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을 잊고 서로를 탐하던 어느 순간.
서희는 서서히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쾌락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큰 파도가 되어 서희를 집어 삼켰고, 비담 역시 찌르르 전신으로 퍼지는 쾌락의 열기를 느끼는 순간 더욱 격렬하게 자신을 흔들었다.
급기야 서희는 자신을 덮친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활처럼 뒤로 휘어졌고, 비담 역시 그 순간 자신의 사랑을 그녀 안에 쏟아 부었다.
“아~~~~~~~!!!”
비담은 전신이 흠뻑 젖은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으며 자신의 웃옷을 그녀의 등 뒤로 덮어주었다.
아직도 자신의 물건이 잔잔하게 요동치는 그녀 안에 있었으나 전혀 개의치 않고 둘은 계속 포옹한 채 온기를 나누었다.
“사랑해요, 평생 가가 곁을 지킬 거예요.”
“사랑하는 나만의 당신. 나 역시 세상 그 무엇과도 당신을 바꾸지 않을 것이오.”
서희는 달콤한 표정으로 살짝 입맞춤을 한 후, 곧바로 비담의 넓은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비담은 말없이 잔잔한 눈으로 서희의 등을 쓸어주며 창밖 아직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평생 그대를 지켜주고, 아끼며 사랑하겠소. 내 삶이 허락된 그 순간까지 말이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펑펑 쏟아지던 눈이 그치고, 창고 밖으로 나온 비담은 서희의 손을 잡고 다시 매화 사이를 걸었다.
하얀색 눈이 무거울 법도 하건만 저마다 자신이 감당해야할 무게인양 꿋꿋이 이고 있는 매화들.
그래서인지 선연한 붉은빛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동안 매화 사이를 거닐던 비담은 문득 서희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이번엔 내가 그대에게 선물을 하리다. 내가 말할 때까지 절대 눈을 뜨면 아니 되오.”
“네? 선물이요?”
“하하, 잠시면 되니 내가 눈을 뜨라 할 때까지 꼭 감고 있으시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요.”
서희는 기대에 가득 찬 눈을 힘주어 내리감았다.
비담은 서희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허리에 꽂아져 있던 화류선을 꺼내들었다. 하얀 눈 세상에 가득 핀 붉은 매화를 보자 길천형님과 어릴 적 초하련 궁주가 보았을 그 광경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서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함은 물론 자신을 아껴주는 길천형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였다.
비담은 꽃들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곳으로 이동하여 화류선법(花流扇法) 제10초식인 설매풍류(雪梅風流)를 시전 하였다.
두둥실 떠오른 화류선이 이기어선의 수법으로 매화 사이사이 춤을 추듯 날아다녔다. 그러던 중 부드럽게 움직이던 화류선이 어느 순간 맹렬히 회전하였고, 그렇게 생긴 흡인력에 의해 바닥에 쌓여 있던 눈과 매화꽃잎들이 화류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말려 올라갔다.
비담은 만족할 정도로 눈과 꽃잎이 모이자 서희의 뒤로 돌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눈을 뜨시오.”
서희는 선물을 풀어보는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을 느끼며 살포시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두 눈 가득 들어오는 아름답고 화려한 광경.
“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눈과 함께 매화 꽃잎으로 이루어진 분홍빛 꽃의 비가 하늘 가득 수놓으며 그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감동에 서희는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비담은 멍하게 서있는 그녀의 뒤로 다가가 살포시 안은 채 흩날리는 꽃비를 바라보며 그동안 아껴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서희...나의 신부가 되어주시오. 평생 그대의 곁에 머물 수 있는 행운을 내게 주실 수 있겠소?”
“네, 가가.”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들어 약속의 말을 건네는 서희였다. 비담은 환한 미소와 함께 그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꽃비를 맞으며 그녀와 길고 긴 입맞춤을 나누었다.
비담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 채 화류선을 회수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류선에 작은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응?”
“왜 그러세요?”
“이, 이게 뭐지?”
비담은 화류선의 부챗살마다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씨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북해빙궁에서 화류선을 되찾은 이후 단 한 번도 몸에서 떨어뜨린 적이 없었거늘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인지. 형님께서 적어 놓으셨다면 진작 말씀해 주셨을 터인데 그런 말씀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형님이 적어놓은 글이 아니다. 그럼? 혹시 검후께서?’
비담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 이내 그 글귀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경악한 얼굴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이것은 무리(武理). 그것도 상승의 묘리가 담겨져 있어.”
“네? 무리(武理)라고요? 부채에 왜 그런 글귀들이...”
서희는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비담과 부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비담은 어느새 주위도 잊은 채 그 글귀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침잠해 들어갔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비담이 글귀에 빠져든 것도 한 시진을 훌쩍 넘겨버렸다.
서희는 글귀에 흠뻑 빠져 있는 비담의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고, 나름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들을 뒤로 한 채 호법을 서며 주위를 경계하였다.
그렇게 속절없이 한 시진이 또 흘렀을 무렵.
비담의 몸 주위로 거대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