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154)
  • 37화

    “설마 담이가 나중에 팽가랑 부딪치진 않겠지? 하기야 강호가 얼마나 넓은데 다시 만나겠어. 그리고 워낙 심하게 얻어터져서 사실 담이의 그림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녀석이니 별일 없을 거야. 휴우, 역시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하더니 딱 그 말이 맞았어.”

    의자에 벌러덩 앉은 길천이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숙면에 빠졌다. 사실 영력이 높은 길천에게도 지난 사흘간의 기행은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사흘 만에 다시 자신의 육신을 되찾은 비담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막주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이성보는 이미 지난밤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보고받은 후라 안절부절 못한 채 비담을 맞이하였다.

    “어르신, 어쩌자고 팽가의 소가주를 건드린 것입니까? 기녀와 있었던 일은 제가 잘 무마하면 되었을 것을 어르신께 혹여 불상사라도 생길까 걱정입니다.”

    “예? 아! 그 일은 모두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별일 아니라고 하셨는데.”

    “호, 혹시 비담공자님?”

    “예, 접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원래 머물렀던 장소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사흘 동안 혹시 무슨 문제라도...?”

    “그, 그게 말씀을 드려야 할는지...”

    “비교적 상세하고, 정확하고, 명확하고, 자세하고, 일목요연 소상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몸의 주인이니 당연히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리 망설이시는 것입니까?”

    “그게 어젯밤 팽가의 소가주가 루를 방문해 기녀와 동침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자님도 알다시피 저는 정보를 사고파는 상인입니다. 무림인들은 잘 모르는 평소 녀석의 악행이나 치부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것이 저입니다. 처음엔 죽어도 받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가문 어쩌고 지랄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고 말았습니다. 오정회에 막강한 입김을 행사하는 팽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입니다. 남성우월주의를 무슨 영광의 훈장이라도 되는 양 떡 하니 달고 다니는 망나니 같은 그 녀석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하필 어르신께서 선화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는 그 순간에 말이지요.”

    “무슨 사고를 쳤는데요?”

    “아, 글쎄 이 미친놈이 기녀가 자기 위에 올라타서 그 짓을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기녀를 다짜고짜 패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야 모든 정황을 알고 있었지만 팽가 그 후레 잡놈들이 떼로 달려들어 난장을 피울까 염려되어 그냥 꾹 눌러 참았지요. 하지만 정의로 똘똘 뭉치신 어르신께서 그와 같은 광경을 목도하고 그냥 지나치실 분입니까?”

    “아니죠. 당연히 그처럼 좋은 건수를 그냥 지나치실 어른이 아니지요. 똥개가 양질의 똥을 그냥 지나칠 순 없는 법. 그건 말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래서요?”

    비담이 길천을 똥개에 비유하자 적절한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던 이성보가 화들짝 놀라 급히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흠흠, 아무튼 어르신께서 그 순간 나타나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셨습니다. 정말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갈 정도로 통쾌한 구타의 현장이었습니다.”

    “에이, 별일도 아니네요. 내심 걱정했는데 그분께서 알아서 잘 처리하셨네요. 저라도 그런 놈과 면상을 마주했다면 그분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나저나 그놈 숨은 붙어 있습니까?”

    “무, 물론 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팽가의 후환이...”

    “거 보십시오. 형님은 너무 정이 많은 게 탈이라니까. 나 같으면 진짜 죽여 버렸을 텐데. 아님 고자로 평생을 살게 만들던가. 별일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중에 따지러 오면 전부 잡아 족치면 그만이니까. 그나저나 약속대로 화류선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대체 그놈의 무기 지금 어디에 자빠져 있습니까?”

    “정말 괜찮겠습니까? 팽철영 그자는 오정회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지원한다는 ‘시봉세’에 속해 있는 자인데...”

    “허허, 시봉세인지 시방새인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래 구타는 떼로 덤빌 때 더 감칠맛이 나는 거니까 먼 훗날의 기쁨일랑 잠시 접어두고 어서 그 망할 놈의 부채가 지금 어디에 있는 지나 가르쳐 주십시오.”

    “휴우, 공자님께서 알아서 하시겠다고 하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화류선은 지금 북해빙궁의 신물로 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그곳까지 흘러들어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빙백신공(氷白神功)과 동급의 대우를 받는 보물로 모셔져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확실합니다. 수 백 년에 걸쳐 흑막의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소모시켜 얻어낸 정보입니다. 제 목을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애매한 것에 목까지 걸진 마시고. 아무튼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떠나시게요?”

    “하하,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참 많은 몸입니다. 엉덩이 무겁다며 반길 사람 하나 없으니 지체하지 말고 떠나야지요.”

    이성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막 방을 나서려던 비담이 안타까움에 울상이 된 이성보를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참, 팽가라고 하였나요?”

    “네.”

    “혹시 그놈들이 이번 일로 막주와 루에 책임을 묻거들랑 그냥 모른 채하십시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은인께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한단 말입니까. 저 역시 은인께 닥칠 고난과 역경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말씀 입에도 올리지 마십시오. 듣기 거북합니다.”

    “후후, 저에게 모두 떠넘기라고 한 것은 저를 배신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막주님이 건재해야 저도 마음껏 양질의 정보를 얻을 것 아닙니까. 지금은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으나 나중에 저를 위해 많이 바빠지실 것이니 이번에 제가 드린 호의는 그때 가서 계산을 하자는 것이지요. 막주님께서 봉변을 당하면 계산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 하오나?”

    “저런 놈들 떼로 덤벼도 제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정 힘에 부치면 도망가면 그뿐. 아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은인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모쪼록 몸조심하시고 언제든 제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연락을 주십시오. 만사 제쳐 놓고 은인의 귀와 입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막주님의 말을 들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생기는군요. 알겠습니다. 필요한 순간이 되면 꼭 연통을 넣겠습니다.”

    비담은 이성보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화류선이 잠들어 있다는 북해빙궁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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