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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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통의 편지가 일주일간의 두려움과 고통을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만들어 버렸고 난 곧 일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6월로 넘어가자마자 아파트 근처에 있는 실내 수영장 강사 자리가 났다. 

월, 수, 금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파트 타임 알바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첫날 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순간 풀 반대쪽에서 

입수를 준비하는 형수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기초반 수업이 끝나고 한산해지는 시간을 골라서 왔던 듯 했다. 

나는 일부러 아는 체 하지 않고 풀 반대편 한 켠에서 형수님을 지켜보았다. 

생각 외로 형수님 수영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수영선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은 수영을 그만 둔 이유가 큰 가슴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내용을 알리 없는 당시로썬 형수님 수영실력에 

적지 아니 놀라서 장난 쳐볼 생각을 바로 접어버렸다. 

형수님은 25m 길이의 풀을 10회 왕복한 후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그 틈에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형수님은 놀라는 동시에 매우 반가워했다.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그 시간이면 알바와 상관없이 형수님과 수영을 하고 같이 집으로 갔다. 

참고로 수영복 입은 형수님의 몸매는 정말 환상이었다.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주말을 이용해 서울 집에 들렀다 왔다. 

밤이 늦었던 터라 형님 내외가 자고 있을 것 같아 조용히 들어가려 했는데 

불 꺼진 거실에서 형수님 혼자 TV를 보고 계셨다.

“다녀 왔습니다.”

“잘 다녀 오셨어요? 집에는 별일 없구요?”

“네.”

말투도 표정도 형수님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냥 내 방에 쑥 들어가기가 미안해져서 일부러 말을 이었다.

“형님은 주무시나 봐요.”

“아니요, 안 계세요. 식사는 했어요?”

“예 집에서 먹고 왔어요.”

“그럼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 주무셔요.”

“네.”

내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 입으면서도 형수님의 모습이 평소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운 빠져 보이기도 했고, 우울한 표정 같기도 했고, 

아무튼 고속버스 안에서 잤던 탓인지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아 스탠드 조명을 키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노크 소리와 함께 형수님의 음성이 들렸다.

“도련님, 주무세요?”

“아니요. 잠시만요.”

윗도리를 걸치고 문을 열었다.

“잠이 안 와서 책 읽고 있었어요.”

“그럼 저랑 술 한잔 하실래요?”

거실엔 TV를 켜 놓은 채 주방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학교 생활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 등 특정한 화제 없이 닥치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딱히 크게 웃긴 이야기는 없었지만 형수님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형님은 주말인데도 거의 못 쉬시나 봐요. 일요일도 야근이라니.”

“오늘은 야근 아니에요. 휴가 받아서 4일 동안 제주도 간 거에요.”

“형님 혼자요?”

“아니요, 시어머니 칠순이라 식구들끼리 간 거에요.”

“형수님도 휴가 내서 같이 가시지 그러셨어요.”

“저 휴가 낼 필요 없어요. 이번 주로 일 관뒀거든요.”

“그럼 왜 같이 안 가셨어요.”

형수님은 대답 대신 빙긋 웃음을 짓곤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뒤,

“시어머니께서 절 안 좋아하세요.”

“네? 왜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의 철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이랑 저랑 결혼 7년째인데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애가 없어서요. 게다가 형님은 3대 독자거든요. 집안에 대를 제가 끊는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갑자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 앉았다. 

형수님의 표정은 이미 달관한 듯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내 자신이 어렸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수술 같은 거로는 안되나요?”

“두 번이나 했는데 모두 실패 했어요. 오히려 우울증만 심해졌죠. 작년까지만 해도 많이 힘들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일에 부대끼고 사람들에 치이다 보니 다행이 지금은 괜찮아 졌어요.”

“그럼 이제 아이는 못 갖는 거에요?”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사실 형님이나 저나 불임은 아니래요. 그래서 일단 자연임신에 기대하고 있어요. 결혼 10년 넘게 애 안 생겨서 포기하고 살다가도 갑자기 임신하는 경우도 있다니까.”

그 때 당시의 나이로썬 이해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형수님이 측은해 보인 건 사실이었다.

“도련님,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어요. 이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해요.”

내 표정이 어느새 굳어져 있었던가 보다. 우린 다시 맥주를 마시며 화제를 돌렸다. 

그 때 고2때까지 수영선수였다는 것과 그만두게 된 이야기, 1년 동안 미치듯이 공부해서 

대학 들어간 이야기들을 순서대로 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맥주는 동이 나고 양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도련님은 여자친구 없어요?”

나도 그랬지만 형수님 얼굴도 알코올에 취해 불게 물들어있었고 혀도 살짝 감겨 애교 있는 말투가 되어있었다. 

“네.”

“왜 그럴까? 내가 보기엔 여자들한테 인기 많을 것 같은데.”

“형수님처럼 생각하는 여자들이 없나 보죠.”

“아니에요. 수영장 탈의실에서도 아줌마들이 도련님 이야기를 얼마나 하는데요.”

“그럼 아줌마들만 좋게 보는 건가?”

