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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20/154)

20화

제 4 장 침묵의 꽃, 서희(瑞喜)

장안에 도착한 비담은 우선 사부의 묘부터 찾아갔다. 봉분도 없는 묘는 수북하게 자란 잡초들로 뒤덮여 있었다. 비담은 손수 잡초들을 제거하며 다시 한 번 사부의 염원을 되새기고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그렇게 묘에서 반나절을 보낸 후, 비담은 흑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장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객잔에 짐을 풀었다.

비담은 객잔의 2층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모처럼 한가로이 차를 즐겼다. 그런데 비담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상인 세 명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 보였다. 비담 역시 호기심에 내공을 운용하여 귀를 쫑긋 세웠다.

“자네, 그 얘기 들었는가?”

“무슨 얘기 말인가?”

“아, 중원 5대 거부에 들어간다는 조대인 있지 않은가?”

“장안의 모든 상권을 쥐고 흔든다는 부흥상회의 조석태 어른을 말하는가?”

“아, 그래. 그리고 그 어른이 어디 장안의 상권만 쥐고 흔드는가? 요즘은 섬서를 비롯해 사천성과 감숙성의 상권까지도 장악했다고 하더군. 거기서 일하는 상인중에 나랑 친분이 두터운 녀석이 있는데 재물이 어찌나 많은지 자신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더군. 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자네들도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이번에 그 조대인이 계집을 하나 첩으로 들였잖은가?”

“그거야 우리도 들어서 알고 있지. 어찌나 아름다운지 서시나 양귀비는 근처에 왔다가 부끄러워 도망간다는 소문이 돌아 그로인해 장안이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그 첩 이야기는 왜 꺼내는가?”

주위를 한 번 더 두리번거린 상인은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건 자네들만 알고 절대 비밀로 해야 하나. 글쎄 그 상인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조대인이 새로 들인 첩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잔다고 하더군.”

“하하, 당연한 소리를 뭐 하러 입 아프게 떠드나? 새로 들인 첩이 그토록 아름다운데 잠이 오겠는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허물었다, 쌓았다, 허물었다’를 반복하면 잘 시간이 부족할 테지.”

“그게 아니니까 문제란 말일세. 글쎄 새로 들인 첩의 미모가 빛이 날 정도로 출중하면 뭐하나? 세상에 둘도 없는 목석이라 안을 수가 없는데.”

“엥?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글쎄 목석도 그런 목석이 없다고 그래. 실어증이 걸렸는지 하루 종일 방긋방긋 웃기만 할뿐 한마디도 안하고, 밤에는 증세가 더욱 심해져서 도무지 꼼짝을 안한다고 하더라고. 조대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방법이 없어 손을 놓았데요. 아, 자네들도 생각을 해보게. 꽃이 아무리 예쁘면 뭐한가? 꽃잎을 꽉 닫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데 자네들 같으면 속에서 열불이 나지 않겠는가? 품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니 조대인 심정도 말이 아닐 거야.”

“흐흐, 정말 조대인의 심정이 말이 아니겠어. 거금을 들여 기껏 첩으로 앉혀놓았더니 품지도 못하고 관상용으로 바라만 봐야하니. 그나저나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군. 이러니저러니 해도 조강지처가 최고인거야. 우리 마누라는 내가 들어가면 양다리를 활짝 벌리고 대환영인데 말이야. 뭐 외모는 많이 딸려도 그렇게 사는 게 차라리 속편하고 좋지. 안 그런가?”

“휴우, 난 그냥 바라만 봐도 좋으니 한번 구경이나 했으면 소원이 없겠구먼. 매일 펑퍼짐한 마누라 궁둥이만 보니 영 의욕이 없단 말이야.”

“어차피 그림이 떡이야. 그런데 그러고 끝인가? 다른 이야기는 없어?”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빨라 좋단 말이야. 아,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가 그냥 맥 놓고 가만히 있겠는가? 당연히 포상금을 걸었지. 어떤 수단과 방법도 상관없으니 그 첩을 안게 해주는 사람에게 막대한 돈을 준다고 하였다네. 한마디로 누가 먼저 개시를 해달라는 소리지. 조대인은 잘 닦아놓은 길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이고.”

꿀꺽

갑자기 침을 삼킨 두 상인이 뒷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이 나왔는가?”

