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읍! 도련님,, 조금만 더 왼쪽으로… 아~~ 거기,, 거기.. 하아~~”
가방을 던져 놓기가 무섭게 형수님과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육체적인 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나나 형수님이나 서로가 원하는 바를 관계 중에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실행했던 것이었다.
“혀 끝을 조금만 더 세워서…. 아.. 앗……… 좋아요.. 그렇게.”
형수님은 내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나는 형수님의 사타구니 안에서 양 손으로 형수님의 꽃잎을 벌리고서 클리를 애무하고 있었다.
“혀를 빙글빙글 돌려주세요. 아~~ 그렇게…”
똑 같은 행위라도 몸의 상태에 따라 자극의 강도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구지 말하지 않아도 7~8할 정도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어림짐작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막 그것을 알아가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형수님의 리드에 따라 나는 행동으로 그것을 실행해 보였다.
물론 서로의 요구를 실행한다는 것 자체가 더 많은 자극을 이끌어냈고
더 뜨거운 육체적 쾌락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어떤 요구를 말로 표현한다는 자체도 전에 없던 색다른 자극이 되었다.
또한 나의 테크닉을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음에도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혀를 넣어 주세요. 아……흠~~~~ 클리는 손으로… ”
혀는 질 속 얕은 부분을 부지런히 헤집었고 엄지 손가락은 부드러운 터치를 감행했다.
형수님은 자신의 양 발목을 잡아 당기고 육체로 전해지는 쾌락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도련님,,,, 저 할 것 같아요……”
이 말은 언제나 나를 폭주시켰다.
육체적인 절정은 고스란히 형수님의 것이 되지만 정신적으로는 나 역시 절정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한번으로 그치는 적도 없었다.
형수님의 절정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시작이었고 과정이었다.
“아~~~~~~흡!!!!!!!!”
형수님은 드디어 첫 번째 맞이 하는 절정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닫힌 눈꺼풀 위로 입술을 스치며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윽고 형수님의 호흡이 잃었던 리듬을 되찾자 몸을 빙글 돌리며 내 몸 위로 올라탔다.
키스와 젖꼭지를 농락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배꼽을 향해 발기되어 있던 페니스가 형수님의 꽃잎 사이를 보고 삽입의 욕구를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님은 마치 그걸 알기라도 한 듯이 내 배 위에 걸터앉았던 엉덩이를 뒤로 움직여 그대로 삽입을 시도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귀두가 꽃잎 사이에 걸렸다.
형수님은 인상을 찡그리며 엉덩이를 점점 뒤로 밀었다.
동시에 질 속으로 페니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의 엉덩이와 허벅지가 절로 굳어졌다.
“흐~~~음!!!!”
“아~~~ 형순님!!!!! 너무 좋아요.”
형수님이 내 가슴에 양 손을 대고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들썩였다.
페니스에서 시작된 자극이 온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뒷골이 뻐근해지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형수님은 내 가슴 위에 손을 거두어 자신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시각을 자극하고 육체적인 자극과 뒤섞였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형수님의 들썩임이 빨라지고 경미하게나마 나도 아래에서 그 리듬을 맞춰봤다.
형수님은 다시 내 복부 위를 손으로 받치고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자극이 강해질수록 몸이 앞으로 쏠리며 움직임이 둔해졌다.
나는 그 틈을 파고 들어 엉덩이를 재빠르게 튕겼다.
아래에서부터 격렬한 삽입을 시도했던 것이다.
형수님과 나의 양손은 깍지 껴진 채로 서로의 중심을 조절하면서 계속해서 연속적인 삽입을 이어갔다.
“도련님,, 나 어떡해… 아~~~ 죽을 것 같아~~~”
“아흐~~~~ 형수님!!!!!”
한 손으로 형수님의 등을 감싸고 몸을 빙글 돌렸다.
그리고 귀두부터 음낭으로 이어지는 페니스 뿌리까지 천천히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우들두들한 질 벽이 그대로 전해졌다.
“왼쪽,,, 왼쪽이…”
왼쪽 질 벽이 긁힐 때 더 많이 자극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엉덩이를 사선으로 움직이며 귀두로 왼쪽 질 벽에 거대한 마찰을 만들며 삽입을 이어갔다.
“조금 더,, 조금 더 빠르게.”
나는 형수님의 말을 조금도 거스르고픈 마음이 없었다.
형수님의 흥분 게이지가 올라갈수록 나의 게이지 역시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수님의 이런 리드가 결국엔 나에게 더 큰 쾌락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었다.
나는 형수님의 다리를 내 양 어깨에 걸치고 허벅지를 강하게 감쌌다.
그리고 형수님 엉덩이 바깥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펌프질을 시작했다.
이 자세는 페니스로 전하는 질의 조임을 자연스럽게 강화시켰다.
