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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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숙 10편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절 두번 한 것이 힘이 들었을까? 뛰어 온 것 때문에 힘이 들었을까? 하여간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이 들고 싶었다.

     잠자리에 드는데 떠 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바로 우리 하숙집 그녀다. 오늘 그녀의 모습이 조금 슬퍼 보였고 또한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버지께 절 올리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감동도 있었다. 그녀가 준 넥타이가 마음 속 좋은 의미가 되었다. 확 그냥 좋아 해버릴까 보다.

     다른 날 보다 일찍 잠이 들었었지만 일어 난 시간은 평상시와 별 다를게 없었다. 오늘도 그녀의 노크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밥 먹어요."

     "몇 시에요?"

     눈을 뜨지 못하고 일어나 정신이 없는 상태서 물었다. 10시라고 했다. 허허, 이 정도 시간에 그래도 아침을 꼬박 차려 주는 하숙집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부터 쭉 생각해 온 것이지만 하숙집 하나는 잘 고른 것 같다.

     그녀는 학생들이 아침을 먹고 난 식기들을 모두 설거지 한 다음 날 깨웠다. 식탁 위가 깨끗한데 그녀는 오랜만에 작은 밥상 위에 아침을 차려 놓았다. 밥 그릇이 두개인 것으로 보아 오늘 그녀와 마주 보며 아침을 먹겠다. 기분 좋다 뭐. 그녀는 가스 렌지 위에 국을 데우며 서 있었다.

    제사 상에 놓였던 부침개들이랑 생선들이 밥 상위에 올라 와 있다. 어제 제사상 음식들이 오늘 학생들 아침 식탁위에 놓여 졌다면 저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었을 텐데 신기하다. 천천히 걸어 상 앞에 앉았다. 아직 싱크대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잘 잤어요?

     "그럼요."

     "어머님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반찬 몇가지 만들고 국을 끓이시고는 조금 전에 다시 잠이 들었어요."

     "오늘은 병원 안 가셔도 돼요?"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시겠데요. 의사가 매일 올 필요는 없다고 했나 봐요."

     "좋아지시나 보네요."

     "흠."

     옅은 미소로 답하고 그녀가 국을 떠 가지고 와 상 앞에 앉았다.

     "제사 음식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던데."

     "왜요?"

     "아침에 학생들 반찬은 따로 했어요?"

     "네. 제사 음식 싫어요?"

     "아니요. 귀한 음식들인데 싫기는요."

     "학생들한테 제사 음식 줄 수 있나요."

     "그럼 저는요?"

     "늦잠 잤잖아요. 그리고 동엽씬 절도 했구요."

     "하하, 나영씨 아버님 제산데 제가 절한 것이 좀 걸리네요."

     "괜찮아요. 여자 혼자 절한 것 보다는 낫죠 뭐. 근데 어떻게 절 할 생각을 했어요?"

     "그냥요."

     "그냥? 그럼 기분 나쁘죠."

     "그럼 아버님께 절 올리는 나영씨 모습이 고와서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눈을 제법 크게 뜨고 날 한 번 쳐다 보더니 밥 숟가락을 들었다.

     "그랬어요? 혼자 절하는 내가 가엽게 보여서 절했다고 했으면 기분 상했을텐데 내 모습이 곱다고 그래서 기분이 참 좋네요. 이왕 기분 좋게 해준거 한마디만 더 해 주세요."

     "뭘요?"

     "그냥 축하해, 한마디만 해 주세요."

     "왜요?"

     "그냥요."

     "그럼. 축하해요 나영씨."

     "감사."

