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54)

29화

거지영감 오삼은 터벅터벅 주점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비담은 도박장에 가기 위해 자신의 자금을 점검한 후 방을 잡고 눈을 좀 붙이기로 하였다.

어스름한 어둠이 켜지고 하나둘 거리에 등이 걸리면서 낙양대로에도 활기가 찾아왔다. 낙양대로를 따라 걷고 있던 비담은 저마다 빛을 피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마냥 신기해하였다. 낙양의 밤거리는 난주에 비해 화려함은 떨어졌지만 그 규모는 훨씬 웃돌았다.

비담은 ‘취선루’라는 간판을 찾으며 사람들로 북적대는 거리를 한가롭게 거닐었다. 그러다 드디어 비담의 눈에 취선루가 들어왔다.

“거지영감이 말한 취선루가 바로 저곳이구나. 이야!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어가네. 안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거야? 나도 이럴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 봐야겠군.”

비담은 태어나 처음으로 도박장을 구경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설레었다. 가벼운 심호흡 한번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비담이 취선루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후끈후끈한 공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도박장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고 돈을 흔들며 광란에 빠져있었다. 비담은 도박에 미쳐 열광하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탐욕을 즐기며 천천히 도박장을 둘러보았다.

사실 비담은 잘 몰랐지만 취선루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은 운영시설이나 판돈의 규모만 놓고 보았을 때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방대한 크기와 유명세를 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여기서 발생한 돈을 이용하여 관리들에게 푸짐한 뇌물까지 상납하면서 별다른 잡음 없이 유혹에 약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버젓이 털고 있었다. 심지어 한쪽에 마련된 고급 방에서는 권세를 틀어쥔 관리들이 찾아와 도박을 즐기기도 하였다.

또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사행성도박을 이용하여 돈을 긁어모았다. 이른바 여성들이 소문난 장인의 명품을 원하는 욕구와 비등한 남자들 특유의 승부욕에 발동이 걸리면 염라대왕과 대면하기 전까지는 말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적절히 이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취선루의 도박장은 그러한 승부욕과 한탕주의라는 자양분을 먹고 욕심껏 자기 몸을 불리는 괴물이었다.

비담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신이 할 만한 도박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먼저 비담의 흥미를 끈 도박판이 바로 귀뚜라미싸움이었다. 귀뚜라미 두 마리가 격리되어 있다가 주인이 작은 붓으로 약을 올린 후 중간의 나무판을 제거하자 미친 듯이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며 자신이 돈을 건 귀뚜라미를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귀뚜라미는 서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라도 되는 양 상대방의 머리를 물어뜯으며 필사적으로 싸움에 임했다.

그러기를 약 반 각(약 7분). 다리가 더 튼실한 귀뚜라미가 승기를 잡고 맹렬히 공격을 감행했고, 다른 귀뚜라미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승패가 결정되려고 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리며 응원의 함성이 더욱 고조되었다.

그러다 중간의 심판이 다리가 튼실한 귀뚜라미의 승리를 선언하자 한쪽에서는 엄청난 환호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다른 한쪽에선 절망스런 탄식과 한숨이 새어나왔다.

관리인들은 이러한 반응에 무신경한 채 바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또 귀뚜라미를 감별하며 돈을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비담도 마음이 동했는지 유심히 다음 출전선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난주 보림루에서 받은 은자 500냥짜리 전표를 머리가 큰 귀뚜라미에게 몽땅 걸어버렸다. 액수를 받아든 관리인이 놀란 눈으로 비담을 쳐다보았다.

“은자 500냥을 전부 거신 게 맞습니까?”

“맞소, 저기 있는 머리가 큰 놈에게 모두 걸었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요?”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액수가 너무 큰지라 당황스럽기는 합니다. 이만한 액수라면 집을 한 채 살 수도 있는 큰돈이라서 말이지요.”

“판돈에 한도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그냥 모두 걸어주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은자 500냥을 모두 걸도록 하겠습니다.” 

비담은 고개를 흔드는 관리인을 향해 한번 씩 웃어주고는 이내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오늘 도박장에 온 목적은 선화라는 여인과 접촉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인상을 줄 필요가 있어. 거지 영감의 충고대로 저만한 돈을 잃거나, 혹은 따고 기다리다 보면 분명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인간, 특히나 남자의 심리는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거기에 늘 승패가 숙명처럼 정해지고 한끝 차이로도 좌우되는 무림이라는 첨예한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남자라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비담 역시 생각은 저리하고 있었으나 지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는 강호의 남자였다.

