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2/21)

"이제 군인 티가 완연하네요. 전에는 풋풋한 소년 같았는데......"

부대 밖으로 나오며 스스럼없이 진혁의 팔짱을 낀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팔이 닿자, 하영이

기를 바랐다가 다른 사람이어서, 놀라면서도 서운했던 마음이 이상하게도 편해졌다. 그때까

지도 진혁은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지난겨울, 진혁이 눈길에서 꺼내줬던 그녀의 차가 보였다. 차 안에는 처음 만났을 때 진혁이

느꼈던 그 향기가 은은한 느낌으로 채워져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운 차가 큰길로 나오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왔는지 묻지 마세요. 감당하기 힘든 슬픈 일이 있었어요."

그녀의 차는 읍내로 향하는 길을 천천히 달렸다.

"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고 나와서 이리저리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그냥 진혁 씨께 오고 싶었어요. 오고 나니 편하고 좋네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녀는 정 일병이라고 부르지 않고 진혁 씨라고 불렀다. 진혁은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의 투명한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볼에 남은 눈물자국을 지워주었다.

"오늘도 진혁씨는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네요.

제가 온 게 싫지는 않으시죠?"

진혁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서너 시간의 인연뿐이었지만 그녀

가 자신을 면회 온 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싫지 않습니다. 뜻밖이라서 처음에 당황했을 뿐입니다.

묻지 않는 건 제가 말없이 있어도 편하게 느끼시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 말에 그녀가 진혁을 보며 웃었다.

아직도 눈에 이슬을 담은 채 그녀의 모습이 영롱한 느낌으로 진혁에게 각인되었다.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이렇게 같이 앞만 보고 있는데도 따뜻한 느낌이 들거든

요. 진혁 씨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가 봐요."

저만치 읍내의 시가지가 보였다.

읍내를 한 바퀴 돌며 무언가를 찾던 그녀는 고급스럽게 보이는 소갈비집 앞에 차를 세웠다.

"군인들은 잘 먹어야 돼요. 그래야 더 건강하고 씩씩한 군인이 되는 거예요."

차에서 내려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혁의 팔짱을 끼며 그녀가 한 말이었다.

주문한 갈비가 나오자 마주 앉은 그녀가 자신은 별로 먹지 않고 이것저것 진혁만 챙기려 했

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진혁은 다시 묘한 신비감과 함께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자신을 챙겨

주는 그녀나 그것을 대하는 자신이나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었다.

그녀의 손길엔 형식적인 것이 아닌,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정성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맑고

깊은 눈빛을 보면서 진혁은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

다. 청초하고 매혹적인 그녀는 마주 앉아 있는 모습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포근하고 아늑한 모습으로 아련하게 하는 그녀가, 가끔 하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와 그렇게 있는 동안, 소식 없는 하영으로 인해 답답했던 진혁의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세요. 먹는 모습도 참 이쁘네요."

그 순간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락없는 하영의 느낌이었다.

"얼굴 뚫어지겠어요. 제가 좀 예쁘긴 하죠?"

놀라서 멍해진 눈으로 보는 자신에게 고운 눈웃음으로 흘기는 그녀의 말에 진혁은 다시 몸을

떨었다. 하영이 아닌 누구에게서도 느끼지 못하던 분위기였다. 하영의 그것에 청초함을 더한

분위기였다.

산속의 해는 갈 길이 더 바쁘다.

돌아오는 길에, 진혁이 그녀의 차를 꺼내 준 산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

햇살을 받아 더 투명한 그녀의 얼굴은 올 때보다 많이 밝아져 있었다.

부대 앞에서 인사하고 차에서 내리려는 진혁에게 그녀가 말했다.

"손 내밀어 보세요."

말없이 내밀어진 진혁의 손에 그녀가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보니 깨알 같은 글씨가 새겨진 작

고 예쁜 금색 메달이었다.

"제게 아주 소중한 거니까 갖고 계시다가 휴가 나와서 꼭 돌려주세요. 왠지 이러지 않으면 다

시 못 볼 것 같아서 맡기는 거예요. 사진 보내드리면서 제 손으로 커피 타 드리겠다고 했으니

까 그 약속만 지키시면 돼요."