나는 눈을 감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엉덩이를 움직였다.
형수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하고 쾌락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번엔 형수님을 옆으로 누이고 그 등뒤에 나란히 누워 후배위를 진행했다.
다른 자세와는 다르게 온 몸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 좋았다.
특히나 앞 허벅지의 터치에 민감한 나로써는 색다른 희열을 맛볼 수 있기도 했다.
형수님은 잠시 고개를 돌려 내 입술을 덮치다 내 엉덩이가 갑작스레 빠른 움직임을 보이자
이내 고개를 돌리고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그리고 한 손으론 자신의 입을 덮고, 다른 한 손은 내 골반을 넘어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형수님 너무 섹시해요.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으~~~흠….”
“형수님! 제 자지 좋아요.”
“네, 너무 좋아요. 도련님은 제 보지 좋으신가요?”
“네,,,,너무 너무 좋아요.”
이제 음탕한 말들도 스스럼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선사하는 자극이 육체 행위를 더욱 완벽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적절히 사용하고 있었다.
“아~음…. 도련님 저 물 너무 많이 나오죠?”
“네, 질척거려요. 그래서 더 좋아요.”
“아~~~~ 도련님,, 저 또 느낄 것 같아요.”
나는 다시 기본적인 자세로 돌아가 형수님의 위에서 열차바퀴 돌아가듯 엉덩이를 돌렸다.
“아~ 더 빨리….”
형수님은 침대시트를 쥐어 뜯으며 연신 빨리 빨리만 외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희열에 다다르는 길목에선 다른 어떤 움직임보다 간결하고 빠른 움직임이 절정의 극으로 직행하게 했다. 형수님의 몸이 한번 물결쳤다.
나보다 한 타임 먼저 절정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형수님의 절정은 그 끝에서 재빠르게 떨어지는 남자들과는 달리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벌어진 형수님의 다리를 모으고
그 허벅지 바깥을 내 허벅지 안쪽으로 강하게 모으며 펌프질을 계속했다.
마치 도끼로 내려찍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덕분에 나의 절정도 코 앞에 다가왔다.
이제 엉덩이는 몸이 시키는 대로 재빠르게 움직일 뿐이었다.
“으~~~~~~~~~~헉!!!!!!!!!!”
“아~~~~~~~~~~악~~~~~”
귀두가 질 속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정액을 마구 뿜어냈다.
형수님의 질 벽도 사정을 돕는 듯이 조이고 풀기를 강하게 반복했다.
그 외에 우리 몸의 다른 부분들은 그대로 돌처럼 점점 빳빳하게 굳어져 갔다.
형님의 출장기간 동안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쾌락만을 뒤 쫓았다.
형님이 돌아와서도 낮 시간만큼은 육체의 향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오히려 약간의 불안이 우리의 희열을 더욱 고조시켰다.
하지만 쓸데없는 모험은 절대 하지 않았다.
진정한 고수는 살기를 자신 속으로 거두어 들인다고 했던가?
우리는 분명 고수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앞에선
약간의 의심도 만들지 않으려 철저하게 서로를 인식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만을 향유할 뿐이었다.
형님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집에서도 그리고 형수님에게서
형님보다는 내가 더욱 커다란 존재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시작이 있으면 끝도 존재한다.
다만 그 시기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우리의 관계도 영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이별은 조금 갑작스러웠다.
형님의 사업 때문에 중국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국외가 아니라 국내 어디론가 이사를 한다면 가끔이라도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바다를 건넌다는 사실이 우리의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의 관계가 진했던 만큼 그 끝도 확실하게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 이 집엔 형님의 여동생 가족들이 들어와 살게 될 것이었다.
형님과 형수님은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여동생 가족들과 살라고 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형수님이 없는 곳에서 형수님의 향기와 환영을 쫓게 될까봐 두려워서였다.
날짜는 10월 말의 어느 날로 정해졌다.
형님이 10여일 전에 먼저 중국으로 넘어갔고 형수님이 10여일 뒤에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형님이 먼저 떠나고 없는 그 10여 일간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는 마지막을 불태웠다.
하지만 처음으로 헤어짐에 대한 가슴아픔을 직면하고 있어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은 욕정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을 좀 더 화려하게 보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기야 지금인들 이별 앞에서 담담하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 만
형수님을 조금 더 마음 편히 보내드리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가슴을 허하게 한다.
4~5년 전에 서울 테헤란로를 지나다 인연의 끈을 이어주었던 선배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형님 내외가 아직도 중국에서 산다는 이야기와
형수님이 쌍둥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형수님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르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회가 있어도 그 기회를 잡지는 않을 것이다.
그 8개월간의 기간이 이생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인연의 시간이었고
지금은 돌이켜선 안될 내 삶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