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형수님. 당신을..하영씨, 당신을 내 목숨보다 사랑합니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못하고 있던 진혁의 입이 처음 들려주는 말이었다. 북받친 하영이 다리로
허리를 휘감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사랑해요. 당신..하영이도 당신을 죽도록 사랑한다구요..흑..흑흑..사랑해요..내 남자..
너무 착하고 이쁜 우리 도련님..당신을 볼 수 없으면 하영이도 시들어 죽는단 말예요..흑.."
진혁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런 하영을 내려다보았다. 흐트러진 모습으로 흐느끼는 하영이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처절한 느낌마저 드는 하영을 보
며 진혁은 문득 악마의 속삭임처럼 머리를 지배하려는 어떤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무서운 생
각이었다. 가질 수 없다면 이대로 하나가 된 채 하영의 목을 누르고 자신도 혀를 깨물고 싶다
는 생각이었다. 하영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를 흔들어, 소름끼치는 그 생각을 지워버리고 보니, 하영의 깊고 맑은 눈이 겁을 잔뜩 머
금은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 진혁과 같은 생각을 했던 하영이었다. 정사(情死)에 몸을 던진 사람들의 애절한 사
연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 하영이 그 유혹을 떨치려고 몸을 떤 것이었다. 하영은 이 처절
한 아픔에서 두 사람이 벗어날 길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결심을 굳혔다.
진혁의 목에 팔을 감은 채 보지로 자지를 조이며 황홀한 목소리로 하영이 말했다.
"도련님, 형수 믿죠?"
갑작스런 말에 의아해 하면서도 진혁은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는 대답을 했다.
"그럼 무조건 다영이 한 번만 만나 보세요. 그 다음에는 도련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 애가 해답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말 하는 게 우습지만 저를 사랑한, 도련님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영이 밖에 없어요."
진혁은 아무 말 없이 하영의 얼굴만 내려다보았다. 진혁은 누구도 하영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아는 하영이었다. 그런데도 하영은 장담
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하영이 저토록 장담하는 거라면 이유
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는 당신에게 넥타이를 매만져 주고 밤에 불 밝혀 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
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요. 당신이 자다가 아플 때 곁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
람일 거라고 생각하면 하영이 못 견딜 것 같아요."
하영의 눈망울에 다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본 진혁이 깊숙하게 안으며 머리를 쓸어주었다.
보지로 자지를 부둥켜안은 채 진혁에게 안긴 하영이 그 고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듯이 결연하
게 말했다.
"그 자리에 제가 있을 수 없다면 다영이가 있어야 해요. 하영이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다
영이를 위해서라도 꼭 그래야만 해요."
하영답지 않은 끈질김에 진혁은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생각해 볼게요. 이번 주말까지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형수님 대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볼게요."
확답은 아니었지만, 그 말에 하영의 표정이 꽃처럼 환해졌다.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한
안도감마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하영이 다시 진혁을 황홀한 품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하아..그러세요..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한 번 만나기만 해보세요. 그럼 당
신 가슴이 알아서 할 거예요..여보..고마워요..이제 하영이 사랑해주세요..하아앙.."
하영이 진혁의 엉덩이를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얇은 원피스 속에 숨은 하영의 탄력 있고 보드
라운 몸이 황홀하게 꿈틀거렸다. 재촉을 받은 진혁의 자지가 보지 속을 바쁘게 드나들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하영과 진혁은 순식간에 꼭
대기로 치달았다. 하영의 보지가 부드러운 압력으로 자지를 빨아 훑다가 흐물흐물 녹으며 설
융이 되어 자지를 부둥켜안고 휘돌기 시작했다. 하영이 턱을 덜덜 떨며 몸부림쳤다.
"하아악!! 흐으응..너무 좋아요..하아앙..하영이 보지가 터질 것 같아..아으윽.."
오금이 저릴 듯한 쾌감이 진혁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뼈마디가 흐물흐물 녹을 듯이 황홀한
쾌감에 하영과 진혁이 서로를 터뜨릴 듯 껴안은 채 진저리를 칠 때였다.
"따르릉! 따르르릉!!"
침대 옆에서 갑자기 울어대는 전화기의 비명이 두 사람의 몸부림을 딱 멈추게 했다. 자지를
꿴 그대로 하영이 누운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당신이에요?"
하영의 말로 보아 지훈의 전화인 듯 했다. 자지를 빼내려는 진혁의 엉덩이를 잡아당기며 하영
은 빼지 못하게 했다. 다리로 진혁의 허리를 감은 그대로 하영이 지훈과 통화를 계속했다. 형
과 통화하는 형수의 보지에 자지를 담그는 상황이 진혁에게 상상도 못할 쾌감을 안겨주었다.
더 크게 부푸는 자지에 꿰뚫린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낀 하영이 신음을 참으며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좀 누워 있었더니 목이 잠겼어요. 아버님 모시고 지금 출발하신다구요? 조심해서 들어오세
요."
통화를 끝낸 하영은 마음이 급해져서 진혁의 엉덩이를 세게 끌어당기며 재촉했다.
