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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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숙 - 4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하숙집 아줌마가 돌아 오셨다.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어머님 오셨어요?"

    "응. 신군이 설거지를 하는구먼."

    "아침에 안 좋으셨어요?"

    "그건 아닌데. 그냥 요 며칠 소화가 안된다고 말했더니 영이가 부득이 아침에 같이 가자고 해서. 별 거 아니야."

    "어머님, 빨리 좋아 지셔야 할텐데요."

    "그래. 영이 저걸 봐서라도 그래야 할텐데 계속 안 좋네. 그 설거지 내가 할테니까 신군은 들어가."

    "아닙니다. 제가 할게요. 들어 가 쉬세요."

    하숙집 아줌마의 이마에 땀이 고였다.

    그녀는 어디 간겨?

    모시고 갔으면 또 모시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

    좀 헛갈린다 말이야.

    어제 글 작업을 못했던 관계로 오늘 오후는 책 보면서 구상 연습을 해야했다.

    책에다 줄 긋는다고 뭐구상하는 것이 달라 질 것은 없었지만 미래를 위해 작문 연습도 틈틈히 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신 경숙이라는 소설가도 작가와 전혀 별 관계없는 어느 전문대를 나와서 떨어지는 문체를 많은 책들을 베껴 쓰가며 다듬어 갔다고 했다.

    나도 뭐 언제 글을 써 봤냐.

    줄 그어 가며 베워야지.

    에이 씨. 줄 긋는 것은 좋은데 왜 담배가 없는겨.

    상관 없는 불만인가? 하여간 불만 있다.

    먼지 낀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그 햇 빛 속에 번지는 담배 연기, 풋풋히 썩어 가는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어느 골방에서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이 멋있는 작가의 입에 물린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 꽁초.

    그리고 명작을 쓴다.

    근데 이놈의 하숙방 창은 맨날 누가 닦는겨?

    깨끗하다. 그리고 내가 방을 지저분하게 쓰지만 곰팡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

    턱수염? 어제 면도 했는데 턱수염은 무슨... 코 털이 좀 삐져 나와 있을래나?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담배가 떨어졌다.

    추리닝 차림으로 우리 하숙집 어떤 놈의 농구화를 꼽쳐 신으며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따스하다.

    내 얼굴이 부시시 할 것이고 머리 모양새가 그리 단정하지 않을텐데... 그리고 이 시간에 내 나이 또래가 추리닝 입고 담배 사러 가면 짤없이 백수라고 생각 할 것이다.

    뭐 백수를 백수라 생각하는데 뭐라 그럴 수 있나.

    담배 파는 수퍼가 좀 멀리 있었다.

    담배 한 갑을 샀다.

    기분으로 그 앞에서 한 대 폈다.

    음 그래 이맛이야.

    집으로 천천한 걸음으로 하늘도 한 번 보고 퇴교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인사도 해 주며 걷고 있는데 누가 날 불렀다.

    "백수씨."

    아무리 내 지금 모습이 백수처럼 보여도 그렇게 대 놓고 말하면 기분 졸라 나쁘지.

    실 내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던 초딩이 날 멀뚱히 쳐다 봤다.

    "내 이름이 백수야."

    씩 웃어 주고는 뒤 돌아 봤다.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 하숙집 그녀를 보았다.

    햇살 아래 그 모습이 화사하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주름 치마사이로 하얀 다리가 참 곱다.

    저 공주가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아는 체 하기가 그랬을 터인데 아주 반갑게 날 아는 체 했다.

    물론 이유가 있었겠지. 그녀는 장을 봐 왔다.

    양 손에 뭘 많이 들었다.

    분명 저걸 나에게 맡기려고 날 불렀을 것이다.

    확 도망을 가 버릴까? 낼 아침부터, 아니다 당장 오늘 밤부터 밥이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로 갔다.

    그래 내 들어 줄 것을 당연히 생각했나 보다.

    아예 짐을 내려 놓고 날 기다리며 한 발자국도 앞으로 오지 않는 그녀는 진찌 존경스러운 상류층 사람이다.

    "들어 드려요?"

    "으음."

    단지 그녀의 입을 열지도 않고 내는 그 소리와 고개 숙임으로 나는 그 무거운 것을 들어 주어야만 했다.

    이 여자 힘이 장산겨? 이걸 어떻게 들고 왔남?

    그녀를 아래 위로 꼬아 봤다. 옆에서 빈 손으로 걷는 그녀가 웃는다.

    그렇게 자주 웃지 마요. 정 붙으니까.

    "그 백수란 소리 안 할수 없어요?"

    "동엽씨 백수 맞잖아요."

    이 뇬이 진짜.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웃는 얼굴이라서 참았다.

    놀리는 웃는 얼굴이 아니라 그냥 좀 사랑스런 웃는 얼굴이라 참았다.

    그래 이렇게 걷는 것이 기분 좋다.

    니도 백수니까 날 그렇게 부를 수 있겠지.

    학원에서는 또 꿈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강사와 씨름하며 오늘 하루 분량의 과정을 끝 마쳤다.

    책을 많이 읽어라고 했다.

    나보고 특히 그랬다.

    나보고 고등학교 때 국어 점수를 물어 보았다.

    그냥 답을 안했다.

    말하면 분명 놀릴 것 같아서 말이다.

    내일은 주말이라고 또 술 먹으러 가자고 그 년,놈들이 꼬셨으나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 내일은 주말이다.

    뭐 하나? 확 우리 하숙집 그녀를 꼬셔다가 영화나 보러 갈까?

    같이 가 주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비디오나 봐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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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04 /304 날짜 1999년4월30일(금요일) 3:6:47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5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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