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편
주인 아주머니가 병세가 좋아지셔서 나영씨와 어디 산책이라도 가셨을까? 입원실 침대 앞에 잠시 앉았다. 주위가 어둡다. 입원실 사람들에게 아줌마의 행방을 물어 보았다. 한 시간 정도 전에 의사들이 아줌마에게로 달려 왔었다고 한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한 때와 비슷한 시각이다. 아줌마는 어디로 급히 옮겨지셨고, 그녀는 아주 어두운 표정으로 따라 갔었다 한다. 불안함이 음습했다.
입원실을 나와 간호사에게 물어 보았다. 잘 모른다고 했지만 급하게 실려 갔으면 복도 끝 꺽이는 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매캐한 약냄새, 꺽이는 곳에서 보이는 수술실이라는 푯말이 겁이 난다. 복도는 끊겨 있었다. 복도를 막고 있는 한짝의 문. 열기가 겁난다.
문을 열었다. 다시 살아난 복도의 한쪽에서 넋이 빠진 모양으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로는 모자라 콧물까지 흘린 채로 멍하니 앉아 있다.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나영씨."
그녀는 내가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앉아 있다.
"나영씨."
한번 더 불러 보았다.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의 모습이 아주 낯설다.
"무슨 일이에요?"
넋이 나갔던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찌그러지더니 소리나지 않는 울음을 지었다.
"엄... 엄마가 죽었어요."
무슨 소리 하는거야?
"네?"
되물을려고 할 찰나에 그녀가 앉아 있던 맞은 편 수술실의 문이 열였다. 거기서 하얀 붕대에 묶여진 시신하나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 그녀의 소리 나지 않던 울음이 선명한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양두숙씨 보호자 분께서는 영안실로 가셔서 사후처리를 하십시오."
금방 나온 시신은 하숙집 주인아줌마였다. 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했던 때가 한 시간 좀 더 지났을 뿐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아줌마의 모습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이불이나 좀 덮어 주지. 아줌마의 모습은 관에 들어 가기 바로 전의 묶인 모습으로 이동 침대위에 놓여져 있었다.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잘 모르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는 일어 서다가 땅바닥에 덜썩 주저 앉아 버렸다.
"담요 같은 걸로 덮어 줄 수 없어요?"
침대를 끄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복도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는 그 사람이 별말없이 침대가 나왔던 방으로 다시 들어가 하얀 담요 하나를 가져와 아주머니를 덮어 주었다.
"보호자는 따라 오셔야 되는데요."
그녀는 엄마를 보지 못한 채 땅바닥에 앉아 흐느끼고 있다. 그녀의 슬픔을 짐작할 수가 없다.
"나영씨."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녀를 일으켜 복도 의자에 앉혔다. 침대 곁에 있는 사람은 그저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다.
"어디로 가는 거에요?"
"일단 영안실로 가야돼요."
"어떻게 된 거에요?"
"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그녀를 복도의자에 앉혀 놓고 침대를 끄는 사람에게 몇 마디 물어 보았다.
"나영씨. 보호자가 따라 가야 한대요."
그녀는 지금 현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상태다. 그녀에게 더 물어 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어찌 할 지 몰라하는 모습으로 지금 상황을 외면하려 들고 있다.
"나영씨 여기 있을 거에요?"
그녀는 대답없이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시간 없어요. 한 분이라도 따라 오세요."
침대 곁에 있던 사람이 답답했던지 재촉했다.
"제가 따라 갈게요."
그녀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며 일어 섰다. 그녀가 날 올려다 보았다.
"제가 일단 이 분을 따라 갔다 올테니 입원실로 가 있어요."
주인 아줌마의 침대가 움직였다. 그 사람을 따라 착잡한 심정으로 발걸음 때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가 나를 따라 걷고 있다. 잠시 서서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아 울음 소리를 참으며 남은 한 손으로 내 허리 옷자락을 잡았다. 주인 아줌마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아무말 없이 걸었다. 그녀가 이제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 오고 있다. 일반인들이 다니지 않는 복도를 따라 영안실로 왔다.
"남자분만 오세요."