"하아아..삼십 분이면 도착해요. 어서..어서 해주세요..하악.."
보지를 진혁의 정액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진 하영이 허리를 들썩이며 재촉했다. 뒷정리까지
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지난번 현주와의 일을 떠올린 진혁이 자지를 빼려고 허리를 들자 하
영의 보지가 따라오며 놔주지 않았다. 하영이 다리로 허리를 조이며 안타깝게 몸부림쳤다.
"하아악..여보..갖고 싶어요..하영이 보지를 당신이 싸준 사랑으로 채우고 싶어요. 쑤셔줘요."
따라오며 깨물고 핥아대는 보지에 빨리는 자지를 자신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어, 진혁은 그
대로 들이박기 시작했다. 벌써 극심이 움직인 하영은 고개를 꺾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흐으윽..여보 그것 ..아아악..그것 싸요..흐으으아응.."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진 보지 속 깊은 곳에서 속살이 밀려 나오며 귀두를 덮었다. 그 부드러
운 막을 싸지른 하영은 정상이 귀두를 덮은 채 핥고 빨아대자 그 자극에 진저리를 쳤다.
"하악..죽을 것 같아..흐응..너무 좋아..더 세게 쑤셔주세요. 하영이 보지 속에 싸줘요..흐응.."
진혁은 쫓기듯 더 거칠게 보지를 후벼 팠다. 정로가 돋아나기 전에 하영의 보지에 터뜨리고
싶어서 내닫는 진혁의 목을 끌어안은 하영이 다시 파들파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하아악..어쩜 좋아..여보..하아..그게..그게..흐으윽..하아아악!! 그것 밀려 나와요..하아앙.."
몸부림치는 하영의 보지 속 새살이 눈부시게 영롱한 돌기를 틔워내고 그 정로가 귀두를 어루
만졌다. 부르르 떠는 귀두에서 돋아난 귀심을 정로가 덮치며 하나로 달라붙었다.
"하아아악!!"
"흐윽"
언제나 몸서리치게 하며 잔인한 쾌감을 안겨주는, 정로와 귀심의 결합이었다. 죽음 같은 쾌감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진혁은 절망을 느꼈다. 하영의 보지 속에 통렬하게 싸지르고 싶은데 정
로에게 붙들렸으니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하영도 마찬가지였
다. 정인의 사랑으로 보지를 그득 채우고 싶은 마음에 진혁의 귀에 뜨거운 숨결을 쏟아 넣고
귀를 빨면서 하체에 힘을 주었다.
"하아아악..흐으윽..흐응..갖고 싶어..아으윽..하영이는 당신 것 다 갖고 싶어요..하아악.."
하영의 몸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진혁이었다. 그렇기에 정로와 귀심의 결합으로 인한 지독한
쾌감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절망했던 진혁이었다.
그런 진혁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하였던 황홀한 압력이 자지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머
리카락이 곤두섰다. 하영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낀 정로가 귀심을 놓아주더니 진혁의 요도로
파고든 것이었다. 그것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황홀함이었다.
"아아악!!! 이게 뭐야..하악!! 흐으윽..죽을 것 같아..하악..하영이..하영이 살려줘요. 하아앙.."
하영이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몸서리를 쳤다. 영롱한 돌기였던 정로가 진혁의 요도를 헤집
으며 길게 늘어나는 자극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보지로 자지를 삼킨 상태이면서도
온몸이 진혁의 자지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액이 몰려나가던 좁은 관을 액체처럼 늘어난 정로가 파고 들었다. 파고든 정로가 요도 속에
서 꿈틀거리고 핥아대며 휘젓자 진혁은 눈앞이 노래졌다. 명기체 보지의 오묘한 변화는 그것
으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보지 속을 휘젓던 설융이 다시 방설로 변하더니 두 장이 아닌 하나로 결합하여 보지 속을 그
득 채워버렸다. 진혁의 자지가 드나드는 보지는 틈도 구멍도 아니었다. 가로막힌 벽이었다.
형진도, 화타조차도 몰랐던 명기의 비밀이었다.
막힌 벽은 자지에 뚫릴 때마다 황홀한 압력으로 자지를 바스러뜨릴 듯이 쥐어짜며 정액을 내
놓으라고 훑어대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쾌감에 짓눌린 하영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몸만 와들와들 떨다가 그 고운 입으로 난생 처음 욕까지 해댔다.
"아아악!! 하악!! 살려줘..이 나쁜 놈아..죽여달라구!! 엄마..하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악!!"
자지를 짓이기는 압력과 요도 속으로 파고들어서 휘저어대는 정로의 몸부림에 까마득히 치솟
던 진혁의 하영의 어여쁜 입에서 터져 나온 욕설에 허물어져 버렸다. 모든 혈관의 피가 정액
으로 변하는 듯하더니 정로의 끝에 달라붙었다.
하영의 몸에서도 폭죽이 터지며 오르가즘이 보지로 몰려 내려갔다.
