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154)
  • 18화

    쫘~악

    “으음.”

    “정신이 드나?”

    정신을 차린 후천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이 후레 잡놈아. 우리 총채주님께서 오시면 넌 끝장이야. 살려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국물도 없어.”

    기절해 있는 동안 상황을 전혀 몰랐던 후천이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누구? 혹시 쟤를 말하는 거냐?”

    비담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린 후천은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임성필을 확인하더니 입술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두, 두목님?”

    “눈물겨운 상봉이구만. 같은 몰골로 직장상사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지? 잠시만 기다려. 내가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줄게.”

    비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공터로 200명 정도의 산적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상황이 종료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합류한 총채의 후발대였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달려왔건만 우두머리들이 처참하게 당한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비담은 체력을 모두 소진한 산적들을 향해 아낌없이 부채의 매운맛을 선사하고 앞서의 얼차려를 똑같이 베풀어주었다. 무려 두 시진(4시간)에 걸쳐 진행된 얼차려가 끝나자 산적들의 눈빛이 판이하게 바뀌었다. 나무에 묶여 모든 상황을 지켜본 산적들은 오히려 자신의 처지에 감사할 정도였다.

    “앞으로도 계속 산적질을 하고 싶은 산적은 지금 조용히 손을 드십시오.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렁찬 외침에 비담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해산을 명했다.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저와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들을 추억하며 전원 해산!”

    “해산!”

    산적들은 다시 태어난 기분을 만끽하며 순식간에 흩어졌다. 산적들이 모두 사라지자 비담이 돌아섰다. 비담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녹림팔웅의 셋째가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다.

    딸꾹, 딸꾹.

    “어라? 갑자기 웬 딸꾹질? 꼭 귀신이라도 본 표정들이네.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니까 넘어가고. 그나저나 이제 슬슬 본 공연의 막을 내리는 게 좋겠군. 어이, 왕두목?”

    “뭐, 뭐냐?”

    “말이 짧네? 아까는 말이 짧으면 무림에서 수명이 어쩌고저쩌고 잘도 떠들어대더니.”

    “뭐, 뭡니까...요?”

    “아직도 조금 짧기는 하지만 왕두목이니까 그 정도는 눈감아 주기로 하고. 어째서 진무문의 가솔들을 죽이고 그곳의 여인 한 명을 납치해 갔는지 설명할 시간이야.”

    “그, 그건...”

    “하나, 둘.”

    얼차려의 모든 상황을 지켜본 임성필 역시 비담의 입에서 셋이라는 숫자가 흘러나오면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지 알기에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예,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여섯 번째 부인으로 삼기위해 그런 것입니다.”

    “여섯 번째 부인? 에이,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단순히 부인을 삼고자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질러?”

    “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산채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면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아리따운 저의 부인들이 밤마다 저를 위해...”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네?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거야?”

    비담의 주먹이 임성필의 복부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흐억!”

    임성필은 아침에 먹은 밥과 반찬을 게워내며 괴로워하였다.

    “한번만 더 자랑스레 지껄이면 삼일 전에 먹은 것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마. 그럼 납치한 그 여인은?”

    “그, 그게 차마...?”

    비담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임성필이 공포에 떨며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밝혔다.

    “하도 반항하기에 최음제를 먹여 창고에 가둬두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을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곧 있으면 발작을 할 텐데...끄억! 우웩!!”

    결국 임성필은 삼일 전에 먹은 음식을 직접 확인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최음제에 당한 여인은 욕정이 치미는 순간 남자와 교합하여 해소하지 않으면 결국 혈맥이 터져 죽는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비담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비담은 아직도 딸꾹질을 하고 있는 산적을 풀어 한 팔에 끼고, 진무문의 소저도 나머지 팔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촉박한 마음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곤 살기가 번들거리는 음성으로 산적에게 물었다.

    “총채가 있는 방향은?”

    “저, 저쪽입니다. 딸꾹.”

    산적의 손가락이 지정한 방향으로 비담의 신형이 빛의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복호산 산채에 도착한 비담은 팔에 낀 산적을 위협해 창고의 위치를 알아내고, 곧바로 다시 몸을 날렸다. 창고 앞을 지키던 산적이 다가오는 비담을 제지하려다 발길질 한방에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고, 비담은 거칠게 문을 부수고 안을 살폈다. 창고 안에는 임성필이 말한 대로 진무문 소저의 언니로 추정되는 여인이 옷을 풀어 헤친 채 몸을 배배 꼬며 쉴 새 없이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아~아아!!”

    비담은 한 눈에 여인의 상태를 파악했다.

    ‘급히 서둘러 왔건만 이미 약효가 전신에 퍼졌구나. 시간이 얼마 없다.’

    비담은 달려오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진무문의 소저를 급히 깨웠다.

    “소저? 정신을 차려 보시오. 언니의 상태가 매우 위급하니 어서 정신을 차려 보시오.”

    ‘언니’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화들짝 깨어난 여인에게 비담이 현재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급히 확인할 것이 있으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비담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계속 신음만 토하는 여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소저의 언니가 맞습니까?”

    “어, 언니!!!”

    비담은 여인의 절규를 듣고 더 이상의 확인은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화급을 다투는 상황인 만큼 요점만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지금 언니 분께서는 약효가 전신에 퍼져 위험한 상황입니다. 빨리 남자와의 동침을 통해 욕정과 음기를 다스리지 않으면 전신의 혈맥이 터져 죽을 것입니다. 제가 언니 분의 욕정을 다스리겠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하, 하지만 처녀인 언니가 나중에 감당할 수 있을는지...?”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비담의 고함에 결국 여인의 눈물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허물어지듯 자리에 무너져 비담의 바지를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은공,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은 제가 책임질 것이니 어떻게든 언니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제발요.”

    “알겠습니다. 모든 일은 저에게 맡기십시오. 야! 산적?”

    “부르셨습니까? 딸꾹.”

    “여기 있는 소저를 잘 모시고, 지금부터 창고 앞을 지켜라. 만에 하나 이 여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녹림이란 단체는 무림에서 아예 흔적조차 없이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창고 근처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경계를 한다.”

    “넵.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딸꾹.”

    산적이 쓰러져 울고 있는 여인을 데리고 나가자, 그제야 비담은 그녀의 언니에게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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