멀어지는 그녀의 차를 보면서 진혁은 자신이 선 채로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고 그녀와의 시간이 가슴에 깊게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색이 섞이지 않은 맑고 투명한 기억

이었다.

그날 밤에도 사이트에 하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애가 탔다. 하영이 어떤 일을 겪

고 있는지 모른 채, 힘을 보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진혁을 박 병장이 또 손짓으로 불렀다.

"형, 또 면회야. 뭔 대한민국 미인들은 전부 형에게만 면회 오나 봐요."

산속의 해는 갈 길이 더 바쁘다. 돌아오는 길에, 진혁이 그녀의 차를 꺼내 준 산모퉁이를 돌아

갈 무렵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햇살을 받아 더 투명한 그녀의 얼굴은 올 때보다 많이 밝아져

있었다. 부대 앞에서 인사하고 차에서 내리려는 진혁에게 그녀가 말했다.

"손 내밀어 보세요."

말없이 내밀어진 진혁의 손에 그녀가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보니 깨알 같은 글씨가 새겨진 작

고 예쁜 금색 메달이었다.

"제게 아주 소중한 거니까 갖고 계시다가 휴가 나와서 꼭 돌려주세요. 왠지 이러지 않으면 다

시 못 볼 것 같아서 맡기는 거예요. 사진 보내드리면서 제 손으로 커피 타 드리겠다고 했으니

까 그 약속만 지키시면 돼요."

멀어지는 그녀의 차를 보면서 진혁은 자신이 선 채로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고 그녀와의 시간이 가슴에 깊게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색이 섞이지 않은 맑고 투명한 기억

이었다.

그날 밤에도 사이트에 하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애가 탔다. 하영이 어떤 일을 겪

고 있는지 모른 채, 힘을 보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진혁을 박 병장이 또 손짓으로 불렀다.

"형, 또 면회야. 뭔 대한민국 미인들은 전부 형에게만 면회 오나 봐요."

면회소로 가면서 진혁은 지난 휴가 때 현주가 면회 오겠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면회 온

사람이 현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주라면 하영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 했다.

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여인이 들어서는 진혁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현주였다. 아름다움은 여전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수척해진 듯했다. 현주가 진혁의 경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덥석 안고 볼을 쓰다듬었다.

"원래부터 멋진 내 동생, 더 듬직해졌네."

겨우 두 살 많은 현주의 어른스런 말에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경계 나갔으면 헛걸음 할 수도 있었잖수?"

진혁의 말에 현주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나 뿐인 동생이 누나를 바보로 아네.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너에게만 말 안했지, 미리 중대

장님께 말씀드리고 온 거야."

현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대장이 진혁에게 사실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께서 미리 신청을 하시면서 정 일병을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본

인에게는 미리 말을 안했지."

며칠 전에 중대장이 자신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했던 말의 의미를 진혁은 비로소 알 것 같

았다. 며칠 전 따로 부른 그가 이번 일요일에 진혁은 외출금지라고 했던 것이었다.

현주는 누나 노릇을 톡톡히 하려는 듯 직접 만든 음식을 담은 꾸러미를 세 개나 준비하여 왔

다. 하나는 내무반 동료들 몫이었고 나머지는 상관들을 위한 것과 초소근무자를 위한 것이라

고 했다.

"면회 오시면서 위병들까지 챙기는 가족은 정 일병 누님이 처음이십니다.

대위 강정철! 아름다운 누님의 정성 감사히 받겠습니다. 충성!"

부대 정문까지 현주를 배웅한 중대장이 거수경례를 붙이며 한 말이었다. 현주가 중대장에게

허리를 나붓이 숙여 마주 인사했다.

"동생 잘 부탁드립니다. 나이 든 자식을 군대 보낸 어른들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현주의 말에 중대장이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대답했다.

