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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138/154)

138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황금복숭아나무가 부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뭐죠?”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왜 이러지?”

“서, 설마? 형님, 혹시 황금선도가 열리려는 징조 아닐까요?”

“황금선도? 벌써?”

둘의 눈이 일제히 황금나무로 쏠렸다. 무언가 잔득 기대를 머금은 채 말이다.

그렇게 일각이 여삼추 같을 무렵.

부르르 진동하던 나무의 울림이 끝남과 동시에 눈부신 황금빛이 사방을 향해 폭사되었다. 둘은 쏟아지는 빛을 피하기 위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어느 정도 빛이 사라졌음을 인지한 후 다시 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멍하게 넋을 놓고 말았다.

무성한 황금빛 나뭇잎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며 장관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던 물결이 지나간 자리엔 덩그러니 황금 복숭아 한 개가 영롱한 자태를 내뿜으며 매달려 있었다.

“저, 저, 저게 황금선도?”

“그, 그런가 봐요. 참! 이리 넋 놓고 계시면 어떡해요? 어서 황금선도를 취하셔야죠.”

“아뿔싸! 나도 모르게 그만 정신을 놓았구나. 그래, 네 말대로 어서 선도를 취해야지.”

퍼뜩 정신을 차린 길천이 조심스레 나무 위로 올라가 황금빛 선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곤 소중한 보물을 다루 듯 살며시 열매를 따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꿀꺽

비담의 목울대가 또다시 요란하게 움직였다. 물론 눈은 황금선도에 고정된 채.

길천은 사뿐히 내려와 비담의 눈을 한차례 바라본 후 이내 황금선도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선도는 길천의 영체에 닿는 순간 황금연기로 화해 그대로 흡수되었다.

그리곤 이어지는 침묵.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길천의 주위를 휘몰아쳤다. 멍하게 바라보던 비담의 영체가 속절없이 그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흡사 폭탄이라도 터진 듯 길천의 주위가 움푹 꺼져 들어갔다.

쾅!!! 쾅!!! 쾅!!! 쾅!!! 쾅!!!

또다시 이어지는 엄청난 굉음.

폭발하듯 터지는 굉음이 동반될수록 길천의 주위론 동심원을 그리며 구덩이가 생겨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굉음의 수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동심원의 수가 수천을 헤아릴 즈음.

거짓말처럼 모든 상황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생성되었던 기운들이 역으로 길천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 역시 엄청난 소리를 동반하고 있었다.

콰콰콰쾅!!!

가장 가까이 있던 동심원마저 빨려 들어가듯 길천의 영체 안으로 사라지자 모든 소란이 마무리 되었다.

“후~~~아!!!”

조용히 눈을 뜬 길천의 입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길천의 모습이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만인을 발아래 두고 군림할 것 같은 위엄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고, 외양 역시 황금빛 갑주로 촘촘히 둘러 싸여 흡사 천신의 재림을 보듯 위용이 대단하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 멀리 튕겨져 나갔던 비담의 영체가 조심스레 길천을 향해 다가왔다.

“형님? 괜찮으세요? 황금선도의 영력을 모두 흡수하신 거예요? 그런데 모습이 조금 전과 판이하게 다르네요. 뭐랄까...고급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흐음~!!! 좋구나.”

“하하하,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이 모든 게 네 덕분이다. 절대 잊지 않으마. 고맙다.”

“우리 사이에 그런 공치사는 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나저나 이제 명실상부 만년지투가 열렸네요.”

“그래, 화끈한 축제가 시작되었구나. 모름지기 축제를 시작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제물이 필요한 법.”

“제물이요? 갑자기 생뚱맞게 무슨 제물이요?”

“조금만 기다려라. 곧 알려주마. 그전에 우선 우리가 하나임을 맺는 의식부터 가져야겠구나.”

“어라? 줄서는 데도 의식이 필요해요?”

“당연히 필요하지. 만년지투가 열리면 피아의 구분 없이 개판이 될 터인데 무슨 수로 구분하겠느냐? 그러니 그 전에 서로가 묶여있음을 증명하는 의식이 필요한 게지. 그리 복잡하진 않으니 이리 가까이 오너라.”

“헤헤, 필요하면 해야죠.”

비담은 실실 웃으며 길천 곁으로 다가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비담을 바라보며 길천은 짐짓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험험, 만세의 영광인줄 알거라. 상제에 버금가는 영력을 지닌 존재가 친히 내려주는 은총이니 앞으로 그에 합당한 예를 다하고, 더불어 짐의 충성된 신하로서 성심을 다해 나를 보필하고 모셔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그렇게 떠드시면 입 아파요. 이제 그만하시고 어서 의식인지 뭔지 진행하자고요.”

“허허! 무엄한지고.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경거망동하는 것이냐.”

“과일 하나 잡수시더니 다시 허풍병이 도지신거예요? 예예, 불충한 소신은 충분히 알아들었사오니 이제 그만 하해와 같은 은덕을 베푸시어 의식인지 뭔지를 진행하시지요. 허나 상제께서도 아시다시피 소신의 소갈머리는 그리 넓은 편이 못 되오니 오른팔을 잃으시려거든 계속 상제놀이에 푹 빠져 즐기시기 바라옵나이다.”

“흐흐, 그만하자. 이것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데 영 어색해서 힘드네. 역시 군신간 보다는 형제간이 편하고 좋지.”

“본전도 못 찾으실 거면서 매번 그러신다니까. 하지만 해야 할 일이니 반드시 적응하셔야 돼요. 지금이야 제가 장난으로 받아넘겼지만 앞으로 형님께서 천계를 다스리는 상제의 자리에 앉으시면 마땅히 그에 합당한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더불어 자애와 덕으로 잘 다스려야죠. 그래야만 모두가 형님을 존경하고, 믿고 따르죠. 물론 사적인 자리에선 편안한 형제사이로 돌아와 허심탄회하게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저 역시 충직한 신하로 돌아가 제 도리를 다할 것입니다.

제 말씀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공과 사를 구분하라? 이거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한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도 있듯이 형님께서도 차차 적응하실 거예요.”

“그래, 나중 일이니 차차 고민하며 바꿔보도록 하자. 그건 그렇고 의식을 진행할 터이니 이리 가까이 와서 무릎을 꿇어라.”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기를 싹 지운 비담은 이내 길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길천 역시 웃음기를 지운 진지한 자세로 한 쪽 손을 들어 비담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길천의 손에서 짧은 소리를 동반한 빛이 뿜어짐과 동시에 비담의 머리로 파고들어갔다.

“끝났으니 그만 일어나도 된다.”

“벌써요?”

“별 거 없다고 했잖아.”

“그러게요. 영 싱겁게 끝나네요.”

“그래도 보기완 다르게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네? 꼭 필요하다고요?”

“당연하지. 네 녀석 생명줄인데.”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형님하고 엮여있지 않으면 언제 비명횡사 당할지 모르겠네요. 방금 전까지 하도 평화로워 만년지투는 깜빡 잊고 있었네요. 그럼 제물 운운하신 것도 이것 때문이에요? 그럼 형님이 말한 그 제물, 곧 당도하겠네요.”

“하여튼 눈치는. 넌 어디에 던져놔도 굶어죽진 않겠구나. 아마 개방 정문 앞에서 비럭질을 시켜도 끄떡 없이 해낼 놈이지. 암, 충분히 가능해.”

“저에 대한 칭찬은 그쯤 해두시고. 그 제물, 정체가 누군가요?”

“후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기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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