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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134/154)

134화

“그렇게 영혼이 염부로 끌려가면 염라대왕 앞에서 재판을 받지. 그리곤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와 선행에 따라 판결을 받는다. 그런 다음 현세에서의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 망각의 샘물을 마신 후 판결에 따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해되지?”

“망각의 샘이요? 그걸 마시면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그런데 형님은 모두 기억하고 계시지 않나요? 예전 도색성이라 불리며 강호를 주유했던 것부터 초하련 궁주님과의 일, 그리고 저와 함께 했던 일까지 모두요.”

“그건 내가 염부에 끌려가지 않았기 때문이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힘이 있다면 바로 선계에 자신의 영역을 보장받는다. 인간세상에서 말하는 우화등선, 신선이 된다는 뜻이야.”

“아! 그렇군요. 도색성이었던 형님의 능력 덕분에 우화등선을 하신 거군요. 험험, 그렇다면 저 역시 탁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우화등선을 하였다는...”

“놀고 있네. 내가 이 황금나무를 이용해 네 영혼을 빼돌렸거든. 그래서 염부에 끌려가지도 않았고, 더불어 망각의 샘도 마시지 않은 거거든.”

“빼돌려요? 그게 가능해요? 그럼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형님께서 직접 염라대왕하고 한 판 붙어 이기신 거예요?”

“흠흠, 당연히 ‘염라대왕하고 한 판 붙어 이겼지’ 라고 말했으면 좋겠으나 영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무슨 수로 신선 나부랭이가 개기겠냐. 그게 아니라 저 나무님을 이용해 위에 있는 옥황상제 힘 좀 빌렸다. 너 좀 빼달라고.”

“아! 협박하셨구나.”

“크흠, 협박이라니. 협상. 그냥 협상한 거야.”

“그게 그거죠. 아무튼 정리하자면 제가 죽어 염부로 끌려가야 하는데 형님께서 저 나무를 이용해 옥황상제를 협박했다. 그런데 옥황상제랑 염라대왕은 힘이 비슷해서 그게 가능했다. 그래서 내 영혼 역시 재판도 받지 않게 되었고, 더불어 망각의 샘인지 뭔지 마시지 않아 기억도 온전히 가지고 있다. 맞죠?”

“협상이래도.”

“알았어요. 그런데 옥황상제가 그리 함부로 영혼을 빼돌려도 되요?”

“물론 안 되지. 큰 사단이 나지. 인과율에 어긋나서 다른 왕이나 무장, 문신들이 알면 크게 곤욕을 치를 거야.”

“형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 나무의 정체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부탁을 들어줬단 뜻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누차 말했잖아. 천계 최고의 보물이라고. 만년에 한 번 열리는.”

“네? 만년에 한 번 열린다고요?”

“그래. 정확히 만년에 한 번 열린다.”

“대, 대체 무슨 과일이기에 만년에 한 번 열려요? 대체 정체가 뭐에요?”

비담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황금복숭아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만큼 만년이라는 시간이 안겨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길천은 새삼스레 나무를 쳐다보는 비담을 바라보며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크크크, 놀라긴. 그나저나 입이나 좀 닫아, 이놈아. 그러다 신성한 나무에 침 떨어질라. 그리고 그 정도로 놀라면 내가 너무 허탈하지 않느냐. 흠흠, 아무튼 이 황금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을 황금선도라 부른다. 황금선도의 진정한 정체는......”

“정체는?”

비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길천의 입만 뚫어져라 응시하였다. 길천은 서둘러 좌우를 두리번거린 후 비담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황금선도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옥황상제임을 증명하는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옥황상제의 힘이요?”

“쉿!! 목소리가 너무 커.”

길천은 서둘러 비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다시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로 비담의 말을 수긍해주었다.

“그래. 옥황상제가 지닌 힘의 근원. 그 힘의 근원을 품고 있는 영력덩어리란 말이다.”

“괴, 굉장하네요. 그럼 저 열매를 먹으면 옥황상제와 맞먹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형님 완전 횡재하셨네요. 기연 중에서도 최고의 기연이 넝쿨 채 굴러들어 왔네요. 그런데 천계 최고의 보물을 앞에 둔 형님 표정은 왜 그러세요? 꼭 뭐 씹은 표정이신데......”