"전혀 염려하실 필요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우리 정 일병은 누구보다도 군 생활을 잘하고 있

습니다. 저희 부대의 보물 같은 사람이라서 제가 따로 챙길 여지도 없습니다. 안심하시고 동

생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차를 출발시킨 현주가 진혁의 볼에 '쪼옥' 소리가 나게 입술을 맞추며 웃었다.

"약속대로 면회 온 누나 이쁘지?"

깊은 산속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는데 들에는 벌써 봄이 와 있는 것 같았다. 봄의 전령인

새싹들이 들을 연둣빛으로 채워가는 중이었다.

현주가 차를 세운 곳은 어제 사진작가와 함께 왔던 그 암소갈비집 앞이었다.

"오늘 내 동생 배 터뜨려버릴 거야. 군인들은 언제나 잘 먹어야 해."

그 말에 진혁은 소리 내어 웃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군인들에게 먹을 것을 먼저 챙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제도 왔었기에 그 식당의 주인은 진혁의 낯이 익었나 보다. 진혁을 보며 반갑게 인사하다가

돌아서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신 두 여인과 번갈아 이틀 연속으

로 온 진혁이기에 그럴 만도 했다.

중대장의 호의로 외박허가를 받은 상태였기에 진혁과 현주는 술을 곁들였다. 어른들의 안부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혁은 두 가지 갈증으로 애가 탔다. 하영의 소식과 함께, 현주

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슬픈 그늘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였다. 쉽게 먼저 물어 볼 수 없는 것들

이기에 자꾸 술잔에만 손이 갔다.

"언니 어머님이 돌아가셨어."

입으로 술잔을 가져가던 진혁의 손이 그대로 딱 멈춘 채 한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다시 술잔

을 입으로 털어 넣으며 진혁은 눈으로 물었다.

"열흘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어. 지병이 있으셨는데 따님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시려고 숨긴

채 치료 받으셨나 봐."

겨우 입을 연 진혁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형수님은 괜찮으셔?"

"장례 중에는 그래도 잘 버텼는데 지금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어."

진혁은 가슴이 저리다 못해 에이는 듯 했다. 가녀린 몸으로 그 큰 슬픔을 감당하고 있을 하영

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에 목이 메었다. 슬퍼하고 있을 하영에게 아무런 힘을 보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참 인자하고 온화한 분이셨는데, 나도 며칠 동안 슬퍼서 밥을 못 먹었을 정도였어. 언니는 어

떻겠어? 언니도 언니지만 동생 다영이는 장지에서 나 부둥켜안고 까무러치기까지 했어."

현주의 말에서, 하영에게 여동생이 있고 이름이 다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진혁이었다. 단

짝 선배인 하영의 집을 무시로 드나들었기에 현주는 하영의 가족들과도 친했다고 했다.

현주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하영뿐 아니라 한 살 어린 다영과도 자매처럼 지냈다는 거였다.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편안히 가셨으니 다행이야. 언니와 다영이는 한동안 어머니가 안 계시

는 자취 때문에 힘들어 하겠지만......혁아, 우리 언니와 다영이가 어서 기운을 차리기를 바라

는 의미로 건배하자."

현주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진혁은 하영이 얼른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했

다. 마실수록 갈증이 더하는지 현주는 술잔을 거푸 입으로 가져갔다. 얼굴이 약간 발그레해진

채 눈이 촉촉하게 젖은 현주는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얼굴엔 시간이 지날수록

처연한 슬픔의 그늘이 짙어지는 듯 했다.

이른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혁아, 누나 추워. 가슴이 시린 것 같아."

식당을 나와서 묵을 곳을 찾아다니는 중에 현주가 말했다. 처연한 표정을 간간이 내보이던 누

나의 가슴 시리다는 말이 서늘한 아픔으로 느껴졌다. 진혁은 현주의 어깨를 품으로 끌어 당겼

다. 살며시 어깨를 맡긴 채 고개를 기대는 현주를 진혁은 두 팔로 감싸 안으며 걸었다.

향긋한 기운과 포근한 감촉이 가슴으로 스며들고 부드러운 머릿결이 진혁의 얼굴을 간질였

다. 현주가 속삭이듯 말했다.

