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 -3
오늘은 학원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매일 하숙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이 미안했다.
학원에서 알게 된 그 총각, 처녀가 날 붙잡았지만 일단 외면을 했다.
일단 그들이 술 마시자는 유혹은 이겨냈다.
그러나 집으로 오는 길에서 맡은 돼지 갈비의 냄새의 유혹은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지갑에 돼지 갈비 몇 인분은 사먹을 돈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학원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나 저녁때는 훨씬 지났다.
에라 모르겠다.
냄새가 나는 식당으로 들어 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도란도란 모여서 술 한잔에 이야기 하는 모습이 분위기 있어 보였다.
"아줌마. 여기 돼지 갈비 2인분하고 밥 주세요."
2인분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먹다가 일인분을 추가 시켰다.
다 먹고 나니 배가 상당히 불렀다.
기분이 좋다.
날씨도 따뜻하고 배도 부르고 난 행복한 놈이다.
"다녀왔습니다."
하숙집에 도착하니 열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냥 내 방으로 들어 가도 되겠지만 그래도 기분으로 주인 아줌마 방에 노크를 하고 내가 왔음을 알렸다.
"그래."
아줌마의 목소리는 그렇게 힘있게 들리지는 않았다.
집안에 제법 익숙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내 방으로 들어 갔다.
옷을 갈아 입고 내 앞날을 위한 비디오나 한 편 볼 생각으로 앉았다.
"똑. 똑."
"누구세요?"
"저에요. 나영이."
"왠일로 쾅쾅,이 아니고 똑똑,이에요? 무슨 일인데요?"
들어 오라는 말은 안했는데 우리 하숙집 그녀는 문을 홱 열고는 모습을 드러 내었습니다.
귀여운 소녀같이 웃는 그녀의 미소는 제법 사랑스런 모습이다.
"밥 안 먹었죠?"
"예?"
밥 먹었다고 말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미소 지으며 특별히,라는 말 때문에 차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조용히 식탁으로 와요. 내 오늘 특별히 맛있는거 해 놨거든요.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어요."
무슨 특별한 걸 해 놓았을까. 식탁으로 나갔을 때 그녀는 밥 두 공기를 퍼 놓고 있었다.
한 공기가 다른 한 공기에 비해 유난히 많다.
"무슨 특별히 맛있는 것을 맛있는 것을 해 놓았는데요?"
적은 밥이 담긴 그릇쪽에 앉았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앉은 쪽의 밥그릇을 다른 쪽의 밥이 많이 담긴 그릇으로 바꿨다.
과연 저걸 먹을 수가 있을까 싶다.
그냥 밥 먹었다고 말할까도 생각을 했는데 기껏 차려주는 밥을 거절했다가 정작 배가 고플때 못 얻어 먹을까바 참았다.
"오늘 기분으로 고기를 좀 샀죠. 돼지고기라서 좀 그렇지만 학원에서 얻어온 양념을 잘 재웠어요."
그녀가 가스렌지에서 들고 온 냄비 속에는 갈비찜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배가 불러서 행복했던 기분이 갑자기 사그러 들었다.
"이거 혹시 나만 주는 거에요?"
"그렇긴 한데 착각은 하지 마세요.
그냥 백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누가 그러길래 주는 거니까요.
감격해 하는 것 정도는 봐 줄수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내 앞에 앉은 그녀를 쳐다 보았다.
날 무끄러미 쳐다 보는게 얄밉게 느껴졌다.
아주 지능적으로 날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 먹고 뭐해요?"
"시간이 늦었는데 이거 먹으면 살 안쪄요?"
"나요? 그래요 나 조금만 먹을테니까 동엽씨 많이 먹어요. 치사하다 진짜."
먹기 싫어 한 말인데 반응이 잘 못 왔다.
지금 내 배는 아주 풍만한 상태다.
여기서 더 먹었다간 풍만함에 지쳐 터져버릴 것도 같았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삼키기가 어려웠다.
도저히 먹을 자신이 들지 않았다.
"나영씨."
"왜요?"
맞은 편에서 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그녀가 날 쳐다 보는 모습이 현재까지는 밝다.
"나 지금 돼지 고기 먹으면 안되는데요."
"왜요?"
그녀의 표정에 조금 의외라는 듯한 감정과 조금 기분이 나쁘다라는 감정이 섞여 들어있다.
"몸살 감기가 온 것 같거든요."
"괜찮아요. 그럴수록 많이 먹어야 돼요. 백수가 아프기 까지 하면 안되지요."
그놈의 백수라는 말은 꼭 들어 가는구나.
오늘 왜 내가 집에 오면서 밥을 사먹어 가지고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지금까지 늦게 들어 왔다고 밥을 차려 주지 않은 적이 없겄만 왜 그랬을까?
