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하루종일 맑음
"좋아, 해."
뭐? 두어 걸음 앞서 걷던 이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뒤로 돌려 묻는다. 기분 좋게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던 강현의 입술 사이로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좋아한다고."
"……뭐?"
이번 역시 되묻긴 했지만 제대로 듣지 못해서 되물은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적잌 것에 가까웠다.
살짝 올라가있던 강현의 입 꼬리가 천천히 내려와 한일자를 만든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무겁에 닫혀있던 입흘러나왔다.술 사이로 예의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강현오빠~! 안 오고 뭐해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앞서 걷던 일행 중 한 아이가 크게 강현을 부른다. 진아였다. 게다가 설상가상 진아의 부름에 둘 셋 짝지어 가던 무리들도 하나같이 발을 멈추고 뒤처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그토록 많고 많던 그 순간들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졸업과제 준비를 하다가 야식을 먹으러 나서던 참에, 그것도 걸어가는 녀석의 뒷통수에 대고 고백이라니. 말을 한 자신이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또 변명을 하자면 자신도 의도한 건 아니라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물이 흘러 넘치듯 흘러나와버린 걸. 그러니 후회는 하지않는다. 이렇게 된 거 오히려 잘되었다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제 사정이었다. 강현의 입장과는 다를 거다. 이렇게 황당한 고백이라니, 그것도 시커먼 사내자식한테.
"미안해."
"……."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
"……."
안 그래도 굳어있던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는다. 그런 강현의 반응에 애써 담담한척 하던 이영의 표정도 점점 어색해졌다.
"내 얼굴 보기 싫을 테니까. 난 오늘은 그냥 빠질게. 조원들한테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갔다고 말 좀, 해줘."
"……."
주절주절, 말을 시작할 때부터 천천히 뒷걸음질 치던 이영은 해줘, 라고 말을 한 동시에 뒤돌아섰다. 말을 하는 내내 행여 강현과 시선이라도 마주할까 이영의 시선은 상현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었다.
겁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 용기도, 그나마 고백했을 때 다 써버렸다.
얼굴보기 싫을 거라고, 태연한척 하려고 스스로 한 말에도 가슴이 철렁했는데, 혹여 본인의 입으로 기분 나쁘다. 라는 말이라도 듣는다면 그런 정말 죽고 싶어질 것 같았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다소 무책임한 생각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이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턱.
커다란 손이 이영의 팔을 붙잡았다. 정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 아직 할 얘기 남은 거 같은데."
단단한 손에 붙잡힌 이영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돌아선 뒤에서 다시 한 번 보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당황한 이영과 달리 강현은 태연한 얼굴로 뒤로 고개만 틀었다. 곧바로 귁가에 볼륨을 높인 목소리가 울렸다.
"뭐 놓고 온 게 있어서 가지러 다시 올라가봐야 할 거 같으니까 먼저들 가. 어딘지는 알고 있으니까."
얘기하는 사이 도망쳐보려고 걸음을 내딛는데 팔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ㄷ. 표정으로 봐서는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손가락 끝이 피가 통하지 않아 저런 느낌이 났다.
"꼭이요. 오빠, 꼭 와야 해요."
강현의 말은 상대로 하여금 감히 거역하지 못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건 학과 내에서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어리광쟁이 진아 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몇 번이고 다짐을 하며 진아와 조원들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소란스럽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져버리고 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 남았다.
"그럼 어디로 갈까? 너희 집이 가까우니 일단 그리로 가자."
"어?!"
혹여 강현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내려다보고 있던 것도 잊고 이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용하게 얘기할만한 곳이어야 할 텐데 그렇다고 사내 둘이 이 시간에 커피숍은 좀 그렇잖아."
"얘들은 어쩌고……. 간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어?"
"먼저들 가있으라고 했지 간다고는 안했는데."
태연히 말한 강련이 이영의 팔을 잡아끌었다.몇 걸음 끌려가던 이영이 중얼거렸다.