"따뜻해. 이제 좀 살 것 같아."

연휴를 맞은 군사도시의 늦은 밤엔 묵을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면회 온 사람은 많은데 숙박

업소가 한정되었기에 빈 방이 없었다. 현주는 추워서 오들오들 떨다 못하여 입술이 파래져 있

었다. 워낙 착한 현주이기에 그 와중에도 불평 한 마디 내뱉지 않고 진혁의 품만 파고들었다.

착하면서도 지혜로운 현주였다.

읍내에서는 방을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현주가, 지나가는 개인택시를 세웠다.

"기사님, 뭣 좀 여쭤볼게요."

손님이 아니라는 걸 알고 떫은 표정을 짓던 기사가 현주를 보더니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미인은 어디를 가든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미인 우선의 법칙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00부대 위수지역 내에 호텔은 없나요? 약혼자 면회 왔는데 묵을 곳이 없어서요."

"아, 여기서 20분 거리에 호텔이 하나 있긴 해요. 위수지역은 맞는데 빈 객실이 있나 모르겠네

요. 잠시만, 내가 알아볼게."

기사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호텔관계자인 듯한 사람과 한참 통화를 하는 듯 했다.

"타세요. 운 좋게 마침 빈 객실이 하나 있다고 하네요."

호텔로 가는 도중 기사가 현주에게 물었다.

"약혼자가 늦게 입대했나 보네요?"

그러자 현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네, 어릴 때부터 정혼한 사이인데 공부를 마치느라 늦었어요."

현주의 말에 진혁이 빙그레 웃었다. 크면 자신에게 시집오겠다고 했던, 유년기 현주의 약속이

떠올라서였다. 기사가 신기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요새도 그런 인연이 있나 보네.

약혼자 제대까지 이쁘게 기다렸다가 아들딸 주렁주렁 낳고 행복하게들 사소."

호텔 정문에서 택시를 보낸 현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릴 때 진짜 정혼하였으니 약혼자 맞지?"

어린 시절 워낙 한방에서 껴안고 자던 진혁과 현주였다. 자신을 끔찍하게 위하는 진혁을 현주

가 더 탐하여 잠시도 떨어져 있는 것을 못 참아 했었다. 둘의 정이 얼마나 두터웠던지 현주가

중학생이 될 무렵 이모 댁이 서울로 이사하기까지는 어른들도 둘이 붙어서 자는 것을 당연하

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떨어져 있던 시간이 안타까울 뿐, 같은 방에 잔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

은 두 남매였다. 진혁은 추위에 떨던 현주를 위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두었다.

"누나가 먼저 씻고 와."

일어서려던 현주가 그 사이에 다리가 풀렸는지 휘청거렸다.

"버들가지 같은 여인이 이기려고 대드는 걸 보고 술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진혁이 다가가서 현주를 안아 침대에 뉘어주고는 말했다.

"팔 들어 보세요. 술꾼 아줌마."

현주가 배시시 웃으며 팔을 들자 진혁이 윗도리를 벗겨내었다. 길고 풍성한 치마를 어떻게 풀

어내는지 알 수 없어 끙끙대는 진혁을 웃으며 지켜보던 현주가 스스로 호크를 끌르더니 매듭

으로 묶여 있던 끈을 풀었다.

"이제 욕실까지 날아서 갈 테니 꼭 잡아."

진혁은 슬립 차림이 된 현주를 안아들었다. 현주가 보드라운 팔로 목을 감은 채 어깨에 얼굴

을 묻었다. 욕실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려는 진혁을 현주의 애잔한 목소리가 불러 세웠다.

"혁아, 누나랑 같이 씻어."

처연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끌려 돌아 선 진혁의 눈에 새하얀 나신이 서 있었다. 그리고 아름

다운 눈에는 예의 그 슬픈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말없이 다가간 진혁을 현주의 손길이 천천

히 나신으로 만들었다.