“성공한 사람이 나왔으면 내가 이야기를 꺼냈겠는가? 장안에 내로라하는 의원부터 온갖 잡놈들이 시도를 한 모양이야.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엄청난 미인도 품고 거액의 포상금도 받고.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쓸쓸히 돌아갔데.”

“저, 정말인가? 아무도 성공한 사람이 없어?”

“괜히 목석 중에 목석이라 했겠는가? 별 지랄을 다해도 구멍이 절대 안 열린데. 뭐가 열려야 밀어 넣든 끝장을 보든 할 게 아닌가.”

“근데 조대인도 정말 대단한 양반이네. 아무리 첩이랑 자고 싶어도 그렇지 그렇다고 숫처녀인 첩을 그렇게 함부로 돌리나?”

“조대인도 이제 거의 포기한 모양이야. 아 그리고 얼마나 복장이 터졌으면 그런 방법까지 썼겠는가? 굳게 닫힌 문이라 뭐 볼 것도 별로 없다고 그러던데 나는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네.”

“그나저나 포상금이 얼마라 그러던가?”

“글쎄 얼핏 듣기로는 황금 1000냥이라 들은 것 같네만.”

푸웁, 푸악.

상금을 들은 상인 둘이 목을 축이려 넘기던 찻물을 시원하게 뿜고 말았다. 그리고 사레에 걸린 듯 기침을 쏟아냈다.

“에이, 이 사람들이 더럽게...” 

“콜록, 콜록. 미, 미안하네. 바, 방금 황금 1000냥이라 그랬는가? 자네가 잘못 들은 건 아니고?”

“쉬잇! 목소리 좀 낮추게. 그리고 아직 귀가 멀 정도로 늙지는 않았다고. 얼핏 듣기는 했지만 분명 황금 1000냥이라 그랬네. 왜? 한번 도전해 보게?”

“됐네. 미인도 탐이 나고, 돈도 욕심이 나지만 예쁜 꽃일수록 큰 가시를 숨기고 있는 법.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네.”

“하하,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가끔 보여주는 자네의 이런 모습이 무척 존경스럽단 말이야. 잘 생각했네. 안 그래도 도전을 하겠다고 하면 내가 두 팔 걷어붙이고 말릴 생각이었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도전했던 사람들이 모두 폐인이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어서 그래.”

“저, 정말인가? 아니 어쩌다 폐인이 된 게야? 혹시 무슨 요사스런 술법에라도...”

“후후, 그게 아니라 사지육신은 멀쩡한데 꼭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정신적인 폐인이 되었데. 그 첩의 얼굴을 본 후론 다른 여자는 여자로도 안 보여서 도저히 품을 수가 없다는구먼. 글쎄 아무리 지랄 발광을 해도 물건이 서지를 않는데요. 그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기껏 미인 한 번 쳐다보고 안아본 죄로 평생 그 짓을 할 수 없다니. 그 소문이 퍼진 후로 요즘엔 도전하는 사람도 거의 사라진 모양이야. 그러니 조대인도 이제 포기를 한 모양일세.”

이야기를 듣던 상인 둘은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공포에 젖었다. 한창 계집을 품을 나이에 더 이상 물건이 서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어쩐지 그만한 거금이면 진작 소문이 날 법도 한데 너무 잠잠하더라니. 다 그런 이유가 숨어 있었구먼.”

“아무튼 행여 도전할 생각이라면 진즉 깨끗하게 포기하고 접게. 이건 10년 우정을 걸고 하는 충고니까 단단히 새겨들어.”

“알았네. 그건 그렇고 저번에...”

분위기를 주도하던 상인은 조대인의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화제를 돌렸고, 비담 역시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호오! 천하에 그런 여인이 있단 말이지? 목석 중에서도 상 목석이라. 한번 도전해볼 가치가 있겠어. 그리고 중원에서 꽤 명성이 자자한 거부라면 정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생각하고 관리를 할 터. 분명 흑막이란 단체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이럴게 아니라 부흥상회인지 뭔지를 한번 방문해 봐야겠어.’

비담은 남은 차를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점소이에게 작은 은덩이 하나 쥐어주고 부흥상회의 위치를 알아낸 후, 휘적휘적 상회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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