"얘들 기다릴 텐데……."
얘들 중에서도 특히 진아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영은 이미 제발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조금 기쁜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
'송!'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이영이 몸을 돌렸다.
'이번 학기 복학했냐?'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눈을 기름하게 뜨며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어느새 제 앞에 와서 선 녀석은 분명 과 동기, 이재황이었다.
'너도?!'
되묻는 이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부분 제 동기들은 1학년을 알차게 놀다가 군 입대를 해버리거나, 아니면 졸업 후 산업체에 기술적으로 복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영은 2학년 2학기를 마친 후에 군대를 간데다 제대한 뒤에도 일 년을 더 휴학한 탓에 이영의 동기들은 거의 졸업을 한 상태였다.
기껏해야 몇 번 동기들과 어울리던 자리에서 함께했던 사이지만, 아는 이 하나 없이 외롭던 학교에서 이렇게 낯익은 얼굴을 마주하니 마치 십년 전에 헤어진 형제를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재황은 이영의 기쁨을 태연히 짓밟았다.
'뭔 소리야. 졸업한지가 옛날이다. 지금은 대학원.'
'안 돼!'
한 껏 기대에 부풀었던 이영이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그림마냥 볼을 늘어트렸다.
'혼자 다니려니 힘들지?'
시무룩해진 이영이 안쓰러웠던지 재황이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게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냐. 하나도.'
'당연한 거 아냐?'
한심하다는 표정에 발끈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아는 얼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지만.
'대체 건축공학이 왜 2학년 전필인건데? 그럼 전필에서라도 빼주던가. 나 같이 휴학 오래한 놈은 듣지도 말란 거야, 뭐야?'
휴학하기 전엔 분명 3학년 전공필수였던 건축공학이 복학을 하고 나니 2학년 전공필수 과목으로 바뀌어 있었다.
'맞다. 건공이 2학년 전필로 바뀌었지? 그래도 작년까지 못들은 3학년들 위해서 인워수 좀 열어줬는데, 올해는 그것도 없어졌나보네?'
'……없어.'
덕분에 2학년들에게 밀려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내년이라고 다들 것 같지도 않고 이러다가 잘하면 졸업도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내가 조교한테 말 좀 해줄까? 자리 하나만 빼달라고?'
이영의 눈이 번쩍 띄었다.
'너 조교랑 잘 알아?'
'당근 나랑 수업도 같이 듣는데?'
오오. 재황을 보는 이영의 눈에 감탄의 빛이 번졌따. 그나마 대학원 다니는 친구라도 있으니 좋은 점이 있구나 싶었다.
'뭐 어떻게, 빼달라고 해줘?'
'어, 제발요.'
한껏 거드름을 피며 묻는 재황에도 이영은 냉큼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미안하다야.'
큰소리 뻥뻥 치고 갔으니 그냥 돌아오기 민망했던 것은 알겠다. 하지만 안 되면 그냥 올 것이지 나름 수습한답시고 건축학과 전공 수업에 자리가 있길래 거기에 넣어뒀단다. 실내 건축과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가의인데, 그것도 모자라 건축학과 전공반에 끼어 수업을 듣게 생겼다.
기가 차서 입만 뻥긋뻥긋 거리고 있으려니 재황이 수습한답시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그 교수 점수는 잘 준대.'
'그럼 니가 듣던가'
'난 졸업했잖아.'
'…….'
얄밉지만 대꾸할 말이 없다. 잠시 뱁새눈을 뜨고 있던 이영이 슬그머니 물었다.
'진짜 잘 준대?'
끙.
막 계산을 끝내고 확인을 하던 아영이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또 틀렸다.