진혁은 누나의 눈에 가득한 그 슬픔을 지워주고픈 마음으로 정성껏 씻어주었다. 보드랍고 탄

력 있는 현주의 몸을 만질 때나, 현주의 황홀한 손길이 자신의 몸을 씻어줄 때나 어떤 욕정도

다른 마음도 들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정성이, 아직 말하지 않은 누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더 씻어낼 수 있기만을 바랐다.

서로를 닦아준 진혁과 현주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여성스러움의 전형인 현주는 준비해온

잠옷차림으로, 진혁은 팬티만 입은 채였다. 팔을 베고 품에 안긴 현주가 손으로 진혁의 가슴

을 쓸어주며 말했다.

"네가 내 동생이라는 게 너무 좋으면서도 동생이라서 너무 슬퍼..흑.."

흐느낌이 섞인 말에 진혁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현주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현주의 눈

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볼을 타 내리고 있었다.

"동생이 아니었으면,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이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될 텐데......

혁아, 누나 너무 힘들어."

"누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어떤 예감에 진혁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네 매형이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어. 그렇게 따로 만난 지 꽤 오래 되었나 봐.

걱정 끼쳐드릴 것 같아서 엄마나 언니에게 의논도 못하고, 속만 타들어가는 중이야. 흑.."

울음소리가 커지는 현주를 더 세게 안아주며, 진혁은 매형이라는 사람을 같은 남자로서 도저

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하영과 내세울 수 없는 사랑에 빠져 있기에, 다르게 생각해보려

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 지훈도 하영이 모르는 비밀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경우였다. 하영

의 신체적 비밀을 알 수 없는 형이기에 나름대로 자신에 대한 진단을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현주의 경우는 자신과 형의 문제와는 너무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현주는 하영과 사진작가와

더불어, 미적 안목이 높은 진혁이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어진 성품에다가 그

셋 중에서도 가장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거기에 몸이 불편한 시부모 봉양과 헌

신적인 내조는 귀국하기 전에도 부모님을 통하여 듣고 있었다.

그런 여인을 두고도 다른 여자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도 그런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여자가 현주보다 나을 거라는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이 주관적이라지만 누나를 아프게 하는 남자에게 지칭으로라도 매형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도 누나의 든든한 우군역할을 해줘야 했다.

"그 자식이 만나는 계집이 어떤 년이래?"

진혁에게서 처음 듣는 거친 말에 현주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놀라서인지 흐느끼

는 것도 잊은 듯했다. 현주만 처음 듣는 말이 아니라 진혁 자신도 태어나서 처음 하는 가장 거

친 말이었다.

"누나 벌써 잊었어? 어떤 놈이든 우리 누나 울리는 놈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가 그냥 안둔다고

한 말 잊은 거야? 누나 울리는 놈이면 그게 누구라도 나는 사람대접 못해."

마음이 시키는 그대로 내뱉은 그 말은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현주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기도 했다. 진혁이 어떤 경우에라도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 줄 것을 믿었던 현주였기에 그 말

에 다시 흐느꼈다. 진혁을 껴안은 채 볼을 비비며 현주가 북받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듣고 싶었어. 사랑해. 내 목숨보다 더 귀한 내 동생. 왜 동생으로 태어난 거야? 너무

미워. 남자로 나타나서 나 데리고 가지 못하는 혁이가 너무 미워..흑.."

흐느끼는 현주의 등을 어루만져 주면서 진혁은 나름대로 하나의 확신이 있었다. 그 매형이라

는 작자가 지금은 현주를 아프게 하고 있지만 반드시 돌아 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진혁만이 가질 수 있는 편협하고 주관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현주를 가까이서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눈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가질 수 밖에 없는 믿음

이었다. 어떤 연유로 지금은 어긋나 있더라도, 바보가 아닌 남자라면 현주와 남남이 될 수 없

을 터였다. 품 안에 있던 현주를 타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일

게 뻔해서였다. 진혁은 무언가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누나, 나 믿지?"

진혁의 말에 현주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 보는 거야? 부모님과 오빠께는 죄송하지만 내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

람이 너야. 확인하는 거라도 그렇게 물으니 누나 너무 서운해..흑.."

