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154)
  • 57화

    “휴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이리 힘든 여정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닐세. 덕분에 시간도 줄이고 진귀한 경험도 하게 되었으니 충분히 만족한다네.”

    “예? 진귀한 경험이요? 특별히 진귀하다 표현할 만한 게 있었나요?”

    “허험! 그런 게 있으니 더 이상 묻지 말게나. 그나저나 모두 시장할 텐데 이럴게 아니라 뭐라도 요기할 만한 것을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럴 줄 알고 제가 까망이 17호랑 18호한테 음식 좀 구해오라 시켰습니다. 잡아오든 얻어오든 아니면 돈을 주고 구해오던 알아서 구해올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인철은 아직도 손안에 뚜렷이 남아있는 감촉들을 음미하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인철이 흐뭇한 상상으로 잠깐 방심한 사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온 빙루가 인철의 옆에 앉더니 인철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방비도 없이 기습을 당한 인철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빙루가 수줍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인철의 다리만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저를 업고 달리시느라 고단하셨지요?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무공을 익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 아니오. 소저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하나도 무겁지 않았소. 마치 저 혼자 달려온 듯 힘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이리 주무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말씀은 그리 하셔도 이리 땀이 송글송글 맺히신 걸요?”

    “이, 이것은 소저를 업고 와서 그런 게 아닌데.”

    “아무리 거짓말을 하셔도 저 역시 다 안답니다. 제가 침상에 누워 지냈던 세월이 얼마인데요. 몸이 고단하고, 힘들고, 아플 때마다 나오는 게 땀인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이 아팠을 때는 땀을 눈 내리듯 흘렸으니 속일 생각은 하지 마셔요.”

    “정말 아닌데...”

    인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사리 같은 조그만 손을 열심히 움직여 그의 통나무처럼 튼실한 다리를 계속 주무르는 빙루였다. 인철은 지근거리에서 서로의 호흡이 맞닿아 있는 현재의 상태가 너무나 곤혹스러워 비담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고, 비담은 방긋 웃는 것으로 인철의 요청을 묵살해버렸다.

    비담이 자신의 구원신호를 맛나게 씹어 먹자 안 되겠던지 인철은 까망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의 힘으로 가슴이 턱턱 막히는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가 없었기에 체면 불구하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까망이들은 주군을 하늘처럼 여기는 충복들이었다. 각자 할 일을 찾는다는 핑계를 대며 잽싸게 곳간 밖으로 나가버렸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대답을 대신하였다. 믿었던 부하들마저 자신을 배신하자 인철은 이를 으드득 갈아붙였다.

    빠드득 

    “추우세요? 저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셔서 추우신가 보네요. 저도 가끔 땀을 많이 흘렸을 때 으슬으슬 한기가 들곤 했거든요. 이럴게 아니라 제 털옷이라도 입으세요.”

    빙루가 훌렁 털옷을 벗어 씌워주자 인철은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태어나 칼을 손에 쥔 이후로 오늘처럼 무기력하게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완고하고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빙루는 환자를 다루듯 정성을 다해 인철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덩치의 반도 가리지 못하는 털옷을 추켜 올려주고, 다리를 주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인철은 진지한 빙루의 표정에 정말 자신이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옅은 미열에 시달렸고, 고스란히 풋풋한 빙루의 숨결을 느끼며 몽롱하게 취해 버렸다.

    딴청을 피우며 둘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던 비담이 곳간을 철옹성으로 만들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리 세상사나 남녀 간의 이치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기본적인 본능이 있는 이상 지금의 분위기가 진도를 나갈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것이다.

    “아, 까망이 녀석들 음식 구하러 나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돌아와? 이것들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비담은 일부러 곳간의 문이 큰 소리가 나도록 닫은 다음 나가버렸다. 이제 곳간 안에는 순수한 영혼 둘만 남았다.

    곳간에서 조금 떨어진 수풀 속.

    비담은 그곳에 몸을 웅크린 채 곳간 주위에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바야흐로 두 남녀의 역사가 이루어지려는 숨 막히는 순간이었기에 비담 역시 살짝 흥분하고 긴장하였다.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짭짤한 전리품을 얻어온 17호와 18호는 영문도 모른 채 비담에게 순간 포획되어 수풀 옆에 쥐죽은 듯 숨어있었다.

