없이 몸을 끌어 안아왔다. 아. 윤수의 입 밖으로 짧게 음성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오 회장이다.
여기 있었구나. 방에 없기에 놀랐다. 살며시 웃으며 윤수의 어깨를 다독이는 오 회장의 얼굴을 살피다가, 어깨 너머를 힐끗 봤다. 멀찍이서 우두커니 조 비서가 서 있다. 오늘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막 집에서 나서려던 찰나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가려니 내가 서운해서 말이야. 문득 입고 있던 추리닝 바지 안으로 오 회장의 손이 들어왔다. 윤수의 어깨가 흠칫 세워졌다. 맨살에 닿는 타인의 온기가 서늘한 집 안의 공기와 맞물려 더욱 뜨겁게 다가왔다. 달달 떨어대는 윤수를 보면서도 오 회장은 태연하게 속옷과 바지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다급하게 오 회장의 팔을 쥔 윤수의 입 밖으로 애원 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깐, 잠깐만요. 여기서 안 돼요.”
“윤수야. 나는 시간이 없단다.”
귓가에 다소 단호한 오 회장의 언어가 닿았다. 그 무렵 윤수는 오 회장의 패턴을 어느 정도 익힌 상태였다. 오 회장이 저런 식으로 말했을 때 듣지 않으면, 불현듯 발정기 수컷 짐승처럼 포악해진 태도에 떠밀려 반드시 어디든 생채기가 났다. 오 회장이 밀어붙인 대로 테이블 위에 짚은 윤수의 손아귀가 불안정하게 갈색 표면을 유영했다. 이내 조급한 손길이 윤수의 어깻죽지를 눌러 테이블 위에 엎드리게 했다. 고개를 든 끝에서 조 비서의 현현한 난색이 보였다.
“제발요. 아버지, 다른 데서.”
“왜 갑자기 또 말을 안 들어. 부끄러워서 그러니?”
귓가에 오 회장의 눅눅한 질문이 닿았다.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굳이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일을 하는 게 정상일 리 없다. 있는 힘껏 테이블에 딛은 손에 힘을 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들 것처럼 손톱이 깊숙하게 닿았다. 티셔츠 안으로 들어온 오 회장의 손이 지그시 유두를 어루만졌다. 오톨도톨한 부분을 느릿하게 매만지다가, 완전히 조 비서 쪽으로 보여줄 것처럼 티셔츠를 끌어올렸다.
“읏. 아버지, 그렇게 하지. 좀.”
“괜찮아. 누가 보든지, 윤수 네가 나와 섹스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정하게 읊조리는 오 회장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잠자코 보고만 있던 조 비서가 난감해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 회장이 저지했다. 어딜 가. 대기하고 있어. 금방 끝낼 테니까.
네. 회장님. 마른 침을 삼키며 자리에 돌아온 조 비서가 곁눈질로 윤수 쪽을 보는 게 느껴진다. 도무지 그를 인지하고 싶지 않아 황급히 고개를 숙이지만 제삼자의 시선은 안개 속에서 드러난 등대처럼 갈수록 뚜렷해지기만 한다. 완전히 조 비서가 있는 쪽으로 윤수의 알몸을 드러낸 오 회장이 보다 집요하게 유두를 어루만져 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유일하게 닿은 온기에 윤수의 입 밖으로 보다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아, 앗. 아버지. 싫, 흐읏.”
“마음껏 소리 질러도 돼. 윤수야. 어차피 네 집이니까.”
흡족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윤수의 목덜미가 짧게 떨렸다. 아. 형제들. 이 층에 있는 형제들이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유두에 머물러 있던 오 회장의 손이 벗겨져 있는 하반신으로 주르르 내려왔다. 이내 윤수의 성기를 부드럽게 말아 쥔다. 위축돼 있던 성기에 더운물이 쏟아 부어진 기분이다. 윤수의 허벅지가 짧게 진동했다. 성기의 주름진 표피를 살살 어루만지던 오 회장의 손아귀가 문득 윤수의 음낭을 터뜨릴 것처럼 죄어온다. 악. 입 밖으로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제 알아서 말 잘 듣겠지. 응? 목 뒤쪽에 오 회장의 끈적한 혀가 닿는다. 영역표시를 하는 것처럼 질척하게 타액을 문질러대는 사이, 성기를 매만지고 난 손은 윤수의 엉덩이 사이로 향했다. 방금 전의 고통 때문에 차마 거부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걸쳐진 윤수의 엉덩이를 내려다보던 오 회장이 둥근 두 개의 살덩이를 손으로 내려쳤다. 읏. 테이블 위에 얹어진 윤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린 엉덩이에 오 회장의 하반신이 닿았다. 엉덩이 너머로 거친 남성의 체모가 가장 먼저 느껴졌다. 윤수의 양 엉덩이를 손에 쥔 오 회장이 그 틈 사이에서 성기를 아래위로 비벼댔다. 삽입을 한 것도 아닌데, 그것만으로 오 회장의 성기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여성의 가슴을 쥐고 농락하는 것처럼 윤수의 엉덩이를 쓰고 있었다. 순간순간 골 사이에 닿는 귀두의 감각이 끔찍하리만큼 축축했다. 회의감에 젖은 윤수의 고개가 밑으로 한풀 꺾였다.