"그럼 물어 볼게. 누나가 정말 바라는 걸 솔직하게 말해 줘. 이혼해서 타인으로 사는 걸 바라

는 거야? 아니면 정말 반성하고 제자리 찾아오기를 바라는 거야?"

그 말에 현주는 금방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그가 지금 상태라면 매형이라고 부를 자신 없어. 그가 누나 마주 보고 몸에 손 대는 것

조차 치가 떨려. 그렇지만 지혜로워져야 해. 감정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아냐. 그치?"

그 말에 현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엔 이미 진혁이 하라는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아이 둘이 딸린 이혼녀가 된다고 해도 누나 매력이 손상되지는 않는다고 봐. 아이들도 그렇

게 사랑스럽고 이쁘게 자랐으니 여인으로서의 누나에게 감점요인도 결코 아냐. 그렇지만 이

것도 생각해 봐야 해."

"어떤 것?"

"지금 누나를 아프게 하는 그 사람을,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사랑했었지?"

현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순진한 건지 바본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로 네 색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

었어. 그러다가 그게 헛된 꿈이라는 걸 알고는 무척 혼란스러웠어.

너만큼 나를 아껴 줄 사람이 또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것이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있는지 현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네가 미국으로 가고 난 뒤에는 내게 남자로는 두 가지 유형으로만 보이기도 했어. 너를 조금

이라도 닮은 사람과 조금도 닮지 않은 사람으로만 구별되어 보였어. 그리고 너를 닮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이 나타난 거야."

진혁을 닮지 않은 남자들 중에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주였다. 안 그러면 더 가슴 아플 것 같

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따뜻하고 정직하고 예의 바른 남자였어. 능력도 있었고 여자를 위할 줄도 아는 남자였어."

사랑하려고 노력하였고 노력하여 얻은 사랑이었기에 더 헌신적으로 내조를 하였다고 했다.

연로한 시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망설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자의 부모님이

기에 봉양은 당연한 도리라고 배우고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주의 타고난 착한 성

품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도 큰 몫을 거들었다는 것을 진혁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내가 남자로 알았던 사람은 너와 그 사람뿐이야. 너를 사랑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사

람을 더 사랑했어. 네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사랑했어. 그 사실을 아는 그 순간까지도 깊

이 사랑했어.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진혁은 약간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 실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현주의 남자를 보는 눈에 대해

서만은 진혁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지혜로움은 잘 아는 진혁이었다.

결혼 전에 그를 보았을 형 지훈과 이모부 내외의 안목을 믿는 진혁이었다. 무엇보다도 하영의

안목을 더 믿는 진혁이었다.

"결혼 전에 형이 반대를 하지는 않았어?"

"아니, 언니와 오빠가 적극 밀어 주었어. 특히 언니가 더......

그래서 언니가 미안하게 생각할까 봐 의논도 못하고 있는 거야."

하영의 눈에 든 사람이라면 제자리로 돌아올 여지가 큰 사람일 거라고 진혁은 믿었다.

"누나,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응, 결정도 네가 내려 줘. 나는 무조건 따를 거야."

진혁이 현주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이그, 난 오빠가 아니고 동생이네요. 술꾼 아줌마."

"그래도 넌 내 영원한 보호자잖아. 잊었어?"

품으로 파고드는 현주를 세게 안아준 진혁이 현주의 눈을 보며 말했다.

"누나가 지키고 싶고 되찾고 싶은 것을 내가 되찾아 줄게. 대신 누나도 노력해야 돼."

"어떻게?"

현주의 물음에 대한 진혁의 답은 현주가 생각지도 못한 주문이었다.

"누나 반듯하게 누워 봐."

진혁의 엉뚱한 말에도 현주는 아무런 반문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반듯하게 누웠다. 조각이

라도 한 것처럼 아름다운 몸의 굴곡이 잠옷자락을 밀쳐 올리며 고스란히 드러났다. 진혁은 말

없이 현주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포갰다. 하영과는 다른 색깔의 포근하고 아늑한 쾌감에 진

혁의 몸이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진혁의 몸을 받아 안은 현주는 반항도 하지 않고 달콤한 비

음만 터뜨렸다.

