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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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편

선글라스를 내려 깔고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날 쳐다 보는게 무지 귀엽다. 많이 반가와 웃었는데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낯익지 않은 모습이었나 보다. 그녀는 나처럼 웃지를 않았다. 잊혀 지는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꿈만 같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음."

 그녀가 말하기를 머뭇거린다. 상관없다.

 "너무 반갑다."

 "진짜에요?"

 "그럼요. 잊어 버리지나 않을까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갈 때는 말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가 놓고서는."

 "네?"

 "연락처라도 남겨 놓고 갔어야지 그냥 가면 어떡해요?"

 "미안해요. 경향이 없어서."

 "며칠동안 경향이 없어서 전화 한 번 없었어요?"

 "죄송. 한다 하는 것이 늦어 버렸어요. 내가 어디로 이사한지 궁금했지요?"

 "별로."

 무안하게스리... 내가 이렇게 반가운 모습 보이면 자네도 좀 반가운 척 웃어봐라. 그녀는 별로 반가운 표정은 아니다.

 "여기 근처에 일이 있었나 봐요?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덜 걱정했을건데."

 "우연으로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우연같다.

 "참 어디로 이사했던 거에요?"

 "내가 이사한 것은 아나 보네."

 "네. 집들이 안해요?"

 "안해요. 동엽씨는 어디로 이사했어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저 자취해요. 아무래도 하숙해서는 밥 먹을 시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자취해요?"

 "네."

 "제대로 해요?"

 "그럼요. 내 자취방 분위기 좋아요."

 "대충 상상해 보니까, 음 엉망일 것 같네요."

 "진짜 분위기 괜찮은데..."

 "동엽씨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그렇게 말하시고 여하튼 저도 만나게 되서 반갑네요."

 그게 반가운 표정이냐? 꼭 말하는 투가 가 버릴 것 같다. 내 자취방 구경 시켜 주고 싶은데...

 "가시게요?"

 "네, 아직 울 언니가 한국에 있어요. 일찍 들어 가봐야 돼요."

 "그럼 연락처라도 하나 주시고 가세요."

 "아직 전화가 없어요. 음..."

 "무슨 할 말 있어요?"

 "동엽씨도 연락할 만 한 거 없죠?"

 "네."

 "기왕이면 통신장비 하나 구비해라. 휴대폰 시대에 어떻게 전화도 없냐."

 반말인거 같다? 그래도 반갑기 때문에 참았다.

 "나영씨도 없잖아요."

 "나는 곧 내 방에 전화가 설치될 거에요. 동엽씨랑 비교하지 마세요."

 "그래도 그냥 가 버리면 언제 다시 보나? 어디로 이사 간거에요?"

 "연락할 맘은 있는거에요?"

 "네."

 "그런데 왜 이사할때는 간단 말도 없었고 어디로 이사갔단 연락이 없었을까?"

 "그때는... 잘 몰라서 그랬어요."

 "뭘 몰라서? 우리 집 전화번호 잊어 버렸어요?"

 "그건 접어 둡시다. 에...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일요일날 시간 되면 함 만납시다."

 "어디서요?"

 "시간은 되세요?"

 "그럭저럭."

 "우리도 이런 후진 동네서 만나지 말고 강남이나 종로 쪽 극장가나 대학로나 남들 자주 가는 곳에서 만납시다."

 "나는 그런 곳에 자주 가요."

 "그렇습니까?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음...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요?"

 허허, 나도 여자가 먼저 영화 보러 가자는 말을 들어 보네.

 "그럽시다. 무슨 영화 볼까요?"

 "요즘 무슨 영화가 인기에요?"

 "모르는데요."

 "누가 백수 아니랄까봐."

 "극장 가면 볼 영화 없겠어요? 한시쯤에 서울 극장에서 보실래요?"

 "한시쯤 서울 극장이요? 이 번 일요일 말이지요?"

 "네."

 "그럼 그 때 봅시다. 안녕."

 그녀가 깜찍한 인사를 하고는 등을 돌렸다. 참 쉽게 돌아서 버리네. 그래도 다시 만날건데 뭐. 어디로 이사한 지는 결국 가르쳐 주지 않고 가버리는 구나. 쩝.