그녀의 미소가 솔직히 좋다. 깨기가 싫었다. 꾸역 꾸역 먹었다.
"맛있어요?"
솔직히 맛있는지 없는지 상관이 없다.
그냥 다른 기분좋았던 때를 생각하며 억지로 먹고 있으니까.
"네."
"다음에 내가 양념해서 한 번 만들어 줄테니까 오늘 이 맛 잘 기억해 두었다가 비교해 주세요."
"네."
이 놈의 밥그릇은 도대체 얼만큼의 밥을 담고 있는 것일까?
진짜 힘겹다.
그래도 내가 이 밥을 비워 가고 있는 것은 내가 착하기 때문일까?
포기를 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아직 관심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일까?
밥을 다 먹었다. 하지만 아직 고기는 남아 있다.
그녀도 밥공기를 비웠다.
고기를 나보고 다 먹으라 할 것 같다.
그녀가 그 말을 할까봐 두려웠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내가 설거지를 할테니까 동엽씨는 들어가서 쉬세요."
"예. 그럼 전 이만."
움직이기가 버겁다.
과하면 체한다. 이말을 실감했다.
내가 베스트 작가가 되어서 돈을 왕창 벌어도 과하지 않게 어려운 백수들 도와주고 해야 겠다.
체하지 않게 말이다. 방으로 가지 않고 화장실로 가서 아까 식당에서 먹은 고기까지 토해 냈다.
그녀가 토하는 소릴 들을까봐 조심스럽게 토해 냈다.
토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녀가 나한테 참 잘해 주는 것도 같다.
왜 나만 고기를 해 준겨?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치운 식탁에 앉아 가계부를 적고 있다.
날 보지 않는다.
굳이 말을 건네기가 그렇다.
그냥 방문을 열었다.
"동엽씨?"
"네?"
뭐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괜히 놀랐다.
그녀가 해 준 음식을 토해 냈다는 것이 나에게 약간은 죄책감을 주었나 보다.
"부탁하나 해도 되죠?"
"네."
아직도 날 쳐다 보지 않는다.
뭔가를 적으며 부탁을 말하는 그녀는 공주는 아니더라고 상류층의 자세가 되어 있다.
"들어 줄 거에요?"
"뭔데요?"
"다음주 화요일날은 목욕도 좀 하시고 열한시 안에 집에 오세요."
내가 목욕 잘 안하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늦게 들어와도 열한시를 넘겨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부탁이에요?"
"그때 다시 부탁할게요. 하여간 그 부탁할 것의 전제 조건이니까 꼭 그래 주세요."
"알았어요."
다음주 화요일이면 사일이 남았다.
부탁하면서 전제 조건을 다는 그녀를 존경스럽게 한 번 쳐다 보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토하고 나니까 속이 쓰리다.
글 구상을 위해서 비디오를 보다가 그냥 잤다.
속이 쓰리긴 했지만 잠에는 장사가 없다.
햇살이 좋은 것이 꿈 꾸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시계를 보았다. 12시에 가까웁다. 목이 뻐근하다.
내 꿈을 꾸기에는 늦은 시간인가?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고 몸도 피곤하다.
오늘은 10시간을 넘게 잤다.
뭐여, 왜 안 깨운걸까?
생각해 보니까 우리 하숙집 그녀가 날 이 시간까지 자게 놔 둔 적이 있었나 싶다.
어그적 밖으로 나왔다.
깨끗이 닦여진 식탁.
그리고 그 옆에 밥 보자기로 씌워져 있는 그녀의 밥상.
"나영씨!"
그냥 아침에 그녀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 허전했나 보다.
별로 찾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 번 불러 보았다.
"나영씨! 이 나영. 야이 나영아. 나영이 어디 갔냐?"
하숙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나 밥 굶는겨? 그건 아니었다. 그
녀의 밥상에는 밥이 예쁘게 차려져 있었다. 참 예뻤다.
내 밥이 아닌 것도 같았으나 분명 거기에 있는 쪽지로 봐서 내 밥이 틀림 없었다.
그녀는 하숙생들 밥을 차려 주고 난 다음 어머님과 병원을 갔다.
왜 날 깨우지 않았을까?
내가 밤 늦게 까지 글쓰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랬을까?
그랬다면 참 고마운 여자다.
'국은 냄비에 있으니 데워 드세요.'
작은 것에도 세심한 면이 있다.
괜찮은 여자네.
그러나 맨날 백수라 놀리는데... 하여간 잘 먹겠슴다.
거의 매일 그녀의 눈치를 보던 이 밥상에서 나 혼자 밥을 먹을려니 참 편했다.
다리 쭉 펴고, 배까지 긁어 가며 또한 트림도 맘 놓고 할 수 있었다.
그 좋구먼... 그래도 그녀가 있으면 하는 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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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03 /304 날짜 1999년4월30일(금요일) 3:4:33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4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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