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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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편

그녀와 같이 산다는 생각은 즐겁다. 공주와 같이 살게 된다면 진짜 공주처럼 살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현재 내 처지가 그렇게 해 주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즐거운 생각을 하다가 다시 답답해 졌다. 그녀가 오늘 선 본것이 불안하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상태라면 상관이 없겠는데 지금 내게 그녀는 불안한 존재다. 잠이 왜이리 안 오는겨.

 너무 많은 생각은 몸에 해롭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내 자신도 헷갈리는 지금 너무 앞선 생각은 이제 그만 하자.

 베개를 부여 잡고 잠이 들었다.

 옅은 꿈속에 그녀가 나타났었다. 뭐 얼마나 같이 살았다고 이런 꿈을 꾸냐? 괜히 슬펐다. 그녀가 하얀 옷을 입고 어떤 남자에게로 가 버렸다. 오늘 선 본놈이 아마 내 꿈 속에 나타난 그 놈하고 닮았을 것 같다. 좀 멋있었다. 나는 뭐가 좋다고 부조금을 내고 결혼식이라고 준비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었다. 뭐여 씨. 꿈에서 본 그녀의 눈동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날이 샜다. 한 참 샜다.

 방문을 열고 빼꼼히 밖을 내다 보았다. 식탁에 아침이 차려져 있고 학생들 몇이 밥을 먹고 있다. 일요일이라 아침이 좀 늦은 편이다. 시계는 아홉시를 넘어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나가려다가 거울을 한 번 봤다. 예상대로 머리 모양이 엉망이다. 오늘은 세수를 하고 밥을 먹어 볼까 싶다.

 방문을 열고 나왔다. 주방에 서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씩 한 번 웃어 주고는 바로 욕실로 달렸다. 머리까지 감았다.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꽤 잘생겨 보였다. 이만하면 됐어.

 욕실을 나왔다. 주방에 서 있던 그녀와 또 눈이 마주쳤따. 또 씩 한 번 웃어 주고는 방으로 들어 왔다. 거울을 보며 갖가지 표정을 짓다가 제일 멋있게 보이는 표정을 간직하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직도 기분 나빠요?"

 그녀가 대뜸 던진 말이 내 마음을 다치게 했다. 표정을 풀고 식탁 빈자리에 앉았다.

 "밥 주세요."

 "오늘 어디 나가요?"

 "아니요."

 "일요일인데 일찍 일어 났네요."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국과 밥을 주었다. 그리고 자기 것도 차려서 내 옆 한 좌석을 차지했다. 맞은 편에 밥을 먹고 있던 녀석이 이상한 눈초리를 건넸다. 우린 맨날 이랬어 짜샤. 어제 선 본 여자니까 뭐 다른 생각은 말어. 그래 어찌 보면 그녀가 나와 많이 친한척 하긴 한다. 내가 좀 무뎌서 못 느껴서 그렇지.

하지만 예전에 어떤 여자가 조금 잘해주면 남자들은 착각을 잘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내가 사준 옷을 입고 떡 선보러 간 이 여자를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다.

 "왜 내 옆에 앉아요?"

 "자리가 여기 뿐이잖아요."

 음, 그렇구나.

 "누나 저 밥 다먹었어요. 여기도 자리 있어요."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참 가소롭다. 저 녀석 덩치를 봐라. 진짜 싸우면 그녀가 한 주먹감이나 되겠냐.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솔직히 좀 사랑스럽다. 어제 선 본 놈에게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밥을 다 먹고 일어 섰다. 아직 머리카락이 젖어 있다. 그녀는 자기 방식데로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잘 먹었어요."

 "동엽씨, 오늘 진짜 어디 안 나가요?"

 "안가요. 왜요?"

 "아니에요."

 방으로 들어 왔다. 거울을 봤다. 머리 모양이 젖은 채로 귀엽다. 빗질을 해 봤다. 이리 넘겼다, 저리 넘겼다 머리 모양을 변화 시켜 봤다. 내 모양이 별로 달라지지가 않는다. 씩 웃어 보았다. 웃는 표정은 밉지가 않다. 머리도 감았는데 외출이나 해 볼까? 그러나 마땅히 외출할 만 곳이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를 꼬셔서 데이트나 할까? 에이씨 어제 모르는 남자와 선 본 여자랑 오늘 데이트 한다는 것이 꺼림찍 하다. 머리를 괜히 감았다. 마음만 뒤숭숭하다.

이불을 개어 놓고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백수에겐 일요일이 조금 슬프다. 마음은 떠 있는데 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일요일은 별 생각없이 보냈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손이 가렵다.

 다시 거울 앞으로 갔다. 추리닝에 와이셔츠가 어울리겠는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어 봤다. 씩 웃었다. 넥타이는 그녀가 준 것이다. 허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그런데로 있어 보였다.

 "쾅, 쾅."

 이런! 문 열지 마요.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말았다. 거울 앞에서 놀던 모습을 그녀에게 바로 들켜버렸다.

 "어! 어디 나가요?"

 "안 나간다니까요."

 "그럼 넥타이는 왜 맸어요?"

 "그냥요."

 "진짜 안나가요?"

 "그럼요."

 "나 여기서 비디오 좀 봐도 되죠?"

 내가 된다고 대답했냐? 대답하기도 전에 들어 오면서 묻긴 왜 물었냐.

 "오늘은 선 보러 안가요?"

 "선을 매일 보나요."

 그녀가 개어 놓은 이불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어제 선 본 남자 보러 안가요?"

 "맘에 안든다고 했잖아요. 무슨 비디오 있어요?"

 음, 어제 그 놈은 진짜 맘에 안들었나 보다. 당분간 안심이다. 비데오 테잎이라야 어제 빌려 논 전함 포템킨인가 그것 밖에 없다. 재미없다고 짜증 낼 것 같은데 어떡하지.