아무리 전공 이수학점이 간당간당하다 하더라도 그냥 내년으로 미룰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따. 안 그래도 어려운 강의를, 건축학과 전공인 사람들 사이에 껴있으려니 그나마도 없던 의욕이 뭉텅뭉텅 뽑혀나간다. 수업도 이렇게 겨우 따라가는데 시럼은 어쩌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게 강의자체가 어려운건지, 제가 삼년을 쉬어서 인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이영은 중간 과정 없이 답만 알려주고 넘어가버리는 아주 단순한 계산부분에서부터 끙끙대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랬다. 아무리 몇 번을 계산해도 교수가 적어놓은 저 답이 죽어도 안 나온다. 이 수식으로 푸는 거 아닌가? 맞는데. 괜스레 책을 뒤적뒤적 거리고 있던 찰나.
'이거."'
불쑥, 제 노트 한 쪽을 짚어노는 손가락.
이건 또 뭐야. 왜 남의 노트에 손을 대고 지롤. 괜스레 부아가 나서 미간을 찌푸리는 이영을 비웃기라도 하듯 뒷말이 덧붙여졌다.
'점 잘못 찍었는데.'
'뭐?!'
황급히 손가락-잘 정리된 손톱이 반징반징했다.-이 짚은 부분을 들여다보니 정말 아주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보였다. 이러니 정답이 나올 턱이 있나. 덕분에 지금까지 계산한 것들은 모두 도로 아미타불.
'끙.'
다른 것도 아니고 축척부터 다시 할 생각을 하니 절러 앓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혼자 얼굴을 찌푸리던 이영은 뒤늦게 틀린 것을 알려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그나마 지금에서라도 안 것이 어딘가.
그런 것도 모르고 하마터면 짜증을 낼 뻔했다고 다소 죄책감을 느끼면 고개를 돌리던 순간 이영은 그대로 굳었다.
-!!!
일순 머리가 하얗게 비는 느낌.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제 옆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다가 이영의 시선을 느꼈는지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상대롸 눈이 마주쳤다.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친 이영의 눈이 다시금 휘둥그레졌다.
왜? 눈으로 묻는 상대에 이영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고, 맙습니다.'
그런 이영을 묘한 눈으로 빤히 보던 상대가 아시 한 번 긴 손가락으로 노트의 다른 쪽을 쿡,하고 눌었다.
'여기도 틀렸다.'
'엑?'
심지어 이번엔 덧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1학년이 듣기엔 좀 어렵지 않나.'
강의가 끝나고 막 건축학과 건물을 나서려는데 떡하니 입구에서 담배를 물고 있던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무의식적으로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설마 제가 어려 보여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테고.
'1학년 아닌데요.'
'2학년?'
그냥 2학년이라고 할까.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지기라도 하면 그게 더 꼴사납다. 마음을 접고 순순히 대답했다.
'3학년, 인데요.'
'…….'
3학년이나 된 게 그런 기초적인 계산조차 못한다고?
물론 입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표정을 감출 생각조차 않는 상대에 순간 울컥하긴 했지만 사실 무시당해도 할 말이 없긴 했다.
'처음 본 얼굴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대에게 이 변명을 했다.
'전 실건축인데 저희쪽 전공은 다 차서요.'
'그래?'
변명하는 이영과는 달리 상대는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쥐고 있던 담배를 입술로 물고 불이 홀쭉해질 정도로 담배를 빨아 들였다가 다시 후, 하고 연기를 내뿜는다. 그 모습을 이영은 멍하니 바라본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다. 하긴 처음 봤을 때 연예인 인줄 알고 깜짝 놀랐으니 말다했지.
옆모습이 완전 조각이다 싶었는데 정면은 더하다.
남자 피부가 어떨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맑고 투명한 우윶빛을 띠는데다가 얇게 쌍꺼풀 진 눈이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 때문에 눈 아래 음영이 졌다.
높고 곧게 쭉 뻗은 코는 괜스레 낮디 낮은 제 콧잔등을 만지작거리게 했다.
'왜?'
빤히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멍하니 허공을 향하던 시선이 제 쪽을 향했다. 몰래 훔쳐보던 제 눈과 산대의 새카만 눈동자가 바로 마주쳤다.