“그게 그림의 떡이니까 그렇지. 천고의 보물이면 뭐하냐. 먹지를 못하는데.”

“네? 왜 못 먹는데요?”

“먹으면 뒈져.”

“죽는다고요? 이미 죽었는데 새삼스레...”

“그런 의미의 죽음이 아니야. 존재의 완벽한 소멸. 정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지.”

“어, 어째서요?”

“방금 말했듯이 엄청난 영력을 지닌 과일이다. 그것을 감당할 그릇과 힘을 갖추지 못하면 그릇 자체가 터져나가는 것이지. 아마 천계에서 이정도 영력을 감당하고 제어할 수 있는 존재는 상제 하나일 것이야. 그러니 그림의 떡이 아니고 무엇이겠냐?”

“황금선도니 뭐니 해도 결국 빛 좋은 개살구네요. 그럼 상제가 저 열매의 주인이란 소린데...어째서 형님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은 거죠? 어차피 자신밖에는 감당할 존재도 없는데.”

“그야 당연히 나를 믿지 못하니 그렇지. 행여 내가 객기라도 부려 덥석 열매를 먹어봐라. 그럼 상제는 닭 쫓던 멍멍이 되는 거거든.”

“그럼 상제가 이리로 와서 열매가 열릴 때까지 지키면서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리 귀한 과일이고 형님도 믿지 못하면서 천하태평 기다리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상제 입장에선 당연히 그리하고 싶겠지. 허나 이곳 천계의 법도가 그게 아니거든.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신들을 간섭하거나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상제 역시 그 법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래서 마음은 굴뚝같지만 저리 맥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운 좋게도 내가 관리하는 이곳에 이 나무님이 탄생할 지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느냐. 크흐흐흐, 천운이지. 암, 천운이고말고. 덕분에 협상을 통해 너의 영혼도 내가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럼 이 귀한 나무가 우연히 형님 구역에서 자랐다는 말씀이세요?”

“어디 보자...그렇지. 아마 망할 너의 사부 녀석이 강제로 날 끌고 갔을 그 무렵이구나.”

“형님께서 저랑 만났던 때라면...한 10년쯤 전이네요.”

“그래, 그 무렵 한창 이 나무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지. 내가 원체 호기심이 왕성한 편이라 이리 신기한 물건...아니 나무님이 떡하니 나타났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열심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비밀을 밝혀낸 그 순간. 개 끌리듯 끌려간 거지. 너.한.테. 물론 그림의 떡이란 사실을 알고 별 미련은 없었지만 아무튼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어. 알고 있지?”

“흠흠, 새삼스레 10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뭐 하러 꺼내세요. 아무튼 그때는 본의 아니게 죄송했지만 형님도 알다시피 제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저 역시 일방적으로 당한 피해자잖아요. 그리고 전화위복도 되었으니 좋게 생각하자고요.”

“미꾸라지 같은 녀석. 허나 네 말대로 전화위복이 되었으니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건 그렇고 궁금하지 않으냐? 도대체 왜 만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지?”

“그야 엄청난 보물이니 그 정도 시간은 걸려줘야...”

“후후, 눈치 없기는. 이 고매하고 잡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지식을 섭렵한 형님이 그런 뻔한 대답이나 듣자고 질문을 던졌겠냐?”

“그, 그럼 뭔데요? 도대체 뭐가 있는데 그러시는 겁니까?”

“만년지투.”

“네? 만년지투요? 그런데 아까부터 뭐가 자꾸 만년 만년 하는 거예요? 이놈의 동네는 만년이 누구네 집 멍멍이 이름도 아니고 걸핏하면 만년...어라? 잠깐만요. 그럼...”

“이제야 감을 잡는구나. 그래, 만년지투. 천계의 정체된 흐름을 만년에 한 번씩 갈아엎는 화끈한 축제.”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뭐 그런 자연의 이치인가요?”

“그래, 천계라 해서 그 지고한 자연의 이치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엎을 만한 것이 있나요?”

“후후, 당연히 있지. 바로 영력을 지닌 존재들. 무릇 사람 사는 인간계에도 흥망성쇠라는 것이 있듯이 이곳의 영체들 역시 정체되어 있으면 불만이 가득 쌓이거든. 그리고 너무 정체되어 있으면 발전이란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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