 허허, 나는 히죽 거리며 그녀의 멀어 지는 모습을 보며 섰고, 그녀는 자주 뒤를 돌아 보며 멀어져 갔다. 돌아설때는 쉽게 돌아서더니 가면서 왜 자꾸 뒤돌아 보는 것일까? 헤헤, 기분 좋다.

하마터면 잃어 버릴 뻔한 나영이를 다시 찾았다. 뭔가 그녀와는 인연이 있나 보다. 이렇게 길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가만 그녀가 예전에 울 학원 앞을 한 번 왔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일부러 나 찾으러 왔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말하는 표정으로 봐서는 전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찌됐던 만났다는 것이 중요했다. 짧은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혀 놓으니까 하숙집 그녀가 대학생처럼도 보인다.

잘 가시오,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내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 보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모습을 보니 좀 늙어 보이기도 한다. 진짜 늙어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녀의 모습에 비해서 말이다. 헐렁한 남방에 양복바지. 헝컬어진 머리가 내려와 내 눈에 비친다. 턱을 만져 보니 까칠하다. 대충 내 모습이 짐작이 간다. 나도 좀 젊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삼층 옥상까지 단번에 올라갔다.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자취방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컵라면 하나 끓여 먹고 오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신나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물론 노래 제목은 모른다.

 노래 리듬 따라 고개를 흔들다 옷을 벗었다. 좀 추한 행동이지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떠리. 사각 팬티만을 남겨 놓은 채 욕실로 들어 갔다. 욕실 문이 방안에 있는데 발가 벗고 간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낯을 씻었다. 쉐이브 크림이 없는 관계로 비누 거품을 만들어 얼굴에 묻혔다. 들리는 음악소리 따라 면도를 했다. 영화에서 보니까 분위기 있게 음악 소리에 맞추어 면도 잘만 하던데, 나는 고개 끄덕이면서 면도하다가 피봤다. 좀 따끔거리는게 아팠다. 함부로 따라 할 것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내 웃는 얼굴을 바꿀 수는 없었다.

기분이 좋아서 물 한 바가지 뒤집어 썼다. 어제 갈아 입었는데 씨, 앞으로 사흘은 더 입을 수 있는 빤스를 다 버렸다. 물에 젖은 빤스를 벗어 변기 옆에다 패대기쳤다. 기분이 좋아서... 저건 나중에 눈에 띄면 빨지 뭐. 아이 부끄러버라. 다 벗어 버렸네. 거울 보며 포즈 몇번 취하다가 물 또 뒤집어 쓰고 머리도

감고 나왔다.

 시원하다. 깨끗한 몸에 깨끗한 속옷을 입고 밖에 나갈때 입는 패션 추리닝을 입었다. 집에서 입는 저 추리닝은 좀 빨아야 겠다. 분위기 있게 담배를 물고 옥상으로 나가 내 소파에 앉았다. 담배 연기가 밤 하늘에 퍼져 간다. 오늘 그 잠시 봤다고 그녀 얼굴이 잘 그려진다. 서울 하늘이 다시 좁아 보였다. 그녀를 다시 만나는데 걸린 시간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흠, 성공할 수 있다. 아자! 아자! 아이씨, 조용히 하면 될 거 아녀.

 토요일은 일찍 일어나서 방청소를 했다. 신선한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오랜만에 밥을 앉혔다. 그 또한 신선한 기분 때문이었으리라. 즉석 육개장을 사서 햄조각이랑 달걀이랑 넣어 찌개도 만들었다. 그리고 청소 되어진 깨끗한 내 방에서 나만의 조찬을 즐겼다.

 옥상에 나가 정오가 가까워진 태양아래서 이단 옆차기 연습도 했다. 별 짓 다했는데도 시간은 빨리 가지 않았다. 심심하다. 약속 시간은 아직 스무네시간이 남았는데 지금부터 설레인다. 하숙하면서 자주 볼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 느낌이 좋다. 오후에는 미용실을 가 보자. 빨래도 해 볼까?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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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51 /305 날짜 1999년6월18일(금요일) 2:55:12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ㅡ 30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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