     그녀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저를 들었다. 나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그녀가 절 하는 모습이 솔직히 좀 가엽게 보이긴 했다. 우리 집안은 명절 날 큰댁에 가면 절하는 남자만도 일곱명이다. 여자는 차례상 차려진 방에 들어 오지도 못하는데. 제사라고 시집 안 간 딸 자식 혼자서 절 올리는 모습이 어떻게 가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내가 먼저 밥을 다 먹었다. 국도 다 마셔 버렸고, 그녀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조금씩 똑똑하게 씹어가며 식사를 하고 있다. 지금 일어 서면 뭐라 그러겠지. 그래 상 들고 갈 때까지 그녀 앞에 앉아 있자. 드디어 그녀가 밥을 다 먹었다.

     상을 들고 그 긴 주름치마를 사박거리며 싱크대 앞으로 가는 그녀의 뒷 모습이 아까 그녀가 한 말 때문에 좀 가엽다. 그녀가 설거지를 하며 물 묻은 손으로 화장기 없는 얼굴에 내려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그녀는 분명 예쁘다. 교사가 되었더라면 아침에 곱게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고선 학생들 속으로 매일 외출을 하겠지. 저 정도면 분명 그녈 좋아하는 순진한 학생, 짖굿은 학생 참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치마하나 사줘야 겠다. 그런데 저렇게 수수해 보이니까 내가 그나마 말이라도 막 하지, 화장하고 좋은 옷 입고 하면 말 대꾸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맘 먹은 거 사줘 버리지 뭐.

     "나영씨!"

     "왜요."

     "허리가 어떻게 되요?"

     "그건 왜 묻는데요."

     "치마하나 사게요."

     "예?"

     "허리 사이즈를 알아야 치마 사 줄거 아네요."

     "정말 내 생일 선물 사 주려고요?"

     "예? 저번부터 무슨 생일 얘기에요? 나영씨 생일이 언제 인데요?"

     "오늘이요."

     그녀가 설거지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랜다. 무슨 아버지 제사 다음날 생일이냐. 아버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는 저 여자 생일 축하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오늘 미역국 끓인 게 다인 것 같았다.

    괜히 신경 쓰이네.

    아까 그래서 축하해,라는 말 해 달라고 했던 거였구나. 지금까지 봐왔던 그녀라면 '오늘 내 생일인데 뭐 없냐?' 이럴 줄 알았는데 의외다.

     "진짜 생일이에요?"

     "네."

     "생일이면 뭐 약속 잡힌 거 있어요?"

     "아니요."

     "그냥 평상시처럼 지나칠 거에요?"

     "그래야겠죠 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는 그냥 내 생일 없는 셈 쳤어요. 아빠 제사 다음 날 딸 생일이라는게 좀 웃기죠?"

     "좀 웃기네요. 나영 씨 생일날 가족 전부가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겠어요. 쩝."

     왜 오늘따라 그녀가 자꾸 안되어 보이냐. 막 잘해 주고 싶어 진다. 그녀는 그냥 웃다가 다시 싱크대로 고개를 돌렸다.

     "허리가 얼마냐니까요? 내 봐둔게 하나 있단 말이에요."

     "됐어요. 말이라도 고맙네요."

     "진짜 사 줄게요."

     "근데 왜 하필 치마에요?"

     "치마 싫어요?"

     "싫진 않지만. 동엽씨 수준으로 사 온 것을 입을 수 있을런지 좀 의문이 드네요."

     "예? 백수라고 보는 수준도 떨어 질거라 생각지 마세요. 섭하네."

     "그래요? 예전엔 24사이즈가 맞았는데 요즘 좀 찐 것 같아서..."

     뭐여. 지 허리 사이즈도 모른단 말여? 그건 그렇고 내게만 맘에 든 것을 사왔다가 그녀가 맘에 안들어 안 입는다면 괜히 돈 낭비만 하는 거잖아. 그녀하고 외출이나 해 볼까? 시장 같이 갈때도 기분 괜찮았잖어.

     "같이 갑시다."

     "어딜요."

     "치마 사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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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30 /304 날짜 1999년6월5일(토요일) 17:24:49

    E-mail  [email protected]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ㅡ 11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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