"하아아아악!! 여보..하아악..나쁜 놈..하영이 싸..하아앙..싼다구 나쁜 놈아..하아악!!"
정로가 부르르 떨더니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며 원래의 자리인 보지 속으로 튕겨가서 틀어박
혔다. 정로의 끝에 물려 있던 정액이 세찬 압력으로 보지를 때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악!!!"
"흐윽!!"
몸부림치던 하영의 보지 속에서도 뜨거운 보지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자지를 덮쳤다.
"아아아악!!"
"허어억!!"
고개를 꺾고 까무러친 하영은 다행히 기절하지 않았지만, 기절하지 않은 대가를 잔인하게 치
뤄야 했다.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보짓물과 정액이 주는 쾌감에 진혁을 물어뜯으며 진저리를
쳐야했다.
하영을 깊숙하게 안아 준 진혁은 서둘러 이모 댁을 떠났다. 하영은 안타까웠지만 진혁을 잡을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정사를 나눈 정인과 가족들 속에서 눈길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였다.
언덕길로 내려가는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영은 안타까움에, 조금 전의 그 황홀함도 잊
은 채 망연히 서 있다가 뒷정리를 떠올리고는 쓸쓸히 몸을 돌렸다.
고운 여인을 등 뒤에 두고 쫓기듯 언덕을 내려오며 진혁도 처연한 마음이었다. 할 수만 있다
면 되돌아가서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진혁이었다. 아까 느꼈던 악마의 속삭임이 다시
머릿속을 파고들자 머리를 흔들며 큰 길로 나서는 진혁의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혁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차라리 시원한 느낌이었다. 빈 택시들이 달려와서 멈췄다가 떠
나는 것도 모른 채 비를 맞고 걸었다. 차가운 빗방울에 얼굴을 맞으면서 진혁은 자신이 꽃가
게 앞을 지나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향긋한 체취와 함께 노란 우산이 머리 위에 씌워지는 것을 느끼며 진혁은 고개를 돌렸다. 꽃
가게 주인이 함초롬한 자태로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이런 추운 날에 맞는 비는 몸에 해로워요. 우선 몸이라도 말리세요."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 그녀가 진혁의 팔을 잡고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진
혁은 홀린 듯이 그녀를 따라갔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준 그녀가 가게의 셔터를 내리더니
안으로 문을 잠갔다. 우두커니 서있는 진혁의 팔을 다시 부드러운 손으로 잡은 그녀가 가게
한 쪽의 문을 열었다. 뒤쪽의 한옥으로 된 살림집에 연결 된 문이었다.
몽환적인 밤이었다. 하영과의 정사가 그랬고 꽃집주인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랬다. 그녀의 집
에서 독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도 몽환적이었다. 집안에 남자 옷이 없다며 그녀
가 갈아입으라고 준 여성용 파자마 바지만 입은 진혁은 어떤 수치심도 없이 웃통을 벗은 채
그녀와 마주 앉아 있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우산을 씌워 줄 때부터 지금까
지 그녀의 태도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그 자연스러움이 부드럽게 이어져서 그녀의 집
에 마주 앉아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운 대좌였으며, 스스럼
없는 대작 속에 꼬리를 무는 대화였다.
서로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가운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꽃과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만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기를 몇 시간 만에 그녀가 진혁에게 물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잘 아세요?"
진혁의 야생화에 대한 지식에 탄복한 그녀의 물음이었다. 진혁은 하영을 처음 만났을 때 들려
준 이야기를 그대로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뭔가를 해야 했으며 그래서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야생화라는 진혁의 말에 그녀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은 그 한숨소리에 놀라 그녀를 마주 보았다. 꽃을 닮은 여인이었다. 꽃향기를 닮은 체취
가 느껴지는 그녀였다.
집안에 있던 독한 술을 전부 비운 뒤 자리를 치운 그녀가 진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없이 건
네는 진혁의 손을 잡은 그녀가 침실로 이끌었다. 진혁의 곁에 누운 그녀가 진혁의 팔을 당겨
베개로 삼더니 등을 끌어안고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토닥여주었다. 마치 진혁의 아픔을 안
다는 듯 어루만지며 토닥이는 손길에 진혁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 그녀가 품에 안은 채 맑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깊으면서
도 알 수 없는 슬픔을 담은 눈이었다. 진혁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쓸어 넘기며 그녀가 입
을 열었다.
"비우지 않고는 새로운 걸 담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진혁 씨가 어젯밤에 빗물이 되어 제
독을 씻어주었어요. 진혁 씨도 독을 씻어준 빗물로 저를 기억해주세요."
재대하는 날 본 예비군복의 명찰을 기억하는지 진혁 씨라고 부르는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었
다. 혼자만 이름을 아는 건 불공평하다며,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지현이라고 알려 주었다.
"남자에 대해게 받은 깊은 상처가 있었어요. 그 때문에 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꽃만 사
랑했답니다. 아프게 하지도 않고, 정성을 받으면 만개하여 보답하는 꽃만 보고 살았어요."
지현은 사랑하던 남자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세상의 남자들은 다
똑 같다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이었다.
