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54)
  • 103화

    제 11 장 부흥상회(富興商會)

    불야성을 이룬 도성의 야경이 아스라이 보이는 언덕 위.

    숨을 몰아쉬던 비담은 조금 개운해진 얼굴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휴우, 대충 따돌린 것 같은데. 그나저나 황제한테 뭘 받아먹으면 저리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거지? 아주 죽자 사자 쫓아오는 저것들 떼어놓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아무리 늙은이에게 받아먹은 게 있고, 무서워도 그렇지 너무 지독하게 훈련시켰어. 때로는 쉬엄쉬엄 일해야 부러지지 않는 법이거늘. 가만, 여기 어디쯤에다 숨겨두기로 하였는데...”

    툴툴거림을 멈춘 비담은 이내 보물을 찾는 어린아이마냥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비담의 눈이 반짝 빛나며 의문의 상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찾았다. 형님 덕분에 질긴 목숨 또 이어가는구나.”

    비담은 교묘하게 풀을 엮어 표시해둔 장소의 바위 틈 사이에서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이내 상자 안의 내용물을 꺼내 살펴보았다.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육식동물의 발톱처럼 생긴 쇠갈퀴 한 쌍이었다.

    비담은 물건을 꺼내 무게와 중심을 가늠해본 후 망설임 없이 팔에 장착하였다. 그런 다음 바로 근처 나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후후, 나무를 숨기려거든 숲에 숨기고, 사람을 숨기려거든 사람이 많은 저자거리에 숨기라 하였지. 허나 반대의 경우도 사람 돌아버리게 하거든. 흔적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어려운 흔적을 남겨두어 미치게 만들어주마.”

    나무의 적당한 높이까지 올라간 비담은 이내 한 마리 비조가 되어 훌쩍 다른 나무로 도약하였다.

    그러다 목표했던 나무에 닿을 때쯤 쇠갈퀴를 이용하여 나무의 몸통을 단단히 그러쥐었다.

    ‘퍼벅, 퍼버벅.’

    아름드리나무의 몸통이 쇠갈퀴에 달린 발톱에 의해 움푹 파이며 아래로 떨어지려는 비담을 지탱해 주었다.

    조금 깊숙이 박힌 발톱을 빼낸 비담은 같은 방법으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다람쥐처럼 이동하였다.

    ‘내가 고금제일인도 아니고 쪽수로 밀고 들어오는 차륜전을 무슨 수로 당하냐고. 그나마 형님께서 준비해준 이 보물 덕분에 내공소모를 줄이고 시간도 벌었으니 다행이지. 아마도 이 숲을 다 뒤지려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이다.’

    황궁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는 바람에 급격한 내공소모를 겪은 비담에게는 최고의 보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담은 일부러 골리려는 듯 곱게 일직선으로 도주하지 않고, 일부러 갈지자로 이 나무 저 나무를 넘나들었다.

    일각 후.

    비담이 상자를 발견했던 장소로 일단의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놈의 흔적이 이곳에서 끊겼습니다. 풀의 각도로 보아 방금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흔적이 이어지지 않아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흐흐흐, 새가 아닌 이상 날아가지는 못했을 터. 1조와 2조는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 나머진 수색조를 경계하라.”

    “복명!”

    40여명 정도의 무사들이 순식간에 주변으로 산개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보아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유일한 단서는 조그마한 상자 하나 뿐이었다.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 시야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는 하나 마치 하늘로 솟은 것처럼 전혀 흔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래? 거참 이상하군. 대륙 최고라 자부하는 우리 추살대(追殺隊)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자가 존재하다니. 설사 동창의 제독이라 해도 우리의 이목을 속이지는 못한다. 분명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아무리 화경의 무위를 지녔다하나 그 역시 고깃덩어리로 이루어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황궁에서 그 정도 신위를 보인 것이 가상하긴 하지만 내공이 많이 소진되었음을 감안하면 흔적을 지우며 도주했을 리는 만무하고,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황상을 능멸한 간악한 도적놈을 결코 살려둘 순 없는 법. 반드시 찾아낸다. 앞으로 반각 주겠다.