비담은 내공을 이용해 안력을 높인 상태에서 귀뚜라미의 세세한 생김새부터 움직임까지 꼼꼼하게 관찰하여 전투력을 측정하였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화기침습도 몰래 운용하였다. 한마디로 자신이 건 귀뚜라미 주변의 공기를 살짝 데워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막을 알리 없는 사람들은 그저 귀뚜라미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마침내 비담이 첫 번째로 돈을 건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머리가 큰 귀뚜라미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기이한 광경에 입을 떠억 벌리고 말았다. 오랫동안 경기를 관리했던 관리인들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방적인 경기에 당황하고 말았다.

분명 비슷한 수준의 귀뚜라미를 섭외하여 경기를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약이라도 처먹었는지 흥분해서 날뛰는 머리 큰 귀뚜라미로 인해 결국 경기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비담은 자신이 건 귀뚜라미가 압승을 거두자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희희낙락 관리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관리인은 어마어마한 액수에 울상을 짓더니 은자 1,000냥짜리 전표를 꺼내 주었다. 비담은 바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귀뚜라미를 살핀 후 망설임 없이 바로 은자 1,000냥을 다리가 긴 귀뚜라미에게 걸었다.

관리인은 도박의 신이 아닌 이상 비담이 한번은 질 것이라 예상하고 흔쾌히 돈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관리인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담은 신들린 끗발을 자랑하며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렇게 총 다섯 번에 걸쳐 비담이 승리하자 액수는 무려 은자 1,6000냥(황금 1,600냥)까지 불어나게 되었다. 울상을 지은 관리인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황금 1,600냥짜리 전표를 내어주며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액수의 판돈을 걸면 경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며 하소연하였다.

“고, 공자님. 이제 이만 한 돈을 거시면 저희들도 경기를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도박판으로 옮겨 주십시오. 저희들도 나름 사정이 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쩝, 할 수 없지요. 그리 부탁을 하시니 다른 도박을 즐기는 수밖에요. 아무튼 즐거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관리인의 표정이 똥이라도 씹었는지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곤 비담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사람을 불러 은밀히 속삭였다.

“너는 빨리 이와 같은 정황을 상부에 알리거라.”

“예.”

“휴우, 루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구나. 제발 선화아가씨가 만회를 해주셔야 할 텐데.”

귀뚜라미 경기의 관리인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상부에서 재빨리 도박장에 선화를 투입하였다. 비담은 지금 주사위의 홀짝을 맞추는 판에 앉아 열심히 돈을 잃고 있는 중이었다. 주사위의 상태를 살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사위에 화기침습을 걸 수도 없어 속수무책 당하는 중이었다.

나름 규칙을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수년간 단련된 전문 도박꾼들을 상대로는 방법이 없었다. 상부에 보고가 되고 선화가 투입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무려 황금 600냥을 탕진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승부욕과 오기가 발동하여 그냥 놔두었다가는 귀뚜라미 경기에서 땄던 돈의 태반을 날릴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적절한 시기에 선화가 투입되어 비담의 불운과 불행을 막아주었다.

“공자님? 이번엔 저랑 경기를 하시는 게 어떠세요?”

갑자기 도박장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와 비담 앞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비담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방긋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환영을 하였다.

“하하하, 저야 아가씨처럼 예쁜 분이랑 경기를 하면 영광이지요. 그나저나 은은히 비치는 속옷의 색이 검정색인 모양인데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뭐라고요? 예의와 염치를 아시는 분인 줄 알았더니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희롱부터 하시는군요. 저는 당신 같은 사람과는 상종하기도 싫으니 그만 물러가 주십시오.”

따~악

도박장을 가득 울리는 따귀소리에 사람들이 모든 행동을 정지한 채 주사위 판이 벌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이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강 짐작들을 하고 비담을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끔 도박장을 찾는 사람 중에 도박을 진행하는 여성을 상대로 희롱하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쯧쯧, 아직도 저런 몰상식한 녀석이 다 있구먼. 돈을 따려고 도박장에 왔으면 돈이나 딸 것이지 왜 수작을 부리고 지랄이야.”

“그러게나 말일세.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돈 좀 땄다고 제 세상이라도 만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게 없나보지. 그나저나 말세구만, 말세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비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비담이 사라진 후에도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인 듯 분해하며 한동안 비담을 입에 올린 채 화를 삭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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