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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146/154)

146화

염부와의 대규모 전투 준비에 여념이 없던 천계 진영.

진영의 후방에서 날벼락처럼 터진 굉음으로 인해 일순간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냐?”

상제와 함께 전투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던 서천왕 후성의 음성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소장이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무장 혁도월은 짜증이 잔뜩 배인 서천왕의 물음에 다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았는가?”

“아무래도 염부 쪽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하진 않으나 소수의 영체들이 저희 쪽 후방에 침투하여 혼란을 조장하고 있사옵니다.”

“벌써?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여겼거늘. 그래, 그 수가 얼마나 되는가?”

“대략 오십 정도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오십이라...상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후후후, 아마도 그놈들은 우리를 낚기 위한 미끼일 게야. 우리의 이목을 그쪽으로 쏠리게 한 후 우리의 전방을 칠 요량이겠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소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그럼 예서 이리 망설이지 마시고 저희 역시 응전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걸어온 싸움 피한대서야 말이 안 되지. 그쪽 잔챙이들은 혁장군에게 맡기고 우린 바로 염부의 전면으로 들어가세.”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그럼 상제의 지엄하신 황명 그대로 받들겠나이다.”

서천왕은 염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곧바로 모든 영체들에게 염부가 위치한 진영을 향해 돌격 명령을 내렸다.

한참 천계의 진영 후방을 교란하고 있던 비담.

갑자기 모든 영체들이 썰물 빠지듯 염부 쪽으로 돌격해 가버리자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뭐냐?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마치 저흴 피해 저쪽으로 도망가는 모양새인데요?”

“그러게.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는데 맥 빠지게 이 무슨 경우야? 고작 오십 쳐들어왔다고 저리 도망갈 일은 없고. 방향으로 보아하니 염부 쪽하고 시원하게 한 판 붙을 심산인가 본데. 그건 그렇고 왜 우린 휑하니 내팽개치고 가는 거지? 우리가 너무 우스워보였나?”

“자존심 상하세요?”

“당연하지 짜샤. 너 같으면 안 그렇겠냐? 나름 별동대라며 비장하게 침투했는데 이게 무슨 닭 쫓던 멍멍이 신세냐고. 그나저나 궁금해 미치겠네? 도대체 뭐지?”

비담은 자신의 임무도 망각한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 때 제법 묵직한 음성이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비담을 깨웠다.

“그 궁금증 내가 해결해주지.”

묵직한 음성의 주인은 백여 명의 영체를 이끌고 비담 앞에 나타난 혁도월이었다.

“누구쇼?”

“나? 폐하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무장 혁도월이라 하네. 그러는 자넨 누군가? 보아하니 염부 쪽에서 보낸 영체 같은데 그대들의 작전은 이미 들통 났으니 그만 정체를 밝히게.”

“작전이 들통 났다?”

“제법 머리를 많이 썼더군. 허나 영민하신 폐하께서 이미 자네들의 알량한 수를 모두 꿰뚫어 보셨네. 그래서 모두 허사가 되었으니 그만 포기하게.”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우리 작전이 뭐요? 정말로 상제 그 양반이 우리의 노림수를 꿰뚫어 본 거요? 그런데 그런 양반이 저쪽으로 돌격하는 저의는 또 뭐요? 웬만하면 적에게 이런 거 묻고 싶지 않은데 정말 궁금해서 그러니 이해 좀 해주쇼.”

“하하, 궁금한 걸 묻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네. 뭐 정 궁금하다면 대답해줌세. 자네들이 속한 염부 쪽에서 소수의 인원을 보내 우리 쪽을 흔들어 놓고, 시선을 이쪽으로 분산시킨 다음 정면을 치려는 속셈이었겠지. 하지만 우리가 모시는 상제께서는 그러한 수를 미리 내다보시고 먼저 공격을 하신 게지. 다시 생각해도 그 지닌바 능력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대단한 분이시지.”

“흐음. 그러니까 댁의 말을 정리하면 상제 그 양반이 고작 50밖에 안 되는 인원이 쳐들어온 것을 가지고 당신네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노림수라고 생각했다는 거요? 정면을 치기 위해서? 정말 당신네들이 지닌 능력의 끝을 가늠할 수가 없구려. 이건 진심이오.”