영안실에 도착하자 그 침대 끌던 사람이 말했다. 영안실 앞쪽 편에는 몇 군데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었다. 장례식은 어떻게 치룰까? 막막한 생각이 든다. 날 따라온 그녀의 모습을 보니 더 막막하다. 그녀를 영안실 한 쪽편에 앉혀 두고 그 사람을 따라 갔다. 영안실 뒤쪽 철제로 된 문을 따라 들어 갔다.
"좀 잡아 주세요."
주인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냉동실에 갇히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번호표를 받았다. 아줌마가 갇힌 냉동실 번호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들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장례 준비할 때 까지 임시적으로 이 곳에서 시신을 보관하는 것이라 한다. 어제는 제법 주인 아줌마의 말씀을 들었었다. 그랬던 주인 아줌마의 모습이 내 한손에 들려 있는 번호표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것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
분주히 뛰어 다녔다. 그녀는 훌쩍 거리다가 내가 다가가면 멍한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묻는 모양새로 바라 보곤 했다. 장례를 어디서 할 지 영안실 관계자가 물었다. 하숙집에서 장례를 치루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가족이 아니었기에 그 일을 그녀에게 물어야 했다.
"나영씨. 어머님 장례를 어디서 치룰지 묻는데요?"
"집에서 치루어야지요."
그녀는 별 생각없이 대답을 했다. 여전히 멍한 모습이다.
"하숙생들도 있고, 집에서 치루기가 힘들텐데요. 날씨가 더워서 어머님한테도 안 좋을 거에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눈이 붉고 머리가 헝컬어진 그녀의 모습이 안스럽다. 그녀가 울먹 거린다.
"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이 안 떠올라요."
"일단 여기서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하고, 곧 나영씨 언니가 올테니까 다음 일은 언니가 오시면 상의를 해 보세요. 다른데 연락 할 때는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 동엽씨가 좀 해주시겠어요?"
허,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장례는 일단 영안실에서 하는 것으로 해야 겠다. 그녀 자신이 해야 할 일인데, 내가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럼, 장례는 여기서 모시는 것으로 할게요."
그녀를 두고 이리 저리 또 분주히 뛰어 다녀야 했다. 배가 고프다.
노을이 물들어 갈 무렵 영안실 한 켠에 주인 아줌마의 장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하지만 장례식에 필요한 주인 아줌마의 사진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다. 단지 향만 피워둔 채 이곳이 주인 아줌마의 장례장이다라는 표지만 붙었을 뿐이다. 영안실에서 음식은 주문만 하면 대신 해 준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이제 한계가 온 듯 싶다. 참 똑똑해 보이던 그녀가 오늘은 아주 바보가 되어 아직 눈물을 흘리며 장례장 한 쪽에 앉아 멍한 모습으로 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냐?"
주인 아줌마의 부고도 알리고 도움도 청할 겸 하숙집에 전화를 했었다.
"나 현철인데 댁은 누군데 대뜸 반말이요?"
"나 옆방 형이야."
"아, 형이세요. 무슨 일이에요?"
"집에 누구, 누구 있냐?"
"나 말고 한 명 밖에 없어요. 형은 또 누나하고 있죠?"
"슬픈 소식이다."
"뭔데요?"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는데, 주인 아줌마가 돌아 가셨다."
"무슨 그런 걸로 장난을 쳐요. 아줌마가 왜 돌아가셔요. 곧 나을 것 같아 보이시던데."
"내가 지금 장난하는 목소리 같냐?"
"진짜에요?"
"그래 임마."
"진짜? 세상에! 누나 불쌍해서 어떡해요?"
"글쎄. 하여간 하숙생들에게 알리고 될 수 있으면 애들 모아서 여기로 좀 와라."
"알았어요. 근데 어디에요?"
"병원 영안실로 와라. 오면 찾을 수 있을거야."
"네."
"그리고 참. 나영씨 언니가 올텐데, 오면 많이 놀라실 거야. 그래도 사실을 알아야 하니까 남아 있을 애 정하고 오면 바로 여기로 연락하라고 해라."
"알았어요."
그녀 곁으로 왔다. 영안실 실내에는 벌써 조명등이 켜졌다. 창 밖이 붉다. 혼자가 되버린 그녀가 지금 내곁에서 슬퍼하고 있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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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42 /305 날짜 1999년6월16일(수요일) 6:16:47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 22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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