-두근
순간 제 심장에서 묘한 소리가 울렸다.
이거, 뭐야. 설마 나 지금 심장이 두근거린 거야? 손을 들어 올린 손바닥으로 심장께를 만지작거렸지만 그 이후로는 반응이 없었다.
착각이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영이 입을 열었다.
'근데.'
막 담배를 자시 입으로 가져가려던 손이 멈추고, 새까만 눈이 이영을 향한다.
말해.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눈동자조차 명령조인 상대의 태도에 이영이 불퉁하게 말했다.
'언제 봤다고 아까부터 자꾸 반말인데?……요.'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마주보고 서니 제 머리 하나는 더 위에 있었다. 이영도 작은 키가 아닌데 왠지 모를 위압감에 점점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호기롭게 말을 꺼낼 때와는 달리 마지막엔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그런 이영을 잠시 어이없다는 듯 물끄러미 보던 상대가 한일자로 굳게 닫혀있던 입술을 벌렸다.
'왜? 꼬와?'
'…….'
진짜 잘생긴 놈은 뭘 해도 멋있구나. 그 순간 이영이 생각한 것이었다.
이렇게 동네 양아치 같은 대사를 내뱉는 것도 멋있어 보이다니! 역시 세상은 불공평했다. 이영이 혼자 열폭하고 있는사이, 상대가 담배 끝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탁탁, 털어 끄며 덧붙였다.
'꼬우면 너도 까던다.'
'어. 그럴까, 그럼?'
까라면 까야지요. 곧바로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영에 잠시 멈칫했던 상대가 피식, 하고 웃는다.
두근.
답지 않게 눈꼬리가 살짝 주저앉는 그 선한 웃음에 또 한 번 이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이래. 이거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생고한 감각에 이영이 가슴께를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 이름이 뭐야?'
그런 이영에게 상대가 물었다.
'남의 이름 묻기 전에 자기 이름부터 밝혀야 하는거 아닌가……요?'
요거 봐라? 하는 눈빛에 움찔해서 마지막엔 또 말을 높였다. 사실 좀 전의 그 선한 웃음으로 상대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잘못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취소를 해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그런 이영을 빤히 보던 남자가 불쑥 말했다.
'우강현.'
……헤에?
살짝 팔을 움직이는 강현에 움찔해서 몸을 뒤로 물렸던 이영은 뒤늦게 남자가 순순히 제 이름을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려고 들어 올렸던 손이 민망해졌다. 쫄았다는 것은 들키지 않기 위해 원래 머리를 쓸어내리려고 했다는 듯 제 머리를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그러나가 여전히 저를 빤히 보고 있는 시선에 이영이 다시 살짝 쫄았따.
왜. 뭐. 나 암 것도 안했는데.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만 있자 남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밝히래서 내 이름 밝혔잖아.'
아. 그제야 제 이름을 말하라고 그러는 것임을 깨달았다.
'난, 송이영.'
'…….'
이영의 대답에 일순 강현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이어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강현에 이영도 잠시 긴장했다. 하지만 그런 이영을 향해 정작 상대가 한 말을 뜬금없는 소리다.
'혹시 귀여운 척하는 거야?'
뭐래. 미묘한 표정이 된 것은 이영도 마찬가지. 얼굴을 찌푸리는 이영을 향해 강현이 자시 물었다.
'설마 진짜 이름?'
아. 그제야 이해했다.
이름 때문에 어렸을 때는 놀림도 많이 당했다. 특이하긴 해도 귀여운 이름은 아닌 거 같은데. 하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좀 특이하지?'
'……좀이 아닌 거 같은데.'
'그래?'
어렸을 때야 뭐든 놀림거리가 되는 거니까 그렇지, 사실 한글이름같은 거 보다는 덜 특이한 편이지 않나 싶었지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거니까. 그렇게 이영은 중요한 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