"편견으로 가득찬 독을 껴안고 살았다는 것을, 어제 진혁 씨가 잠들기 전에도 깨우쳐 주고 잠
들고 나서도 깨우쳐 주었어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죽도록 아파하고, 그 사람을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는 남자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꿈에서조차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자신은 아파하는 진혁을 보며, 나쁜 경험
에서 비롯되었던 편견을 비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분이 곁에서 지켜보았으면 행복해서 눈물을 쏟았을 만큼 예쁜 잠꼬대였어요."
지현은 진혁이 어떤 잠꼬대를 하였는지 알려주는 대신 더 깊이 품속을 파고들며 말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만 이 품 좀 빌리고 싶어요. 손자국이 남지 않게 그냥 포근함만 느낄게요.
그분이 아셔도 탓하지 않을 거예요."
윗도리를 벗은 채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진혁은 욕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을 독에 비유
한 그녀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현이 진혁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세요. 여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남자보다 현명해져요.
진혁 씨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분은 보고 있을 거예요."
밤새 내린 비로 촉촉한 거리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진혁을 전철역까지 태워다 준
지현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워준 밤이었어요. 다시 뵐 때는 저나 진혁 씨나
더 밝게 웃을 수 있을 거예요."
마주 손을 잡는 진혁에게 지현이 함초롬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누구든 먼저 비운 독을 다시 채운 사람이 자랑해주기로 해요. 그래야 덩달아서 행복해지고
독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해질 테니까요."
그녀가 손을 흔들며 안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본 진혁은 전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지신이 잠든 사이 속옷까지 빨아 말려서 매만진 지현의 손길을 느끼며 정신까지 뽀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현주가 전화를 하고 퇴근시간에 맞춰 아파트로 왔다. 현주는 들어서자마자, 매형에게
서 자유휴가를 얻었다며 자고 갈 것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살뜰한 솜씨로 준비한 저녁을 먹
은 뒤 커피를 마시던 현주가 진혁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정이 아주 편해지고 아주 밝아졌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빙그레 웃기만 하는 진혁에게 안달이 난 현주가 다그쳤다. 진혁은 긴 이야기를 하는 대신, 어
떤 계기로 독을 비웠다고만 말했다. 현주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선문답 같은 말에 잠시 어
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금방 그 말의 뜻을 깨닫고 표정이 환해지며 좋아했다.
"잘 생각했어. 비워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거야."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진 현주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언니가 다영이 만나보라고 했다며?"
"응, 전부터 형님이랑 두 분이 계속 이야기를 하셨는데 계속 답을 미루고 있었어. 형수 동생과
부부로 살면서 형수를 바라보면 못할 짓이잖아. 계속 안 된다고 하다가 이번 주말까지 답을
드리겠다고 했어."
진혁의 말에 현주가 여우같은 표정을 지은 채 진혁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 누나에게 솔직하게 말해. 만나보기로 결심한 거지?"
거짓말을 못하는 진혁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풀꽃 같은 누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시인하자 현주가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게임 끝이야. 게임 끝!! 정말 잘 생각했어. 네가 지금 걱정하는 것들은 싸악 잊어버려도 돼.
언니 주선으로 다영이 만나는 거라면 정말 게임오버야.
다영이가 네 무거운 짐 다 버리게 해줄 거야. 이야~ 정말 잘 됐다."
진혁은 다영이라는 사형뻘 되는 처녀가, 무슨 해결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하영과 현주의
확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진혁의 생각을 읽은 현주가 얼굴을 코앞에 갖다대며 말했다.
"누나 예쁘지?"
진혁은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언니도 예쁘지?"
진혁은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주가 아이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다영이는 언니랑 내 장점 다 합친 위에다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더한 애야. 마음 쓰
는 게 얼마나 예쁜지 그 애 사랑 받는 남자는 아마 행복해서 까무러칠 거야. 몸이나 마음 어디
든 안 예쁜 데가 없는 애야. 정말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현주는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결혼 전에 언니랑 나, 다영이 셋이서 붙어 다닐 때, 그 애 보면 내가 여자라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였어. 내가 남자였다면 아마 목숨 걸고 덤벼들었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현주가 새치름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오늘은 누나로만 얌전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오늘 말고는 꼬마낭군을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야. 다영이 만나고 나면 이 누나가 여자로 안 보일 테니까."
말을 마친 현주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발딱 일어나더니 진혁을 잡아 일으켜 침실로 끌고
갔다. 진혁은 쩔쩔매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진혁을 침대에 쓰러뜨린 뒤 옷을 벗겨
내며 현주가 황홀하게 속삭였다.
"각오해. 다 녹여서 먹어버리고 다영이한텐 껍데기만 넘겨줄 거야."
현주의 보드라운 허벅지에 낀 채 버둥거리던 진혁은 한순간에 알몸이 되어버렸다. 진혁을 알
몸으로 만든 현주가 침대에 누운 채 몸을 비틀며 달콤하게 유혹했다.
"하아..안아 줘. 혁이 몸 다 기억하게 깊이 안아 줘. 하아.."