“ㅎㅎㅎ, 도련님 또래들은 없으니까 그런 거죠. 있었음 서로 눈길 줬을 거에요.”

“근데, 아줌마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잘 생겼다느니 멋있다느니, 섹시하다면서 듣기 민망한 이야기들도 하구요. 왜요? 아줌마들한테 관심 있어요?”

“ㅎㅎㅎ.”

“싫진 않은가 보네.”

“ㅎㅎ, 저 좋다면 아줌마가 문제겠어요. 대신 좀 이쁘면 더 좋구요.”

“역시 남자는 나이가 드나 어리나 이쁜 여자만 좋아해.”

“근데, 섹시하다는 말이 남자한테도 해당되나요?”

“그럼요. 그걸 말이라구.”

“어떤 남자가 섹시한 남자에요?”

“아줌마들이 도련님보고 섹시하다고 했으니 도련님 같은 남자가 섹시한 거겠죠.”

“난 진짜 모르겠는데. 수영복만 입고 있어서 그런가?”

“ㅎㅎㅎ 그렇게 따지면 전 더한 것도 봤는데.”

형수님은 한참을 웃었고 술에 붉어진 내 얼굴은 쪽 팔림이 더해 더욱 붉어졌다.

“창피해 하시긴,, 남자들 그러는 거 처음 봤지만 저도 이제 결혼 7년 차 아줌마라 다 이해해요. 자 한잔 해요. 원샷 이에요.”

형수님은 식탁에 놓여진 내 잔에 건배를 하고 스트레이트 잔에 가득 따라진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나 내 잔이 빈 잔이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형수님이 제법 취해 있었던가 보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형수님은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도 비가 왔죠?”

“네?”

“요즘도 자위 하세요?”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해 있었다. 

난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었지만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는 생각에 조용히 대답했다.

“네.”

대답을 들은 건지, 아닌 건지 그녀는 다시 한 참을 침묵했다.

“그 일 있고 나서 이틀 후가 제 배란일 이었어요. 그이랑 아이를 만드는 날이었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시 술을 들이킨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련님은 아직 모르시겠지만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건 부부에게 많은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우리에겐 아이 만드는 의미 외엔 아무것도 아니죠. 언제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것 같아요. 느낌도 없고 감정도 없어요. 그런데도 애를 가져야 한다는 것 만으로 살을 섞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싫은지……”

나는 진지하게 듣고 있기는 했지만 형수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해하거나 공감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런데,,, 다시는 그이와 감정을 나눌 수 없을 줄 알았는데……”

“……”

“도련님 덕분이에요.”

“네?”

“그 날도 처음엔 아무 느낌 없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도련님 자위하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민망하지만 거기서 자극을 받았어요. 제가 반응을 보이니까 그이도 달라지더군요. 몇 년만이었는지! 아무튼 그이는 그게 아이가 생길 신호라고 생각하나 봐요. 제가 일을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잘 되었네요. 그럼 이번엔 꼭!”

그러나 형수님의 얼굴엔 그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그 날 이후 매일 잠자리를 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어요.”

형수님은 다시 술잔에 입을 갖다 대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께요.”

나는 방을 비워달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런 상황이고 보면 건너 방에 있는 내 존재가 거슬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형수님은 전혀 의외의 말을 꺼내 나를 당황시켰다.

“도련님 자위하는 모습 제게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절 미친년이라고 욕해도 좋아요. 하지만,,,”

그 순간의 형수님 눈빛은 술에 취해있었지만 슬픈, 그것을 넘어선 절박함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더 말하지 않아도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스스로 끌어낼 수 없는 욕정을 끌어내 달라는 것이라. 

하지만 난 두려웠다. 경험이 많아진 지금에도 그런 상황을 의연히 대처할 자신이 없다. 

거기엔 많은 인간관계가 얽혀져 있고 상상도 못해본 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형수님은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나는 그런 형수님을 안아 올려 안방 침대 위에 뉘였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내 감정 때문일까? 잠이 든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은 슬프고 애처로워 보였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형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보다 그와 관계된 잡다한 일부터 

내가 가진 정리되지 않은 관념들이 좁은 책상 위에 한꺼번에 펼쳐진 꼴이었다.

다음날 친구에게 기름 만땅 채워주는 조건으로 차를 빌려 바다를 찾았다. 

그러나 드넓은 바다 역시도 내게 답을 내 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젯밤 잠을 설친 후의 피로가 몰려왔다. 

의자 등받이를 제치자 금새 잠이 쏟아졌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의자 등받이를 바로 세우는 순간 아랫도리가 뻑뻑해져 아팠다. 

자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잠에서 깰 때 경험하는 자연발기상태가 되었던 탓이다. 

순간 어지럽게 널려져 있던 머리 속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물적인 본능,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본능에 모든 걸 맡겨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깨달음이 아니라 이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변명거리를 찾은 데 불과하지만 내 마음은 굳어졌다. 

그렇게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나니 서둘러 돌아가고 싶었다. 

묘한 흥분과 기대들로 이 길을 오던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에 설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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