"하아..혁아.."

진혁은 대답 없이 눈을 마주보며 현주의 몸 위에서 팬티를 벗어 던졌다. 현주는 진혁의 행동

에서 무엇을 읽으려는지 눈을 깊게 들여다보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진혁이 현주의 황홀한 몸 위에 자신을 포갰다. 우람하게 일어난 자지가 잠옷을 뚫고 보지를

윽박질렀다. 현주가 진혁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몸을 비틀었다.

"하앙..혁아..하아..누나..하아..어떡해.."

그 꿈틀거림에 진혁은 더 커지는 쾌감을 숨기지 않고 현주의 입술에 키스했다. 언젠가 먼저

입술을 도둑맞은 적은 있지만 깊은 키스는 처음이었다. 하영과는 다른 색깔이었지만 하영의

입술만큼이나 달콤하고 황홀한 입술이었다.

"누나, 나 믿는다면 아무 말 말고 나 안고만 있어 줘."

"하아..으응..혁아..그럴게..사랑해..내 동생.."

진혁의 손이 잠옷자락을 들치고 팬티를 잡자 현주는 몸을 떨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혁이 팬티를 벗기기 쉽게 엉덩이를 들어주기까지 했다.

현주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동생이기에 욕정으로 탐한다고 해도 아까울 게 없었다. 그보

다 더한 것을 원한다고 해도 기꺼이 다 내어 줄 수 있는 동생이었다. 스스로 먼저 진혁에게 안

겨서 한순간만이라도 어릴 적 낭군의 여인이 되고픈 현주였다.

팬티를 벗긴 진혁의 손이 다시 잠옷 속으로 다리를 쓰다듬으며 올라오더니 보지에 닿았다. 이

미 보지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진혁은 잠옷자락을 완전히 걷어 올린 뒤

현주의 눈을 보며 다시 몸을 포갰다. 우뚝 솟은 자지의 끝 부분이 보지에 살짝 파묻혔다. 현주

가 눈을 하얗게 치뜨며 고개를 뒤로 꺾고 부르르 떨었다.

"하악!! 하아..혁아..누나 좀..하앙.."

진혁도 누나의 보지에 살짝 박힌 자지의 감촉에 벼락 맞은 듯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부르르 떨던 현주가 다리로 허리를 감아 조이며 몸을 비틀었다.

"혁아..하아아..누나..어떡해..하아.."

진혁은 쾌감에 떨면서도 허리에 힘을 주어 버티며 현주에게 말했다.

"나도 누나 갖고 싶어.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이러는 게 아냐. 누나 사랑해. 이대로 누나에게

엎드리면 어른들에 대한 죄책감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어. 우리 둘 다 어떤 의미로든 서로 목

숨처럼 아끼는 사람들이니까 후회도 안할 거라는 걸 알아. 내 말 맞지?"

"하아..응..후회 안 해..내 동생에게 이보다 더한 거라도 안 아까워..네게 다 주고 싶어..하아"

"내 말 더 들어 봐. 우린 지금 한 몸이 되거나, 참아내거나 달라질 건 하나도 없어.

섹스 했다고 누나와 내가 달라질 것도 전혀 없을 거야. 그렇지만 누나와 나처럼 서로 아껴주

는 사이가 얼마나 될 것 같아?"

그 말에 현주가 뭔가를 깨달았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 상태에서 참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야. 어쩌면 거의 없을 수도 있고......

섹스가 서로에게 기쁨이나 행복을 주는지 욕정을 채우는 행위인지는 다르겠지만 욕구는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을 거야."

"으응, 그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누나와 내가 이럴 목적으로 여기 온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이 될 수 있었잖아. 그 매형도 어쩌

면 의도적인 게 아닌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을 거야. 그걸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한

뒤에 예전보다 더 나아지면 덮어주자는 말을 하려고 이런 거야."

그 말에 현주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반드시 누나를 원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게 해줄게. 약속할게. 다음 휴가 때까지만 기

다려 줘. 매형이 누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게 할게. 누나도 매형이 정말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면 일단 지켜는 보겠다는 마음의 준비만 해줘."