하영과 더불어 언제나 여성스런 옷만 입는 현주였다. 얇고 단아한 느낌의 원피스 속에 숨은
몸의 굴곡이 아찔한 자태로 꿈틀거렸다. 진혁은 천천히 현주의 몸 위로 올라타고 목을 끌어안
았다. 보드라우면서도 얇은 옷을 통해 느껴지는 매끄러운 살결에 자지가 우뚝 일어나 현주의
보지둔덕을 쑤셨다. 현주의 다리가 허리를 감자 치마가 흘러내리며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났
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탐스런 허벅지였다. 그 허벅지에 끼어
비벼지는 자극에 아득함을 느끼며 진혁은 돌처럼 단단한 자지로, 치마 속에 숨겨진 보지를 치
받았다.
현주가 허리를 뒤틀며 보지둔덕으로 자지를 문지르며 가파르게 넘어갔다.
"하으윽!! 하아..너무 좋아..해줘..응? 하아.."
진혁의 손이 현주의 등 뒤로 돌아가서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원피스의 허리에 달린 고운
끈을 풀자 현주가 팔을 들었다. 옷을 벗겨낸 진혁은 그 보드라운 천 뭉치에 얼굴을 묻고 누나
의 달콤한 향기를 들이켰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채 새하얀 나신으로 꿈틀거리던 현주가
그것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현주가 곱게 눈을 흘기며 신음을 터뜨렸다.
"하아응..하아..못 됐어..흐응..하아.."
진혁은 알몸으로 현주의 사타구니에 걸터앉은 그대로 현주를 일으켜 안아 브래지어를 끌러냈
다. 엉덩이 밑에 깔린 보지둔덕의 도톰한 감촉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안은 그대로 다시 엎
어진 진혁은 현주의 하얗고 귀여운 귀를 입술로 깨물면서 자지로 팬티 위를 쑤셨다. 우람한
자지가 팬티를 뚫을 듯이 밀어 젖히며 보지를 들이받는 자극에, 현주가 허리를 튕겨 올리며
자지러졌다.
"하악..흐아응..혁아..누나 갈 것 같아. 하앙.."
이미 촉촉하게 젖은 보지는 얇은 팬티 밖으로 달콤한 샘물을 흥건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질
퍽해진 팬티가 귀두에 비벼지는 감촉에 진혁도 몸을 떨었다. 자지가 들이박을 때마다 팬티가
보지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현주가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흐으응..하아아..으응..으으응..하아..흐으윽.."
현주의 신음에 자극을 받아 더 세게 들이받던 자지가 부르르 떨며 불만을 터뜨렸다. 팬티로
가려진 황홀한 보지에 담기고 싶어 아우성을 쳤다. 허리를 비틀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현주
가 숨 넘어가는 소리로 애원했다.
"하아앙..넣어주세요. 아으윽..흐응..여보..현주 보지에 자지 넣어주세요..하아악.."
진혁도 더는 견딜 수 없어 현주의 몸을 가리고 있던 유일한 천조각인, 앙증맞고 어여쁜 팬티
로 손을 가져갔다. 현주가 엉덩이를 들며 벗기기 쉽게 도와주었다. 달아오를 대로 올라서 입
술을 옴죽거리는 작고 어여쁜 보지를 진혁은 둔덕째 덥석 깨물었다. 누나의 얼굴처럼 곱고 단
아한 보지를 깨문 진혁은 입술로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아아악!! 현주 가요..하아아악..여보..하아악..어떡해..하악.."
동생에게 보지를 씹히고 빨리는 현주가 고개를 꺾고 몸부림치다가 허리를 튕겨 올리며 진혁
의 얼굴을 당겨 눌렀다. 그 바람에 진혁의 얼굴이 사타구니에 파묻히고 황홀한 감촉과 향기가
확 끼얹어 졌다.
청결한 여인은 보지에서도 향기가 나고 그 액에서도 지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지에서 시
큼하거나 역한 냄새가 나며 액이 습하고 탁하다는 것은, 그 여인의 몸상태가 청결하지 못하다
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현주의 어여쁜 보지는 그 주인처럼 향기를 폼고 있었다.
연분홍 속살을 수줍게 드러낸 채 파르르 떨리는 보지는 현주의 느낌 그대로였다. 보지에서도
주인을 닮은 풀꽃향기가 느껴졌다. 누나의 모든 것을 닮은 그 예쁜 보지 속을 진혁의 혀가 파
고들어 헤집기 시작했다. 현주가 다리로 진혁의 머리를 감으며 자지러졌다.
"하으윽!! 흐아으응!! 이상해..나..어떡해..갈 것 같아..아아아앙.."
부르르 떨며 진저리치던 현주가 진혁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위로 당겨 안았다. 그 꽃잎 같
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비비고 문지르며, 자지를 보지에 갖다 댄 진혁은 한 번에 쑤셔 넣었
다. 흉측할 만큼 우람한 자지가 여린 보지의 속살을 짓이기며 밀려들어 보지 깊숙한 곳을 치
받는 느낑에 오금이 저린 현주가 황홀한 비명을 질렀다.