    비담을 포함 까망이들 스물은 자신이 가진 바 내력을 총동원하여 귀를 쫑긋 세운 채 곳간에서 새어나올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렇게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기다리길 일각.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리가 곳간의 좁은 틈을 비집고 두런두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몇몇의 목울대를 타고 침 넘어 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고, 벼락처럼 채근하는 동료들의 눈빛에 그들은 급급히 입을 막느라 분주해졌다.

    “으음, 한 번 만져 봐도 되겠소? 눈처럼 뽀얀 것이 무척 부드러울 것 같소만...”

    “조심히 만져주세요. 보는 것과는 달리 예민해서 강하게 어루만지면 상처가 생긴답니다.”

    “캬아! 내 태어나 이처럼 보드라운 감촉은 정말 처음이오. 그리고 봉긋 솟은 이곳은 정말 탐스럽고 따스하군요.”

    “하아! 저도 아까워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답니다.”

    “그나저나 끝에 매달려 있는 이것은 무엇이오? 빨갛게 익은 것이 꼭 열매 같소이다.”

    “저도 잘 모르겠지만 특히 예민한 부분이니 살살 다뤄주세요.”

    “정말 신기하군요.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볼 때마다 늘 신기했답니다. 아슬아슬 끝에 매달린 것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그럼 제 것을 구경하고 만지셨으니 저도 당신의 것을 구경하고 만져 봐도 괜찮을까요?”

    “많이 놀랄 터인데 그래도 괜찮겠소?”

    “늘 각오하고 있었는걸요?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당신 물건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모를 거예요. 어서 빨리 꺼내주세요.”

    “하하하, 보여드릴 것이니 너무 보채지 말아주시오. 자! 이것이오.”

    “꺄아! 정말 크네요.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다니세요?”

    “하하, 남자라면 의당 이정도 물건은 지니고 다녀야지요.”

    “너무 멋져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네요.”

    “칭찬을 과하게 해주시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비담과 까망이들은 대화의 수위가 꽤 높고, 진도가 급박하게 나가자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순둥이 대장에게 저렇게 저돌적인 면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더불어 눈처럼 순수한 빙루가 덥석 대장의 물건을 구경하며 감탄할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손이나 잡고, 서로 입술이나 부딪히면 대성공이라 여겼던 그들로써는 주군의 저런 돌발적인 행동이 정말 경이로울 뿐이었다. 백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용설란의 꽃을 보았다고 해도 오늘처럼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물건의 크기에 감탄하는 빙루의 말이 들림과 동시에 갑자기 작아지는 까망이 7호와 16호였고, 남자라면 의당 여자가 기함할 정도의 물건을 지녀야 한다며 의기양양 가슴을 쫙 펴는 까망이 9호와 12호였다.

    그리고 도대체 주군의 물건이 얼마나 우람하고 대단하기에 빙루가 저토록 감탄성을 연발하는지 공통된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 그들이었다.

    비담은 어수선한 까망이들에게 눈빛으로 주의를 주고, 흘러나오는 대화에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와! 이렇게 크고 단단한 것이 구멍을 찾아 들어간다니 너무 신기해요. 이런 거에 찔리면 많이 아프겠지요?”

    “소저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처음 당하는 사람은 이 물건에 찔리는 순간 피가 철철 흘러나오기도 하지요.”

    “정말요? 많이 아프겠네요.”

    “하하하! 제 물건을 소저께 함부로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녀석이 보기와는 다르게 여린 성격을 지녀 조심조심 다뤄줘야 합니다. 잘못 다루면 주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니까요.”

    “그럼 살살 다루셔야 되겠네요. 물건을 관리하고 다루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남자인 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을요. 5살 때 이 녀석을 처음 쥐고 흔들었을 때부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래도 처음 쥐고 흔들었을 때의 그 쾌감이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휘두르니 주변에 큰 기쁨도 주고 그럭저럭 물건 값은 하고 있습니다.”

    “어머! 정말 대단하세요. 5살 어린나이에 벌써 물건을 쥐셨다니. 그럼 최근엔 이 물건을 어디에 사용하셨어요?”

    “어디보자? 그게 가장 최근엔 비담에게 꺼내어 사용하였지요. 우리 둘은 서로 물건을 맞대며 지극한 기쁨을 맞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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