 "전함 포템킨이요. 그리고 되감아야 되요."

 "그래요? 동엽씨 커피 마실래요? 그럼 내가 커피 타올 동안 되감아 놓아요."

 야이, 내가 대답했냐? 테이프를 되감았다. 재미 없을텐데...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어 커피를 마시며 비데오 시청을 했다. 그녀가 옆에 있어 조금 재밌는가 싶었지만 쏟아지는 잠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저번에 그녀 어깨에 기대어 잔 적이 있다. 오늘도 그래 볼까? 아예 무릎을 베고 자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상상하다가 잠이 들었다.

 "동엽씨 일어나요."

 으이씨. 전에는 그녀의 어깨를 기대고 잠이 들었었다. 별 생각 없이 잤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때와 반대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 머리가 아프다. 다음에는 상상하지 말고 잠들자.

 "재미 있었어요?'

 "괜찮았어요."

 "무슨 내용이었어요?"

 "직접 보세요."

 그녀도 잔 거 아녀? 표정이 영 수상쩍다. 다음에도 아주 재미없는 비디오를 빌려 놓고선 한 번 확인해 봐야 겠다.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녀와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허 괜찮네.

 오후 색깔이 참 곱다. 그녀는 시장을 갔다. 티비에서는 프로야구 중계를 하고 있다.

 주방 냉장고에는 물이 가득찬 물병이 두개가 있었다. 찬 물 한찬으로 속을 내려 보냈다. 주인 아줌마가 나오셨다. 아줌마도 목이 마르신가 보다.

 "나도 한 잔 주게."

 "예."

 주인 아줌마가 손을 자꾸 주무르신다. 컵을 받아 든 손이 많이 떨렸다.

 "어머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니. 근데 자꾸 손이 저리고 자주 다리에 쥐가 나네."

 "병원 가 보시지 그랬어요."

 "오늘 일요일이잖아. 내일 가보지 뭐."

 아주머니께서는 다른 손에 쥐고 계시던 주홍 빛 알약을 입에 넣고선 물을 마셨다. 약 색깔 참 곱다.

 "많이 편찮으신 것은 아니지요?"

 "그래. 걱정 해 주어서 고마워."

 방으로 들어 가시는 아주머니의 손이 안스럽게 계속 떨리고 있다.

 "쾅, 쾅."

 방안에서 야구 중계를 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로 봐서 그녀다. 왜 또 온겨.

 "왜요?"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와 그냥 내 옆에 앉았다.

 "야구 중계 봐야죠."

 "나영씨 방에도 티비 있잖아요."

 "적군과 같이 봐야 재밌죠."

 "시장은 봤어요?"

 "네."

 시소게임으로 진행되던 경기가 그녀가 입장하자 마자 바로 오비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기분이 살 나빠졌다.

 "재밌어요?"

 "응."

 이긴다고 반말이냐.

 "어머님은 뭐 하시던가요?"

 "주무세요."

 "내일 어머님 병원 가시는데 꼭 따라 가세요."

 "왜요? 엄마가 내일 병원 간다던가요?"

 "아까 봤는데 손을 많이 떠시는게 안 좋으신가봐요."

 "정말요?"

 밝은 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서는 바로 일어서 내 방을 나가 버렸다.

 주인 아줌마가 다시 안좋아지신건가? 조금 걱정이 되어서, 나는 많은 걱정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야호. 그녀가 나가자 엘지가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잘하면 역전도 할 듯 싶다. 뭐야. 정규 방송 관계로 중계를 중단한다고? 에이 엿먹어라 씨.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아까 내 방을 나갈 때 보다는 많이 표정이 밝다.

 "어머님은 괜찮으시대요?"

 "흠. 내일 정말 병원 가봐야 겠어요. 아직 주무세요."

 "약 드시던데. 색깔이 참 곱던데."

 "혈압 낮추는 약이에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뭘요. 냄새가 참 좋네요. 오늘 저녁 뭐에요?"

 "시장 가니까 꽃게를 팔길래. 오늘 꽃게 찌개 만들어 보려구요."

 그녀의 저녁 준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녀에게 어둔 표정이 베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주인 아줌마 건강이 좋아지셔야 할텐데.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도 저녁 식사를 빠진 녀석들이 두명이나 되었다. 현철이란 녀석은 오늘도 집에 있었구먼. 나만큼 불쌍한 놈. 아니 더 불쌍한 놈. 꽃게가 참 맛있다. 날로 발전하는 그녀의 요리 솜씨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내 방에 그녀가 찾아 오지 않았다. 인버터 스텐드 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서 책을 좀 봤다. 그리고 몇자 적어 봤다. 책은 문장에 관한 것이었지만 적은 글은 내 일기였다.

 오늘 내가 그래도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것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 꿈 속에 한 여인이 미소 지으며 손 짓 한다. 이렇게 적으면 좀 있어 보이지 않나? 일기는 혼자만의 글인데 나는 꼭 누구에게 보여 줄 글을 짓는 것 같다. 나중에 내 마누라 될 사람은 내 일기를 볼 수가 있겠지. 그래서 우리 하숙집 그녀 이름을 자신있게 쓸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밤이 꽤 깊었다. 밤이 밤 다워 지고 있다. 월요일을 기다리며 밤 색깔이 짙어 지고 있다.

 "동엽씨."

 그녀다. 지금 시각이 자정을 넘겼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했지만 심상치 않다.

 "왜요?"

 "잠시 나와 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방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물기가 있다.

 "엄마가 좀 이상해요."

ㅡ 계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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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37 /305 날짜 1999년6월11일(금요일) 3:1:38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17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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