비담은 저도 모르게 푸욱 한숨을 쉬고 말았다.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경천동지할 계략도 아니건만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알아서 미리 걸려주다니. 엄청난 고생과 위험 속에 염부 쪽으로 유인하여 펼치려던 성동격서의 작전은 별 노력이나 위험부담 없이 알아서 펼쳐진 셈이었다.

정말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단순함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칭찬한 것으로 오해한 혁도월은 의기양양 박장대소까지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리 자책할 필요는 없네. 누군들 상제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읍시다. 혹시 상제를 보좌하는 참모 중에 녹림왕이 있는 거요?”

“녹림왕? 그런 왕은 듣지 못했는데. 서천왕, 북천왕, 남천왕 전하는 계시지만 그런 왕은 없는데.”

“아닙니다. 그만합시다. 더 말을 나누다간 나까지 이상해지겠네. 어디 보자...어림잡아 100정도 되니 두당 둘씩 잡으면 되겠군. 얘들아! 그냥 하던 대로 이것들 치워버리고 본대에 합류하자. 그리고 조금 전에 비장하게 말했던 거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라. 쪽 팔린다. 그럼 시작하자.”

비담은 한없이 밀려드는 허무함을 분노로 승화시켜 폭발시켰다.

분노에 의해 생성된 부채의 수가 정확히 120개. 그 부채는 10개씩 짝을 이뤄 화류선법 1초식부터 마지막 12초식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지며 혁도월 일행을 휩쓸었다.

그저 영력을 생성해 날리고 쏘는 수준의 영체들이 감당하기엔 현묘한 무리가 담긴 화류선법은 재앙 그 자체였다. 혁도월을 비롯한 천계 쪽 영체들은 나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떻게든 피해보려 애를 썼지만 그들이 감당하기엔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게 와르르 와해된 진영은 남은 별동대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한두 번 맞춰본 솜씨가 아니란 걸 시위라도 하듯 일사분란하게 적들을 섬멸하는 별동대였다.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고.

소멸되지 않은 천계의 영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앞으론 계획이고 나발이고 그냥 화끈하게 붙는 게 좋겠구나. 괜히 분위기만 무겁게 잡았다가 이게 무슨 낭패냐고.”

비담은 툴툴 거리며 별동대를 이끌고 염부 쪽 후방으로 이동하였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신나게 싸우고 있으리라.

비담의 예상대로 그가 전장에 도착했을 때는 한참 격렬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비담은 그렇게 자신 앞에 펼쳐진 장관을 한마디로 평했다.

“개싸움이 따로 없네.”

비담의 평대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적아의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사방팔방 영력덩어리를 쏘며 달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담은 천상계의 우아한 전투장면을 기대했던 자신이 한없이 측은해짐을 느꼈다.

‘마지막 쟁투라고 하기에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무림에 적을 둔 어린아이들이 싸워도 저것 보단 낫겠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비담은 이내 전장에서 시선을 뗀 후 길천의 본대를 찾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리저리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가장 화려한 무공의 초식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염부의 후방에 길천 일행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싸움이라면 모름지기 저 정도는 되어야지. 지금 생각하니 정말 다행이구나. 저 양쪽 무리에 껴 있지 않아서.’

비담은 크게 한숨을 쓸어내린 후 별동대와 함께 길천이 자리한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한창 싸움에 열중하고 있던 길천은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휘파람까지 불며 기세등등이었다. 그러다 자신 옆에 당도한 비담을 발견하곤 치하의 말을 건넸다.

“고생했다, 담아. 네 덕분에 이리도 수월하게 적들을 유린하는구나.”

“소제가 듣기엔 너무 과분한 칭찬이네요.”

“아니야. 그리 위험을 무릅쓰고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였으니 들을 자격이 충분해.”

“알겠습니다. 바쁘니까 그냥 넘어가죠. 그런데 염부 쪽 영체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상태? 보다시피 우리가 겪었던 영체들과 별반 차이가 없구나.”

“질질 끌 것 없이 이번 전투로 끝장을 보죠.”

“서로 맞붙어 정신없으니 예상대로 영력이 강한 놈들만 각개격파하면 금방 끝날 듯싶구나.”

“그럼 저번에 연습한 것처럼 5개조로 나누어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오늘 끝장을 보는 거야. 모두 조별로 모여 사냥을 시작한다.”

우렁찬 길천의 외침에 300 영체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계획하고 연습했던 대로 은밀한 사냥을 위해 다섯 방향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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