현주가 눈물을 쏟으며 진혁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흑..미워..왜 내 남자로 나타나지 않고 동생으로 나타나서 아프게 하는 거야?

미워..사랑해..미워..흑.."

현주의 이마에 입술을 포갠 뒤 머리를 쓰다듬어준 진혁이 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또 운다. 동생이니까 이렇게 누나 지켜 줄 수 있잖아. 바보 같아. 나 이제 내려 갈 거야. 나도

사람이라서 참기 힘들어."

현주가 갑자기 다리로 허리를 더 세게 감아 조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아..참지 마..안 놔줄 거야. 사랑해..혁아..해줘..응?"

자지가 보지에 더 깊이 틀어박히자 그 쾌감에 몸을 떨면서도 진혁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 아

득한 쾌감에 엎어지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기 힘들어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누나..허리에..흐윽..힘 빼줘..나도 누나 미치도록 갖고 싶어.

그렇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제발..누나.."

현주가 힘은 빼지 않은 채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진혁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누나 착한 성품 때문이야. 누나가 나와 관계를 갖고 나면 매형을 완전히 바꿀 수 없어.

미안한 마음 때문에 전처럼 되돌아가게 될 거야.

또 하나는 내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어. 미안

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싶지 않아. 누나 나 이해해 줄 거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주가 다리를 더 세게 감아 당기며 엉덩이를 치받아 올렸다. 그 바

람에 진혁이 제지할 틈도 없이 보지가 자지 속으로 깊숙이 틀어박혀 버렸다.

"하아악!!"

"허억!!"

미칠 듯한 쾌감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덮쳤다. 하영에게 삽입하였을 때보다 약하지 않은 황홀

감에 진혁은 아득해졌다. 작고 소담스런 보지가 자지에 맞게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꼭 맞는

느낌이었다.

진혁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부들부들 떨던 현주가 팔과 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속삭였다.

"하아..내 어린 낭군..사랑해..네가 내 첫사랑이란 게 너무 자랑스러워..고마워.."

진혁의 얼굴을 당겨 깊숙이 키스한 현주는, 엉덩이를 한 번 더 으스러지게 당겨 안았다.

"하아악!! 사랑해..내 영원한 낭군.."

뿌듯한 포만감을 한 번 더 느낀 현주는 스스로 허리를 비틀어 보지가 삼키고 있던 자지를 놓

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진혁을 껴안고 고혹적인 숨결로 속삭였다.

"내 낭군..세상 모든 남자들이 당신 같기만 하면 여자들이 울 일이 없을 거야.

지켜줘서 고마워요. 간절히 갖고 싶지만 당신 말대로 따른다고 했으니 따를게요.

여보, 사랑해요."

갑작스런 존댓말에 진혁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이 멍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진혁을 현주는 고혹적인 눈빛과 요염하고 교태가 가득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넋을 빼놓았

다. 그러다가 난데없는 알밤을 한 대 먹이고는 까르르 맑은 웃음을 쏟아내며 한순간에 누나로

돌아갔다.

"내 진짜 낭군에게 여보 당신이라는 말 한 번 했더니 요게 아주 감격해서 혼줄을 다 놓았네.

요것아, 정신 차려. 기차 떠났으니 이제 그 말은 샘나는 그 여우한테서나 들으란 말야."

하영의 여우짓이 구단이라면 현주는 십단이었다. 진혁은 그 여우짓에 휘둘려 멍한 가운데도

다시 그 매형이라는 사람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기인 하영과 수없이 많은 관계 속에 까무러쳤지만 현주의 분위기와 몸은 결코 그에 못지않

았다. 만약 하영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현주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을 게 너무도 분명

했다. 그런 현주를 두고 다른 여인에게 빠져 있는 매형이라는 사람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했다.

현주는 진혁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아직 말하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며, 때가 되면 먼저 말해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

었다. 진혁과 현주는 그대로 엉킨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모처럼 달콤하고 아늑한 품에 안겨 단잠을 자던 진혁은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황홀함에 눈을

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