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54)
  • 152화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확인한 후.

    서희는 비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담은 화산에서 자신이 왜 폭주했는지 천상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그렇게 서희는 비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동안 쌓였던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곤 매영에 대해 함께 가슴 아파 해주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화제는 자연스럽게 제 2 차 정사대전으로 옮겨갔다.

    구인철이 흑천맹으로 떠난 지 대략 100일.

    비담은 지상에서 벌어질 참담한 살육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그래서 둘은 서둘러 초옥으로 돌아와 흑천대원과 함께 흑막이 있는 낙양으로 길을 나섰다.

    낙양 취선루의 한 별실.

    비담과 흑막주 이성보의 눈물겨운 상봉이 이어진 후 비담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무림의 정세에 대해 물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많이 안 좋습니다. 그동안 사도련이 비축한 힘을 너무 간과한 것이 큰 실수였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패착은 오정회와 정도맹이 본의 아니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1 차 정사대전과는 양상이 많이 다른데 말이죠.”

    “양상이 다르다니요?”

    “이번엔 황제가 움직였습니다.”

    “황제가요?”

    “그렇습니다. 아주 작정하고 무림을 지우려는 듯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 오정회와 정도맹, 흑천맹과 사도련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허나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느라 애써 무시하고 있지요.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집 안 싸움 하느라 큰 도둑이 들어오는 것도 무시한다?”

    “그런 셈이지요. 뭐 사도련이야 하루 속히 무림을 일통해 황제에 대항하겠다는 심산이고, 사도련의 계책에 의해 내분과 내홍을 겪으며 힘이 약화된 오정회와 정도맹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 건너 불구경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요. 오로지 흑천맹이 전면에 나서서 분전하고는 있으나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사도련주란 자 보통이 아니군요.”

    “치밀하고 간사한 자지요. 1차 정사대전부터 지금의 사태까지 모두 그 자의 작품입니다.”

    “그럼 지금 전면에 나서서 싸우고 있는 것은 흑천맹 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나마 구인철 대협의 활약 덕분에 지금껏 버틴 것이지요.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란 말씀이시군요. 그럼 결국 황제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눈치 보는 저것들을 움직이게 해야겠군요.”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강 건너에 불이 났다 생각하니 저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불 제가 화끈하게 옮겨 붙여야지요. 그래서 말인데 저번에 말씀하셨던 오정회의 치부에 대한 자료들을 두 부씩 필사해 주십시오. 더불어 정도맹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허나 정도맹에서 공자님을 쉽사리 만나줄 지 의문입니다.”

    “미래를 담보로 훌륭한 미끼를 던져주면 아마도 덥석 물것입니다.”

    “미끼요?”

    “오정회의 치부와 사도련의 말살 말입니다. 그것을 준다면 작금의 상황을 고려하여 아마도 움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련의 견제가 만만치 않아 정도맹이 쉽게 뚫을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을 믿어줄는지도...”

    “아마도 지금의 여건상 저를 쉽게 믿진 못하겠지요. 그래서 든든한 조력자 하나를 대동할 생각입니다.”

    “조력자라면...”

    “화산에서 구해줬던 그 아저씨 있지 않습니까?”

    “아! 제가 보호하고 있는 오대협 말씀이시군요.”

    “막주님께서 신경써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 양반이 지닌 황금 십만 냥과 함께 정도맹을 찾아간다면 일이 생각보다 쉽게 성사될 것입니다.”

    “작금의 위기를 타파할 묘책이십니다. 정말 공자님의 말씀대로만 된다면 궁지에 몰리는 것은 되려 사도련이 되겠군요. 그런데 사도련의 세가 생각보다 강한데 괜찮을까요?”

    “사도련의 힘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동시에 움직여야겠지요. 그래서 무엇보다 막주님께서 지닌 정보의 힘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신속하게 정보를 교환해야만 이쪽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고요.”

    “알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명확해졌습니다. 그럼 공자님께서 부탁하신 일들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준비가 되는 데로 알려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공자님을 돕겠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비담은 이성보의 손을 한 차례 굳게 잡아주었다. 이성보 역시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방을 나섰다.

    나흘 후.

    오정회의 장로회의가 긴급 소집되었다. 안건은 비담이 하루 전 보낸 각 세가의 치부책. 모두의 시선이 탁자 중앙에 쌓여있는 책자를 향한 채 굳어있었다.

    오정회의 실질적 수장인 벽력수(霹靂手) 황보영운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사태를 어찌하면 좋겠소?”

    “대체 오정회 관리를 어찌 하셨기에 저런 것이 공공연히 나돈다 말입니까? 회주께선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천무신검(天武神劍) 모용수가 거칠게 쏘아보며 말했다.

    “지금 나를 탓하는 것이오? 보다시피 저 책자엔 각 세가의 치부가 모두 기록되어 있소. 그것이 어찌 내 잘못이란 말이오?”

    방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대노한 음성이 장로들의 귀를 후벼 팠다.

    “자자, 우리끼리 싸워봤자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만들 합시다. 그리고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어찌 주워 담을지 의논하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래, 림주께선 무어라 하시던가요?”

    검황 남궁헌수의 중재로 방안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별 수 없다 하십니다. 그 자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는 수밖에. 우선 오정회와 은송림의 모든 힘을 동원해 사도련의 뒤를 치는 방법밖엔 없다 하셨소. 그런 다음 저것을 보낸 자를 색출하여 원본을 찾아내고 살인멸구하는 것이 최선이라 하셨습니다.”

    “흠, 현재로썬 가장 최선책이군요. 헌데 고작 치부책 하나 때문에 우리가 움직이기엔 너무 위험부담이 크지 않겠소? 피해 역시 만만치 않을 터인데 말이오.”

    “고작 치부책 하나라 하셨소? 저것이 세상에 공개되면 어찌 되는지 상상이나 해보신 게요? 우리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물건이란 말이오.”

    회의에 참석한 장로들의 마음이 또 다시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중 유독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섬응탄 제조에 앞장섰던 제갈가였다.

    삼대구족이 죽을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화탄. 절대 새어나가선 안 될 비밀이었다.

    “그만들 하십시오. 솔직히 오늘 회의는 여러 장로님들의 의견을 듣는 다기 보다는 림주님의 뜻을 전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그만 노여움들 푸시고 어찌 움직일는지 상의합시다.”

    황보영운이 소란스러운 장내를 정리하였다.

    장로들 역시 불가피한 선택임을 깨달았기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회의는 비담이 통보한 방법과 기한을 맞추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흘러갔다. 그렇게 비담은 오정회와 은송림이라는 훌륭한 꼭두각시를 얻게 되었다.

    오정회가 비담의 뜻대로 움직일 그 시각.

    비담은 신기검(神奇劍) 오욱을 대동한 채 정도맹의 정문을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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