원하는 만큼 쿠퍼액을 짜낸 오 회장이 손가락으로 윤수의 엉덩이 사이를 벌렸다. 구멍의 틈을 꾹꾹 눌러오더니 전희 없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꼿꼿하게 날을 세운 이물질이 스스로 길들여놓은 통로를 따라 미끄러져 들어갔다. 점막 곳곳과 연결된 맥박이 빠르게 울렁거렸다. 쿠퍼액으로 점철된 성기가 진득한 점액을 남기며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내벽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끝까지 한 번 들어갔던 성기가 훅 빠지고는 다시 빠르게 안쪽에 틀어박혔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면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앗. 아, 아파요.”
막상 내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소리, 크게 내면 안 되는데. 달달 떨리던 윤수의 얼굴이 테이블 위를 지탱하던 팔에 파묻혔다. 팔위에 입술을 대고 간신히 틀어막는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허망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입을 막는 윤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 회장의 움직임이 다소 거칠어졌다. 점막 곳곳을 후벼대는 성기가 의도적으로 건조한 부위를 할퀴어 댔다. 몇 번의 성교를 거치면서 헤진 부위에 성기가 날카롭게 닿을 때마다 윤수의 엉덩이가 빠르게 움찔거렸다.
내가 늘 소리 내라고 했는데. 말을 참 안 듣는구나. 등 너머로 들려오는 오 회장의 목소리는 언짢은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즐거움이 녹아 있다. 윤수가 말을 듣지 않는 걸 핑계 삼아서 제 취향대로 농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기세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소리를 내는 건 싫었다. 형제들이 들을지도 모르고, 저편에는 조 비서가 있었다. 있는 대로 숙여진 윤수의 고개가 세차게 가로 저어졌다.
오 회장의 손가락이 윤수의 귓불로 다가왔다. 둥근 살집을 젤리처럼 만져대던 손이 목덜미로 내려오고, 다시 유두로 흘러들어온다. 두 개의 손가락에 유두를 끼운 채 꼬집어대는 양 어루만진다. 고통의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드는 간지러움이 싫어, 윤수는 아랫입술을 무겁게 깨무는 것으로 갈음했다.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오 회장의 동작에 속도가 붙었다. 상처 난 점막을 태연하게 집어삼키며 구멍 반대편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로 귀두가 파고들었다.
“아버지, 흐읍.”
“네가 없이 한 달 동안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현지에 비슷하게 생긴 남자애를 구해 놓으라고 하긴 했다만. 그래도 너 같은 아이는 없겠지. 너는 네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를 거다. 네 어머니를 아주 쏙 닮아서 말이야, 윤수야.”
어머니라는 글자가 나오자 윤수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잊으려 노력했던 죄책감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를 다뤘는지는 몰라도, 지금 윤수에게 했던 것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했다면 어머니로서는 절대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러려고 윤수를 양아들로 들인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윤수가 이렇게 될 걸 알았을까.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았다면, 절대로 그따위 유서는 남기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머니에 이어 윤수까지 짐승에게 능욕당하는 걸 어머니가 원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윤수야. 눈앞에 다가온 오 회장의 손이 강제로 얼굴을 팔에서 떼어냈다. 입 안에 들어온 손가락에 순식간에 윤수의 타액이 묻어났다. 혀 밑으로 단단히 손가락을 밀어 넣고 강제로 입을 열게 한 오 회장이 좀 더 강하게 하반신을 밀어붙였다. 너덜해진 점막에 울퉁불퉁한 성기의 혈관이 쓸릴 때마다 형용하기 어려운 아픔이 하반신을 지배했다. 쓰라림이 골반을 타고 허리를 짓눌렀다.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은 윤수의 얼굴을 오 회장이 강제로 쥐어 들게 했다.
“으읏, 아버지. 아. 그만, 그마안.”
“그래. 그렇게 아버지 부르면서 소리 내니 얼마나 예뻐. 응?”
흡족한 표정의 오 회장이 볼에 살짝 입을 맞춰왔다. 맞은편에 보이는 조 비서의 반쯤 돌려진 얼굴이 다소 붉어져 있는 게 어두운 가운데서도 생생하다. 공개된 공간에서 양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그걸 남에게 보이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이 공간에 있는 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 회장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 비상식적인 자극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둥글게 부푼 귀두 끝이 지긋이 윤수의 내벽 끄트머리에 닿았다. 조금이라도 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틀어 막힌 구간을 있는 힘껏 비벼댔다. 뱃속이 뚫려버리는 것만 같아 윤수의 입 밖으로 새 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완연하게 달아오른 오 회장이 뒤편에서 윤수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완전히 관통당하기 일보 직전, 점막 곳곳에 눅진거리는 체액이 들어붙는 게 느껴졌다. 허벅지 사이로 희멀겋고 질척한 정액이 흘러내렸다. 반질거리는 대리석 위에도 녹진한 액체가 비쳤다. 조 비서가 차마 보기 어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윤민이 녀석이 이번에 큰일을 했다. 너를 이렇게 데려올 줄이야.”
불현듯 오 회장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름. 오윤민. 순식간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윤민은 그저 유언장 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윤수가 알기로는, 그게 전부였다. 바들바들 떨리던 윤수의 무릎이 스르르 내려갔다. 테이블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몸을 숙였다.
오 회장, 네 명의 형제들, 어머니의 죽음, 유언장. 그리고 냉기가 흐르는 한남동의 이 저택. 기묘한 연결고리에 걸린 예기치 않은 존재들이 거대한 거미줄처럼 윤수를 엄습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