"하아아아악!!"
자지가 보지 깊숙한 곳에 안착하자 진혁은 눈물이 날만큼 아늑한 쾌감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처음 찾아든 보지 속은 현주의 마음씨만큼이나 포근하고 아늑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아늑함과 포근함이었다. 황홀한 쾌감은 온몸을 핏줄을 타고 훑으며 바스러뜨리
는 것 같은 데도 자지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고 행복했던 것이었다. 옥죈다는
느낌보다는 보지가 자지를 편안하게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진혁과는 달리 웅장한
자지에 보지가 꿰뚫리는 현주는 잔인하고 지독한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었다.
"아흐윽..어떡해..아아앙..흐응..현주는 너무 좋아요..하아악..세게 해줘요..하앙.."
현주의 부추김에 진혁은 누나를 아끼는 마음까지 담아 소중하게 보지 속을 들락거리기 시작
했다. 지독한 쾌감에 바스러지며 꼭대기로 치달은 현주는 눈앞이 뿌예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굵은 자지가 보지를 윽박지르며 밀려들어서 깊이 틀어박힌 채 부르르 떨 때면 뼈까지
울리는 느낌이었다. 고운 눈동자를 흰색으로 채우며 현주는 까마득히 자지러졌다.
"하아악!! 여보..현주..갈 것 같아요. 하으윽..더 세게..더 해줘요..네? 흐아앙.."
현주의 몸은 섬세하고 우아한 악단이 되고 진혁은 지휘자가 되었다. 진혁의 몸짓에 따라 보지
와 허리와 엉덩이가 황홀한 선율을 자아냈다. 현주의 입술은 소프라노가 되었다. 온몸이 연주
하는 선율에 맞춰 감미롭고 뜨거운 노래를 하는 소프라노였다.
"아아아아악!! 엄마..하아악..사랑해요..현주는..당신..아아아..당신 죽도록 사랑해요..하아응..
내 낭군..하아앙..내 남자..여보..현주..쌀 것 같아요.."
현주는 다시 배가 되었다. 딱딱한 배가 아닌 우아하고 유연하며 황홀한 그 배는 진혁을 태운
채 스스로의 동력으로 오르가즘의 바다를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보지가 자지를 삶아대며 얻
은 동력이 엉덩이에 전달되면 그 엉덩이는 아래위로 들썩이는 엔진이 되었다. 그 엔진은 다시
가냘픈 허리를 움직이는 기관으로 연결되었다. 진혁의 등을 할퀴며 현주가 비명을 질렀다.
"아앙..하아앙..아무 것도 안 보여..하아아..현주..하악..가요.하아앙.."
부르르 떨던 현주가 황홀한 보짓물을 왈칵 쏟으며 자지러졌다. 그래도 악단은 연주를 멈추지
않고 동력은 식지 않았다. 현주의 허리가 맷돌처럼 돌아가며 자지를 갈아 대었다. 보지와 자
지를 하나로 꿴 채 서로 갈고 갈리며 현주와 진혁은 황홀한 몸살을 앓았다.
"하아앙..여보..사랑해요..사랑해..혁아..누나..누나는 혁이 죽도록 사랑해..여보..사랑해요.."
쾌감에 넋이 나간 현주는 진혁에 대한 호칭조차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진혁의 아내가 되었다
가 누나가 되더니 다시 아내가 되어 자지러졌다.
진혁은 드넓은 벌판을 질주하는 야생마가 되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주하는 야생마의 발
굽에 짓눌리고 밟히며 현주는 부서져 내렸다. 진혁의 몸에서 거대한 오르가즘의 덩어리가 뭉
텅뭉텅 커지면서 자지로 몰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황홀하게 부풀어 오른 쾌감은 진혁의 혈관
을 타고 자지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자지에 짓이겨지는 보지에서 출발한 현주의 오르가즘이 부피를 키우며 몸을 한 바퀴 돌아 다
시 보지로 몰려 내려갔다.
아늑하고 포근하면서도 부피의 끝과 깊이의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황홀함이었다. 그 황홀함에
짓이겨지며 진혁과 하영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몸을 떨었다.
"흐으윽..누나 쌀 것 같아. 흐아윽.."
"여보..싸주세요. 현주 보지에..하악..당신 여자 보지에 담아 주세요..하아악..흐응..사랑해요.
현주도..현주도 하아악..싸요..흐아윽..엄마!!"
현주와 진혁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진혁의 자지가 부르르 떨었다. 그런 자지를
더 세게 부둥켜안은 보지도 진저리를 쳤다. 폭죽이 공중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거대한 오르가즘이 자지와 보지를 터뜨리며 서로에게 쏘아졌다.
"하아아악!!! 엄마!! 여보!!"
"아으윽!!"
서로가 쏘아낸 폭포에 자지와 보지를 얻어맞은 진혁과 현주는 으스러지게 부둥켜안은 채 자
지러지게 몸을 떨다가 천천히 허물어져 내렸다.