    “복명!”

    다시 주변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길 반각.

    “찾았습니다.”

    “후후, 이젠 독 안에 든 쥐로군. 어디냐?”

    “이곳에서 5장(15m)정도 떨어진 나무 위에서 움푹 파인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무 위에서?”

    “그렇습니다. 나무 위 몸통 부분에서 날카로운 발톱에 파인 흔적이 있습니다. 상태로 보아 방금 전에 파인 것입니다. 아마도 갈퀴 비슷한 도구를 이용하여 나무에서 나무로 도주한 것 같습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하는구나. 동물의 흔적일 가능성은?”

    “나무가 파인 위치와 도성 근교임을 감안했을 때 그만한 동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 그놈 짓입니다.”

    “흐음, 그렇담 이 나무에서 15장을 도약했다는 말인데...그 다음 나무에서 어느 방향으로 날았는지가 관건이군. 좋다, 시간이 촉박하니 2인 1조로 나눈다. 흔적이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반경 20장 안의 나무를 샅샅이 수색하거라.”

    명령과 함께 2인 1조로 구성된 추살대원들이 분분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반경 20장을 뒤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나무 위로 올라가 파인 흔적을 찾고, 또다시 그 나무를 중심으로 반경 20장을 찾으며 추격하다보니 많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점점 마음이 급해진 추살대장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지원을 요청하였다.

    “망할 자식. 거리도 들쑥날쑥하고 방향도 종잡을 수 없게 도주하는 통에 전혀 예측할 수가 없군. 이렇게 온 숲을 뒤지다간 녀석을 잡는 것은 둘째 치고 날이 새기 전 이 숲을 벗어나는 것조차 요원하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상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대원 하나를 급히 부른 추살대장은 상부에 지원요청을 하라 지시했다. 자신들이 아무리 추살에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넓은 숲, 그것도 나무 위에 난 조그마한 흔적들을 따라가기엔 인력이 너무 부족했다.

    놈은 영악하게도 확실하지만 찾기 어려운 흔적들을 남겨 추살대의 귀신같은 재주를 조롱한 것이 틀림없다.

    보고가 들어간 지 일각 후.

    상부에선 500에 달하는 일반 병사들을 지원해주었다. 추살대장은 새로 지원받은 병력을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온 숲을 뒤지라 지시하였다. 인력이 보충되면서 추격은 탄력이 붙었고, 이내 비담의 도주로가 일목요연하게 점에서 점으로 연결되었다.

    “후후, 네 녀석이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황상의 손바닥 안이다. 그럼 사냥감을 계속 몰아볼까?”

    하지만 의기양양 웃음 짓던 추살대장의 얼굴이 곧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이런 썅!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따위 장난질이냐. 잡히면 아주 갈기갈기 찢어 짐승밥으로 던져주고 말테다.”

    추격의지를 불태우며 막 움직이려던 추살대장의 앞에 도도한 황하의 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인간사 무심한 듯 황하는 거침없이 흐르며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황하를 바라보는 500여 병사들을 바라보며 추살대장은 자신의 의지가 한 풀 꺾이는 것을 느꼈다.

    ‘이 병력을 데리고 도강할 수도 없고. 추살대만 도강하여 다시 병력을 지원받자니 하 세월이고. 아마도 어느 정도 회복된 녀석이 수상비(水上飛)를 사용한 모양인데 우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강물 위에 흔적이 남았을 리도 만무하고, 어느 방향으로 어찌 달려 나갔는지도 짐작할 수 없다.

    분하지만 그만 포기하고 황상께 이실직고하여 대대적으로 전 대륙에 수배령을 내리는 수밖에.’

    추살대주는 부대주에게 명해 급히 황궁에 들어가 이와 같은 정황을 보고하라 일렀다. 그런 다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을 따라 이어진 숲을 면밀히 수색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홍무제는 뒤늦게 도착하여 부복한 추살대장과 동창의 제독을 떨떠름한 얼굴로 내려 보았다.

    “결국 그자를 놓쳤단 말인가?”

    “소임을 완수하지 못한 신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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