아직도 배 위에 엎드린 진혁의 등을 쓸어주는 현주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진혁이 고
개를 들자 그 고운 눈으로 올려다보며 현주가 속삭였다.
"고마워요..내 낭군..사랑해요..이제 아무 걱정 없이 좋은 누나로 돌아갈게요. 내 낭군이 주신
사랑 기억하면서 더 좋은 누나로 있을게요. 사랑해요..사랑해..하아.."
아릿한 말에 가슴이 더워지는 진혁의 볼을 쓰다듬으며 현주가 다시 포근하게 말했다.
"혁아, 아무 걱정 마. 언니와 나를 믿어 봐. 다영이 만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너도 언니 바라보며 아파하지 않을 거야. 장담할 수 있어."
그런 현주를 진혁은 말없이 더 세게 안아주었다.
진혁은 다음 날 하영에게 전화해서 다영을 만나 보겠다고 했다. 하영이 기뻐하는 목소리를 들
으면서도 진혁은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도련님, 잘 결정하셨어요.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만나만 보세요.
그럼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다영이 만나고 나면 도련님은 더는
아파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하영은 말이 나온 김에 날짜를 잡아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했다. 이
번 주 토요일에 다영과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어떤 설렘이나 기대가 느껴지지 않는 진혁이었다. 꽃가게의 지현을 만난 후 마음이 편
안해졌을 뿐이었다. 지현의 말처럼 빈 독에 누군가를 담아야 한다면, 그 독에 하영과 현주가
담아주려는 사람이 담겼으면 하는 바람 정도만 있었다.
다영을 만나기로 한 토요일이었다. 진혁은 집에서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하영
이 들를 시간이었다. 다영과 진혁을 반드시 연결시켜 주려는 하영은 진혁에게 들러서 약속장
소인 소공동에 함께 가기로 했다.
옷장을 열어 양복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보던 진혁은 문득 생각이 나 속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진혁의 손끝에 사진작가 영아가 준 메달이 달려 나왔다. 그 메달에 깨알처럼 적힌 작은 글씨
들이 진혁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시력이 좋은 진혁으로서도 읽기 어려울 만큼 작은 글씨였다.
진혁은 서랍을 뒤져 찾아낸 돋보기로 메달을 비춰보았다.
돋보기로 들여다 본 메달의 글씨는 'Ha esperado. ¿Puede el amor?'라는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어에 크게 익숙하지 않은 진혁이었지만, 그 문장의 내용이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당
신을 사랑해도 될까요?'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진혁은 그 메달을 자신에게 주면서 궁금한 게 생길 때 찾아와서 돌려달라던 그 영아의
마음이 어렴풋하게나 짐작이 되었다. 눈부시게 화사하던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잠시
후면 형수의 여동생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미안했다.
초인종 소리에 메달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어 준 진혁의 눈앞에 하영이 서 있었다. 진
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사한 느낌의 원피스를 입은 하영의 모습은 여태껏 본 중 가장 아
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이제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정면으로 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왈칵
서러움이 몰려들었다.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진혁은 일부러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형수님, 정말 예뻐요. 눈이 부실 만큼이요."
그 말에 눈웃음을 지은 하영이 진혁을 포근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하영이만 믿으세요. 이제 도련님 눈은 하영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볼 거예요."
하영의 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도중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호주머니에서 메달을 꺼내 들
여다보았다. 그 메달의 주인에게 왜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는 진혁이었다.
무심코 진혁의 손을 더듬던 하영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
렸다. 그 소리에 하영의 얼굴을 본 진혁의 눈도 놀라움으로 커졌다. 하영의 표정이 놀람에서
기쁨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태껏 하영이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메달이에요?"
숨기려 해도 하영의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진혁은 알 수 있었다. 진혁은 그 사진작가의 이
야기를 간단하게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으며 하영의 눈이 다시 기쁨으로 젖어드는 것을 놓치
지 않은 진혁이었다. 그리고 진혁은 어떤 직감에 몸을 떨었다. 뭔가를 물으려는 진혁을 하영
의 떨리는 목소리가 가로 막았다.
"아무 것도 묻지 마세요..말로 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요."
하영의 말에 진혁은 자신의 직감이 맞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혁의 가슴이 여태까
지와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어 급격히 뛰놀았다. 그런 진혁의 손을 잡으며 하영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도우신 거예요..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돼요..흑.."
차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호텔 커피숍으로 향하는 진혁의 가슴은 더 크게 뛰놀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하영과 진혁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일어서다가 굳어버리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 사진작가 영아였다. 하영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진혁의 가슴을 흔들었던, 마주 보기조차
도 어려울 만큼 아름답던 그녀가 거기 있었다. 영아, 아니 다영에게도 진혁의 출현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고운 입이 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 사람은 언니 하영이 아닌, 진혁의 이름이었다.
"진혁 씨!"
진혁을 보고 얼어버린 다영의 표정이 놀람만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반가움이라는 것을 깨달
은 하영의 얼굴이 더 큰 기쁨으로 물들었다. 진혁이 동생을 반가워하는 것보다도 더 반가워하
는 다영을 보며 하영은 무거운 짐을 벗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리에 앉은 하영이 둘
사람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차 속에서 메달 보고 내 이럴 줄 알았어. 나는 할 역할도 없이 옷 한 벌 얻어 입으면 되겠다."
자신의 남자는 자신이 먼저 선택하겠다던 다영이었다. 그 동생으로부터 마음에 담아 둔 사람
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약간은 긴장하였던 하영이었다. 그러다 진혁에게 있는 메달을 보며
동생이 마음에 담아 둔 사람이 진혁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렇게 기쁜 표정을 지었던 것이었다.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상태에다, 남자에 대해서만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다영의 메달이 진혁에
게 있는 것을 아는 하영이었다. 더구나 그 메달의 의미를 하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찾지 못한 하영은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다영
과 진혁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오래 사랑해 온 연인들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보며 하영은 자꾸만 떠오르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이 진혁을 만나 뜨겁게 사
랑한 것도 이 자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마저 드는 하영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소개시키는 사람이 이쪽은 무슨 일 하는 아무개이고, 또 저 쪽은 어
떤 사람이라고 말하며 바쁘던데 난 할 게 없네."
하영의 말에 진혁과 다영은 얼굴을 붉히며 작게 웃었다. 잘 어울리는 진혁과 다영은, 하영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도 했다.
이미 적지 않은 추억까지 간직한 진혁과 다영이었지만, 이제 새로운 인연이 되어 정면으로 마
주 봐야 할 출발선에 서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될 인연은 여태까지 바라보던 것과는 그 의미
와 색깔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벌써 추억거리도 많은 사람들일 테니 편안하게 이야기들 나눠요. 난 이만......"
미소로 두 사람을 지켜보던 하영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먼저 일어나려 했다.
진혁이 만류하려는 것을 여우같은 다영이 냉큼 가로채며 인사했다.
"응, 언니 고마워. 훗~ 근데 말야. 언니가 소개시켜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진혁 씨를 알고 좋아
했으니 언니 옷은 안 해줘도 될 것 같아. 그쵸, 진혁 씨?
음..더 예쁜 내가 인심 써서 언니 차 값은 내줄게..힛.."
그런 다영의 볼을 살짝 꼬집고 나서 안아준 하영은 푸근해진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하영이 일어난 후 다영과 단둘이 마주 앉은 진혁은, 하영과 현주가 왜 그렇게 장담을 하였는
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다영의 아름다움과 재치와 마음씨와 여우짓, 숨 막히게 황홀한 향기와 그 감촉까지 느껴
본 진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 앉은 다영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
정성들여 단장한 다영은 처음 보는 진혁이었다. 며칠 전, 다영을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현주가 왜 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서둘렀는지도 이해가 갔다.
산모퉁이에서 처음 만나던 날부터, 하영과 현주의 매력에다 청초함과 화사함을 보탠 느낌을
주었던 다영이었다. 곱게 단장하고 마주 앉은 다영의 아름다움은 하영과 현주에 비할 바가 아
니었다.
"언니가 진혁 씨 이름이나 부대만 알려줬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텐데......"
메달을 건네 준 뒤 2년이 지나서야 정면으로 만난 게 안타까운지 다영이 새치름한 표정으로
진혁을 나무랐다.
"우리가 이렇게 늦게 만난 건 전부 진혁 씨 무관심 때문이라구요. 언니나 제게 이름만 물었어
도 이만큼이나 늦지는 않았을 텐데, 진혁 씨가 책임지세요."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산모퉁이에서 처음 만난 날 포즈를 취해 달라고 떼쓰
다가 진혁이 듣지 않자 느닷없이 '정진혁 이병 차렷!' 하고 호통치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꿈
결처럼 달콤하고 매혹적인 여운으로 다영이 물었다.
"그 메달에 새겨진 글자 읽어 보셨어요?"
"네, 스페인어더군요.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라는 뜻 맞죠?"
다영이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메달은 하영과 다영이 마드리드 여행을 할 때 함께 새긴 것이었다. 마드리드의 젊은이들에
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마법가게에서 새긴 메달이었다. 그 가게에서 메달을 새겨 마음속에
품은 사람에게 맡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영도 지훈에게 그 메달을 맡기
고 지훈이 돌려주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터 결혼에 이른 것이었다.
진혁은 문득 궁금한 게 생각나서 물었다.
"참, 전에 제가 근무한 부대 잘 안다고 하셨죠?"
다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화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 부대는 후배의 아빠가 연대장으로 계시는 부대에요. 그 분 도움으로 통제구역의 생태
계 촬영을 할 수 있었고, 진혁 씨 만난 거예요."
"혹시, 그 후배 이름이 진영이에요?"
진혁의 말에 다영이 놀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진혁은 하마터면 그 연대장의 사위가 될 뻔했던 내용을 들려주었다. 듣고 난 다영이 여우처럼
말했다.
"복무기간이 2년이기에 다행이지 더 길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